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집을 어떻게 장만할 것인가라는 사람들의 질문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항상 전세가 아닌 월세로 15평 이하 되는 원룸에서 살겠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넓고 또는 집을 소유하는 것은 40세가 될 때까지는 사치이며, 그 전에는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집에 불필요한 가재도구를 들여놓지 않으며 외부의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하고, 창고나 옷장처럼 쓰는 공간을 가족 집 창고로 대신하여 왔다갔다하면서 필요한 물건만 옮기는 등 집의 크기를 최대한 압축하자는 생각이다. 나는 도시 속을 갈망하고 도시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만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내 집은 허름해도 좋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노원구 상계동은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선택이다. 주변에 수락산과 중랑천이 있고, 건물과 거리는 조금씩 리모델링되어 세련된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게 가장 매력적인 곳은 중구 순화동과 광화문 일대다. 역사 유적에 둘러싸여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교통 이용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도시 생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한 채 밖으로 한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가 주는 공감에는 절반밖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자신의 집에, 즉 내 자신이 디자인한 자그마한 집에서 살기 위해, 1/4에이커 정도 되는 자그마한 땅뙈기의 한가운데 있는 집에서 물과 그늘과 잔디와 침묵을 즐기며 혼자 살기 위해 기꺼이 루브르 미술관, 뛸러리 궁전, 노트르담 - 그리고 방돔의 열주(列柱)까지 덤으로 끼워 - 을 포기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집 안에 조각을 하나 들여놓을 생각이 들더라도 주피터나 아폴로 - 이처럼 멀쑥한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또는 런던이나 로마, 콘스탄티노플 또는 베니스의 풍경을 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한 장소에는 전혀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그곳에다 내게는 없는 것 즉 산, 포도밭, 목초지, 산양, 소, 양, 추수하는 사람들과 양치기를 두고 싶다.

- P. J. Proudhon, Contradictions économiques, op. cit., p. 256.

 

 여기서 동의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들의 거부와 자그마한 집에 대한 찬미다. 겸손하면서도 쿨하기를 원하는 나는 무조건 작은 집에서 적지만 모두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되고 배치된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 어떻게 디자인이 잘 되었지만 사치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물건을 살 때 자기가 추구하는 일관된 디자인의 물건을 골라왔다면 그 물건들이 세월에 걸쳐 축적되었을 때 한 장소에 멋있고 조화롭게 배치될 수 있다. 물론 조각같은 사치품은 절대로 들여오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삶과 가장 밀접하다고 보는 전자제품과 악기를 가지고만 디자인하고 그것으로 끝낼 것이다. 다른 것은 새로 구입하는 일 없이 예전 살던 집에서 모두 가져올 예정이다.


인테리어란


 하지만 침묵을 즐기거나 귀농과 같은 선택을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귀농은 분명 도심에서 그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바탕으로 사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그러나 귀농보다 더 검소하게, 왁자지껄하고 바쁜 곳의 후미진 곳에서 언덕 위에 집이 있다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객관적인 삶의 질보다는 주관적인 만족감에 따라 산다면 비용이 더 적게 들 수도 있다. 집에 관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옷과 문화생활의 비용을 높이며, 공동체적인 삶으로 들어가 도심 속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게 나의 목표이다. 파리에 있을 때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리고 현실적인 자금 제약으로 인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방식을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어나가고 싶다.


 혜택을 많이 받는 서울 한복판에서 큰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치이므로, 작은 집에 월세 들어 살면서 겸손함, 그리고 매달 월세를 내면서 나중의 내집마련을 위한 자금운용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면서 항상 도전할 거리가 주어져있는 주거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권역 도시 지역의 주상복합이나 큰 아파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갈 것인가.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에서조차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사회 통념에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켜버리는 것은 너무 슬프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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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 사는 대로 남들 가는 대로 그냥저냥 따라가며 사는 삶은, 설사 그런 삶이 그런대로 별 탈이 없다고 하더라도 유가의 온전한 삶이 되지는 못한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데서 유가의 삶은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삶의 중심에는 내면의 깨어 있음으로부터 연유하는 홀로 있음이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깨어 있지 않은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논어'의 한 구절이 이것을 말해준다.

공자가 말했다. 된 사람은 (사람들과) 화목하나 무리 짓지는 않고, 덜된 사람은 무리 지으나 화목하지는 않는다.



