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can playboys be feminists 라고 검색을 한 결과,


 예/아니오 라고 딱 잘라 대답해주는 다른 네티즌이 있는 지식iN 류의 사이트는 검색결과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글이 있어서 바로 읽어보았다.

 바로 잡지 '플레이보이' 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 글이었다. 

 원래 나의 질문은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였다. 바람둥이가 여러 명의 여성과 육체적 사랑을 갈구하든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든 상관없이 예/아니오의 답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래의 글을 읽고 그 답은 '아니오' 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문

http://www.newstatesman.com/politics/2015/06/playboy-feminism-how-gentleman-s-porn-rag-coopted-women-s-movement


플레이보이 페미니즘: 어떻게 신사들의 포르노 쓰레기가 여성운동을 포섭하였는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내용을 온라인 잡지에 통합하려는 플레이보이의 최근 시도는 남성만을 유익하게 하는 '여성 해방' 담론을 팔고자 하는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 중 일부다.


 휴 헤프너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는 '페미니즘 같은 게 존재하기도 전부터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였다' 라고 답할 것이다. 이번 주, 코스모폴리탄 지는 헤프너가 자신에게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재출판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자체의 최악의 적이며, '플레이보이'가 여성 해방의 진짜 원천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누구나 제대로 인식이 박혀있다면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라고 기술한다.


 이 잡지 기사는 원래 2007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헤프너는 1960년대부터 같은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 '플레이보이'는 그 때에도 그만의 '여성 해방' 담론을 선전하였다. 생식에 관한 권리 옹호 그리고 당연한 '성적 해방'이 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 재단은 심지어 낙태 권리에 찬성하는 기관들과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에 기부금을 내서 보건 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랜 경력의 편집자인 냇 레흐만은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논의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전에 이 중요한 페미니스트 주제들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의 여성에 대한 지지는 최소한 선택적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지지에 동의한 페미니스트들이 적었다. '플레이보이'는 아직 주로 누드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정 종류의 여성 (그리고 특정 종류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잡지의 비선호는 명백했다. 잡지의 '플레이메이트'들은 젊고 행복하고 단순한 여자였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고 헤프너는 1967년에 오리아나 팔라치 기자에게 말했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들이 일차원적 장난감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기 위해 싸워왔다는 점이다.


 여성 권리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우리들의 대상화를 고수하는 것은 2세대 페미니스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집필진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에게 제시되는 페미니즘은 잡지의 기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방 임플란트부터 자신의 누드 촬영과 폴 댄스 교실까지 모두 '권리 신장'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2014년의 가장 뜨거웠던 주제가 비욘세의 페미니즘일 때, 그 생각은 오직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즘 운동을 자본화하려는 노력을 두배로 늘릴 것이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된 자유연애의 지지자로 상정해야만 존재한다. 그처럼 미국의 피임약의 소개는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성적 혁명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여성은 이제 '남성처럼' 섹스를 할 수 있다. '플레이보이'는 결국 아직도 남성중심적인 '여성 해방'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은 '성적'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지만 이는 남성을 결국 만족시켜야 하는 성 정체성의 일차원적 시각에 국한되었다.


 책 '우파 여성'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은 성적 혁명에 대해 "혁명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혁명의 목적은 남성을 부르주아의 제약 없이 여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방시키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점에서 혁명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적 혁명이 남성의 위대한 옛 이야기일 때 여성에게 그것은 차라리 마약을 한 듯하고 꽃무늬처럼 화려한 강간 문화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여성은 이론적으로 임신할 수 있다는 위험을 들어 섹스에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임약의 등장부터 남성의 시각으로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없었다.


 '플레이보이'가 60년 전에 한 것은 대중적 페미니즘(그리고 일반적인 자유주의 정치)이 오늘날 취한 방향을 반영한다. '플레이보이'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한 개인주의였고, 국가는 미국의 꿈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서양 남성은 진보주의자든 기업 권력이나 제국주의나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든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 개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남성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 그리고 가부장주의가 여성의 몸과 성 정체성의 표현법을 독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들은 포르노 문화를 포용하며 남성의 시선을 해방적인 것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과거에 상류층 여성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남성이 사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여성 계층을 만들어낸 성녀-창녀 이분법을 타파하려는 상상의 노력에서, 많은 진보적인 남성(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은 모든 여성을 '창녀'로 구성하는 '해답'을 찾았다. 여성은 출산, 섹스, 혹은 무급 가사노동 등을 통해 남성에게 일방향 혹은 양방향으로 봉사하는 육체라는 개념에 도전하기보다는, 그들은 '플레이보이'의 '모든 여성은 성교 가능하다'라는 해방의 제시안을 포용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소비 가능한 객체가 될 뿐 아니라 여성 또한 그것을 사랑할 것으로 가정했다. 여성은 우리들이 억압된 내숭쟁이라고 간주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그걸 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방은 남성에 대한 성교 가능성에 좌우되었다.

 2014년 개시한 '플레이보이'의 '안전한 일자리' 웹사이트는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포섭해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재브랜드화 노력으로 보았을 때, '플레이보이'의 이러한 노력은 잡지의 역사에 깊이 배어들었다. 디지털 매체 고위 부사장 코리 존스는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플레이보이 브랜드는 항상 '포용적이고' '낙태를 찬성하며'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브랜드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레이보이'의 선도적인 '페미니스트' 필자는 노아 베를라츠키로, 그의 저작은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에 대한 오랜 접근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뭐라고 말하든 페미니즘에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안다. 라는 그의 정치적 철학은 '모두에 대한 평등한 객체화' 인 것으로 보이고 이는 브랜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더 많은 여성을 우리가 '따먹을 수 있다'고 볼수록 더 많은 여성이 해방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플레이보이'와 베를라츠키같은 필자들은 여성 정체성에 대한 글에서 '선택'과 '동의'를 강조한다. 객체화된 존재는 객체화에 대해 열심이어야 하고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투덜대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헤프너가 1960년대에 팔고 있었던 개념을 정확히 강화시켜주는 데 일조한다. '플레이보이'의 남성은 '신사'다. 즉 그는 길거리의 여자를 아무나 부르지 않고 복수 포르노를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성의 '광란적인' 동의 (결국 아무도 우울한 경험은 좋아하지 않는다) 를 원하고, 그는 여성이 객체화를 '선택'했기를 원하며 그 안에 여성이 즐기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사고의 틀을 정하고 싶어한다.


 최근 저작에서 베를라츠키는 잘못되게도 권리 신장이 남성 독재의 미의 기준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는 개념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잔인하고 배타적이라고 썼다.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여성에 대한 개인적 '공격'으로 오해하는 것은 대화를 개인 밖으로 확장하기를 원치 않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흔한 행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언어를 사용하여 베를라츠키는 ‘플레이보이’를 집필하며 백인 남성으로서의 그에게 요구된, 그를 지지하는 권력구조에 도전하는 여성을 내치고 비방할 책임성의 결여를 강조한다. 헤프너와 같이 그는 자신을 관대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페미니스트인’ 남성-‘좋은 남자들’ 중 한 명-, 너무 친절해서 ‘모든’ 여성의 공정하고 평등한 성적 대상화에 착수하는 사람으로 본다.


 겉보기에는 그의 저작과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스트’적 마케팅 노력에 대한 비판(그 중 몇은 내가 했다) 에 잘 알고 있는 베를라츠키는 최근 방어적인 태도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잡지 집필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보이’가 여성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고 대신 여성을 ‘자위를 위한 환상’으로 사용한다는 수잔 브라운밀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사실 그에게 대화를 건네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를라츠키는 특정 여성의 목소리를 그의 페미니즘과의 계속되는 전투에 포함시키는 습관이 있다. 이 특정 여성은 그가 이미 믿고 전달하고 싶은 것을 그에게 앵무새처럼 답변해줄 것이다. 이는 이전 주인들로부터 배운 영리한 움직임이다. 성적 착취 산업은 항상 여성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곤 했다. ‘섹시함 = 권리 신장’ 이라는 주문에 희망을 품는 여성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섹시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가 아직 가부장적인 태도를 끝내려면 멀었다.


 연극배우이자 ‘플레이보이’ 집필진이자 저작 중 ‘왜 모든 여성은 핀업 사진 촬영을 해봐야 하는가’가 있는 사라 베닝카사는 그 자신을 ‘섹스에 긍정적이고 육체에 긍정적이고 재미를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고 기술한다. 이것만으로는 섹스, 육체, 재미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자질들이 ‘위협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의 규범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플레이보이 페미니스트’를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환상과 간섭하지 않는 종류의 페미니즘을 대표한다. 당신은 플레이메이트의 오른쪽을 따라 놓여진 ‘나는 재미있고 쉽고 뭐든지 하고 싶어해!’라는 단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사이트에 최근 게시된 다른 ‘페미니스트’ 기사들은 성매매를 탈범죄화해달라는 간청, 남성에게 구강 성교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인지에 대한 짧은 글, 페미니즘과 포르노의 양립성에 대한 두 건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어떤 걸 특정한 섬세한 메시지가 아니다.


 ‘플레이보이’ 는 남성의 여성을 탐닉해야 하는 아름다운 창조물 혹은 언제나 좋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 세상 편한 여자들로 보는 시각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집필진을 절대 등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등단시키는 것은 ‘플레이보이’가 대변하는 모든 가치에 반하기 때문이다. 쭈그렁 할망구나 증오의 대상인 내숭쟁이 반대자들을 묘사하는 필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훨씬 좋은 마케팅 전략이다.


