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부터 어제까지 4일동안은 가족과 함께 열심히 드라이브를 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그리고 해안도로를 타고 망상해수욕장, 양양을 거쳐 다시 서울양양고속도로로 서울.
그리고 엄마 친구를 만나러 수원, 용인, 분당, 친척이 있는 동탄, 다시 서울.
효도관광으로 보람찬 나날들이었다. 지하철을 한번도 타지 않았고 혼자 있지 않았다. 멜론 플레이리스트를 운전하면서 계속 틀었다.
오늘은 그전의 연휴와는 다른 모습으로 지하철을 혼자 탔다. 낙원상가에서 고장난 앰프의 수리를 맡기고 1년 전 이맘때가 생각나는 베히케 시가를 3층 흡연실에서 잠깐 폈다.
그리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폰으로 트친의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를 클릭하니까 예전의 갤럭시로는 볼 수 없었던 애플뮤직 앱 연결과 함께 3개월 무료 구독을 신청하겠냐는 메시지가 나와 구독을 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다시 타면서 그 애플뮤직을 들으며 블로그로 글을 쓴다.
블로그 글쓰기를 지하철에서 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블로그 글 주제가 된 것도 처음인 것 같고.. 두번째일지도 모르겠다.
안 해본 일들로만 가득한 오늘 하루, 연휴는 그렇게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꼭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예약제의 행사에 참가하지 않아도 휴일을 보람차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은 어떻게든 생긴다.
가끔씩 이렇게 생각에 잠길 때는 애플뮤직을 들으면서 있는 생각을 모조리 비워봐야겠고 그것을 블로그에 남겨야겠다. 단 만취한 상태에서 글쓰기는 금물. 한 곳에 긴 문단을 쓰는 훈련은 깨달음과 관찰의 단편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는 에버노트나 문자 수 제한이 있는 트위터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똑똑하다고 느끼던 때는 블로그에 긴 글을 체계적으로 많이 썼던 2010년-2011년이라고 생각하고 긴 글쓰기가 원동력이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욱 더 써야겠다.
인스타를 열심히 하고 동영상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지만 인스타에 글은 길게 쓰려고 하면 힘이 나지 않는다고 할까 긴 글을 과연 피드 넘기는 친구들이 주의깊게 읽어줄까 하는 마음에 길게 쓸 수가 없다. 블로그는 조금 더 차분한 공간이어서 그런지 길게 글이 잘 써진다. 인적이 드문 경기도 북부의 숲속 공원이나 카페에 비유할 수 있겠다.
5월 6일부터는 새 사람이 되자는 다짐으로 이만 줄인다.

'Cafe Macchiato > 주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신욕.  (0) 2018.06.19
요즘 여름 하늘  (0) 2014.08.13
2012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 영상촬영+제작 스탭 모집  (1) 2012.04.04
duality  (0) 2011.04.03
주말에 테니스 치기  (0) 2010.06.13
Posted by 마키아또
,
건기때. 운동하고 나서. 일에 지쳤을 때. 스트레칭을 한다. 시티팝을 튼다. 욕실의 창문을 연다. 따뜻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물 온도를 맞춘다. 유노하나 1스푼을 넣는다. 샤워기로 욕조에 물을 채운다. 양 손을 물에 담그지 않는다. 등과 어깨가 차가운 욕조에 닿지 않게 물을 적신다. 물이 무릎을 덮을 때 샤워기를 잠근다. 10분간 무념무상으로 뒤로 기댄다. 오한이 올라와 열기를 받아 날아간다. 몸 속의 모든 오한이 없어진다. 기의 순환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눈을 감으면 눈의 피로가 풀린다. 물을 얼굴과 눈에 적셔서 더욱 더 풀린다. 상체에 식은땀이 맺히고 바깥 바람에 곧 증발된다. 코로는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 10분 뒤 욕조 마개를 뺀다.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반신욕은 끝나지 않았다. 물이 다 빠지면 천천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온다. 바로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면으로 된 편안한 긴바지와 긴팔을 바로 입는다. 수면양말을 신는다. 마루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히비스커스차나 한방차를 마신다.

오늘의 웰빙을 잊지 않기 위해..


'Cafe Macchiato > 주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휴 단상  (0) 2020.05.04
요즘 여름 하늘  (0) 2014.08.13
2012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 영상촬영+제작 스탭 모집  (1) 2012.04.04
duality  (0) 2011.04.03
주말에 테니스 치기  (0) 2010.06.13
Posted by 마키아또
,
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II Fondements d'une sociologie de la quotidienneté. L'Arche Éditeur Paris. 1961.

Henri Lefebvre는 부르주아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상류층 이상주의자: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을 명확히 함. 계획과 원칙 중시. 실패는 고결하게. 사회활동가.
상류층 행동파: 이상주의자의 반대. 실행과 데이터 중시. 과거 역사에 얽매임. 남을 등쳐먹고 성공함. 실패는 초라하게. CEO.
상류층 사상가: 이상주의자와 행동파 모두에게 눌려 삶. 양 극단의 조화 추구. 좋은 생각이 곧 이상이고 행동임. 철학자. 에세이 작가.
특수계층 관료: 고학력. 위계질서 중시. 질서에 순응. 정해진 특기에 집중. 교수. 경찰.
특수계층 보헤미안: 관료의 일을 비공식적으로 수행. 직함을 신경쓰지 않음. 위계질서를 실정에 맞게 적당히 뒤틂. PR담당자. 비평가. 광고기획자. 변호사.
특수계층 독립인: 명예 필요없음. 국가 사상 예술은 내 삶의 질을 위해 존재. 나만 잘 살면 됨.
단일층 광신자: 내가 세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사회와 동떨어져 있음. 위선.
단일층 반대자: 자신은 타인의 반대되는 어느 것으로만 정의가 가능. 냉소. 아나키즘.
단일층 멍청이: 일상에 깊게 자리함. 사소한 걸 과장해서 받아들임.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자. (일본어 ミーハー와 비슷한듯) 선동에 휩쓸리기 쉬움.

특수계층 보헤미안 이라는 분류가 참 마음에 들었다.
Posted by 마키아또
,

  구글에 can playboys be feminists 라고 검색을 한 결과,


 예/아니오 라고 딱 잘라 대답해주는 다른 네티즌이 있는 지식iN 류의 사이트는 검색결과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글이 있어서 바로 읽어보았다.

 바로 잡지 '플레이보이' 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 글이었다. 

 원래 나의 질문은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였다. 바람둥이가 여러 명의 여성과 육체적 사랑을 갈구하든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든 상관없이 예/아니오의 답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래의 글을 읽고 그 답은 '아니오' 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문

http://www.newstatesman.com/politics/2015/06/playboy-feminism-how-gentleman-s-porn-rag-coopted-women-s-movement


플레이보이 페미니즘: 어떻게 신사들의 포르노 쓰레기가 여성운동을 포섭하였는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내용을 온라인 잡지에 통합하려는 플레이보이의 최근 시도는 남성만을 유익하게 하는 '여성 해방' 담론을 팔고자 하는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 중 일부다.


 휴 헤프너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는 '페미니즘 같은 게 존재하기도 전부터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였다' 라고 답할 것이다. 이번 주, 코스모폴리탄 지는 헤프너가 자신에게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재출판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자체의 최악의 적이며, '플레이보이'가 여성 해방의 진짜 원천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누구나 제대로 인식이 박혀있다면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라고 기술한다.


 이 잡지 기사는 원래 2007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헤프너는 1960년대부터 같은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 '플레이보이'는 그 때에도 그만의 '여성 해방' 담론을 선전하였다. 생식에 관한 권리 옹호 그리고 당연한 '성적 해방'이 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 재단은 심지어 낙태 권리에 찬성하는 기관들과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에 기부금을 내서 보건 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랜 경력의 편집자인 냇 레흐만은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논의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전에 이 중요한 페미니스트 주제들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의 여성에 대한 지지는 최소한 선택적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지지에 동의한 페미니스트들이 적었다. '플레이보이'는 아직 주로 누드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정 종류의 여성 (그리고 특정 종류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잡지의 비선호는 명백했다. 잡지의 '플레이메이트'들은 젊고 행복하고 단순한 여자였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고 헤프너는 1967년에 오리아나 팔라치 기자에게 말했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들이 일차원적 장난감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기 위해 싸워왔다는 점이다.


