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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리의 정기공연도 끝나고, 지금의 11월 중순은 마음 편히 나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차근차근 겨울을 맞이하는 시기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다니지 않으면서 나의 공부와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기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사실 일년이 끝나고 연말에 자신이 한 해 동안 한 일을 되새겨보았을 때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한 일이 없으면 섭섭하고 허전하다. 나는 그런 허전함을 옛날에 느껴보았기 때문에 올해에는 느끼고 싶지 않다. 꽉 찬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일년을 보내면서 항상 하루하루를 꽉 차게 모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꽉 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수시로 점검하면서 일분 일초를 밀도 있게 보내야 한다.


  프랭클린 플래너에는 Prioritized Daily Task List가 있다. 삶을 밀도 있게 보내고 있는지는 이곳에 써놓은 글씨의 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글씨를 많이 써놓았다는 것은 하루 중의 Task를 많이 계획했다는 표시다. 하지만 그 Task를 써놓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밀도 있는 글씨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일을 최대한 자잘하게 쪼개서 한 Task의 소요시간이 10분을 넘지 않는 경우에는 Task의 실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면서도 하루의 Task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마치 하루에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지며 실제로도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이 방법은 프랭클린 플래너 가이드가 말하는 Specific과 Realistic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늘 12페이지짜리 소논문을 최종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 소논문의 4장의 1절과 2절과 3절을 인터넷 자료 조사와 도서관 논문 조사를 통해서 보완하면 소논문 쓰기가 마무리된다고 하자. 이때 Task List에 '소논문 최종 수정'이라고 간단하게 써놓으면 간략하게 기재하는 일이야 편하겠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 일은 잘 실천하지 못하고 중도에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한 Task를 끝내는 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해도 그 Task를 건드리기 싫어진다. 우리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통해 일의 즐거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앞의 체크포인트를 던져놓고 열심히 달려가 그 체크포인트를 획득하는 즐거움으로 하루의 레이스를 진행해야 한다. 체크포인트가 500m 앞에 있으면 조금만 달리면 된다. 하지만 체크포인트가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있다면 그 체크포인트까지 가려는 의욕이 상당히 떨어진다. 따라서 일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소논문 최종 수정'은 몇개의 세부적인 일로 쪼갤 필요가 있다. '4장 참고자료 목록 작성' '중앙도서관 4장 1절 자료조사' '소논문 4장 1절 작성' '4장 2절' '4장 3절' 이런 식으로 쪼개면 조금 더 일을 차근차근 열심히 하게 되어 결국 목표 달성이 쉬워진다. 목표 달성은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삶을 밀도 있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매우 많다. 하지만 밀도 있는 삶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들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나는 프랭클린 플래너 사용자로서 나와 친구들을 위해 개인적인 노하우를 생각날 때마다 블로그에 적어놓을 뿐이다. 아직 나는 삶을 움직이는 방법을 조리 있게 강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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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진로간담회는 나에게 많은 자신감과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외무고시라는 아직은 막연한 시험, 그리고 외무고시 합격한 외교통상부 직원이라는 만나보지 못한 낯선 사람을 오늘 직접 대면하였기 때문이다. 94학번인 김동준 사무관은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여 4년간 공부한 뒤 외무고시에 합격하였다. 간략한 자기 소개와 함께 이어진 두서 없는 간담회는 준비성의 부족으로 학생들의 반감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과 선배 아저씨의 딱딱하지 않은 간담회의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었다. 진로간담회는 대학생들에게 정보와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는 참 좋은 학부대학 주최의 행사이다.

  사무관 아저씨의 약 40분에 걸친 경험담과 조언이 끝나고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이렇게 가장 먼저 질문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이 점이 가장 궁금했다. '외무고시 외에도 외교통상부 특별전형이 있는데, 이 특별전형으로 합격한 사람은 외무고시 합격자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직급 상승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오늘 내가 이 점에 대해 질문한 결과 선배님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아직은 고시가 외교부에 들어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외교부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부는 앞으로 공무원 채용 방법을 더욱 다양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특별전형도 참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채용을 위해 특정 분야나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도 했는데, 외무고시 말고 외교통상부 특별전형의 경우 전형이 매우 다양해서 자기에게 맞는 전형을 찾아 오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믿을 수 있는 수준에서 말한 그 신중한 답변은 프랑스어를 계속 하면서 앞으로 네덜란드어와 체코어로 멋지게 단장하고픈 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설레게 했다.


