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나였다. 공부는 내 심심한 머리에게 뜀박질 할 기회를 주었고, 모범생 이미지가 싫어 홍대 근처의 드럼 연습실에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꼭 나의 친구들과 함께 긴 하루동안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만의 밀실에서 조용히 나를 섬세하게 조각해나가고, 언젠가는 매끈한 다비드상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인생을 넘겨 왔다.

  하지만 오후 6시까지 신과대학 도서관에서 혼자 신문과 계간지와 정치학 교재 따위를 읽고 있던 나는 내게 즐거움을 주는 글에 풍덩 빠져 있다가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순간 몸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지하 2층, 이 늦은 시간에 나라는 인간은 커다란 도서관 안에 덩그러니 놓여 1시간 동안 앉아있었던 것인가. 나는 거만하게도 혼자만의 별 볼일 없는 글 읽기에 빠져 그 넓은 도서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원 소속의 사서는 '이제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하고 나에게 조용히 외쳤다.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할 줄은 몰랐다. 공부는 좋은 일이지만 왜 나는 일부러 말끔하게 한산한 곳을 그것도 혼자 찾아갔는가.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밀실'은 갑자기 나에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낯선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직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남아있는 캠퍼스였지만 점점 초저녁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대학 캠퍼스를 아무리 쏘다녀도 나의 친구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갔겠다는 사실을 체감하자 나의 마음에는 꽃샘추위가 몰아닥쳤다. 조금만 나의 성향을 바꾸고 조금만 더 내가 계획을 세울 때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도록 유도했다면 오늘과 같이 쓸쓸한 1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밀실에서 나를 섬세하게 조각하는 일은 그동안 신비롭고 매력적인 일로 나에게 기억되어 항상 나를 유혹했지만, 이제는 나도 갑자기 밀실이 낯설어진다. 수백명의 친구들이 모여있는 작은 광장의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자꾸 생겨난다. 사람들과 손을 잡고 본능에 따르는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고 싶다. 대학 생활의 쓴맛과 삐걱거리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토론으로 모두들 우울한 분위기에 잠길 수도 있지만 학우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즐거울 것 같다. 외로움이 아무 이유없이 찾아온 오늘, 그 이유가 혹시나 내 자신에 있는 것은 아닌지 멍하니 앉아 생각해본다.


2007.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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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블로그를 못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학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았다. 강의와 자습을 포함한 실질적인 지식의 습득은 물론, 대학교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정보의 습득에 치여 살았다. 학생의 본분은 뭐니뭐니해도 공부이므로 내가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어울려 생활하기 전에 개인의 신상을 점검하고 나 자신이 공식적인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둘째, 혼자 끙끙 앓고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블로그에 올릴 만한 사색은 설 자리를 잠깐 내 주었다. 나는 블로그에 나의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스타일을 알려줄 수 있고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인지를 일깨워 주는 생각은 거침없이 글로 표현해낸다.