 여성 권리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우리들의 대상화를 고수하는 것은 2세대 페미니스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집필진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에게 제시되는 페미니즘은 잡지의 기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방 임플란트부터 자신의 누드 촬영과 폴 댄스 교실까지 모두 '권리 신장'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2014년의 가장 뜨거웠던 주제가 비욘세의 페미니즘일 때, 그 생각은 오직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즘 운동을 자본화하려는 노력을 두배로 늘릴 것이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된 자유연애의 지지자로 상정해야만 존재한다. 그처럼 미국의 피임약의 소개는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성적 혁명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여성은 이제 '남성처럼' 섹스를 할 수 있다. '플레이보이'는 결국 아직도 남성중심적인 '여성 해방'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은 '성적'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지만 이는 남성을 결국 만족시켜야 하는 성 정체성의 일차원적 시각에 국한되었다.


 책 '우파 여성'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은 성적 혁명에 대해 "혁명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혁명의 목적은 남성을 부르주아의 제약 없이 여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방시키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점에서 혁명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적 혁명이 남성의 위대한 옛 이야기일 때 여성에게 그것은 차라리 마약을 한 듯하고 꽃무늬처럼 화려한 강간 문화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여성은 이론적으로 임신할 수 있다는 위험을 들어 섹스에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임약의 등장부터 남성의 시각으로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없었다.


 '플레이보이'가 60년 전에 한 것은 대중적 페미니즘(그리고 일반적인 자유주의 정치)이 오늘날 취한 방향을 반영한다. '플레이보이'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한 개인주의였고, 국가는 미국의 꿈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서양 남성은 진보주의자든 기업 권력이나 제국주의나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든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 개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남성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 그리고 가부장주의가 여성의 몸과 성 정체성의 표현법을 독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들은 포르노 문화를 포용하며 남성의 시선을 해방적인 것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과거에 상류층 여성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남성이 사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여성 계층을 만들어낸 성녀-창녀 이분법을 타파하려는 상상의 노력에서, 많은 진보적인 남성(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은 모든 여성을 '창녀'로 구성하는 '해답'을 찾았다. 여성은 출산, 섹스, 혹은 무급 가사노동 등을 통해 남성에게 일방향 혹은 양방향으로 봉사하는 육체라는 개념에 도전하기보다는, 그들은 '플레이보이'의 '모든 여성은 성교 가능하다'라는 해방의 제시안을 포용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소비 가능한 객체가 될 뿐 아니라 여성 또한 그것을 사랑할 것으로 가정했다. 여성은 우리들이 억압된 내숭쟁이라고 간주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그걸 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방은 남성에 대한 성교 가능성에 좌우되었다.

 2014년 개시한 '플레이보이'의 '안전한 일자리' 웹사이트는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포섭해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재브랜드화 노력으로 보았을 때, '플레이보이'의 이러한 노력은 잡지의 역사에 깊이 배어들었다. 디지털 매체 고위 부사장 코리 존스는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플레이보이 브랜드는 항상 '포용적이고' '낙태를 찬성하며'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브랜드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레이보이'의 선도적인 '페미니스트' 필자는 노아 베를라츠키로, 그의 저작은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에 대한 오랜 접근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뭐라고 말하든 페미니즘에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안다. 라는 그의 정치적 철학은 '모두에 대한 평등한 객체화' 인 것으로 보이고 이는 브랜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더 많은 여성을 우리가 '따먹을 수 있다'고 볼수록 더 많은 여성이 해방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플레이보이'와 베를라츠키같은 필자들은 여성 정체성에 대한 글에서 '선택'과 '동의'를 강조한다. 객체화된 존재는 객체화에 대해 열심이어야 하고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투덜대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헤프너가 1960년대에 팔고 있었던 개념을 정확히 강화시켜주는 데 일조한다. '플레이보이'의 남성은 '신사'다. 즉 그는 길거리의 여자를 아무나 부르지 않고 복수 포르노를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성의 '광란적인' 동의 (결국 아무도 우울한 경험은 좋아하지 않는다) 를 원하고, 그는 여성이 객체화를 '선택'했기를 원하며 그 안에 여성이 즐기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사고의 틀을 정하고 싶어한다.


 최근 저작에서 베를라츠키는 잘못되게도 권리 신장이 남성 독재의 미의 기준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는 개념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잔인하고 배타적이라고 썼다.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여성에 대한 개인적 '공격'으로 오해하는 것은 대화를 개인 밖으로 확장하기를 원치 않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흔한 행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언어를 사용하여 베를라츠키는 ‘플레이보이’를 집필하며 백인 남성으로서의 그에게 요구된, 그를 지지하는 권력구조에 도전하는 여성을 내치고 비방할 책임성의 결여를 강조한다. 헤프너와 같이 그는 자신을 관대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페미니스트인’ 남성-‘좋은 남자들’ 중 한 명-, 너무 친절해서 ‘모든’ 여성의 공정하고 평등한 성적 대상화에 착수하는 사람으로 본다.


 겉보기에는 그의 저작과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스트’적 마케팅 노력에 대한 비판(그 중 몇은 내가 했다) 에 잘 알고 있는 베를라츠키는 최근 방어적인 태도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잡지 집필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보이’가 여성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고 대신 여성을 ‘자위를 위한 환상’으로 사용한다는 수잔 브라운밀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사실 그에게 대화를 건네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를라츠키는 특정 여성의 목소리를 그의 페미니즘과의 계속되는 전투에 포함시키는 습관이 있다. 이 특정 여성은 그가 이미 믿고 전달하고 싶은 것을 그에게 앵무새처럼 답변해줄 것이다. 이는 이전 주인들로부터 배운 영리한 움직임이다. 성적 착취 산업은 항상 여성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곤 했다. ‘섹시함 = 권리 신장’ 이라는 주문에 희망을 품는 여성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섹시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가 아직 가부장적인 태도를 끝내려면 멀었다.


 연극배우이자 ‘플레이보이’ 집필진이자 저작 중 ‘왜 모든 여성은 핀업 사진 촬영을 해봐야 하는가’가 있는 사라 베닝카사는 그 자신을 ‘섹스에 긍정적이고 육체에 긍정적이고 재미를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고 기술한다. 이것만으로는 섹스, 육체, 재미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자질들이 ‘위협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의 규범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플레이보이 페미니스트’를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환상과 간섭하지 않는 종류의 페미니즘을 대표한다. 당신은 플레이메이트의 오른쪽을 따라 놓여진 ‘나는 재미있고 쉽고 뭐든지 하고 싶어해!’라는 단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사이트에 최근 게시된 다른 ‘페미니스트’ 기사들은 성매매를 탈범죄화해달라는 간청, 남성에게 구강 성교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인지에 대한 짧은 글, 페미니즘과 포르노의 양립성에 대한 두 건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어떤 걸 특정한 섬세한 메시지가 아니다.


 ‘플레이보이’ 는 남성의 여성을 탐닉해야 하는 아름다운 창조물 혹은 언제나 좋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 세상 편한 여자들로 보는 시각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집필진을 절대 등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등단시키는 것은 ‘플레이보이’가 대변하는 모든 가치에 반하기 때문이다. 쭈그렁 할망구나 증오의 대상인 내숭쟁이 반대자들을 묘사하는 필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훨씬 좋은 마케팅 전략이다.


