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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오늘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당신.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알려준대로 전날 밤 15분 정도 시간을 내어서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다음 내일 할 일을 결정하는 일을 실천하는 당신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당신은 자부하지만, 막상 계획만 열심히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의 친구 H는 나의 권유로 플래너를 쓰기 시작했으나 3개월만에 'X표가 너무 많아서 플래너를 보면 막 화가 난다. 난 내 스타일대로 살런다' 하고 플래너를 덮어버린 적이 있다. 비단 H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은 할 일이 많다는 것에 압박을 받아 천천히 쪼개서 할 일을 내일에 잔뜩 몰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혹은 나의 능력을 너무나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 갑자기 튀어나올 지 모르는 약속 등에 의해서 내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기기도 한다.

  플래닝 가이드가 친절하게 제시해주는 '목표는 SMART하게 설정하라' 라는 일종의 조언이 있다. 플래너에 속지로 달려있는데, 그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 어떻게 당신이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있다. 그 중에서 나는 나의 경험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R, 즉 Realistic하게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Realistic한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플래너 가이드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마치 유치원생에게 '한마디로 요약되는 철학적 진리' 를 짧게 말해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계획하는 법, 좁게 말하면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하는 법을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말해 봄에 있어서 이 R에 대한 나의 사색을 먼저 말해볼까 한다. 언행일치라고 일단 말을 내뱉었으면-플래너에 계획을 적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기에, 그리고 실천적인 자세는 곧 우리들의 발전을 가져오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하루
  나는 분명히 오늘은 쌩쌩할 거라 믿었건만, 이를 어쩐담? 갑자기 졸음이 밀려온다. 비록 공적인 일, 즉 학교 숙제라던지 회사의 브리핑 같은 일에 있어서는 졸음을 꾹 참고 정신력으로 굳건히 버틸 수 있지만, 내가 나를 위해 계획한 일에 있어서는 이렇게 졸음이 밀려올 때 속수무책이다. 또한 예기치 않게 아는 선배님께서 저녁을 사주실 때가 있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오면서 크리스피 크림 1박스도 사올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이른바 회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회식은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회식이 내가 세워 놓은 계획을 성취하는 시간을 빼앗는다는 데 있다. 위와 같은 상황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의 연속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다. 그러니 오직 내 능력만 믿고 계획을 엄청나게 많이 세워놓지 마시길.

나를 플래너에 모두 표현하자 - 한약 챙겨먹는 일까지도
  플래너에 내가 하루동안 하는 모든 일을 다 적자. task list 칸이 빽빽한 글씨로 채워지게. 심지어 한약 챙겨먹는 일까지도 적자. 의무에 쫓겨 살다가 하루에 두 포씩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한약을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한약 얘기는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이다. 플래너를 보고 내가 어느 정도로 계획 실천에 얽매여 있는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 즉 '의무'라고 하는 것만 플래너에 적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의무와 싸워 이기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활동을 같이 하는 '인간적인'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 마치 니체가 '짜라투스트라' 에서 의무와 싸우는 인간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인간이 진보하면 실존을 찾아나서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플래너에 의무(주로 A로 표시되는 일들)는 물론, 나를 위한 중요한 일(주로 B로 표시되는
일들)도 적자. 그리고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C로 명명된 일들)도 적자. 나는 이제부터 플래너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플래너가 나의 할 일을 시킨다. 이러면 다시 우리가 기계가 되는 거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잘 따져보라. 플래너가 나에게 시킬 '내가 할 일' 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플래너의 명령을 따르도록 약속하는 과정이 지금 내가 역설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러한 작업을 거치고 나면 나는 리스트에 써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좀 더 현실적인 플래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은 그 전날 딱 한 번이 아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들이라고 말한 데 이어 우리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도 말하고 싶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흔히 전날 밤에 다음날의 계획을 모두 세워놓고 실천하리라 다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다음날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너무 욕심내서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라는 충고를 건네고 싶다. 전날 밤에 내일 할 일의 30%만 계획해 놓고, 다음 날 아침부터 점심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할 일을 리스트에 추가하는 방법은 어떨까. 나의 상황을 봐 가면서 계획하니 현실성을 좀 더 높일 수 있다.

