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흔히 프랭클린 플래너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알아보기 위하여 매트릭스를 하나 제공한다. 가로축에는 긴급한 일과 긴급하지 않은 일, 세로축에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이렇게 써 놓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일은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가장 나쁜 일은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중요한 일' 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다. 중요한 일이라면 분명 플래너 사용법을 제안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도 나의 발전을 위한 일인데, 즉 내 식으로 말하자면 '한계적 발전'을 위한 일인데, 그렇다면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중요한 일은 언제까지나 내가 나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쓸 때에 대입되는 일이며, 물론 중요한 쉬는 일, 가족 혹은 친구들과 사랑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매트릭스를 하나 제시한다. 일단 가로축에는 힘든 일과 힘들지 않은 일, 세로축에는 즐거운 일과 즐겁지 않은 일 이라고 표시를 한다. 이렇게 하면 4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여기서 나는 가정을 몇 가지 할까 한다. 사람이 하는 일 중 그 사람을 발전시키는 일은 곧 그가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천재 위에 노력하는 자 있고 노력하는 자 위에 즐기는 자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을 가장 발전시키는 일이 곧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은 바로 그 사람이 즐기는 일이다. 또한 이렇게 즐기는 일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수반해야 한다. 전혀 땀이 안 나면서 즐겁기만 한 일에는 보람을 느낄 수 없고 따라서 나의 인격이나 능력의 성숙 혹은 발전 또한 없다.

1. 힘들지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일
  한마디로 내가 실천했을 때 곧 시간낭비로 이어지는 일이며, 내가 특별히 의도해서 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대부분 남이 시킨 의무로서의 일이며 힘들지 않기 때문에 내가 노력을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2. 힘들지 않지만 즐거운 일
  여기서 '힘들다' 라는 말은 나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골치 아픈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 할 때가 있다. 이러한 일들은 당신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이 더 발전할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가장 우선 선택해야 할 일은 아니다.

3. 힘들지만 즐겁지 않은 일
  선생님 등과 같이 나보다 인격적으로, 능력적으로 성숙한 분들이 나에게 부과한 중대한 업무와도 같은 일이다. 나는 분명 지금은 이 일을 하기 싫어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그때 이 일을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나게 하는 일이다.

4. 힘들고 즐거운 일
  내가 주도해서 나의 한계적 발전을 고려하여 정한 일이다. 이러한 일이 곧 나의 의무와 동일한 때가 된다면 나는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보통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스스로 정한다는 것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의 선택이 개입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자 종이를 하나 꺼내고 매트릭스를 작성해 본다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 데 이 매트릭스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작하면서
  오늘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당신.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알려준대로 전날 밤 15분 정도 시간을 내어서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다음 내일 할 일을 결정하는 일을 실천하는 당신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당신은 자부하지만, 막상 계획만 열심히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의 친구 H는 나의 권유로 플래너를 쓰기 시작했으나 3개월만에 'X표가 너무 많아서 플래너를 보면 막 화가 난다. 난 내 스타일대로 살런다' 하고 플래너를 덮어버린 적이 있다. 비단 H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은 할 일이 많다는 것에 압박을 받아 천천히 쪼개서 할 일을 내일에 잔뜩 몰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혹은 나의 능력을 너무나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 갑자기 튀어나올 지 모르는 약속 등에 의해서 내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기기도 한다.

