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 '아웃라이어'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 놓였고, 또 어떤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 나갔고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빌 게이츠, 비틀즈, 빌 조이, 로버트 오펜하이머 같은 익숙한 인물들의 성공의 비결은 몇 가지의 비슷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인맥의 활용 - 나와 두 다리 이하로 이어진 사람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할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 지리적 위치 - 내가 주 4회 이상 가는 곳, 여가가 아닌 나의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그 생산을 보조해주거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해주는 장소나 기관이 위치해 있다. 혹은 내가 어떤 모임 장소에 갔을 때 내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앞에서 말한 '사람'이 서 있는 타이밍이 조성된다.
  • 책에서 소개한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 - 대부분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또한 어떠한 제약도 없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준비과정이나 연습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조성된다.
  • 나를 수요하는 사건의 발생 및 그에 따른 연락 - 그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나에게 결정적인 이메일이나 전화 연락을 하여 결국 나를 꼭 필요한 곳으로 인도한다. 이때 나의 공급에 대한 대가는 돈 아니면 인맥 아니면 직책이다. 공짜로 공급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상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게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 놓았는데, 이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위의 항목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빌 게이츠의 고등학교 한 학년 선배는 C-Cubed라는 회사의 창업자인 Monique Rona의 아들이었고, 빌 게이츠를 그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그 후에도 게이츠가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도록 다른 아주머니들과 어머니회에서 끊임없이 소통하였던 게이츠의 어머니가 Monique Rona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어 각자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연결을 시켜주게 된 것이다. 이 사례에서는 첫 번째 항목인 인맥의 활용이 적용된다. 빌 게이츠와 Monique Rona는 두 다리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이고, Monique Rona는 창업자로서 빌 게이츠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하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결국 빌 게이츠가 힘있는 사람에게 붙은 것이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만나는 것을 비열한 행동이나 편법과 같이 여겨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강자에게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단순히 성공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일에 불과하다.
  또한 워싱턴대학 의과부, 물리학 연구소에서 빌 게이츠가 컴퓨터를 공짜로 쓰도록 허락해주고, 이를 통하여 게이츠는 당시에 생소했던 공유 터미널을 이용한 전산처리와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연습할 기회를 갖게 된다. 게이츠에게는 밤에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이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하게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세 번째 항목인 '1만 시간의 연습'을 위한 여건 조성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TRW라는 회사의 펨브로크라는 사람이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해달라는 전화 연락을 하였고, 그 연락을 먼저 듣고 손을 든 사람이 빌 게이츠였다. 빌 게이츠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수요하는 사건을 발생시킬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네 번째 항목과 관련된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우리는 성공을 흔히 개인적인 재능에서 찾곤한다. 그리고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스토리에 열광하곤 한다. 자, 그럼 빌 게이츠는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아웃라이어"에서 주장 하는 성공하기 위한 "1만시간법칙" 즉, 빌게이츠는 어떻게 1만시간의 프로그래밍 연습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가? 

1. 부유한 부모(아버지: 변호사, 어머니: 은행가의 딸)덕분에 레이크 사이드로 보내졌다. 세계 어떤 고등학교에서 1968년에 공유 터미널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겠는가?
2. 레이크 사이드의 어머니들은 비싼 컴퓨터 사용료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3. 사용료가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에서 부모 중 하나가 C-Cubed의 공동 창업자가 되었고, 그 회사는 주말에 코드를 확인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부모들은 주말 내내 프로그래밍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4. 게이츠가 ISI라는 벤처기업을 발견했고, ISI는 장부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5. 게이츠는 워싱턴 대학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6. 워싱턴 대학에서 새벽 세시에서 여섯 시 까지 컴퓨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있다.
7. TRW(회사명)가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8. 펨브로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두 명의 고등학생있었다.
9.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가 학교에서 벗어나 프로그래밍에 매진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이 모든 행운의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그 모든 기회를 통해 빌게이츠가 추가적인 연습시간을 얻었다는 점이다.

출처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저



  이 외에도 영국의 비틀즈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라이브 공연에 빨리 데뷔하는 성급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작은 라이브 클럽 사장과 만나 그 클럽에서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사장의 수완으로 관객을 동원하여 초보 밴드 비틀즈가 많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Mountain View라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산업단지 바로 옆의 마을이었고, 바로 옆집에 HP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었으며, HP의 창업자인 Bill Hewlett에게 어린 나이에 부품을 부탁한 게 기특하게 보여 공장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의 이야기와 위에서 말한 네 가지 항목에 대응되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바꾸어 위의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공란으로 남겨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 나는 _____ 덕분에 _____로 보내졌다.
  • 나의 ______는 _____를 할 만큼 여유로웠다.
  • 내가 아는 _____는 내가 하는 일인 ____와 아주 관련이 높은 기관인 ____에서 일하는 _____였고, 나는 _____를 통해 _____와 만날 수 있었다.
  •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____가 있었다.
  • 나는 ____를 돕는 대신 ____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_____에서는 나에게 공짜로 ____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 _____가 나에게 ____를 해달라고 전화를 했다.
  • _____가 알고 있는 최고의 ____는 나였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만들고 성공한 사람의 행적을 요약적으로 나타내는 문장 옆에 그대로 대조시킨 뒤 나에 대해 곰곰이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공란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종이 한 장을 두 단으로 나누어 왼쪽 단에는 내가 존경하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 오른쪽 단에는 나의 이야기를 써 본다. 성공한 사람과 나의 각자의 속성을 일대일 대응시켜서 그와 같이 나도 동위원소가 되게끔, 그와 닮아가게끔, 조성만 바꾼 같은 곡을 연주하게끔, 선택적 모방을 위한 아이디어를 빨리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낸다.

  단 공란 안에 들어갈 단어(고유명사 포함)는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코웃음을 치거나 비웃거나 '말도 안돼!'라고 소리치거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채우기 힘든 것이다. 당장 손쉽게 채울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면 당신은 성공을 위한 환경 조성을 잘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단어를 채울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란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렵다. 주어진 환경, 태생, 유전, 자격, 타이밍, 시대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누구에게나 도전이나 참여의 기회가 열려있는 일 말이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건 슈퍼스타K, 스타킹, 아메리칸 아이돌, 행정고시와 같은 국가고시, 길거리 공연, 무작정 소매를 붙잡고 호소하거나 빌기 등이다. 모두 누구나 도전하고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이 일들 중에서는 경쟁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하지만 경쟁의 틀이 없다고 한다면 나의 '성품이나 인정'이 다른 성공한 사람들의 '주어진 환경'만큼 대단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들을 시작하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고 넉넉히 예상할 수가 있다.

