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세상에는 나와 부대껴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잘 지낸다. 이 '잘 지낸다'라는 표현은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각자의 독립된 활동을 추구할 수 있고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서 협력한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나의 노력은 긍정적인 효과로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나와 별 탈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친구의 약점을 놀려 친구와 나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던가, 직업에서의 활동 외에 사생활에서의 활동을 거의 모두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낯을 가리는 나의 성격 때문일까 걱정이다.

  나는 지금 나와 연결된 모든 사회집단에서 잘 지내지만 소원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마치 모든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 노력하다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 엄청난 친밀감을 안겨주지 못하는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처럼, 나는 대중에 해당되는 나의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취하고만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친구들을 놀리거나, 그들의 인생에 대해 폭넓게 알고 있거나, 재밌는 사람이 되어 친구들 사이에서 시종일관 대화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이 세 가지 일에 통달하고 싶지만 항상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면 나의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단정한 말투와 성격을 다듬는데 만전을 기울인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여 내가 땅으로 엎어지거나 눈물 콧물을 동시에 흘린다거나 친구들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는 일은 전혀 없다. 이것이 이미지 관리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자신에게 새삼 놀랐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정치인도 아닌데 왜 나는 이미지 관리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정했다. 잘 지내면서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곁에 많이 두어 나의 인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목표 아래에서 나는 결심했다. 우선 이미지 관리를 그대로 놓아두고 이 시대가 원하는 '재밌고 웃기는 사람'의 캐릭터를 배워나가야겠다. 하지만 내가 모든 사람들 앞의 개그맨이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개그맨은 대중에게 호소할 뿐 특정한 개인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친구들이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칭찬하고 격려하며, 친구들의 외모를 유심히 살펴보아 친구에게 정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겉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이 모르는 다른 친구들의 해프닝을 일화로 들려주며, 물질의 도움을 받아 내가 가진 스포츠/음악/미술에서의 능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과정에서 가끔 예상치 못한 말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유머와 개그로서의 말은 '단지 말뿐이므로'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엄청난 불이익을 가져다주더라도 실제로는 아무런 실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와중의 나의 진실된 의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나는 조금 더 친구들과 친해지려 노력할 것이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털어내면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솔직하게 다가온다. 친구는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틀에 박힌 진심의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 역동적인 시대에서 적당한 유머는 필수적이다. 진심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말뿐인 유머와 개그로 수시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다. 단지 잘 지내기만 하는 친구들과 서로 가지고 있는 '서로에게 잘 보이려는 벽'을 허물고 그들과 소원한 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도록 만드는 유머와 개그는 오늘날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묘약이라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람은 몸살이 나 아프거나, 과도한 공부로 정신이 지쳤을 때 평소보다 일찍 잔다. 그리고 일찍 잔 사람은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깊은 수면으로 보낸다. 수면은 너무나도 깊어서 우리는 평소 접하지도 못했던 꿈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어제의 경험을 통한 나의 추측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았을 때 전에 있었던 숙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생각났다.


어제 드디어 홍대 드럼스테이션에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2번, 한번 할 때 최대 2시간 연습할 수 있는 1달짜리 회원권을 구매한 것이다. 우선 열심히 드럼을 쳐보고 3월에도 계속 나의 운동과 취미를 위해 드럼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 보겠다. 엄마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나중에 밴드에 가입할 때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를 다루듯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따라서 지금의 드럼 연습은 일단은 개인적인 측면에만 한정된다.


문제는 어제 낮에 1시간동안 드럼을 쳤는데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전 3박4일간의 교회 수련회가 가져온 피로를 증폭시켜 나에게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교회 수련회가 끝난 뒤, 나는 그다지 졸리지 않아 평소처럼 컴퓨터로 인터넷을 둘러보고, 위닝을 하고, 프랑스어 책을 읽었다. 그때까지 괜찮았던 나는 어제까지 열심히 못하던 공부를 했다. 그러나 피로와 그것이 유발하는 몸살기는 소리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드럼 연습을 무진장 해서 입고 있던 스웨터 속에 땀을 조금 흘리고 그 상태 그대로 지하철을 한 시간 동안 타고 왔다. 약간 힘들어하는 나의 몸 속에 면역체계가 조금 방심하고 있던 사이 몸살기가 온몸에 퍼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결국 어제 10시에 일찍 잤다. 그후 현실 세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나의 행동과 언변이 아무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나를 도와준 아주머니를 만나고 어두컴컴한 밤에 헤어졌는데 나의 소중한 지갑이 없어졌다. 다음날 나는 친척에게 받은 명품 지갑을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그 아주머니를 의심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떠난 상태고, 아주머니의 연락을 취할 수 없어서 카드 분실 신고나 하고 있다가 마침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자기네 집으로 와서 자녀 둘의 공부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 한 시간 동안 아들과 딸의 공부를 봐주고 다시 지갑을 찾으러 백화점으로 떠났다. 백화점에서 나의 모습을 본 한 안내원이 내 지갑을 주면서 '여기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보니까 손님 것 같은데 맞으시나요?' 하고 말했다. 아주머니를 괜히 의심한 나에게 조금은 죄책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허둥지둥 내 지갑부터 확인했다. 지갑이 그 자리에 있어서 신기할 정도로 꿈은 현실적이었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이 잘 되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꿈이었지만 이것이 결국은 '개꿈'이고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갑은 왜 없어졌는가, 아주머니는 왜 내가 백화점에 있을 때 물건 구입을 도와주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현실의 상황을 끌어와보아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나의 확신은 뒤집어질 수 있다.


