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만 읽거나, 이 아티스트의 실제 모습을 보지 않은 채 앨범을 사서 듣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디어클라우드'를 조용한 음악만 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침울한 밴드로 오해하기가 쉽다. 실제로 디어클라우드가 언론을 타고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는 단순히 슈게이징 밴드로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2집 Grey의 첫곡 'Siam'을 듣고 그 슈게이징이 이런 음악이구나라고 느낀 후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던 디어클라우드의 이미지는 너무나 하나로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그러한 선입견과 오해를 모두 풀고 어두움과 밝음, 슈게이징과 모던락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었다. 어두운 줄만 알았던 디어클라우드는 너무나도 밝고 충분히 대중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룹이었다. 공중파 미니시리즈의 OST처럼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이 아름다운 음악이 왜 세상에 많이 알려질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본 공연은 6시에서 10분 늦게 시작했지만 모두들 5시 30분까지 도착했다. 티켓팅 부스 옆에는 대학교 과제를 위해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나를 위해 사물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스탠딩 공연을 편하게 제대로 즐기라는 배려인가보다. 공연이 열렸던 상상마당은 홍대에 있는 라이브클럽 쌤보다 훨씬 조명이 밝아서 사진 찍기가 아주 좋았다. 덕분에 똑딱이 카메라로도 흔들리지 않는 멋진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실제로 쌤에 있을 때보다 관객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듯했다. 이날 상상마당 라이브홀의 관객은 스탠딩 공간의 2/3이 꽉 찼으니 200명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커플 위주의 관객이 많이 보여서 혼자 리뷰 쓰러 간 나로서는 적잖이 외로움을 탔다. 나중에 디어클라우드 공연 보러 가실 때는 꼭 연인 손을 잡고 가기를 바란다. 가면 깔끔하고 달콤한 음악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어봤는데 대다수의 관객이 음악을 안 듣고 온 상태였지만, 1부가 끝나자 다들 기분이 좋아져서 공연장에 데려온 남자친구에게 고마운 얼굴들이었다.
2집의 첫곡 'Siam'의 전주를 크게 틀어놓아 웅장한 등장음악을 만들어 놓고 디어클라우드 분들이 하나둘씩 들어오셨다. 거대한 등장 뒤에는 곧 극도의 잔잔함이 찾아와 초반부터 관객들의 숨을 멎게 하였다. 특히 첫곡 'Siam'과 두번째 곡 '비밀'에서 크고 강한 기타 이펙터 효과음이 하늘만큼 넓은 공간감을 창조해 주었다. 총 8곡이었던 1부에는 적극적으로 무대 뒤편의 LCD 화면에 배경 영상을 틀어놓아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저번 6월에 기말고사가 끝나고 페퍼톤스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곡의 가사와 분위기에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영상에 반하곤 했는데, 이번에 그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보컬을 맡은 나인은 '오미희의 가요응접실' 같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첫 멘트를 시작했다. 첫곡 'Siam'은 소울메이트를 위한 노래라면서 '여러분들은 주위에 소울메이트 있나요? 없어요? 여기 있잖아요.' '자,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 다시 음악 들려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여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냈다. 공연 내내 나인은 큰언니, 큰누나처럼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붙들어 놓았다. 멘트 뒤에 이어진 브릿팝 'Chasing Cars'는 Snow Patrol의 원곡이 갖는 흐드러지는 느낌을 잘 살려주었는데, 디어클라우드의 음악 방향과도 일치하는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이어진 어쿠스틱 2곡은 커플들이 가장 좋아한 순서였다. 우선 브러시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 2대 그리고 잔잔한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나를 안아'가 들려올 때에는 모두 살랑거리는 멜로디에 흠뻑 젖었고, 뒤이은 '거짓말'에서는 깔끔하고 도시적인 8분의 6박자 어쿠스틱 음색을 선사해 주었다. '거짓말'은 마이앤트메리의 '4시 20분'이나 '반지를 빼면서'를 생각하게 만드는데, 여자 보컬만이 담을 수 있는 담담함이 훨씬 더 부드럽게 다가왔다. 따뜻한 봄날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구름의 느낌이다. 1부 마지막 곡인 '늦은 혼잣말' 역시 비슷한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렇게 1부가 끝났다. 조용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의 부드럽게 흐르는 곡 순서가 좋았고, 무엇보다 자칫 어두운 기색을 띨 수 있는 음악을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불러준 나인이 좋은 공연에 또 한 번 기여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디어클라우드가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관객을 보며 '1부 잘 보셨어요?' 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UCC 형태의 영상은 나에게 신선한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벤트는 디어클라우드의 드러머 광식의 혈액형을 문자로 먼저 보내준 3명에게 디어클라우드 사진이 담긴 싸인 CD를 주는 것이었는데, 동영상 안에 나온 '별 도움이 안 되는' 힌트가 재미있었다. '광식이는 곱슬머리에 외동아들이랍니다~' 이런 종류의 힌트였다.