 나는 플래닝의 묘미가 '내일의 나를 예측하고 그 예측이 들어맞을 때'라고 생각한다. 즉 내일의 나의 모습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 다음, 다음 날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계획한 모든 일을 끝냈을 때 그 쾌감,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는 미륵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예측 작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을 나는 제안한다. 다음 날을 일기예보의 1주일로 바꾸어 생각해 보았을 때 기상청이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는 게 정확한가, 앞으로 1주일간의 날씨를 예측하는 게 정확한가에 대한 답은 금방 나온다. 당연히 전자 쪽일 것이다. 플래닝의 현실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나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하루를 마치면서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기쁨의 한마디가 저절로 나올 때 우리는 R의 가치를 획득함과 동시에 우리를 향한 자기 존중까지도 꾀할 수 있다.


마치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을 써 놓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당연한 말을 어렵게 풀어 쓴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이 '썰' 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나를 엄습하여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주눅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당연한 진리를 다시 말하면 이제는 돌을 맞게 될까. 현실적인 플래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세운 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플래너는 단순히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의 발전을 위한 일을 알려주면서 나를 점점 발전시키는 역할도 같이 한다. 플래너를 통해 발전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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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안 할때 우리의 마음은 풀어진다. 하지만 어떤 일에 몰두해야 되기 때문에 생기는 피로 같은 건 없다.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 이런 시간에는 일부러 졸지 않으려 치켜뜬 눈에 힘을 빼도 졸리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한 곳에 온 정신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는 때, 그 때를 공부하면서 돌이켜 보았을 때 공부하는 나는 얼마나 괴로웠는가?

  이제 다시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는 당신. 책상 앞에 앉아 천천히 정신을 집중시킨다.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당신의 반경 50센티미터 주위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을 뿐 다른 곳은 어두컴컴해서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당신은 책 속으로 빠져들어 책 속의 줄글을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지식을 얻을 준비를 하고 풀어진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너무 공부에 몰두하면 오히려 졸리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그리고 깊은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사색을 하듯 공부하면 졸리다. 풀어진 상태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리를 맑게 하고 잡념을 흘려보낼 뿐, 나와는 친근한 사이에 있지 않았던 저 먼 곳의 새로운 지식을 정수리에 들이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할 때만큼은 다르다. 지식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생각에 잠겨 집중 상태로 들어가려 하면 졸리다. 단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심취하듯 공부해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그러한 공부에서는 오히려 미친듯이 빠져드는 게 좋다. 그러나 다른 공부에서는 그렇지 않기에 방관자의 입장에서 공부하되, 습득할 지식은 다 습득해야 한다.

  공부는 그렇기에 공부 안 할때와 같은 마음 상태와 컨디션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책에 몰두하지 않아도 있는 지식을 남김없이 챙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정확히 읽고, 마치 문장 사이의 글자, 글자 안의 자모 하나하나를 돋보기를 가지고 들여다보며 읽는다면 그 텍스트에 집중할 수는 있어도 집중을 통해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래서 졸게 된다. 반면 텍스트를 아무 생각없이 소리내서 읽어보면 당신은 그렇게 공부에 몰두하지도 않으면서 책의 내용을 습득하고 있게 된다. 공부를 안 할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말을 하고 남의 이야기도 특별히 귀 기울이지 않고 다 듣는 것처럼 공부할 때에는 나의 '아무 생각 없는 상태' 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지식을 배우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떨까.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도, 풀어진 상태에서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TV를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상태에서도 나의 뇌는 정신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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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여권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디자인은 무엇이 있을까. 겉표지의 가운데 동그랗게 그려져 있는 무궁화 무늬가 전부이다. 색깔도 청록색이다. 청록색은 분명 우리나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색이고, 관료적인 느낌을 준다. 무궁화 무늬는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공공디자인의 개념이 들어오기 전인 1970년대에 제정하였는데, 지금도 쓰고 있다. 아직도 한국은 경제 성장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인가, 아니면 공공디자인에 신경을 꺼버린 것인가.