셋째, 그동안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가 아닌 싸이월드 같은 다인 미디어에 조금 더 신경을 썼기 때문에 블로그에 소홀했던 점도 없지 않다. 난 우리 반 클럽에 가서 친구들의 100문 100답을 주의 깊게 읽어보고, 공지사항을 매일 둘러보고, 가끔씩 친구들의 미니홈피에 찾아가 방명록을 남기고 또 나에게 온 방명록을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았다. 하지만 남들이 아닌 자신을 알아가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어차피 매일 밤이 깊어가면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나를 점검할 것이니까 조금 더 나에 대한 글을 많이 써보면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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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강한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대학에서 공부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이때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갑게 인사하며 그들을 내 곁에 붙잡아 둘 것인지 등을 생각하면서 열흘을 보냈다. 중첩된 생각이 머리를 짓누르는 나날들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매일 새로운 고민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살아갈 모든 나날들에서 공통적으로 통할 수 있는 나의 생활 양식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은 그 일상에 젖어들어 나중에는 일상의 반복에 안주하는 것에 상당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별 탈 없이 서서히 발전해 나가면서 인생을 살아갈 대략적인 요령을 터득했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가끔씩 일상에서 탈출하여 휴식을 취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문화 활동에 참가해야 인간의 행복에 근접할 수 있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일상은 그러한 부정적 맥락에서의 일상이 아니다. 일에서의 성공과 인간관계에서의 성공, 크게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장하기 위한 긍정적인 일상의 패턴을 마련할 필요성을 나는 주장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활의 대략적 패턴은 이렇다. 우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 혼자 있을 때는 공부와 여가와 건강에 크게 신경쓴다. 그리고 개인적인 준비작업이 끝나면 대인관계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준비를 한다. 특히 대학생 때에는 모두들 각자의 개인적 성공이 매우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모두들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정보와 지식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남들이 보기에 눈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된다. 자기 일에 착실한 사람은 누구든 존경과 애정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남들에게 접근하고 대화를 해보아서 호의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 충분히 생각되어질 때 나는 남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접근한다. 매일 집을 떠나 대학교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에게 만남의 인사를 하고 안부를 전하고, 그 다음 대화를 한다. 나의 경험을 말해주거나 친구들의 최근 생활 중 어떤 일들이 있는지를 마치 서로에게 뉴스를 전달해주듯 풍부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현재 접근하고 있는 이성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낸다.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내 머리에 조금씩 작성하기 시작한다. 한번의 대화는 한 사람에 대한 프로필 전체의 1% 정도만 만족시킬 정도로 천천히 사람들을 알아간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일 경우 나는 그들과 추후에 서로 만날 수 있는 약속을 한다. 약속은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대한 약속이다. 같이 도서관에 가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농구를 하거나 고민상담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볼링장에 가거나 당구장에 가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고, 사람과 사람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하여 친해진다. 약속을 하고 나서는 다시 나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되돌아가 공부와 여가와 건강에 다시 신경쓴다. 사람들과 만난 다음 깨달은 점은 간단하게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그 깨달음이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경우 블로그로 옮겨적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사람들에게 접근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적대적일 경우에는 나는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한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이유들이다. 즉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사람이 나를 만나기를 원치 않는다 해도 나중에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접근하면 호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이 만약 나를 장기간 동안 적대적으로 대할 때에도 나는 나의 자기 존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적대적이라고 해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적대적인 인간은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고 나에게 호의적이고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짝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친밀감으로 내 곁에 있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다. 나와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한편, 나를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균일한 친밀감을 유지하려 하면 인간관계를 망친다. 그 말은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 내가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끝난 뒤 다시 개인적인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다음날 커뮤니티로 돌아올 때 새로운 대화를 시작한다. 대체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한 번 교차하면 하루가 지난다. 하루가 365번 지나면 일년이 지날 것이다. 일년이 네 번 지나면 대학교의 생활도 막을 내릴 것이다. 삶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말 편하게 다가온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드는 일은 나를 긍정적인 일상 속에 보호함으로써 힘겨워 보이는 삶을 매우 즐겁게 만들어준다. 대학교 생활이 항상 행복하게 지속되기를 나는 매일 기도한다. 그리고 나의 삶은 물론 다른 친구들의 삶까지도 항상 편안하고 완만한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그리며 진행되기를 바란다.


2007.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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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 1129번 버스를 탔다. 광고지를 붙였다 다시 떼어 하얀 종이가 붙어 있던 유리창, 계속 바뀌어 덧붙여지고 헐거워진 버스 노선도,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깔끔한 오렌지색 의자와 말끔한 바닥만이 남았다. 어수선하던 버스기사 아저씨 좌석에 있던 동전 상자와 교통카드 개표기, 그리고 그 밑에 실뱀처럼 늘어져 있던 전기 코드도 예쁘게 정리되었다. 옛날에 종로 주변을 배회하는 파란 저승강장 버스에 탔을 때 광고지 하나 없는 깔끔한 내부에 반한 적이 있다. 간선버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지선버스에도 옮겨오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종로와 광화문 주변의 거리 풍경을 둘러보아도 서울이 많이 깔끔해졌다는 이미지를 받을 수 있었다. 광고가 없다는 것이 도시 미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광고가 없으면 도시 미관보다 오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활동 영역이 그만큼 좁아지고, 통일된 환경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의 경우 한국처럼 마음대로 간판을 만들어 붙일 수 있게 하지 않는다. 그 나라의 정부에서 도시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개입을 하는데, 정부 차원의 노력이 통일된 색조의 거리를 만들고 통일된 재질의 건물숲을 만들어낸다. 간판이 대표하는 상업성이 정부의 힘 앞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가게나 사무실의 이윤 증가를 막는다는 염려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어떤 영업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간판이 없어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이미 가지각색의 커다란 간판이 외벽을 뒤덮고 있는 서울의 한 건물에서 맥도날드가 1층에 새로 개점한다면 빨간 간판때문에 더욱 어지러운 외관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개업한 맥도날드는 정부의 규제에 의해 고유의 빨간 간판을 금색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거리에는 특히 의류 매장이 많았는데, 그 매장의 간판을 모두 금색 계열로 만들자는 정부와 기업 간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본 버스 또한 그 디자인이 마치 정부에서 규제해놓은 것처럼 모든 버스에서 공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통일성은 정부에서 관리하지 않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받아들여도 충분히 가능하다. 1850년 파리의 도시 계획을 주도한 정치가 오스만(Haussmann)은 도시를 이루는 도로와 철도와 다리, 심지어 도시의 대칭성과 가로등과 야외 화장실까지도 정밀한 디자인과 계획을 통해 개편하고 창조했다. 그가 너무나도 독재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갔기에 루이 나폴레옹이 취임한 제2제정기에 25년간의 정치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고풍스런 고딕 양식의 도시는 지금까지 남아서 파리 시민과 외국인들에게 경제적으로는 관광 수입을, 정서적으로는 '파리의 낭만'을 선사해주고 있다. 서울 또한 마음대로 기업에게 도시 외부의 풍경을 좌우하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약간의 규제를 통하여 일관되고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 우선 광고와 간판 없애기부터 시작해야 될 듯하다. 낡은 시설을 예쁘게 보수하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2007.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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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몸살이 나 아프거나, 과도한 공부로 정신이 지쳤을 때 평소보다 일찍 잔다. 그리고 일찍 잔 사람은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깊은 수면으로 보낸다. 수면은 너무나도 깊어서 우리는 평소 접하지도 못했던 꿈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어제의 경험을 통한 나의 추측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았을 때 전에 있었던 숙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생각났다.