  책 '아웃라이어'는 조금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 시대의 수많은 패배자, 낙오자, 서민, 무능아 등의 약자들에게 '너희들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명, 조건, 환경이 있어 주어야 돼.' 라고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은 위에서 말한 조건과 환경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너무 높게 쳐다보는 열등감에 가득차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웃라이어'는 모든 사람, 범인(凡人)들에게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도와주기 위해 사례만 성공한 사람들로 끌어다 쓴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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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몇일이다, 몇년이다 라는 개념은 시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늘이 무슨 달이고 무슨 요일인지는 그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달과 요일은 정서를 품은 음악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지요. 세계화로 연결된 우리와 친숙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의 도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가지는 감정도 서로 비슷해져서 어떻게 보면 적어도 요일이라는 기준만으로 감정의 변화를 지켜보면 모든 사람들의 감정에서 평준화된 추세가 발견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추세를 부드럽게 타기 위해서 우리는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요일에 어울리게 맞추기 위해 음악을 듣곤 하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수요에 맞추어 요일을 주제로 한 곡들도 가끔씩 생겨나고 있구요. 여기서는 요일이 곡 제목에 들어가거나 가사 속에 들어가는 곡들을 찾아 소개해 드릴까 해요.

    월요일
     월요일은 차분하게 시작하면서 한주의 시작이라는 스트레스에 신경쓰지 않고 초연해지는 건 어떨까요? 제가 소개하는 두 곡은 빵빵한 로고송으로 시작하는 아침뉴스나, 호들갑을 떨며 힘차게 새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오늘아침'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월요일은 힘차게!' 라는 고정관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들이에요. 저는 성격이 밝은 성격은 아니고, 물론 밝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한없이 밝아지지만 억지로 밝아지기는 싫어서 차분한 시작으로 미소만 지을 수 있을 정도면 딱 좋더라구요.

    1. The Carpenters - Rainy Days and Mondays

    2. The Bangles - Manic Monday
     

    화요일
     월요일, 고달픈 새 한주의 시작을 겪어낸 당신. 주말 동안 정신을 가볍게 하고 어제는 일이나 공부의 양이 많아 감정에 집중할 수 없었으니 화요일부터는 잠시 쉬었다 가는 기분으로 혼자만의 산책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날씨가 흐리든 맑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죠.

    1. 미스티 블루 - 화요일의 실루엣

    2. Swan Dive - Groovy Tuesday


    수요일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이라 시간이 정말 안 가는 기분이 들어요. 무언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부단히 친구들을 만나거나 평소에 미루어두었던 일을 파고들던지 해서 느리게 가는 시간을 빨리 가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한 주도 꺾였으니 놀아야 하는데 주말이 오기까지는 3일이나 남았을 때, 그 애절함과 기다림에 어울리는 곡들이 몇 개 있어서 소개해 드려요.

    1. 루싸이트토끼 - 수요일
     
    '수요일'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어서 '꿈에선 놀아줘'로 대신 올렸어요

    2. Lisa Loeb - Waiting for Wednesday


    목요일
     제가 좋아하는 앨범 중에 John Mayer의 'Any Given Thursday'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을 목요일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올 때나 중간에 한강변을 거칠 때 들으면 한 주의 힘든 일은 다 지나가고 이제 힘차게 놀 준비를 해야겠다는 해방감을 맛볼 수가 있어요. 목요일은 확실히 억눌려있고 정적이고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수요일보다는 밝고 명랑하죠. 누군가는 그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나 과제를 떠안게 되어 직장이나 학교에서 막판 스퍼트를 내는 식으로 갑자기 일과가 벅차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1. The Moonshiners - 목요일의 연인


    금요일
     드디어 일과가 끝난 금요일 밤. 금요일 밤에 혼자 집에 있으면 그것보다 바보같은 일은 없을 거에요. 아무런 부담이 없는 최고로 한가하고 가벼운 토요일 아침을 보장받으며 밤새도록 놀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밤새도록 놀기 위해 사람들은 평소에 즐겨 찾는 가까운 번화가나 익숙한 과방/동아리방 등의 공간보다는 서울의 바깥으로 짧은 여행을 가거나 평소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거나 조금은 비싸더라도 환상적인 인테리어와 맛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그것도 연인의 손을 잡고 둘만이서 가거나 가장 친한 몇 명의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그 어느 날보다 화려하고 풍성한 밤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요. 클럽처럼 시끄러울 수도 있고 찻집처럼 조용할 수도 있지만 금요일의 휴식만한 게 없죠.

    1. Clazziquai - 금요일의 Blues
     

    2. The Cure - Friday I'm in Love


    토요일
     금요일에 가장 신나고 화끈하게 논 다음 찾아오는 토요일 아침, 토요일은 생각보다는 조용하고 때로는 혼자 보내는 게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날씨가 좋으면 친구들과 번화가를 산책하고 쇼핑을 한다거나 각종 군것질을 하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정도로, 토요일 밤도 금요일 밤 못지않게 해방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제 잘 놀았던 사람들은 후회가 없어서 토요일에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어요.

    1. Paris Match - Saturday


    일요일
     그리고 일요일. 저는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일요일은 노는 주말이 아니라 안식일, 휴일과 같이 가족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날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요. 일요일에는 우리나라나 일본을 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낮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평소에 관심과 애정을 쏟지 못했던 가족들을 위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나 일본도 이제는 일요일에는 거의 일을 안 하죠. 친구나 애인과는 만나기보다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집에 편안하게 앉아 대화를 하는 게 더 일요일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진짜 친한 동성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을 갖고 있다면 다음날이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허물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주위에 많아요. 전 그게 부럽더라구요.