 베를라츠키와 같은 집필진 (그리고 전체적으로 ‘플레이보이’)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 해방이 남성이 그들을 ‘아름답다’고 알아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페미니스트가 나체의 여성의 몸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거짓말은 특별히 의도적으로 호도되었다. 우리는 육체 혐오가 그와 같은 남성과 다른 ‘플레이보이’ 독자들로부터 기인함을 잘 안다. 우리의 행복, 가치, 우리 자신을 사랑할 능력,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자유가 그들의 성적 흥분과 만족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와 그 동류의 남성이다. 베를라츠키의 여성혐오는 (‘플레이보이’와 같이) 미묘하고 ‘섹스를 긍정하는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의 언어로 위장한다. 그것은 ‘여성을 옹호하는’ 반 페미니즘의 한 종류다. 그의 타이밍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적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철저히 쓰레기 취급을 당한 이상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이 재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포르노를 만들고 싶어하고, 스트립쇼 공연을 하고, (다만 무료로, 왜냐하면 일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이므로) 그에 대한 객체화를 킴 카다시안 류의 인스타그램 가슴 셀카를 통해 습득하고, 그리고 매춘을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자신들을 위해 하는 권리 신장용 선택이라고 재브랜드화한다.


 ‘플레이보이’는 절대 그들이 생각하는 해방을 여성에게 강제로 부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동의를 통해 기꺼이 해방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해방을 우리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은 주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친자본주의이고, 성 산업을 옹호하고, 아름다움에 관련된 산업을 옹호하고, 객체화를 긍정한다. 그것은 남성 권력에 대해 도전을 덜 하고, 그보다는 ‘자유’를 더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놓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섹스’를 옹호하고 ‘선택’, ‘대리인’, 그리고 ‘동의’ 와 같은 유행어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남성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지만 우리가 토끼 옷을 벗어제끼고 동굴 속으로 들어갈 ‘선택’을 지지한다.



 바람둥이의 도덕성 평가는 그가 상대 여성들에 대해 예상하는 '해방의 정도'에 달렸다. 바람둥이는 언제나 주위에서 책임을 물으면 '어쨌든 상대 여성들도 좋아했고, 그들도 '동의'하고 '선택'했으니까 나는 죄 없어요' 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특정한 1명의 여성하고만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면서 여러 명에 대한 제각기 다른 성적 만족을 추구해 나간다. 어느 정도로 육체가 맞닿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성적 만족은 상상도 포함한다. 

 

 이 바람둥이가 누가 봐도 여성혐오에 빠져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그가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경우다. 하지만 만약 바람둥이가 상대방의 일상을 정중하게 물어보고 가능한 시간에만 만나고 가능한 시간에만 전화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면? 그리고 그가 동시에 다른 여성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있다면? 여기까지만 보면 바람둥이의 입장에서는 거의 페미니스트라는 목적지까지 온 것 같다. 그러나, 상대 여성 각각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최소 한 명은 최소 한 번은 자신이 객체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람둥이가 상대에게 친절하고 외모 외의 요소도 칭찬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객체의 여성이 아닌 주체의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대상 중에 자유연애자가 아닌 여성이 최소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여성은 자유연애의 반대, 즉 나와 만나고 있다면 다른 여성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남성에게 요청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 논의한 바람둥이를 논리적으로 여성혐오의 주체로 격하시킨다. 여성의 규범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남성은 그 여성에게는 여성혐오자로 보인다. 페미니스트로 인정받는 절차는 만장일치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바람둥이가 여러 여성들을 만나는 이유가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 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혹은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이므로' 라면 그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즉 바람둥이의 가장 넓은 정의는 좋아하는 여성을 2명 이상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만남도 끊긴다. 여성의 존재 가치는 바람둥이의 '좋아하는 마음'에 달렸다. 그리고 이 좋아하는 마음이 진전된 극단에는 언제나 실재하든 상상 속이든 '섹스'가 있다. 결국 바람둥이는 자기가 원할 때 자기 의지에 따라, 비록 상대의 의견을 묻는다 할지라도 상대를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대로 쏟아부을 수 있는 바구니' 로 취급한다. 그러한 취급이 곧 객체화다.

 바람둥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게 여러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도 논리적으로 반박당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결국 안타깝게도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졌고, 특히 남성이 페미니스트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요구받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졌다. 페미니즘 안에도 워낙 방대하게 계파가 나뉘다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

  구글에 can playboys be feminists 라고 검색을 한 결과,


 예/아니오 라고 딱 잘라 대답해주는 다른 네티즌이 있는 지식iN 류의 사이트는 검색결과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글이 있어서 바로 읽어보았다.

 바로 잡지 '플레이보이' 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 글이었다. 

 원래 나의 질문은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였다. 바람둥이가 여러 명의 여성과 육체적 사랑을 갈구하든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든 상관없이 예/아니오의 답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래의 글을 읽고 그 답은 '아니오' 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문

http://www.newstatesman.com/politics/2015/06/playboy-feminism-how-gentleman-s-porn-rag-coopted-women-s-movement


플레이보이 페미니즘: 어떻게 신사들의 포르노 쓰레기가 여성운동을 포섭하였는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내용을 온라인 잡지에 통합하려는 플레이보이의 최근 시도는 남성만을 유익하게 하는 '여성 해방' 담론을 팔고자 하는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 중 일부다.


 휴 헤프너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는 '페미니즘 같은 게 존재하기도 전부터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였다' 라고 답할 것이다. 이번 주, 코스모폴리탄 지는 헤프너가 자신에게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재출판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자체의 최악의 적이며, '플레이보이'가 여성 해방의 진짜 원천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누구나 제대로 인식이 박혀있다면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라고 기술한다.


 이 잡지 기사는 원래 2007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헤프너는 1960년대부터 같은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 '플레이보이'는 그 때에도 그만의 '여성 해방' 담론을 선전하였다. 생식에 관한 권리 옹호 그리고 당연한 '성적 해방'이 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 재단은 심지어 낙태 권리에 찬성하는 기관들과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에 기부금을 내서 보건 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랜 경력의 편집자인 냇 레흐만은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논의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전에 이 중요한 페미니스트 주제들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의 여성에 대한 지지는 최소한 선택적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지지에 동의한 페미니스트들이 적었다. '플레이보이'는 아직 주로 누드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정 종류의 여성 (그리고 특정 종류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잡지의 비선호는 명백했다. 잡지의 '플레이메이트'들은 젊고 행복하고 단순한 여자였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고 헤프너는 1967년에 오리아나 팔라치 기자에게 말했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들이 일차원적 장난감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기 위해 싸워왔다는 점이다.


 여성 권리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우리들의 대상화를 고수하는 것은 2세대 페미니스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집필진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에게 제시되는 페미니즘은 잡지의 기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방 임플란트부터 자신의 누드 촬영과 폴 댄스 교실까지 모두 '권리 신장'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2014년의 가장 뜨거웠던 주제가 비욘세의 페미니즘일 때, 그 생각은 오직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즘 운동을 자본화하려는 노력을 두배로 늘릴 것이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된 자유연애의 지지자로 상정해야만 존재한다. 그처럼 미국의 피임약의 소개는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성적 혁명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여성은 이제 '남성처럼' 섹스를 할 수 있다. '플레이보이'는 결국 아직도 남성중심적인 '여성 해방'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은 '성적'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지만 이는 남성을 결국 만족시켜야 하는 성 정체성의 일차원적 시각에 국한되었다.


 책 '우파 여성'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은 성적 혁명에 대해 "혁명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혁명의 목적은 남성을 부르주아의 제약 없이 여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방시키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점에서 혁명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적 혁명이 남성의 위대한 옛 이야기일 때 여성에게 그것은 차라리 마약을 한 듯하고 꽃무늬처럼 화려한 강간 문화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여성은 이론적으로 임신할 수 있다는 위험을 들어 섹스에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임약의 등장부터 남성의 시각으로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없었다.