 베를라츠키와 같은 집필진 (그리고 전체적으로 ‘플레이보이’)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 해방이 남성이 그들을 ‘아름답다’고 알아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페미니스트가 나체의 여성의 몸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거짓말은 특별히 의도적으로 호도되었다. 우리는 육체 혐오가 그와 같은 남성과 다른 ‘플레이보이’ 독자들로부터 기인함을 잘 안다. 우리의 행복, 가치, 우리 자신을 사랑할 능력,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자유가 그들의 성적 흥분과 만족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와 그 동류의 남성이다. 베를라츠키의 여성혐오는 (‘플레이보이’와 같이) 미묘하고 ‘섹스를 긍정하는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의 언어로 위장한다. 그것은 ‘여성을 옹호하는’ 반 페미니즘의 한 종류다. 그의 타이밍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적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철저히 쓰레기 취급을 당한 이상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이 재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포르노를 만들고 싶어하고, 스트립쇼 공연을 하고, (다만 무료로, 왜냐하면 일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이므로) 그에 대한 객체화를 킴 카다시안 류의 인스타그램 가슴 셀카를 통해 습득하고, 그리고 매춘을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자신들을 위해 하는 권리 신장용 선택이라고 재브랜드화한다.


 ‘플레이보이’는 절대 그들이 생각하는 해방을 여성에게 강제로 부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동의를 통해 기꺼이 해방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해방을 우리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은 주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친자본주의이고, 성 산업을 옹호하고, 아름다움에 관련된 산업을 옹호하고, 객체화를 긍정한다. 그것은 남성 권력에 대해 도전을 덜 하고, 그보다는 ‘자유’를 더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놓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섹스’를 옹호하고 ‘선택’, ‘대리인’, 그리고 ‘동의’ 와 같은 유행어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남성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지만 우리가 토끼 옷을 벗어제끼고 동굴 속으로 들어갈 ‘선택’을 지지한다.



 바람둥이의 도덕성 평가는 그가 상대 여성들에 대해 예상하는 '해방의 정도'에 달렸다. 바람둥이는 언제나 주위에서 책임을 물으면 '어쨌든 상대 여성들도 좋아했고, 그들도 '동의'하고 '선택'했으니까 나는 죄 없어요' 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특정한 1명의 여성하고만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면서 여러 명에 대한 제각기 다른 성적 만족을 추구해 나간다. 어느 정도로 육체가 맞닿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성적 만족은 상상도 포함한다. 

 

 이 바람둥이가 누가 봐도 여성혐오에 빠져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그가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경우다. 하지만 만약 바람둥이가 상대방의 일상을 정중하게 물어보고 가능한 시간에만 만나고 가능한 시간에만 전화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면? 그리고 그가 동시에 다른 여성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있다면? 여기까지만 보면 바람둥이의 입장에서는 거의 페미니스트라는 목적지까지 온 것 같다. 그러나, 상대 여성 각각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최소 한 명은 최소 한 번은 자신이 객체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람둥이가 상대에게 친절하고 외모 외의 요소도 칭찬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객체의 여성이 아닌 주체의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대상 중에 자유연애자가 아닌 여성이 최소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여성은 자유연애의 반대, 즉 나와 만나고 있다면 다른 여성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남성에게 요청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 논의한 바람둥이를 논리적으로 여성혐오의 주체로 격하시킨다. 여성의 규범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남성은 그 여성에게는 여성혐오자로 보인다. 페미니스트로 인정받는 절차는 만장일치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바람둥이가 여러 여성들을 만나는 이유가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 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혹은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이므로' 라면 그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즉 바람둥이의 가장 넓은 정의는 좋아하는 여성을 2명 이상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만남도 끊긴다. 여성의 존재 가치는 바람둥이의 '좋아하는 마음'에 달렸다. 그리고 이 좋아하는 마음이 진전된 극단에는 언제나 실재하든 상상 속이든 '섹스'가 있다. 결국 바람둥이는 자기가 원할 때 자기 의지에 따라, 비록 상대의 의견을 묻는다 할지라도 상대를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대로 쏟아부을 수 있는 바구니' 로 취급한다. 그러한 취급이 곧 객체화다.

 바람둥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게 여러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도 논리적으로 반박당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결국 안타깝게도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졌고, 특히 남성이 페미니스트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요구받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졌다. 페미니즘 안에도 워낙 방대하게 계파가 나뉘다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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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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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에 can playboys be feminists 라고 검색을 한 결과,


 예/아니오 라고 딱 잘라 대답해주는 다른 네티즌이 있는 지식iN 류의 사이트는 검색결과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글이 있어서 바로 읽어보았다.

 바로 잡지 '플레이보이' 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 글이었다. 

 원래 나의 질문은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였다. 바람둥이가 여러 명의 여성과 육체적 사랑을 갈구하든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든 상관없이 예/아니오의 답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래의 글을 읽고 그 답은 '아니오' 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문

http://www.newstatesman.com/politics/2015/06/playboy-feminism-how-gentleman-s-porn-rag-coopted-women-s-movement


플레이보이 페미니즘: 어떻게 신사들의 포르노 쓰레기가 여성운동을 포섭하였는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내용을 온라인 잡지에 통합하려는 플레이보이의 최근 시도는 남성만을 유익하게 하는 '여성 해방' 담론을 팔고자 하는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 중 일부다.


 휴 헤프너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는 '페미니즘 같은 게 존재하기도 전부터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였다' 라고 답할 것이다. 이번 주, 코스모폴리탄 지는 헤프너가 자신에게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재출판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자체의 최악의 적이며, '플레이보이'가 여성 해방의 진짜 원천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누구나 제대로 인식이 박혀있다면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라고 기술한다.


 이 잡지 기사는 원래 2007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헤프너는 1960년대부터 같은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 '플레이보이'는 그 때에도 그만의 '여성 해방' 담론을 선전하였다. 생식에 관한 권리 옹호 그리고 당연한 '성적 해방'이 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 재단은 심지어 낙태 권리에 찬성하는 기관들과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에 기부금을 내서 보건 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랜 경력의 편집자인 냇 레흐만은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논의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전에 이 중요한 페미니스트 주제들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의 여성에 대한 지지는 최소한 선택적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지지에 동의한 페미니스트들이 적었다. '플레이보이'는 아직 주로 누드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정 종류의 여성 (그리고 특정 종류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잡지의 비선호는 명백했다. 잡지의 '플레이메이트'들은 젊고 행복하고 단순한 여자였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고 헤프너는 1967년에 오리아나 팔라치 기자에게 말했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들이 일차원적 장난감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기 위해 싸워왔다는 점이다.


 여성 권리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우리들의 대상화를 고수하는 것은 2세대 페미니스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집필진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에게 제시되는 페미니즘은 잡지의 기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방 임플란트부터 자신의 누드 촬영과 폴 댄스 교실까지 모두 '권리 신장'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2014년의 가장 뜨거웠던 주제가 비욘세의 페미니즘일 때, 그 생각은 오직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즘 운동을 자본화하려는 노력을 두배로 늘릴 것이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된 자유연애의 지지자로 상정해야만 존재한다. 그처럼 미국의 피임약의 소개는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성적 혁명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여성은 이제 '남성처럼' 섹스를 할 수 있다. '플레이보이'는 결국 아직도 남성중심적인 '여성 해방'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은 '성적'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지만 이는 남성을 결국 만족시켜야 하는 성 정체성의 일차원적 시각에 국한되었다.


 책 '우파 여성'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은 성적 혁명에 대해 "혁명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혁명의 목적은 남성을 부르주아의 제약 없이 여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방시키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점에서 혁명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적 혁명이 남성의 위대한 옛 이야기일 때 여성에게 그것은 차라리 마약을 한 듯하고 꽃무늬처럼 화려한 강간 문화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여성은 이론적으로 임신할 수 있다는 위험을 들어 섹스에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임약의 등장부터 남성의 시각으로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없었다.


 '플레이보이'가 60년 전에 한 것은 대중적 페미니즘(그리고 일반적인 자유주의 정치)이 오늘날 취한 방향을 반영한다. '플레이보이'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한 개인주의였고, 국가는 미국의 꿈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서양 남성은 진보주의자든 기업 권력이나 제국주의나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든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 개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남성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 그리고 가부장주의가 여성의 몸과 성 정체성의 표현법을 독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들은 포르노 문화를 포용하며 남성의 시선을 해방적인 것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과거에 상류층 여성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남성이 사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여성 계층을 만들어낸 성녀-창녀 이분법을 타파하려는 상상의 노력에서, 많은 진보적인 남성(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은 모든 여성을 '창녀'로 구성하는 '해답'을 찾았다. 여성은 출산, 섹스, 혹은 무급 가사노동 등을 통해 남성에게 일방향 혹은 양방향으로 봉사하는 육체라는 개념에 도전하기보다는, 그들은 '플레이보이'의 '모든 여성은 성교 가능하다'라는 해방의 제시안을 포용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소비 가능한 객체가 될 뿐 아니라 여성 또한 그것을 사랑할 것으로 가정했다. 여성은 우리들이 억압된 내숭쟁이라고 간주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그걸 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방은 남성에 대한 성교 가능성에 좌우되었다.

 2014년 개시한 '플레이보이'의 '안전한 일자리' 웹사이트는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포섭해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재브랜드화 노력으로 보았을 때, '플레이보이'의 이러한 노력은 잡지의 역사에 깊이 배어들었다. 디지털 매체 고위 부사장 코리 존스는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플레이보이 브랜드는 항상 '포용적이고' '낙태를 찬성하며'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브랜드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레이보이'의 선도적인 '페미니스트' 필자는 노아 베를라츠키로, 그의 저작은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즘에 대한 오랜 접근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뭐라고 말하든 페미니즘에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안다. 라는 그의 정치적 철학은 '모두에 대한 평등한 객체화' 인 것으로 보이고 이는 브랜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더 많은 여성을 우리가 '따먹을 수 있다'고 볼수록 더 많은 여성이 해방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플레이보이'와 베를라츠키같은 필자들은 여성 정체성에 대한 글에서 '선택'과 '동의'를 강조한다. 객체화된 존재는 객체화에 대해 열심이어야 하고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투덜대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헤프너가 1960년대에 팔고 있었던 개념을 정확히 강화시켜주는 데 일조한다. '플레이보이'의 남성은 '신사'다. 즉 그는 길거리의 여자를 아무나 부르지 않고 복수 포르노를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성의 '광란적인' 동의 (결국 아무도 우울한 경험은 좋아하지 않는다) 를 원하고, 그는 여성이 객체화를 '선택'했기를 원하며 그 안에 여성이 즐기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사고의 틀을 정하고 싶어한다.


