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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사관고등학교는 1996년 설립 이래로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고 있다. 나는 10기이다. 1,2,3,4,5,6기 선배들이란... 아득히 멀기만 하다. 그들은 이제 어른이다. 6기가 나보다 4살 많으니까 21살, 이제 사회에 입성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교의 초기 단계 (내가 정의하는 민사고 역사의 1장) 에는 최명재 설립자님 (우리 10기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께서 손수 학교의 동태를 파악하셨다. 학생들은 설립자님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인간적이지 못한 학교 시스템 속에서, 그 추운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의 겨울 속에서, 공부하다 졸면 설립자님께 끌려가 학교 분수대 물에 빠지면서 그렇게 자랐다. 그런 비인간적인 학교의 교육 방식이 놀라운 대학 진학이라는 결실을 맺어줬는지도 모른다. 6기,7기... 이제 8기 선배님들의 대학 진학 결과가 나오는 때이다. 이번 8기 국제계열은 행복하다. 많은 선배님들이 원하는 대학에 모두 붙으셨다. 이런 결과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나는 8기 선배님까지 학교의 군대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악을 쓰고 공부한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9기 신입생들이 150명씩이나 들어오면서 학교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설립자님이 안 계심으로 인하여 학교의 경직성이 많이 풀어졌으니까.

나와 내 친구 준이(둘다 10기 인문반)는 이번 토론 캠프를 하면서 많은 선배님들과 마주쳤다. 5기부터 9기까지. 그 중 5,6,7,8기 선배님들은 9기,10기와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여러 가지를 분석하고 생각해본 결과 나와 준이는 우리 학교의 역사를 1장과 2장으로 구분했다.

우리 학교는 시간적으로는 9기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역사, 다른 말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근거 1 : 인원이 갑자기 늘었다.

  원래 엄격하지만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했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워낙 적고, 설립자님 혼자서 엄청난 공을 들여 세우신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설립자님은 모두 가족처럼 지냈다. 하지만 설립자님은 불운의 사고를 당해 학교에 계시지 못하게 되었고, 재정의 압박으로 인해 9기부터는 정원을 150명으로 확 늘렸다. 설립자님이라는 집안의 가장 같은 존재가 없어지니까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여타 학교와 비슷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교장 이돈희 선생님은 설립자님과는 스타일이 정반대이신 분이라 학생들을 비인간적으로, 비이성적으로 몰아세우시지는 않으시다. 부드럽게 대해주신다. 교장선생님은 설립자님과는 확실히 다르다. 따라서 우리 학교는 교장선생님을 선두로 하여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정류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과 선생님과의 유대감이 부족해지고, 학생들끼리의 유대감도 약화되었다. 동고동락하며 우정을 깊게 쌓았던 8기까지의 선배님들과는 달리 9기와 10기 학생들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인맥을 유지하되 깊은 우정까지는 고려해 보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인원이 많으면서 우리 학교의 가족적인 분위기는 없어지고, 학생들이 모인 집단의 분위기가 팽배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학교 역사책의 페이지는 2장으로 넘겨진다.


근거 2 : 학생들이 엄격한 규칙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 근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제일 많다.

  정말 8기 선배님들이 들어오고 1학년 생활을 할때까지는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정말 사소한 행동에도 규칙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별 볼일 없는 행동과 사물들에 온갖 규칙을 적용함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 각각이 모두 뭔가 조직화되어 있고 경직되어 보였다. 가장 쉬운 예는 바로 학생법정. 체육 선생님 혹은 생활지도 선생님이 손수 학생법을 어긴 학생에게 회초리의 형벌을 가하는 풍경은 8기때까지만 있었고, 9기가 들어오면서 없어졌다. 교장선생님은 그런 회초리 같은 것을 꽤 싫어하시는 것 같다. 뭐.. 나도 싫어한다. 또, 9기부터는 학생들이 교모를 안 쓰고 선생님들이 사모를 안 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란다.(사실 좀 비효율적이고 보기에도 좀 그렇다.)

  8기까지는 후배가 선배한테 잘못 보일 경우 가차없이 선배들의 폭력이 난무했다고 한다. 혼정실(지하 1층) 은 무시무시한 형벌의 장소가 되고, 선배들 중 힘깨나 쓰는 분들이 후배들을 팼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은 민사고 설립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전통 때문에 8기까지의 선배님들은 엄격한 선후배 관계의 유지와 규칙의 준수 이 두 가지를 숙지하고 있다. 토론 캠프 중에 9기와 10기가 조금 캠프생들에게 부드럽게 대해서 한 5기 선배님에게 엄한 훈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 9기와 10기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엄격한 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지금 9기와 10기가 학교에 있고 올해에 11기가 들어오는 이 시점에서 그렇게 예전의 낡고 엄격한 규칙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9기가 들어오면서 설립자님의 부재, 회초리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엄격한 규칙이 없어지니 9기와 10기는 대체로 풀어질 수밖에 없고, 선생님들도 우리들과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허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불만을 표출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하여 규칙이 부드러워지고, 선후배 관계가 부드러워졌다. 1장에서 2장으로 전환했다.


  학교는 이제 새 패러다임에 적응하고 있다. 9기 150명, 10기 150명, 11기 150명 .. 인원을 보아도 그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눈으로 알 수 있다. 우리 학교는 변화를 거듭하며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대선배님들 중 일부는 지금의 우리 학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학교의 풍경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들이 학교에 다닐 때 학교 풍경이 정말 궁금하다.

  우리 학교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강원도 산골의 자립형 사립고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 역사의 1장은 8기에서 끝나게 되었다. 9기부터 우리 학교 역사의 2장이 시작된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우리 학교가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하리라 나는 믿는다.


2006.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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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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