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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24절기로 말하자면 경칩이다.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신기하지, 어떻게 그토록 추운 겨울은 경칩날 눈 녹듯 딱 맞추어 사라지는지 그저 자연의 이치를 통달한 그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날씨를 보니 오늘부터 4일간은 따뜻하고 안개만 조금 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모처럼 맞은 따뜻한 햇살은 학교에 수북이 쌓이고 밟히고 밟혀 딱딱해져 버린 눈을 녹였다. 눈은 승천하는 천사들처럼 그렇게 하늘의 부름에 응답했다...

  내일 오전 00시 15분은 나에게 의미가 많은 날이다. 우리 아버지도 오늘의 눈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하늘의 부름에 응답하셨다. 그 날이 바로 내일 밤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나 혼자 이 학교에서 외롭게 이 슬픈 날을 견뎌야 한다. 주위의 친구들은 각자 소일거리를 찾아 행복해하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즐겁게 대화하는 가운데 나 혼자 구석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같이 따스한 날에 나에게 눈보라보다 거친 슬픔의 소식을 하나님은 미리 예고하고 계셨다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오늘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친구들이 모두들 좋아 보인다. 원래 내가 우울할 때에는 평범한 일상에 서 있는 아이들도 마냥 즐거워보이기만 한다. EOP라는 것(우리 학교의 영어상용화 정책)이 그 절규의 끝을 알리는 듯, 나는 생전 듣도 보지 못한 소식을 듣고 또 한 명의 영어상용 위반자를 적발해야만 했다. 이 없어져야 할 정책이 선한 모습으로 바뀌는 직전에 나는 혐오감을 친구들에게 끼쳐야만 했다. 오늘 나의 학교 친구 한 명이 전학갔다. 남자끼리는 서로 안고 울고 하는 그런 짓은 안 하지만, 그 친구가 학교에 없다는 건 은근히 나의 가슴에 찬바람을 분다.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아쉬움으로 묻어버리련다.

  우울하면 말이 없어진다.

  지금 나는 수심에 잠겼다. 말을 해도 물 속이라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한다. 아른거리는 메아리만 가슴 속에서 진동할 뿐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기분이 축 쳐질 때도 있다. 경칩날 이 좋은 햇살을 받으며 여기 있는 내가 그렇다.

2006.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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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평화주의자 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말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말이 지금의 나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나는 주위의 나와 부딪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그 중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운 친구로 만든다. 그게 나의 대인관계 철학이다. 하지만 그 철학의 붕괴는 가까운 친구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현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도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이라 잘 정리를 해서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은 파벌을 형성하기 마련이고 같은 파벌 안의 사람들은 그냥 친한 사이보다 더 친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친구로 본다. 나에게 적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극단적으로 공공의 적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친구이다 보니 내가 보통 친구로 생각하는 애는 나의 친한 친구의 '적'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에 나는 나의 친한 친구와의 관계를 더 증진시킬 수 없다. 이 '적'이라는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말 친한 친구를 사귀려면 그 친구와 나의 '공동의 적대 파벌'을 만들어 놓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왜 그런 것도 있지 않은가. 친한 친구끼리 모여 남 뒷땅까기..

이런 행동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최대한 지양하려 한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이런 뒷땅까기 같은 행동이 같이 뒷땅까기 하는 아이들 간의 우정에 어느 정도 일조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한 파벌에 내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평화주의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혼란스럽구나. 오늘 나의 사색은 비정상적인 이론을 만들어내 버렸다. 요즘 내가 속으로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가볍게 넘어가면 좋겠다. 뭐 이런 사색도 하루이틀이니까 말이다.
2006.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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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세느강) 유람선