어제 드디어 홍대 드럼스테이션에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2번, 한번 할 때 최대 2시간 연습할 수 있는 1달짜리 회원권을 구매한 것이다. 우선 열심히 드럼을 쳐보고 3월에도 계속 나의 운동과 취미를 위해 드럼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 보겠다. 엄마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나중에 밴드에 가입할 때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를 다루듯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따라서 지금의 드럼 연습은 일단은 개인적인 측면에만 한정된다.


문제는 어제 낮에 1시간동안 드럼을 쳤는데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전 3박4일간의 교회 수련회가 가져온 피로를 증폭시켜 나에게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교회 수련회가 끝난 뒤, 나는 그다지 졸리지 않아 평소처럼 컴퓨터로 인터넷을 둘러보고, 위닝을 하고, 프랑스어 책을 읽었다. 그때까지 괜찮았던 나는 어제까지 열심히 못하던 공부를 했다. 그러나 피로와 그것이 유발하는 몸살기는 소리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드럼 연습을 무진장 해서 입고 있던 스웨터 속에 땀을 조금 흘리고 그 상태 그대로 지하철을 한 시간 동안 타고 왔다. 약간 힘들어하는 나의 몸 속에 면역체계가 조금 방심하고 있던 사이 몸살기가 온몸에 퍼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결국 어제 10시에 일찍 잤다. 그후 현실 세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나의 행동과 언변이 아무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나를 도와준 아주머니를 만나고 어두컴컴한 밤에 헤어졌는데 나의 소중한 지갑이 없어졌다. 다음날 나는 친척에게 받은 명품 지갑을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그 아주머니를 의심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떠난 상태고, 아주머니의 연락을 취할 수 없어서 카드 분실 신고나 하고 있다가 마침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자기네 집으로 와서 자녀 둘의 공부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 한 시간 동안 아들과 딸의 공부를 봐주고 다시 지갑을 찾으러 백화점으로 떠났다. 백화점에서 나의 모습을 본 한 안내원이 내 지갑을 주면서 '여기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보니까 손님 것 같은데 맞으시나요?' 하고 말했다. 아주머니를 괜히 의심한 나에게 조금은 죄책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허둥지둥 내 지갑부터 확인했다. 지갑이 그 자리에 있어서 신기할 정도로 꿈은 현실적이었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이 잘 되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꿈이었지만 이것이 결국은 '개꿈'이고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갑은 왜 없어졌는가, 아주머니는 왜 내가 백화점에 있을 때 물건 구입을 도와주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현실의 상황을 끌어와보아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나의 확신은 뒤집어질 수 있다.


몸살이라는 것은 사람의 육체를 힘들게 하지만, 평소에 잠자고 있던 정신을 깨워준다. 아픈 사람은 다른 운동에 다시 참여하기는 힘들지만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기도를 하거나 심오한 학문에 대한 공부를 할 때 더 열의를 갖는다. 육체가 굴복하여 일찍 잠들면 활발한 정신이 활동을 시작하여 꿈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한다. 이세상에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만 작동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 학문적인 탐구에 자신이 없는 나는 나의 믿음을 통해 초월자 하나님에게 이러한 모든 일의 통치권이 달려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2007.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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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7년 5월에 나는 지갑을 진짜로 소매치기 당했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읽으니 섬뜩한 기운이 온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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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중간에 조금씩 쉬어가면서 작년 6월 있었던 우리 고등학교 축제 동영상을 편집하였다. Ulead VideoStudio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금방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1394 하드웨어를 비롯한 여러가지를 산지는 3년도 더 되었지만, 실제로 그 도구들을 가지고 동영상을 제작해본 적은 없다. 고등학교 공부도 있기 때문에 제작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영상편집은 계속 미루어 왔지만, 이제 시간이 많아서 1월 안에는 꼭 민족제 동영상을 편집하여 DVD로 굽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나는 초보적이고 단순한 홈 비디오 식의 동영상은 만들기 싫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캠코더를 사서 서투른 촬영 솜씨로 중요한 행사를 촬영하고, 나중에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 그 촬영 테이프를 아무런 터치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중간에 불필요한 영상도 있고 아무래도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초본이기 때문에 가지런하지가 못할텐데 사람들은 편집을 하지 않는다. 기억에 오래 간직할 소중한 영상은 정성들여 편집하여 영원히 보관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결국 이번에 나의 욕망을 분출했다.


