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 평전(마리 안느 레스쿠레, 살림)

 당시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수업과 생활은 지금과는 달리 엄숙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학은 부득이한 선택의 장소이거나 별 생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었다. 대학은 일종의 정복의 대상이자 목표였으며, 하나의 이상이었다. 대학 구성원들은 대학이 상징하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에게만 예비된 세계에 적합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증거들, 예컨대 대학 보고서와 대학생들의 기억들은 교수의 권위, 지식, 조국 등을 학생들이 하나같이 존경했음을 매우 단호하고도 정중한 어투로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가 그토록 젊은 나이에 ENIO의 책임자 자리에 임명된 사실을 부당한 특혜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개의 경우 이 자리는 지중해 연안의 학교장들이 말년에 일종의 보상 차원으로 임명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레비나스 때문에 근 30년 동안 그 누구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교장 레비나스는 학생들의 성격을 면밀히 관찰할 줄 알았다. 그는 또한 그들이 가진 '지중해적' 개인주의를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학교의 복습교사 제도를 없애는 대신 학생들이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 지중해 쪽 국가의 학생들이 정말 자습을 선호하나요?

 '오타르키아(autarkia)',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라는 고상한 가치에 관계된 고전적 사유에 강하게 저항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완전함이라는 것은 하나의 체계에 해당되는 것이지, 한 존재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숙생들과 더불어 토요일 점심을 함께 하는 습관을 지켜나갔다. 이때 그는 다른 학생들이 앉는 테이블과 직각을 이루는 헤드 테이블에 부인과 함께 앉아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 매우 뛰어난 학생들 몇몇만이 그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헤드 테이블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거부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이 토요일 식사에서 학생들이 그의 주위에 매우 가까이 자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갈등을 싫어했을 뿐 아니라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양쪽 편 모두 이러한 종류의 대립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사태는 거기에서 멈추어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후일 레비나스는 1968년 5월 사태 속에서 자신의 주된 철학적 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학기 초에 누구도 발표를 자원해서 하지 않으려 할 경우 그는 즉석에서 세미나를 휴강시켜 버렸다. 발표가 진행될 때면 그는 발표자와 함께 깊은 생각에 빠졌으며, 종종 자신의 생각에 도취되어 발표를 방해할 만큼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그래서 발표가 매우 어렵게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레비나스가 70년대 말(거의 말년)에 이스라엘에 처음 발을 딛고 그의 새로운 유대주의를 전파했을 때 그를 호의적으로 받아준 곳은 일란 종교대학 하나뿐, 그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독일 철학의 요소, 시대에 뒤떨어진 히브리어, 하시디즘에 대한 반발 등은 '안 먹혔다.' 

..그가 앵글로색슨 전통에 완전히 무지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근본적인 이유로 보인다. 이스라엘 문화의 대부분은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이 어떻게 갈려있나를 보는 눈은 어느 분야에서나 중요한 것 같다.

특히 1929년 다보스 대토론회는 내게 이상적인 대학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를 남겨주었다.

 1929년 다보스(Davos)에서의 대토론회: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샤를르 블롱델은 레비나스를 위해 15일간의 체류비를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일을 추진. 목적은 공부에 지치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높은 산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학문과 스포츠 사이에 더욱 더 바람직한 합일점을 찾는 것(토론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알프스산맥에서 스키를 탔다) 마지막으로 국적이 서로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마지막 목적은 지금에도 흔히 유효하다.

 이 학술 모임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위한 평화적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다보스의 첫번째 모임은 쿠르하우스(Curhaus) 호텔에서 열림. 개막일의 주인공은 알베르 아인슈타인. 스트라스부르 대학은 학사자격을 취득하였고 곧 D.E.S.를 받게 될 문학 전공 학생 한명과 외국 출신으로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곧 박사학위를 받게 될 철학과 학생 한명을 선발했다. 이들 두명의 학생 중 외국인 학생이 레비나스였다. 모든 참가자들은 벨베데르 호텔에서 머물렀고 덕분에 모임이 매우 용이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모든 학생들은 양복과 구두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보스 시당국은 이 모임의 지적이고도 정신 위생적인 부분을 위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슬로프 이용권을 지급했다. 모임이 끝나면 술집으로. 다보스의 두번째 모임에서 하이데거와 카시러의 역사적 논쟁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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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점점 논쟁적인 성격을 갖도록 교육받고 있다. 그리고 비단 학문과 토론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성을 감성보다 우위에 놓기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일이 주어지면 그것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그것의 장점보다 먼저 보게끔 유도당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점점 똑똑한 사람을 요구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갖가지 논쟁적인 설(說)들을 늘어놓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라며 그러한 논쟁이 활성화되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나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며 즐거움을 먼저 찾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에 더 익숙해진 21세기의 젊은이 중 하나다.