몸살이라는 것은 사람의 육체를 힘들게 하지만, 평소에 잠자고 있던 정신을 깨워준다. 아픈 사람은 다른 운동에 다시 참여하기는 힘들지만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기도를 하거나 심오한 학문에 대한 공부를 할 때 더 열의를 갖는다. 육체가 굴복하여 일찍 잠들면 활발한 정신이 활동을 시작하여 꿈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한다. 이세상에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만 작동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 학문적인 탐구에 자신이 없는 나는 나의 믿음을 통해 초월자 하나님에게 이러한 모든 일의 통치권이 달려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2007. 2. 6.
--------------
그리고 2007년 5월에 나는 지갑을 진짜로 소매치기 당했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읽으니 섬뜩한 기운이 온몸에..

'Cafe Macchiato > 주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선 밀실을 느끼다.  (0) 2008.07.27
깔끔해지는 서울  (0) 2008.07.27
민족제 편집하고 DVD 굽다.  (0) 2008.07.27
오늘은 고독한 날이다  (0) 2008.07.27
아로마테라피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어제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중간에 조금씩 쉬어가면서 작년 6월 있었던 우리 고등학교 축제 동영상을 편집하였다. Ulead VideoStudio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금방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1394 하드웨어를 비롯한 여러가지를 산지는 3년도 더 되었지만, 실제로 그 도구들을 가지고 동영상을 제작해본 적은 없다. 고등학교 공부도 있기 때문에 제작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영상편집은 계속 미루어 왔지만, 이제 시간이 많아서 1월 안에는 꼭 민족제 동영상을 편집하여 DVD로 굽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나는 초보적이고 단순한 홈 비디오 식의 동영상은 만들기 싫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캠코더를 사서 서투른 촬영 솜씨로 중요한 행사를 촬영하고, 나중에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 그 촬영 테이프를 아무런 터치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중간에 불필요한 영상도 있고 아무래도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초본이기 때문에 가지런하지가 못할텐데 사람들은 편집을 하지 않는다. 기억에 오래 간직할 소중한 영상은 정성들여 편집하여 영원히 보관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결국 이번에 나의 욕망을 분출했다.


내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너무나 기본적인 기능만 가지고 있고, 공중파 다큐멘터리 수준의 영상을 만들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따로 다른 프로그램을 열거나 스스로 프로그램이 지원하지 못하는 계산 작업을 해야만 했다. 특히 자막을 삽입하고 육성과 싱크를 맞추는 작업에서는 밀리세컨드 단위까지의 수많은 시간 계산이 동원되었다.


나의 노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프로다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미니멀리즘의 가치관을 영상편집에 투영했다. 초보자용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화면 전환 효과, 화려한 글씨 등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결국 쉽게 질린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실력으로 차라리 단순한 구성으로 영상에 자막이나 음악 등을 덧씌우기로 애초에 작정을 했다. DVD까지 다 구운 다음에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일이라고 본다.


민족제 동영상은 나의 누나가 학교 체육관에서 캠코더로 찍어준 50분 분량의 영상이다. 이것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영상의 두 가지 주제인 '스포츠댄스 공연'과 '민족가요제 밴드공연'으로 영상의 테마를 좁혀나갔다. 미스민족과 같은 다른 행사도 고려하였고, 최대한 나와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분좋은 영상만 뽑아서 37분으로 정리했다. 오프닝 음악도 넣어주었고, 마지막의 엔딩크레딧도 삽입하여서 한 편의 '인간극장' 같은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이번 동영상은 나와 비슷한 행사에 참여해 활동하고도 멋진 동영상을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나와 친구들 모두가 공유하는 고등학교의 추억을 상징한다. 민족제의 스포츠댄스팀과 밴드팀에 속한 사람들은 이 동영상이 최고의 선물로 다가올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나에게도 이 동영상은 예상을 넘어선 희열을 안겨주었으니 틀림없다. 곧 2월 9일이 찾아와 나는 2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때 친구들에게 이 DVD를 건네주고 친구들을 모아 함께 영상을 보면 지금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을 것이다.


2007. 1. 30.

'Cafe Macchiato > 주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깔끔해지는 서울  (0) 2008.07.27
푹 쉬면 꼭 이상한 꿈을 꾼다  (0) 2008.07.27
오늘은 고독한 날이다  (0) 2008.07.27
아로마테라피  (0) 2008.07.26
초봄이 아닌 한창일 때의 봄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나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인 사고방식의 오류를 안고 살아갔다. 나에게 지란지교, 관포지교, 죽마고우, 백아절현과 같은 네글자의 고사성어가 가르쳐주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정과 지혜는 21세기의 험한 사회에서 너무나도 부적합한 것처럼 보였고, 개인과 가족만이 행복하면 자신의 인생 또한 즐거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바로 지금인 줄 알았다. 즉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중간에 곁가지로 다가오는 수많은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피를 나눈 가족들과는 사뭇 다른 이들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들과 나 사이에 영원히 이어지는 끈은 없었고,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들을 대하는 나만의 특별한 자아를 가지고 그들과 대면했다.