 남들 가는 대로 = 대기업이라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좀더 범위를 넓혀서 남들 가는 대로 = 한국기업이라면?

 무리 짓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소신껏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나로서는 중용의 철학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주류라고 상처의 말을 듣는 길도 어엿한 선택이 될 수 있고, 그 선택을 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정도 살면 잘 사는 거 아니야? 솔직히 객관적으로' 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남 눈치를 보고 남들의 추천과 기대와 소문에 의지하여 좋다고 하는 직장에 가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 아닌가.

 인생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결국 나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이지만 중용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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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주일성소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가?


 사회 내에서의 체제나 제도가 나로 하여금 주일(안식일)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을 묵인하고 내가 현재의 직업 상황을 유지하게 방관하는지, 아니면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끔 능력을 발휘하고 내게 대안을 제시해주는지가 궁금했다. 교회 내에서의 토의 결과 기도를 함으로써 대안을 제시받고 말씀에 따라 사는 궁극적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월화수목금토일은 초대 교회때부터 정해졌고, 그 후 모든 인류는 어떤 정치, 경제 체제에 상관없이 이 주일에 맞추어 발전해왔다. 어떤 체제든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일을 시키는 체제는 없었다. 아무리 강제수용소라 해도 종교적인 집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뿌리째 뽑지는 못했다. (주일에 사람이 모이면 그곳이 교회가 된다.) 록펠러나 이랜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요일을 안식일로서 지키고 충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례는 많이 볼 수 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간다' 가 먼저 정해진 다음 그 제약 안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 성공해야 성도로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는 조모임과 스터디를 못 이기겠지.


Q: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길래 회개할 수 있을까?

A: 예배를 드리러 왔을 때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다. 찬양의 노래와 반주 시설, 입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질적 차이가 없는 같은 교회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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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He who dies with the most toys wins,
80년대 미국에서 한때 유행하던 슬로건이란다. 경제 부흥 속에 '즐기는 자가 죽기 직전에 웃는다' 라는 느낌으로 내걸었던, 한 장난감 회사의 광고 카피로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어쩌다보니 '지난 나의 대학생활'이라는 주제로 12학번 외국인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조교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일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시간낭비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복학하기 전에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내가 누구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확신과 자부심을 다시 불어넣는 기회가 되었다.

He who dies with the most toys 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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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추웠던 12월 5일, 우리 동네 치킨집에서 나와 엄마와 이모 그리고 이모부가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 엄마와 이모는 사는 얘기를 하고 나와 이모부는 또 다른 얘기를 했다. 대학교수이신 이모부에게 진로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2시간 동안 이렇게 몰입되어서 상담하고 토론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모부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 '진짜 사회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내게 하나하나 짜릿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대화에서 오고 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메모해 놓고 계속 들춰볼 감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한가롭게 메모하면서 들을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교회에 가러 지하철 7호선을 타는 그 30분 동안 어제 이모부와 내가 나눈 말들을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흐지부지하게 잊어버릴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마들역에서부터 청담역까지 열차가 달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쉼없이 날림 글씨로 수첩을 채워 나갔다. 이모부와의 대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사회 인식과 허무맹랑한 꿈을 마치 헐렁해진 너트를 스패너로 꽉 조이는 것처럼 정확한 위치로 고정시켜 주었다. 


 아래 내용은 기존의 나의 의견 혹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과 그에 대한 이모부의 대답이다. ★는 대답을 듣고 나서 바로 찌릿 하고 떠오른 내 생각이다. 


Q.
인터넷을 이용한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에 전자정부와 정보통신 관련 법제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겐 네이버가 딱인데요?

A. 네이버라는 회사와 네이버의 사업 영역 그리고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내가 네이버의 직원으로서 소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Q. 사실 전 네이버에 들어가서 기존의 네이버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업 분야를 새로 제시하고 그를 위해 기업 외의 기관과의 협력과 조정 업무를 하고 싶었어요. 정보산업공학과는 제2전공에 불과하니까요. 제1전공을 살리면서 제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만지려면 네이버가 딱인데..

A.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다음 5년 정도가 되면 내 창의적인 생각으로 신규 사업분야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과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현실을 하나도 모르는 유치하고 naive한 공상이다.

대학생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러이렇게 해서 언제 뭐가 되면 그때 뭐를 할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는 그것의 실현가능성은 무시된 채 자신도 모르게 그 말대로 계획하게 된다. 사실 그 계획은 소설에 불과한데 말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진로에 대해서만큼은 나의 능력을 믿기보다 반드시 지금 이 사회를 잘 아는 어른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검토를 받아야 하겠다. 


