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가능하기 때문에 단일민족국가와 공통의 역사를 인지하면서 정치적 과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전협정 이래로 줄곧 논의된 통일인 만큼, 어느 쪽이 주도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통일 자체는 이제 남북한 모두가 동의하는 당위가 되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국, 특히 현재 가장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는 꼬인 중일관계의 갈등을 한국이 나서서 그들의 갈등적 이슈에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한반도 관련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그 두 국가가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의 성공 여부의 분수령이 되는 이슈로서 중국에게는 주한미군 주둔, 일본에게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해 계속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했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유엔군, 즉 현재의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상당히 전향적으로 선회했다는 점이 통일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중국의 동아시아 안보 전략의 주요 대상은 미국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반도 정책은 동아시아 안보 전략의 하위 틀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주둔에 관해서는 반기지는 않지만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현상 유지 차원에서 존중한다.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 김일성은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시기인 1994년 미군이 한국에만 주둔하지 말고 북한에도 주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1996년 이종혁 노동당 부부장은 미국 조지아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에서 주한미군이 남북한군 사이에 평화유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며, 주둔기간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라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조선일보」, 2001. 4. 17.) 1
중국에게 한국은 매우 이중적 의미를 가진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은 중국 경제발전의 모델국가이자, 비중 있는 무역상대국이다. 지리적으로 인접국이며 문화적 동질성의 공유 때문에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군사•안보 측면에서 한국은 냉전, 한국전쟁, 한미동맹 등 미국 변수와 북한 변수를 포함하는 부담스런 존재이다. 반면 북한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동맹국이며 전쟁을 같이 수행했던 동지애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경제위기와 북핵문제로 인해 동북아의 안보 위협을 가중시키는 등의 부담을 동시에 주는 상대이다. 북한은 많은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한 안보적 수단이자, 자국의 동북 지역 진흥을 위한 잠재적 자원 배후지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국과 북한 모두를 포용하고 싶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등 한반도에서의 갈등이 최소화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중국은 남북한과 외교관계를 모두 유지함으로써 현상 유지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중요한 전략 기조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반도 현상 상태가 급속히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2 한국의 언론인들은 중국이 한국과 북한에 동등한 관심을 가지고 동등한 협력적 조치를 취한다는 점을 줄곧 간과한다. 특히 한반도와의 관계 개선을 외교부에서 말했을 때 이를 한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축소 해석하거나, 한반도의 비핵화를 북한의 비핵화로 축소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우선 초보적인 국민들의 의식 개선은 이 부분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3
통일의 추진력으로 중국에게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원하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중국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으로 한반도 내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 개입하여 군사력을 소모할 유인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 후 전후 복구를 위해 중국에 대한 한국의 기존의 신규 투자가 끊길 것을 염려한다. 중국이 강조하는 것은 ‘평화’이다. 한중수교 공동성명에서도 중국은 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한중수교 공동성명),1992년 제5조.)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도 국가수반으로서는 최초로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 아래 남북한 당사자 간의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면서, 한반도의 자주 평화 통일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1992년의 한중수교 당시 중국이 취한 두 개의 한국 정책으로 중국은 북한과 소원해졌다. 당시 북한의 기근이 심화되고 1993년 3월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양국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끌고 나갈 추진력이 결여된 상태였다. 4
중국의 한반도 안보전략 기조에서 한중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은 2003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시 발표된 한중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서 드러난다. 중국은 한중 양국이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김대중 정부 때 선언한 21세기 협력 동반적 관계보다 한 단계 높은 양국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동의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정권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통일 정책론을 보는 시각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는데, 그것이 한미일 3국회의의 결과를 2003년 7월 한중 북경 정상회담에 전달한 일이었다. 아울러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고 나온 배경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기 위한 명분이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후로 명확해진 데 있다. 한국과는 경제적으로 긴밀해지는 반면 2003년 당시 중국은 미국과 협력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안보리 결의안에 중국이 반대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를 예상하는 통일 회의론자들이 근거로 언급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은 한반도의 통일이라기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일 영토 및 해양분쟁과 관련된 이슈로서, 안보 특히 한반도 38선 이남의 미군 배치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대치가 없다. 이는 한반도의 한국 주도의 통일을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근거가 된다. 2003년 부시 정부 이래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중요성은 감소해 왔고, 주한미군이 제 2의 한국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는 미국의 현실적 안보 위협도 사라졌으며, 오히려 주한미군의 보호와 타 아시아 지역에의 개입 준비를 위해 북한으로부터 더 먼 사정거리의 지역으로 후방 배치를 하는 등 한미동맹의 의미는 중국을 참여시키는 한반도 통일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5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 방식이나 과정이 남북한 합의에 의해 점진적으로 중국과 유사한 1국 2제의 형태가 되기를 희망한다. 과거의 중국은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 방식을 반대했으나 점차 현실적으로 그러한 결과를 수용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중국 고위 관료들이 한반도가 남한 주도로 통일돼야 하며, 이런 입장은 중국의 지도부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2010년 11월 30일.) 또한 중국은 남북한이 기존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북한이 파기한 데 대해 내심 불만을 토로하였다. 중국은 항상 남북한 관계개선을 미북 관계개선보다 먼저 촉구하였으며 남북한이 이미 합의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하기도 하였다. 6 7