 '플레이보이'가 60년 전에 한 것은 대중적 페미니즘(그리고 일반적인 자유주의 정치)이 오늘날 취한 방향을 반영한다. '플레이보이'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한 개인주의였고, 국가는 미국의 꿈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서양 남성은 진보주의자든 기업 권력이나 제국주의나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든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 개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남성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 그리고 가부장주의가 여성의 몸과 성 정체성의 표현법을 독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들은 포르노 문화를 포용하며 남성의 시선을 해방적인 것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과거에 상류층 여성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남성이 사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여성 계층을 만들어낸 성녀-창녀 이분법을 타파하려는 상상의 노력에서, 많은 진보적인 남성(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은 모든 여성을 '창녀'로 구성하는 '해답'을 찾았다. 여성은 출산, 섹스, 혹은 무급 가사노동 등을 통해 남성에게 일방향 혹은 양방향으로 봉사하는 육체라는 개념에 도전하기보다는, 그들은 '플레이보이'의 '모든 여성은 성교 가능하다'라는 해방의 제시안을 포용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소비 가능한 객체가 될 뿐 아니라 여성 또한 그것을 사랑할 것으로 가정했다. 여성은 우리들이 억압된 내숭쟁이라고 간주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그걸 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방은 남성에 대한 성교 가능성에 좌우되었다.

 2014년 개시한 '플레이보이'의 '안전한 일자리' 웹사이트는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포섭해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재브랜드화 노력으로 보았을 때, '플레이보이'의 이러한 노력은 잡지의 역사에 깊이 배어들었다. 디지털 매체 고위 부사장 코리 존스는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플레이보이 브랜드는 항상 '포용적이고' '낙태를 찬성하며'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브랜드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레이보이'의 선도적인 '페미니스트' 필자는 노아 베를라츠키로, 그의 저작은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에 대한 오랜 접근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뭐라고 말하든 페미니즘에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안다. 라는 그의 정치적 철학은 '모두에 대한 평등한 객체화' 인 것으로 보이고 이는 브랜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더 많은 여성을 우리가 '따먹을 수 있다'고 볼수록 더 많은 여성이 해방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플레이보이'와 베를라츠키같은 필자들은 여성 정체성에 대한 글에서 '선택'과 '동의'를 강조한다. 객체화된 존재는 객체화에 대해 열심이어야 하고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투덜대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헤프너가 1960년대에 팔고 있었던 개념을 정확히 강화시켜주는 데 일조한다. '플레이보이'의 남성은 '신사'다. 즉 그는 길거리의 여자를 아무나 부르지 않고 복수 포르노를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성의 '광란적인' 동의 (결국 아무도 우울한 경험은 좋아하지 않는다) 를 원하고, 그는 여성이 객체화를 '선택'했기를 원하며 그 안에 여성이 즐기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사고의 틀을 정하고 싶어한다.


 최근 저작에서 베를라츠키는 잘못되게도 권리 신장이 남성 독재의 미의 기준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는 개념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잔인하고 배타적이라고 썼다.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여성에 대한 개인적 '공격'으로 오해하는 것은 대화를 개인 밖으로 확장하기를 원치 않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흔한 행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언어를 사용하여 베를라츠키는 ‘플레이보이’를 집필하며 백인 남성으로서의 그에게 요구된, 그를 지지하는 권력구조에 도전하는 여성을 내치고 비방할 책임성의 결여를 강조한다. 헤프너와 같이 그는 자신을 관대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페미니스트인’ 남성-‘좋은 남자들’ 중 한 명-, 너무 친절해서 ‘모든’ 여성의 공정하고 평등한 성적 대상화에 착수하는 사람으로 본다.


 겉보기에는 그의 저작과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스트’적 마케팅 노력에 대한 비판(그 중 몇은 내가 했다) 에 잘 알고 있는 베를라츠키는 최근 방어적인 태도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잡지 집필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보이’가 여성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고 대신 여성을 ‘자위를 위한 환상’으로 사용한다는 수잔 브라운밀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사실 그에게 대화를 건네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를라츠키는 특정 여성의 목소리를 그의 페미니즘과의 계속되는 전투에 포함시키는 습관이 있다. 이 특정 여성은 그가 이미 믿고 전달하고 싶은 것을 그에게 앵무새처럼 답변해줄 것이다. 이는 이전 주인들로부터 배운 영리한 움직임이다. 성적 착취 산업은 항상 여성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곤 했다. ‘섹시함 = 권리 신장’ 이라는 주문에 희망을 품는 여성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섹시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가 아직 가부장적인 태도를 끝내려면 멀었다.


 연극배우이자 ‘플레이보이’ 집필진이자 저작 중 ‘왜 모든 여성은 핀업 사진 촬영을 해봐야 하는가’가 있는 사라 베닝카사는 그 자신을 ‘섹스에 긍정적이고 육체에 긍정적이고 재미를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고 기술한다. 이것만으로는 섹스, 육체, 재미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자질들이 ‘위협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의 규범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플레이보이 페미니스트’를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환상과 간섭하지 않는 종류의 페미니즘을 대표한다. 당신은 플레이메이트의 오른쪽을 따라 놓여진 ‘나는 재미있고 쉽고 뭐든지 하고 싶어해!’라는 단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사이트에 최근 게시된 다른 ‘페미니스트’ 기사들은 성매매를 탈범죄화해달라는 간청, 남성에게 구강 성교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인지에 대한 짧은 글, 페미니즘과 포르노의 양립성에 대한 두 건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어떤 걸 특정한 섬세한 메시지가 아니다.


 ‘플레이보이’ 는 남성의 여성을 탐닉해야 하는 아름다운 창조물 혹은 언제나 좋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 세상 편한 여자들로 보는 시각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집필진을 절대 등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등단시키는 것은 ‘플레이보이’가 대변하는 모든 가치에 반하기 때문이다. 쭈그렁 할망구나 증오의 대상인 내숭쟁이 반대자들을 묘사하는 필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훨씬 좋은 마케팅 전략이다.


 베를라츠키와 같은 집필진 (그리고 전체적으로 ‘플레이보이’)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 해방이 남성이 그들을 ‘아름답다’고 알아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페미니스트가 나체의 여성의 몸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거짓말은 특별히 의도적으로 호도되었다. 우리는 육체 혐오가 그와 같은 남성과 다른 ‘플레이보이’ 독자들로부터 기인함을 잘 안다. 우리의 행복, 가치, 우리 자신을 사랑할 능력,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자유가 그들의 성적 흥분과 만족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와 그 동류의 남성이다. 베를라츠키의 여성혐오는 (‘플레이보이’와 같이) 미묘하고 ‘섹스를 긍정하는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의 언어로 위장한다. 그것은 ‘여성을 옹호하는’ 반 페미니즘의 한 종류다. 그의 타이밍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적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철저히 쓰레기 취급을 당한 이상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이 재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포르노를 만들고 싶어하고, 스트립쇼 공연을 하고, (다만 무료로, 왜냐하면 일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이므로) 그에 대한 객체화를 킴 카다시안 류의 인스타그램 가슴 셀카를 통해 습득하고, 그리고 매춘을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자신들을 위해 하는 권리 신장용 선택이라고 재브랜드화한다.


 ‘플레이보이’는 절대 그들이 생각하는 해방을 여성에게 강제로 부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동의를 통해 기꺼이 해방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해방을 우리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은 주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친자본주의이고, 성 산업을 옹호하고, 아름다움에 관련된 산업을 옹호하고, 객체화를 긍정한다. 그것은 남성 권력에 대해 도전을 덜 하고, 그보다는 ‘자유’를 더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놓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섹스’를 옹호하고 ‘선택’, ‘대리인’, 그리고 ‘동의’ 와 같은 유행어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남성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지만 우리가 토끼 옷을 벗어제끼고 동굴 속으로 들어갈 ‘선택’을 지지한다.



 바람둥이의 도덕성 평가는 그가 상대 여성들에 대해 예상하는 '해방의 정도'에 달렸다. 바람둥이는 언제나 주위에서 책임을 물으면 '어쨌든 상대 여성들도 좋아했고, 그들도 '동의'하고 '선택'했으니까 나는 죄 없어요' 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특정한 1명의 여성하고만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면서 여러 명에 대한 제각기 다른 성적 만족을 추구해 나간다. 어느 정도로 육체가 맞닿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성적 만족은 상상도 포함한다. 