Q. 교수가 되면 대학교 안에 갇혀있게 되지 않을까요? 창의성과 재미가 없는 직업 같아요.


A. 교수가 되면 네이버는 물론이고 수많은 IT벤처기업과 정부기관을 클라이언트로 받아 프로젝트 수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엄청난 경쟁이 따르겠지만 회사에서의 경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덜할 것이다. 교수의 위치에 서면 조교들이 데이터 수집을 비롯한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내가 그 집단의 리더로서 집단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평소 꿈꾸어 온 산업계의 큰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내는 주동자가 된다. 


Q.
전 돈을 빨리 벌고 싶은데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면 월급이 제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할 거에요.


A.  꼭 대기업에 가야만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받는 전문직종에는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연구원, 정치인 그리고 교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기업 조직의 월급과 보너스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Q.
근데 교수가 되려면 석사, 박사를 한국이나 외국에서 아무튼 무조건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돈이 계속 나가잖아요?


빨리 대졸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건 바로 그 우려 때문이에요.


A.석사과정부터는 학부와 전혀 다른 학문 활동을 하게 된다. 학부 때는 나의 output이 없거나 있더라도 습작(習作) 혹은 학점을 따기 위한 과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신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고 대신 내가 수업을 듣고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input이 output을 월등히 앞지르는 시기이다. 하지만 석사 때부터는 앞서간 교수의 도움과 그와의 조력자 관계를 통해 실제로 학계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함으로써 output에 대한 대가를 받기 시작한다. 대가는 단순한 돈뿐만 아니라 유학이나 포럼 등을 위한 지원금, 장학금 등의 특정 명목의 돈일 수도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 의논하며 연구할 기회와 인맥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한 푼도 내 돈을 받지 않고 석사·박사 과정을 마칠 수가 있는 것이니, 석사·박사 때 돈을 어떻게 낼까 막연히 고민하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인 대졸신입사원을 선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보너스로 중간 중간 이모부께서 해 주신 말들 


 대기업 사원의 경쟁은 파이 나누어먹기이지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가 아니다. 파이 나누어먹기는 지적 능력보다는 전술과 타이밍, 편가르기와 권모술수에 능해야 잘 할 수 있다. 나같이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린 사람에게는 파이 나누어먹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착하게 성공하는 법, 남을 짓밟지 않고도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노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한 비경쟁적인 정신노동을 통해 직업활동을 하는 직종 중 가장 좋은 것이 교수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경쟁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내가 세운 목표와 나 사이의 경쟁'이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는 등의 '실행'을 하기에 앞서 내가 이렇게 진로를 정하면 마음 편히 한 단계씩 차근차근 해 나가도 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명확히 해야 한다.


★ 큰 그림은 이 세상의 실제 모습에서 알 수 있는 요구사항, 실현 가능한 일들의 목록 그리고 어떤 경로로 가면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발전 단계 구성도(테크트리)를 담고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연구에 100% 힘을 쏟을 수가 없다. 큰 그림이 명확해야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이 생긴다. (이모부는 대학교에 들어온 다음 사법고시/교수 두 가지의 10년치 진로를 미리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여 사법고시에 떨어진 후 바로 교수의 길로 가셨다. 이미 닦아놓은 길을 가기 때문에 그냥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조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었다.) 


 2시간 동안의 쉼없는 대화 동안 난 이모부의 중학교 때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진로와 직업에 대한 인생길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이모부가 몇살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와 나의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날의 대화를 통해 배운 건 내게 운명처럼 정해진 진로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맞는 진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정할 수 있느냐였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요소였다.  


 대학가 술집이나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못 나왔던 얘기를 동네 치킨집에서 했다. 얘기가 끝나고 이모부 아들(나의 8촌이다) 장난감 글록 소총을 고쳐준 뒤 엄마와 나는 나중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5분 거리의 단지 중앙도로는 엄청나게 추웠지만 마음은 극적인 흥분으로 뜨거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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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9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0.01.20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나의 21년 삶 동안 가장 나를 제약했던 한 가지 성격은 자신을 하나의 스탕리로 고정시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한 가지 입장으로 다가갔다는 점이다. 옷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난 깔끔한 세미정장과 니트가 좋아서 계속해서 그 코디를 유지해 왔다. 첫인상이 좋거나 평소에는 그랬다가 갑자기 좋아진 사람에게는 마냥 친절하고 착하고 분위기 있게만 다가갔으며 화를 내거나 질투하거나 조절할 수 없이 마음대로 움직인 적은 없었다.