  플래닝 가이드가 친절하게 제시해주는 '목표는 SMART하게 설정하라' 라는 일종의 조언이 있다. 플래너에 속지로 달려있는데, 그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 어떻게 당신이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있다. 그 중에서 나는 나의 경험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R, 즉 Realistic하게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Realistic한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플래너 가이드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마치 유치원생에게 '한마디로 요약되는 철학적 진리' 를 짧게 말해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계획하는 법, 좁게 말하면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하는 법을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말해 봄에 있어서 이 R에 대한 나의 사색을 먼저 말해볼까 한다. 언행일치라고 일단 말을 내뱉었으면-플래너에 계획을 적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기에, 그리고 실천적인 자세는 곧 우리들의 발전을 가져오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하루
  나는 분명히 오늘은 쌩쌩할 거라 믿었건만, 이를 어쩐담? 갑자기 졸음이 밀려온다. 비록 공적인 일, 즉 학교 숙제라던지 회사의 브리핑 같은 일에 있어서는 졸음을 꾹 참고 정신력으로 굳건히 버틸 수 있지만, 내가 나를 위해 계획한 일에 있어서는 이렇게 졸음이 밀려올 때 속수무책이다. 또한 예기치 않게 아는 선배님께서 저녁을 사주실 때가 있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오면서 크리스피 크림 1박스도 사올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이른바 회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회식은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회식이 내가 세워 놓은 계획을 성취하는 시간을 빼앗는다는 데 있다. 위와 같은 상황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의 연속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다. 그러니 오직 내 능력만 믿고 계획을 엄청나게 많이 세워놓지 마시길.

나를 플래너에 모두 표현하자 - 한약 챙겨먹는 일까지도
  플래너에 내가 하루동안 하는 모든 일을 다 적자. task list 칸이 빽빽한 글씨로 채워지게. 심지어 한약 챙겨먹는 일까지도 적자. 의무에 쫓겨 살다가 하루에 두 포씩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한약을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한약 얘기는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이다. 플래너를 보고 내가 어느 정도로 계획 실천에 얽매여 있는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 즉 '의무'라고 하는 것만 플래너에 적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의무와 싸워 이기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활동을 같이 하는 '인간적인'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 마치 니체가 '짜라투스트라' 에서 의무와 싸우는 인간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인간이 진보하면 실존을 찾아나서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플래너에 의무(주로 A로 표시되는 일들)는 물론, 나를 위한 중요한 일(주로 B로 표시되는
일들)도 적자. 그리고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C로 명명된 일들)도 적자. 나는 이제부터 플래너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플래너가 나의 할 일을 시킨다. 이러면 다시 우리가 기계가 되는 거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잘 따져보라. 플래너가 나에게 시킬 '내가 할 일' 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플래너의 명령을 따르도록 약속하는 과정이 지금 내가 역설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러한 작업을 거치고 나면 나는 리스트에 써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좀 더 현실적인 플래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은 그 전날 딱 한 번이 아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들이라고 말한 데 이어 우리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도 말하고 싶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흔히 전날 밤에 다음날의 계획을 모두 세워놓고 실천하리라 다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다음날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너무 욕심내서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라는 충고를 건네고 싶다. 전날 밤에 내일 할 일의 30%만 계획해 놓고, 다음 날 아침부터 점심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할 일을 리스트에 추가하는 방법은 어떨까. 나의 상황을 봐 가면서 계획하니 현실성을 좀 더 높일 수 있다.

 나는 플래닝의 묘미가 '내일의 나를 예측하고 그 예측이 들어맞을 때'라고 생각한다. 즉 내일의 나의 모습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 다음, 다음 날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계획한 모든 일을 끝냈을 때 그 쾌감,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는 미륵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예측 작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을 나는 제안한다. 다음 날을 일기예보의 1주일로 바꾸어 생각해 보았을 때 기상청이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는 게 정확한가, 앞으로 1주일간의 날씨를 예측하는 게 정확한가에 대한 답은 금방 나온다. 당연히 전자 쪽일 것이다. 플래닝의 현실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나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하루를 마치면서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기쁨의 한마디가 저절로 나올 때 우리는 R의 가치를 획득함과 동시에 우리를 향한 자기 존중까지도 꾀할 수 있다.


마치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을 써 놓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당연한 말을 어렵게 풀어 쓴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이 '썰' 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나를 엄습하여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주눅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당연한 진리를 다시 말하면 이제는 돌을 맞게 될까. 현실적인 플래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세운 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플래너는 단순히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의 발전을 위한 일을 알려주면서 나를 점점 발전시키는 역할도 같이 한다. 플래너를 통해 발전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 역시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부를 안 할때 우리의 마음은 풀어진다. 하지만 어떤 일에 몰두해야 되기 때문에 생기는 피로 같은 건 없다.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 이런 시간에는 일부러 졸지 않으려 치켜뜬 눈에 힘을 빼도 졸리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한 곳에 온 정신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는 때, 그 때를 공부하면서 돌이켜 보았을 때 공부하는 나는 얼마나 괴로웠는가?