 나도 그리 좋은 성품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대학교 사람들은 특히나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따지거나 불평부터 먼저 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 아침 혹은 어제 나에게 있었던 일에 대한 회상이다.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자기의 어제 일에 대해 늘어놓는다. 자기가 그 일을 통해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그 사람은 자기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위주로 설명을 한다. 어제 보았던 영화는 별로였어, 어제 수업을 듣는데 너무 지루했어, 그 조교/고학번/복학생은 왜 그리 말이 많니? 우리 교수님 완전 미쳤어. 과제 왕창 내줘. 그래서 지금 피곤해. 아 지금 돈 없어 밥도 아껴 먹어야 돼. 등등의 많은 말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실없는 웃음을 지어보며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이 논쟁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만을 느꼈던 그 일 속에 수많은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눈앞에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사람이 마냥 즐겁고,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운 말만 해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연예인이고 정치인이지 현실 세계의 대학생이 아니다. 삶에는 당연히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공존하며, 밝은 면을 어두운 면보다 더 많게 끊임없이 비율을 조절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하지만 논쟁적인 성격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에서조차 부정적인 상황을 강조하고, 우리 앞에 창조해 놓은 성을 주먹으로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삶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쟁은 토론 시간에만 하고, 논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성의 힘은 수업 시간에만 발휘하도록 평소에는 잠재적으로 감추어 두어라. 평소에 그 이성과 논리를 써먹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머리가 부식되지는 않는다.

 평소에 대화를 할 때에는 즐거운 면을 먼저 보고, 나의 기쁜 마음을 먼저 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이러한 자세는 수많은 경구 중 하나인 'Look on the bright side.'의 실천 원칙이다. 그리고 밝은 면을 먼저 보기 위해서는 평소에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지, 요즘 내가 즐겨듣고 있는 음악과 즐기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어제에 있었던 끝내주는 경험은 무엇이고 그것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등의 감정적이고,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말들을 주로 하면서 웃으며 살아야 하겠다. 무표정 혹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한 뒤 논리적인 불평을 곧잘 유창하게 시작하는 인간상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이다. 물론 나 또한 논쟁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조금 더 감정을 앞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성을 감정보다 앞세운 사람으로는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ㅠㅠㅠ 이제는 안 그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 실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밝은 면이 샘솟을 수 있는 곳을 빨리 찾고 빨리 그곳으로 떠나 정착하자. 그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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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1.

 지금까지의 대학교 1년 생활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대부분 학교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수동적인 소비 생활에서 벗어나 학교 안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공연을 하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지만, 지금 나는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하자는 영감을 받아 지난 1년이 가진 부족함을 음미하고 있다. 락과 재즈의 음악 동아리와 학부대학의 자문단, 사랑스런 학교의 많은 친구들, 그리고 학과 공부, 모두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1학년이니까 일단 학교 안에서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 봐야 하는 것이라고 정당화할 수도 있지만 나의 부족했던 점은 눈에 띄게 드러나 있다.


  대학생에게 체험의 기회는 매우 많이 열려 있고 사람들은 대학생들에게 호의적이고, 체험을 하기 위한 비용도 훨씬 저렴하게 대접해준다. 대학생들은 이 드넓은 세상에서 어떤 특정한 이해관계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 즉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형성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대학생이 하는 일이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회로 나간다는 것은 학교라는 작은 기관보다 훨씬 큰 기관, 회사, 정부와 같은 커다란 집단 그리고 그 집단 속의 사람들과 특정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더불어 더 넓은 세상에 널려있는 지식과 스타일 그리고 가치관과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적, 물적인 두 가지의 관계망을 점점 도화지에 스케치 하는 과정이 대학생의 제일 중대한 과정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당연하지만 꼭 이런 이야기들은 다시 곱씹어 보았을 때 더 명확하게 다가오고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영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만든 이야기인데도 내가 영감을 받았다.