내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너무나 기본적인 기능만 가지고 있고, 공중파 다큐멘터리 수준의 영상을 만들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따로 다른 프로그램을 열거나 스스로 프로그램이 지원하지 못하는 계산 작업을 해야만 했다. 특히 자막을 삽입하고 육성과 싱크를 맞추는 작업에서는 밀리세컨드 단위까지의 수많은 시간 계산이 동원되었다.


나의 노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프로다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미니멀리즘의 가치관을 영상편집에 투영했다. 초보자용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화면 전환 효과, 화려한 글씨 등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결국 쉽게 질린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실력으로 차라리 단순한 구성으로 영상에 자막이나 음악 등을 덧씌우기로 애초에 작정을 했다. DVD까지 다 구운 다음에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일이라고 본다.


민족제 동영상은 나의 누나가 학교 체육관에서 캠코더로 찍어준 50분 분량의 영상이다. 이것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영상의 두 가지 주제인 '스포츠댄스 공연'과 '민족가요제 밴드공연'으로 영상의 테마를 좁혀나갔다. 미스민족과 같은 다른 행사도 고려하였고, 최대한 나와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분좋은 영상만 뽑아서 37분으로 정리했다. 오프닝 음악도 넣어주었고, 마지막의 엔딩크레딧도 삽입하여서 한 편의 '인간극장' 같은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이번 동영상은 나와 비슷한 행사에 참여해 활동하고도 멋진 동영상을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나와 친구들 모두가 공유하는 고등학교의 추억을 상징한다. 민족제의 스포츠댄스팀과 밴드팀에 속한 사람들은 이 동영상이 최고의 선물로 다가올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나에게도 이 동영상은 예상을 넘어선 희열을 안겨주었으니 틀림없다. 곧 2월 9일이 찾아와 나는 2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때 친구들에게 이 DVD를 건네주고 친구들을 모아 함께 영상을 보면 지금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을 것이다.


200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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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방학식 하루 전날이다.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기분 좋은 의무감이 아침부터 나를 자극했다. 내가 나 자신을 졸업생으로 규정하고 교만해지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도 않고 친구들 또한 원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오늘이 끝나면 소중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최대한 겸손한 마음을 먹고 선생님들의 방을 하나 하나씩 찾아갔다.


  선생님들께 찾아가는 것은 이 학교를 떠나가는 학생의 마땅한 도리라고 굳게 믿는다. 일년 혹은 이년 동안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사람들을 말 한마디 없이 떠나는 것은 내가 그 선생님과 적어도 인간적인 교류를 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인 일이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수많은 학생들을 새로 만나고 또 새로운 세상으로 보내주신 분들이라 학생들과의 만남을 참 좋아하시고 또 의미있다고 여기신다. 이러한 상황 판단 속에서 나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선생님께 공손하고 진실한 작별인사를 한 뒤 내년의 만남을 기약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조언을 받는 일이다.


  첫째로 나는 지광현 선생님의 방을 찾아갔다. 물론 오늘 내가 방문할 선생님들께 미리 예고를 해놓은 상태에서 나는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방에 혼자 남으신 선생님들을 뵈었다. 지광현 선생님께서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물 흐르듯 풀어주셨다.

  선생님의 말은 때로는 너무나도 도덕적이고 경직되어 있어 꼭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자신들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마음 속에 새기는 말 같지만,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행실로 가득차 있다. 오늘 나는 선생님께 사회과학대 학생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특히 연필이나 펜을 가지고 표시하고 쓰는 활동이 없어도 독서라는 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공부임을 알았다. 평소에 끊임없이 '책을 읽어라' 소리를 들어왔지만, 막상 내가 대학 입학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이 소리를 들어보니 말의 참뜻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의 몇몇 나이 많은 사람들, 그중 말과 행동이 바르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하자 선생님께서는 '和而不同'이라는 공자의 말로 나의 처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다른 사람들과 겉으로는 가까이 지내고 그들에게 잘해주되 중요한 때에서만은 그들과 같아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처세는 평소에도 내가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그것이 정의에 합치하는 올바른 인간의 행동임을 나는 확인했다.