  이제 다시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는 당신. 책상 앞에 앉아 천천히 정신을 집중시킨다.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당신의 반경 50센티미터 주위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을 뿐 다른 곳은 어두컴컴해서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당신은 책 속으로 빠져들어 책 속의 줄글을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지식을 얻을 준비를 하고 풀어진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너무 공부에 몰두하면 오히려 졸리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그리고 깊은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사색을 하듯 공부하면 졸리다. 풀어진 상태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리를 맑게 하고 잡념을 흘려보낼 뿐, 나와는 친근한 사이에 있지 않았던 저 먼 곳의 새로운 지식을 정수리에 들이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할 때만큼은 다르다. 지식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생각에 잠겨 집중 상태로 들어가려 하면 졸리다. 단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심취하듯 공부해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그러한 공부에서는 오히려 미친듯이 빠져드는 게 좋다. 그러나 다른 공부에서는 그렇지 않기에 방관자의 입장에서 공부하되, 습득할 지식은 다 습득해야 한다.

  공부는 그렇기에 공부 안 할때와 같은 마음 상태와 컨디션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책에 몰두하지 않아도 있는 지식을 남김없이 챙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정확히 읽고, 마치 문장 사이의 글자, 글자 안의 자모 하나하나를 돋보기를 가지고 들여다보며 읽는다면 그 텍스트에 집중할 수는 있어도 집중을 통해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래서 졸게 된다. 반면 텍스트를 아무 생각없이 소리내서 읽어보면 당신은 그렇게 공부에 몰두하지도 않으면서 책의 내용을 습득하고 있게 된다. 공부를 안 할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말을 하고 남의 이야기도 특별히 귀 기울이지 않고 다 듣는 것처럼 공부할 때에는 나의 '아무 생각 없는 상태' 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지식을 배우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떨까.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도, 풀어진 상태에서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TV를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상태에서도 나의 뇌는 정신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칼럼 >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실적 근거가 불완전한 주장의 정당성  (0) 2008.07.26
현실 속에서의 학문  (0) 2008.07.26
지식을 잘 습득하려면?  (0) 2008.07.26
갑자기 생각이 떠오를 때  (0) 2008.07.26
공부를 통한 자기 존중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루에 세워놓은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갈 때 가장 첫째로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일 하나하나를 밀도 있게 해나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밀도 있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다
2. 하루 중에 일정 시간을 만들어 놓아 그 시간 안에 특정 일을 모두 모아 놓고 진행한다


  이 중 2. 가 더 중요하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컴퓨터와는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번 상을 차려 놓았으면 식탁 위의 모든 반찬을 그때 모두 골고루 먹어치우는 일이다. 효율성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 한 상에 모두가 둘러앉아 한꺼번에 먹는다. 절대로 몇 명만 다른 시간대에 먹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가 밥 한 끼를 먹는 일에 밀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하루 동안 책상 앞에서 자료를 찾아 읽는 일, 책 한 권 안의 분산되어 있는 과제물을 찾아 끝내는 일 등에서는 '한 상에 둘러앉아 한꺼번에 먹는' 식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가?

  밀도 있는 하루가 필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공부일 것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정해놓은 시간을 온전히 나의 자유 의지로 관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를 밀도 있게 계획하는 것의 성공 여부는 오직 나에게만 영향을 받는다.
 
  밀도 없는 공부의 예는 주위에 많다. 평소에 공부하면서 앞에 TV를 놓고 TV를 본다던가, 누나 혹은 형이나 동생과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빨리 할 수 있는 공부를 지체시켜 결국 늦게 잔다. 반면 혼자 2시간만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열람실 좌석에 앉아 할 일을 모두 끝내버리고 일찍 자는 사람도 있다. 결과의 품질은 같을지 몰라도 피로도와 시간 대비 효율성에 관하여는 밀도가 있는 방법이 훨씬 뛰어나다.

