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영역에서 예술가가 살고 있지 않는 지역, 작가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타지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 감정은 으레 나타나는 화풍이요 악풍 중 하나다. 그러한 동경과 선망은 수 세기에 걸쳐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전세계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기 때문에 21세기의 예술매체인 레코드에도 그 정서는 어김없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 동경(憧憬)의 정서를 깊이 머금은 4편의 앨범을 소개해 볼까 한다.
1. MOCCA - FRIENDS (인도네시아 → 네덜란드)
꼭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모카(MOCCA)의 보컬 아리나(Arina)는 실제로 자카르타의 이름난 부자집 딸로 알려져 있고, 다른 밴드 멤버들도 인도네시아에서는 꽤 넉넉한 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일제시대의 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풍을 좇았던 것처럼 여유로운 MOCCA는 유럽풍을 따라가게 되었다. 통기타지만 The Cardigans의 기타팝에 가까운 사운드를 뒤에서 받쳐주며 영어로 된 가사를 나긋나긋하게 부르는 MOCCA, 그 가사 속에는 부유하고 안락한 집에 사는 소녀의 이미지가 녹아들어가 있다. 한없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Happy!) 집 안의 개와 운동을 하거나(Buddy Zeus) 동네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My Only One).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이고 안락한 가사는 네덜란드와 스웨덴 쪽의 소규모 팝/락 밴드에서 많이 들어볼 수 있다. 스웨덴의 Acid House Kings가 대표적이다.
익숙한 유럽풍은 한국에서도 먹혔고 그에 따라 MOCCA는 GMF에 나오게 되었으며 페퍼톤스와 함께 내한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분명 한국의 20대 여성층에게 제대로 먹히는 음악이다.
2. The Trendy Eastern TOKYO (미국 → 일본)
미국의 High Note Records라는 유명한 재즈 레이블이 라운지 음악도 같이 내면서 유명한 세계도시의 느낌을 담아낸 앨범이 The Trendy Eastern이다. 도쿄 말고도 홍콩을 주제로 한 앨범도 있다. 역시 서양인, 특히 미국인은 동양 하면 제일 먼저 일본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일본 하면 당연히 등장하는 코토와 샤미센(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를 보면 항상 stereotype처럼 나온다)은 여기서도 빠른 비트와 어우러져 세련됨을 자랑한다. 비록 내가 이 앨범을 직접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한 곡은 들어봤는데 역시나 예상과 같았다.
3. Serengeti - Afro Afro (한국 → 탄자니아)
한국의 인디에 머물러 있던 세렝게티는 이 앨범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방송에도 출연하고 굵직한 음악 축제에도 나오기 시작하여 이제는 꽤나 알려진 실력파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윈디시티가 레게를 추종할 때 세렝게티는 Funk를 기반으로 한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윈디시티와 세렝게티의 음악 성향은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그 사운드는 언제나 아프리카의 느낌을 살리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였다. 동물이 실사로 큼직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앨범재킷도 그렇고, 팀명도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아니던가.
4. Paris Match - Quattro (일본 → 이탈리아)
애시드 재즈 그룹 파리스 매치의 4집 "Quattro"는 다른 앨범에 비해 일본 도시의 느낌이 덜하다. 꼭 앨범 표지가 이탈리아의 지중해변을 그리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4집은 다른 앨범에 비해 빅밴드의 비중이 매우 큰 앨범이다. (Summer Breeze의 네덜란드 현지촬영 빅밴드 버전을 YouTube에서 검색해 보길 바란다) 트럼펫과 색소폰은 유럽의 정서를 앞에 내세우고, 다른 파리스 매치의 곡들이 보여주는 하몬드 오르간이나 기타 오르간 계열 신디사이저는 쏙 숨어들었다. (이 오르간 소리가 일본 도시의 느낌을 살려준다고 생각한다. 6집 After Six를 들어보라)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나는 늦은 여름 밤 지중해변을 홀로 산책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동경이 반드시 모방을 낳지는 않는다. 문화적 주체성이 없다고 비판받을 것도 아니다. 동경은 낯선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이며, 그것이 음악으로 나타났을 때에는 잠시 틀에 박힌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환상의 묘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왜 전세계의 수많은 음악과 아티스트와 앨범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한국을 동경하는 앨범을 집어낼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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