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 저자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 출판사
- 21세기북스 | 2013-08-16 출간
- 카테고리
- 정치/사회
- 책소개
-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학을 전...
서울은 파리 감성, 도쿄는 런던 감성 이라는 게 나의 일종의 개략적인 일반화였는데,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나의 생각에 동의한 문단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이 파리에 비해 뒤쳐지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서울에도 파리 크로아상 같은 프랑스 빵집이 많다. 그런 곳에 가보면 프랑스 거리를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에는 전통시장의 노점상이 꽃이나 빵을 팔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면서 로맨틱한 프랑스에서나 있을 법한 정겨운 장소를 연상시킨다. 한국인들은 이런 그림을 보며 현대인의 생활에서 찾기 힘든 친밀함과 자연스러움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질 좋은 먹을거리, 전통 음식, 수공예품을 파는 야외 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빵집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장이 한국에도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식, 그중에서도 유럽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의 전통시장을 그리 낭만적인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한국의 전통시장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시장 중에서는 유지보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통문화를 깨끗하게 보여주지 않고 산업화 시대의 '현대식' 장식만 달아놓았다. 그리고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시장 안의 골목길은 제대로 꾸며지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시장은 더 많은 사람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을 안고 있다. 시장 안 골목을 잘 가꾸거나 수제 나무 간판을 달고 아스팔트보다는 돌을 이용해 골목길을 만들며 진열 방식을 개선하는 등 예술적 요소에 신경을 쓴다면 한국의 전통시장은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일러한 약간의 변화가 한국의 도시 환경에 혁명을 가져다줄 수 있다. 커피숍이나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랑스 이미지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혁명은 사고방식만 바꾸면 일으킬 수 있다. 건물을 부술 필요가 없다. 건물은 그대로 두고 생각만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공간을 이런 느낌으로
서울의 246개 전통시장이 모두 인사동처럼 바뀐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온누리상품권은 얼마나 백화점상품권처럼 우아하게 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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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좋아하는 한국, 그래서 닮은 유럽의 나라라 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농촌 마을에 위치한 공장들은 전통과 역사로 빛나는 프랑스의 포도주 양조장, 즉 와이너리를 본떠 재구성돼야 한다. 그러한 농촌의 생산품들은 보르도의 포도주나 존작의 코냑이 그랬던 것처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판매될 수 있다. 지역 생산품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상품을 더욱 매력적이며 가치 있게 부각함으로써 한국 농촌 지역의 가치는 극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지역 생산품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효과적으로 판매되면서 우리는 세계 사람들이 한국 농촌을 방문해 이런 생산품들을 쇼핑하며 즐기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같이 먼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그런 공장은 전통적인 외관을 지녀야 하고 어떻게 500년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강조점을 둬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연속성은 한국 농촌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단한 것을 건설했다는 것만 강조할 뿐 1,00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외면해온 것이다. 이제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고자 한다면 오랜 전통을 이어온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한국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탈리아가 농촌의 멋진 생활을 선전하면서 거둔 성공을 고려해보면 아시아에서도 그에 뒤지지 않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충남의 한 전원주택이 서울에 사는 사람은 물론 아시아나 세계 전체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생활로 여겨지는 시대가 오리라는 벅찬 상상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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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아메리카!!! (미국인이 이 말을 하고 있다)
국가 홍보 고객은 70억 인류
한국을 소개하는 문건이나 자료를 보면 홍보 대상자가 극히 제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미국에서 보면 각종 홍보 자료나 행사가 백인 중심으로 돼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자료를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 보면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홍보 자료를 만들 때, 특히 영어로 된 홍보 자료를 만들 때는 특정 인종에 속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게끔 극도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따 꼼프리???