 사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고시원으로 들어가 수능과도 같은 그런 공부를 반복하면서 고시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 공무원 채용 시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완벽한 객관성을 추구하다 보니 그러한 문제내기식 스타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지만, 난 정말이지 그러한 문제 유형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수능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다시 떠올린다면 외무고시는 아직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나의 막연한 거부감은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외무고시도 참 할 만한 시험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선배님의 조언 중 기억나는 것은 신문 기사를 읽는 방법에 관한 한마디였다. 면접 질문에 답하기 위한 생각에 관련하여 신문 기사를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품고 글을 읽으면, 신문을 통해 사실을 습득하자마자 나는 사실의 조각들을 뒤섞어 의견을 만들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보자' 라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글을 읽으면 말 그대로 오늘 신문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만 기계적으로 외우고 만다. 평소에 내가 신문 기사를 읽는 방법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외교관, 아직 그 꿈은 버릴 수 없다. 오늘 간담회를 하신 선배님 또한 어렸을 적에 외교관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초등학교 발표 시간에 손을 들며 큰 소리로 외치셨다던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렸을 적의 내가 생각났다. 7살 때 아빠가 항상 '넌 외교관 타입이다' 라고 다독여주시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어본다.


2007.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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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망각

칼럼/관계 2008. 7. 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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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그렇게 많이 서로를 화나게 하고 섭섭하게 하지만, 언제나 흘러가는 시간과 그에 따른 '망각' 때문에 사람과 사람은 다시 친해진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우리가 흔히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하는 개념을 달리 풀이하면 '망각에 따른 인간관계의 회복과 증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그 사람 앞에 가까이 가서 손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든 그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말하든 갖가지의 대면을 해야 한다.

  나의 모습이 내 앞의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걱정하지 말라. 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그 사람을 익숙하고 편안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느껴지는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행동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많은 신경을 쓰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순간 신경을 쓸지는 몰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망각'때문에 인간관계 구축에서의 사소한 실수는 모두 용서된다. 나는 상대가 그 순간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을 쓸 필요 없이 편하게 다가가면 된다. 지속적으로 편하게 다가가다 보면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특별하게 어필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특별한 어필이 쌓이고 쌓이면 사랑과 우정이 된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불알친구' 들과 '영원불멸의 커플'들이 항상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한푼의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그들은 계속 부딪치면서 싸웠을 것이다. 단 사소한 문제들로 말이다. 커다란 문제로 서로 싸우는 경우는 어떤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인간관계에 해가 되는 행동을 저질렀음을 필수 전제로 삼는다. 사소한 문제는 대부분 의도적이지 않게 터진다.

 사소한 문제가 항상 터지는 모습은 처음 계곡으로 나가 뜰채로 미꾸라지를 잡는 도시 소년의 풍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소년은 처음부터 대뜸 미꾸라지를 잡아올릴 수 없다. 아직은 낯선 미꾸라지는 쉽게 잡히지 않고, 소년은 뜰채를 휘두르다가 미끄러운 계곡 바닥에서 휘청거려 흠뻑 몸을 적시기도 한다. 그래도 별 탈 없이 결국에는 미꾸라지를 뜰채로 들어올린다. 사소한 문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도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일단 다가가고 보라. 좋은 모습만 기억하고 나쁜 모습은 금방 지워버리려는 인간의 당연한 속성은 사람과 사람을 분명히 이어줄 것이다. 사람이 절대로 쪼잔하게 모든 대인행동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지 않고 느긋하게 '망각'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때다.