 

 이 바람둥이가 누가 봐도 여성혐오에 빠져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그가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경우다. 하지만 만약 바람둥이가 상대방의 일상을 정중하게 물어보고 가능한 시간에만 만나고 가능한 시간에만 전화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면? 그리고 그가 동시에 다른 여성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있다면? 여기까지만 보면 바람둥이의 입장에서는 거의 페미니스트라는 목적지까지 온 것 같다. 그러나, 상대 여성 각각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최소 한 명은 최소 한 번은 자신이 객체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람둥이가 상대에게 친절하고 외모 외의 요소도 칭찬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객체의 여성이 아닌 주체의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대상 중에 자유연애자가 아닌 여성이 최소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여성은 자유연애의 반대, 즉 나와 만나고 있다면 다른 여성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남성에게 요청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 논의한 바람둥이를 논리적으로 여성혐오의 주체로 격하시킨다. 여성의 규범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남성은 그 여성에게는 여성혐오자로 보인다. 페미니스트로 인정받는 절차는 만장일치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바람둥이가 여러 여성들을 만나는 이유가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 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혹은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이므로' 라면 그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즉 바람둥이의 가장 넓은 정의는 좋아하는 여성을 2명 이상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만남도 끊긴다. 여성의 존재 가치는 바람둥이의 '좋아하는 마음'에 달렸다. 그리고 이 좋아하는 마음이 진전된 극단에는 언제나 실재하든 상상 속이든 '섹스'가 있다. 결국 바람둥이는 자기가 원할 때 자기 의지에 따라, 비록 상대의 의견을 묻는다 할지라도 상대를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대로 쏟아부을 수 있는 바구니' 로 취급한다. 그러한 취급이 곧 객체화다.

 바람둥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게 여러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도 논리적으로 반박당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결국 안타깝게도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졌고, 특히 남성이 페미니스트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요구받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졌다. 페미니즘 안에도 워낙 방대하게 계파가 나뉘다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 / 로저 에커치 지음 /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고대 그리스의 의식에는 밤을 새워 벌어지던 판키데스라는 축제가 있었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치금지법으로 귀족 계급에게만 비단이나 공단 옷을 허용했다.


정신이 돌다 라는 단어로 moonstruck 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국 서부에서는 밤에 도깨비불 때문에 생기는 사고를 가리켜 '픽시 레드' (Pixy led, '픽시가 이끈' 사고라는 의미)라 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구덩이나 물이나 낭떠러지에 빠지거나 기절하거나 코를 너무 골아 미친개로 오인되어 총에 맞아 죽거나 하는 사고사를 컨셉으로 한 바, 즉 바 인테리어를 낭떠러지나 계곡이나 사냥총 등을 이용해서 하면 어떨까.


1720년 프랑스 오를레앙도 형편없는 하수 시설 때문에 어떤 길은 늪지로 바뀌었다.


프랑스에는 '파리의 흙처럼 더럽다' 는 말이 있다.


도시의 길거리에 등을 밝히고 다니는 사람들은 linkboys 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랜턴 운반자라는 의미로 porte-flambeaux 또는 falot 라고 불렀다.


런던에서 횃불꾼은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나쁜 평판을 얻었다. 영국과 달리 구체제 말의 파리에서는 횃불꾼들이 정치적 첩자로 악명 높았다.


덴마크에서는 집에 침입한 도둑이 동전 몇 개를 범행 현장에 놔두면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관리들은 시체를 건지기 위해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걸어두기도 했다.


개인적 명예에 대한 남성들의 숭배가 덜 확고한 영국이나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개인적 복수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층 계급 내의 사회적 경쟁은 도박, 경마, 사냥과 같은 다른 분출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1666년 9월 2일 이른 아침 빵집에서 발생한 런던 대화재는 아직도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고 있다. 동풍의 부채질을 받은 불은 나흘에 걸쳐 런던의 5분의 4를 태웠다.


미국에서는 1720년대 초 보스턴과 20년 뒤 뉴욕의 예에서 보듯 불만을 가진 노예들이 방화를 저질렀다.


1696년 스위스의 한 목사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해가 지는 저녁에 가축은 외양간으로 돌아오고, 숲의 새들도 조용해진다. 인간들만이 어리석게 자연과 일반적 질서를 거슬러 행동한다."


근대 초 전반에 걸쳐 밤이라는 위험한 영역은 교회와 국가의 감시를 벗어나 있었다. 유럽의 공동체들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행정 제도와 종교 제도의 사형대는 밤에는 잠이 들었다.


중세 이후에야 도시의 통행금지가 약간 느슨해져 오후 8시가 아닌 9시나 10시로 바뀌었고, 그것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준 시간이 되었다.


베네치아에서 이방인은 치안판사의 허락 없이 하룻밤 이상 머물 수 없었다.


평판이 좋은 남자들도 어두워진 뒤에는 제약을 받았다. 예컨대 카탈루냐에서는 네 명 이상의 남자가 함께 걸을 수 없었다.


파리에서는 1702년의 법령에 의해 귀족들이 총기를 갖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하인들도 지팡이나 몽둥이를 빼앗겼다.


도시에서는 무기를 소지하는 것 외에도 복면과 가면을 포함하여 밤에 변장하는 것도 금지했다.


1415년 런던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법 조항은 만성절(All Hallow, 11월 1일) 전야부터 성촉절(Candlemas, 2월 2일) 까지 매일 밤마다 불을 밝히도록 한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1461년 루이 11세(1423-1483)의 명령에 따라 대로에 접하고 있는 집의 창문에 랜턴을 걸도록 했다.


1650년 이전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어떤 도시도 공금을 들여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파리(1667), 암스테르담(1669), 베를린(1682), 런던(1683), 비인(1688) 등을 필두로 1700년에 이르면 훨씬 더 많은 도시들이 길거리를 밝혔다.

 -> 한국, 중국, 일본은 거리 조명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했는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동양의 문화는 과거로부터 왔는가?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야경대원들은 '새벽 별'(morgenstern)이라는 이름의 못 박은 철퇴로 무장했다.


야경대원이 순찰중에 해야 할 또다른 일은 집주인이 문을 잠갔는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주의 절대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훈련받은 경찰의 창설이 어려웠다. 경찰도 상비군처럼 독재적인 통제권하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야경대원들은 '야경'이라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옷깃이 달린 비단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는 수비대가 아니었다.


파리에서는 야경대원을 조롱하여 어설픈 작자(savetiers)나 '평발'(tristes-à-pattes)이라 불렀다.


사실상 산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저녁 시간은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모두 법의 감시를 벗어나 있었다. 카르보니에의 우아한 말로 표현하자면, '법의 공백'(vide de droit)이었다.


밤에 작성한 계약, 서약, 유언은 모두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시인 에드워드 영은 "밤에는 무신론자도 신을 반쯤은 믿는다"고 단언했다.


한 독일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불이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불을 지피느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이다."


영국 전역에서 즐겨 행해진 놀이는 '내가 촛불을 들고 거기 갈 수 있을까?' 였다.


재무장관의 집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하러 마차를 타고 가던 조너선 스위프트는 "달이 빛나 우리 마차는 전복될 위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달이 없으면 밤의 향락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1792년 노퍽의 낸시 우드퍼드는 이웃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달이 뜨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집으로 저녁 먹으러 오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 일부 지역에서는 해가 진 뒤 처음 뜨는 별인 '저녁 별'(Vesper, 실지로는 금성)을 '목동의 램프'라고 불렀다.


고요한 밤에는 모든 소음이 더 크게 울려퍼졌다.