그리고 단지 미국인만을 상대로 제작된 홍보 자료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 홍보 자료는 미국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이나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아랍 사람, 아프리카 사람도 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국가 차원의 홍보를 하거나 국가를 대표할 때 이런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 정도를 떠올리고 나머지 나라들은 인식에서 제외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나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청계천 한국관광공사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주무관급 외국인들이 직원으로 고용되어 regional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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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거 하고 싶다. 4학년 2학기라도. 아는 곳은 인사동 뿐. 사람도 적게 뽑아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방문자가 찾아갈 수 있는 한국 문화 홍보 센터를 상설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홍보 센터는 유명한 관광지 곳곳에 설치되며 정부가 인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자원봉사자들이 항시 대기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학습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일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로 외국어가 가능하고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업은 소규모의 예산만 있으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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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교류의 중요한 과제, '한국은 어떻게 중국과 일본과 다른지를 한중일 외부에 알리기'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가려서 존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놀라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저명한 비평서인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독립적인 문명으로 분류하면서도 한국은 중국과 같은 문명으로 묶었다. 이는 한국 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계 지식인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전개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각국의 학자와 분야별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펼쳐야 한다. 이들을 상대로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일본과 유사한 또 다른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점을 꾸준하게 홍보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고유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들이 쓰는 책이나 청소년 교과서에서 한국에 대한 수식어가 달라질 것이다. 또 그들이 작성하는 칼럼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용어도 변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일반 국민으로 파급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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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자 에즈라 보겔 교수의 '일등 국가 일본'
미국인들은 갑작스럽게 일본에 대해 알게 됐고 그동안 값싼 장난감이나 만들던 나라로 치부했던 일본의 성장에 대해 재평가하게 됐다.
읽어보자 제임스 클라벨의 '쇼군'
'쇼군'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선 철학과 사무라이 법도를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마치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신세계처럼 일본은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왔다. 자동차나 소형 전자제품으로 미국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던 일본에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과거를 주제로 삼았으며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국화와 칼'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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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들에게 좀 더 엄해지자
외국인 대상의 한국어 교육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점은 한국어 취득 수준이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고급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까지 공부하지 못한다. 복잡한 표현이나 멋진 에세이를 쓰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는 한국어 교육 지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교재가 부실한 탓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견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것을 기대하지 않다. 외국인이 언어상으로 실수해도 좀처럼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외국인 대학교수나 학생들의 한국어 작문 실력이 형편없어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이런 봐주기는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외국인들은 한국에 있는 동안 고급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살릴 수 없다. 미래의 한국 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소홀히 가르치는 일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도 상당한 손해다.
한국 교수들과 한국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를 말하거나 한글을 쓸 때 한국인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이에 호응할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봐주기가 학습에 걸림돌이 된다. 만약 한국인들이 내가 쓰는 글이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솔직하게 지적해주었다면 나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한국어 구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쓰면서 실수를 해도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한국어 구사와 작문을 요구하면 그 실력이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도 괜찮다는 선입견이 있는 한 외국어의 한국어 실력 향상은 있을 수 없다. 친절과 관대함이 결과적으로는 불친절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쇼코는 돌아갔지만 쟌 누나랑 마리옹 각오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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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적 공동체 의식 '병세의식倂世意識' (공교롭게도 '병세의식'이다.)
(중략)..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간에 심각한 수준의 역사적 앙금이 존재하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앙금으로 말하면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통합에 성공했다. 역사적 앙금 그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지식인들의 교류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지식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내부 정책 기조도 결정되고 외교 정책도 가닥을 잡는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의 상호 교류는 세 나라 사이에 어떤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한적이다. 그나마 진행되는 교류의 질도 매우 낮아 비관적인 상황이다. (YKRF리더십포럼은 질 높은 교류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일단 臥龍이 되어야지)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식인 교류는 200년 전보다도 훨씬 못하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역사적 퇴행을 보인다. 200년 전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형성하는 지적 공동체 인식, 즉 병세의식倂世意識도 존재했다.
당시 한/중/일 지식인 사이에는 지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한문을 이용해 편지와 필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영어 물론 지리적인 제약으로 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인들 사이의 평화적인 교류는 18세기를 갈등과 간섭이 크지 않은 평화로운 시대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의 영조-정조 시대에 이러한 문화적/지적 교류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러한 교류 덕분에 동북아시아 평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보편적으로 보급되었다. 일본의 타카하시 히로키高橋博巳의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東アジアの文芸共和国'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병세의식을 연구한 한양대 정민 교수의 논문에서 관찰되는 18세기 조선의 국제적 지식 교류의 모습을 폐쇄적인 양반의 이미지를 뛰어넘는다. 이규상(1727-1799)은 동시대 문인, 학자, 예술가의 전기를 엮어 '병세재언록'을 펴냈다. 윤광심(1751-1817)은 당시 활동 중이던 동시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시문을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유득공(1748-1807)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동시대 외국인의 시를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대부분 문집으로 간행되기 이전의 원고를 취합한 것이다.
'병세재언록'은 신분의 제약에서 자유로웠고 유득공의 '병세집' 역시 동시대성을 코드로 신분과 국경의 제약을 넘었다. 유득공의 '병세집'은 국경의 경계를 훌쩍 넘었다.