2

  누구든 오늘날의 방대한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쉽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큰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자기 동네에 있는 여자라고 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혼하지 않는다. 대학에 처음 와 같은 반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같은 반에 있는 사람들과 모두 다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다른 과에 있고 다른 지역에 있으며 나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평소에 별로 만날 기회가 없더라도, 그 사람만의 두드러진 매력이 나 자신에게 각인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간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누구에게 관심을 주어야 하는지는 조금은 애석하고 냉혹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는, 혹은 자신이 살다가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단점을 보고 나에 대한 관심을 끊고 돌아서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모든 사람의 서로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운 시대에서 그러한 걱정과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내가 만나는 동기 친구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친구와 만나지 말기로 마음먹은 친구를 속으로 구별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보다 나의 매력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하여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그 결과 나의 1학년 1학기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굳어졌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다 보니 나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나를 놓아주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이 함께 보여지는 사람이 정상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며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데, 나는 완벽하지도 않은 화법과 처세술로 나를 꾸몄다.


 사실 새내기 시절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걱정을 한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2학년이 되어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떻든 상관없이 결국에는 좋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술만 먹여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반 선배는 내 옆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친구를 몇 시간동안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결국 나에게는 두 번째 인상이 기억되었고 그 선배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끼리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살다 보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상대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호의를 표하는 등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첫인상으로 무관심 세 글자를 상대의 눈 안에 박아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장점은 단점에 우선하여 기억되고, 매력은 추태보다 우선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저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같이 시간을 보내며 부대끼기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절친한 친구와 예쁜 커플이 생겨나는 것이고, 이것이 긍정의 힘이다.


 좋은 모습이 더 오래 남고, 좋은 모습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주된 이미지로 각인된다는 사실은 참 기쁘고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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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콜곡 I Feel Good (James Brown)


연세춘추 2007년 11월 12일 - 양아름 기자


학내공연동행기- 'So What', 재즈로 호흡하다

  지난 9일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열린 '쏘왓'의 정기공연. 재즈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쏘~왓"이라는 관중의 익살스런 대답이 이어졌다. 이렇듯 공연은 관중과 공연가 간의 호흡이 척척 맞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성균관대학교 재즈동아리 '그루브'의 부회장 이혜선씨는 "왜 저렇게 잘하냐"며 애교 섞인 시샘을 표했다. 관중들의 박수는 음악에 따라 강약과 빠르기를 달리했고 적절한 순간에 환호성이 터졌다. 박수소리만 녹음해도 음악이 완성될 정도로 관객들도 공연가들과 함께 재즈를 연주했다.

  재즈라면 완벽해 보이는 이들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쏘왓의 무대는 빡빡하고 고된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 쏘왓의 동아리방 이웃사촌인 무선통신 동아리 '야라'의 최훈(화공,06)씨는 "밤낮 가리지 않고 연습하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른다. 이번 공연을 위해서는 매주 두 번 저녁에 모여 많은 악기들로 구성된 팀인 빅밴드 공연을 연습했다. 3~8명의 소수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캄보팀들은 개인적으로 시간을 맞춰 홍익대 앞 연습실에서 연습하기도 했다. 김현수(전기전자,06)씨는 "12시에 모여서 새벽까지 연습하고 귀가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같은 곡이라도 공연가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즈의 매력이다. 그래서 쏘왓 동아리원들은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곡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의논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나서는 악기는 악기대로, 보컬은 보컬대로 자유롭게 자신의 느낌을 가미한다. 이때 어떤 사람들과, 어떤 공간에서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음악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도 고려한다.

  자유로운 음악표현과는 달리 연습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재즈는 다른 음악과 달리 악기들이 서로 다투지 않으며 개성을 드러낸다. 색소폰이 독주를 하다가도 더블 베이스가 솔로로 나서고 이어 전체 악기가 화음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항상 자신만이 두드러질 수 없는 인생처럼, 솔로 연주와 합주가 번갈아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악기의 연습이 끝나길 기다려 연습할 때가 많다. 가끔은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쏘왓 동아리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나이나 학번에 따라 격식을 따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려준다.