이와 다르게 나와 나의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는 서로가 진실된 모습만을 보여준다.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와 가족들은 서로 자신들의 약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약점을 서로 감싸주는 과정에서는 상담원과 고민하는 학생 사이의 서먹함이 아닌 즐거움이 담뿍 드러난다. 또한 부시시한 머리로 함께 정겹게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보여준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어깨에 티끌 하나 앉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며 사업차 만남을 할 때의 예절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서로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는 '친교'가 우세한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나아가 이러한 친교를 바탕으로 하여 가족들은 서로의 단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칭찬하기를 즐긴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데 있어서 남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자아는 없다.


친구들 대여섯명이 모여 같이 놀러나가는 자리나 학교 선배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내가 집에서와 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남들이 최근 어떤 일을 하고 지내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직 그 만남 속에서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모임이 파할 때까지 호감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적극적으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간단한 게임의 진행을 맡아 많이 이야기한 적은 있더라도, 그러한 일은 어디까지나 평소의 나의 생활과 매우 유리된 일이었다. 적극적으로 남들을 즐겁게 해주고 남들에게 호감을 주려는 나의 노력은 근본적으로 그 바닥에 '예절'을 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가는, 쉽게 말해 그들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일인 대화(Conversation)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며 공감대를 만드는 대화는 곧 친교로 발전하는데, 친교를 만들어야만 하는 친구들 사이의 모임에서 나에게는 친교보다 예절이라는 가치가 우세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이렇게 기억했을 것이다. 적극적인 척하는 소극적인 아이, 남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려 애쓰는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자기 비판을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꽤나 피하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어디까지나 우연히 만난 사람이고 또 언젠가 우연히 떠날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이라는 '주막'에 수많은 '나그네들'이 오고 갈 것이라는 이러한 사상체계는 매우 잘못되었다. 나의 주막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가족이 아니면서도 나와 몇년씩 같이 지내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이들이 주위에 꽤 많다.


오래 되고 참된 사귐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가능하다는 뻔한 진리가 이제 눈에 선하다. 물론 가족은 친구와 다르다. 가족들에게 내가 가져다주는 물질적,정신적 혜택은 친구들이 받을 혜택과 큰 차이를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나의 성품, 특별히 대화하는 태도나 화제의 종류는 가족들이든 친구들이든 상관없이 같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친구들이 또다른 가족이고, 예절보다 친교가 우선시되는 인간관계의 폭을 더 넓힌다면 어떨까. 진실된 자아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얻는 즐거움 또한 무한으로 커질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신이 세련되었다고 믿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며 매일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일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꼼꼼한 솜씨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동정의 눈빛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경쟁하지 않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을 굉장히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경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남의 도움을 전혀 요청하지 않고 야무지게 자신들의 일을 처리한다. 서로 도와주면서 쌓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혜택은 그들과는 먼 이야기이다. 그러나 혼자서만 살다가는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에 부딪친다. 그렇기에 사람은 주변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중 서로 약점을 드러내고 서로 약점을 감싸주기 위해 부조하며 살아가는 것은 남을 도와주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 사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그 사람과 더욱 가까워졌다는 뿌듯함이 대부분이다. 조선 시대에 특히 발달했던 상부상조의 전통은 한 마을 안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살아가도록 해 주었고,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자리를 채워주도록 하는 일종의 제도로 작용했다. 법과 도덕의 중간 성질을 가지고 있는 '禮'로써 따뜻한 인간관계를 유도해냈다는 점에서 상부상조의 전통은 단순히 도덕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을 증진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지금의 많은 TV 드라마, 그중 여러 가족들의 삶을 깊게 다룬 드라마를 보면 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자신의 부모님이나 형제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자신들의 약점을 다른 인물들과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곧 어려움에 빠졌던 인물은 다른 인물의 도움을 받아 기쁜 웃음을 지으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 인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가는 멋진 남자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약점이 드러난 인물에게 까탈스럽게 굴던 여자 주인공이 진심으로 화해를 청하기도 한다. 지금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특히 인정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며 서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최근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개인주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가구 단위, 혹은 개인 단위의 경제력을 늘리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움을 마음 속에 지니고 살았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먹을 양식이 부족하거나 하여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기 위해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점차 개인 혹은 핵가족 한 가구 단위의 인간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중요해짐에 따라 서로 도와주면서 느끼는 따뜻한 인정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가했다. 그들은 우선 자신에게서 약점을 찾지 못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남들의 능력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들에게는 조금도 열등한 능력이 없다. 그들이 남들보다 열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거나 혹은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 관련된 능력이다. 또한 그들은 당장 그들이 맡은 일에 대해 너무나도 완벽을 꾀한다.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는 끝내기 힘든 일이 있다면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여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일을 완수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융통성보다 자신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자존심이 더 우세하게 된 셈이다.


  자신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원칙처럼 고수하는 사람들은 따라서 남에게 도움을 받으며 쌓아가는 인간관계에 대해 무지하다. 뛰어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전혀 드러내지 않으므로 자신이 도움을 받지는 않는다. '완벽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사람은 남들에게 도움을 받는 일 전혀 없이 자기보다 부족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만 한다. 완벽한 그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회사나 같은 학교에 소속해 있어 그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이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만 하고 도움 줄 여지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남을 도와주려는 호의가 다른 사람에게는 굴욕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인간들이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려면 둘 이상의 인간들이 모두 자신들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약점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의 말은 거짓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한번쯤 느끼게 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며 사람들은 부족하지 않은 삶을 보내게 된다. 자신을 일부러 '완벽한 사람'으로 못박아버리려는 마음은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게 되는 결과로 인하여 자신의 인간관계를 빈약하게 만들 수 있다.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완벽한 사람'이 자신 혼자 알아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그때부터 열등감과 우월감이 조금씩 생긴다. 약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드러내야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다가온다. 그렇게 인정을 쌓아가며 서로 도와주는 삶이 가식 없는 삶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은 방학식 하루 전날이다.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기분 좋은 의무감이 아침부터 나를 자극했다. 내가 나 자신을 졸업생으로 규정하고 교만해지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도 않고 친구들 또한 원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오늘이 끝나면 소중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최대한 겸손한 마음을 먹고 선생님들의 방을 하나 하나씩 찾아갔다.