  미리 2학기 시간표를 확인한 다음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맡으시지 않는 시간을 찾아다녔다. 나는 오늘 내가 선생님께 인사드릴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내일 방학식이 있는 날 선생님의 오피스에 직접 찾아가 사적인 대화를 나눌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상 나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이나 다른 선생님의 빈 오피스에서 자습을 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충분히 나의 인사가 정당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늘은 한복을 입는 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졸업생처럼 사복을 입고 갔다. 한복은 택배로 부친 상태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늘 선생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의복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황선생님께 찾아가면서 부정의가 되어버렸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지광현선생님처럼 반갑게 맞아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화요일에 한복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화를 내셨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조기졸업생들이 나처럼 이렇게 자습을 안하고 있을까봐 나한테 인문반 조기졸업생을 불러모으라고 하셨다. 내가 의도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순간이었다. 사소한 것에서 트집을 잡히면 이렇게 일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황선생님께는 내일 인사드릴 것이라고 약속드렸다.


  다음에는 고문수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연세대학교에서 어떤 커뮤니티에 참가할지를 선택하고 활동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단체를 신중히 선택하여 진실된 인간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하셨다. 나는 기독교 신자들의 모임이 최대한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따라서 모임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 나의 견해를 말씀드렸더니, 자칫하면 현실에 치중한 기독교 모임이 진리를 추구하는 모임의 본질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물론 빼먹지 않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문제는 전혀 고민할 필요 없다면서 사람은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끼리 뭉친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형식적으로 같은 공통분모가 아닌 자기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대한 공통분모가 없다면 사람과 사람은 어우러질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대학에서 만나지만, 결국 나와 깊게 사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언젠가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서로 같이 즐기고 서로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자기가 진정으로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고 진실한 관계로 사귈 수 있는 사람이다.


  고문수 선생님을 만난 다음 바로 다산관으로 뛰어가 강문근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선생님을 어드바이저로서,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존경해왔고, 선생님과의 사이도 건강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내가 말주변이 없고 또 활동적인 여가를 많이 하지 않아서일까, 선생님과 같이 유머 섞인 대화를 하거나 함께 스포츠 혹은 여행 등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점이 지금도 많이 후회된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위해 대학교의 소그룹을 많이 찾아다니며 정적인 일이 아닌 동적인 활동에 많이 참가하라고 권하셨다. 실제로 그러한 작은 동아리가 새로 사람을 받아들일 때에도 호의적이고 인간적이며, 그러한 동아리에 소속된 사람들은 결속력이 강하다. 바로 그러한 점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졸업 전에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혼자 하는 일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나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것은 바로 내 주변의 '새로운 세계'부터 차근차근 방문해 보는 일이다. 끊임없이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점점 활동 범위를 나의 집 혹은 나의 학교를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종로 주변부터 시작해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한 곳, 표면적으로만 관찰한 곳이 너무 많다. 그리고 중랑천변에 신설되어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는 어떤가. 청계천의 그 길다란 산책길은 또 어떤가.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순간 나의 할 일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늘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 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하루를 의미있고 보람차게 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배 혹은 선생님께 인생의 갈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는 언제 얼만큼 들어도 지겹지 않으며 엄청나게 즐거운 일이다. 이제 나는 대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거의 끝내 놓았다. 계속 오늘 사색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간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2006.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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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Green Eyes
 02 My Today
 03 Birthday
 04 Universally
 05 Sadness
 06 Feel Again
 07 1,2,3
 08 Gaining Back My Faith
 09 Murder Me
 10 Sigh
 11 Rainy Days
 12 As Long As I Sing



  오이뮤직에서 한 네티즌이 디사운드에 대해 평한 바와 같이, D'Sound는 현대인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드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결코 단독적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자리로 출근한 뒤 집에 들어오기까지 함께할 수 있는 편한 음악이다. 어쿠스틱 악기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규칙적인 4분의 4박자 비트가 때로는 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D'Sound의 음악은 평온하고 안정되었다. 그들의 앨범 중 가장 후한 평가를 받는 2005년의 'My Today' 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세련되게 옷을 입고 깔끔한 자동차를 타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결코 남에게 주목받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젊은 여성과도 같다.

  이 음악은 내가 가지고 있는 D'Sound의 약 40개 정도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보컬이 독일 출신이고 밴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처음 시작한 탓인지 음악이 왠지 깔끔하고 차갑다.


<오이뮤직의 글>

D'SOUND의 다섯 번째 선물 [My Today]

2004년 3월 한국 공연을 대성황리에 마친 이후 디사운드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밴드의 네 번째 음반 [Doubleharted]를 홍콩에서 발매했고, 그 해 7월에는 독일에서 싱글 'I Just Can't Wait'을 선보였다. 보컬인 시모네가 독일 출신이기 때문일까, 독일 언론들은 디사운드에게 큰 관심을 나타냈다. 여성 잡지 ‘Jolie’는 밴드를 인터뷰 했고 MTV는 프로그램 출연을 요청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디사운드는 싱글에 이어 정규 앨범 [Doubleharted]를 독일에서 발표했고 10월에는 독일 팬들과 직접 만나는 라이브 공연도 가졌다. 독일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애시드 재즈 밴드 인코그니토(Incognito)가 2005년 봄의 독일 투어에 디사운드를 게스트로 초대한 것이다. 디사운드는 인코그니토와 다섯 번의 무대를 펼쳤다. 그리고 킴과 조니는 노르웨이 신인 뮤지션의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시모네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 [Last Days and Nights]를 제작했다.