    1. 재주소년 - Sunday
    2. Loveholic - 일요일 맑음
    3. Maroon 5 - Sunday Morning
    4. Acid House Kings - Sunday Morning
    5. Earth, Wind & Fire - Sunday Morning
    6. Fourplay - Sunday Morning
    7. The Indigo - Sunday Morning
    8. Oasis - Sunday Morning Call
    9. Aquibird - Sunday Morning Driver

    위의 곡들은 각자 찾아 들어보시길~~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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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거의 1년만에 다시 편지를 쓰면서 나는 지금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도구의 홍수 속에서 편지를 왜 굳이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미 전화로도, 싸이월드 방명록으로도, 미투데이 글로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와 나인데, 전달이 오래 걸리고 바로 답을 받아볼 수도 없는 편지만이 가진 아름다운 매력은 무엇이기에 나는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일까? 나는 편지지에 한 문장 한 단어 써내려가며 편지 아니면 안될 말들만 걸러내고 추려서 정성어린 깨알같은 글씨를 새겨넣어 가며 이 시대의 편지의 역할과 입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손글씨보다 키보드가 편한 이 시대에 어려운 손글씨는 그만큼 정성을 나타낸다. 나의 타자 실력은 이제 550타를 거뜬히 넘게 되었다. 블로그는 잠시 쉬었지만 미투데이라는 걸 하면서 군생활 중 정말 짧게 주어지는 몇 분의 시간 안에 평소 가지고 다녔던 농축된 말들을 빠르게 풀어나가는 일이 하루의 일상이 되었다. 문서의 서식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디자인 요소를 넣어서 사람들 앞에 예뻐보이게 하는 기술도 컴퓨터를 항상 끌어안고 사는 지금의 일 때문일까 상당히 성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손글씨는 바쁘게 전화 내용을 대충 끄적거릴 때에나 써서 그리 예쁘지 못하다. 평소의 날림체가 나의 급한 성격과 웬만한 사소한 일은 대충 처리하려는 습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그 순간 펜촉에 시선이 집중되고 마치 표적지를 바라보며 사격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나는 긴장을 하였고 볼펜에는 힘과 정성이 들어갔다. 한장을 꽉 채웠을 때에는 뿌듯했으며 이 글 쓰려면 시간 꽤나 걸렸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 한 장의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적으면 모니터의 반 장 정도밖에 채우지 못할 정도로 졸렬할 뿐이다. 하지만 손글씨로 쓰여진 글은 문장력에 상관없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노력이 느껴지는 것처럼 손글씨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에서 정성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편지는 아날로그다. 잉크가 만들어낸 글씨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비공개를 하고 '비밀이야' 체크를 하더라도 결국은 서비스 공급자의 서버에 그대로 저장되고 누군가는 네트워크 장비와 서버를 침투해 들어와 내가 꽁꽁 숨겨둔 글을 훔쳐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더구나 그 훔쳐보기를 경험해보고 인터넷 네트워크에 올라온 정보의 기분 나쁜 공개성에 흠칫 놀란 나로서는 더욱 더 아날로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친구와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를 통해 쪽지나 방명록을 주고받을 때에는 그 친구와 단둘이 닫힌 방 안에 있는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방에 아무도 없고 분명히 그와 나의 이야기를 엿보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사람 북적거리는 명동에서 20m 밖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편지, 이 편지는 나의 손을 떠나면 꽁꽁 봉투에 담겨져 있다가 그의 손에 바로 쥐어진다. 편지는 매체를 통하지 않으므로 가장 사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에 가장 사적인 내용을 채워넣으면 그 편지의 독보적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나 오늘 ..했다?' 혹은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어.' 같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하기에는 편지지가 너무나 아깝다.

      과거에 잠깐 생각났던 건데 전화로 말하거나 방명록을 통해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면 느긋하게 편지로 이야기하면 된다. 앞뒤 맥락도 없이 외워놓은 대본을 갑자기 낭독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 지금 현재 그와 내가 긍정적으로 지내고 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된다거나, 명랑한 대화만 주고받던 그녀에게 응큼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평소 말싸움이 잦아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피하는 상황에서 사과를 빨리 해야 하거나 할 때 편지는 해답이다. 일상 대화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 편지에서 나온다. 편지에서는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지연을 남긴다. 아무리 바로 옆 동네로 편지를 써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가 걸린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거나 전화를 하고 있거나 둘 다 네이트온에 로그인해 있을 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쪽에서 대답이 오지 않으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왜 대답을 안 하냐는 생각에 상당히 걱정되고 불안해지고 불쾌해진다. 싸이월드 방명록 역시 우리가 언제나 24시간 접속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지연을 남기지는 않기 때문에 편지와 조금 다르다. 편지에서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대답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본 다음 하라는 숨겨진 당부의 말을 같이 한다. 편지에서 내가 어떤 화제를 꺼내더라도 그것이 생뚱맞을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모든 감정은 평소의 의사소통보다 더욱 진해지고, 생각은 더욱 더 질서와 논리를 갖추게 된다. 철학적인 사색이나 공상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해줄 때에도 편지 이외에는 적합한 수단이 없다. 일상 언어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정한 주제의 에세이 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자 할 때, 충분한 설명을 통해 한번 내 뜻을 전한 다음 오해의 피드백이 생기지 않을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그때 편지를 쓰면 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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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방송에서 한 20대 초반의 남자가 사연을 보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고등학교 때에는 여자에게 말 한 마디 못 붙이던 숫기 없는 그가 대학교에 들어와 2학년이 되어 한 후배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처음 그녀를 본 이후부터 호감이 생겼고 그녀가 먼저 자기를 학교 복도에서 처음 불러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때 그녀도 자신을 조금은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달 뒤 중간고사로 바빠지기 전에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는데 뜸을 들이던 그녀는 좋다는 말을 전해와 같이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둘이서 처음으로 본 거라 많이 떨렸고 그때 이게 나의 첫사랑이구나 생각했단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중간고사 때문에 각자 공부로 바빠졌고 그 이후에는 문자도 받지 않고 먼저 약속을 잡지도 않는 뜸해진 그녀가 섭섭하다.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나는 군대에 들어온 일병이다.

     싱거운 첫사랑을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이는 이 미성숙한 남자의 사연을 받은 DJ는 이렇게 답했다.