  이번 수학여행 때 가장 뇌리에 깊게 자리잡은 추억이자 파리의 야경을 최대한 낭만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센강 유람선 관광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약간의 노독을 쌓은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관광을 원했다. 그날 밤에 유람선을 탄다는 말만 듣고 아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한 번 유람선을 탄 후에 나의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Bateaux-Mouches라는 큰 간판이 번쩍이는 곳에 우리의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우리 민족반 말고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려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탄 유람선이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유람선이었나보다는 추측을 해본다. 선착장에 갔을 때의 시각은 저녁 7시 반으로, 해는 서쪽에 지고 서쪽 지평선에서 달아오르는 잔열의 붉은색(amber)이 엷게 타오를 뿐이었다. 파리에서는 산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지평선이 선명했다. 유람선 티켓을 끊고 유람선에 올라타자 차가운 파리의 공기가 전해졌다. 그 때의 날씨는 매우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람선의 이동 속도에 맞추어 체감온도는 떨어지고, 게다가 강물이 밑에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람선을 탄 다음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야경 모드로 해서 친구들을 찍으니 친구들은 선명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나오는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만 가끔씩 반짝거리는 에펠탑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사실, 그래서 동영상으로 담았다. 우리가 유람선에 승차한 지 15분이 지나자 유람선은 큰 엔진 소리와 함께 선착장을 출발했다.

  나트륨등의 노란 불빛이 야경에 흡수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황금빛 도시를 만들어내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네온싸인이나 큰 전광판, 광고판 등은 없었고, 오직 소박한 5층 이하의 건물이 즐비했다. 그 소심한 건물들이 빛을 아무런 불편 없이 수용함으로 인해 파리의 야경은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한다. 에펠탑이 큰 몸집으로 유람선을 타고 가는 우리들을 계속 지켜봐 주었다. 우리는 노트르담 성당과 파리 시청, 루브르 박물관 세 건물 중 하나도 보고 여러가지 건물들을 보면서 강 위를 달렸다. 낭랑한 한국어 Audio guide 또한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다리 밑을 지나갈 때마다 유람선과 다리 밑 사이로 메아리치는 그 시원한 폭포수 비슷한 소리는 꼭 예전의 롯데월드 놀이기구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서 배가 코스의 반 정도를 가고 다시 선회할 때 나와 친구들은 밖으로 트여 있는 2층에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귀여운 프랑스 4살짜리 꼬마아이와 즐겁게 놀았다. 어머니가 아주 미인이신 걸 보니 그 꼬마아이도 나중에 멋진 남자가 될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즐겁게 대화도 하다 보니 어느새 유람선은 선착장에 도착해 있었다. 유람선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할 때에도 유람선의 감동은 잊혀지지 않았다.


유네스코


  나의 꿈은 외교관이다. 막연히 외교관이 아니라, 나도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장래희망을 설정하고 있다. 우선 외무고시를 패스한 다음 (이게 어렵지..) 여러 나라로 발령받다가 영국의 1등서기관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되는 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대사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직종(외교관)을 계급에 상관없이 꼭 쟁취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장래희망 때문에 이번의 유네스코 공식 방문은 나에게 많은 motivation과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해 주었다. 내가 이런 국제 기구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네스코 방문에 참가했고, 따라서 얻은 것도 많다.

  유네스코 건물은 높지 않았고, 생각보다 소박하게 생겼다. 본부라고 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소박하고, 따라서 더 정이 간다. 나는 이런 소박한 아이보리색(흰색이 아니다) 콘크리트 건물에서 일하고 싶다. 유리창이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몇십층 짜리 고층 빌딩 보다는 더 편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관광객들도 많이 다녀간다는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 우리는 대강당에 들어가 사진을 몇장 찍고, 그 다음 유네스코, OECD에 근무하시는 한국인 분들과 담화를 나눌 장소로 갔다. 버튼을 누르고 발언할 수 있는 마이크가 모든 자리에 비치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나는 국제 기구이고 또 본부이기 때문에 시설과 환경이 어마어마하게 깨끗하고 세련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고, 오히려 소박한 게 편하다.