  잠이 불규칙하다던가, 공부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틈틈히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씩 즐겨 쓰는 방법인데, 20분 후 일어나겠다고 알람을 맞추어 놓아도 20분 후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주위에서 강제로 내가 잠을 휙 달아나도록 하는 요인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혼자 일어나기가 어렵다. 학교에서는 나도 20분 정해놓고 자면 정말 딱 20분만 잠 자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하루에 잠을 자는 시간은 밤으로 몰아야 한다. 마치 실린더에 담긴 용액을 마구 흔들었을 때 기포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한 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잠자는 시간을 한 곳에 모아서 배정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잠을 자면 잠자는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잘 집중이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밀도 있는 생활 계획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잠이 아닐까 한다. 공부를 하기 위한 체력은 운동이 10%만 좌우하고, 음식이 50%를 차지하고 그 다음 수면이 40%를 차지한다고 본다. 운동의 비중이 이렇게 작은 이유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졸면서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질 뿐더러 내 의지로 이를 악물고 버텨 보겠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다. 졸음을 이기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체력의 한계점에 다다라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밀도 있는 삶은 매 순간 사람에게 활력을 심어준다. 평소에는 공부를 느슨하게 하다 시험이 2주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열심히 하여서 좋은 결과를 내는 이유도 공부의 밀도의 차이에 기인한다. 큰 시험을 앞두면 사람의 마음부터 바뀐다. 마치 큰 전투에 참가하는 戰士의 마음을 갖게 된다. 결국 하루 중 공부하는 시간에는 공부만 한다. 결과는 당연히 좋다. 이와 같은 행동 패턴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특정 시간을 잡아놓고 그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모아서 끝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꾸만 만들기
기회가 생겼을 때 기회를 잡아라.
알바나 봉사활동을 같이 한다면,
혹은 같은 동아리에 있거나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든 서로 한마음이 되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다.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과 가까워질 수는 없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주도적으로 행동하라.


자주 웃기
유머를 잃지 않기

미소는 평범하고 특징없는 사람에게도
천사의 가면을 씌워준다.
웃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그리고 그 복은 당신의 인간관계 전반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머는 대화에서 빠질 수 없다.
나를 낮추고 그녀를 높이는 유머도 좋고,
가끔은 논리적으로 웃기는 유머도
그녀가 나의 지적 수준을 암시하도록 유도한다.


오늘 한 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물어보기
그리고 항상 안부를 묻기

이것저것 캐묻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대화의 시작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녀를 보고 생각나는 말을
편하게 던져 놓고 대화를 시작하면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주의사항이 있다. 대화를 갑자기 뚝 끊지 마라.
어색한 분위기는 절대 만들면 안 된다.
 

내가 잘 하는 일을 가르쳐주기
여자는 남자의 외모를
남자가 여성에게 대하는 것처럼
우선시하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능력을 본다. 어른이 되면
능력에 '돈' 도 포함되지만, 일단은
능력과 지위를 먼저 생각한다.
내가 어떤 한 분야에 능숙하고,
그녀가 그 분야에 서투르다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일은
당연지사.
다만 그녀가 그 분야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존중해주어 옆에서
그녀의 모든 일에 칭찬을 해라.


인간미가 넘치도록 챙겨주기
나와 그녀는 인정으로 묶여 있어야 한다.
서로가 자신의 매력만 보여주려고 노력하면
둘 사이에 참모습의 맞교환이 없다.
내가 먼저 나서서 나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라.
쉬운 일부터 시작해라.
졸린 그녀에게 커피 타주기,
우산 같이 쓰기, 무거운 가방 들어주기 등등.
내가 그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겠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항상 파악하기
대화할 주제가 바닥났을 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체크해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거나,
나에게 원하는 일을 내가 해 주자.
혹은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원하게 만들수도 있는데,
같이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오면
내가 '아이스크림 먹고싶어?'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귀여운 장난을 치거나 일부러 작은 난관을 만들기
항상 건전하고 행복한 일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다면 얼마나 지루한가.
그러한 사이는 진실하지 못하고,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장난을 칠 줄 알아야 한다.
단 서로가 즐거울 수 있도록.
또한 일부러 어려움을 만들어내서
같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겪음으로써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한번쯤은 밤늦게 만나 보라.
곧 어려움이 생기고, 그것을 같이 이겨내는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편하게 대화하기
심각한 대화는 일단 훗날로 미루기

'너 나 어떻게 생각해' 같이
대화의 주제가 '너와 나'인 대화는
자칫 장미빛 로맨스로 빠지거나
혹은 심각한 말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같이 인사동 거리를 거닐면서
주위에 보이는 것들을 같이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함께 나눈다면 그런 대화가 가장 좋다.


