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일을 잘하고 있을 때 더 잘해야 한다, 혹은 지금은 잘하지만 언제 실수를 낼지 모른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싫어했다. 일을 어느 정도까지 하면 잘 하는 것인가라는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이 불분명한 기대치 혹은 미래에 대한 주의깊지 못한 추측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사람의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는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므로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척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평가하는 사람 여러명의 종합적인 의견을 수렴했을 때 그 결과물은 각각의 상대적 평가 중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군에서는 그러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군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절대적인 기준이란 미터기가 아니고 '궤도'다. 궤도 위에 올려놓여 있기만 한다면 정상으로 판단되고, 그보다 더 좋아도 상관없지만 절대로 그보다 나빠서는 안 된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더 잘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여유있게 지내도 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절대적인 최소 기준선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절대적 기준을 바탕으로 한 조직의 모습이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통해 판단하되 결과 이후의 모든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궤도를 벗어난 이들에게는 호된 질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직 구성원들을 판단하게 되면 심리적 요소에 의해 집단의 분위기를 요동치게 하지 못하게 된다. 정상적이고 평온한가 아니면 이상하고 불안한가, 이 두 가지로 명확한 이분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단의 분위기라는 것을 경기 호황이나 침체의 곡선처럼 생각하느냐 정상과 이상으로 나누어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추측이 사라진다는 점은 이분법의 크나큰 장점이다.

  이분법은 공산주의에 어울리는 평가 척도이다. 아무리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더라도 받는 월급과 식량은 평등하다. 남들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절대적 기준에 미달한 것이므로 회의를 통해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다. 그런데 군은 공산주의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같고 같은 종류의 물품을 사용하며 집단으로 일한다. 청소는 모두가 깨끗이 해야 하고 경례와 같은 기본적인 예절도 모두에게 요구된다. 물자가 남으면 좋은 것이고 부족하면 큰일난다. 일을 다 끝낸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며 그냥 '정상'일 뿐이다. 비교의 심리가 크나큰 죄악으로 느껴지는 체제 속에서 군은 존재한다.

  한편 자본주의의 상징인 주식시장은 그와 다르다. 호황과 침체는 개인들의 상황이 모두 다르고, 개인들이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여 우열을 끊임없이 바꾸어 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것을 찾고 나쁜 것을 쫓아내려 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기대하게 되거나 혹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하게 된다. 개인을 보살펴줄 조직의 규칙이나 제도가 군만큼 온몸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과연 군 안에서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쁜지를 감히 규정할 수 있을까? 한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닌지는 얼마나 쉽게 정의할 수 있는가. 궤도를 벗어난 롤러코스터는 조치 후 다시 궤도에 올려놓으면 되고, 이미 궤도를 돌고 있는 것들은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상관없이 궤도 위에 있다는 것만을 유지하면 되게끔 현상 유지를 추구하면 된다.

  나아가 정상과 이상의 이분법을 통해 조직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그에 따라 정상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치하는 부지런함은 구성원들의 평가자들에게 필히 요구되는 자질이다. 지속적인 확인과 조치로 현 상황을 항상 기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조금만 실수가 생기기 시작해도 곧 큰 문제의 상황, 즉 정상이 아닌 이상에 직면하게 된다. 상황이 점차 나빠진다 생각하지 않고 조금만 나빠지든 많이 나빠지든 두 경우 다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개념 틀이 평가자들에게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동안 가만히 있었으니 이제 애들을 잡아보자'와 같은 험악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평가자들은 평가의 대상이 되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기대와 추측을 금하고, 조직 구성원 각각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책무 중 정상 궤도를 벗어난 것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여 불안감을 없애야 전체적인 조직이 순탄하게 움직일 수가 있다. 위의 사항을 따르지 못하면 그 때부터 조직 안의 절대적 기준은 희미해지고 조직은 너무 풀어지거나 너무 험악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비교하지 않고 모두가 다 같이 잘 하자는 이상을 좇아야 한다.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기준 이상을 달성해서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성취의 연속이 바로 군 생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정상과 이상의 이분법이 깔려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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