데카르트는 "밤에 등불 없이 험한 길을 가본 경험이 있다면, 지팡이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것" 이라고 썼다. "이 지팡이를 사용함으로써 주위에 있는 여러 물체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나무인지 돌인지 모래인지 물인지 풀인지 진흙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근대 초 영국 가정에서도 밤에 갖가지 시간대가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시간대는 일몰, 문 닫을 때, 촛불 켤 때, 잠잘 때, 자정, 한밤중, 닭 우는 때, 동이 틀 때로 이루어졌다.


자정부터 오전 3시 사이를 고대 로마인들은 인템페스타(intempesta), 즉 시간이 없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근대 초의 자료를 보면 영국 북부에서 밤에 휘파람을 부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속죄를 위하여" 자기 집 둘레를 세 바퀴 돌아야 했다.


1602년에 영국을 방문한 한 독일인은 "영국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이웃집을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는 서약에 묶여 있다"고 평했다. 도시에서 낮에 커튼을 치면 확실히 의심을 샀다. 뉴잉글랜드 한 이주민은 이웃집에 커튼이 쳐지면 "창녀 커튼"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직조공들은 의류 산업의 번창에 부응하여 겨울철에도 때로는 밤 10시까지 직기 앞에 앉아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리옹의 남자 직조공은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일했고, 비단 공장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단사, 제화공, 모자 제조업자, 염색공 등이 오랜 시간을 일했다. 스코틀랜드에는 "시민이 잠드는 시간이 제화공의 저녁식사 시간" 이라는 속담이 있었다.


궁핍한 여인들은 집에서, 혹은 더 흔하게는 남의 집에 세탁부로 가서 빨래를 해주며 살림을 꾸렸다. 과부 메리 스토워는 "달빛이 아주 환한 밤" 새벽 2시에 리즈에 있는 어느 집에 가서 빨래를 했다. 런던의 앤 팀스는 "생계를 위해 11시부터 12시까지 밤늦은 시간에 빨래한다"고 말했다.


1퍼킨=40리터, 1배럴=4퍼킨=160리터


많은 사람이 지루한 일을 이웃이나 가족과 함께하며 만족스러워했던 것은 당연하다. 때로 그들의 동지애는 술로 굳건해졌다. 더 중요하게는, 밤은 즐거움과 유희를 억압하는 수많은 규칙과 의무, 낮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그 무엇보다 밤은 정신의 한 상태였다. 친숙한 얼굴과 주고받는 도움 속에서 형식적인 겉치레는 물론 두려움과 모멸의 감정도 뒷전으로 물러났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고 일하다보면 어색함이나 거리낌 같은 감정도 물러났다. 웨일스 속담에 아침의 '존'이 밤에는 친근한 '잭'이 된다고 했다. 같이 일하며 횃불이나 램프를 같이 써서 소중한 연료를 아낄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점이었다. 남녀가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훈훈한 화롯가에 둘러앉았다. 일을 완수하는 것 이상으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기를 나누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침침하고 비좁은 상황에서 밤에는 친밀감과 동료 의식이 깊어졌다. 영국에는 "밤에 나눈 말은 아침의 말과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여러 아낙네들이 물레와 실 감는 막대기를 들고 이웃집에 모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그런 목적을 위해 겨울철마다 '작은 쉼터'(écreignes)라는 임시 오두막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몇십 년 동안 스포츠 경기나 종교 축제 같은 전통적인 대중 여흥이 줄어들면서 술집의 인기가 높아졌다.


'물의 시인' 존 테일러는 술을 "벌거벗은 사람의 가장 따뜻한 옷"이라고 했다.


술집에서는 성적 만남도 이루어졌다. 얀 스테인(Jan Steen),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Adriaen van Ostade) 등 북유럽의 화가들이 묘사했듯, 이 붐비고 침침한 곳에서 남자와 여자는 술을 마시고 구애하고 수작을 떨었다. 1628년 한 영국의 비판자는 성적 희롱질을 막기 위해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남녀가 근처의 헛간이나 변소에서 섹스를 했음을 폭로하는 재판 기록도 있다. 날씨가 좋으면 근방의 어두운 들판도 이들에게 좋은 장소였고, 인근 교회 묘지도 섹스 장소로 이용되었다. 결국 술집은 가정생활의 대체물이었다.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던 반면, 북유럽과 중앙 유럽에서는 성관계에 대해 더 관용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애정에 탐닉할 수 없었다.


로마에서 모든 계급의 연인들은 랜턴을 든 행인이 다가오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불을 돌려요"(Volti la luce)라고 외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유럽 여러 지역에서 실잣기 모임은 긴 겨울에 함께 즐기고 구애를 하기 위한 더 일반적인 자리였다. .. 이런 밤샘 모임에서 그녀들에게는 또다른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멋진 남자들을 만나거나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이런 모임에서 결혼이 많이 성사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들만 모이는 모임도 때로 젊은 남자들의 참석을 허용했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생겨난 '번들링'(bundling)이라는 관습은, 이러한 열정과 그 열정을 통제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번들링은 연인들이 여자 부모의 집에서 섹스는 하지 않고 밤을 새우는 관습이었다. 번들링은 구혼의 중간 단계로, 그에 앞서 함께 산책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구애 단계(wooing)가 있었다. 구애 단계에서 서로 애정을 확인해야 젊은 남녀는 번들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 번들링은 네덜란드 일부 지역과 스칸디나비아에 퍼져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그것을 '담소하기'(queesting)라고 불렀다. 이러한 밤의 구애는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성행했다. 사실 독일 농촌의 한 목사는 심방 보고서에서 소녀의 침실의 '불빛을 찾아가는 것'(zu licht gehen)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밤에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자유라고 간주되었다"고 기록했다. 17세기 사부아의 한 주민은 '알베르주망'(albergement)이라는 관습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젊은 농부들이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들과 함께 밤늦도록 시간을 보내다가, 집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침대를 같이 쓰자고 요청한다." 그러면 보통 "여자들은 거절하지 않는다."


종교 당국의 주기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번들링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에는 성서를 개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신교 운동인 경건주의(Pietism)가 전파되면서, 많은 지역에서 문맹률이 급격히 낮아졌다.


폴란드에서는 "절제란 낮을 위한 것, 저녁과 밤에는 즐거워야지"라는 노래가 불렸다.


이사크 드 뱅스라드의 <밤의 발레>(Le Ballet de la Nuit, 1653)만큼 귀족들의 밤에 대한 친밀감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찬가는 없다. 루이 14세를 기리기 위해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뱅스라드의 초기 발레 중에서도 가장 호사스럽다. 화려한 의상과 스펙터클한 무대가 어우러진 바로크의 장관 속에서 젊은 왕이 직접 몇몇 배역을 맡았다. 아주 적절하게도, 최후의 막에서 왕은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나와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거지와 도둑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밤의 발레>는 천국이라는 정교한 배경에 신성이 가득한, 밤 생활의 초월적 모습을 제시했다. 여러 차례 공연된 이 발레는 궁정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18세기 초에는 런던의 래닐러(Ranelagh)와 복스홀(Vauxhall)같이 조명 장식이 있는 유원지를 비롯하여, 우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크게 늘었다.


격식을 차리는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가면무도회는 근대 초 궁정의 억압적인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기회였다. ->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가면무도회를 하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100명 이상 모인 곳에서.


가면무도회장은 부도덕, 불경, 음란 및 모든 종류의 죄악을 저지를 기회를 파는 상점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가장 타락한 창녀와 가장 방탕한 난봉꾼이나 사기꾼이 단돈 27실링에 최고의 귀족이나 귀부인들과 어울릴 특권을 산다.


비행을 저지르는 귀족들의 행동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사회에 순응하고 위선을 행하는 것을 경멸하는 강렬한 개인주의를 대변했다.