  선생님들께 찾아가는 것은 이 학교를 떠나가는 학생의 마땅한 도리라고 굳게 믿는다. 일년 혹은 이년 동안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사람들을 말 한마디 없이 떠나는 것은 내가 그 선생님과 적어도 인간적인 교류를 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인 일이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수많은 학생들을 새로 만나고 또 새로운 세상으로 보내주신 분들이라 학생들과의 만남을 참 좋아하시고 또 의미있다고 여기신다. 이러한 상황 판단 속에서 나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선생님께 공손하고 진실한 작별인사를 한 뒤 내년의 만남을 기약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조언을 받는 일이다.


  첫째로 나는 지광현 선생님의 방을 찾아갔다. 물론 오늘 내가 방문할 선생님들께 미리 예고를 해놓은 상태에서 나는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방에 혼자 남으신 선생님들을 뵈었다. 지광현 선생님께서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물 흐르듯 풀어주셨다.

  선생님의 말은 때로는 너무나도 도덕적이고 경직되어 있어 꼭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자신들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마음 속에 새기는 말 같지만,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행실로 가득차 있다. 오늘 나는 선생님께 사회과학대 학생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특히 연필이나 펜을 가지고 표시하고 쓰는 활동이 없어도 독서라는 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공부임을 알았다. 평소에 끊임없이 '책을 읽어라' 소리를 들어왔지만, 막상 내가 대학 입학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이 소리를 들어보니 말의 참뜻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의 몇몇 나이 많은 사람들, 그중 말과 행동이 바르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하자 선생님께서는 '和而不同'이라는 공자의 말로 나의 처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다른 사람들과 겉으로는 가까이 지내고 그들에게 잘해주되 중요한 때에서만은 그들과 같아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처세는 평소에도 내가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그것이 정의에 합치하는 올바른 인간의 행동임을 나는 확인했다.


  미리 2학기 시간표를 확인한 다음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맡으시지 않는 시간을 찾아다녔다. 나는 오늘 내가 선생님께 인사드릴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내일 방학식이 있는 날 선생님의 오피스에 직접 찾아가 사적인 대화를 나눌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상 나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이나 다른 선생님의 빈 오피스에서 자습을 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충분히 나의 인사가 정당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늘은 한복을 입는 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졸업생처럼 사복을 입고 갔다. 한복은 택배로 부친 상태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늘 선생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의복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황선생님께 찾아가면서 부정의가 되어버렸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지광현선생님처럼 반갑게 맞아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화요일에 한복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화를 내셨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조기졸업생들이 나처럼 이렇게 자습을 안하고 있을까봐 나한테 인문반 조기졸업생을 불러모으라고 하셨다. 내가 의도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순간이었다. 사소한 것에서 트집을 잡히면 이렇게 일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황선생님께는 내일 인사드릴 것이라고 약속드렸다.


  다음에는 고문수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연세대학교에서 어떤 커뮤니티에 참가할지를 선택하고 활동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단체를 신중히 선택하여 진실된 인간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하셨다. 나는 기독교 신자들의 모임이 최대한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따라서 모임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 나의 견해를 말씀드렸더니, 자칫하면 현실에 치중한 기독교 모임이 진리를 추구하는 모임의 본질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물론 빼먹지 않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문제는 전혀 고민할 필요 없다면서 사람은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끼리 뭉친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형식적으로 같은 공통분모가 아닌 자기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대한 공통분모가 없다면 사람과 사람은 어우러질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대학에서 만나지만, 결국 나와 깊게 사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언젠가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서로 같이 즐기고 서로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자기가 진정으로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고 진실한 관계로 사귈 수 있는 사람이다.


  고문수 선생님을 만난 다음 바로 다산관으로 뛰어가 강문근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선생님을 어드바이저로서,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존경해왔고, 선생님과의 사이도 건강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내가 말주변이 없고 또 활동적인 여가를 많이 하지 않아서일까, 선생님과 같이 유머 섞인 대화를 하거나 함께 스포츠 혹은 여행 등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점이 지금도 많이 후회된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위해 대학교의 소그룹을 많이 찾아다니며 정적인 일이 아닌 동적인 활동에 많이 참가하라고 권하셨다. 실제로 그러한 작은 동아리가 새로 사람을 받아들일 때에도 호의적이고 인간적이며, 그러한 동아리에 소속된 사람들은 결속력이 강하다. 바로 그러한 점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졸업 전에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혼자 하는 일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나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것은 바로 내 주변의 '새로운 세계'부터 차근차근 방문해 보는 일이다. 끊임없이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점점 활동 범위를 나의 집 혹은 나의 학교를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종로 주변부터 시작해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한 곳, 표면적으로만 관찰한 곳이 너무 많다. 그리고 중랑천변에 신설되어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는 어떤가. 청계천의 그 길다란 산책길은 또 어떤가.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순간 나의 할 일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늘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 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하루를 의미있고 보람차게 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배 혹은 선생님께 인생의 갈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는 언제 얼만큼 들어도 지겹지 않으며 엄청나게 즐거운 일이다. 이제 나는 대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거의 끝내 놓았다. 계속 오늘 사색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간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2006. 12. 26.