그리고 2005년 8월, 세 멤버는 새 음반 녹음을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Oslo)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스튜디오에 모였다. 시모네, 킴, 조니가 원했던 사운드는 12년 전, 밴드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디사운드 창세기 때의 선율이었다. 그래서 그때 함께 활동했던 키보디스트 스타인 에우스트루드(Stein Austrud)와 기타리스트 베르게 페테르센 외벨레이르(Børge Pettersen Øverleir) 와 함께 녹음 작업을 했다.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디사운드는 열흘 만에 모든 녹음을 마쳤다. 그리고 완성된 곡 중, 인코그니토의 보컬리스트 토니 몸렐과 독일 재즈의 신성 틸 브뢰너(트럼펫/보컬)가 참여한 트랙을 포함해 총 12곡을 골라 다섯 번째 앨범을 만들었다.
새 앨범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1,2,3' 같이 박력 넘치는 넘버가 있는가 하면 'Murder Me'처럼 차분한 작품도 있다. 히트곡 'Do I Need A Reason'을 좋아한 팬이라면 멜로디 라인이 살아있는 발라드 'Gaining Back My Faith'와 'As Long As I Sing'이 반가울 것이다. 다른 밴드와 차별되는 디사운드만의 특징인 재즈 풍의 그루브는 이번 앨범에도 건재하다. 다양한 추종자를 낳았지만 결코 복제되지 않는 디사운드표 ‘경쾌 꿍짝’ 리듬은 'Green Eyes', 'My Today' 그리고 'Rainy Day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멤버들은 이번 앨범이 ‘Good Old D’SOUND’를 원하는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멤버들의 다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이제 오슬로의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던 그 삼인조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유럽, 아시아 지역에까지 팬을 거느린 수퍼 트리오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새 음반은 세계적인 밴드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멤버들의 기량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고 곡의 구성은 잘 짜인 비단처럼 매끄럽고 윤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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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텅 빈 내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 달만 이 학교에서 지내면 2006년이 저물어가는 황혼에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물론 2월에 다시 돌아와 약간의 시간을 보내겠지만, 내가 이곳에 의무감을 가진 학생으로 남아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나는 편히 쉬려 한다. 기존의 나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거부하고 놀기보다는, 천천히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거꾸로 산책하며 길가에 놓여 있는 꽃 한 송이,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 발을 헛디디면 죽을 만큼 위험한 외나무다리를 차근차근 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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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아침 나의 잠을 깨워준 고마운 트위티    
          
 오늘 IR 시간을 이용하여 누나가 찾아왔다. 누나는 14일 인도로 떠나 1월 4일 오기 때문에 12월 28일 방학식에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 내 기숙사 방의 짐을 싣고 집으로 보내주지 못한다. 오늘의 이 큰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추운 날씨에 미끄러운 언덕길까지 이중고가 나와 누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누나는 기숙사로 올라오는 언덕길에 차를 대지 못한 채 아래의 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누나가 학교에 오기까지 내 책상의 모든 책을 상자에 담고 여러 잡다한 물건과 서랍장과 책장을 한 곳에 몰아두었던 나는 오늘 열심히 기숙사에서 주차장까지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를 짐을 들고 걸어갔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누나와 친구들도 같이 짐을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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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가기 전 이 메모를 붙여놓았다

  한 시간 만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누나를 보냈다. 오늘은 학교 친구들이 모두 민족교육관에 모여 그릴 위의 삼겹살을 구워먹는 날이었는데, 짐을 집에 보내는 일 때문에 35분 정도 늦어 고기를 많이 집어먹지는 못했다. 그러나 짐을 모두 집에 옮겨놓았다는 기쁨과 방금 땀흘려 일하고 돌아온 보람이 겹쳐 맛있게 먹었다. 기온 영하 4도, 체감온도 영하 12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민족교육관의 아늑한 돌담에 둘러싸여 우리들은 화목한 점심 시간을 가졌다.

  프랭클린 플래너도 오늘은 잠시 제쳐두고, 나는 피곤해서인지 오후 내내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거의 텅 빈 내 책상을 바라보았다. 묵은 배가 싹 가라앉은 느낌과 내 어깨를 누르던 커다란 짐을 덜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했다. 이제 곧 떠날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둔 채 홀로 방 안에서 짐을 챙길 때의 기분, 내가 이 집에 머물게 한 모든 나의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다짐을 하는 기분이다.