비언어적 측면에서 매력을 발산하기

말로만 호감을 표하는 사람은
절대로 매력적이지 않다.
소위 매너남이 되는 방법도 좋다.
다만 가식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엄청나게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힘껏 들어 선반에 올려놓을 때나
그녀가 준 커다랗고 눈에 잘 뜨이고
유치하게 생긴 인형을 내 가방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모습을 얼핏 보여줄 때
나는 비언어적 측면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완곡한 표현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전하기
마지막으로, 평소에 그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일을 잊지 마라.
단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는 게 좋다.
그녀에게 심취해 있고
하루종일 그녀 생각만 나더라도
완곡한 표현을 써라.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당하게
표현할 날이 올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마키아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식을 잘 습득하려면?
그 진리를 완벽하게 터득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 그 지식이 불변할 진리로 고정될 것임을 안다
*지식의 단편 : 우리가 배우는 지식을 하나하나 개체화시켰을 때 개체를 지칭.
  지식의 단편 하나를 배울 때에는 그 지식이 명료하여 다른 생각으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여라. 지식의 단편을 배우는 과정은 새로 산 TV의 채널을 한 채널로 고정하는 과정과도 같다. 채널이 뜻하지 않게 마구 바뀐다면 그 지식의 단편(TV)은 쉽게 잊어버리고, 따라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한 번 배울 때 확실히 배워야 한다는 말은 지식을 불변할 진리로 고정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기억해내려고 하는데 그 내용과 비슷한 다른 내용과 자꾸만 헷갈리면 결국 그 내용은 물론이고 그 내용과 헷갈리는 다른 내용도 끄집어내어 지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지식을 '지식 단편의 네트워크' 와 연결시킨다
  모든 지식의 단편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들이 연관성을 갖게 되면서 지식의 단편은 생생히 기억 속에 남는다. 연관성이 없는 지식의 단편은 일시적으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새로운 한자를 배우고 그 한자가 어떤 단어에 쓰이는지 모른다면 그 한자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없다. 그 한자, 즉 지식의 단편은 지식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자를 한자 자체로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 한자를 쉽게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메타포'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메타포' 가 지식과 지식, 사물과 사물을 서로 연결시켜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지식이 있으면 그 지식에 뒤따라 연상되는 다른 지식, 그리고 그 지식에 뒤따르는 지식.. 이렇게 지식과 지식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으면 나는 지식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게 된다.
 
- 그 지식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안다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공부할 때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면 책에 써 있는 글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나는 지금 왜 공부를 하는가,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나 좋은 점수가 있어서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지식 습득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고 따라서 지식도 잘 습득할 수 있게 된다.
 