'Cafe Macchiato > 좋은 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주  (0) 2008.07.27
대학생활의 대략적 패턴  (0) 2008.07.27
집으로 짐을 보내고  (0) 2008.07.27
귀가다! 완전 놀자!  (0) 2008.07.27
8월 말 조기졸업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  (0) 2008.07.27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단체의 규범을 준수하라 (K양)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남 앞에 떳떳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말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응수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나는 우선적으로 지금 나의 생활 환경에서 요구되는 도덕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건전한 대인관계를 만들기 위해 개방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개방된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감시할 수 있고, 서로의 언행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자신이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도덕성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같은 학교에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학교의 규칙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친구들과 대인관계를 얽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의 규칙이 여기서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비판이 매우 잔혹하다는 것이다. 물론 사소한 규칙을 많이 어겨 선생님 혹은 학생자치위원회에게 지적을 많이 받아도 대인관계에는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의당 지켜야 하는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면 그 사람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결국 그 사람은 개방된 공간에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 그는 친구를 만든다 하여도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결국 같은 단체에 소속한 개인들로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 개인들은 그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예의를 갖추고 만나야 한다. 대규모의 인간들이 함께 규칙을 어긴다면 그 관계는 병든 인간관계이다.


유연하게 흘러가는 기분 좋은 대화를 주도하라 (C군)

  대화를 할 때에는 청자의 기분을 항상 좋게 해 주어라. 새로 단장한 머리 스타일이나 패션과 같은 사소한 겉모습에 대해 칭찬을 해주고, 다른 사람이 겪은 기분 좋은 일을 다시 그 사람 앞에서 언급해 줌으로써 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어라. 청자가 수치심이나 열등감을 느낄 만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지 마라. 자신은 이러한 노력을 하지만 만약 자신이 청자로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혹은 같은 활동에 참여할 때 주위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경우에는, 그 상처를 일단 겉으로는 숨겨라. 그리고 다음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 사람에게 쏟아붓던 호감을 잠시 끊어 놓아라. 즉 같이 대화를 하기는 하지만 칭찬과 같은 움직임은 자제하라는 뜻이다.

  말은 대인관계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겉으로 표현하는 대화, 직접 보여주는 행동, 마음 속의 결심 등이 내가 정의하는 '움직임'인데, 내가 주도하는 움직임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의 80%는 언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언어가 가장 중요하고 대화가 인간관계를 위해 필수적이다. 따라서 기분 좋은 대화를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향상시키기 전에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다른 사람과 만나기 전에는 그 사람과 이야기할 화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고, 특히 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고 그 사람에게 호감을 선사할 만한 주제를 구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화제가 적시에 적절하게 등장하고, 또 풍부하게 번성해나가도록 하는 것은 자신이 평소에 얼마만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가에 달렸다.


의무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자신의 스타일을 투사하라 (K선생님)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는 평소의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 혹은 '볼 건 다 본 사이' 의 경우에는 서로의 심각한 내적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 혹은 이제 막 친해진 사람과 만날 때에는 얼굴에 즐거운 낯빛을 띠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는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고, 다른 사람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의무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설레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반면에 의무에서 벗어난 자기 스타일은 호기심과 설레임과 기대감이 하나로 응축된 즐거운 촉매제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온다.

  나아가 자신의 의무와는 무관하나 자기의 스타일을 말해주는 취미와 특기를 실제 행동에 옮김으로써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든다면 더 좋다. 만약 자신이 방관자의 입장에 서서 특별히 활동에 참여하는 일 없이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지금 하는 대로 계속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화의 힘을 유지하면 된다. 한편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이 가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일'을 행동에 투사하면 된다. 예를 들어 공부만 하던 사람이 평소에 다른 친구들과 연습하던 라틴댄스를 가지고 학교 친구들이 모이는 파티에서 공연을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공연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되고 그 사람의 인지도 또한 높아진다. 평소의 고리타분한 모습에서 벗어나 해방된 인간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은 시종일관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평소의 모습에서 180도 바뀐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하게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은 평소에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보다 배가된 인기와 친분을 얻게 된다. 단 이때 의무에서 벗어나 자기 스타일을 투사한 사람은 자신을 지켜본 다른 사람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 자신과 대면한 사람이 심각한 상태에 빠져 주구장창 자기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저번 시험 문제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  "이거 이제 좀 많이 까먹었어. 조금 있으면 대학 포트폴리오 준비해야지. 너는 그동안 학교에서 한 일 중에 서류에 끼워넣을 만한 일들 많이 해봤어? 나는 없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보긴 해야겠다." 항상 이러한 종류의 말만 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어도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는 즐거운 교제를 위해서는 의무를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과의 교제를 늘리려면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제쳐두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사적인 일과 공적 자리에서의 만남이 겹치는 시간 등으로 상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는 신중한 판단으로 사적인 일의 비중을 최적화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면 의무가 대인관계에 우선한다. 나아가 내가 친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적다고 해도 아직 그 사람과의 친분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의무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만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 하고, 결국 그러한 노력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정도가 장기적으로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도록 만들어 준다. 의무에서 벗어난 여유로움과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개인적인 스타일은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당한 점수를 얻게 해줄 것이다.