 넓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그러한 결심은 나에게 두 단계의 과제를 제시해 주었다. 첫째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 즉 학교 안의 단체에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제대로 일하자는 과제다. 1학년 때에는 나 혼자 무언가를 계획하여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이고 그 외의 동아리에서 내가 주도해서 의견을 냈던 많은 회의다. 완벽함의 범위가 나 자신으로 한정되어 있어도 나는 내가 한 일들을 완벽하다고 속으로 칭찬했다. 공부에 대해서는 학교가 나름의 칭찬을 했고, 학교 안에서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도 나 혼자 계획한 일들에 묵묵히 찬성하며 따라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는 예전의 내가 보여주었던 독단적인 활동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내 귀에 그 불만이 들어오지 않아서, 혹은 내가 그 불만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 밖에서 불만과 지적이 있는데 내가 한 활동들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는가. 내가 칭찬하고 나 밖의 사람들도 칭찬해야 완벽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내 스스로 계획을 많이 하지 않고,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천천히 계획해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내 능력이 절대적으로 더 뛰어나도 사회의 어느 곳이든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모든 단체 안에서는 그런 나의 능력을 일단 숨기고 있어야 한다. 독단적인 나에 대해 다시 한번 크게 반성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독단적이지 않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두 번째 과제는 학교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기관에 나 또한 관계를 맺고 참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매우 두려웠다. 그 사람들은 무조건 나를 적대적으로 여기고 면접에서 무조건 떨어뜨릴 것이라고 과장해서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한 두려움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는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 나의 치밀한 계획만 있다면 나는 이 사회 안에서 충분히 입지를 잡고 살아갈 수 있다는 나의 오만한 속 생각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즉 나는 이 사회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일단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관계망 형성의 원리에 대해 무감각했다.


  요즘 들어 나의 정체성이 점차 명확해지고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또 무엇에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에 따라 더 넓은 세상에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물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회 속에서의 나에 대한 인식과 끊임없는 노력이다.


  이제 나는 대학교 2학년이고, 나를 벗어나고 학교를 벗어나 세상 속으로 조금씩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혼자서만 계획하고 성취하고 만족하는 모습은 새내기의 기대수준을 만족시켜주는 데 불과하다. 이 세상 속에 있는 많은 사람, 단체, 지식, 스타일, 그리고 가치관과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시도해 보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도전할 때면 나는 그렇게 즐겁지 않을 수 없고 또 피로함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사회와의 관계 맺기는 이미 내가 계획했던 내면을 완성함과 동시에 새로운 나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보다 멀리 보아야 한다.



멀리 보기 위한, 넓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나의 결심

  • 이 블로그는 나 혼자 끄적거리는 공간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와 노하우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나의 창작 공간으로 만든다. 얼마 전 알게 된 Creative Commons (CC) License를 활용하여 나의 저작물 그리고 블로그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책임을 지고 그만큼 더 근사하고 멋진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3월 14일에는 CC Korea Conference도 가볼 생각이다. 아,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민사고 12기 후배의 아버님께서 연세대 법대의 저작권법 전문 교수님이신 게 떠오른다.
  • 어울림과 So What에서의 활동을 계속하며 물론 더 높은 수준의 공연을 위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통한 아르바이트를 생각해 본다. 중고등학생 과외는 멀리 보는 자의 행동은 아닌 것 같다.
  • 학부대학 학생자문단에서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며 학부대학에서 직접 제도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사람들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확장한다. 지금까지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이 강했다.
  • 오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를 봤는데(뒤늦게 본 편이지만) 참 많은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모든 나라가 제각각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개성 넘치는 대처법을 가지고 강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구한다. 이것이 내가 나아갈 분야인 정치경제와 무역 그리고 제도에 관한 연구일 것이다.
  • 나의 스타일 지도 만들기, 인간관계의 지도 만들기. 나는 나라는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가 좋다. (체코 여자는 너무 이쁘다.) 각각의 나라들의 모든 문화를 사랑한다. 정치외교학 좋아하고 음악 좋아한다. 등등..점점 뻗어나가는 생각들.
  • 그 외의 많은 것들.....연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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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로] 새내기들이여, 꾸며라!

