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과 같은 곳에서 우리는 그냥 밥만 먹지 않는다. 조용히 있는 것은 암묵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악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는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친구, 그리고 옆에 앉은 친구를 중심으로 가까이 앉은 사람끼리 잡담을 주고받으며 인간관계를 조금씩 쌓아간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 중에서는 나의 양심에 거리낌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오가는 것 같다. 바로 회식의 자리에 없는 자기 친구를 비하의 대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험담, 소위 '뒷땅까기'다.
나는 나의 성격과 양심에 비추어 보아 대화하는 곳에 없는 제3자에 대해 좋은 말을 하면 했지 놀림을 목적으로 나쁜 말을 한 적은 없다고 자신한다. 나쁜 말을 할 때에는 그 친구가 분명 도덕적으로 그릇되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들며 차분하게 말할 때뿐이고, 그 친구를 조롱의 대상으로 나와 내 말을 듣는 사람 사이에 올려놓아 그 친구에게 침을 뱉으며 서로 깔깔댔던 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제 회식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특히 여자들에게 심한 듯 보이는데, 그들은 남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서로 친해진다. 이것을 대화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를 더 밀접하게 하기 위한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남에게 험담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릇되었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후자의 시각을 더 존중한다.
인간의 세계란 참 더럽다고 느낄 때가 요즘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이 알아갈 때이다. 마음껏 그동안 보아왔던 주위 사람들의 결점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폭포수 쏟아지듯 늘어놓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공동의 적을 만들면서 두 주체는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슈미트가 말한 '적대적인 것'의 요지다.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종종 더럽다고 칭하는 정치보다 더 더러운 것이다. 뒷땅까기가 대화로 친해지는 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들 사이에 나돌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행해보았을 때 인간관계 형성에 최고의 효과를 불러오는데 더 할말이 무엇이 있는가. 대화의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꼭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벌거벗은 몸과 마음을 불러올 필요는 전혀 없다. 모두가 서로 대화를 한 뒤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양심의 심판을 받아보아야 할 때이다. 아무튼 회식이 많은 연말연시에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2006. 12. 21.
2006.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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