유머를 가진 다음 본능에 충실하라 (Y선배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깨끗한 모습, 남을 위해주는 모습, 나를 낮추는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과 폭넓게 사귈 수 없다. 깨끗한 모습은 비록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래 모습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식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인간적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내 생각에는 인간적인 사람은 '수많은 매력과 성격의 장점을 가지고, 그에 반하는 수많은 결점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이다.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한 어떤 행동을 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

  사실 본능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정의하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본능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내숭의 반대가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가지는 호감은 대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나타난다. 그 사람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한다. 웃어야 하는 상황이 떠오르면 그 웃음을 속으로만 감추고 있지 않고 즉시 다른 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는 매개체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능에 충실한 사람도 일상생활 속의 유머러스한 요소를 잡아내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으며, 아무런 유머 없이 본능에만 충실하면 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욱하는 성질의 인간'이라는 칭호를 달게 될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성격이 좋은 쪽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때는 대화가 주축이 되는 모임이다. 자신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을 보여주는 대화는 오랜 시간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체득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처음 말을 꺼내는 동기에도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모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속마음을 솔직하게 대화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도록 만드는 대화의 기술이 바로 본능에 충실한 대화법이다. 그런데 그러한 특성 때문에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인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내뱉은 말인데 만약 그 속에 유머의 요소가 아무 것도 없으면, 모임 속의 상황은 살벌해지고 청자들은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에 분노하고, 결국 말을 내뱉은 사람은 무언의 질타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이 내가 말하는 'Weird한 상황'의 요지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에 충실하지 않으려 한다. 말을 내뱉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그 거리에 따라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구별해야 한다. 또한 단체 속에서 공유하는 정서에 자신을 맞추어 놓고 다른 사람의 정서 또한 그 정서로 합일을 이끌어야 한다. 만약 모임 속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없다면 그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미숙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위에서 말했듯, 말을 내뱉는 사람의 힘든 내적 쇄신이 수반되어야 유머러스하면서도 본능에 충실한 언사(言使)가 등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고 소심함에 빠져든다. 그러나 몇 번 질타를 받아보는 것도 훗날에 유머 섞인 대화를 잘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질타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성을 띠라는 말이다. 때로는 적극적인 성격이 그 사람의 수많은 단점을 덮어주는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다. 주위에 있는 많은 유명한 친구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보편적으로 알 수 있는 그들만의 단점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지켜보고 싶은 움직임을 기대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점을 명확히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단점이 쉽게 보이지 않는 소심했던 사람들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서 무슨 쓴소리를 받겠는가. 적극적으로 변하려는 결심과 마음의 동요 또한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다른 사람과 많이 부딪쳐 본 사람은 점점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결국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대인관계의 성공을 이룬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솔직한 면을 드러내어 화합과 갈등을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되면 사람의 성격이 무뎌진다. 그러한 노력이 한 모임 안의 사람들에게 골고루 행해졌을 때에는 그 모임 속에서 공유하는 정서가 형성된다. 인간관계는 자신의 움직임을 도화선으로 시작한다. 모든 말과 행동에 일단 자신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의 말과 행동이 좋은 영향을 가져온다면 그것을 체득하며, 그것이 나쁜 영향을 가져온다면 그것을 반성하고 버리자. 이러한 노력은 자신에게 기쁨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준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내적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은 본능에 충실한 사람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회식과 같은 곳에서 우리는 그냥 밥만 먹지 않는다. 조용히 있는 것은 암묵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악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는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친구, 그리고 옆에 앉은 친구를 중심으로 가까이 앉은 사람끼리 잡담을 주고받으며 인간관계를 조금씩 쌓아간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 중에서는 나의 양심에 거리낌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오가는 것 같다. 바로 회식의 자리에 없는 자기 친구를 비하의 대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험담, 소위 '뒷땅까기'다.
 
   나는 나의 성격과 양심에 비추어 보아 대화하는 곳에 없는 제3자에 대해 좋은 말을 하면 했지 놀림을 목적으로 나쁜 말을 한 적은 없다고 자신한다. 나쁜 말을 할 때에는 그 친구가 분명 도덕적으로 그릇되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들며 차분하게 말할 때뿐이고, 그 친구를 조롱의 대상으로 나와 내 말을 듣는 사람 사이에 올려놓아 그 친구에게 침을 뱉으며 서로 깔깔댔던 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제 회식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특히 여자들에게 심한 듯 보이는데, 그들은 남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서로 친해진다. 이것을 대화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를 더 밀접하게 하기 위한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남에게 험담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릇되었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후자의 시각을 더 존중한다.
 
  인간의 세계란 참 더럽다고 느낄 때가 요즘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이 알아갈 때이다. 마음껏 그동안 보아왔던 주위 사람들의 결점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폭포수 쏟아지듯 늘어놓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공동의 적을 만들면서 두 주체는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슈미트가 말한 '적대적인 것'의 요지다.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종종 더럽다고 칭하는 정치보다 더 더러운 것이다. 뒷땅까기가 대화로 친해지는 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들 사이에 나돌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행해보았을 때 인간관계 형성에 최고의 효과를 불러오는데 더 할말이 무엇이 있는가. 대화의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꼭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벌거벗은 몸과 마음을 불러올 필요는 전혀 없다. 모두가 서로 대화를 한 뒤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양심의 심판을 받아보아야 할 때이다. 아무튼 회식이 많은 연말연시에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2006. 12. 21.

