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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에 왔다. 언제나 한결같은 이곳,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손에 하나둘씩 옷이 든 쇼핑백과 테이크아웃 음식을 가지고 다닌다. 곳곳에 널려있는 것들은 모두 먹는 곳이고 무언가를 사는 곳이지만 모든 것들의 아기자기함에 편안한 느낌은 대학로변의 공기를 떠돈다. 나는 대학생은 아니지만 이곳을 찾아온다. 혼자 와도 기쁘다. 가끔씩 길거리에 널려진 쓰레기를 보면 '아직도 서울은 더러운 도시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그 옆에 똥 모양을 한 형형색색의 조형물을 보고 퍼뜩 웃음이 나온다.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4호선 혜화역 옆의 대학로 거리는 그런 특별한 매력으로 서울의 모든 청춘남녀를 포함하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불러들이나보다.
 
  바디샵에 갔다. 도로와 마주한 곳에 초록빛 간판을 단 가게이다. 안의 인테리어도 초록색, 꼭 자연주의자들이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공급받는 창고 같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제품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다.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현대인의 상을 무척이나 이상적으로 여긴다. 친구들 선물을 사 주기 위해 물건을 고르다가 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이제 공부에 찌들 대로 찌들어 하루종일 굼벵이처럼 방바닥을 기는 듯한 1년을 보낼 친구들이 - 물론 나도 그런 축 처진 굼벵이의 무리 중 하나이지만 - 얼마나 공부하면서 힘들까? 그래서 나는 아직은 생소한 아로마테라피를 떠올렸다. 향기만으로 사람의 폐 속 끝까지 정화시키는 신비한 작용, 의학적으로 규명되어 논문이나 두꺼운 원론 책 같은 것은 없어도 분명 사람이 살아가는 데 조금 더 좋은 기분을 가져다주는 건 사실이다. 저 구석에 아로마테라피 제품들이 5미리리터짜리 조그만 갈색 병에 담겨져 있었다. 공주를 어떻게 하면 잠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마녀와 같이 나는 친구들을 위한 향을 조심스레 골랐다. 내가 악의를 품은 마녀라는 게 아니다. 마녀가 공주에게 먹일 독약을 고르는 데 그만큼 많이 신중했듯이 나도 많이 신중했다는 이야기다. 나도 좋아하고 결국 친구들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향을 계속 찾아다녔다.
 
  그때 아차. 하고 내 머리속에 펑 하고 터진 생각. 우리 학교가 기숙사 학교라서 불을 피우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이런. 우리 학교가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다시 뇌리를 파고 들어왔다. 아로마테라피를 즐기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가 된다면 훨씬 더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을텐데. 결국 나는 옆에 있는 바디 미스트 제품 쪽으로 걸어갔다. 운치 있고 더 진한 향 속에 빠질 수 있게 하는 건 아로마테라피인데, 정말로 아쉽다. 바디 미스트는 처음 접했는데, 향이 정말 좋았다. 옆의 아로마테라피 병이 시샘할 정도로 향이 좋았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더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 명도와 채도가 눈에 편하게 혼합된 인공의 초록색에서 편안함을 찾는 사람, 코코아나 커피를 타 마시는 사람, 모두 다 내 주위에 많다. 그런데 정작 좋은 방법은 쓸모없어 보이는 코에 있다. 무료해 보이는 코를 달래주자. 아로마테라피가 그것이다. 우리는 하루종일 숨을 쉰다. 숨을 1분이라도 쉬지 않으면 죽는다. 숨을 쉬지 않으려고 해도 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이나, 초록색 인테리어나, 코코아나 커피 같은 것들은 내가 꼭 그것들을 집중에 이용하려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오직 나의 정신작용에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 호흡이고, 그래서 호흡을 이용하여 공부에 집중하려 하면 다른 방법보다 확실히 나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가만히 가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말도 안되는 가설을 솜사탕 만들어내듯 만들고 있다가 카운터가 나를 불렀다. 아로마테라피 제품을 사고 싶었지만 학교의 규칙이 불행한 운명처럼 다가왔다. 친구들 생일이 조금 있으면 다가오는데 미리 축하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200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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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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