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여 실천하고 그만큼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역할과 책무로부터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 가지 일에 착수한 후 그것에 엄청나게 집중하다가 막상 그 일이 다 끝나고 곧바로 또다른 종류의 일이 그 사람 앞에 다가왔을 때, 그 사람은 이전에 하던 일에서 뭔가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혹은 이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오해의 소지를 던져주지는 않았는지와 같은 고민에 휩싸인다. 그러한 고민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러한 부조화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한 가지 일만 줄기차게 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그 일만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야만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만큼 시공간의 제약이 있었고, 그에 따라 한 사람은 어떤 특정한 하나의 일만 했고 하나의 주된 관심사만 가지고 있었다. 중세시대 유럽의 알자스 지방에서 포도 농사를 하는 농부, 서울의 변두리 골목에서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이발소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은 몇십 년 간 그 자리에 머물러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왔다. 물론 그들에게도 부업, 또다른 취미, 그들의 집을 찾아오는 외부인, 자주 다른 곳으로 옮겨다녀야만 하는 직업적 특성 등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그들에게 많이 주어져 있다면 그들은 훨씬 다양한 일과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현대인에 비하면 일과 책무의 다양성 면에서 매우 뒤처진다.
지금의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은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다양한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간주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어뜨려서 누구나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항상 즐거운 것일까. 만약 400년 전과 같이 마을 중심으로 삶의 영역과 일터 그리고 공동체가 제한되어 있었다면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멀리 왔다갔다하며 다양한 일에 머리를 싸매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다양한 일을 떠안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실제로도 다양한 일을 떠안는다. 대학생은 영어 실력을 쌓고 제2외국어도 공부하고 반이나 과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강남, 신촌 등지로 지하철을 타며 먼 거리를 다녀야 하고 틈이 나면 과외도 해야 하며 이성 친구도 챙겨주어야 한다. 이렇게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며 24시간, 낮과 밤의 개념조차 모호하게 만들어 삶을 채워가다보면 갑자기 병에 걸릴 때도 있다. 다양한 일을 떠안을 수 있는 가능성과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불행과 스트레스를 낳지만, 후자는 그와 반대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후자보다 전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현대인은 여러 가지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하지만 누구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망각이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더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의지, 혹은 지금 하고 있지 않은 다른 일이 신경쓰일 때 그것에 대한 신경을 과감하게 없앨 수 있는 강한 의지가 망각의 힘이다. 불필요한 고민을 달고 사는 사람은 망각의 힘이 약한 사람이고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 A에 집중하고 있는데 B를 망각하지 못한다면 A와 B의 부조화가 스트레스를 부른다. 잠을 잘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숙면을 위해 하루에 겪은 모든 일 (즐거운 일과 불행한 일에 상관없이) 들을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없이 누워있어야 한다. 침대 위에서 망각을 못하는 사람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힘겨운 다음날 아침을 맞이한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우리가 맡은 '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상태'도 있다. 밤샘 작업으로 무리하여 편도선이 부으면 2~3일간 식사를 할 때마다 편도선에 신경이 쓰인다. 멀티태스킹이 효율성을 높이므로 일하는 사람에게 미덕으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 대부분 더 큰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하나의 일이 많은 고민의 여지를 남길 경우 스트레스는 더 커진다.
하고 있는 일, 책임을 맡은 일이 너무나 다양하고 많아서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망각하는 선택·집중·망각의 정신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불만은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에게는 당연하다. 일을 하다보면 당연히 하루 종일 지속되는 고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하는 일의 양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정신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정신력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완성된다. 다양한 일을 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의 사소한 동작에도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고 충분한 힘을 써서 일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간다면 망각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어차피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있다면 그 환경을 거부하려 하지 말고 그것에 가장 건강한 형태로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매 순간마다 자신이 선택과 집중과 망각의 3단계 정신작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점검해보는 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일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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