'연구 > 정치외교/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이터의 아이들  (0) 2008.07.27
NGO와 국제행정 - 한국 NGO의 문제와 해결방안  (0) 2008.07.27
국가 이미지  (0) 2008.07.26
프랑스, 그 사랑의 문화  (0) 2008.07.26
스위스 여권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경지식은 내가 책의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하여 도움을 주는 지식을 말한다. 배경지식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우리가 글을 읽기 시작하면 그 글을 잘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 순간 튀어나온다. 지금 내가 말하는 책은 소설책 뿐만이 아니라 어떤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는 글, 그리고 특정한 주제에 대한 연구 자료 등도 포괄한다. 즉 모든 종류의 글이다.

  글은 글이 보여주는 상황을 100% 묘사하지 못한다. 영화가 스크린에 투사하는 활동사진과 음향이 어떤 한 상황을 100% 묘사한다 가정했을 때 글은 묘사가 필요한 100개(난 이것을 묘사 단위라고 부르겠다) 중 가장 중요한 50개만 묘사해줄 뿐이다. 혹은 100개를 모두 묘사하긴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상상을 통해 더 묘사해야 할 여지를 남긴다.
우리가 글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이 묘사하지 않은 50개까지도 상상해낼 줄 알아야 하고, 그것(상상)을 위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작가는 100개의 묘사 단위가 모두 존재하는 상황에서 50개만 뽑아 글에 표현해낸다. 우리는 그 50개를 상상의 시발점으로 삼고 나머지 50개도 상상해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100개 중 50개를 뽑는 일에 주의를 다하고, 우리는 50개에서 작가가 느꼈던 100개를 도출해 내는 것에 주목한다. 따라서 서로 역할이 정반대이다.

 
나에게 있어서 상상은 곧 영화의 장면을 내 머리에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해준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영화 장면 생성은 곧 완벽한 글의 이해와 같은 말이다.  

  상상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주어, 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등이 글 속에서 어떤 장면을 생성하는 재료로 작용하는 지 명확히 알고 그 단어들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다. 여러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내가 생성하는 장면이 뒤엉키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상상을 할 대상은
첫째 눈에 보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
둘째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
셋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
넷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이다.

시각적인 묘사 단위 외에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의 묘사 단위는 위의 네 가지 상상의 대상에 상황에 따라 해당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첫째 눈에 보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인물들의 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고, 의견을 피력하는 칼럼에서 말하자면 현 상황 속에 들어있는 모든 물건이다. 글에서 추상명사 외의 명사의 역할은 눈에 보이고 가만히 있는 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형용사가 덧붙어서 명사에 의미를 추가한다. 추상명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

  I got dressed. 라고 누가 말했다면 그 사람이 입은 옷의 모습까지도 상상해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옷이 하늘거리는 연두색 드레스여야 그 상황에 어울린다면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에게 연두색 드레스를 입히고 영화 장면에 집어넣어야 한다. 정말 연두색 드레스인지는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지만, 드레스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조적으로 추가되는 '묘사 단위'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연두색 드레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사진을 통해서도 혹은 실제로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을 상상해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평소에 많은 시각 자료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은 아무리 묘사가 정확하고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글 자체는 수천 수만 개의 단어들이 '독자'와  '이해의 대상'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는 종이에 불과하다.

  둘째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인물들의 행동과 움직이는 사물의 모습 등이다. 특히 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에서 누가 따옴표 속의 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상상해 내는 것은 중요하다. 글에서 동사의 역할은 우리가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사가 덧붙어서 동사에 의미를 추가한다.

 내가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하나의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것들에 대한 상상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장면 안에 2개 이상의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이들을 한꺼번에 같이 떠올리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씩 상상해서 장면 안에 채워넣되 2개 이상의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가지 묘사 단위들이 동시에 묘사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긴다.

  셋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소설에서 말하자면 추상명사와 추상형용사를 기반으로 묘사해주는 것들이다.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도 셋째 묘사 단위와 관련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다고, 추상적이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이해가 힘들다고는 말할 수 없다. 추상적인 것들이 글에 등장한다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결국 그것들을 어떤 모습으로 가시화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가장 단순한 예로 surprise라는 명사이다. 혹은 He was surprised with joy. 와 같은 경우다. 그가 희열을 느끼며 놀랐다면 그의 제스처는 어떨까, 그의 표정은 어떨까 등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상상은 글에 있는 50개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는 글에서 대부분의 경우 셋째 묘사 단위는 어떤 큰 범위의 상황을 상징하고 있는 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격세력이 맥아더의 동상을 쓰러뜨리려 했고, 미군 평택기지를 반대하는 시위대는 국군을 구타했다. 이 사건 뒤에는 북한의 촉수가 있었을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촉수가 바로 셋째 묘사 단위이다. 촉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우리가 상상해야 하고, 한 편의 짧은 글은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촉수가 상징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상상할 수 있는지는 우리의 배경지식에 달려있다.