  물론 진로와 자기계발을 위해 자신의 관심사나 주력과목을 한 부류로 집중시키는 것은 20대 초반 정도 나이의 사람으로서는 바람직하다. 지금 내가 정치외교학과 정보공학, 산업공학을 벗어난 다른 과목도 함께 배우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학문 분야나 직업 분야에는 전문성이라는 가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지만, 옷차림이나 대화법, 매너나 취미 삼아 하는 요리, 음악, 운동 그리고 쇼핑하는 물건의 스타일은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다. 전문성이 아닌 다양성이 필요한 것이다.

  변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성으로 자신의 가장 좋아하거나 잘 하거나 혹은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스타일과 입장을 고른 다음 타인이 예측할 수 없는 간격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면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최종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과 호감을 남기게 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위대함이 태어난다, 놀라움이 태어난다' 라는 이동통신사의 광고문구는 다양성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희미한 실마리를 안겨준다. 아무런 줏대 없이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다양성이 아니라 앞서 말했듯 나를 나답게 해주는 하나의 모습에서 다양한 이탈을 반드시 시도해 보는 것이 다양성이다.

  조금 더 과감하게 혹은 분명하게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의 가장 중요한 일과 역할인 공부와 계획 그리고 각종 글쓰기와 기획으로부터 이것들 이외의 모든 삶 속의 일과 역할을 분리해내어 생각해야겠다. 공부와 계획에는 다양성이 있어서는 안 되고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신념이 워낙 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용기 있고 자유롭게 다양하게 내 모습을 바꾸어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가 반드시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 주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준비하고 배우고 익혀나갈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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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가치체계는 우유와 치즈와 초콜릿, 그리고 양파와 고추와 씨즈닝을 명확히 구분하는 이분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 맛과 짠 맛의 구분일 수도 있고 색깔에 따른 구분일 수도 있으며 어울리는 음료 종류에 따른 구분일 수도 있다. 분명 그 둘은 겨울과 여름, 클래식과 펑크락, 설탕과 소금처럼 명확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는 분명 조용하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응접실에서 쿠키 종류와 우유, 쥬스, 차, 커피 등을 교회 집사님들과 같이 먹고 마셨던 수많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마다 봉지과자는 테이블 위에 나오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변에서 돗자리르 펴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실 때에는 언제나 봉지 과자에 양념가루가 있는 것들만을 고집했다. 맥주가 지배하고 있을 때 감히 쿠크다스나 버터와플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임의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에서 갑자기 사먹는 과자는 테이블 위에 항상 뒤죽박죽 펼쳐져 있다. 단지 먹고 이야기하는 것에만 가치를 둔 모임에서 과자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매번 꼭 어느 한 명이 나서서 초코송이, 씨리얼, 다이제 같은 과자를 틀에서 꺼낸 다음 뜯어놓은 썬칩이나 새우깡 봉지에 던져 넣었다. 심지어는 한 손을 가져와 초콜릿과 씨즈닝이 고루 섞이도록 버무리는 만행을 저지른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한 결과의 모습은 마치 케이크와 삼겹살을 한입에 같이 먹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울 따름이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렇게 뒤섞인 상황을 자아낸 사람이 바쁘게 흘러가야만 하는 모임 속에서 익명성을 띤다는 것이다. 아무도 과자의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뒤죽박죽 한 자리에 섞인 과자는 모두의 기호를 고루 반영하겠다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결과인가? 내 눈에는 구분이 없이 섞여 있는 결과물은 생산성 없는 정당 간의 타협안, 노사 간의 절충안과도 같아 보일 뿐이다.

  솔직히 이 사소한 문제에 더 화를 내어 보고자 한다면 배고팠던 우리나라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먹는 게 중요했지 얼마나 운치 있게 먹느냐, 어떤 음악이나 인테리어나 조경 안에 둘러싸여 먹느냐 등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논의가 시작된 것 같다. 초가집과 산 능선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마을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무작정 포크레인 부대를 때려넣고 흙을 무참히 퍼간 도시개발의 사례는 대한민국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고 이는 지금의 매력없는 도시 경관이 증명한다. 음식을 사먹는 작은 일에서부터 도시를 건설하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한 나머지 결과물의 아름다움과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뒤죽박죽 형상을 만들어놓는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행태는 다른 분야의 사소하거나 중대한 일에도 전염되었다.