  쏘왓의 연습은 학기 중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방학 때는 동아리원이 모두 '뮤직캠프'를 다녀온다. "연주만 하러 온 사람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반긴다"는 김현수씨의 말처럼 뮤직캠프는 동아리원의 친목도모를 위한 성격이 강하다. 이번 해에는 경기도 용평에서 3박 4일 합숙을 했다. 뮤직캠프에서는 재즈의 역사나 재즈 이론에 관해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직접 재즈 연주를 한다. 이때가 신입생에게는 처음 공연할 수 있는 기회다. 뮤직캠프에 참가했던 신예리(사회과학계열,07)씨는 "뮤직캠프 동안 속세를 떠난 기분이었다"며 그 시간이 천국같았다고 말한다. 공부나 일상 속 고민을 떠나 재즈만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이렇듯 열심히 연습하는 쏘왓 동아리원들이지만 이들은 매주 한 번 재즈를 감상하는 모임도 가진다. 쏘왓은 재즈 연주를 잘하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또 정기공연을 다채롭게 꾸미기 위해서 퍼포먼스도 준비한다. 정기공연에서는 『물랑루즈』의 영화음악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s」에 퍼포먼스를 곁들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과 편지를 전해주지만 여자는 요염하게 거절한다. 그러다가 결국 남자가 선물하는 반지를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퍼포먼스를 보고 관객들의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쏘왓의 1년 중 가장 큰 공연인 콘서트가 끝났다. 신들린 피아노 연주라는 찬사를 받았던 고두혁(전기전자,07)씨는 "연습이 끝나서 후련하다"면서 "다른 동아리원들이 연주하는 곡을 듣는 것도 재밌었다"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자리가 더 채워져가는 콘서트홀을 보며 재즈로 진정 호흡하고 있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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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갑을 도난당했다. 오늘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9시 20분에 백양관의 교수님 오피스에서 잠깐의 회의를 갖기까지의 1시간 20분 사이에 발생한 도난 사건은 나에게 충격의 원인이자 깨달음의 근원이었다. 원래 지갑이 도난당하면 나는 마구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나는 금방 침착해졌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던 중에 누군가 나의 지갑을 슬쩍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의 머리는 많은 사색으로 가득찼다. 물론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당황스럽고 슬프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다시 대책을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나는 평소에 매우 쪼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낙천적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아침에 교수님 오피스에서 회의를 가진 다음 나는 대강당으로 가서 채플 출석을 위해 지갑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내가 메고 다니는 에어워크 가방의 앞주머니가 텅 빈 채로 지퍼가 열려 있었다. 앞으로 3분 후면 대강당 입장이 끝나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쌍시옷 단어를 주문처럼 더듬어대며 당황하다 쿵쿵 뛰는 심장으로 결국 대강당의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첫째는 집에서 지갑을 안 가져온 상황이다. 오늘 아침에는 허둥지둥 나오다보니 지갑을 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고, 내가 지갑을 가방에 넣었다는 확실한 기억이 머리 속에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가정이 가능했다. 둘째는 걸어가면서 지갑을 떨어뜨린 상황이다. 하지만 몸을 요동치며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는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마지막 상황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상황이다. 처음엔 설마 내가 소매치기를 당했을까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결국 남은 선택지는 첫째 상황이라고 단정지었다.

  채플이 끝나고 곧바로 수업을 듣는 2시간 동안에도 나는 지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잊었다. 사실 오늘 밤에 영화 약속을 해 놓아서 지갑이 오늘 반드시 필요했지만, 수업이 3시에 끝나므로 7시에 만나기 전 4시간 동안 집에 가서 지갑을 찾고 다시 오면 되겠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지갑에 대한 근심은 내가 집 현관문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하기로 유보해놓았다. 일단은 수업을 열심히 듣자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 들어와 집 안에 내 지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갑에 대한 근심은 불필요하다. 쓸데없는 근심은 가지치기 하듯 없애야 한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그 낙관이 아무 생각 없는 비합리적인 낙관으로 변질되지 않는 한 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전화해본 결과 할머니께서는 내 방에 지갑을 못 찾으셨다고 말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내가 직접 집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희망은 남겨두었다. 이때 나는 친구와의 영화 약속은 취소했다. 일단 친구에게는 내 지갑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갑이 없으면 사람의 하루 일정을 바꿀 정도로 지갑은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귀중품은 괜히 귀중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귀중품은 한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의 범위를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품이다. 핸드폰, 지갑, 프랭클린 플래너, 드럼 스틱.. 나에게 귀중품은 이런 것들이다.