     "많이 간절하지 않으셨군요. '아이 뭐 그때는 아프더니 이제는 괜찮네요.' 이정도로 끝나면 그건 아직 아픔을 겪은 게 아니잖아요. 뭐 여자애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되는 거에요.
     첫사랑,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이라는 거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겠구나, 이게 나의 첫사랑이구나, 평생동안 나의 술자리에서, 또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나의 아이를 붙잡고도 늘 한번쯤은 꺼내야 할 첫사랑. 정말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움직여서 했을 때, 그래서 그게 끝났을 때 너무나 앓고 힘들었을 때 그걸 이제 처음 사랑했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군대도 갔다오시고, 더 필요하실 때, 애인의 필요성을 느끼셨을 때, 그럴 때면 아마 OO씨가 노력을 해서라도 여자들과 말도 좀 섞고, 장난도 좀 자연스럽게 치고, 그런 성격으로 점점 변해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0. 03. 14. '푸른밤 문지애입니다' 중에서..

    문DJ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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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주 하게 되는 , 발생 빈도가 높은 일은 쉽게 접근해서 처리하게끔 조치를 취한다. 자주 전화를 걸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 바로 전화기가 있고, 자주 쓰지 않는 핫라인 전화는 곳에 비치해 두었다. 바탕 화면의 바로 가기나 빠른 실행은 자주 가는 사이트나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구성할 있다. 웹사이트에서 댓글은 아래 바로 위치해 있어서 댓글을 달고 싶을 바로 있다. 이처럼 일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 놓으면 소요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소요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의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쓰는 수첩은 짧은 시간 동안의 단발성 처리를 목적으로 하므로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바로 메모를 , 내일의 20 동안의 일정이 갑자기 잡혔을 , 처음 만난 사람이 전화번호를 알려줄 , 검색창에 입력해보아야겠다는 키워드가 떠올랐을 잠깐 수첩을 펴고 적고 덮는 것과 같이 수첩은 소설책처럼 시간 동안 연이어서 들여다보는 물건이 아니다. 이와 같이 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일의 접근성이 좋아서 소요시간이 짧다는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소요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의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이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소요시간이 짧은 또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해야 함은 일을 함으로써 생산하는 양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잠깐이면 일을 수많은 준비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만 있게 된다면 본론보다 서두가 길고 배보다 배꼽이 상황에 따라 오는 좌절감은 상당하다. 시간을 꽤나 많이 낭비했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더불어 나는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죄책감도 느낄 있다. 알맹이보다 껍질에 쏟는 시간이 많으면서 그래도 껍질은 까고 있으니 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혹은 일이 충분히 보람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타성에 젖어 발전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싶다.

     또한 자주 하지 않는 일이라도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놓는 사전 환경 수립은 불필요한 공간이나 에너지를 잡아먹도록 하지 않는다. 사전 환경 수립이란 아니다.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니기, 빠른 실행에 넣어둘 파일을 잠깐 열어볼 파일로만 추려서 등록하기, 여럿이 쓰는 컴퓨터에는 서로 약속한 대로 폴더와 파일 조직을 만들기 공간이나 에너지의 추가적인 소비는 없다. 서로가 같은 문서를 여러 컴퓨터 안에 저장해 두어서 불필요하게 하드디스크 공간을 쓴다던가(데이터베이스 안의 데이터 중복과 같은 문제) 어느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파일 검색을 돌려야 하는 등의 시간적 낭비는 줄어든다.

    생산하는 양이 미미한 이유 외에 다른 이유로는 일의 빈도를 예측할 없는 경우를 있다. 손님이 와야만 하게 되는 일들, 예를 들어 대여장부를 기록하거나 창고의 물건을 빼서 가져다 주거나 하는 경우 하루에 손님이 명이 올지는 예측할 없다. 분명한 대여장부 기록이나 창고의 물건 빼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1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여장부를 꽁꽁 숨겨 놓거나 창고를 잠가 놓고 열쇠를 곳에 두는 바람에 1분도 걸릴 일을 3 걸려 처리한다면 그것은 비효율이다.

    사실 사소한 하나까지도 수많은 준비과정을 필요로 하는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 놓은 수많은 비밀번호, 규칙, 설정, 조절 장치와 같이 절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서 공문서의 hwp 파일에 첨부하고자 한다면 일단 인터넷 PC 있는 곳으로 가야 하고 CMOS 윈도우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 로그인 프로그램에 로그인을 하고 인터넷PC 전용 USB메모리를 사용하여 사진을 저장해야 한다. 다음 USB 메모리 안의 내용을 다른 PC 거쳐 공문서를 쓰는 PC 복사를 3 와야 한다. 50킬로바이트의 사진을 가져오는 데에도 10분씩 걸린다. 겨우 이거 하는 가지고 이렇게나 의미 없는 많은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는 푸념이 하루에 대여섯 번씩 터지지만 규정에 따르다 보니 어쩔 없다. 하지만 규정으로 금지되지 않은 영역의 소요시간이 짧은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환경을 바꿈으로써 빠른 접근성을 확보하도록 만들 있다.

     반면 일의 소요시간이 경우에는 준비과정이 있어도 상관없다. 우선 소요시간이 일은 일을 하기 전에 충분한 검토와 계획을 수반한다. 언제 누가 있을 어느 장비 혹은 도구를 사용하여 일을 해내자는 시나리오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일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아 중간에 갑작스럽게 취소되거나 중단되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를 테이프에 백업하는 작업이 계획되어 있고 백업을 하기 위해 관리자가 서버의 초기 설정을 명령어를 통해 바꾸고 있는데 갑자기 백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준비 과정과 절차가 길더라도 과정과 절차에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분하더라도 준비는 필요하기 때문에 싫지는 않게 느껴질 있다. 반면 사진을 인터넷에서 퍼오기 위해 인터넷 PC 켰는데 사진이 필요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솟구친다. 외에 인터넷으로 블로그를 작성하는 일도, 개인폴더의 엑셀시트에 읽고 싶은 책을 적어넣는 일도 소요시간이 길기 때문에 준비 과정의 클릭 수가 많아도 상관이 없다.