 자신 있게 반이나 과 선배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08학번 새내기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요즘 새내기들은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 라며 속으로 흐뭇해한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부각되고 대학생들도 어른 못지않게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드나드는 시대가 왔기 때문일까. 80년대의 풋풋한 하얀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는 옛말이고, 이제는 너도 나도 꾸며야 사람들의 눈에 띄고 그래야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시대이다. 나도 멋지게 단장한 후배들을 더 반갑게 맞아준다. 지금의 대학은 긴장감 없이 편안한 동네 잔칫집이 아닌 초긴장 상태의 생중계 토크쇼 장(場)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에도 긴장하고 꾸미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흐트러지더라도 편안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촌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연대생들은 다른 대학생들보다 외모를 가꾸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자신을 꾸미는 주된 통로는 소비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 약속, 홍대의 라이브 공연장과 클럽, 열심히 돈을 모아 떠나는 해외여행, 이러한 모든 행위는 돈을 필요로 한다. 물론 처음부터 멋지게 꾸밀 줄 아는 새내기들도 많겠지만, 새내기의 들뜬 마음으로 소년들은 평소에 안 가보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소녀들은 미숙한 손놀림으로 파우더를 두드린다.


 하지만 소비만을 중심으로 겉으로 꾸미기에만 열중하다 보면 사람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는다. 소비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누구나 다 한번쯤은 해 본 것들이 되며, 결국 너와 나는 빛을 잃고 똑같아진다. 자신을 꾸미기 위해 애써 번 돈을 희생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꾸며 놓았기에 결국 꾸며도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참 좋고 나도 그런 사람을 매우 반기지만, 외모만 꾸며서는 한계에 부딪친다.


 난 아직 부족한 선배이지만 후배들에게 소비로 대표되는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일들'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보는 경험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당장 여기서 자신이 온 힘을 쏟을 수 있을 만한 하나의 단체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애써 번 돈을 순식간에 써버리지 않아도, 윗사람들의 연줄을 타지 않아도 자신만의 창조로 자신을 빛내고 꾸미기를 바란다. 음악 동아리든 연구 단체이든 학생회이든 무엇이든 괜찮다. 수동적인 소비 활동에서 탈피하여 자신을 세상 앞에 내보일 수 있는 기회가 그곳에 무한하게 열려 있다. 고3 티를 벗고 예뻐지고 잘생겨진 당신은 이제 한 차원 높은 '꾸미기'를 시도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 만든 아름다움은 남들과 다른 당신만의 매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촌 번화가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홀로 외로운 군중이 될 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나와 그들의 겉모습을 비교해볼 때가 있다. 통학을 해서인지 혼자 번화가를 걷고 지하철을 타면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도 나는 얼마나 아름다워지기 위해 나를 꾸몄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

 /이동욱(정치외교․07)

2008년 3월 3일
연세춘추 제1581호
'백양로' 칼럼에 싣다
링크

개강호에 글을 싣게 되다니, 나에게는 큰 경험이고 영광이다.
아울러 내 블로그를 찾아와준 연세춘추 05 분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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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afflemaker.tistory.com 마키아또 2013.10.09 2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 잘렸습니다 ㅋ

이렇게 대학생 문화를 날카롭게 다룬 기사가 등장하다니, 흥미롭고 또 이런 기사를 접하니 기쁘다.

하지만 이 기사의 논지에는 몇 가지 비판을 하고 싶다.


1

.. 지금 보니 대학생 인턴기자가 쓴 기사군. 역시 대학생의 인간관계는 보통 성인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기가 퍽이나 힘든 주제다.


2

학부대학 학생자문단의 단장으로서 매우 큰 관심을 갖는다.



