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24시간 중에 버려지는 시간들은 구석구석 숨어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시간들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해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들여다보면 우리의 하루에서 비생산적으로 지나가 버리고 마는 시간들이 눈에 보인다. 이러한 시간들은 우리가 일, 약속 등으로 이름 붙이는 일정 시간 동안의 활동 사이에 끼어 있어서 웬만해서는 일반 사람들이 그냥 묵인하거나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미리 그러한 시간들이 어떤 상황에 생기는지를 알고 있으면 마음 속은 이미 그 시간을 쓰지 말자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버려지는 시간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즉 버려지는 시간들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해가거나, 버려지는 시간 중에 다른 의미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휴가를 나오기 전에 이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내가 평소의 삶에서 어떤 경우에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는가를 오직 기억의 반추에 의지하여 글로 적었다. 이건 내 생활 반경에 한정되어 나온 목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버려지는 시간들은 물론 나와 다를 수 있다.
- 컴퓨터의 부팅시간
- CPU의 처리시간
- 다음 지하철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시간(가끔씩)
- 정리 안 된 아수라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는 시간
- 목적의식 없이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네이버 안의 링크로 들어가서 멍하니 보고 있는 시간
- 파일 다운로드가 끝나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시간
-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마냥 기다리는 시간
- 번화가에서 목적지를 못 찾고 헤매는 시간
- 비효율적인 늦잠을 자는 시간
- 계획에 차질이 생겨 이 순간에 이 물건이 필요한데 이 물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붕 뜨는 시간
- 모임에서 대화 주제가 고갈되어 말없이 서로 먹기만 하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관심없던 TV의 뮤직비디오나 남들의 행동에 관심이 가는 시간
- DVD를 보려 하는데 케이블 연결이 잘못되어 그걸 고치는 시간
- 은행창구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시간
- 물건 사는 곳에서 판매자와 대화하는 시간
- 삐끼한테 잡히는 시간
- 막다른 길을 만나 되돌아가는 시간
- 한꺼번에 하면 될 일을 하나씩 하는 시간
- 아예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
- 계획을 다시 한번 다른 종이에 옮겨적는 시간
- 뜻밖의 전화를 받고 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자료를 찾아내는 시간
- 로그아웃했다가 다시 로그인하는 시간
- 보일러가 온수를 틀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시간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버려지는 시간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그 시간에 대한 묘사를 해주면 그 시간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바꾸기 위한 해결책을 그 묘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해결책의 발견은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별로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건 목록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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