  한국인 세 분과 같이 담화를 나누었다. 그분들이 처음에는 진부한 강의를 하다가 세 번째 분, 가장 국제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답지 않으신 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하셨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학과를 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국제 기구의 한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외국어 실력과 글쓰기, 말하기 실력이며 그리고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라는 게 이분의 주장이다. 정말 와닿았다. 막연하게 국제관계학, 힘의 논리 등을 배우고 외국어 조금 잘해서 아무런 열정 없이 국제 기구나 외교통상부 등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어떤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근무하는 쪽이 훨씬 낫게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내 진로인 정치외교학과는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는가. 전문가를 만들어주지 않는 학문을 나는 원하지 않는데, 정치외교학과가 자칫 그러한 학문이 될까봐 한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파리의 국제기관에서 모임을 가지려면 모이는 날로부터 두 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하고, 신청을 해도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별로 없다는 게 한국인 인사들의 공통적인 주장이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높이 평가해 주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또 유네스코에서 ASP(A 무슨 Students' Program)를 실시하는데, 그 첫번째 수혜자가 우리 학교가 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 세 분들에게 국제 기구와 외교에 대한 막연한 인식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는 지식을 배웠다. 유엔총회는 9월~12월에 열리고, 현재 유엔의 신탁통치 활동은 중단된 상태이다. 유네스코는 정치,경제,국방 문제 외의 교육,과학,문화에 대한 국제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1946년 11월 4일 설립한 유엔 부속 국제 기구이다. 유네스코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예를 들자면, 미취학 아동을 돕기라던지 군사적 대립 상황이나 기관간의 마찰로 파괴될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기가 있고 또 문맹인을 없애기 등이 있다. 현재 유네스코가 회의를 통해 예산과 인력을 투자해 도움을 지원해 주는 나라는 거의 다가 아프리카, 아시아의 후진국이다. 회의를 할 때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그에 따른 통계 자료와 뉴스 자료를 구술한다. 최종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주장과 문제의 해결 방안을 내놓는다.

  대학원 인턴십 과정으로 실제 UN이나 UNESCO 기관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운영하는 인턴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경쟁력을 쌓아 후에 국제 기관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경험 또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세 분들은 입을 모았다. 미국에는 UN대학도 있단다. 그분들이 UNESCO 소속 한국 공무원 선발 과정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나는 깜짝 놀랐고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경쟁률은 300:1이고, 그 중 20명을 뽑고 (6000명이 지원한다는 말인가??) 인터뷰를 통해 다시 8명을 뽑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인가. 이래서 외교가에 종사하려면 4~5년이 걸린다.

  이러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지식도 배울 수 있어서 나는 매우 좋았다. 우리 나라 국력을 신장시켜야 하고,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붕 뜬 말들은 이제는 식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질문을 했고, 그에 따른 만족할 만한 답을 얻었다. 아주 귀하신 분들과 함께 보낸 귀중한 시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유럽 수학여행
2008. 2. 4. - 200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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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때 세느강 유람선 Bateaux Mouches 위에서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잘나왔죠~
 
Paris Match라는 생소한 일본 그룹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원래 일본어 가사의 음악을 싫어함이 그 첫번째 이유이고, 또 왜 Paris를 그룹명에 넣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음이 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우타다 히카루(이거는 예외적인데 원래 좋았다. 우리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와 많이 비슷한 보컬의 목소리가 익숙하게 귀에 안착했고, 보사노바의 영역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좋았다. 수학여행 때 버스로 이동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Paris Match의 곡을 많이 들었던 기억도 난다. 프랑스 라디오에서 Paris Match 음악을 많이 틀어준다는 말도 들었다. 이 곡은 보사노바 계열의 곡으로 4집 Quattro의 3번 트랙이다. 네이버 뮤직에 Paris Match를 치니까 곡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직접 곡을 업로드하려 한다. 나는 밝고 조용한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2006.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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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거부감'도 들었었구나. 지금은 완전 사랑하는데.
사람 좋아하는 마음도 원래 그렇게 갈대 휘어지듯 바뀌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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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이다. 내가 벌써 고2가 됐다.
  고2가 되니까 대학 준비하는 일도 바빠진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문제를 푸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 항상 긴장된 삶을 산다. 이제 조금씩 즐거움을 찾는 근원의 샘물이 줄어들고 있다. 목이 마르다. 이렇게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앉아 있는 나를 내가 보니까 갈증이 난다.
  나는 기독교 신자다. 목마를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친구들과 선배,후배들과 같이 기도모임을 통해 친교를 나누고 같이 기도한다. 인간의 정신적, 영적인 활동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만 같다. 특히 나같은 고등학생은 여러 방면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데,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바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체적 활동인 운동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고2가 되어서 더욱 사색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사색을 통해 생각을 더욱 깊이 하는 호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호수가 된다면 더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어제 조기졸업하신 9기 선배님들과 만나서 얘기를 했다. 연대에 진학하신 선배님들이 모여서 같이 스페인을 갔다왔다 한다. 반면 나는 이제 고통의 시작에 접어들었다. 그들이 모두 겪은 고통을 나도 겪에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점점 더 목이 말라오는구나. 하지만 형들의 격려를 받으며 올해를 열심히 보낼 거란 다짐을 굳혔다. 그리고 올해에는 조용히 사색하면서, 주님을 만나면서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낼 거라고 결심했다.