기차타고 MT는 옛말…‘외톨이 대학생’이 느는 이유
동아일보|기사입력 2008-01-23 18:42 
 
[동아일보]

취업난과 더불어 1994년 도입된 대학 학부제 때문에 '외톨이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대학가에서 나오고 있다.

전공에 관계없이 다양한 학과 지망생들이 모여 지내는 1, 2년간은 '반'에서, 전공이 정해진 뒤에는 뿔뿔이 흩어져 2, 3년간 '과'에서 지내기 때문에 함께 지내는 시간과 공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

또 갈수록 취업난이 가중됨에 따라 학교 내에서도 경쟁이 심해져 '청량리에서 기차타고 대성리로 MT 가는' 모습은 옛 추억이 돼 가고 있다. <-1학년때 열심히 다녔으면 나중에 후회는 없을 거다. 우리 대학은 그래도 1학년때 열심히 논다. 난 그게 참 좋다. 특히 학부제에서는 노는 1학년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교학과생이 왜 경제반?"

S대 06학번 A씨(21). 서울대군요

그는 대학 입학당시 외교학과에 가고 싶어 사회과학대학에 지원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입학해 보니 그는 '외교반'이 아닌 '경제반' 소속이었다.

"외교학을 하려는데 내가 왜 경제반이냐"고 묻자 조교들은 "학부는 학과 배정을 받기 전 1년 동안 임시로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왜 임시로 지내는가? 학부의 1년이 그렇게 '임시'적일 정도로 하찮은 건가? 학부대학을 만든 취지는 학생들 잘 되라고 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모든 1학년생들이 언젠가는 떠나는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있도록 만들었지 않은가. 이 점에 대해 학부대학이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임시로 지내는 곳을 제도화함으로써 생기는 소속감의 급격한 저하를..)외교학과 지망생들이라도 경제반 사회반 언론반 등 다양한 학부에 전공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배속된다"고 대답했다.

'학부제'와 '소속반'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A씨는 '경제반에 들어가서 외교학과로 진학하지 못하면 어떡하나'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1994년 도입된 학부제는 과거 학과 별로 신입생을 선발하던 방식이 아닌 공통 계열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사행정제도.

가령 신입생은 '국어국문학''가 아닌 '인문대학'에서 인문대 공통 과목을 공부하면서 각 학과에 대한 기초 정보를 얻은 뒤 2, 3학년 때 '국어국문과' 등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는 식이다.

선발은 대학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로 원하는 학과에 3~5지망까지 지원을 한 뒤 정원에 맞춰 학점 순으로 뽑는다.

학점이 좋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공은 외교학, 선배는 경제학, 담당교수는 심리학

A씨는 1년 동안 경제반에서 생활하면서 소속반(경제반)과 희망전공(외교학과)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는 A씨에겐 큰 부담이었다.

경제반에서는 외교학과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반 선배들은 경제학과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반 출신 외교학과 선배를 찾으려 했으나 선배들은 전공 선택 후에는 독서토론회, 세미나 등 반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담당 교수는 심리학과였다.

결국 A씨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전공 설명회에 참석한 뒤 그곳에서 얻은 정보만으로 외교학과에 지망해 합격했다.

●"학부 때 친했던 애들 모두 다른 과"

A씨는 원하던 전공을 꿰차는 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A씨와 함께 외교학과를 지망했던 같은 반 소속 친한 친구가 불합격해 사회학과로 가게 된 것.

의지할 친구가 사라진 A씨는 전학 온 학생의 심정으로 첫 학기 시간표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짜야했다.

A씨는 혼자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도 혼자 공부했다.

외로웠다. -> 동아리를 해라. 동아리에서 적극적으로 인맥을 쌓지 못한다면 자신의 무능함을 탓해라. 오늘날의 경쟁사회를 우리는 개인 간의 '매력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은 서로가 업무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와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저 사람 참 매력있구나, 하면 그 사람과 사귄다. 나와 같은 반에 있는 바로 위 학번 선배라도 매력이 없으면 내가 피하면 된다. 굳이 그 사람과 친해지려 노력할 필요 없고 MT에 끌려갈 필요 없다는 얘기다. 후배가 MT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언제나 선배의 부족한 매력과 능력에 있다. 그리고 능력보다는 매력이 더 큰 원인이 된다.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우울했지만 다른 학생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A씨를 비롯한 2학년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학년 때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과가 정해진 뒤로는 각자 시간표가 달라 반 친구들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 밤에 만나면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시간표가 밤 늦게까지 짜여져 있는가? 아니다.