1599년 런던의 극작가 조지 채프먼은 "이 도시에 사는 수백의 귀부인들은 밤에는 한량들 사이에서 춤추고 환락에 빠져 있다가, 아침에는 마치 새로 세례받은 듯 정숙한 여성이 되어 남편의 침대로 들어간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아침에 대해 "때로는 남편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 아내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Nec spe, nec metu


밤은 사회적 풍경에 혁명을 일으켰다. 어둠이 권력자들을 더 평민적으로 만들었다면, 수많은 약자들은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2세 지지파'(Jacobites)와 같은 정치적 국외자들이 밤에 작당했을 뿐 아니라 불안이 고조된 시절에서는 경쟁 파벌들이 어둠을 틈타 선동적인 전단을 돌렸다. 1688~1689년의 격렬한 명예혁명 시기에 런던 길거리는 아침마다 전단지로 뒤덮여 있었다. 몇 년 뒤 하노버 왕조 계승 위기 시에 쿠퍼 백작부인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비방을 늘어놓는 팸플릿이 뿌려지지 않고 지나가는 밤이 없다."


유럽 전역에서 견습공 제도는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자 청소년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대중적 수단이었다. 낮에 그들은 주인의 지배 아래 있다가 밤이면 벗어났다. '밖에 눕기'(lying-out)라는 말은 종종 집안의 통행금지 시간을 무시하고 밤시간 대부분을 집밖에서 보내는 견습공들에게 쓰는 말이었다.


버지니아를 여행했던 한 사람은 보통 노예들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집을 나와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6~7마일을 걸어 흑인들이 춤추는 장소로 간다. 거기에서 그들은 놀랄 정도로 경쾌하게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는 기록을 남겼다. -> 그러한 장소에서 마케팅을 한다면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시체 도굴꾼을 영어로 resurrection man이라고 한다.


런던에서는 증권 거래소에 아이들이 많이 버려녔다. 파리의 어머니들은 버리는 아이들에게 성별과 생일과 이름을 적은 꼬리표를 붙였다.


영국 서부와 웨일즈의 불법 거주자들은 더 영구적인 거주권을 주장했다. 기원이 불분명한 어느 지역 관습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카반 우노스'(caban unnos)라는 진흙 오두막을 하룻밤 사이에 황무지나 공유지에 지으면 주거를 허용했다. 그 작업은 해가 지고 나서부터 뜨기 전까지 완성되어야 했고, 친구나 가족이 도와주는 것도 허용되었다.


경제적 빈곤이 밤의 무법을 낳았다. 토비아스 스몰렛은 "모든 평민은 도둑이고 거지이며, 나는 극도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다고 믿는다"고 쓴 바 있다. 범죄는 긍지와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즉, 집을 늑대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범죄를 낳았던 것이다. 가난한 선생 존 캐넌은 "어떤 가난한 악마에게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낮에 위축되었던 것을 밤에 만회하는 도둑질은 견습공, 하인, 노예로 산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손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그럼 도둑질을 막으러면 밤에 심리적으로 풍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회식과 클럽.


밤의 조직 대부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서, 내부에 계급이 있는 것도, 자체의 행사를 거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길드와 달리 확립된 위계질서도 통일된 회원 자격도 확고한 행동 지침도 없었다. 그들이 개인적 자율과 자기 확신이라는 가치를 강조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회원들은 우정을 나눴다. 소집단으로 떠돌아다니던 부랑아들은 서로를 '형제' 또는 '친구'라고 불렀으며, 어떤 자들은 동료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영혼에 걸고" 맹세했다.


일부 젊은이들 집단이 공동의 도덕을 침해한 바람피우는 남녀, 폭력적인 남편 등을 벌함으로써 사회 통제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밤은 누비던 프랑스의 '샤리바리'(charivari), 이탈리아의 '마티나타'(mattinata), 영국의 '스키밍턴 라이드'(skimmington ride)는 도덕을 어긴 자들에게 야유와 비난을 쏟았고 때로는 육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은 젊은이들 스스로 언젠가 해야 할 결혼의 성스러움을 재확인시켜주었다. 같은 이유로 미혼남들은 자기 지역 처녀들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경쟁 지역 젊은이들과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또한 견습공들은 무리를 지어 매춘굴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찰스 2세는 그 소식을 듣고 못 믿겠다는 듯이 "그럼 그들은 왜 거기를 가나?"라고 물었다.


영국 농촌에서는 한 해 추수가 끝난 뒤 농장주들이 일꾼들을 불러 저녁에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러한 '추수 만찬'은 음식과 술과 동료애를 관대하게 베푸는 것으로 유명했다. 헨리 번에 따르면 "이 만찬에서는 하인과 주인이 똑같으며, 모든 것이 평등한 자유에 따라 행해진다." 그러나 물론 이런 행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일시적인 휴식일 뿐,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해야 함을 예고했다.


사육제 후에는 엄격한 사순절 기간이 뒤따랐다.



(계속)

Posted by 마키아또
,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이 작품은 나가사키 현의 인공 콘크리트 섬인 하시마 섬(군함섬)이 가진 역사를 살펴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인구과밀에 따라 실제로 영화 ‘배틀로얄 2’와 같은 상황을 겪은 전 하시마 섬 주민들의 담담한 인터뷰를 나레이션으로 담았다. <디스토피아를 부르는 주문>은 예전에 거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제국주의라는 망령이 섬 속에 숨어들고 사람들이 그 망령을 잊어갈 때, 힘들게 그 망령을 구석구석으로부터 불러와 관객에게 선사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살면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억울함은 관객들에게 전해온다. 물론 아시아 각국의 탄광 강제징용자들의 경험도 듣고 싶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굉장히 일본인 프로듀서 특유의 느낌을 살리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자료를 만들어냈다. 영상은 일반인, 특히 외국인이 쉽게 갈 수 없는 폐허의 인공섬이 실제로 40여년이 흐른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초고화질 영상을 통해 천천히 조망한다. 그리고 수시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매우 짧은 간격으로 하시마 섬의 모습을 빠르게 전환하는 정지 사진으로 보여주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음향 효과를 넣는다. 고등학생같은 앳된 목소리로 ‘차렷’, ‘멈춰’ 의 구령에 따라 150여명의 여고생들이 매스게임을 하며 ‘인구과밀’, ‘바위’ 등의 키워드를 만들어내는 영상이 중간에 들어가는 것 또한 국가의 정책에 대한 힘없는 수용과 그에 따른 좌절을 느끼게 해준다. 구령은 곧 디스토피아를 다시 이 현장으로 불러오는 주문과 같이 느껴진다.
 



 본래 섬나라인 일본이지만,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을 가두어놓은 이와 같은 섬은 그야말로 섬중의 섬이다. 그 낯섦이 주는 공포감이 상당하며, 그 공포감은 하시마 섬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섬으로 확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옆의 벽에 장식해놓은 만화 커트를 통해 상쇄된다. 일본 문화의 주요한 특징인 모에화가 귀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하시마 섬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맹목적 공포의 대상이 아닌 호기심의 섬이자 미지의 섬이 된다. 
 