     소요시간이 짧으면 접근성을 좋게 만들도록 노력하고, 소요시간이 길면 접근성이 좋지 않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일상 업무를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서 불필요한 과정으로 소요시간을 늘리고 있지는 않나 점검해서 짧게 끝낼 있는 일들을 진짜 짧게 끝낼 있도록 물건을 옮기고 파일을 옮기는 사소한 작업만 해준다면 보다 피곤하지 않은 업무가 가능해지며 의미있는 시간들로만 하루를 채워나가게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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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병 특기학교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그곳 정보통신학교!! 
    2009년 5월 15일부터 6월 16일까지 난 그곳에서 살았다.


     영국의 조용한 교외를 연상하게 하는 진주의 흐리고 쌀쌀한 기후와,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평지, 그리고 진록색의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의 각진 행렬, 군부대가 갖는 음침하고도 장엄한 풍경의 분위기.

     그 고요한 땅 한 구석에 사립 기숙사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벽돌의 2층 건물과 걸어서 5분 거리의 아담한 4층짜리 교육장 두세 동 그리고 언덕을 올라가야만 보이는 단층의 조촐한 식당.

     ㅁ(미음)자로 마치 정원과도 같은 평온한 잔디밭을 에워싸고 있는 건물 그리고 친근하며 소박한 느낌을 선사해주는 하얀 색의 울타리, 정원 가운데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림같은 벤치, 자갈밭과 천막이 쳐진 구석의 흡연장과 생활관 옆의 잡동사니 기구들을 보관해놓은 창고. 생활관을 삼면에서 안아주고 있는 산과 숲의 울창함 그리고 그 사이로 청아하게 들려오는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낯선 새소리, 그리고 정문에서 길고 곧게 뻗은 이차선 도로.

     생활관 안의 200명의 젊은 청년들과 그 비슷한 또래의 4명의 훈육조교 그리고 사감선생님같은 간부들과 편한 옷차림 속에 계급과 권위를 숨긴 대대장. 100명의 선임과 100명의 후임이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며 질서 있게 조직을 갖추어 살아가는 모습.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내무실과 낮은 천장, 아침의 안개와 찬 공기를 생생히 들이마실 수 있는 낮고 큰 창문, 실내에 갇혀있는 느낌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안락함을 만끽하게 해주는 실외 계단, 유일하게 바깥 세상과 통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더욱 소중했던 8대의 하얀색 공중전화기와 학생들의 젊은 감성에 맞추어주는 아량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랑의 감동폰'(문자메시지)서비스. 80바이트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공책 찢은 종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세심한 글귀를 못생긴 손글씨로 적어나갔더랬다.

     동기들을 위해주는 착한 마음으로 자진해서 일하는 근무자들, 우리가 '대대'라고 불렀던 3명의 친구들은 정말 다른 97명의 사람들과 사회에 있을 때의 가면과 명찰을 다 떼어버리고 동기로서, 똑같은 순수한 사람으로서 친하게 지냈다.

     선임 기수는 후임 기수 앞에서 모범을 보이자 다짐하고, 후임 기수는 선임 기수 앞에서 부끄럽지 않자는 결의를 하루에 세 번씩은 꼭 했더랬다.

     아침에 안개를 마시며 혹은 햇살을 쬐며 기상할 때 이곳 정보통신학교는 절대 사람들에게 불쾌한 긴장감이나 강요를 유발하지 않았다. 갓 훈련단을 마친 우리의 먹을거리라고는 훈련단 때 먹고 남은 레모나, 레모비타, 생강차가 전부였지. 심지어 단 한번 뿐인 공동구매 때도 구입이 가능한 건 이것들 뿐이었으니까. 과자는 종봉(종교봉사) 가서 배터지게 열심히 먹었던 오예스<초코파이<가나파이<몽쉘, 써니텐, 짱구 정도가 전부. BX는 꿈도 못 꾸었지. 수료차 때 각 과정별 대표자 1명이 가서 더플백에 과자를 넣어온 게 전부여서 아쉬웠어. 간혹 내 친구들 중에는 종교타운에 가서 과자를 전투복 안에 갑옷처럼 두르고 온 친구들도 있었어. 그들은 친구들을 먹여살리는 영웅이었고 따라서 존경의 대상이었지.

     난 프로젝트팀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안 시켜주더군. 학과 빼먹고 가점 받고 중위, 대위 분들과 같이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게 너무나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해서 난 대신 정보통신학교 홍보동영상을 UCC로 만들게 되었지. 훈육중대장님께서 우리 UCC팀에게 과자를 꽤나 많이 주셨는데, 수료차 때 먹기로 약속한 족발은 결국 허사였어. 그대신 진주에서 파는 동네피자 한판은 먹어봤지. 특기학교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맛있는 치킨집과 피자집의 스티커가 내무실 안에 잘 찾아보면 붙어 있었어. 하루 있는 병사의 날 때는 위닝 대회, 족구, 농구, 축구, 계주, 영화, 그리고 저녁에 자습용 책상을 가운데에 모으고 먹었던 치킨과 피자가 기억나.

     공대같은 분위기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친근하고 희극적인 공간. 이곳의 그런 분위기를 강화시켜주었던 건 바로 TS(Tape Show)라는 저녁음악방송 DJ 프로그램이었어. 난 이게 너무 좋았는데...


      이제 우리 부대 안에서도 어느 정도 짬이 차고 조금은 편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이곳이 눈치를 보며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가야 하는 준(準)사회임은 분명해. 그때마다 나는 가난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시절의 유토피아였던 그곳을 떠올리곤 하지. 한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때처럼 고요함 속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마치 수도원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기회는 더이상 내게는 오지 않을테니까.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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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장을 따로 공책에 만들어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겠다고? 그건 어떻게 일정이 생기고 누구에게 끌려가거나 부탁을 들어줄지 모르는 우리 대학생과 어른들에게는 이제는 구식의 방법이다. 단어는 외워야겠는데 휴대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적어놓은 단어를 2~3일 안에 외워서 바로바로 섭취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그에 따라 낮아진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스마트폰 안의 app에 단어장을 넣어서 직접 스마트폰으로 입력도 할 수 있고 컴퓨터의 데이터를 import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휴대성의 장점을 이용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평소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고작 단어 외우겠다고 스마트폰을 살 수는 없다.