- 오감으로 그 지식 습득을 위해 헌신한다
  단순히 눈으로만 책을 읽으면 뇌의 기능을 온전히 지식 습득에 치중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의 오감을 체크해 보아라. 책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주위의 다른 재미있는 사물에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가. 도서관의 저 멀리 앞으로 보이는 재수생이나 대학생이 너무나도 이뻐서 공부를 할 수가 없는가.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음악이 있는가. 그 음악의 가사가 너무나도 좋아서 가사를 음미하느라 제대로 책을 읽을 수가 없는가. 아니면 리듬에 심취하여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고 있는가. 옆에 껍질을 까지 않은 사과를 놓고 공부하면서 가끔씩 먹는데 자꾸만 껍질이 이 사이에 걸리는 게 마음에 걸리는가. 사과가 갈변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철지난 사과처럼 떫떠름해서 도저히 못먹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후각과 촉각은 비교적 뇌의 기능이 온전히 지식 습득에 치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두 감각도 공부할 때만큼은 아무런 대상에도 점유된(occupied) 상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위와 같이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온전한 지식 습득으로의 집중을 방해한다면 지금이라도 고쳐라. 시선은 오직 필기구와 책과 같은 공부와 관련된 사물에 한정되어 있어야 한다. 음악은 되도록이면 가사가 없는 Instrumental 음악으로, 꼭 클래식이 아니어도 괜찮다. 단 리듬이 나를 사로잡는 음악이면 곤란하다. 음악이 흘러나와도 무관심할 수 있고, 오히려 그 음악이 나를 공부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면 그 음악을 들어라. 지식을 습득하면서 되도록이면 씹어먹는 음식은 먹지 말고,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은 종류의 당류가 뇌의 활동에 좋은 것 같다. 또 더운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도 좋다. 그리고 후각을 무시하지 말라. 어떻게 보면 시각 다음으로 우리의 오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이 후각이다. 우리는 항상 숨을 쉰다. 이제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는가? 놀고 있는 후각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로마테라피가 좋을 듯하다. 집중을 도와주는 향을 골라 보자. 참고로 나의 경우에는 꼭 아로마테라피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조금 뿌리고 공부하니까 집중이 잘 되었다.
 
후기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요? 고등학교 생활이 뭐 그렇습니다. 이 때 아니면 공부를 언제 하겠습니까. 저보다 나이가 6살 정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고등학교 때가 제일 편했고, 제일 재미있었고, 가장 무언가를 배우려 할 때 머리가 잘 돌아갔던 때라고 말이지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칼럼 >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실 속에서의 학문  (0) 2008.07.26
공부할 때에는 공부 안 할때처럼  (1) 2008.07.26
갑자기 생각이 떠오를 때  (0) 2008.07.26
공부를 통한 자기 존중  (0) 2008.07.26
공부법 여러가지 (3)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모든 것을 편하게

칼럼/삶 2008. 7. 26. 19: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7개월이 조금 지났다. 오직 공부만을 하며 초기의 민사고 학생들처럼 그렇게, 미래를 위해 나를 설계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며 고등학교 3년 생활을 보내자는 나의 의지가 처음 그 화려한 시작을 알린 후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소심한 성격을 고쳐 활달해진 나, 그렇다고 처음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까지 소심한 성격과 함께 버려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본다. 2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라는 내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고 큰 시험을 치르고 난 후 오늘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열심히 논 다음에야 진지한 자기 성찰이 뒤따를 줄은 나도 몰랐다.


 오늘 나는 나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나 자신을 때리기도 한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지만 무엇보다도 앞서는 감정은 이제는 진지하게 나의 꿈을 좇아 살아가자는 내적 성숙이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많은 어려운-학업이 대부분이겠지만-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모든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그 자세로 남은 고2 생활을 마쳐야겠다고 순간 생각했다. 자신이 할 일에 충실하는 학생으로 꾸준히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편안함을 가져다주는지, 열심히 공부하여 그 대가를 조금이라도 맛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나는 조기졸업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1년 먼저 졸업하고 어떻게 보면 1년동안 할 공부를 못 하고 바로 대학으로 가는 형태이다. 바로 위 9기 선배들의 경우 참 조용하게 공부 열심히 하셨다. 그리고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얻고 지금 여러 대학에서 공부중이다. 나도 이들처럼 되어야겠다 다짐한 것은 1학년 생활이 끝나고 추운 겨울이 찾아왔을 때, 2006년 2월 쯤이었다. 그 후로 나의 목표는 뚜렷해졌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달려갈 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따라서 열심히 달려도 달리는 것에 회의감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고한 목표가 있음과 동시에 그 목표를 향해 충실히 달리는 내가 있다는 것에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 계속 이러한 삶을 유지하면 종착지, 곧 나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이 생각이 나를 행복하고 또 편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 뜻하지 않은 불안함을 느꼈다. 오늘 1시에 기숙사에 모여 선도부 10기, 11기 모두가 '삼정' 에 갔다. 많이 먹고 나서 노래방에도 갔다. 한 2시간 쯤 놀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엄청나게 열심히 불렀다. 노는 순간에야 나도 즐겁고 친구들도 후배들도 즐겁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나의 마라톤 궤적에서 이탈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표를 좇아 달리는 오랜 자신과의 투쟁의 궤적에서 잠시 왜곡되어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났고, 남은 건 1주일 동안의 party time이라서 순간 궤적을 이탈했나?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은 먼데, 미리 종착점을 이곳으로 규정지어 비정상적인 안위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과 함께...