 최근 저작에서 베를라츠키는 잘못되게도 권리 신장이 남성 독재의 미의 기준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는 개념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잔인하고 배타적이라고 썼다.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여성에 대한 개인적 '공격'으로 오해하는 것은 대화를 개인 밖으로 확장하기를 원치 않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흔한 행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언어를 사용하여 베를라츠키는 ‘플레이보이’를 집필하며 백인 남성으로서의 그에게 요구된, 그를 지지하는 권력구조에 도전하는 여성을 내치고 비방할 책임성의 결여를 강조한다. 헤프너와 같이 그는 자신을 관대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페미니스트인’ 남성-‘좋은 남자들’ 중 한 명-, 너무 친절해서 ‘모든’ 여성의 공정하고 평등한 성적 대상화에 착수하는 사람으로 본다.


 겉보기에는 그의 저작과 ‘플레이보이’의 ‘페미니스트’적 마케팅 노력에 대한 비판(그 중 몇은 내가 했다) 에 잘 알고 있는 베를라츠키는 최근 방어적인 태도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잡지 집필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보이’가 여성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고 대신 여성을 ‘자위를 위한 환상’으로 사용한다는 수잔 브라운밀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사실 그에게 대화를 건네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를라츠키는 특정 여성의 목소리를 그의 페미니즘과의 계속되는 전투에 포함시키는 습관이 있다. 이 특정 여성은 그가 이미 믿고 전달하고 싶은 것을 그에게 앵무새처럼 답변해줄 것이다. 이는 이전 주인들로부터 배운 영리한 움직임이다. 성적 착취 산업은 항상 여성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곤 했다. ‘섹시함 = 권리 신장’ 이라는 주문에 희망을 품는 여성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섹시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가 아직 가부장적인 태도를 끝내려면 멀었다.


 연극배우이자 ‘플레이보이’ 집필진이자 저작 중 ‘왜 모든 여성은 핀업 사진 촬영을 해봐야 하는가’가 있는 사라 베닝카사는 그 자신을 ‘섹스에 긍정적이고 육체에 긍정적이고 재미를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고 기술한다. 이것만으로는 섹스, 육체, 재미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자질들이 ‘위협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의 규범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플레이보이 페미니스트’를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환상과 간섭하지 않는 종류의 페미니즘을 대표한다. 당신은 플레이메이트의 오른쪽을 따라 놓여진 ‘나는 재미있고 쉽고 뭐든지 하고 싶어해!’라는 단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사이트에 최근 게시된 다른 ‘페미니스트’ 기사들은 성매매를 탈범죄화해달라는 간청, 남성에게 구강 성교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인지에 대한 짧은 글, 페미니즘과 포르노의 양립성에 대한 두 건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어떤 걸 특정한 섬세한 메시지가 아니다.


 ‘플레이보이’ 는 남성의 여성을 탐닉해야 하는 아름다운 창조물 혹은 언제나 좋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 세상 편한 여자들로 보는 시각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집필진을 절대 등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등단시키는 것은 ‘플레이보이’가 대변하는 모든 가치에 반하기 때문이다. 쭈그렁 할망구나 증오의 대상인 내숭쟁이 반대자들을 묘사하는 필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훨씬 좋은 마케팅 전략이다.


 베를라츠키와 같은 집필진 (그리고 전체적으로 ‘플레이보이’)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 해방이 남성이 그들을 ‘아름답다’고 알아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페미니스트가 나체의 여성의 몸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거짓말은 특별히 의도적으로 호도되었다. 우리는 육체 혐오가 그와 같은 남성과 다른 ‘플레이보이’ 독자들로부터 기인함을 잘 안다. 우리의 행복, 가치, 우리 자신을 사랑할 능력,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자유가 그들의 성적 흥분과 만족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와 그 동류의 남성이다. 베를라츠키의 여성혐오는 (‘플레이보이’와 같이) 미묘하고 ‘섹스를 긍정하는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의 언어로 위장한다. 그것은 ‘여성을 옹호하는’ 반 페미니즘의 한 종류다. 그의 타이밍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적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철저히 쓰레기 취급을 당한 이상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이 재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포르노를 만들고 싶어하고, 스트립쇼 공연을 하고, (다만 무료로, 왜냐하면 일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이므로) 그에 대한 객체화를 킴 카다시안 류의 인스타그램 가슴 셀카를 통해 습득하고, 그리고 매춘을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자신들을 위해 하는 권리 신장용 선택이라고 재브랜드화한다.


 ‘플레이보이’는 절대 그들이 생각하는 해방을 여성에게 강제로 부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동의를 통해 기꺼이 해방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해방을 우리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플레이보이’ 페미니즘은 주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친자본주의이고, 성 산업을 옹호하고, 아름다움에 관련된 산업을 옹호하고, 객체화를 긍정한다. 그것은 남성 권력에 대해 도전을 덜 하고, 그보다는 ‘자유’를 더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놓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섹스’를 옹호하고 ‘선택’, ‘대리인’, 그리고 ‘동의’ 와 같은 유행어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남성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지만 우리가 토끼 옷을 벗어제끼고 동굴 속으로 들어갈 ‘선택’을 지지한다.



 바람둥이의 도덕성 평가는 그가 상대 여성들에 대해 예상하는 '해방의 정도'에 달렸다. 바람둥이는 언제나 주위에서 책임을 물으면 '어쨌든 상대 여성들도 좋아했고, 그들도 '동의'하고 '선택'했으니까 나는 죄 없어요' 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특정한 1명의 여성하고만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면서 여러 명에 대한 제각기 다른 성적 만족을 추구해 나간다. 어느 정도로 육체가 맞닿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성적 만족은 상상도 포함한다. 

 

 이 바람둥이가 누가 봐도 여성혐오에 빠져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그가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경우다. 하지만 만약 바람둥이가 상대방의 일상을 정중하게 물어보고 가능한 시간에만 만나고 가능한 시간에만 전화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면? 그리고 그가 동시에 다른 여성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있다면? 여기까지만 보면 바람둥이의 입장에서는 거의 페미니스트라는 목적지까지 온 것 같다. 그러나, 상대 여성 각각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최소 한 명은 최소 한 번은 자신이 객체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람둥이가 상대에게 친절하고 외모 외의 요소도 칭찬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객체의 여성이 아닌 주체의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대상 중에 자유연애자가 아닌 여성이 최소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여성은 자유연애의 반대, 즉 나와 만나고 있다면 다른 여성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남성에게 요청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 논의한 바람둥이를 논리적으로 여성혐오의 주체로 격하시킨다. 여성의 규범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남성은 그 여성에게는 여성혐오자로 보인다. 페미니스트로 인정받는 절차는 만장일치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바람둥이가 여러 여성들을 만나는 이유가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 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혹은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이므로' 라면 그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즉 바람둥이의 가장 넓은 정의는 좋아하는 여성을 2명 이상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만남도 끊긴다. 여성의 존재 가치는 바람둥이의 '좋아하는 마음'에 달렸다. 그리고 이 좋아하는 마음이 진전된 극단에는 언제나 실재하든 상상 속이든 '섹스'가 있다. 결국 바람둥이는 자기가 원할 때 자기 의지에 따라, 비록 상대의 의견을 묻는다 할지라도 상대를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대로 쏟아부을 수 있는 바구니' 로 취급한다. 그러한 취급이 곧 객체화다.

 바람둥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게 여러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도 논리적으로 반박당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결국 안타깝게도 바람둥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졌고, 특히 남성이 페미니스트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요구받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졌다. 페미니즘 안에도 워낙 방대하게 계파가 나뉘다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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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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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 / 로저 에커치 지음 /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고대 그리스의 의식에는 밤을 새워 벌어지던 판키데스라는 축제가 있었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치금지법으로 귀족 계급에게만 비단이나 공단 옷을 허용했다.


정신이 돌다 라는 단어로 moonstruck 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국 서부에서는 밤에 도깨비불 때문에 생기는 사고를 가리켜 '픽시 레드' (Pixy led, '픽시가 이끈' 사고라는 의미)라 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구덩이나 물이나 낭떠러지에 빠지거나 기절하거나 코를 너무 골아 미친개로 오인되어 총에 맞아 죽거나 하는 사고사를 컨셉으로 한 바, 즉 바 인테리어를 낭떠러지나 계곡이나 사냥총 등을 이용해서 하면 어떨까.


1720년 프랑스 오를레앙도 형편없는 하수 시설 때문에 어떤 길은 늪지로 바뀌었다.


프랑스에는 '파리의 흙처럼 더럽다' 는 말이 있다.


도시의 길거리에 등을 밝히고 다니는 사람들은 linkboys 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랜턴 운반자라는 의미로 porte-flambeaux 또는 falot 라고 불렀다.


런던에서 횃불꾼은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나쁜 평판을 얻었다. 영국과 달리 구체제 말의 파리에서는 횃불꾼들이 정치적 첩자로 악명 높았다.


덴마크에서는 집에 침입한 도둑이 동전 몇 개를 범행 현장에 놔두면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관리들은 시체를 건지기 위해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걸어두기도 했다.