  위에 있는 스위스 여권은 2003년 새로 디자인되었다. 많은 유럽 디자이너들의 호평을 받으며 '나라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는 평가를 한 몸에 받았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여권 치고는 아주 아주 이쁘다. 스위스의 십자기가 지닌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를 잘 살렸고, 무엇보다 깔끔한 이미지가 스위스와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이쁜 디자인이 공적인 문서인 여권에까지도 쓰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반발도 있다. 공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제시하는 여권일 뿐인데 궂이 새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국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쓰는 물건이 여권이다. 외국인들은 공항에 줄 서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여권을 보고 한국에 대한 인상을 각인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한국도 이제는 과거의 실질적 부를 위한 성장 위주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이러한 작은 여권에도 한국의 문화를 깊게 뿌리박았으면 한다. 예컨대 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만 이런 제안을 한다. 새 여권의 디자인은 옅은 황색 한지의 느낌을 주는 텍스쳐를 여권 표지에 입히고, 표지의 배경을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수묵화로 엷게 채색할 수 있다. 그리고 경복궁의 처마를 부분적으로 여권 오른쪽 위에 선명하게 남겨두어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극찬하는 기와집 지붕의 미를 여권에 투사할 수도 있다. 뛰어난 미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정부를 위해 일해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상품에만 이쁘게 디자인을 입히지 말고 이러한 국가적인 상징물에도 점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의 질적 가치를 따질 수만 있다면 나는 스위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판정승을 인정하겠다. 한국의 美는 어디 한번 디자인의 재료로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고목처럼 썩어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칙칙한 여권의 모습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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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내 진정한 친구로 만들기로 했다.
노원정보도서관, 너다!
 
원래 종로구의 정독도서관에 다니려고 했으나 (나의 사랑 종로구~) 교통이 너무나 복잡하고, 좋은 점이라고는 열심히 고시 공부하는 어른들이 많이 계셔서 공부할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다는 것 하나뿐이어서 버스로 10분이면 갈 수 있고 시설도 엄청나게 좋은 노원정보도서관에 다니기로 했다.

여기서 나의 간략한 도서관 예찬론을..

가장 좋은 점은 엄청나게 쾌적한 시설 !

나는 8시에 정류장에서 내린 후 근린공원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간다. 아침 햇살은 덥지 않은 대기에 스며든다. 푸른 나뭇잎은 무성하여 나무 속을 걷던 내가 위를 쳐다보면 햇살이 반짝거린다.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약수터에서 오늘도 힘내자! 라는 뜻으로 물을 두 컵 정도 먹고, 준비해온 병에 담아 통유리와 흰색 벽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도서관 건물로 들어간다.

KIOSK를 이용한 첨단 열람실 출입관리 시스템! 나는 나의 회원증을 키오스크 앞에 들이대기만 하면 좌석을 배정받을 수가 있다. 아침에 일찍 나가야 좌석이 30석 정도 남을 정도이니 4층 일반열람실의 인기를 짐작해 볼수 있다. 열람실에 들어간다. 재수생도 있고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많다. 가장 많은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가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공부하게 된다.

  조금 졸릴 때가 되면 12시. 2층 종합자료실로 간다. 4층보다는 조금 덜 정숙하지만 이 곳이 바로 책이 있는 곳. 내가 보고 싶은 책이 처음에는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새로 만든 도서관이라 시시한 문학서적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멀리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3권을 대출하여 기분 좋게 다시 건물을 나와 키오스크로 가서 퇴실처리를 하고 집으로 간다. 책은 2주 후에 반납해 주면 된다.
 
하지만 내가 노원정보도서관을 친구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그 많은 책을 읽겠다는 열의를 갖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친구도 작심삼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의 카테고리를 정했고, 비용과 편익을 분석하였을 때 어쩔 수 없이 포기했거나 필요 없는 책의 카테고리 또한 정했다. 이 카테고리는 평생 갈 것이다.