중국의 한반도 대치상태 해소와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에 대한 선호는 점진적인 관계 개선 방식이다. 이때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미국의 첫 단추인 주한미군 후방배치안에 대해 찬성하며, 미국이 조선인민군 후방배치라는 북한 측에 대한 보상(quid pro quo)을 제안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만족한다. 중국, 한국, 미국은 북한에게 비핵화 외에 특별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으며 이 상황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남북한 간의 자주적인 합의형 통일이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6자회담의 실패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및 유지, 그에 따른 남한의 핵무기 보유가 논의되는 상황이라면 중국과의 협력이 더욱 어려워진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한국 정부가 중국에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은 이미 진행되는 경제적 협력이 아니라 탈북자 인도에 관한 협력이다. 국경지역 북한 탈북자를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원하는 통일을 가장 빨리 이루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지만, 탈북자가 반드시 한국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다민족을 통치하는 중국 중앙정부로서는 탈북자에 대한 시각이 한국과 다르다. 중국에게 탈북자는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티벳 지역이나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역의 이민족과 같이 인식되기 때문에 한국과의 인식 차이가 중국으로 하여금 주저하게 하고 있다. 서독-헝가리-동독을 남한-중국-북한과 등치시켜 생각하는 것은 냉전 질서와 탈냉전 질서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으므로 그릇된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헝가리와 같은 소련 눈치보기 혹은 공산권 붕괴에 대한 우려는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한국 정부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역사 이래 최고의 한중관계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이라도 막상 통일이라는 한국의 국익을 달성하고 나면 떠오르는 문제가 있다. 중국의 공공외교를 살펴보면, 통일한국의 민족주의적 영토 회복 움직임 가능성을 우려하여 이를 사전 차단하려 할 수 있다. 중국은 통일 이후 조선족 자치 지역의 분리 독립 확산을 경계하고 있으며, 간도 지역의 고토 회복 운동 등의 부활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 작업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역사 문제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주장하는 외교적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통일 이후 한국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주한미군이 아니라 중국과의 역사인식 차이에 따른 대립이다. 8
일본의 경우는 한일관계가 건설적인 상태에서 일본이 지지한 대북정책을 보다 통일이 실제로 달성될 수 있도록 수정해도 한일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되게 하는 것과 전통적으로 유지된 비핵화에 대한 공감을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통일은 일본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발표된 한일정상 간의 공동성명에는 통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것은 양국 정상 간의 공동성명이 한일관계 발전에 초점이 두어졌다는 원인도 있으나 국민의 정부 이후 통일보다는 남북한 평화공존을 더 강조하는 통일정책을 한국 정부가 채택해 왔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한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 통일보다는 먼저 남북한 간의 평화와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金大中•韓國大統領国会演説の要旨”『読売新聞』, 1998年 10月 9日.)고 언급하여 통일보다는 남북한 평화공존에 방점을 두는 통일관을 밝혔다는 것이다. 9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2003~2008)의 통일외교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의 일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2006년 4월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2006년 10월의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끌고 나갔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및 천안함 폭침 사건 등으로 한일 간의 대북정책공조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고, 한일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할 정도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필요성에 한일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0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 이후 한일 간에는 이산가족문제와 함께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동시에 언급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2012년 5월 이명박-노다 수상 간의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노다 수상이 납치문제에 관한 한국의 지지에 대해 감사를 표명하면서, 이산가족 재회문제를 포함한 인도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계속 협력한다는 의지가 표명되었다. 이 정상회담은 한국은 북일 국교정상화를 지지하고, 일본은 남북협력 관계 및 통일을 환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은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보고서에서 등장한다. 즉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한일 양국이 지지하면서 나아가 남북한 통일도 일본이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외교가 가장 잘 표현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보고서에서 한일이 중국에 대해 통일을 지지하도록 희망한다고 밝힌 점에서 對일본 통일외교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1 12