      기존의 종이로 된 단어장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단어장의 부피가 공책 하나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대학생이 책가방에 전공서적이나 노트북과 함께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평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수시로 꺼내 볼 수 없다. 집에 가서 책상에 앉은 다음에 책꽂이에서 꺼내 읽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들의 5~60%는 책상에 앉은 다음에 컴퓨터부터 켜거나 졸려서 이만 TV를 보다 잘 것이다.
    • 단어를 열심히 외워서 해치워야 한다는 압박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 사전을 한 페이지씩 찢어서 먹거나(!) 버리는 사람들은 그만큼 단어를 외워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지금 단어장을 만드는 학생들은 당장 머리에 안 들어오니 나중에 외우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단어장의 페이지를 채운다.
    • 단어장에 단어를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 번거롭다. 따로 단어장이라는 수첩이나 공책을 옆의 영어/제2외국어 소설책이나 신문과 같이 들고 움직여야 한다. 짐이 하나 더 생기면 실현 가능성은 그만큼 더 낮아진다.
    • 앞의 몇 페이지 조금 쓰다가 남은 70페이지는 언제 다 채우나 하며 기가 죽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이면지 A4 1장만 들고 다니자' 이다.

    우선 A4를 가로로 놓고 가로 5~7cm의 구역을 나누어 접는다. 그 다음 '외국어 | 한국어' 식의 자신만의 format을 가지고 적어나가면 한 column에 20~25 단어가 채워진다.(나는 글씨를 작게 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나누어 접은 선을 꽉 눌러 접고 두 손으로 찢는다. 이렇게 하면 하루 분량에 적합한 양의 단어가 나온다.

    이 종이를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플래너의 Weekly Compass에 끼우고 플래너를 들추어볼 때마다 외운다. 의식적으로 외우려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슬쩍 눈길이라도 준다.(슬쩍 눈길만 주어도 이 눈길이 10번이 되고 20번이 되면 굳게 마음을 먹고 집중하여 3번 본 것의 효과를 낸다. 우리가 그 많은 광고카피와 광고음악 그리고 그 안의 특정 장면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플래너가 싫다면 지갑의 지폐와 함께 넣어도 좋다. (딱 들어간다) 돈 쓸 때마다 슬쩍 눈길을 주면 플래너에서와 똑같은 효과를 본다.
     그리고 다 외웠다 싶은 단어장 종이는 따로 서랍이나 케이스에 모아서 보관한다. 버리지 않고 보관하면 혹시나 나중에 까먹어서 들추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들추어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A4이고 이면지여도 상관없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고, 자르기 위해 자나 칼이 필요없으니 번거롭지 않다. 번거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율성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다. 이건 일종의 nudge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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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표가 등장하고 앞으로의 몇 주간 혹은 몇 일간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예정해놓는 문제는 20세기 산업화와 기계적인 일상이 부상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거나 마음 가는 대로, 느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태도는 생산을 하는 '일하는 시간'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앙숙이 되었으며 대신 그러한 태도는 여가에서만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하지만 여가뿐만 아니라 일하는 시간 중에 틈틈이 나는 쉬는 시간, 장소를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에도 즉흥적인 행동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어떤 옷을 입을지는 그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해보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별히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야 한다거나 장례식에 조문을 가거나 드레스 코드가 있는 클럽에 갈 때가 아니라면 당일 전부터 그날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계획하지 않는다. 옷장 앞에 선 그 순간 창밖의 날씨, 어제의 좋고 나쁜 기억, 잘 보이고 싶은 사람 등을 고려하여 우리는 별 특징 없는 하루의 옷차림을 고른다. 내가 디자이너의 패션소를 보조해주는 모델이 아닌 이상 내 옷차림은 시계열 단위에 짜맞춰진 계획표를 따를 필요가 없다. 옷 입기는 즉흥적인 행위이다.


      먹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점심, 저녁 시간이 되었을 바로 그 때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무엇을 먹을지는 그 순간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가, 전날에 먹지 않는 새로운 메뉴가 무엇인가, 가까운 외식 장소가 어디인가, 같이 밥을 먹을 친구는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가에 의해 단시간에 결정된다. 현재 자신이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식이요법을 수행중이지 않은 이상 먹는 행위 역시 즉흥적이다. 즉흥적인 행위는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취약할지 몰라도 그것이 주는 만족감은 단연 뛰어나다. 그리고 행위자를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어준다.

      공부도 이렇게 입고 먹는 것처럼 할 수 있다면 공부는 최고의 여가 활동으로 우리 곁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 연등시간(군대의 야간자율학습)에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바꾸어가면서 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게 빨리 흘러간다. 내가 하는 공부는 6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모두 다 전역 후의 내게 피와 살이 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특정 시기에 반드시 이 과목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의무는 나에게 한번도 주어진 적이 없다. 언제 어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계획표는 매우 장기적인 계획이어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큰 축복이다. 수능을 죽어라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의 한가로운 천성이 가져온 나이브한 생각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니 불안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의무가 없기 때문에 나의 학습 활동은 여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여가는 언제나 즐겁기 때문에 공부도 즐겁다.

      그런데 대학생 신분일 때의 나의 모습은 지금의 여유로운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시험 일정에 나를 맞추어야 했고, 조를 구성하여 공동 프로젝트를 할 때는 친구들의 개인적인 일정과의 충돌을 통한 타엽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공부는 아예 안 했던 것 같고, 책이나 프린트물 하나를 볼 때마다 그 순간 나는 곧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결과물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한 의무와 목적이 나를 옥죄던 상태, 그 때의 나는 지금의 '全無한 의무와 잠재적인 목적' 상태와 완전히 달랐다.