  하지만 뒤죽박죽인 것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는 않다. 비빔밥에는 밥과 고기와 야채가 뒤섞여 있지만 그 뒤섞임 덕분에 세계인이 칭찬하는 맛을 만들어낸다. 탈춤은 연극을 하는 사람과 연극을 보는 사람이 모두 대사를 내뱉고 주고받으면서 흘러가 매 공연마다 다른 예술을 펼쳐나가게 되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아름다운 극 장르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탈지유와 코코아파우더 그리고 팜유와 씨즈닝을 뒤섞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그 두 종류를 섞었을 때 독특하고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다.

  결론은 구분의 판정승이다. 이제 우리도 스타일에 따른 구분짓기와 종류별로 묶고 꾸미기에 신경 쓸 여유가 충분히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견문이 넓어졌다. 그러한 발전을 실생활에 펼쳐내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중 하나가 먹는 모임을 단순히 먹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하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특정한 분류를 기반으로 하여 음식들의 스타일을 살려내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개인적 기호를 보다 존중해주는 모임으로 바꾸는 일이다. 내게 "애가 쪼잔하게 뭐 이런 것까지 신경 쓰니" 혹은 "남자가 왜 그리.." 류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설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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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일을 함께 기획하고 시작할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언제나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어 반응하고 행동한다. 두 가지 다른 반응을 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많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같은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서로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모르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의 성향을 '이카루스'와 '지렁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본다. 나와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충만한 자신감과 재빠른 정보 수집, 잘 짜여진 이론에 기반한 장기적인 계획 그리고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한 사람이 리더를 맡아 가열차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언젠가 사람들 간의 오해나 행동의 불일치 때문에 순식간에 소강 상태로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이카루스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기술을 가지고 그때그때 쉬엄쉬엄 같이 모여 계속 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며 아주 천천히 일을 진행해 가는 지렁이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일단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여럿 모였을 때 아이디어를 먼저 구체적으로 내놓은 사람이 선두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획안을 제공해준다면 일의 처리가 상당히 빠르다. 날개를 달고 빠르게 하늘로 솟구치는 이 방법은 절대로 민주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의 생각을 아주 극렬히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취지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효율적인 진행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도 좋다. 문제는 효율성과 인간관계의 부드러움이 극도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가치라는 사실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계가 일보다 중요하며 심지어 '관계가 일이다'[각주:1] 라는 말까지 나온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그 생각을 모두 허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수많은 만남과 놀이가 계속된다. 일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든 활동이 전개되면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는 세부적인 점에 대한 섬세한 고려 없이 성기게 과정을 밟아 나간다. 이카루스와 그 사단이 기분은 깔끔하지 않겠지만 결과물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일에 몰두할 때, 지렁이들은 서로 기분 좋은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며 업적보다는 모두의 만족을 지향한다. 그래서 누가 무슨 제안을 했을 때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그거 좋네! 해보자' 하는 주저하지 않는 이카루스의 반응과는 달리 지렁이들 사이에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근데 있잖아..'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중에서 나는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다 좋다는 줏대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이 있으면 일단 강하게 주장하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일을 추진해버리는 이카루스형의 사람이다. 아무런 의견이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일단 어떤 하나로 집중이 되기 시작하면 독단적이고 빠른 집중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진행되고 있는 계획을 뒤집거나 번복하는 일이 없다. 차라리 계속 진행을 하면서 갈 때까지 가다가 죽음을 암시하는 태양 바로 앞까지 가서 날개가 녹아버려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낫다. 적어도 해놓은 일은 수북이 쌓인 파일들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그 기록은 훗날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카루스와 같은 나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앞서가지는 않았는가, 남들이 열심히 하기로 기획해놓은 일을 내가 먼저 선점해 버려 그 사람이 준비한 것을 그의 공으로 돌리기 전에 준비가 수포로 돌아가게끔 하지는 않았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가장 나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제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입을 다물고 일단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듣고 있는 나에게 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는 전혀 없지만, 잘 지낼 필요는 절대적이다. 내가 일을 나서서 시작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들일 기회를 돌려버리고 나는 뒤로 빠져버리는 자세를 계속해서 배워야 하겠다.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신중해져야지.