근엄한 유학자와 시정의 재주꾼을 나란히 배치한다거나, 조선 문인의 글 사이에 중국인과 일본인의 시문을 함께 두는 수평적 사고의 확장은 전 시기까지만 해도 용인되기 어려웠다. 멀리 안남(현재의 베트남 지역)과 유구(현재의 대만 지역으로 추정됨) 琉球면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인데.. 의 시인까지 포괄하는 동시대 선집을 기획한 것도 놀랍다. 의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홍대용은 한 차례의 연행에서 만난 중국 문사들과 평생에 걸쳐 서신을 왕래하면 교류를 지속했고 그 자취를 '회우록' 또는 '천애지기서'란 이름의 책에 남겼다. 이는 한/중 문사의 사적 교류에 불을 붙였다.
다음 시기 연암 그룹의 일원이었던 박제가의 제자 추사 김정희가 소동파를 매개로 하여 한/중 지식인 교류를 더 밀착시켜 나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 시기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조선 지식인들과 일본 문사와의 사적 교류도 흥미롭다. 이전과 달리 상대를 얕잡아 보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일본 지식인을 지식 교류의 장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기 병세의식은 내부에서는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는 수평적 확장이 이뤄졌음을 반영하고 외부로는 타자에 대한 변모된 인식과 대응을 보여준다. 병세의식의 성장은 단절 일로에 있던 동아시아가 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국수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폐쇄적 사유가 열린 사고로 전환되는 변화를 전제한다. 그 사이 수많은 지식/정보가 오갔고, 그것은 자국 학술 문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현대의 한/중/일 관계를 생각해보자. 독도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국의 학자들이 일본을 칭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식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일본을 공격 목표로 해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학술 포럼이 열리고 있지만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뤄지는 대화 없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던지고 헤어지는 형편이어서 생산적인 토론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 YKRF리더십포럼은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했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난 가려졌뜸..
18세기 한/중/일 지식인들의 교류와 병세의식 형성 과정을 돌아보면 한국 지식인들의 주도적 역할이 특히 눈에 띈다.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보다는 한국 지식인들이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 학자들이 통신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본을 자주 다녀온 것이 병세의식이 생기게 된 물리적 배경이다.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한 쪽이 3국 간 지적 교류를 주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훨씬 부드러울 것이다.
한국이 한/중/일 3국의 지적 교류 프로그램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한다면 그 여건은 매우 좋은 편이다. 초국적 사업에 의해 경제적 교류가 확장되었으며 금융 쪽으로는 통합의 경향이 분명하고 기술적인 교류도 크다. 다만 진정한 지적 교류만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적 교류는 정부가 먼저 시작하기 어렵다. 대학이 시작하기는 무지 쉽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저명한 교수나 지식인은 지역학적인 접근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심도 있는 대화와 교류를 나누지 않고 있다. 다른 국가의 한 분야에 대하여 전공하지 않은 이상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 중국의 장관이나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저명한 인사와 식사를 하고 대담을 나누는 경우는 있지만 이것이 지적인 발전을 이루는 교류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의지만 있으면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지적 교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변수는 한국 지식인들의 의도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한국 고위 관료, 교수, 기업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가 있다. 여기서는 분야별 한/중/일 모임도 자주 열린다. 서로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도 있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화, 무역, 지원, 사회 문제, 기회와 전망, 오해 등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는 행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단순히 보여주기용 행사도 열린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옛날보다 자주 모임을 갖지만 200년 전 필담을 나누면서 우주의 원리를 토론하던 지식인들처럼 함께 고민하는 장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과 일본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고 한평생 친구가 돼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기회가 YKRF리더십포럼 이라고 믿고 2년을 살아왔다.
진정한 교류는 예의를 차리는 인사치레와 형식적인 대담을 벗어나서 현대가 직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류는 굳이 물리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과거처럼 문서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동 없이도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는 18세기에 비하여 지리적인 제약과 시간적인 제약이 훨씬 줄어들었고 교류에 대한 어려움도 줄었다. 의지가 있는지 그 여부가 관건이 된다.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 18세기 병세사상은 역사가 남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한/중/일 세 나라의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훌륭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의한 교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 지식인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인의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캬.....
이 책을 보고 감동한 지 2주가 지난 뒤 TCS(삼국협력사무국) 웹사이트 공지사항에서 우연히 강의 공지를 봤다. 연사는 바로 이 책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연사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님을 섭외합시다!!
지혜로운 후배들의 적극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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