개인적 명예에 대한 남성들의 숭배가 덜 확고한 영국이나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개인적 복수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층 계급 내의 사회적 경쟁은 도박, 경마, 사냥과 같은 다른 분출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1666년 9월 2일 이른 아침 빵집에서 발생한 런던 대화재는 아직도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고 있다. 동풍의 부채질을 받은 불은 나흘에 걸쳐 런던의 5분의 4를 태웠다.


미국에서는 1720년대 초 보스턴과 20년 뒤 뉴욕의 예에서 보듯 불만을 가진 노예들이 방화를 저질렀다.


1696년 스위스의 한 목사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해가 지는 저녁에 가축은 외양간으로 돌아오고, 숲의 새들도 조용해진다. 인간들만이 어리석게 자연과 일반적 질서를 거슬러 행동한다."


근대 초 전반에 걸쳐 밤이라는 위험한 영역은 교회와 국가의 감시를 벗어나 있었다. 유럽의 공동체들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행정 제도와 종교 제도의 사형대는 밤에는 잠이 들었다.


중세 이후에야 도시의 통행금지가 약간 느슨해져 오후 8시가 아닌 9시나 10시로 바뀌었고, 그것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준 시간이 되었다.


베네치아에서 이방인은 치안판사의 허락 없이 하룻밤 이상 머물 수 없었다.


평판이 좋은 남자들도 어두워진 뒤에는 제약을 받았다. 예컨대 카탈루냐에서는 네 명 이상의 남자가 함께 걸을 수 없었다.


파리에서는 1702년의 법령에 의해 귀족들이 총기를 갖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하인들도 지팡이나 몽둥이를 빼앗겼다.


도시에서는 무기를 소지하는 것 외에도 복면과 가면을 포함하여 밤에 변장하는 것도 금지했다.


1415년 런던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법 조항은 만성절(All Hallow, 11월 1일) 전야부터 성촉절(Candlemas, 2월 2일) 까지 매일 밤마다 불을 밝히도록 한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1461년 루이 11세(1423-1483)의 명령에 따라 대로에 접하고 있는 집의 창문에 랜턴을 걸도록 했다.


1650년 이전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어떤 도시도 공금을 들여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파리(1667), 암스테르담(1669), 베를린(1682), 런던(1683), 비인(1688) 등을 필두로 1700년에 이르면 훨씬 더 많은 도시들이 길거리를 밝혔다.

 -> 한국, 중국, 일본은 거리 조명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했는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동양의 문화는 과거로부터 왔는가?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야경대원들은 '새벽 별'(morgenstern)이라는 이름의 못 박은 철퇴로 무장했다.


야경대원이 순찰중에 해야 할 또다른 일은 집주인이 문을 잠갔는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주의 절대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훈련받은 경찰의 창설이 어려웠다. 경찰도 상비군처럼 독재적인 통제권하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야경대원들은 '야경'이라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옷깃이 달린 비단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는 수비대가 아니었다.


파리에서는 야경대원을 조롱하여 어설픈 작자(savetiers)나 '평발'(tristes-à-pattes)이라 불렀다.


사실상 산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저녁 시간은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모두 법의 감시를 벗어나 있었다. 카르보니에의 우아한 말로 표현하자면, '법의 공백'(vide de droit)이었다.


밤에 작성한 계약, 서약, 유언은 모두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시인 에드워드 영은 "밤에는 무신론자도 신을 반쯤은 믿는다"고 단언했다.


한 독일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불이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불을 지피느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이다."


영국 전역에서 즐겨 행해진 놀이는 '내가 촛불을 들고 거기 갈 수 있을까?' 였다.


재무장관의 집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하러 마차를 타고 가던 조너선 스위프트는 "달이 빛나 우리 마차는 전복될 위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달이 없으면 밤의 향락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1792년 노퍽의 낸시 우드퍼드는 이웃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달이 뜨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집으로 저녁 먹으러 오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 일부 지역에서는 해가 진 뒤 처음 뜨는 별인 '저녁 별'(Vesper, 실지로는 금성)을 '목동의 램프'라고 불렀다.


고요한 밤에는 모든 소음이 더 크게 울려퍼졌다.


데카르트는 "밤에 등불 없이 험한 길을 가본 경험이 있다면, 지팡이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것" 이라고 썼다. "이 지팡이를 사용함으로써 주위에 있는 여러 물체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나무인지 돌인지 모래인지 물인지 풀인지 진흙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근대 초 영국 가정에서도 밤에 갖가지 시간대가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시간대는 일몰, 문 닫을 때, 촛불 켤 때, 잠잘 때, 자정, 한밤중, 닭 우는 때, 동이 틀 때로 이루어졌다.


자정부터 오전 3시 사이를 고대 로마인들은 인템페스타(intempesta), 즉 시간이 없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근대 초의 자료를 보면 영국 북부에서 밤에 휘파람을 부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속죄를 위하여" 자기 집 둘레를 세 바퀴 돌아야 했다.


1602년에 영국을 방문한 한 독일인은 "영국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이웃집을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는 서약에 묶여 있다"고 평했다. 도시에서 낮에 커튼을 치면 확실히 의심을 샀다. 뉴잉글랜드 한 이주민은 이웃집에 커튼이 쳐지면 "창녀 커튼"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직조공들은 의류 산업의 번창에 부응하여 겨울철에도 때로는 밤 10시까지 직기 앞에 앉아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리옹의 남자 직조공은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일했고, 비단 공장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단사, 제화공, 모자 제조업자, 염색공 등이 오랜 시간을 일했다. 스코틀랜드에는 "시민이 잠드는 시간이 제화공의 저녁식사 시간" 이라는 속담이 있었다.


궁핍한 여인들은 집에서, 혹은 더 흔하게는 남의 집에 세탁부로 가서 빨래를 해주며 살림을 꾸렸다. 과부 메리 스토워는 "달빛이 아주 환한 밤" 새벽 2시에 리즈에 있는 어느 집에 가서 빨래를 했다. 런던의 앤 팀스는 "생계를 위해 11시부터 12시까지 밤늦은 시간에 빨래한다"고 말했다.


1퍼킨=40리터, 1배럴=4퍼킨=160리터


많은 사람이 지루한 일을 이웃이나 가족과 함께하며 만족스러워했던 것은 당연하다. 때로 그들의 동지애는 술로 굳건해졌다. 더 중요하게는, 밤은 즐거움과 유희를 억압하는 수많은 규칙과 의무, 낮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그 무엇보다 밤은 정신의 한 상태였다. 친숙한 얼굴과 주고받는 도움 속에서 형식적인 겉치레는 물론 두려움과 모멸의 감정도 뒷전으로 물러났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고 일하다보면 어색함이나 거리낌 같은 감정도 물러났다. 웨일스 속담에 아침의 '존'이 밤에는 친근한 '잭'이 된다고 했다. 같이 일하며 횃불이나 램프를 같이 써서 소중한 연료를 아낄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점이었다. 남녀가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훈훈한 화롯가에 둘러앉았다. 일을 완수하는 것 이상으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기를 나누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침침하고 비좁은 상황에서 밤에는 친밀감과 동료 의식이 깊어졌다. 영국에는 "밤에 나눈 말은 아침의 말과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여러 아낙네들이 물레와 실 감는 막대기를 들고 이웃집에 모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그런 목적을 위해 겨울철마다 '작은 쉼터'(écreignes)라는 임시 오두막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몇십 년 동안 스포츠 경기나 종교 축제 같은 전통적인 대중 여흥이 줄어들면서 술집의 인기가 높아졌다.


'물의 시인' 존 테일러는 술을 "벌거벗은 사람의 가장 따뜻한 옷"이라고 했다.


술집에서는 성적 만남도 이루어졌다. 얀 스테인(Jan Steen),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Adriaen van Ostade) 등 북유럽의 화가들이 묘사했듯, 이 붐비고 침침한 곳에서 남자와 여자는 술을 마시고 구애하고 수작을 떨었다. 1628년 한 영국의 비판자는 성적 희롱질을 막기 위해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남녀가 근처의 헛간이나 변소에서 섹스를 했음을 폭로하는 재판 기록도 있다. 날씨가 좋으면 근방의 어두운 들판도 이들에게 좋은 장소였고, 인근 교회 묘지도 섹스 장소로 이용되었다. 결국 술집은 가정생활의 대체물이었다.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던 반면, 북유럽과 중앙 유럽에서는 성관계에 대해 더 관용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애정에 탐닉할 수 없었다.


로마에서 모든 계급의 연인들은 랜턴을 든 행인이 다가오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불을 돌려요"(Volti la luce)라고 외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유럽 여러 지역에서 실잣기 모임은 긴 겨울에 함께 즐기고 구애를 하기 위한 더 일반적인 자리였다. .. 이런 밤샘 모임에서 그녀들에게는 또다른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멋진 남자들을 만나거나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이런 모임에서 결혼이 많이 성사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들만 모이는 모임도 때로 젊은 남자들의 참석을 허용했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생겨난 '번들링'(bundling)이라는 관습은, 이러한 열정과 그 열정을 통제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번들링은 연인들이 여자 부모의 집에서 섹스는 하지 않고 밤을 새우는 관습이었다. 번들링은 구혼의 중간 단계로, 그에 앞서 함께 산책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구애 단계(wooing)가 있었다. 구애 단계에서 서로 애정을 확인해야 젊은 남녀는 번들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 번들링은 네덜란드 일부 지역과 스칸디나비아에 퍼져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그것을 '담소하기'(queesting)라고 불렀다. 이러한 밤의 구애는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성행했다. 사실 독일 농촌의 한 목사는 심방 보고서에서 소녀의 침실의 '불빛을 찾아가는 것'(zu licht gehen)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밤에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자유라고 간주되었다"고 기록했다. 17세기 사부아의 한 주민은 '알베르주망'(albergement)이라는 관습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젊은 농부들이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들과 함께 밤늦도록 시간을 보내다가, 집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침대를 같이 쓰자고 요청한다." 그러면 보통 "여자들은 거절하지 않는다."