  결국 우리 반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나는 근심 속에 집으로 왔다. 지갑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물론 근심 속에 집으로 올 때부터 나는 정말로 집에 지갑이 없을 거란 가능성을 90% 정도 상정해 놓은 채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지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화가 치밀었고 소매치기가 원망스러웠다. 생계형 범죄의 희생양은 나 말고 이 세상 누군가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가 막상 일을 당해보니 당황스럽고 화날 수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나는 저소득층에 대한 혐오감과 재분배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완전 자유주의적 사상의 정점을 찔러 보았지만 이내 제정신을 찾았다.

  저녁이 되어 나는 자중하고 동사무소로 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아 왔다. 학생증과 은행 카드는 내일 재발급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사실 내 지갑에는 별 거 없다. 추억이 담긴 딱 한장 뿐인 사진, 누구나 마음껏 긁을 수 있는 신용 카드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 지갑이 비록 예전에 선물받은 지갑이지만 '구찌'라는 사실과 어제 친척에게 받은 돈이 그 지갑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지갑이 '구찌'인 게 다시금 그리워져서 그런지 명품과 관련해서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 나는 명품같은 건 들고 다니거나 걸치고 다니지 않기로 했다. 어떤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사람은 그의 생활방식에 대응하는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풋풋한 고등학생이 평소에 용돈을 모아서 아무 것도 사먹지 않다가 갑자기 명품 지갑을 사서 갖고 다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활방식과 소비행태는 비례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은 어리석다. 나와 같이 통학을 하는 대학생은 비싸 보이는 지갑이나 가방을 들고 다니기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도난 우려를 항상 마음에 품고 도시의 무서운 주위 사람들에게 수수하게 보여야 한다. 명품은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김기사를 부르는 어른들의 것이다. 시장에서 팔고 나 또한 그 상품을 살 돈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상품을 살 정당성이 나에게 완전히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학생이라면 상품으로 매력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학력이나 특기, 성격 등으로 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나의 지론으로 굳어졌다.

  오늘 지갑 없이 몇 시간을 시내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지갑이 사라진 후에는 일종의 안도감이 긴장감의 뒤를 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소유'의 정신을 일부 맛보는 순간인 듯했다. 잃어버린 지갑과 그 내용물을 찾으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어졌다. 내 돈 뺏어간 인간아, 그걸로 좋은 여관방 잡아서 잘 자거라. 소매치기범은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나는 크게 화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고 살았던 자신을 반성할 뿐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오늘의 깨달음을 소중히 간직한다.

2007. 11. 12.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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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미있게 푹 빠져 읽고 있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골드문트는 수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그에게 있어 성자와도 같은 나르치스의 손을 뿌리치고 방랑자의 생활을 하면서부터, 그의 순수함은 여자에 대한 집착과 충동적인 살인과 화려한 언변으로 퇴색되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점점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히 알아나가며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 그의 고민 중 하나가 지금 나의 고민과도 너무 비슷하여 써 본다.