  넷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이다. 추상적인 논리의 전개, 상황의 선후 관계, 심리 상태의 변화와 같은 것들이다. 소설에서는 심리 묘사에서 넷째 묘사 단위를 건드린다. '난 너를 저주한다.' 라는 문장이 글 속에 들어있을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저주한다니 어떻게 저주하지?' 그리고 그때 저주의 주체가 이전에 경험했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쉽게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 소설에서는 넷째 묘사 단위에 대한 이해가 쉬운 편인데, 문제는 이 '넷째 묘사 단위'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에 너무나도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의 오피니언, 사설, 칼럼 영역은 집중해서 읽어야 하고, 많이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추상적인 논리의 전개에 많이 쓰인다. 한 예로 주장이 깨졌다. 와 같은 말에서 '깨졌다'는 단순히 접시가 깨지는 것과는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에서 쓰이는 동사는 단순히 사물이 주어가 되었을 때의 의미와는 다르게 추상적인 개념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다. '남한이 체제와 동맹의 끈을 풀다.' '북한이 민노당이란 진보정당을 겨냥한다.' '당이 당 속의 적색 기운을 씻어낸다.' 와 같은 예문에서 '풀다', '겨냥한다', '씻어낸다' 등은 운동을 하다가 신발끈이 풀려졌을 때의 '풀다'와 오늘 잡아먹을 꿩을 '겨냥한다' 와 손에 묻은 케찹을 '씻어낸다' 등과 같은 쉽게 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묘사 단위와는 다른 것이다.

  결국 자신의 상상력이 글의 이해력을 좌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Power라고 나는 규정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경험론을 믿는 사람이다. 경험론이라는 말이 나의 생각을 100% 포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나는 미리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하는 경험이 있어야 책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잘 된다고 믿는다. '생생'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풍부한 '상상'의 날개를 펴간다면 글을 읽을 때마다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01 Green Eyes
 02 My Today
 03 Birthday
 04 Universally
 05 Sadness
 06 Feel Again
 07 1,2,3
 08 Gaining Back My Faith
 09 Murder Me
 10 Sigh
 11 Rainy Days
 12 As Long As I Sing



  오이뮤직에서 한 네티즌이 디사운드에 대해 평한 바와 같이, D'Sound는 현대인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드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결코 단독적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자리로 출근한 뒤 집에 들어오기까지 함께할 수 있는 편한 음악이다. 어쿠스틱 악기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규칙적인 4분의 4박자 비트가 때로는 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D'Sound의 음악은 평온하고 안정되었다. 그들의 앨범 중 가장 후한 평가를 받는 2005년의 'My Today' 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세련되게 옷을 입고 깔끔한 자동차를 타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결코 남에게 주목받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젊은 여성과도 같다.

  이 음악은 내가 가지고 있는 D'Sound의 약 40개 정도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보컬이 독일 출신이고 밴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처음 시작한 탓인지 음악이 왠지 깔끔하고 차갑다.


<오이뮤직의 글>

D'SOUND의 다섯 번째 선물 [My Today]

2004년 3월 한국 공연을 대성황리에 마친 이후 디사운드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밴드의 네 번째 음반 [Doubleharted]를 홍콩에서 발매했고, 그 해 7월에는 독일에서 싱글 'I Just Can't Wait'을 선보였다. 보컬인 시모네가 독일 출신이기 때문일까, 독일 언론들은 디사운드에게 큰 관심을 나타냈다. 여성 잡지 ‘Jolie’는 밴드를 인터뷰 했고 MTV는 프로그램 출연을 요청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디사운드는 싱글에 이어 정규 앨범 [Doubleharted]를 독일에서 발표했고 10월에는 독일 팬들과 직접 만나는 라이브 공연도 가졌다. 독일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애시드 재즈 밴드 인코그니토(Incognito)가 2005년 봄의 독일 투어에 디사운드를 게스트로 초대한 것이다. 디사운드는 인코그니토와 다섯 번의 무대를 펼쳤다. 그리고 킴과 조니는 노르웨이 신인 뮤지션의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시모네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 [Last Days and Nights]를 제작했다.

그리고 2005년 8월, 세 멤버는 새 음반 녹음을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Oslo)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스튜디오에 모였다. 시모네, 킴, 조니가 원했던 사운드는 12년 전, 밴드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디사운드 창세기 때의 선율이었다. 그래서 그때 함께 활동했던 키보디스트 스타인 에우스트루드(Stein Austrud)와 기타리스트 베르게 페테르센 외벨레이르(Børge Pettersen Øverleir) 와 함께 녹음 작업을 했다.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디사운드는 열흘 만에 모든 녹음을 마쳤다. 그리고 완성된 곡 중, 인코그니토의 보컬리스트 토니 몸렐과 독일 재즈의 신성 틸 브뢰너(트럼펫/보컬)가 참여한 트랙을 포함해 총 12곡을 골라 다섯 번째 앨범을 만들었다.
새 앨범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1,2,3' 같이 박력 넘치는 넘버가 있는가 하면 'Murder Me'처럼 차분한 작품도 있다. 히트곡 'Do I Need A Reason'을 좋아한 팬이라면 멜로디 라인이 살아있는 발라드 'Gaining Back My Faith'와 'As Long As I Sing'이 반가울 것이다. 다른 밴드와 차별되는 디사운드만의 특징인 재즈 풍의 그루브는 이번 앨범에도 건재하다. 다양한 추종자를 낳았지만 결코 복제되지 않는 디사운드표 ‘경쾌 꿍짝’ 리듬은 'Green Eyes', 'My Today' 그리고 'Rainy Day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멤버들은 이번 앨범이 ‘Good Old D’SOUND’를 원하는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멤버들의 다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이제 오슬로의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던 그 삼인조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유럽, 아시아 지역에까지 팬을 거느린 수퍼 트리오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새 음반은 세계적인 밴드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멤버들의 기량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고 곡의 구성은 잘 짜인 비단처럼 매끄럽고 윤기가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