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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근현대사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나는 책에서 배운 내용이 옛날이나 혹은 지금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적용될 때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책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비단 책 속에서만 있었던 어떤 지식의 단편이 아니고 나의 눈을 책에서 세상으로 조금만 옮겨 놓아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책에서만 보아 왔던 지식을 '현실화' 시킬 때, 나는 더 그 지식에 대해 정확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공부는 현실 속에서의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매력적인 존재로 보일 것이다. 또한 과장된 주장을 막기 위해 현실 속에서의 학문을 추구하는 자세는 조금 더 시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태도이기보다는,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공부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던 독재 체제, 그리고 약 31년간 지속되어 왔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야당 정치인의 투쟁, 이런 것들을 단순히 근현대사 과목의 시험이나 심층면접을 위하여 외워야 하는 지식으로 생각하지 말자. 내가 딛고 있는 이 한국이라는 땅, 서울시청 앞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면 서울시청 앞이라는 공간 속에서 근현대사에서 배운 지식이 줄줄이 펼쳐질 것이다. 법과 사회 교과서에서 따분하게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던 행정법과 행정 구제제도에 관한 부분을 좀 더 재미있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인터넷으로 항고 소송에 대해 사정 판결을 하는 법원에 구경 정도는 해보는 것이 좋다. 경제 시간에는 소득 불평등이 어쩐다 하고 여러 미국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제시하는데, 이것들을 단순히 이론으로서만 외우려 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이 이론을 발견하려고 해보자. 정말 불평등한 소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신문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몸소 체험해 보고, 그로서 현실에서의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 뼈저리게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그런 점에서 나는 입시준비를 위한 학원에서 선생님이 나누어 주는 유인물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학생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들은 책이나 A4 프린트에 주어진 내용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 체계를 만들어간다. 자신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진짜 현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선생님의 말이나 저자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판을 하더라도 그 비판은 자신의 생각이 대부분이어서 때로는 현실의 본 모습과 외람되어 있을 때도 있다. 결국 현실과 책을 하나로 보지 않고 공부는 오직 공부일 뿐이라는 인식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반발은 이렇다. 혹자는 이렇게 내 담론에 받아칠 수 있다. '그렇다면 수학이나 물리/화학 같은 딱 떨어지는 이과 과목이나 세계사, 외국 문학과 같이 직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구체화할 기회를 갖기 힘든 과목은 어떻게 할 거냐?' 그렇다. 한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일종의 '메타포' 같은 것들을 통해 이과 과목과 세계사 혹은 외국 문학을 좀 더 잘 이해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선 전자의 이과 과목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과 과목도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과 과목에 대해 '더 나아간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 말하자면 간접 경험이라는 것을 들고 나오고 싶다. 나는 내 담론 속에서 입시학원 프린트 혹은 EBS 속성교재 속의 내용과 '생생한 간접 경험' 을 구분한다. 전자는 정말이지 활자 그 자체다. 활자로서 외우도록 강요하고, 현실과 연관지어 공부를 즐겁게 만들 여지를 정말 조금만 남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세상은 넓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세계 사람들의 모습과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사 책에서만 보던 피라미드를 TV 속에서 보면서 고대 이집트 문명을 좀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은 애정이 들게 된다.

 나는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에 걸쳐서 수십 차례 다녀온 현장학습이 참 좋다고 여긴다. 현장학습 가지고 공부 더 잘하는 거 아니다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일단 내가 지식의 세계를 현실 세계와 접합하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그것으로 학문의 반은 성공한 것이다. 정말로, 심지어 대학로를 걷다가 파랑새극장 옆에 있는 흥사단 건물을 본 경험도 나중에 내가 역사를 조금 더 공부하려는 의지에 보탬이 된다. 그러면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 수많은 사회탐구 과목을 배울 때, 책에서 얘기하는 것들을 읽고 나서 생각하면서 '현실 세계도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데, 참 신기하네.' 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공부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의 만사(萬事)에 대해서 아는 것의 지평을 넓혔다는 뿌듯함과, 현실을 설명하면서 똑 떨어지는 이론을 만들었을 때 그 명확함과 정교함에 대한 감탄과,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일상 속의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을 좀 더 깊게 이해하는 학문의 자세, 참 이상적인 공부 방법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가.

 공부가 가장 쉽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항상 안주해 있는 이 현실과 책 속에서의 학문을 하나로 생각해서 공부가 가장 쉽다는 말을 했다고 여긴다. 국소적인 예시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치학을 정말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에 몸을 담고, 경제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증권회사 혹은 무역 관련 업종에서 열심히 일하고, 한국 역사를 잘 알려면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를 하면 된다. 꼭 이러한 직업을 성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데, 그렇다면 참여연대에 직접 가입하거나 혹은 우리나라의 여러 비정부기구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고, 직접 소규모 주식투자를 해보고, 서울 안에 있는 모든 조선시대 유물을 관람한다면 어떨까. 책에서만 보아서 실제로 경험은 해보지 못했던, 그래서 잘 이해가 깊이 와닿지 않았던 내용이 이제는 구체적인 현실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나의 이러한 생각은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보다는 로크의 경험론과 비슷하다. 데카르트라면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완성하고, 세상을 인지할 것이다. 생각하면서 존재하는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크라면 모든 사람이 흰색 도화지와 같은 생각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경험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완벽히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로크의 주장과 같이 어떤 지식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직접 현실을 경험하여 지식을 현실 세계에 투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배우는 여러 학문을 일상에서 와닿게 해줄 수 있는 도시 같다. 적어도 한국과 연관된 점이 있는 학문에 있어서는 그렇다. 신도시나 소규모 지방 도시와는 다르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나가기만 하면 조선 시대의 도읍지였던 한성의 유적이 있고, 헌법재판소와 한국은행과 청와대와 서울시청이 있다. 세종로는 때때로 시위하는 노동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광화문역 7번 출구를 지나며 볼 수 있는 많은 거지들, 북악스카이웨이 쪽에 있는 늙은 부자들과 강남 타워팰리스의 신흥 부자들, 그리고 달동네의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보기만 해도 우리 사회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학문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모든 학자들과 학문을 배우는 모든 학생들, 그들은 모두 인간과 인간이 모인 사회와 인간 주위의 자연과 이런 모든 것들 위에 있는 세계까지도, 우리가 '세상' 이라고 말하는 것 속에서 참모습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나의 의견을 만들어내는 것 못지않게 직접 세상의 모습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공부를 즐겁고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고,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의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공감을 하거나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는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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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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