      의무가 있을 때는 의무감을 에너지로 성취를 하고 결과물을 만든다. 반면 의무가 없을 때는 즉흥성과 자유를 에너지로 삼는다. 이는 공부가 일이냐 여가냐라는 이분법과도 서로 통하는 이리다. 공부가 일인 상황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은 많이 있다. 그런 종류의 공부법 설명서를 구매하는 독자들은 실제로 큰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자라나는 10대 초중반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공부가 여가일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공부가 여가인 상황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절박한 사람만이 책을 구입하는 소비성향에 출판업계가 굴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의무감이 없고 공부가 여가라면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고르듯 즉흥적으로 공부할 책을 집도록 권하고 싶다. 순간의 느낌이 최고의 만족감을, 나아가 고도의 집중력과 지식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낼 결과물을 낳는 시초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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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입대를 하고 나서 휴가에 민감해진 건 휴가 때 보다 의미있는 일을 평소에 계획해 놓았다가 한꺼번에 하자는 식의 작전을 항상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냥 8주마다 다가오는 휴가 당일이 온 다음에야 아, 쉬는구나 하고 이제부터 뭘 할지 계획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이 선약에 매여 있어 못 만나고, 밖에서 하는 공연이나 전시에 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이미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분명 나에게는 휴가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은 매 휴가 때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여러 차례의 휴가에 걸쳐서 커다란 범주는 같았다. 그래서 나의 다이어리(이제 프랭클린플래너 2010년판을 쓴다)에 그 범주를 적어놓았다. 매 휴가 때마다 하지는 않는 일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내용을 적었다.

    • 가족들 만나기 - 특히 자주 못 보았던 친척
    • 월 1회/연 1회 열리는 행사 참여
    • 쇼핑-교보문고, 낙원상가, 백화점
    • 특별한 가치(음식 외의)를 갖는 레스토랑/카페 방문
    • 특성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인터넷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잡지/단행본 열람
    • 밴드공연 관람/주최
    • 은행 업무/자금운용
    • 라리 고구마케익 먹기(진정 여기서만 먹을 가치가 있다)
    • 공씨책방/홍대,신촌 헌책방 가서 책/CD 구입
    • 디브러리 Global Lounge에서 TV5MONDE 위성방송 보기
    • 최신영화 보기

     

     이렇게 순서 없는 리스트를 만들어서 휴가 때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으면 휴가 때 한 번 계획으로 한꺼번에 약속과 모임과 일을 끝낼 수가 있었다. 마치 여행가이드가 상품 고객들을 위해 예약을 해놓은 관광지의 방문 일정을 하루의 시간표 안에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끊김 없이 모아놓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의 휴가를 위한 여행가이드가 되었다. 물론 이번 17일부터 20일까지의 휴가 때는 애초부터 열심히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원래 나의 휴가는 전역 후의 할 일 중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틈틈이 땡겨오는 개념의 휴가이다.

     하지만 내가 영내에 있을 때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처리할 때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마감 기한을 잡아놓은 일이 영내에 있을 때 끝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끝나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계획한 일이 미처리 상태로 남아있는 상태에 자극을 받아 마감 기한 이후에 언제라도 여유로워지면 그 일을 끝낸다. 이렇게 나는 지나간 일 중에 미심쩍은 게 있으면 불안하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계속 써서 생긴 심리적인 증상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부대를 빠져나와 아무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의 활동적인 시간 속에 놓이게 된 그 순간, 내가 여유롭다는 사실만으로 이전의 부대 안에서 하기로 되어 있던 일을 하면 그 일을 하는 내가 얻게 되는 효용은 낮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간섭할 사람이 줄어들어 자율성이 커졌을 때에는 자율성이 커졌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효용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이 순간에 자율성이 적어도 할 수 있는 일, 시공간과 업무 우선순위의 제약이 없는 일을 하면 나는 높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항상 기회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특정한 때와 장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차질없이 여유롭게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 어디서나 해도 상관 없는 일은 특정한 때와 장소에 놓이기 전에 미리 다 처리해버려야 추후 기회비용의 낭비가 없다. 이 때문에 일상적인 일은 비일상의 기간을 맞이하였을 때 절대 하지 않는다. 휴가를 나왔는데 굳이 부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공부할 필요가 없고, 굳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회비용이란 자율성이 늘어날수록 커지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실천에 대해 제약이 적어질수록 커진다.

     나의 경우 공부 / 블로그 / 쇼핑 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내가 하는 일의 실천에 대한 제약은 쇼핑이 제일 많고 공부가 제일 적다. (블로그는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따로 있다. 사지방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대 안의 근무장 및 근무시간 / 생활관 내 독서실,사지방 / 주말과 공휴일의 정보화교육장과 점심시간의 인터넷PC /부대 밖(휴가) 을 예로 들자면 자율성은 근무시간에 근무장에 있을 때 제일 적고 부대 밖(휴가)일 때 제일 많다.

     (표) 시간/장소에 따른 할 일의 최적화 전략. 빨간 색으로 셀을 칠한 영역은 실현 불가능을 나타낸다.

     이렇게 행에는 시간/장소를 자율성의 정도에 따라 낮은 순서대로 쓰고, 열에는 할 일을 실천에 대한 제약이 많은 순서대로 쓴다.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영역에 X표를 치거나 색칠을 한 뒤 각 열의 가장 위의 행에 있는 셀에 O표를 한다. 할 일은 수십 가지로 확장될 수 있으므로 열 또한 수십 개가 될 수 있다. 행도 마찬가지이지만 개인의 행동 범위에 따른 시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열보다는 덜하다. 표를 보면 휴가때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높은 기회비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하고 나면 분명 그때 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할 걸, 하고 후회할 것이다.

     아울러 같은 행에 O표시를 해 놓은 일을 여유롭게 추진해 나가기 위해, 앞서 미처 끝내지 못한 '실천에 대한 제약이 적은 일'들이 방해를 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 실천에 대한 제약이 적은 일들은 특히 실천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과 장소에 바로바로 해치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물은 다 빨아먹자' 원칙이 있다. 늘어난 자율성은 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줄어든다. 휴가를 갔다가 다시 오면, 멋진 사람들이 모인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 나를 만나러 온 그녀가 떠나면 자율성은 줄어든다. 자율성이 줄어들면 표에서 나의 위치는 보다 위에 있는 행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에 따라 실현 불가능한 영역(빨간 색으로 셀을 칠한 영역)은 점점 많아진다.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밀도 있게 계획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내가 만든 표가 급작스럽게 생각해낸 거라 아직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몇 개 있다. 앞에서 말한 자율성은 주위에 상관, 선임이 몇명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여행을 갔을 때에는 자율성이 분명 높아지지만 그 자율성은 어디까지나 특정 분야에 대한 자율성이다. 즉 각각의 표가 개인의 복수 개의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조금 더 연구해 보면 도식으로 표현하여 계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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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추웠던 12월 5일, 우리 동네 치킨집에서 나와 엄마와 이모 그리고 이모부가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 엄마와 이모는 사는 얘기를 하고 나와 이모부는 또 다른 얘기를 했다. 대학교수이신 이모부에게 진로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2시간 동안 이렇게 몰입되어서 상담하고 토론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모부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 '진짜 사회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내게 하나하나 짜릿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대화에서 오고 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메모해 놓고 계속 들춰볼 감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한가롭게 메모하면서 들을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교회에 가러 지하철 7호선을 타는 그 30분 동안 어제 이모부와 내가 나눈 말들을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흐지부지하게 잊어버릴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마들역에서부터 청담역까지 열차가 달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쉼없이 날림 글씨로 수첩을 채워 나갔다. 이모부와의 대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사회 인식과 허무맹랑한 꿈을 마치 헐렁해진 너트를 스패너로 꽉 조이는 것처럼 정확한 위치로 고정시켜 주었다. 