  결국 나는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1월 초, 그러니까 조기졸업 전형 합격자가 확정될 때까지 학업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함을 찾자는 결심을 했다. 놀 때 당시에는 즐겁지만, 그 후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자신의 내적 성숙에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편안함' 은 자신의 의무와 충실히 싸우고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역설적일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 힘든 공부를 하는 학생의 삶이 '편안한 삶' 일까? 하는 반문도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마음 상태는 역설을 고귀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6. 7. 9.

'칼럼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에는 떨림이 있어야 한다  (0) 2008.07.28
항상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나는 성장한다  (0) 2008.07.28
눈을 높이면 성공한다.  (0) 2008.07.26
바깥 세계와 소통하는 사람  (0) 2008.07.26
파란만장한 삶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사람은 모두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퍽 떠오르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쉽게 잊을 수 있는 소위 '잡념' 이 아니라 뇌를 강타하여 사색의 깊은 곳까지 이르게 하는 그러한 생각, 우리는 지금 할 공부가 있는데도 뜻하지 않게 그러한 생각의 세계로 빠져들 때가 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내 인생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만한 대화를 친구와 한 후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같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갑작스런 사색에 사로잡힐 때의 구체적인 예이다. 이렇게 나의 주된 의무가 계속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 때문에 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없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이와 같다.

 우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충분히 깊게 하라. 그리하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면서 얻을 수 없는 지식이나 삶의 교훈을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서 우연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억지로 그 생각을 멈추려 한다면 그 행동은 뇌의 본성을 거역하는 행동과 같다.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는 데 '아, 그래도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을 억누르려 한다면 더욱 더 그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번 생각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게 오히려 좋다. 좀 더 경제학적인 비용-편익 분석에 대입하자면 다른 생각에 빠지면서 잃는 의무 이행의 시간, 즉 비용보다 생각을 깊게 하면서 얻는 삶의 방향 설정, 삶에서의 깨달음, 즉 편익이 더 크다. 생각의 끝을 봤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자.

 다음 단계는 그 생각을 글로 풀어 쓰는 단계이다. 즉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자 마자 바로 비워내기 시작하는 작업이다. 글로 풀어 쓰기의 대표적인 예로 블로그 포스팅이나 일기 쓰기 등이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꼭 글로 풀어 쓰면서 생각을 비워낼 필요는 없다. 다른 수단이 많이 존재할 것이지만 지금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글로 다 쓴 후, 생각을 모두 비워낸 후에는 '이제 본연의 의무로 돌아가야겠다.' 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와닿을 것이다. 이 느낌이 오지 않으면 생각을 더 비워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을 비워내고서야 다시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의무의 수행-대표적인 예로 공부-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공부를 많이 못했으니 이제부터는 더욱 열심히 해야지.' 라는 결의가 마음 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뇌를 강타하는 생각이 반드시 학업 능력을 좋게 만든다던지 하는 이득을 가져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첫째로 삼아야 할 일은 의무와 싸우는 일이며, 그런 점에서 잠시 다른 생각의 길로 빠지는 것은 부정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색은 곧 나의 성숙을 낳으며, 결국에는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나는 반드시 그러하리라 믿는다.

'칼럼 >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할 때에는 공부 안 할때처럼  (1) 2008.07.26
지식을 잘 습득하려면?  (0) 2008.07.26
공부를 통한 자기 존중  (0) 2008.07.26
공부법 여러가지 (3)  (0) 2008.07.26
공부법 여러가지 (2)  (0) 2008.07.26
Posted by 마키아또
,

파란만장한 삶

칼럼/삶 2008. 7. 26. 18:17
절정과 추락이 없는 인생은 무료하지 않습니까?
약간은 가파른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며
'저 멀리에는 다시 신나게 뛰어내려갈 수 있는 내리막길이 있을거야.'
라는 작은 희망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는 삶,
길이 너무나도 평탄하고 곧아 천 킬로미터 앞에 무엇이 보이는지
이 나쁜 근시안으로도 확연히 볼 수 있는,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 오히려
달려가기가 싫어지는 삶.
 