성실을 지키기 위해 관능의 쾌락을 잃지 않았던 남편이나 가장이 있었으며, 자유와 위험을 잃을 염려로 가슴을 시들도록 내버려둔 안주자가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이 지상의 모든 존재에 관한 한 그와 같은 이원적 대립에 그 근본이 있는 것이다. 여자가 아니면 남자이고 떠돌이가 아니면 안주자며 이성적이 아니면 감정적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내뱉고, 남자이면서도 여자가 되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질서를 바라고, 충동적이면서도 정신적이 된다던가 하는 그런 이원적인 것을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가지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잃어야만 하는 희생이 있으며, 또한 그 한 가지는 다른 것만큼 중요하고도 열망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나는 충동적이면서도 굳은 정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그게 힘든지 모르겠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지난 1년간 나는 '나를 놓아주는 법을 찾아서..'라는 일종의 슬로건을 내걸고 스스로를 바꾸어 왔다. 지금은 지난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말수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이 가슴 속에서 들끓는 본능, 잠을 자기 전 마음껏 상상함으로써 펼쳐지는 그 달콤한 세계를 현실 속에 실천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내 안의 초자아가 나를 억누르는 걸까? 정말로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닌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사람들과 부딪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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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의 나를 완벽주의자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들여다보면 나의 모든 생활은 계획되고 계산되어 있다. 시간 일분을 버리지 않고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에서의 능률을 높여왔으며 의미가 있는 모임과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모임을 구분하여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인간적 유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나를 디자인해 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계산적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흔히 대학교 1학년생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나 직업적 성취의 정도는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데에 신경쓰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과 잘 어울리는 것에만 주력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완벽성에 과도한 신경을 써서인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잘 못 쓰는 나의 이기적인 이야기와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나는 집안에서도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이 누구의 생일이고, 오늘 나의 학교에서는 단체로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 등을 순간 까먹어 내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이스카우트 내에서 수련회에 관해 새로 변경된 일정을 나만 기억하지 못해서 수련회 첫날 집에서 자고 있던 나를 위해 80여명의 아이들이 20분간 기다려주었다가 결국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났던 경험이 있다. 지금의 나는 물론 그러한 유치한 실수는 하지 않지만, 아직도 초등학교 때의 어리석은 모습이 남아있는 기색을 내 스스로도 엿볼 수 있다. 교수님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일을 하라고 자신의 의도를 깔아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시면 나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할지에 대한 방법, 즉 내가 주도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에만 신경을 잘 쓰지 교수님의 의도는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까먹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중에 교수님께서 나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등의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건대 나는 나를 이해하는 데에는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필요 이하로 무능력하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흔히 우리가 '눈치'라고 하는 능력을 나는 정말로 결여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들과 계속 부딪치고 끊임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면서 눈치를 점점 쌓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서 나의 판단 착오로 사소한 실수를 범할 때가 자꾸 일어난다. 내가 아닌 남들은, 가족들을 포함한 모든 '나 아닌 사람들'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다고 해서 그것을 칭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나의 '나를 위한 완벽성'은 나에게만 득이 될 뿐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한 완벽성'을 결여할 경우 그러한 결핍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며 나는 그때그때 질책을 받는다.


     이제부터는 나의 완벽을 위한 노력이 다른 사람을 향하도록 나를 디자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완벽성은 나중에 슬슬 연구하기 시작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한 완벽성은 지금 당장 체득해야겠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나의 능력,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치'를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내 자신에 대한 경멸로 가득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나를 발전시켜왔는가? 가끔 이렇게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자살 테러 비행기에 의해 폭삭 주저앉듯이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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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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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연고전(고연전)이 어제 첫 경기를 시작했다. 잠실을 가득 메운 푸른 물결과 붉은 물결, 이 두 물결은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장관을 보여주었다. 예전에 신문이나 연세대학교 잡지 등에서 보아왔던 연고전의 풍경들이 바로 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귀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응원가,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고함치는 대규모의 학생 관중들, 경기의 긴박감에 온 정신을 집중한 표정, 주위의 친구들과 함께 맞추어 흔드는 손과 어깨와 몸, 모두가 귀로 눈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1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잠실야구장이 있다. 오늘 나는 그곳에서 동아리 사람들을 기다렸다. 주위에는 연대 사람들보다 고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다니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더욱 신선했고, 그 때문인지 고대 여자 아이들이 연대 친구들보다 더 이뻐 보이기도 했다. 내가 고대 학생들의 모습에서 참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너무 집단주의적이지 않은 기분좋은 단합이다. 파란색만을 유일한 공통 코드로 삼고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걸치고 등장하는 연대 학생들과는 달리, 고대 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은 크림슨 레드의 반팔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연대의 옷 색깔은 크게 3가지로 나뉘었다. 하늘색, 파란색, 남색, 이렇게 3가지로 나뉘었지만 고대의 경우 거의 모두가 크림슨 레드였고 극소수만 새빨간 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반이나 과별로 디자인한 티셔츠의 경우라도 색깔과 도안이 차분하게 통일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연세대도 반이나 과 티 디자인을 할 때 '크림슨 레드'처럼 조금 더 구체적인 색깔을 정하여 통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학교와 대한민국 민족 지도자가 세운 학교, 따라서 개인주의가 강한 학교와 집단주의가 강한 학교 사이의 차이는 아직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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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는 3개, 야구와 농구와 아이스하키였다. 잠실에서 했던 종목은 이중 야구와 농구였고, 아이스하키는 목동에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지만 연대가 야구와 농구에서 모두 졌다. 나는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농구 경기만 보았는데, 농구 경기는 고대의 센터와 외곽 슈터의 맹활약으로 고대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 팀은 초반에 너무 방심해서 고대와 14점 차이를 만들었다. 그 차이는 3쿼터 중반에 7점 차이까지 좁혀졌으나 결국 4쿼터에는 15점 차이로 다시 벌어졌다. 초반에 방심을 한 팀이 거의 지게 된다.