     아래 내용은 기존의 나의 의견 혹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과 그에 대한 이모부의 대답이다. ★는 대답을 듣고 나서 바로 찌릿 하고 떠오른 내 생각이다. 


    Q.
    인터넷을 이용한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에 전자정부와 정보통신 관련 법제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겐 네이버가 딱인데요?

    A. 네이버라는 회사와 네이버의 사업 영역 그리고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내가 네이버의 직원으로서 소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Q. 사실 전 네이버에 들어가서 기존의 네이버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업 분야를 새로 제시하고 그를 위해 기업 외의 기관과의 협력과 조정 업무를 하고 싶었어요. 정보산업공학과는 제2전공에 불과하니까요. 제1전공을 살리면서 제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만지려면 네이버가 딱인데..

    A.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다음 5년 정도가 되면 내 창의적인 생각으로 신규 사업분야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과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현실을 하나도 모르는 유치하고 naive한 공상이다.

    대학생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러이렇게 해서 언제 뭐가 되면 그때 뭐를 할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는 그것의 실현가능성은 무시된 채 자신도 모르게 그 말대로 계획하게 된다. 사실 그 계획은 소설에 불과한데 말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진로에 대해서만큼은 나의 능력을 믿기보다 반드시 지금 이 사회를 잘 아는 어른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검토를 받아야 하겠다. 


    Q. 교수가 되면 대학교 안에 갇혀있게 되지 않을까요? 창의성과 재미가 없는 직업 같아요.


    A. 교수가 되면 네이버는 물론이고 수많은 IT벤처기업과 정부기관을 클라이언트로 받아 프로젝트 수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엄청난 경쟁이 따르겠지만 회사에서의 경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덜할 것이다. 교수의 위치에 서면 조교들이 데이터 수집을 비롯한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내가 그 집단의 리더로서 집단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평소 꿈꾸어 온 산업계의 큰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내는 주동자가 된다. 


    Q.
    전 돈을 빨리 벌고 싶은데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면 월급이 제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할 거에요.


    A.  꼭 대기업에 가야만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받는 전문직종에는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연구원, 정치인 그리고 교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기업 조직의 월급과 보너스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Q.
    근데 교수가 되려면 석사, 박사를 한국이나 외국에서 아무튼 무조건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돈이 계속 나가잖아요?


    빨리 대졸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건 바로 그 우려 때문이에요.


    A.석사과정부터는 학부와 전혀 다른 학문 활동을 하게 된다. 학부 때는 나의 output이 없거나 있더라도 습작(習作) 혹은 학점을 따기 위한 과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신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고 대신 내가 수업을 듣고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input이 output을 월등히 앞지르는 시기이다. 하지만 석사 때부터는 앞서간 교수의 도움과 그와의 조력자 관계를 통해 실제로 학계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함으로써 output에 대한 대가를 받기 시작한다. 대가는 단순한 돈뿐만 아니라 유학이나 포럼 등을 위한 지원금, 장학금 등의 특정 명목의 돈일 수도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 의논하며 연구할 기회와 인맥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한 푼도 내 돈을 받지 않고 석사·박사 과정을 마칠 수가 있는 것이니, 석사·박사 때 돈을 어떻게 낼까 막연히 고민하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인 대졸신입사원을 선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보너스로 중간 중간 이모부께서 해 주신 말들 


     대기업 사원의 경쟁은 파이 나누어먹기이지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가 아니다. 파이 나누어먹기는 지적 능력보다는 전술과 타이밍, 편가르기와 권모술수에 능해야 잘 할 수 있다. 나같이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린 사람에게는 파이 나누어먹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착하게 성공하는 법, 남을 짓밟지 않고도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노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한 비경쟁적인 정신노동을 통해 직업활동을 하는 직종 중 가장 좋은 것이 교수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경쟁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내가 세운 목표와 나 사이의 경쟁'이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는 등의 '실행'을 하기에 앞서 내가 이렇게 진로를 정하면 마음 편히 한 단계씩 차근차근 해 나가도 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명확히 해야 한다.


    ★ 큰 그림은 이 세상의 실제 모습에서 알 수 있는 요구사항, 실현 가능한 일들의 목록 그리고 어떤 경로로 가면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발전 단계 구성도(테크트리)를 담고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연구에 100% 힘을 쏟을 수가 없다. 큰 그림이 명확해야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이 생긴다. (이모부는 대학교에 들어온 다음 사법고시/교수 두 가지의 10년치 진로를 미리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여 사법고시에 떨어진 후 바로 교수의 길로 가셨다. 이미 닦아놓은 길을 가기 때문에 그냥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조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었다.) 


     2시간 동안의 쉼없는 대화 동안 난 이모부의 중학교 때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진로와 직업에 대한 인생길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이모부가 몇살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와 나의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날의 대화를 통해 배운 건 내게 운명처럼 정해진 진로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맞는 진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정할 수 있느냐였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요소였다.  


     대학가 술집이나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못 나왔던 얘기를 동네 치킨집에서 했다. 얘기가 끝나고 이모부 아들(나의 8촌이다) 장난감 글록 소총을 고쳐준 뒤 엄마와 나는 나중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5분 거리의 단지 중앙도로는 엄청나게 추웠지만 마음은 극적인 흥분으로 뜨거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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