종교 당국의 주기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번들링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에는 성서를 개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신교 운동인 경건주의(Pietism)가 전파되면서, 많은 지역에서 문맹률이 급격히 낮아졌다.


폴란드에서는 "절제란 낮을 위한 것, 저녁과 밤에는 즐거워야지"라는 노래가 불렸다.


이사크 드 뱅스라드의 <밤의 발레>(Le Ballet de la Nuit, 1653)만큼 귀족들의 밤에 대한 친밀감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찬가는 없다. 루이 14세를 기리기 위해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뱅스라드의 초기 발레 중에서도 가장 호사스럽다. 화려한 의상과 스펙터클한 무대가 어우러진 바로크의 장관 속에서 젊은 왕이 직접 몇몇 배역을 맡았다. 아주 적절하게도, 최후의 막에서 왕은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나와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거지와 도둑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밤의 발레>는 천국이라는 정교한 배경에 신성이 가득한, 밤 생활의 초월적 모습을 제시했다. 여러 차례 공연된 이 발레는 궁정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18세기 초에는 런던의 래닐러(Ranelagh)와 복스홀(Vauxhall)같이 조명 장식이 있는 유원지를 비롯하여, 우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크게 늘었다.


격식을 차리는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가면무도회는 근대 초 궁정의 억압적인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기회였다. ->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가면무도회를 하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100명 이상 모인 곳에서.


가면무도회장은 부도덕, 불경, 음란 및 모든 종류의 죄악을 저지를 기회를 파는 상점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가장 타락한 창녀와 가장 방탕한 난봉꾼이나 사기꾼이 단돈 27실링에 최고의 귀족이나 귀부인들과 어울릴 특권을 산다.


비행을 저지르는 귀족들의 행동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사회에 순응하고 위선을 행하는 것을 경멸하는 강렬한 개인주의를 대변했다.


1599년 런던의 극작가 조지 채프먼은 "이 도시에 사는 수백의 귀부인들은 밤에는 한량들 사이에서 춤추고 환락에 빠져 있다가, 아침에는 마치 새로 세례받은 듯 정숙한 여성이 되어 남편의 침대로 들어간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아침에 대해 "때로는 남편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 아내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Nec spe, nec metu


밤은 사회적 풍경에 혁명을 일으켰다. 어둠이 권력자들을 더 평민적으로 만들었다면, 수많은 약자들은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2세 지지파'(Jacobites)와 같은 정치적 국외자들이 밤에 작당했을 뿐 아니라 불안이 고조된 시절에서는 경쟁 파벌들이 어둠을 틈타 선동적인 전단을 돌렸다. 1688~1689년의 격렬한 명예혁명 시기에 런던 길거리는 아침마다 전단지로 뒤덮여 있었다. 몇 년 뒤 하노버 왕조 계승 위기 시에 쿠퍼 백작부인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비방을 늘어놓는 팸플릿이 뿌려지지 않고 지나가는 밤이 없다."


유럽 전역에서 견습공 제도는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자 청소년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대중적 수단이었다. 낮에 그들은 주인의 지배 아래 있다가 밤이면 벗어났다. '밖에 눕기'(lying-out)라는 말은 종종 집안의 통행금지 시간을 무시하고 밤시간 대부분을 집밖에서 보내는 견습공들에게 쓰는 말이었다.


버지니아를 여행했던 한 사람은 보통 노예들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집을 나와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6~7마일을 걸어 흑인들이 춤추는 장소로 간다. 거기에서 그들은 놀랄 정도로 경쾌하게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는 기록을 남겼다. -> 그러한 장소에서 마케팅을 한다면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시체 도굴꾼을 영어로 resurrection man이라고 한다.


런던에서는 증권 거래소에 아이들이 많이 버려녔다. 파리의 어머니들은 버리는 아이들에게 성별과 생일과 이름을 적은 꼬리표를 붙였다.


영국 서부와 웨일즈의 불법 거주자들은 더 영구적인 거주권을 주장했다. 기원이 불분명한 어느 지역 관습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카반 우노스'(caban unnos)라는 진흙 오두막을 하룻밤 사이에 황무지나 공유지에 지으면 주거를 허용했다. 그 작업은 해가 지고 나서부터 뜨기 전까지 완성되어야 했고, 친구나 가족이 도와주는 것도 허용되었다.


경제적 빈곤이 밤의 무법을 낳았다. 토비아스 스몰렛은 "모든 평민은 도둑이고 거지이며, 나는 극도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다고 믿는다"고 쓴 바 있다. 범죄는 긍지와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즉, 집을 늑대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범죄를 낳았던 것이다. 가난한 선생 존 캐넌은 "어떤 가난한 악마에게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낮에 위축되었던 것을 밤에 만회하는 도둑질은 견습공, 하인, 노예로 산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손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그럼 도둑질을 막으러면 밤에 심리적으로 풍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회식과 클럽.


밤의 조직 대부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서, 내부에 계급이 있는 것도, 자체의 행사를 거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길드와 달리 확립된 위계질서도 통일된 회원 자격도 확고한 행동 지침도 없었다. 그들이 개인적 자율과 자기 확신이라는 가치를 강조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회원들은 우정을 나눴다. 소집단으로 떠돌아다니던 부랑아들은 서로를 '형제' 또는 '친구'라고 불렀으며, 어떤 자들은 동료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영혼에 걸고" 맹세했다.


일부 젊은이들 집단이 공동의 도덕을 침해한 바람피우는 남녀, 폭력적인 남편 등을 벌함으로써 사회 통제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밤은 누비던 프랑스의 '샤리바리'(charivari), 이탈리아의 '마티나타'(mattinata), 영국의 '스키밍턴 라이드'(skimmington ride)는 도덕을 어긴 자들에게 야유와 비난을 쏟았고 때로는 육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은 젊은이들 스스로 언젠가 해야 할 결혼의 성스러움을 재확인시켜주었다. 같은 이유로 미혼남들은 자기 지역 처녀들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경쟁 지역 젊은이들과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또한 견습공들은 무리를 지어 매춘굴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찰스 2세는 그 소식을 듣고 못 믿겠다는 듯이 "그럼 그들은 왜 거기를 가나?"라고 물었다.


영국 농촌에서는 한 해 추수가 끝난 뒤 농장주들이 일꾼들을 불러 저녁에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러한 '추수 만찬'은 음식과 술과 동료애를 관대하게 베푸는 것으로 유명했다. 헨리 번에 따르면 "이 만찬에서는 하인과 주인이 똑같으며, 모든 것이 평등한 자유에 따라 행해진다." 그러나 물론 이런 행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일시적인 휴식일 뿐,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해야 함을 예고했다.


사육제 후에는 엄격한 사순절 기간이 뒤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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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이 작품은 나가사키 현의 인공 콘크리트 섬인 하시마 섬(군함섬)이 가진 역사를 살펴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인구과밀에 따라 실제로 영화 ‘배틀로얄 2’와 같은 상황을 겪은 전 하시마 섬 주민들의 담담한 인터뷰를 나레이션으로 담았다. <디스토피아를 부르는 주문>은 예전에 거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제국주의라는 망령이 섬 속에 숨어들고 사람들이 그 망령을 잊어갈 때, 힘들게 그 망령을 구석구석으로부터 불러와 관객에게 선사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살면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억울함은 관객들에게 전해온다. 물론 아시아 각국의 탄광 강제징용자들의 경험도 듣고 싶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굉장히 일본인 프로듀서 특유의 느낌을 살리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자료를 만들어냈다. 영상은 일반인, 특히 외국인이 쉽게 갈 수 없는 폐허의 인공섬이 실제로 40여년이 흐른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초고화질 영상을 통해 천천히 조망한다. 그리고 수시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매우 짧은 간격으로 하시마 섬의 모습을 빠르게 전환하는 정지 사진으로 보여주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음향 효과를 넣는다. 고등학생같은 앳된 목소리로 ‘차렷’, ‘멈춰’ 의 구령에 따라 150여명의 여고생들이 매스게임을 하며 ‘인구과밀’, ‘바위’ 등의 키워드를 만들어내는 영상이 중간에 들어가는 것 또한 국가의 정책에 대한 힘없는 수용과 그에 따른 좌절을 느끼게 해준다. 구령은 곧 디스토피아를 다시 이 현장으로 불러오는 주문과 같이 느껴진다.
 



 본래 섬나라인 일본이지만,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을 가두어놓은 이와 같은 섬은 그야말로 섬중의 섬이다. 그 낯섦이 주는 공포감이 상당하며, 그 공포감은 하시마 섬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섬으로 확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옆의 벽에 장식해놓은 만화 커트를 통해 상쇄된다. 일본 문화의 주요한 특징인 모에화가 귀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하시마 섬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맹목적 공포의 대상이 아닌 호기심의 섬이자 미지의 섬이 된다. 
 