 하시마 섬의 귀신은 ‘배틀로얄 2’라는 문화콘텐츠에 희석되어 그 제국주의의 본모습을 은근슬쩍 증발시킨 채 화면에 등장한다. 매스게임을 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역사적 연계성이 없는 앳된 여고생들이 아니라 이 곳이 아시아 각국의 탄광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고달픈 삶의 터전이었던 그 때의 실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면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의 수많은 유태인 박물관 내 작품들은 나치 독일과 관련된 영상물에 언제나 실존한 노인들만을 등장시키고 과거에 촬영한 흑백 혹은 컬러 비디오를 삽입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증폭시키면서 유태인의 눈으로 바라본 독일인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와 비교했을 때 일본 제국을 묘사한 이 작품은 공포감을 정죄하기 이전에 ‘어머나, 이런 신비로운 섬이 있었어?’ 하고 관객들이 먼저 호기심에 빠져들게 한다. 무자비함과 기계적인 정교함으로 인간성을 상실해도 그것이 현대 미술로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일본의 문화적 저력이 다시금 느껴진 작품이다. 만화, 영화 그리고 실제와의 경계가 모호해진 모에화된 하시마 섬에서 아시아 제국(諸國)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능동적인 상상력에 달려있고, 그 상상력이 불러내는 귀신은 분명 이 작품이 스스로 불러내는 귀신보다는 진중하고 무서울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출처: OhMyNews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행동하고, 바로 옆 화면의 어린이들과 비교해도 하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시간이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동네는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정착하며 살던 곳이고, 그 때 어린이였던 작가는 그 기억을 현재에 그대로 가져오고자 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귀신이다. 자신이 존재하고 싶은 곳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현재의 사람이 있는 곳에 머문다. 따라서 <궤도상의 재연>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귀신, 간첩, 할머니’의 ‘귀신’에 해당하며 주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현실의 복잡한 고려사항으로부터 탈피한 자유롭고 순수한 귀신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어른들은 사회인으로서 가지는 조직과 직책, 예의범절과 지위 고하,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는 복장과 화장을 버린 채 아무 물건도 위치하지 않는 검은 공간에 빙 둘러앉아 장난을 친다. 표정은 시종일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는 표정이다. 바로 옆 화면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아이들의 혼이 어른들에게 그대로 주입되는 느낌이다. 그 동일해진 혼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이 두 집단이 입고 있는 옷이다. 모두들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탈의하고 있는데 이는 보통 어른들의 모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다고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은 어느새 어른들을 신들린 미친 존재들이 아닌 자연스러운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바로 옆에 비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뛰어놀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자의 배변 훈련이다. 두 살짜리 아기에게 부모가 하는 일을 영상에서는 주위의 친구들이 하고 있다. 남자는 처음에는 한사코 거부하지만 결국 천진난만하게 주위의 남자와 여자 친구들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배변 훈련에 성공한다. 둘째는 여자의 월경이다. 생리혈을 떨어뜨리는 나이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접어들 때지만, 영상 속의 여자는 정신적 성숙이 요구된다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신체가 조숙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배변하는 남자와 월경하는 여자를 둘러싼 친구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원없이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준다는 점이다. 마지막 활동은 베개를 놓고 두 명의 여자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몸싸움을 지켜보는 친구들은 마치 씨름 경기를 보는 관객들처럼 신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생산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다 성장한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막 피어나는 욕구를 있는 힘껏 분출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현대인 성인이라면 감히 집단생활 속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므로 영상 속 공간은 현실을 벗어난 공간이 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이 영상을 보는 관객들 역시 왼쪽 화면의 어른들과 오른쪽 화면의 아이들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자신들도 아이들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게 된다.

 부끄러운 행동을 주변인이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현대인들이 속으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경쟁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집단문화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이를 더 뼈저리게 느낄지 모른다. 비록 현실 밖의 영상 속 귀신의 활약이지만, 그 귀신은 진심어린 웃음을 되찾아주었고 집단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Posted by 마키아또
,


8월 1달 동안 틈나는 대로 MPK Mini와 함께 Logic Studio로 AKB48의 Baby! Baby! Baby!를 조금씩 카피한 결과 위와 같은 파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곡인데요, 언젠가는 대동제 때 후배들이 제가 만든 악보를 가지고 공연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중국곡도 섞어서 한중일 밴드로 편성하는 걸 이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이 다음에 중국곡도 하나 따면 그 곡과 같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필요한 트랙]
보컬+코러스. EVB3 60's Pop Organ
브라스섹션. EXS24 Trumpet Section - Chorus부분에서 도레미파솔라솔! (쉬고) 시도-레-미 (쉬고)
16분음표 단위로 반복되는 고음(미솔도솔미도미솔). EXS24 Suitcase Electric Piano - Decay값을 충분히 높여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를 만듭니다.Release값을 약간 높여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없앱니다. (곡 전체에 걸쳐 이음표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베이스. EXS24 Thumbstroke Bass - Sustain값이 100%입니다.
신스 베이스. ES2 Filter Soul - Verse부분에서 간혹 사용합니다. 파 미b 도~~
일렉 기타. EXS24 Sunburst Electric - 도 도 솔라 도 도 도 도 솔라 미b 레 도솔라 반복.
Verse에 나오는 인도 음악? 같은 소리 - ES2 Legato Unison 적용. Glide 20%. Wave는 Saw - Saw. Decay 80% Sustain 50%. Tone은 약간 Bright.
스트링.EXS24 Arco Strings - Chorus부분에서 도~~레~~~~미~~~레도시시b~~~~~
ES P - Verse 2에서 (솔도) (솔도) (솔도) (솔도) 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나옵니다. 
드럼 킷. Ultrabeat인데 샘플을 일일이 입혔습니다. 
스네어. Ultrabeat Acoustic Snare Bank의 TRASH SNARE

드럼 킷에 대해 조금 더 소개를 해야 할텐데요,
Verse와 Chorus에서 쓰는 Kick이 다릅니다. Verse는 조금 더 짧고 건조하고, Chorus는 조금 더 길고 강하고 젖은 사운드입니다. (Decay가 낮다고 해야 할까요)
Verse에서 쓰는 스네어는 TRASH SNARE(Chorus에서 사용)와는 달리 짧고 건조합니다.
드럼 킷의 건조한 Verse와 젖은 Chorus의 대비를 살리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Verse 2 시작 전에 브라스 밴드가 레레# 레레# 레레#미레#미레#레 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는 Scratch 소리가 들어갑니다. 따로 샘플 추가해주어야 합니다.
HIT이라고 소리를 찾아보면 Kick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낮게 깔리는 콰앙~~~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SF영화 예고편에 많이 쓰는 그 소리) 이것은 Chorus 나오기 전에 씁니다. 
Reverse Cymbal과 Cymbal은 붙여서 사용합니다. 그러면 2박부터 스읍~~~ 한 다음 다음 마디 1박에 창! 하는 소리가 나오겠지요??
이 곡의 특징은 Cymbal 샘플 소리를 전체 다 내는 경우와 일부만 내는 경우 2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심벌을 손으로 잡아서 mute하는 효과지요. 이를 위해 Envelope 직사각형의 오른쪽 모서리에서 드래그를 해서 Decay와 Release를 나누는 빨간 세로 직선을 가져와 Envelope 면적의 중간 정도에 놓습니다. (제 파일의 경우 Release 111ms입니다.)
Bridge 부분 (GM7 - F#7 - Bm7 - E7) 에 사용되는 슈우우우웅~~~~ 하는 소리는 SWEEP이라고 찾아보면 많이 나옵니다. 이 샘플은 8박 정도로 길게 늘여서 사용합니다.

제가 Reverb 효과를 넣은 트랙은 브라스섹션, 보컬+코러스, 드럼 킷 3가지 트랙입니다.

마지막에는 드럼 킷 트랙에 St-delay를 적용시키는데, 자동으로 맨 마지막에만 켜고 그 전까지는 계속 끄고 있을 수 있도록 입력 모드를 Latch로 바꾼 뒤에 녹음을 해서 St-delay를 켜서 효과 조작을 녹음에 반영하였습니다.

더 질문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 이 원 버전 말고 Jounetsu no Inori Ver. (정열의 기도 버전??) 라는 게 또 있는데 이건 조금 더 코드가 단순하고 라이브공연에 더 적합한 악기 구성으로 편곡한 곡입니다. 주말에 저녁식사 파티할 때 배경음악 같아요. 그리고 원곡에 소심하게 숨어있던 쨉쨉이 기타가 이 버전에는 대담하게 메인으로 등장하고 기타 솔로를 위해 디스토션 기타도 한 대 추가되어서 더욱 더 스케일이 큰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

집안의 방에서 저녁노을을 찍어보았습니다. 색깔이 참 예쁘네요.


Nikon Coolpix s5200으로 촬영하였습니다.










'Cafe Macchiato > 주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휴 단상  (0) 2020.05.04
반신욕.  (0) 2018.06.19
2012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 영상촬영+제작 스탭 모집  (1) 2012.04.04
duality  (0) 2011.04.03
주말에 테니스 치기  (0) 2010.06.13
Posted by 마키아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