전공 첫 학기. 공부도 생소해서 원하는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도 많이 해야 했다.

때문에 시간이 난다고 해도 한가롭게 놀 시간은 없다.

그렇게 반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친구보단 학점"

언론정보학과 05학번 K씨(22·여·4학년)는 "A씨의 고민은 모든 2학년한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K씨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같은 과 친구들의 얼굴을 잘 모른다.

1학년 학부 시절에는 반방이나 학생회 등에서 쉽게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으나 전공이 정해진 다음부터는 같은 과 학생끼리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아예 없었다.

또 1학년 때 '새내기' 기분에 친구 사귀기에 열중했던 동기들이 2학년부터는 본격적인 학점 따기에 몰두하면서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모이지 않았다.

K씨는 "같은 반 출신 친구와 지금도 단짝으로 지내며 함께 시간표도 짜고 수업도 듣지만 그 동안 새 친구는 거의 못 사귀었다"고 말했다.

조모임이 있는 수업이라면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과제가 끝난 뒤에도 연락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 그 연락은 하는게 이상하다. 같이 잠깐 조모임을 한 사람 말고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와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비슷한 관심사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소중한 사람들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K씨는 과대표가 돼 MT와 점심모임, 동아리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동기들을 초대했지만 참여율이 워낙 저조해 이제는 포기했다.

●"졸업반 되니 취업걱정…눈에 뵈는 거 없어"

이 과 조교 C씨(24·03학번)는 "단합을 위해 MT를 계획하고 과 사무실에 비치된 연락처를 통해 학생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도 답장은 50% 정도 밖에 안 오고 이 중 20% 정도는 불참한다는 거절 문자"라고 말했다.

C씨는 "막상 MT에 가도 분위기가 어색하기 때문에 '집안 일' '선약' 등을 핑계로 그 시간에 전공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생명공학과 졸업반인 P씨(25·여)도 "그동안 MT나 과 모임에 참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친구라고 할만한 동료도 2, 3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학부에서 학과로 넘어오는 시기에 뿔뿔이 흩어지고, 2학년부터는 전공과 취업준비에 몰두하느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 3학년을 보내고 4학년이 된 뒤에는 과에서 인간관계 만들기를 아예 포기했다"는 게 P씨의 얘기.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4학년이 되니까 같은 과 동료들이 '친구'로 안 보이고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같은 과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직장에만 가는 것인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같은 과에 있더라도 사람들의 진로는 천차만별,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특성은 다양하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곳이 있는 법이다. 이 사람이 동료들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로의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이 좁기 때문이다.