독일 철학 :
철학 중에 니체와 칸트를 중심으로. 독일 철학은 왠지 체계가 잡히고 멋있는 것 같다. 또 동양철학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모두 배우려 하면 머리가 아프다.
논리학 :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초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심리학 : 심리학은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프로이트와 융의 묵직한 서적과 같이 인간의 내면 구석까지 파고든 학문적인 서적과, 가볍고 이쁜 디자인을 한 '호감의 심리학' 타입의 서적. 하지만 나의 관심은 후자 쪽에 더 가 있는 듯^^
스피치, 화술, 토론 관련 서적 : 이러한 서적을 사회학으로 분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반드시 필요한 책들이다.
정치학, 외교학, 통계학 : 나의 전공 과목을 위한 서적이다. 때로는 읽기 싫을 때도 있겠지만 나의 완성을 위해 읽고 말 것이다. 통계학을 왜 집어넣었냐면 나중에 정치학을 공부하다보면 과학적인 정치론 접근법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통계학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경제학 (회사 등 경영학,비즈니스 말고 거시경제학. 그리고 미래예측하는 서적) : 내가 나중에 갖고 싶은 직업인 외교관을 위해 간과해서는 안되는 과목이다.
사회학 (여성학, 언론학) : 언론학은 전공과 약간의 개연성을 가질 수 있으니 내가 볼 책의 카테고리로 정하였고, 여성학은 내가 관심있는 분야라 선택했다. 청소년 상담 관련 서적이나 교육학도 있지만 내가 이 책을 볼 필요는 없다.
어학 (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 영어는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나의 대리석 조각상과도 같으니까 필수로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가 외교관으로서 제2,제3 외국어를 선택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페인어는 프랑스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금방 배울 것 같다.
문학 (불문학, 독문학) : 우리나라 문학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수능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읽고 있다. (내가 매국노나 애국정신이 없거나 한 게 아니고, 그냥 우리나라 문학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반면 불문학과 독문학은 훨씬 이해가 수월하고 재미있다. 특히 불문학은 프랑스인들의 인간미 즉 사랑을 멋있게 할 줄 아는 모습을 잘 표현해 주어서 매력이 있다.
취미로 읽는 책 (여행 관련, 요리 관련, Jazz/Lounge 등 음악 관련, 그리고 재즈 피아노 교본과 같은 악기 연습용 책) : 공부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 문화생활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지식을 알아야 한다. 취미로 읽는 책은 나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단순한 학문적 완성에 꽃 한송이를 올려놓는 책이다.


 
  일단 지금은 고등학생이니까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는 책을 열심히 보아야겠다. 지금은 바빠서 위에 소개한 책을 많이는 못 보지만, 대학생이 되면 꼭 책의 바다에서 스킨 스쿠버를 하며 살 것이다. 맑고 깨끗한 남태평양의 바다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산호를 만나고, 그 속에서 혹시나 하여 땅을 파 보았을 때 진주를 캐내는 것처럼 책에 빠져 살 것이다.
 

2006.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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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 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표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끊임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道)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는 얼음 풀리는 냇불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어쩜 나랑 생각이 이리도 같을까?

200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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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걸 41화 中
 
  이런 대화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할까?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애들을 졸업시킨다는 사실에 압박을 받는다던지, 회사에서 짤리는 걸 두려워한다던지 하는 일을 심각한 고민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힘들게 털어놓은 것이 아니다. 이 대화는 그냥 서로가 자신의 요즘 모습을 어필할 때 나오는 대화이다. 그리고 고등학생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어필'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등학생들은 자신을 숨기려 한다. 자신이 요즘 어떤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말로 친한 친구에게만 이야기할 뿐 주위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조금 덜 친한 사람, 그러니까 예를 들어 같은 수업을 듣는데 서로 그리 친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한쪽 편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듣는 쪽이 말하는 쪽을 불편하게 한다. 즉 다른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어도 같이 수업을 하는데 안면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서로 일단 안면이 있다면 그 다음 서로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사이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지 않는가? 헌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발전 가능성의 단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뿐이다.
 
  청소년 문화는 웃기는 문화이다. 남을 웃기는 자가 곧 인기를 얻고 많은 친구(진정한 친구는 아니지만)를 곁에 둔다. 남을 웃길 때에는 대부분 이 두 가지 타입이다. 나를 마구 망가뜨리는 자학 개그를 하거나, 나의 잘난 모습만을 어필하면서 시도하는 작업형 멘트다.
 
  하지만 나는 깔깔 웃고 마는 인간관계가 아닌, 개그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어른들이 각자 진지함을 갖고 살아가듯 우리들도 진지함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서로 모였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지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유대감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고등학생 친구들 사이의 모임에서는 코믹함이 주가 될까. 나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은 진지한 상태로 돌아갈 우리들이 서로 친구들끼리 만나는 순간에만 낄낄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 사이의 항구적인 인간관계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단순히 웃고 즐기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지속적이지 않고, 재미로 만나는 친구들은 결국에는 헤어진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만날 때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소극적인 자세로 비칠 수도 있으나 어른들의 삶이 꼭 이와 같다. 일상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즐기는 삶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진정으로 즐겁고 명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덕목은 지속성이다.