2006.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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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학여행
2006. 2. 4. - 2006.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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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는 반나절밖에 머무르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원래 일정이 그렇다 보니 후회는 없다. 오히려 볼 것 다 본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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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알프스 산맥 중 산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리기 산을 올라갔다. 톱니(?)가 달린 기차를 타고 천천히 산을 올라가 해발 1752m인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사진을 봐도 스위스의 상쾌한 공기가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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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쩨른의 빈사의 사자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게 왜 '빈사'의 사자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굶어죽었으니 '아사'의 사자상이 더 적절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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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교각인 카펠교. 130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다리의 중간에서 스위스의 호수와 멋진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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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을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는 Trocadero 광장에 왔다. 이 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늘에 감사한다. 에펠탑이 이렇게 멋있는데, 왜 옛날 사람들은 처음에 이것을 혐오했는지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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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북서쪽으로 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무실,상업지구인
라 데팡스. 내 뒤에 신개선문 그랑 다르슈Grande Arche가 있다.
전위예술-_-의 일종으로 구름을 표현한 구조물이 보인다. 그랑 다르슈는 엄청 크지만
그렇다고 그 큰 건물을 단순한 문으로 쓰지는 않는다. 현재 미술관으로 쓰고 있다.
또 문 중간에 표를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의 최상층으로 갈 수도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파리 전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는 관계로(돈을 아껴야 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문 앞에는 아주 커다란 광장이 넓다랗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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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는 많은 수의 '구역' 으로 나뉜다. 지금 나는 4구역에 있다. 주위에 쇼핑몰도 있고 커피숍도 있었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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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본부도 들렀다. 예복 정장을 착용하고 말이다.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인 국제 기구에 직접 들어와 보니 나는 저절로 경건해지고
나의 비전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외교쪽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외국인들과 토론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외교이고 그들의 일이지만, 이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에게는 아득하기만 하다. 나에게는 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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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갔다. 지금 나는 정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장애로 그 장엄한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숨결을 완벽히 실감할 수는 없었다. 첫째로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거울의 방이 공사중이었고, 둘째로 겨울이고 또 춥고 흐린 날씨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의 금으로 장식한 침대며 가구며 벽, 천장, 문 등 모든 것들이 나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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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이 건물에서 나는 현대미술을 접했고,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사람을 해부해 놓고 그것을 전시해 놓는, 피가 낭자한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의 모습이 예술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솔직히 현대미술은 마음에 안 든다. 대신 나는 오르세 미술관의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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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가 지식이 부족하여 루브르 박물관을 피상적으로밖에 접하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모나리자와 니케아 여신 조각상을 보았기 때문에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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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기대를 많이 한 프랑스. 그리고 가장 기대를 충족시켜 준 프랑스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파리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호텔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여러 모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여행지가 바로 프랑스 파리였다고 나는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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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학여행에 다녀왔다.
정말 재미있다. 세상은 넓고, 즐거움은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10기 민족반 대부분과 국제반 일부분이 모여서 함께 간 수학여행에서
총 5개국-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네덜란드-을 다녀왔다.
사진 다 올리려니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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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외에는 관련이 전혀 없었던 내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KLM Royal Dutch Airlines라는 비행기를 탔을 때, 새롭고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젊은 승무원뿐만 아니라 아주머니 승무원들도 많아서 인상적이었고, 오히려 외국인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까지 12시간 정도 걸렸고, 시간의 흐름은 8시간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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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폴 공항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는 다시 환승을 하여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네덜란드의 첫인상은 매우 차분했다. 구름이 아주 짙게 끼고 비가 약간 와서 우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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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 스쿨에 갔다. 우리 학교의 최명재 설립자님께서 영국에 가셨을 때 이튼 스쿨의 학칙과 교육 시스템을 본받아 우리 학교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록 우리가 갔을 때에는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지만, 저 멀리 잔디구장에서 하키를 하는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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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템즈강이고 내 뒤에는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있다. 건물 참 멋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1300년대에 이런 건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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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병들이 교대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비가 안 와서 근위병 교대식을 무사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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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미이라)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2000년 전 몸뚱아리에다가 그 얇은 리넨 천을 감싼 것을 지금 나한테 보여준다니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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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로제타 스톤이라고 세 가지의 고대 문자의 해독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중요한 유물이다. 반쪽은 어디 갔는지 까먹었지만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선명한 상형문자는 나를 충분히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대영박물관에서 이것만 보면 성공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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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열광한 수학여행의 꽃, 뮤지컬 '맘마 미아!'
역시 영국이 맘마 미아의 원조 국가다. 특히 이 Prince of Wales Theatre는 맘마미아를
몇십년동안 계속 공연해 왔다고 한다. 주인공의 딸이 너무 귀엽고 매력적이었는데 가까이서 보지 못하여 아쉽다. 관객들은 대부분 50대의 유럽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같은 뮤지컬을 보고 나서 50대인 그들도, 10대의 후반에 접어든 우리들도 모두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뮤지컬은 가장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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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왔다.