고대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전술을 4쿼터 내내 일관성 있게 유지했다. 공격을 할 때에는 선수 3명이 동시에 앞으로 나가서 그 3명끼리 빠른 패스를 했다. 패스를 받은 사람은 안정된 자세로 3점 슛을 했고 따라서 정확도가 높은 슛은 득점으로 이어졌다. 반면 우리 연대 선수들은 3점 슛을 하기 전에 자세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정확성이 조금 더 좋았다면 우리 연대도 충분히 승리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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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3쿼터 중반에서 점수차가 7점 차이까지 좁혀졌을 때 연대는 정말 열심히 '해야'와 '아리요'를 외쳤다. 그 전까지는 잇따른 선수들의 슛 실수로 관중들도 지치고 앞의 응원단도 지쳐 있었지만, 점수차가 점점 좁아지고 빠른 팀워크에 의한 멋진 슛이 잇따라 연대에서 터지면서 관중들은 다시 우르르 일어섰다. 연대 응원가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서운 맛이 없다고 흔히들 연대생들이 불만을 표시하는데, 나는 이번에 연대 응원가가 가진 독특한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느꼈다. 고대는 동작이 단순하고 소리 지르는 부분이 많아서 상대편을 압도하기가 참 편하다. 그러나 너무 단순하면 상대편이 그 응원에 익숙해진다. 우리 연대의 응원 동작은 매우 복잡하다. 정말 별의별 동작을 다 만들고 '응아일체'의 경우 관중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돌림노래 형식을 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동작들은 복잡하면 할수록 하나같이 더욱 더 귀여워진다. 개인적으로 상대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즐거운 귀여운 동작보다는 조금은 단순하더라도 힘찬 동작이 더 좋은 듯하다. '해야'와 '아리요'는 바로 그 동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 농구 이후로 그 두 곡이 무지무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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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고전 둘째 날이다. 2승하자.


2007.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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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급히 자리를 뜰 때 이유를 분명히 말하면 그 사람은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다. 아무리 후배가 좋아서, 친구가 좋아서 아무 이유없이 후배나 친구를 잡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도 분명한 이유 앞에서는 갈 사람을 보내준다. 흔히 동아리나 반 등에서 같이 술집에 갔을 때 오래 있지 못하여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 사람들이 일찍 집에 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집이 멀거나 통금 시간이 엄격하거나 (여자의 경우) 혹은 그 술자리가 별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신촌에서 술을 마시면서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는데 집은 상계동에 있다면 즉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리고 보통 11시면 모든 여학생들은 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결국 그 자리가 흥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만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 주위의 사람들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기 친구들이라면 '나 피곤해서 일찍 갈래' 정도로만 말해주면 되지만 만약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아리/반 선배라면 아무 이유 없이 혹은 컨디션의 문제로 집에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꼭 술자리에 가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는 그러한 강박관념은 대부분의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첫 만남을 최대한 길게 끌려고 애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 어린 사람은 최대한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선배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이유를 현재 자신의 계획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내일의 계획을 그려보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 혹은 급한 일을 생각해 보라. 내일 아무 계획이 없는가? 혹은 내일이 토요일인가? 그렇다면 약간의 거짓말을 섞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집에 가는 길에 마을버스를 타야 되는데 마을버스의 막차 시간이 빨리 끝난다는 등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하든 진실을 말하든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자초지종을 많이 늘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길게 이유를 제시하고 나면 선배 측에서는 거의 모두 보내준다. 보내주지 않는 사람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후배를 배려하지 못하는 험악한 사람이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에게 걸려서 대학 생활의 시작을 어두침침한 술집에서부터 전개해 나가면 그 사람의 장래는 그 수준에만 머물게 된다.