200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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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세워놓은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갈 때 가장 첫째로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일 하나하나를 밀도 있게 해나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밀도 있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다
2. 하루 중에 일정 시간을 만들어 놓아 그 시간 안에 특정 일을 모두 모아 놓고 진행한다


  이 중 2. 가 더 중요하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컴퓨터와는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번 상을 차려 놓았으면 식탁 위의 모든 반찬을 그때 모두 골고루 먹어치우는 일이다. 효율성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 한 상에 모두가 둘러앉아 한꺼번에 먹는다. 절대로 몇 명만 다른 시간대에 먹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가 밥 한 끼를 먹는 일에 밀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하루 동안 책상 앞에서 자료를 찾아 읽는 일, 책 한 권 안의 분산되어 있는 과제물을 찾아 끝내는 일 등에서는 '한 상에 둘러앉아 한꺼번에 먹는' 식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가?

  밀도 있는 하루가 필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공부일 것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정해놓은 시간을 온전히 나의 자유 의지로 관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를 밀도 있게 계획하는 것의 성공 여부는 오직 나에게만 영향을 받는다.
 
  밀도 없는 공부의 예는 주위에 많다. 평소에 공부하면서 앞에 TV를 놓고 TV를 본다던가, 누나 혹은 형이나 동생과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빨리 할 수 있는 공부를 지체시켜 결국 늦게 잔다. 반면 혼자 2시간만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열람실 좌석에 앉아 할 일을 모두 끝내버리고 일찍 자는 사람도 있다. 결과의 품질은 같을지 몰라도 피로도와 시간 대비 효율성에 관하여는 밀도가 있는 방법이 훨씬 뛰어나다.

  잠이 불규칙하다던가, 공부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틈틈히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씩 즐겨 쓰는 방법인데, 20분 후 일어나겠다고 알람을 맞추어 놓아도 20분 후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주위에서 강제로 내가 잠을 휙 달아나도록 하는 요인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혼자 일어나기가 어렵다. 학교에서는 나도 20분 정해놓고 자면 정말 딱 20분만 잠 자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하루에 잠을 자는 시간은 밤으로 몰아야 한다. 마치 실린더에 담긴 용액을 마구 흔들었을 때 기포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한 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잠자는 시간을 한 곳에 모아서 배정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잠을 자면 잠자는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잘 집중이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밀도 있는 생활 계획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잠이 아닐까 한다. 공부를 하기 위한 체력은 운동이 10%만 좌우하고, 음식이 50%를 차지하고 그 다음 수면이 40%를 차지한다고 본다. 운동의 비중이 이렇게 작은 이유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졸면서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질 뿐더러 내 의지로 이를 악물고 버텨 보겠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다. 졸음을 이기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체력의 한계점에 다다라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밀도 있는 삶은 매 순간 사람에게 활력을 심어준다. 평소에는 공부를 느슨하게 하다 시험이 2주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열심히 하여서 좋은 결과를 내는 이유도 공부의 밀도의 차이에 기인한다. 큰 시험을 앞두면 사람의 마음부터 바뀐다. 마치 큰 전투에 참가하는 戰士의 마음을 갖게 된다. 결국 하루 중 공부하는 시간에는 공부만 한다. 결과는 당연히 좋다. 이와 같은 행동 패턴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특정 시간을 잡아놓고 그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모아서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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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꾸만 만들기
기회가 생겼을 때 기회를 잡아라.
알바나 봉사활동을 같이 한다면,
혹은 같은 동아리에 있거나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든 서로 한마음이 되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다.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과 가까워질 수는 없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주도적으로 행동하라.


자주 웃기
유머를 잃지 않기

미소는 평범하고 특징없는 사람에게도
천사의 가면을 씌워준다.
웃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그리고 그 복은 당신의 인간관계 전반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머는 대화에서 빠질 수 없다.
나를 낮추고 그녀를 높이는 유머도 좋고,
가끔은 논리적으로 웃기는 유머도
그녀가 나의 지적 수준을 암시하도록 유도한다.


오늘 한 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물어보기
그리고 항상 안부를 묻기

이것저것 캐묻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대화의 시작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녀를 보고 생각나는 말을
편하게 던져 놓고 대화를 시작하면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주의사항이 있다. 대화를 갑자기 뚝 끊지 마라.
어색한 분위기는 절대 만들면 안 된다.
 