일본의 경우는 군사적 보통국가주의와 보수적 현실주의자들의 국제공헌론, 그리고 현재의 집단적 자위권 논의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과 결부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군사적 보통국가주의를 한국이 묵인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오자와 이치로 일본 총리는 국제연합군에의 자위대 참가가 일본의 현행 헌법, 미일 안보조약, 유엔헌장의 틀 속에서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위대를 강화한다고 할지라도 양적인 확대가 아닌 질적인 확대를 지향하였다. 국제공헌에 군사적 역할을 인정하는 점에서 그의 생각은 기존의 보수주의자와 다르지만 국제연합에 자위대가 참가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교적 국제정치력 신장을 주장하는 보통국가론은 즉각적으로 후나바시 요이치의 ‘지구시민파워’(global civilian power)나 다케무라 마사요시의 ‘작지만 빛나는 나라’와 같은 소프트 파워론을 등장시켰다. 13 지구시민파워론자들은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관해서는 일본은 원폭피해국가로서 핵 확산 방지를 위해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하며, 특히 북한, 중국에 대해서는 심각한 비판을 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일본의 미일안보동맹의 의존도를 줄이고 다자간 안보체제의 수집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여야 하며, 문민통제의 방위정책을 강화하여 비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는 군사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 15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등 일본 주변에서 전쟁에 돌입할 경우 자위대를 동원해 미국을 후방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북한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중국 등 주변국과 함께 일본의 보통국화를 ‘군국주의 부활’, ‘재침 책동 노골화’로 강력히 규탄하는 한편 일본의 재무장을 구실로 핵무기 보유를 역으로 합리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미일안보동맹의 의존도를 줄임과 동시에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내세워 일본 주도의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하고 있는데, 사실 북한에게 이는 큰 위협이다. 한국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북한의 이익을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지만, 주한미군에 의한 직접적 위협에 비해 북한의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직접적으로 꺾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이 고려할 만한 선택지다. 16
일본의 정권이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 정권으로 회귀할 경우에는 내셔널리즘에 반대되는 지역주의가 다시 대두할 것이다. 이때 한국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선결조건으로 한반도 통일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국력 차이와 관련없이 한반도 스스로 일방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한반도 통일 없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해야 하고, 자본과 기술력을 가지고 북한의 건설과 동북아 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견제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비해 더 강도 높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의 입장과 같다. 조셉 나이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는 최근 냉전종결 등의 전략환경의 변화와 함께 다자간 안보체제에 관한 미국의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독자적 노선을 다자간 안보의 틀 속에서 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냉전 후 미국의 중대한 이익인 동아시아의 안정적 균형에 있어 위협세력은 현재 중국일 것이며, 장기적으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일중 연계일 것이다. 17 그러나 일중 연계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인 바, 미국의 양보를 구하는 것은 어떤 주변국도 할 수 없는 한국의 독자적인 과제가 된다. 18
노무현 정부 때의 노력이나 이명박-노다 공동성명과 대칭되는 내용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공동성명에서 한중이 일본에 대해 통일을 지지하도록 희망하는 내용이 들어가거나 혹은 공동연구 보고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언급된다면 통일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일본의 지지를 얻어내는 전략이다. 여기서 내용은 비핵화를 중심으로 할 것이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걸쳐 있었고, 이것이 한반도의 비핵화 이슈와 맞물려서 한국 정부가 일본을 의식하여 비핵화를 공고히 할 개연성을 높인다. 1993년 5월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노동1호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을 때 일본은 미국과 함께 북한을 맹비난했고 김일성 정권은 더욱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 바 있다. 강경한 북한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정권을 막론하고 한결같았으나, 지금의 변수는 아베 정권의 보통국가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과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 의도이다. 북일국교정상화가 북한과 일본의 핵무기 개발 공고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도 중국 레버리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동의를 얻는 일은 소극적인 외교 행위이지만,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 일은 한국 주도의 적극적인 외교 행위이다. 통일연구원의 보고서는 2013년 일본 학자 20명을 대상으로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공공외교에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였고, ‘북한 개혁개방’이 1위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그 뒤를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과 ‘북한 비핵화’가 이었으며, ‘북한의 민주화’는 가장 낮은 4위로 나타났다. 중국의 경우도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관점에서 보는 한반도 통일 단계의 초기 단계로 이상적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지나치게 남한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를 일부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
이상 한국을 독자적인 행위자로 상정하지 않고 강대국 사이에서 복수의 강대국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 중견국으로 간주하여 통일 가능성을 바라보았다. 중국과 일본의 현재의 영토분쟁과 역사인식 갈등은 한반도 통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립점이다. 하지만 양국이 언제까지나 대립만을 하고 있다면 통일은 반드시 과정 중에서 한쪽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한국은 반대하는 쪽의 편을 들면서 과정이 중지할 것이다. 과정을 중지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쪽도 반대하지 않는 조건을 형성해야 하며, 그 조건은 곧 주한미군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국의 굳건한 동의와 신뢰이다. 그리고 여기서 비핵화를 지지하는 전통적인 일본과 모순적인 태도의 현재 아베 정권의 입장 변화는 한국이 취할 최우선 과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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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덕 외, 『한반도 통일공공외교 추진전략 (II): 한국의 주변4국 통일공공외교의 실태 연구』(서울: 통일연구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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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흠,『중국의 한반도 안보 전략과 한국의 안보정책 방안』, p. 2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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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춘, 『일본의 군사안보전략과 한반도』, p. 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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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병덕 외, 『한반도 통일공공외교 추진전략 (II): 한국의 주변4국 통일공공외교의 실태 연구』, p. 163. [본문으로]
- 김영춘, 『일본의 군사안보전략과 한반도』, p. 15. [본문으로]
- 황병덕 외, 『한반도 통일공공외교 추진전략 (II): 한국의 주변4국 통일공공외교의 실태 연구』, p. 18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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