 하시마 섬의 귀신은 ‘배틀로얄 2’라는 문화콘텐츠에 희석되어 그 제국주의의 본모습을 은근슬쩍 증발시킨 채 화면에 등장한다. 매스게임을 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역사적 연계성이 없는 앳된 여고생들이 아니라 이 곳이 아시아 각국의 탄광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고달픈 삶의 터전이었던 그 때의 실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면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의 수많은 유태인 박물관 내 작품들은 나치 독일과 관련된 영상물에 언제나 실존한 노인들만을 등장시키고 과거에 촬영한 흑백 혹은 컬러 비디오를 삽입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증폭시키면서 유태인의 눈으로 바라본 독일인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와 비교했을 때 일본 제국을 묘사한 이 작품은 공포감을 정죄하기 이전에 ‘어머나, 이런 신비로운 섬이 있었어?’ 하고 관객들이 먼저 호기심에 빠져들게 한다. 무자비함과 기계적인 정교함으로 인간성을 상실해도 그것이 현대 미술로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일본의 문화적 저력이 다시금 느껴진 작품이다. 만화, 영화 그리고 실제와의 경계가 모호해진 모에화된 하시마 섬에서 아시아 제국(諸國)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능동적인 상상력에 달려있고, 그 상상력이 불러내는 귀신은 분명 이 작품이 스스로 불러내는 귀신보다는 진중하고 무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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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출처: OhMyNews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행동하고, 바로 옆 화면의 어린이들과 비교해도 하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시간이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동네는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정착하며 살던 곳이고, 그 때 어린이였던 작가는 그 기억을 현재에 그대로 가져오고자 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귀신이다. 자신이 존재하고 싶은 곳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현재의 사람이 있는 곳에 머문다. 따라서 <궤도상의 재연>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귀신, 간첩, 할머니’의 ‘귀신’에 해당하며 주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현실의 복잡한 고려사항으로부터 탈피한 자유롭고 순수한 귀신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어른들은 사회인으로서 가지는 조직과 직책, 예의범절과 지위 고하,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는 복장과 화장을 버린 채 아무 물건도 위치하지 않는 검은 공간에 빙 둘러앉아 장난을 친다. 표정은 시종일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는 표정이다. 바로 옆 화면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아이들의 혼이 어른들에게 그대로 주입되는 느낌이다. 그 동일해진 혼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이 두 집단이 입고 있는 옷이다. 모두들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탈의하고 있는데 이는 보통 어른들의 모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다고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은 어느새 어른들을 신들린 미친 존재들이 아닌 자연스러운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바로 옆에 비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뛰어놀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자의 배변 훈련이다. 두 살짜리 아기에게 부모가 하는 일을 영상에서는 주위의 친구들이 하고 있다. 남자는 처음에는 한사코 거부하지만 결국 천진난만하게 주위의 남자와 여자 친구들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배변 훈련에 성공한다. 둘째는 여자의 월경이다. 생리혈을 떨어뜨리는 나이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접어들 때지만, 영상 속의 여자는 정신적 성숙이 요구된다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신체가 조숙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배변하는 남자와 월경하는 여자를 둘러싼 친구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원없이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준다는 점이다. 마지막 활동은 베개를 놓고 두 명의 여자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몸싸움을 지켜보는 친구들은 마치 씨름 경기를 보는 관객들처럼 신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생산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다 성장한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막 피어나는 욕구를 있는 힘껏 분출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현대인 성인이라면 감히 집단생활 속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므로 영상 속 공간은 현실을 벗어난 공간이 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이 영상을 보는 관객들 역시 왼쪽 화면의 어른들과 오른쪽 화면의 아이들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자신들도 아이들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게 된다.

 부끄러운 행동을 주변인이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현대인들이 속으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경쟁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집단문화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이를 더 뼈저리게 느낄지 모른다. 비록 현실 밖의 영상 속 귀신의 활약이지만, 그 귀신은 진심어린 웃음을 되찾아주었고 집단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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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판단기준은 내 집에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가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쾌락적인 것들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나는 축재를 위해 살지는 않아요(...). 나는 삶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나는 순간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죠" 라고 덧붙인다.


 '그곳에는 광고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그는 집에서 '멋이 없는 더러운 바지'를 입지만, 일을 할 때에는, 아주 세심하고 우아하게 정장을 한다. 그는 파리의 빅토르 위고 거리에 있는 광고업자들을 위한 재단사인 반스Barnes의 상점에서 양복을 구입한다. "그곳에는 영국 산 직물, 영국 황태자가 입는 다소 호화스러운 체크 무늬 의류와 같이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위 공무원들이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니며, 은행가들도 이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죠(...). 은행에서는 단색의 셔츠가 필요합니다. 은행은 광고업계에 비해 그다지 과시적이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쓸 따름이죠(...). 직업상, 우리는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카스트로 쉽게 사람들을 분류해 냅니다. 그런 일은 한 카스트에 어울리는 제품을 제대로 부여하는 문제죠. 어떤 새로운 사람이 대행사에 들어올 때, 곧 우리는 한 눈에 그를 판단합니다(...). 커다란 깃이 있는 우단 의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고,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그 의상으로 상쇄하는 사람이죠." 잠시 동안, 대행사에 '아주 평범한 배경을 가진 경리부장'이 있다 갔다. "그가 왔을 때, 그는 너무 보기 안 좋은 옷차림을 했기 때문에 사무를 방해했죠(...). 마치 무슨 젊은 노동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가령, 어울리지 않게 깃이 작고, 아래가 꼭 끼며, 다소 짧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셔츠와 꼭 끼는 넥타이와 함께 양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보기 흉합니다."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는 남에게 상품을 권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여러 종류의 직업(판매, 마케팅, 광고, PR, 패션, 실내장식 등)과, 상징적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제도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러한 제도에는 최근에 상당히 확산된 다양한 의료보건, 사회부조관계의 직업(결혼생활상담원, 성문제 전문가, 식이요법 영양사, 취직 어드바이저, 육아전문의 보모 등)과 문화생산 및 촉진에 종사하는 직업(문화활동지도자, 학외활동교육자, 라디오 및 TV제작자와 사회자, 잡지기자 등)과 더불어 공예가나 간호사 같은 기존 직업도 포함된다.


소유하는 자본이 크면 클수록 문화적 환경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커지고, 또한 집단의 문화자본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이 그 성원에 대해 가하는 순응 유도 압력도 커지므로, 파리사람과 지방사람 간의 격차는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커지게 된다.


현재 부르주아지와 쁘띠 부르주아지의 거리를 특징지우는 것처럼 17세기의 귀족과, 절약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거리를 특징지웠던, 돈을 일일이 세보지 않고 소비하는 기술은 그 존재 자체가 사회관계자본의 재생산에 종속되는 계급의 제한된 경우에서는 명백한 교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은 그 아들에게 대귀족처럼 돈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금으로 가득 찬 지갑을 넘겨주었다. 아들이 쓰고 남은 돈을 가져오자 공작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금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어디에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노동자는 명령의 실행자로서의 성향을 모든 생활영역에서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민중계급의 생활양식은 위스키나 회화제품, 샴페인이나 음악회, 항해여행이나 미술전람회, 철갑상어나 골동품 같은 사치재가 없는 만큼이나 이러한 재화에 대한 수많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가죽 대신 '모조가죽', 회화 대신 조잡한 착색 석판화chromo가 그것인데, 이런 것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제2단계에서의 박탈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대중문화culture populaire'는 '대중'과 '문화'라는 역설적인 말들이 결합되어 통용되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지배자 측에 의해 문화의 정의가 부과되는 것인데..


(성과 계급에 무관하게 모두에게 의견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민주주의적 자발주의spontanéisme démocratique와, (이 권리와 의무를 '지성'intelligence과 '역량'compétence으로 인해 선출된 '전문가'들에게만 국한하는) 기술관료적 귀족주의aristocratisme technocratique 사이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은, 기술관료적 선발로 인해 모든 경우에 배제됐을 사람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게임으로부터 배제하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그 이율배반의 실제적 해결책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생산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뤼마니떼L'Humanité나 다른 극좌파 신문을 읽는 가장 정치화된 일부를 제외한다면)은 일간신문에서 정치적 안내자나 도덕적 문화적 조언자의 역할(신문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단지 '르 피가로'지의 일부 독자들에게서일 것이다)을 실제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며, 또한 정보획득, 자료수집과 분석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보도지presse d'information와 저속지presse de sensation 사이의 차이는 행동이나 발언이나 사고에 의해 정치를 실제로 하는 살마들과 정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능동적 의견과 수동적 의견 사이의 대립을 결국 재생산한다.


(노동자) 그들은 상징적 투쟁수단을 선호하며, 맨 먼저 도덕적 지배관계를 정립하는 교육운동이나, 열광적 신뢰의 대상인 '정보', 그리고 오로지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 일종의 윤리적 독촉을 실행하려는 동일한 의지에 의해서 단합된 개인들의 엄밀한 계열적 집단편성인 협회association가 실현하는 집단적 행위의 특수형식이 있다. 봉사활동은 선의의 과시적 소비이고, 그 자체 이외에는 다른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순전히 무사무욕적인 윤리적 활동이며, 그것의 실행자에게 여러 권리를 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큰 것은 의분(義憤)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 권리는 '자기 몫을 한' 사람, 자기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 특히 누구에 의해서도 승인되는 기성사실을 만든 사람의 완벽함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무사무욕'하고 '청결하고', '고결하고', '정치'와의 어떤 타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행위는 실제로 사회적 승인의 가장 완벽한 형태인 제도화의 기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인데, 모든 협회들이 다소간 비밀리에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의견에의 접근 가능성, 혹은 의견을 구성하는 수단에의 접근 가능성(전국지의 구독과 같은)이 박탈될수록 그만큼, 지방에 기반을 둔 집단들(또한 場들도)이 행사하는 스크린 효과effet d'écran (혹은 허구적 문맥화 효과)에 더욱 민감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사회공간 내에서 접하고 있는 위치를 평가하는 참조물로서 지리적 기반을 가진 사회적 하위공간(촌락, 인접집단 등)을 드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피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공간에서의 지배자들(소토지 구역에서 50ha의 토지소유자, 지방의 명사, 직공장 등)은, 나무를 보고 숲은 못 보듯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조화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3기능 체계structure triadique(인도-유럽어계 제 민족의 신화가 기본적으로는 지상권을 맡는 사제, 힘을 행하는 전사, 풍요로움을 맡는 생산자라고 하는, 실제 사회에 있어서의 기능 구조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의 재현은 조르쥬 뒤비(Georges Duby)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하는 봉건사회의 사회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적용되었는데, 3기능체계의 재현은 계급분화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2개의 분할원리가 교차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하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상이한 원리들의 이름으로 지배를 위해 경쟁하는 지배집단 내의 제 분파 간에 보이는 분할인데, 후자는 봉건사회에서는 전사bellattores와 학자oratores의 분할이고, 오늘날에는 경영자와 지식인의 분할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맥더미의 궤변