내가 잘 하는 일을 가르쳐주기
여자는 남자의 외모를
남자가 여성에게 대하는 것처럼
우선시하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능력을 본다. 어른이 되면
능력에 '돈' 도 포함되지만, 일단은
능력과 지위를 먼저 생각한다.
내가 어떤 한 분야에 능숙하고,
그녀가 그 분야에 서투르다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일은
당연지사.
다만 그녀가 그 분야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존중해주어 옆에서
그녀의 모든 일에 칭찬을 해라.


인간미가 넘치도록 챙겨주기
나와 그녀는 인정으로 묶여 있어야 한다.
서로가 자신의 매력만 보여주려고 노력하면
둘 사이에 참모습의 맞교환이 없다.
내가 먼저 나서서 나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라.
쉬운 일부터 시작해라.
졸린 그녀에게 커피 타주기,
우산 같이 쓰기, 무거운 가방 들어주기 등등.
내가 그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겠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항상 파악하기
대화할 주제가 바닥났을 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체크해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거나,
나에게 원하는 일을 내가 해 주자.
혹은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원하게 만들수도 있는데,
같이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오면
내가 '아이스크림 먹고싶어?'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귀여운 장난을 치거나 일부러 작은 난관을 만들기
항상 건전하고 행복한 일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다면 얼마나 지루한가.
그러한 사이는 진실하지 못하고,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장난을 칠 줄 알아야 한다.
단 서로가 즐거울 수 있도록.
또한 일부러 어려움을 만들어내서
같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겪음으로써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한번쯤은 밤늦게 만나 보라.
곧 어려움이 생기고, 그것을 같이 이겨내는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편하게 대화하기
심각한 대화는 일단 훗날로 미루기

'너 나 어떻게 생각해' 같이
대화의 주제가 '너와 나'인 대화는
자칫 장미빛 로맨스로 빠지거나
혹은 심각한 말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같이 인사동 거리를 거닐면서
주위에 보이는 것들을 같이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함께 나눈다면 그런 대화가 가장 좋다.


비언어적 측면에서 매력을 발산하기

말로만 호감을 표하는 사람은
절대로 매력적이지 않다.
소위 매너남이 되는 방법도 좋다.
다만 가식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엄청나게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힘껏 들어 선반에 올려놓을 때나
그녀가 준 커다랗고 눈에 잘 뜨이고
유치하게 생긴 인형을 내 가방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모습을 얼핏 보여줄 때
나는 비언어적 측면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완곡한 표현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전하기
마지막으로, 평소에 그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일을 잊지 마라.
단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는 게 좋다.
그녀에게 심취해 있고
하루종일 그녀 생각만 나더라도
완곡한 표현을 써라.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당하게
표현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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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잘 습득하려면?
그 진리를 완벽하게 터득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 그 지식이 불변할 진리로 고정될 것임을 안다
*지식의 단편 : 우리가 배우는 지식을 하나하나 개체화시켰을 때 개체를 지칭.
  지식의 단편 하나를 배울 때에는 그 지식이 명료하여 다른 생각으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여라. 지식의 단편을 배우는 과정은 새로 산 TV의 채널을 한 채널로 고정하는 과정과도 같다. 채널이 뜻하지 않게 마구 바뀐다면 그 지식의 단편(TV)은 쉽게 잊어버리고, 따라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한 번 배울 때 확실히 배워야 한다는 말은 지식을 불변할 진리로 고정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기억해내려고 하는데 그 내용과 비슷한 다른 내용과 자꾸만 헷갈리면 결국 그 내용은 물론이고 그 내용과 헷갈리는 다른 내용도 끄집어내어 지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지식을 '지식 단편의 네트워크' 와 연결시킨다
  모든 지식의 단편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들이 연관성을 갖게 되면서 지식의 단편은 생생히 기억 속에 남는다. 연관성이 없는 지식의 단편은 일시적으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새로운 한자를 배우고 그 한자가 어떤 단어에 쓰이는지 모른다면 그 한자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없다. 그 한자, 즉 지식의 단편은 지식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자를 한자 자체로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 한자를 쉽게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메타포'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메타포' 가 지식과 지식, 사물과 사물을 서로 연결시켜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지식이 있으면 그 지식에 뒤따라 연상되는 다른 지식, 그리고 그 지식에 뒤따르는 지식.. 이렇게 지식과 지식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으면 나는 지식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게 된다.
 
- 그 지식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안다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공부할 때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면 책에 써 있는 글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나는 지금 왜 공부를 하는가,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나 좋은 점수가 있어서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지식 습득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고 따라서 지식도 잘 습득할 수 있게 된다.
 