●"실력이 우선"… "인간관계가 중요"…, 논란

학부제를 경험한 졸업생 및 현재 재학생 사이에서는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과 "'인맥'이 느슨해져 사회에 진출한 뒤 불리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02학번 전재호(25)씨는 "1학년 때 반 동기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 놓은 결과 지금도 대학 때 친구가 많다"며 "학부제 하에서도 얼마든지 실력과 인간관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졸업생 김경재(26)씨는 "현행 학부제에서는 인간관계를 넓히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며 "사회생활에는 학점 못지않게 인간관계도 중요한 만큼 졸업생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보람 동아일보 인턴기자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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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제는 우리 대학에서도 실시되고 있는 제도다. 우리 학교가 학부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의 대학생들이 처한 상황에서 연세대학교가 학부제를 처음 도입하고 개발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업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세대학교의 학부제나 다른 학교들의 학부제나 생김새는 매한가지이며, 이 기사가 중점적으로 지적한 학부제에 따른 인간관계 고리의 약화 문제도 모든 대학에 똑같이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반과 과가 완전 별개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그에 따라 학년에 따른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모습에는 극히 반대한다. 반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터미널의 대합실과 같다. 같은 계열이라 할지라도 그 계열의 범위는 학교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학생들이 공통적인 관심사로 묶이기는 쉽지 않다. 대학교는 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수업이 반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학교 행정에서 반을 공식적인 단위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반의 특성은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함이 반 행사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학생들에게 안겨주고, 회의적인 몇 학생들은 반 사람들과 영원히 안면을 끊고 지내고, MT 참여율은 저조해진다. 학부제가 외톨이 대학생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말은 일부 맞는다. 모든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개성에 따라 다양한 집단에 소속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간과한 채 모든 대학생들은 반드시 기본적으로 '과'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한 맞다. 즉 내가 중요시하는 것은 대학생 자신들의 노력과 그를 통해 만들어낸 집단의 개성, 그리고 그 개성을 통해 만들어진 집단에 대한 애착이다. 이것만 있으면 학부제가 있든 없든 반, 과 모두가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취업난의 폭풍이 닥쳐와도 두려울 것 없다.

  그러나, 아무튼 현재의 반은 터미널의 대합실과 같다. 이와 달리, 반이 과로 이어지면 과는 반에 비해 상당히 많은 특성과 고정된 인식 기제를 확보한다. 같은 과 학생들끼리는 같은 종류의 수업을 듣고, 거의 똑같은 시간표 분포를 이루며 같은 교수님들을 만나 서로 교류한다. 학교 행정에 관해서도 과는 행정에 필요한 단체의 단위로서 특성을 지닌다. 이 외에도 '과'라는 단어가 주는 전통적인 일체감 등이 어우러져 과에 소속한 학생들은 자신의 과에 더 많은 충성심을 보이게 된다.

  결국 반과 과가 별개로 나누어져야만 하는 학부제의 제도적 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반'이 가진 특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특성이 잘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반 학생회와 과 학생회가 연계되지 않고, 지도부가 서로 무관심하니 학생들이 반과 과를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특성을 확보하는 일은 기존의 반 선배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차츰 반의 전통, 관습, 규율, 관심사 등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학부제를 만든 주체인 학교 행정 당국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반 선배들이 그렇게 고민하게 된 이유는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학부제의 신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만약 미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인간관계의 관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면 학부제에 따른 학생들의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합리적으로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대학생이 왜 반에 소속되어야 하지? 반이 왜 있어야 하지?' 그리고 나서 합리적 결정으로 자연스레 반을 아예 없애버릴 것이다. 결국 모든 학생들은 그냥 각자 학교에서 배정받은 계열에 소속해 있으며 반과 같은 단체에는 소속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신이 소속할 곳은 자신이 찾아나가야만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러한 제도와 관습이 정착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무 정보를 얻을 원천(선배들)이 없는 방황하는 1학년생들에게 여러 가지 실용적인 정보를 가르쳐주는 멘토(Mentor)가 발달해 있다. 멘토와 1학년생의 관계는 서양식의 개인주의적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르다. 일단 자신이 대학교라는 집단에 들어가면 그 집단 안에는 분명 어떤 집단이 또 있다. 내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집단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한국의 풍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약간 서양식인가보다, 짐작하여 생각하고 있다) 집단을 만들어 일단 그곳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서로 알아가고 싸우기도 하고 같이 도와주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서로가 같이 발전하고 출세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의 문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문화는 1학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반에 대해 소속감과 애착을 가지려는 동기를 설명해준다. 그런데 학부제에 따른 1학년 대학 생활과 2학년 이후의 대학 생활의 완전한 단절이 1학년 학생들로 하여금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따뜻한 인간관계와 그야말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온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반에서 회장과 부회장, 서기 총무 등을 하며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나름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몇 학생들은 반을 완전히 떠난다. 학부제가 미국에서 도입된 제도인 만큼 과연 제도가 대상 집단의 문화와 잘 조우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미 늦었다. 학부제를 폐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반과 과를 연계하는 방법, 학생들이 반과 과 모두에 애착을 가지게 하는 방법은 이러한 제도 하에서도 분명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문화다.

2008.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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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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