제가 이번에 민족제를 준비하면서 느낀 바입니다.
이번에 저는 너무나 바빠서 민족제가 있기 전 1주일 간
정말 공부라는 것에 손도 못 대고 지냈습니다.
이제는 민족제도 끝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 하는데,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심히 놀고 난 후에 공부하는 것이 아무런 즐거움 없이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들께서 흔히 이런 말을 하시죠.
열심히 놀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라고..
그 말이 정말 맞습니다. 그리고 추락이 있은 후의 재도약은
평탄한 길을 달릴 때의 추진력에 몇 배에 달하는 추진력을 우리에게 선사해 줍니다.
결국 평범한 삶보다 '파란만장한 삶' 에 안주하는 사람이 더욱 더
인생에서 많은 성공의 열매를 따놓을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모두 파도치지 않는 잔잔하고 무료한 인생에
절정과 추락이 반복되는 파도의 힘을 불어넣어 봅시다.
처음의 시작은 절정이든 추락이든 상관없습니다.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자는 끝내 쇠락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의 로마 제국이 그랬고,
진시황제의 거대한 제국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극도의 고통과 절망을 겪은 자는
다시 일어서기 마련입니다.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이 그랬고, 6.25 전쟁 후의 한국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을 좀 더 광대한 안목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공도 실패도 모두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한 우리들이 인생의 무대에서 조용히 퇴장할 때
'나는 결국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
유머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놀린다.
재치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놀린다.
풍자가는 세상을 놀린다.

  유머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함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떼어 놓을 목적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낼 목적으로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담당한 일에 압박감을 느끼거나 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리고 유머는 심각한 태도를 없애주어 결국 회의와 같은 곳에서 일을 빨리 진행시키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유머가 없이 경직된 회의 질서와 이미 주어진 지식을 가지고 회의를 주도하면 질서에 순응하는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창의적이지는 않아도 문제의 해결에 적합한' 답을 제시해줄 뿐이며, 그 때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경직된 회의에 지루함을 느껴 옆의 사람들과 계속 떠들고 회의의 진행을 방해한다. 바로 이 때 누군가의 유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유머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어 항상 진취적인 논의를 진행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너무나도 유머에 동참하여 본 문제에서 멀리 이탈하거나, 회의의 기본적인 규칙을 잊어버렸을 때 회의는 유머가 없는 진지한 회의보다도 더 비능률적으로 진행된다.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유머 감각은 없지만 정연한 회의 질서에 잘 적응하여 열심히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 그리고 둘째로는 유머 감각이 많고 고리타분함을 싫어하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유머가 없는 회의가 진행되어 자칫 창의적이지 못한 아이디어로 협의점을 모을 수가 있고, 후자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각자 개성이 너무 강해 회의의 질서가 어지럽혀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적당히 섞여 회의의 형식적인 면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답안으로 이끌어갈 노력을 회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의의 의장은 기본적인 회의 질서 유지와 적당한 유머를 유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 간의 균형을 유지할 의무를 지닌다. 무조건 독단적으로 사람들에게 진지한 자세로 회의에 임해주기를 바라는 태도도 잘못되었으며, 의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회의자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방관하여 회의의 공간이 무의미한 농담만이 오고가는 공간으로 바뀌게 내버려두는 태도 또한 잘못되었다. 유머의 내용이 회의의 내용과 완전이 별개의 내용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실은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내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회의의 본 주제에서 이탈한 대화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회의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회의의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머에 대한 중용의 자세를 가지고, 질서 유지가 합의점 모색의 지름길임을 뇌리에 깊게 인식한 상태에서 적절한 때에 유머를 던져주어야 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에는 필요없는 잡담을 자제하고 진지한 회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좋지만, 문제는 회의에서 그 아이디어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느냐에 있다. 

Posted by 마키아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