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RF리더십포럼과 관련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책을 발견하여 이렇게 글을 남긴다.
국제대중음악학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tudy of Popular Music 와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학회에 우연히 참석한 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국제학계에 휘말려 들어간 신현준 박사는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문화 파트 특별 강연자로 반드시 초청하고 싶다. 초청은 후배들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이 분야의 직장인이 되어 아주 약간의 조언이나 기업의 사회공헌/대외관계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더욱 좋겠다.
영미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우연찮게 국제적 대중음악 연구자들, 특히 아시아권의 연구자들과 접속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운 좋게도 2003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를 '직장'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아시아 대중음악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대상으로 한 영어 논문은 열 편 정도 축적되었고, 각각 두 편씩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내가 감명받은 사례는 1990년대 말의 우전소프트였다.
19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을 중국에 수출한 최대 공로자는 우전(宇田)소프트였는데, 이 회사는 국제 음악산업계는 고사하고 한국 음악산업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대표 김윤호는 회사를 퇴직한 뒤 사재를 털어 혈혈단신 베이징으로 가서 한국 대중음악을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방송국 경영을 시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1998년 H.O.T.의 중국판 반을 시작으로 시디를 배급하고 공연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중국에서 한류 폭발의 주역이 되었다. 우전소프트는 수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에 배급되는 단일창구로 기능했다.
아울러 유명한 SM
이수만은 2005년 '아시아 네트워킹' 이라는 그의 프로젝트를 피력한 바 있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베세토' 통합 스타와 통합 아시아의 문화산업"에 관한 그의 구상은 이후 SM의 제품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2005년 데뷔한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스카우트되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슈퍼주니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중국에 역수출되어 슈퍼주니어 엠('엠'M이란 중국어 표준어인 '만다린'을 뜻한다)을 이끌었다. 슈퍼주니어 엠은 슈퍼주니어의 기존 멤버 일부와 현지에서 추가로 스카우트한 두 명의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유닛이다. 2009년 데뷔한 5인조 걸그룹 에프엑스의 경우 중국인 한 명, 타이완계 미국인 한 명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댄스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팍스 뮤지카 '87 서울
조용필은 일본, 한국, 홍콩의 톱스타 3인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음악 페스티벌 '팍스 뮤지카 '87 서울' 에서 록 스타일의 곡 '아시아의 불꽃' 을 연주했다. "아시아의 젊은이여" 라고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는 "사랑도 하나 마음도 하나/ 우리의 숨결도 하나/ 여기 모여서 같이 가리라/ 우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회고해본다면 1980년대까지는 이런 유형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것 같다. 실제로 '팍스 뮤지카 '87 서울'의 오프닝은 "아시아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음악을 통해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했든 아니든,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라면 평화와 화합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대중음악이 아무리 탈정치적이고 탈역사적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정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은 곤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20대 중반일 때 똑같은 분위기로 이런 대축제를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는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서로 훨씬 가까워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이라도 '아시아는 하나'라고 진지하게 상상하는 젊은 아시아인은 거의 없는 것같다. 최소한 이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창작하고 연주하려는 아시아의 스타는 더더욱 없는 것 같고, 팬들도 저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21세기의 한류/케이팝 나아가 케이팝이 매개하는 아시안 팝은 20세기 아시아 대중문화에 남아 있던 정치와 역사를 삭제하고 있고, 식민주의, 냉전, 국가주의 등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우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송페스티벌로 점프해 왔다.
문화산업은 이제는 국가가 후원하는 '진흥'의 대상이 되었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문화산업의 진흥을 '응원'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 되어버렸다. 중국만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키워드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문화융성, 일본의 쿨 재팬과 더불어 삼국의 국가 지원 형식의 문화산업 발전이 아시아 내에서 균형 있게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전반기는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을 이용해 한 명의 스타를 콘텐츠로 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개발되면서 몇 개의 기록적인 성공 사례가 탄생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2010년대는 보다 활발해진 오프라인 인적 이동과 함께 온라인 공동체 CPND를 통해 도시와 지방을 아우르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집단이 '멀티 소스 원 유즈', 여기서 원 유즈란 '다른 나라지만 비슷한 취향끼리 모이기' 가 되지 않을까.
Mayday의 킨텍스 공연을 보고 나는 CNBLUE의 도쿄돔 공연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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