한 사람이 A=B, B=C 그리고 동시에 A<C를 가지고 있다. 혹은 A1=A2, A2=A3, ... A99=A100 그리고 A1<A100이다. 달리 말하면 비록 한 알의 소맥이 소맥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두 알, 세 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소맥더미가 264알부터 시작되는지 265알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265알부터는 소맥더미가 되고 264알로는 소맥더미가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된 분류법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계급 측의 여러 가지 학문에 의해 생산된 수많은 윤리적, 미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법률적 분류법은 자신의 외견상의 중립성으로부터 특정한 효력을 이끌어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모두 사회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분류법은 상대적 자율성을 띤 여러 場의 고유한 논리와 언어에 따라서 생산되며, 지배적 아비투스의 분류도식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이러한 도식을 낳는 사회구조에 대하여 실제적인 종속dépendance réelle을 야기하는 동시에, 외견상의 독립apparence de l'indépendance을 추가하였는데, 외견상의 독립은 분류투쟁lutte des classements과 계급투쟁lutte des classes의 한 상태를 정당화시키는데 공헌한다. 확실히 半자율적인 분류체계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는 학교적 '성적평가'의 원리인 일련의 형용사의 체계(秀, 優, 美.. 可 등)이다.


남녀간, 연령층간의 대립이라든가 세대간의 대립처럼, 다양한 지배형식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여러 도식이나 상투어의 표현형 역시 비슷한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소위 '청년층'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연장자들이 제시하는 정의를 받아들여 많은 사회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일시적 자유권('젊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을 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귀속된 적합한 일, 젊은이의 '고유한 미덕', 즉 용기, 사내다움, 열정 등을 실현하고, 중세귀족의 자제라면 무술 수행, 르네상스기의 피렌체 청년이라면 연애와 폭력,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라면 rule에 입각한 유희의 열광(스포츠나 록음악처럼)을 실천한다.각자 자신의 고유한 사안에 관여하면서, 요컨대 자신을 '젊음'의 상태로, 즉 무책임한 상태로서 유지하고, 책임 있는 행위를 포기하는 대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자유를 향유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beau'과 '매혹적인 것joli' 사이에,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쾌락plaisir과 향락jouissance, '아름다운 것beau'과 '쾌적한 것agréable', 즉 '뜻에 맞는 것ce qui plaît'과 '즐겁게 하는 것ce qui fait plaisir' 사이에 설정한 대립과 똑같은 대립을 설정하고, '매혹적인 것'을, '의지에 대해 그것의 성취와 만족을 직접 제공함으로써 의지를 자극하는 것', '미의 직관에 필요한 순수직관상태로부터 감상자를 끌어내는 것', '의지를 직접 만족시키는 대상을 보는 것에 의해 의지를 틀림없이 유혹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순수취향이 거부하는 것은 사실 대중적 관객이 굴복하게 되는 폭력이다(대중음악과 그 효과에 대한 아도르노의 서술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에 대한 경의를 요구하는데 이는 거리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리감이다. 순수취향은 예술작품에 대하여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은 궁극성으로서 존재하고, 관객을 칸트적 정언명령에 따라 취급하기를, 즉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우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칸트의 순수취향의 원리는 향락을 부과하는 대상물에의 혐오, 그리고 그 부과된 향락에 만족하는 조야하고 통속적인 취향에 대한 혐오이자 거부이다.


만약 칸트의 '負量의 개념'의 논리에 따라, 극복된 악덕의 양에 의해 미덕의 크기를 재고, 부인된 충동과 정복된 통속성의 강도로 순수취향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미학을 상정하고 그 미학의 함의를 추종한다면, 가장 완성된 예술은 문명화된 야망과 억제된 충동, 승화된 조야함의 대립적 명제를, 가장 긴장도가 높은 상태로 포함하는 작품들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 너무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억제하는 것은 '순수'쾌락의 경험을 위한 선행조건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쾌락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유미주의자의 쾌락의 가장 순수한 형식, 즉 정화되고 승화되고 부인된 감각기능은 역설적으로 금욕, 즉 훈련 속에,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감각기능과는 정반대로 단련되고 유지된 긴장 속에 존재한다.


칸트는 '자유로운 예술'과 '보수를 바라는 예술'을 대립시키는데, 전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 所産은 자유이며(그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상자에게 어떤 강제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賃金처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서만 매력적이고 따라서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예속적이고 비굴한 활동이며, 그 산물은 감각될 수 있는 매력의 노예화하는 폭력으로써 감상자에게 강요된다.


칸트는 먼저 (대학에 소속된) '동업조합적 학자' 혹은 재야의 '독립학자'와, 단순한 '학색수득자' 즉 성직자, 법무관, 의사처럼 대학에서 획득한 지식을 파는 '실무가와 학식의 전문직인'을 구별하고, 마지막으로 후자의 고객, 즉 '무지한 사람들로 구성된 일반대중'을 구별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세속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제 학부, 즉 법학부/의학부/신학부와, 세속적 차원에서는 피지배적이나 비세속적 차원에서는 지배적인 학부, 즉 철학부를 대립시킨다. 철학부는 세속적 권력은 없으나 '정부의 명령에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인데, 그 자신의 법, 즉 이성의 법만을 알고 있으며, 그 비판력을 완전한 자유에 의해서 발휘하는 근거를 부여할 수 있다.


출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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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극장, 오페라 혹은 전람회들(초연이나 야간 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은 상류층 관객들이 상류 사회의 일정이 갖는 통합적이면서도 독특한 리듬에 따라 상류 사회의 구성원임을 드러내고 체험할 수 있는 사회 의식의 기회나 구실이 된다.

- 샤롯데시어터, OO아트홀, 이태원 블루스퀘어 등등..

 이와 반대로, 미술관은 상류 사회의 의식과 결합된 사회적 만족을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의상에 관한 어떠한 강제도 없이, 필요한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입장시킨다. 더욱이, 극장, 특히 음악당과 버라이어티 쇼들과는 달리, 미술관은 항상 순수 미학적인 것이 요구되는 정화되고 승화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점은 도서관과 다소 비슷한데, 미술관은 종종 소박한 기쁨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경험과 지식의 축적 또는 승인과 해독의 즐거움을 강하게 지향하는 엄격하고 준(準)-학자적인 성향을 요구하는 것이다.

- 삼청동 아트선재센터, 인사동 미술관, 정독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등등..


미술관을 도서관과 관련짓는 경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중간계급 관람자들과 교수들이다.


실제로, 하나의 계급 혹은 계급분파는 지식인이나 예술가 일반에 대해 (반-주지주의가 쁘띠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의 어떤 분파들의 결정적인 특징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 계급이나 분파가 내리는 전체적인 판단에 의해 정의된다기보다는 생산의 장에서 제공되는 선택지 중에서 그 계급이나 분파가 택하는 예술가나 작가들에 의해 정의된다.

- 그래서 내가 속하고 싶은 계급은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내세워 놓았듯이 Fritz Lang, Jacques Tati, Jean-Pierre Jeunet 영화감독, 음악가로는 Yellow Magic Orchestra, 호시노 겐, 캐스커 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 세련되고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약자에 대한 관심도 갖되 쿨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


오스트레일리아의 신화에서, 주술적인 수단에 의해 20세에 가질 수 있는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면서 세대들간의 관계구조를 전복시키는 늙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나이에 젊은 좌파들과 교제하고 세도가와는 교제하지 않은 사르트르 식으로 사회질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은폐되어 있는 기반의 하나, 스피노자가 공순(恭順)obsequium이라고 부른 것, 즉 '서로 존중해 주고' 그 존경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성향을 가끔씩 문제시할 수 있다.

- 내가 지도층이 되고 지배계층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같은 지배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부패하였거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한 척 하고 대접해주지만 속으로 저 먼 곳의 젊은 사람들이 가지는 혁신적인 생각을 키워주어 나중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나와 정말 뜻이 맞는 사람에게는 피식 웃으면서 진심으로 내가 가진 능력과 정보를 모두 공유할 것이며,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문제 있다 싶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더 사근사근하게 대할 것이다. 약간의 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업들(또는 최소한, 의사들)은 다른 것들 중에서 가장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을 옹호함으로써, 지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와 그 지위가 요구하는 능력들을 성공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 대학교 학회는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이다.

사실, 자격증과 승진에 따른 접근양식의 이중성, 그리고 그러한 이중성에 상응하면서 접근양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특권에 대한 정연한 옹호를 방해하는 분할들로 인하여, 이러한 범주들은 교육연한의 연장이 가지는 효과들에 의해 훨씬 직접적으로 영향받아 왔다. 지위에 특권을 부여하는 자격증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교육연한의 연장은 자격증과 지위 사이의 실제 관계와 자격증 보유자와 비보유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위에 대한 경쟁의 형태를 변형시켜 왔던 것이다.

- 한국 대학생들의 졸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격증의 수(이력서의 한줄 한줄을 모두 이 '자격증'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많아지고, 이에 따라 경쟁의 형태는 변형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다면 사실 전문성까지 물어보지 않고 인성만 보는 일본식 채용 시스템이 이력서와 전문성을 모두 따지는 한국식 채용 시스템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르 몽드'지의 구인란에 대한 간단한 분석

새로운 관리직의 모습

1. 보다 높은 수준의 교섭 에 소질이 있는: 수완을 가지고 처신할 줄 아는, 모든 수준의 교섭에 예민한 감각, 모든 수준의 교섭, 보다 높은 수준에서 공무원과 교섭하는 데에 익숙한 아주 훌륭한 협상가, 은행과의 협상, 관공서들과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것, 직업 조직 내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것, 교섭과 추진에 대한 의욕, 과제 해결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 화술의 유창함

2. 그리고 내부 협상에서, 다시 말하면 판매관리부의 책임자로서: 판매와 관리 사이의 조정과 중재에 대한 지속적인 활동

3. 새로운 상업학교들 중의 한 곳에서 공부한: 즉 HEC, INSEAD, 고등상업학교ESC나 고등실업학원Institut supérieur des Affaires(ISA)들이 대체로 함께 거명되는데, 이 학교들은 대개의 경우 '미국의 대학교에서의 이수기간'을 가진다.