- 오감으로 그 지식 습득을 위해 헌신한다
  단순히 눈으로만 책을 읽으면 뇌의 기능을 온전히 지식 습득에 치중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의 오감을 체크해 보아라. 책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주위의 다른 재미있는 사물에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가. 도서관의 저 멀리 앞으로 보이는 재수생이나 대학생이 너무나도 이뻐서 공부를 할 수가 없는가.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음악이 있는가. 그 음악의 가사가 너무나도 좋아서 가사를 음미하느라 제대로 책을 읽을 수가 없는가. 아니면 리듬에 심취하여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고 있는가. 옆에 껍질을 까지 않은 사과를 놓고 공부하면서 가끔씩 먹는데 자꾸만 껍질이 이 사이에 걸리는 게 마음에 걸리는가. 사과가 갈변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철지난 사과처럼 떫떠름해서 도저히 못먹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후각과 촉각은 비교적 뇌의 기능이 온전히 지식 습득에 치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두 감각도 공부할 때만큼은 아무런 대상에도 점유된(occupied) 상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위와 같이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온전한 지식 습득으로의 집중을 방해한다면 지금이라도 고쳐라. 시선은 오직 필기구와 책과 같은 공부와 관련된 사물에 한정되어 있어야 한다. 음악은 되도록이면 가사가 없는 Instrumental 음악으로, 꼭 클래식이 아니어도 괜찮다. 단 리듬이 나를 사로잡는 음악이면 곤란하다. 음악이 흘러나와도 무관심할 수 있고, 오히려 그 음악이 나를 공부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면 그 음악을 들어라. 지식을 습득하면서 되도록이면 씹어먹는 음식은 먹지 말고,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은 종류의 당류가 뇌의 활동에 좋은 것 같다. 또 더운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도 좋다. 그리고 후각을 무시하지 말라. 어떻게 보면 시각 다음으로 우리의 오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이 후각이다. 우리는 항상 숨을 쉰다. 이제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는가? 놀고 있는 후각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로마테라피가 좋을 듯하다. 집중을 도와주는 향을 골라 보자. 참고로 나의 경우에는 꼭 아로마테라피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조금 뿌리고 공부하니까 집중이 잘 되었다.
 
후기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요? 고등학교 생활이 뭐 그렇습니다. 이 때 아니면 공부를 언제 하겠습니까. 저보다 나이가 6살 정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고등학교 때가 제일 편했고, 제일 재미있었고, 가장 무언가를 배우려 할 때 머리가 잘 돌아갔던 때라고 말이지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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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는 항상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 경제학자 케인즈가 만든 이론은 대공황 때에만 효력을 발휘했다.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세운 방학 계획은 완벽한가? 그것 또한 완벽하지 못하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운동할 수 있었던 것을, 나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성벽 주위를 순환하는 해자(垓子) 속의 물과 같은 '진리의 물결' 속에서 극히 일부분을 떼어낸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물결 전체를 논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해질 수 없다. 항상 어떤 학자가 주장한 이론에는 한계점이 있고 수정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작품의 뒤편에는 더 멋있는 작품이 있다. 항상 내가 쓴 논술 답안에는 반발의 여지가 있다. 내가 유려한 논리를 전개해도 그 논리가 한정된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나의 논리의 앞과 뒤 끝부분을 연장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논리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다른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는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