  사람이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과 홀가분함, 그리고 쓸쓸함인 것 같다. 오늘은 편히 쉬며 이러한 기분을 다시 더듬어 보고 내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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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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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핑퐁' 을 읽고 그의 문체 중 좋은 것을 따다 쓰고 있다.
 
 
  그렇다. 나는 고상하다. 고상하니까 나에게 쉽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나는 만약 그들이 나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을 때 나 또한 웃으며 반겨줄 수 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지구의 중력과 같이 변함없는 나의 천성이다.
 
  점점 염세주의자가 되는 것만 같다. 주위 사람들이 '사교적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실상을 들추어 보면 자신을 숨기고 빈 껍데기만을 가지고 주위의 이들을 끌어들이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 사교적이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가진 사람은 남들과 하하, 호호, 웃은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뿌연 나트륨 등에 섞인 눈물을 흘릴 정도로 멜랑꼴리에 빠진다. 문경지교, 빈천지교, 단금지교, 망년지교, 관포지교... 우리보다 몇백년은 앞서 이 땅을 밟고 간 사람들은 진정으로 친구를 사귈 줄 알았는데,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인간은 언제나 혼자이다.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홀로 남은 존재 양식이 익숙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옛날 사람들 중에서도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친구라 부르는 사람들끼리 속으로 이해관계 저울질을 한 것은 아닐까.
 
  오후 수업을 들으러 등교하는 시간, 내 앞으로 나와 같은 나이의 여학생들 대여섯 명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지나간다. 키도 비슷하고, 머리 스타일도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로 똑같이 검다. 그네들은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아서 바깥에서 돌아다닐 때에도 붙어다니십니까. 하고 묻고 싶다. 나는 특별히 등하교길에 친구들과 중요하게 의논할 일이 있거나,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행복한 일을 겪고 난 후가 아니라면 대개 혼자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혼자 걷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나보다 한 살 어린 소녀들이 지나가는군. 저기에는 형들이 우르르 몰려가네. 모두들 할 말이 많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 사이로 들려온다. 나는 왜 이렇게 할 말을 아무거나 국수 뽑아내듯 뽑아내지 못할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혼자 등교하는 이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수다 떨지 않고 조용히 걷는 사람들, 그들이 정상인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다. 나를 포함한 정상인은 조용할 때와 시끄러울 때를 구분할 줄 안다. 다만 정상인에게 너희들은 너무 조용해서 탈이야 하고 소극적인 탈을 씌워버리는 이들이 나쁜 놈들이다. 시끄럽게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부류다.
 
  가끔 나는 하루 중에서 부딪치게 되는 이들 중 나와 전혀 코드가 안 맞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내 입이 콱, 하고 막혀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젠장, 뭐라고 말을 꺼내고 대화를 시작할까.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경보기를 울릴 것 같은 그 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무표정으로 서 있는데 말이다. 이럴 때엔,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느낌도 든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니가 이상한 거다
혹은
내가 이상한 건지, 니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하루 동안 나는 내가 이상한지 다른 사람이 이상한지 헷갈릴 때가 많다. 지금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나만 정상인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난 분명 맞아죽을 것이기 때문에, 또 내 친구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피를 가진 이들이 있기 때문에 과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그런 말을 내뱉기도 많이 꺼려한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오늘 두 명 정도 만난 것 같다. 내가 타인을 만났을 때 숨이 막히는 이후에는 항상 내 자신에게 못을 박는다.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하는 튼실한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자괴감이 든다.
 
 
 
 
뭐 이건 하나의 완결된 소설이 아니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2006.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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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에 대해서 이곳 나의 블로그에 줄기차게 늘어놓는 일은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앞섰던 그 때에는 내가 진정 원하는 여인상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이성의 외면적 특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던 때였다. 이제는 나의 생각이 조금 더 깊어졌고, 나와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그들에게 충고도 받았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지만, 또한 지금의 미성숙한 시기에 벌써 이상형을 확정지어서 생기는 의식의 협소함에 대해 경계하지만 일단 나의 깊은 곳으로부터 글을 쏟아볼까 한다.