  어제 11기 아이들이 왔다. 원래 오늘 오는 거였는데 계획이 바뀌었나 보다.

  아직 학교가 어떤지 잘 몰라 하는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는 인사가 참 중요한데, 아직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런가보다. 중학생 티를 벗지 못해서일까, 가끔 옆에서 관찰하는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못마땅한 말과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몇명 있었다. 이 아이들은 우리 학교의 전통인 선후배 문화 중 '혼정실에서의 1시간'을 과연 알고 있을까? 2월 말 쯤에 있을 것 같은데, 그 후로는 11기 후배들이 인사를 잘 했으면 한다. 10기처럼 여러 번 혼나고 난 후에야 겨우 고개를 숙이는 억지의 인사가 아닌, 예전의 다정한 선후배 문화를 재구성할 시초가 될 수 있는 그런 인사를 원한다.

  이번에 2학년이 된 선배로서의 나는 두 가지 다짐을 한다. 첫째로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오늘 지광현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이렇게 세게 공부해야 실력이 느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6단위가 다소 부담스러우나 항상 희망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 나가면 모든 일은 저절로 잘 풀리게 될 것이다. 한편 방학 때 논술 실력을 다져 놓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안 하려던 논술을 결국 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로 선도부로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1학년 때 선도부로서 모범적인 행실을 갖추지는 않았다. 나는 두상의 접선의 수직 방향으로 솟구치는 직모가 싫어서 웨이브펌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니까. 이제 2학년이 된 나는 그러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힌 잘못된 태도를 고치고 후배들과 동기들에게 모범이 되는 학교 생활을 하려 한다. 내 생각에도 나는 선배들을 선배로 대하지 못한 것 같다. 한국과 일본 등에 산재해 있는 딱딱한 선후배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나의 행실을 규정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선배들에게 '나쁘게' 대하지는 않고 좋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 학교,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학교에서 그러한 노력은 후배의 진심이 아니라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태도로 비춰진다. 나는 1년동안 체득한 이러한 경험을 되살려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한다. 여기는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는 학교이고, 너희들은 학교의 엄한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고.

  꼭 1년 전에 예비교육 할 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다. 학교에 온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설레이고, 불안하고, 사소한 것에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은 모두 기우(杞憂)이다. 2월은 3월을 준비하는 달이다. 2주간 수학여행으로 인해 3월을 준비할 시간은 남은 반쪽인 2주밖에 없지만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는 태도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


2006. 2. 3.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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