완벽하지 않아도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항상 진리, 혹은 완벽에 비해 열등하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할까? 그렇지는 않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 때에도 분명 어딘가에는 좀더 좋은 '자료의 수집' 혹은 '자료의 분석과 정리' 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만드는 과정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지금으로서는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완벽한 것은 앞으로 더 완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완벽 추구의 삶은 '더 좋은 것'에 대한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주기에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즉 우리는 희망을 갖고 '한계적으로' 궁극의 완벽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동등가치와 우열가치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Rock을 좋아하는 활달한 소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Jazz를 좋아하는 부드러운 소년이 될 것인가. 분명 활달함과 부드러움, Rock을 좋아하는 성격과 Jazz를 좋아하는 성격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갖지만 서로 다르다. 그리고 어느 한 성격 경향을 택해서 그 성격을 바탕으로 인격적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 의무는 인생 전반에 걸친 의무이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예를 통해 말한 두 가지 성격 경향은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 둘은 동등가치이다. 이럴 때에는 자신의 성향, 즉 style이 원하는 대로 따른다. 그리고 나의 style을 기반으로 하여 더 완벽을 추구할 여지(margin)을 찾아본다.
  하지만 분명히 가치의 상대적 우열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옷 입는 스타일에 있어서 가치의 상대적 우열이 존재한다. 아무 옷을 입으나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가치를 논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 특히 나와 같은 청소년이라면 옷을 어떻게 입는지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자인이 뛰어나고 옷을 입은 사람과 잘 어울리는 옷과, 평범하고 허름하며 옷을 입은 사람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옷 사이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이럴 때 가치의 상대적 우열이 존재하고 우열가치가 나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있다면 나는-내가 옷 입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고 주위 사람의 인정을 받는다면-나의 개성을 파악하고 개성에 맞추어 style을 정하고 그 style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이 '지금으로서는 완벽'하고, '한계적으로 완벽'한가?

  내가 그 이론을 만들면서, 그 계획을 세우면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욕구를 충족하여 최고의 만족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이론과 계획에 대한 최고의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완벽하다(marginal perfection). 지금으로서는 완벽한 것을 내가 만들어 냈을 때 나는 자기 존중을 느끼는데, 이것이 나에게 한계적으로 궁극의 완벽에 접근하는 노력을 그치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과 같다.


Self-esteem - 완벽 추구를 위해 달리는 스포츠카의 윤활유와도 같은 존재

  Self-esteem이라는 집이 여기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주춧돌은 세 가지가 있다.

나의 만족,

친구,가족,'평가원'들의 인정,

사회 발전과 자기 발전으로의 지향. (여기서 평가원이란 선생님,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대학교의 입학관리, 혹은 각종 시험의 주최 기관을 지칭한다.)

즉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만족시키고, 그 일로 남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고, 나아가 그 일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일정 부분 공헌하고 나 또한 발전하는 데 기여할 때 나는 자기 존중(Self-esteem)을 하게 된다. 자기 존중은 나의 끊임없는 완벽 추구의 원동력이 된다.


완벽 추구의 좌절 그리고 자기 존중의 한계(limit)

  분명 완벽을 추구하더라도 지금의 '한계적(marginal) 완벽'을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거나, 혹은 지금 나의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의 '한계적 완벽' 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야 한다. 나의 노력으로 분명 극복의 단초를 찾아낼 수 있다. 자기 존중과 뒤이은 발전은 내가 지금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한계적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 일을 찾아냄으로써 더욱 풍성해진다. 보통 완벽 추구의 좌절을 겪는 일은 지금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서의 일일 때가 많다.
  또 내가 말한 Self-esteem에도 함정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와, 내가 이 일을 해냈어. 대단해.' 라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을 때가 있다. 이는 방학 동안 학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부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분명 나는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해서 공부를 했는데, 그 공부는 내가 보기에는 한계적으로 완벽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회 전체가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한계적 완벽에 추호도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설정한 한계적 완벽이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한계적 완벽에 비해 너무나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따라서 주위 사람들과의 교감이 필수적이다. 항상 사회를 의식하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과 내 자신을 비교해야 한다. 이 일은 위에서 말한 Self-esteem의 두 번째 주춧돌, 즉 다른 사람의 인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의무의 이행이 중요하다

  일정한 생애의 한 부분에서 인간은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차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청소년기부터 직업에서 은퇴하고 노년의 삶으로 전환하기 전 시점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의무와 싸우는 사자(lion)와도 같다. 아무리 우리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정해놓고 그 일에서 끊임없이 한계적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 일이 '현실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자질을 내가 성취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무가 현재로서는 나와 같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완벽 추구의 과정을 밟는 객체가 '현실에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 가 되도록 노력해 보아라. 그렇게 한다면 분명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소위 출세의 길도 열릴 것이다. 꼭 내가 출세를 바라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일단 나에게 주어진 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의 한계

  원래 소제목을 '나의 이론의 한계' 로 정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지금 내가 쓴 글이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의 한계'로 고쳤다. 나는 내가 완벽 추구의 객체를 논함에 있어 그 객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찾을 수 있다. 분명 이 점에 대해서는 나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더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餘滴

  지금 내가 하는 말 자체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들거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더 노력해서 더욱 더 만족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나아가 나의 내적 성숙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06. 7. 23.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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