만약 어제의 술자리에서 만난 선배가 마음에 들지만 어제는 꼭 일찍 집에 들어가야 했거나 일찍 들어가고 싶었다면, 오늘 낮에 그 선배를 만났을 때 최대한 활기차게 반응을 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을 통해서만 판단한다. 그 다른 사람이 남일 경우, 사실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상관 없는 사람일 경우 그러한 방식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전부다. 따라서 술자리 이후의 처세 또한 인간관계의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처세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처세하는 사람이 매우 계산적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만약 이 처세가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사람의 몸에 스며들어 있다면 그 사람은 똑 부러지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알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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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좋은 일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최대한 반응하여 기쁨을 극대화해야 한다. 누가 여자친구와 100일을 맞았다던가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던가 오랜 시간 준비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던가 하는 그러한 이벤트는 일상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쓸어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은 일을 경험할 수도 있고 나의 주변 사람이 좋은 일을 경험할 수도 있으며, 나와 주변 사람이 함께 같은 좋은 일을 경험한다면 기쁨은 더욱 커진다. 일생에서 기분 좋은 일은 자연스러운 노력의 결과로 찾아올 때도 있지만 우리가 찾아내려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성대한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면 더이상 기분이 좋아질 일은 없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일상은 일시적이다. 일시적인 기쁨을 최대한 느끼지 않고 그저 방관하고 있다면 그 뒤에 다시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따라서 최대한 기쁜 일 속에서 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더불어 즐거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삶에서는 기분이 좋아지는 얘기도 쉽게 들려오지 않는다. 기분의 변화가 없는 평범한 대화는 많이 왔다갔다 하지만, 평소에 내가 마음에 두었던 여자 친구가 나에게 칭찬을 한다던가 학교 선배 혹은 교수님이 나에게 엄청난 제안을 하는 등의 대화는 드물다. 드문 만큼 그것으로부터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다만 어려운 점은 그러한 기분 좋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즉시 최대한의 반응을 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둔감한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분을 끌어올릴 기회를 그냥 놓치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반면 기분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일은 훨씬 많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얘기도 삶 속에서 우리의 귓잔등을 자주 때린다. 학교에서 있는 여러 가지 조모임과 회의가 대표적인데, 아무래도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조율하는 작업이 주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자기 말이 논리적으로 결함을 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한 일에서 실수라도 생긴다면 곧바로 서로의 기분이 상한다. 일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다투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는 삶 속에서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우리가 느낄 때에는 그 일들에서 최소한의 불만족을 느끼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일들은 표현 방법의 전환을 통해 최대한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을 비판하기 전에 이미 있는 장점부터 부드럽게 짚고 넘어가고, 중간중간에 유머를 던지면서 긴장을 해소하는 등 불편하고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일이나 대화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면 스트레스가 덜 쌓이게 된다. 물론 이 노력은 실천에 옮기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이 노력을 잘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인생 전반에 걸쳐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것은 더 적게 생기고, 나쁜 것은 더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 경제 시간에 배운 한계생산체감과 한계비용체증의 법칙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는 일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더 적어질 것이고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그러한 일이 터졌을 때 그 일을 최대한 즐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힘든 삶이 더욱 가벼워지고 즐거워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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