2부 초반에 기억에 남는 곡은 '같은 사람'이었다. 나인은 고음이 많은 이 곡을 힘있고 큰 목소리로 소화해주었고, 듣는 이를 몰입하게 하는 정박의 드럼 속에서 용린의 기타 리프와 솔로는 더욱 빛났다. 이쯤 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미 영혼을 내어 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디어클라우드는 자칫 같은 종류의 음악에 지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절묘하게 'Shoot the Runner'와 'Hush'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탠딩 공연장을 빌려놓았는데 언제 방방 뛰나, 하고 생각하던 이들은 이때 아주 열심히 뛰었다. 디어클라우드의 그 깔끔하고 차분한 모습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아티스트의 색다른 모습이 가져오는 희열이 무엇인지 알았다.
스탠딩으로 관객을 띄워놓은 다음 디어클라우드는 다시 원래의 들판으로 하강하여 다시 한 번 구름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넌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와 'Daydream'으로 아쉽거나 어색하지 않고 깔끔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힌 것도 이번 공연의 인상적인 면모 중 하나였다. 그렇게 부드럽게 '나에게만 너를 말해주기를'로 공연을 마치고 앵콜곡 3곡을 한 뒤 마지막은 '얼음요새'의 반복적인 코드와 풍부한 사운드로 관객을 하늘 위로 올려보냈다.
디어클라우드의 음악은 앨범이나 MP3로만 들으면 조용함, 차분함 등의 감정밖에 느낄 수 없다. 특히 헤드폰을 통해서 혼자 듣는 음악이라면 더욱 그렇다. 디어클라우드의 혼잣말하는 듯한 가사와 사색하는 듯한 음악이 라이브 공연장에서 하늘처럼 드넓은 공간감을 갖고 거대한 구름과 같은 울림을 가질 때 음악의 색깔이 얼마나 선명해지는지는 직접 라이브로 보아야만 안다. 공연장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메아리치거나 공명하는 소리는 디어클라우드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평소 기본 코드를 가지고 반복하며 듣는 이를 몰입시키는 음악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이번 공연을 계기로 몰입의 방법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큰 기쁨이 된 것 같다.
리뷰어로서 리포트 패드와 펜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나의 고정적인 모습이 된 이후부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무대에 선 이에게 순수한 눈빛을 보내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대에 선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모습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관객의 눈빛이 필요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펜과 리포트 패드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무대 위의 사람은 의심의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쓸 것이다. 디어클라우드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연장을 떠났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나는 이렇게 강의를 들으며 필기하는 듯이 음악을 듣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나쁜 점이 더 많이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점을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은 그들을 깊게 알아가면서 더욱 발전한다.
2008. 11. 23 6PM 상상마당 Live Hall
Part 1
1. Siam
2. 비밀
3. 부탁해
4. 너에겐 위로가 되지 않을
5. Chasing Cars (Snow Patrol)
6. 나를 안아
7. 거짓말
8. 늦은 혼잣말
Part 2
9. Lip
10. 같은 사람
11. Shoot the Runner (Kasabian)
12. Hush (Kula Shaker)
13. 넌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
14. Daydream
15. 나에게만 너를 말해주기를
Encore
16. La La La Song
17. Never Ending
18. 얼음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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