  남자들이 여자의 외모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외모 외의 성격을 먼저 본다는 사람은 남성의 본능을 거역하고 이성을 동성과 별반 다를 바 없게 취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본능에 충실하되 순리를 따르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모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TV나 영화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이상형으로 꼽지는 않는다. 그저 나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모습,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면 좋겠다. 지금 나의 머리 속에는 평소에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 이상형의 스케치가 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나만 엄선해서 묘사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긴 생머리가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긴 생머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검고 빛나는 긴 생머리보다는 어깨까지 내려오면서 약간 웨이브를 가한 머리가 좋다. 비단결같이 곱다기보다는 약간 헝클어져서 너무나도 조용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풍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청순함은 나에게는 내숭이며 페르소나로 보인다. 덧붙이자면 평소에 공부와 같이 비활동적인 일을 할 때에 뒤의 머리를 틀어올려 포니테일이 아니라 삼국 시대 여인의 헤어스타일을 만들고 있으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녀를 비스듬히 꽂는 약간 헝클어진 머리가 참 좋았고 지금도 좋다. 난 얼굴의 모습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의 이상형은 세상 뭐 있어 하며 한바탕 실없이 웃지 않고 다만 웃음을 절제할 줄 안다. 즉 사소한 일을 가지고 과장된 웃음을 터트리지 않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자신감 있는 미소만을 짓고 넘어간다. 입가를 살짝 움직이는 웃음에는 항상 대상을 향한 깊은 눈맞춤이 전제된 눈웃음이 같이 따라온다. 그 사랑스러운 눈웃음을 아끼고 나한테만 해준다면 그때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나의 이상형인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때에 따라서 옷의 스타일을 잘 조절한다. 언제나 조신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모직 양장만을 걸치고 빛나는 검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듯하다. 젊은 나이에는 젊은 나이에 맞게 적극적인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동아리나 학급이나 과에서 단체 행사가 있어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경우가 생겼을 때 돌아다니기 편한 복장을 하고 (대부분 밝은 색 계열일 것이다) 아침에 모두들 모이는 장소에 나타난다면 그렇게 호감을 갖게 만들 수가 없다. 그녀는 운동을 해야 할 경우에는 썬크림을 바르고 Cap을 쓴 다음 적극적으로 참여할 줄 알고, 얼굴이 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저쪽 그늘에 앉아 소심하게 앉아 있지 않는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에 굴복하여 남자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을 증오하지 않으며 오히려 필요할 때에는 즐긴다. 그리고 나 또한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며 기뻐할 것이다.

  잠이 많으면 미인이 된다고 다들 말하지만, 평소에까지도 저쪽 구석의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으면 나는 절대 그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공적 자리에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지 않고 공개된 자리에서는 버벅대고 말을 삼가는 한편, 친한 여자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 때에는 온 세상이 떠나가라 남의 뒤끝을 밟아대는 여자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불평을 최대한 삼가되 불평을 할 때에는 공적인 자리에서 현재의 상황이 왜 불리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불평을 제공한 사람을 굴복시킬 줄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소속한 단체에서 누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축하의 말에 누구보다 앞장선다. 좋은 일에는 한없이 좋아해주고, 나쁜 일에는 담담하거나 혹은 평화적인 방법(언어)으로 저항한다.

  또한 그녀는 매우 솔직하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줄 알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줄 안다. 다만 싫은 내색과 좋은 내색이 '언어 외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상을 쓴다던가 즐거워 마냥 웃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녀는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매우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 친구라고 부르고 평소에 같이 담소를 나누던 사람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이고, 주위의 사람과 그리 친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친한 척 하고 호의적으로 대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나와 대화를 할 때에는 나에게 눈을 맞추고, 그 때 내가 그녀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동공이 한없이 커진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Eye Contact는 상당히 중요한 인간관계의 덕목인데 한국인들이 이를 기피해서 문제다. 그녀는 내가 유머를 의도하여 말을 하면 그것을 잘 알고 웃어주어 기대에 부응해준다. 단 이때 나의 유머는 충분히 어느 사람이라도 웃게 만드는 유머임을 내가 자신하고 있어야 하겠다.

  그녀는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 또한 가지고 있지만, 나에게 너무나 의존적이고 자신의 삶을 온통 나로 채워버려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의 이상형의 여인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리고 일상에서의 체험과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섬세한 글로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안다. 단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나의 생각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추구한다. 나와 서로 의견이 대립할 때에는 정과 반의 논리가 있을 때 '합'을 찾으려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녀는 나에게 너무 쉽게 대해주지 않으며, 항상 나에게 자신을 더 알고 싶어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허황된 망상에 빠져 유치하게 허우적대지 않고, 영리한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유를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 당근을 부드러운 손길로 내밀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잡아뗀다. 이런 '당기기'에 능숙한 그녀도 항상 나를 끌어당기지는 않으며, 내가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곧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때 나와 그녀의 본격적인 친밀함은 서서히 그 불꽃을 키워나갈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형의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남들과 다르게 이성을 어떻게 보는가이며, 나의 특별한 이상을 구별짓는 과정을 통해 나의 자아를 알아가는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 외에도 이상형에 대해 말할 내용은 아주 많다. 다만 당장은 생각이 나지 않을 뿐이다. 이 정도만 언급해도 나의 이상형에 대한 가장 충실한 묘사에 성공한 듯싶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에는 최대한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허황된 망상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 나에게 적용된다. 나의 사랑을 현실 속에서 찾고, 항상 환상의 추구 속에서 냉철한 기조를 내재하고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 눈 앞에 곧 이상형의 그녀가 나타나기를 깊은 곳에서 내심 바라고 있다.

200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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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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