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에 사람의 심리는 예외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익숙한 동네 앞 술집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나의 마음과 듣도보도 못한 도시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의 부름에 달려나갔을 때 내 마음이 편한 정도는 매우 다르다. 그런데 마음이 편한 정도는 사람이 다양한 화제를 꺼내고 풍부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데이트를 할 때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나 직장 상사들과 회식을 할 때나 어느 종류의 만남이든 만남의 성격은 사람 개인이 환경의 영향을 받은 심리와 그에 따른 대화의 폭에 따라 결정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만나는가, 즉 시간의 요소는 만남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대화를 하는 사람이 만남에 참여할 시간이 넉넉한가 촉박한가, 압축적인가 지루한가, 낮인가 밤인가 등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남녀가 데이트를 주제로 만났는데 둘 다 1시간 뒤에 각각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예정해 놓았다면 둘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정보교환 정도에 그칠 것이다. 여유로움을 잃어서 가장 달성하기 쉽고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정보교환이라는 목적에만 치중하도록 두 사람의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의지만으로는 그 마음을 쉽게 되돌릴 수 없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만나기로 예정해 놓았다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해져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카페나 레스토랑이나 술집에서 만나는가, 관광지나 공원이나 강변에서 같이 있는가 등의 장소의 요소는 시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만남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고, 그만큼 장소를 제안한 사람이 적절한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책임도 높아진다. 시간은 만남 외의 개인들의 일정에 제약을 받지만 장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같이 모여서 어떤 특정한 활동을 하는지를 장소가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장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놀이공원에 가면 서로가 즐겁게 놀면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이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고백장소로 가면 고백이 목적이 된다. 언제나 만남을 제안한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할지를 먼저 생각해 본 다음 그 이야기를 늘어놓을 심리적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장소를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전혀 종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감정을 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접대문화, 다도, 모임공간과 같은 인공물이 등장하여 환경을 제어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받아온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경의 요소를 만남의 목적과 사람들이 할 이야기와 행동을 예견하여 설정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실패했을 경우 관계의 증진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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