  1.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로부터 인생의 교훈으로 배운 가장 중요한 말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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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일하고 싶다

* 지금은 인터넷 시대

* 블로그는 나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 어렸을 때 들었던 '넌 외교관 체질이야'라는 말을 그대로 믿기엔 예전의 내가 너무 어렸고, 지금 현재 나와 외교관 지망생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 돈 많이 버는 직업보다 내가 푹 빠질 수 있는 직업이 좋다

* 나는 인터넷과 웹디자인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 위계적인 질서의 공무원이나 관료와는 달리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한 창의적인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 끊임없는 스케줄에 이끌려 전세계를 휘젓고 돌아다녀 나의 아내와 가족들과 떨어져 외롭게 지내지 않고, 대신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소규모 도시적 삶에 머물 수 있다

* 음악을 좋아하고 멋을 추구하는 나에게 무한한 예술적 감성과 기획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고,지금의 20대는 인터넷 속에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꼭 네이버가 아니더라도 온라인에서의 사회를 분석하고 사람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이성적이면서도 예술적인 architecture를 만드는 직업을 갖고 싶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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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참신한 키치 예술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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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뻔한 것, 따라하기, 지루한 것은 죄악입니다.

당신은 새로운 것을 찾고 독특함을 개발하고 싶어합니다. (항상 그런건 아니겠지만) 다들 따라하는 패션, 누구나 흥얼거리는 노래, 너도나도 사보는 베스트셀러, 아줌마들이 떠들어 대는 연속극, 모두 신물 나는 것들입니다.

이제 당신은 갓 찍어낸 붕어빵처럼 똑같은 노래, 똑같은 드라마, 똑같은 성형수술 연예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좀 건방지거나, 좀 못 생겼거나, 아니면 심하게 시대착오적이라도, 당신 머리 속을 상쾌하게 만들어 줄 참신하고 개성있는 '물건'을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은 너무 직관적인 것만 찾을 뿐 도통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한 걸 좋아하긴 하지만, 뭐가 얼마나 어떻게 특이해야 좋은지 당신도 잘 모를 겁니다. 

당신에겐 대중이 찾지 않는, 음지에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우수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아무도 안본 최고의 독립 영화 등 숨은 진주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알리는 문화 메신저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
참신하고 희귀하고 독창적이면 당신은 가리는 것 없이 좋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특이한 그림이나 소설은 싫어할지도 모르고, 지겹게 듣는 대중가요 중에도 뜻밖에 당신 취향에 맞는 곡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저희도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에 어떤 기준이 있을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기본적으로 무엇에든 쉽게 질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바로 이런 쉽게 질리는 성격 때문에 당신은 끊임없이 더 새롭고 더 창의적인 것을 발굴해 나갈 겁니다. (어쩌면 계속 새로운 것을 찾는 것마저 질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유명한 "앱솔루트" 광고는 당신 같은 취향을 위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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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하는 것
당신은 줏대없는 따라쟁이들이 제일 싫습니다. 어떤 옷이 유행한다면 우르르 따라가 몸에 걸쳐 보는, 무슨 영화가 잘 팔린다고 친구들과 몰려가 감상하는, 그런 개성도 없고 주체성도 없는 나방떼 같은 사람들도 싫고, 그런 사람들이 좋다고 떠받드는 가수도 배우도 드라마도 너무 싫습니다.  

당신은 알기 어려운, 직관적이지 않은 것도 싫습니다. 소설이건, 시건, 노래 가사건, 그림이건, 만화 건, 알기 어렵게 꼬아 놓으면 기분 나쁩니다. 논리와 철학으로 어렵게 만든 글이나 그림은 무책임합니다. 독자들에게 불성실하거나, 지적인 척 잘난 척하려는 속물 근성 때문일테지요. 괜한 절제와 통제, 근엄함과 엄숙함, 쿨해 보이려는 냉정함은 이런 속물 근성의 한 부류일 것입니다.
 
 
출처: IDsolution (http://idsolution.co.kr)
 
- 내가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 모던락을 골라 듣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 지금 블로그 디자인이 키치 예술 취향인 것을 알 수 있다 (보라색과 검정색의 세련된 조합은 Ursula 1000에게 영감을 받았다)
-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 테스트를 2번 했는데 같은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이곳에서의 취향 테스트는 정확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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