4. 다국적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또는 국제 무역에 전념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반드시 필요한 영어실력'과 마케팅, 머천다이징 등에 관한 영어용어, 그리고 '기회opportunité' 등과 같은 영어식 표현들

- 프랑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있었다.


'사업상의 관광여행'

업계의 용어로 '포상 세미나' 와 '고급 세미나'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현대적인 기업들이 자신들의 관리직들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비밀스러운 이익들의 일부를 이룬다. '숙박 설비가 있는 세미나들'(다시 말해서, 하루 이상 지속되고 회사 밖에서 벌어지는 세미나들로서, 1973년에 25,000개의 세미나들이 개최된 것으로 추산되었다)은 '사업상의 관광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호텔들(노보텔, 프랑텔, 소피텔, P.L.M., 메리디엥, 메르뀌르, 모텔르리)을 수반하는 가장 번창하는 산업이 된다.

- 이름이 익숙한 저 호텔들이 세미나 전문 호텔로 지금의 호텔 체인을 가지게 되었구나.

세미나르크Séminarc는 인세아드INSEAD의 한 졸업생이 고안해 낸 것인데, 그는 가을과 봄의 여섯 달 동안 침체되어 있는 레자르끄Les Arcs의 휴양지가 가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그 곳을 세미나 센터로 만들었다. 이 뉴스를 실은 경제 주간지에 따르면, '가을과 봄은 상급 관리직들이 명상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성수기에는 최고 경영자를 위한 호화 세미나들과 주요 고객들을 맞아들이는 반면, 비수기인 겨울에는 '열심히 공부했던 판매부원들을 위한 재교육-포상 세미나들'로 예약되어 있다.

- 겨울에 대기업 신입사원들이 리조트로 많이 가는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사기업 관리직(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 보다 젊은 나이에 영향력 있는 위치에 도달하고, 대체로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고, 보다 대규모적이고 현대적인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보다 젊고 현대적이며, 거의 전부는 금융 일간지인 Les Echos와 경제/금융 전문 주간지들을 읽는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대체로 세련된 동시에 활동적이고, 많은 경우에 요트, 스키, 수상스키, 테니스, 그리고 이차적으로 승마와 골프처럼 '인공두뇌적'인cybernétiques 스포츠에 열중하고, 브리지와 특히 체스처럼 '지적'인 동시에 세련된 오락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외국을 지향하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열려 있는 현대적인 관리직이 가지는 역할을 자신들과 보다 철저하게 동일시한다.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고, 외국어로 쓰여진 잡지들을 읽으며, 현대적인 집기를 가지고 있다.


취향 생산자들taste makers: 관광회사, 신문/잡지사, 출판사와 영화사, 의류업계와 광고회사, 실내장식회사와 부동산개발회사


신흥 부르주아지라는 계급분파는 학교, 교회나 회사에서처럼 은근한 강제manière douce에 기초한,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모든 표현들(특히 의복과 같은 것에서)에 대한 완곡어법과 그러한 거리 두리를 안정시키는 데 적합한 귀족적인 엄격함에 대한 계산된 포기로 나타나는 '느긋한décontracté' 생활양식에 기초한 새로운 지배양식을 창안하고,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계급분파이다.

- 정말 모든 '신'계급, '신'생활양식은 미국에서부터 왔구나. 전세계에서 표준을 만든 나라.


쁘띠 부르주아에게 가족관계와 친구관계는 더 이상 불행과 재난, 고독과 빈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험도, 필요한 경우에 도움의 손길이나 대부, 직업을 제공할 수 있는 원조나 보호의 네트워크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아직 인맥 즉 경제 및 문화자본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회관계자본이 아니다. 그러한 인맥이 가져다주는 사의(謝意)와 상호부조, 연대, 물질적 및 상징적인 만족은 장기적으로 또는 단기적으로 그들에게는 금지된 사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이 얼마가 들든 간에 제거해야 할 질곡에 지나지 않는다.

- 대학생의 대부분은 쁘띠 부르주아로 상승 지향적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만약 대학생이라는 집단이 상승 지향적이 아니고 쁘띠 부르주아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훨씬 행복하고 '안녕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대량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번식력을 거부하면서, 쁘띠 부르주아지는 제한적/선택적 재생산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자주 그들의 수입계급(輸入階級)인 부르주아 계급의 엄밀하게 선택적인 기대에 따라서 구상되고 형태를 갖춘 유일한 생산물에 한정된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도덕은 엄격하고도 엄밀하여, 형식주의와 세심한 시선은 언제나 그 도덕을 편협하고 견고하며 경직되고 과민하며 옹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쁘띠 부르주아지는 그 자신의 사소한 배려와 필요를 좇아 작게 사는 부르주아지이다. 심지어 사회세계와 그 자신의 모든 객관적 관계가 표현되는 신체적 성향조차 부르주아 계급에로 이르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옷차림이나 말(과도한 경계심과 신중함으로 과잉교정된 말), 몸짓, 전체적 거동에서 엄격하고 절도있으며 신중하고 검소한 그에게는 언제나 자유활달한 여유나 폭넓고 통이 큰 너그러움이 조금은 결여되어 있다.

- 작년과 올해의 나를 보는 듯 하여 반성하는 마음이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어두운 단면을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적나라하게 파악하는 문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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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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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님 2014.08.16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멘트가 달려있어서 좋네요. 저도 사근사근해지려고 노력해봐야겠어요^^; 어려워요

2007년 디자인과문화 중간보고서

 

목차 Contents

1. 서론

2. 현대인의 생활양식 분석

3. '나의 집'이 가진 특징

가. 음식점과 Bar를 우리 집으로

나. 내가 만든 생산물의 특별함

다. 사람들을 끌어오는 비법

4. 지금 대학생인 나를 돌아본다

5. 결론

 

요약

현대 사회에서 점차 부족해지는 것을 두 가지 말하자면 하나는 시간이요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 정성이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한편으로는 더욱 거대한 도시 속에서 점차 개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 젊은이들의 생활공간은 집, 직장 그리고 모임 장소로 구분되는데, 그중 모임 장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이 세 가지 공간이 가진 고정적인 틀을 바꾸어보자는 것이 이 보고서의 근본적 취지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업무에 관한 보고와 회의, 인간관계 조정을 위한 대화 등이 레스토랑과 주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임 장소가 직장이나 대학교 내의 세미나실, 그리고 대표적인 번화가인 강남역 주변과 신촌역 주변 등으로 제한되어 있고 모든 모임 장소는 사람들의 집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만약 모든 모임을 한 사람의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집의 주인은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목한 공간이 집이고, 집과 모임 장소가 하나로 합쳐진다면 한 명 이상의 시간이 절약될 것이다. 단 원룸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20,30대 남성과 여성들이 이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집과 모임 장소가 합쳐질 경우 집 주인은 음식점과 Bar의 시설을 집으로 가져오고 거실을 공동의 공간으로 꾸민다. 그는 같이 모인 사람들에게 직접 음식과 술을 만들어서 제공해주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얻고 이타적인 성격을 표출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문화는 소비 위주의 사회가 낳은 효율성과 개인주의를 허물고 동시에 직접 음식과 술을 만드는 비효율성을 집과 모임 장소의 통일에 의해 파생된 효율성으로 보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의 집은 더 이상 나만의 집이 아니게 되고, 나의 거실을 위주로 그 공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일은 앞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욱 많아질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일이 없지는 않지만 '나의 문화'로서의 거실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따뜻함이 추가로 가미된 생활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모임 장소를 완벽하게 흡수한 나의 집은 개인 위주의 사회에서 단체의 결속력이 가진 아름다운 정서를 되살릴 것이고, 나의 집이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나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1. 서론

현대사회에서 점차 부족해지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 중 특히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은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 실제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의 활동 범위가 도시 전체로 확대되고 주거지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바쁜 스케줄에 맞추어 분주히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곳저곳을 다닌다.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각자 이동하는 공간이 매우 달라지고 분화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하는 주중에 개인 단위로 파편화된 상태에서 움직인다.

현대사회가 결여하는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향한 정성이다.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개인주의를 더욱 촉진했다. 직장이나 대학원과 같은 곳에서는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시로 카페나 레스토랑, 와인바나 재즈바 등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를 자주 만들지만, 이러한 모임은 인간관계 증진을 통한 효율성 높이기를 근본 목적으로 한다. 결국 인간관계의 증진은 수단적인 가치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기며, 인간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모임을 갖더라도 그 모임은 항상 돈을 내고 음식과 술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타인에게 선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소비는 곧 정성을 대신할 때가 많다. 내가 직접 만든 선물보다 더 가치 있는 선물이 있을까라고 질문을 하고 싶은 부분이다.

부족한 시간과 부족한 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보고서는 현대 젊은이들의 생활공간 중 모임 장소가 갖는 엄청난 비중에 주목하여 방법을 찾아나가려 한다. 젊은이들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은 집과 직장 그리고 모임 장소의 세 가지 분류로 나누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세 가지 공간은 도시 속에 넓게 분포해 있고 서로가 명확한 구별을 이루고 있지만, 세 가지 공간이 항상 나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적인 틀을 바꾸어본다면 현대인이 갖는 문제를 완화시키고 부족한 시간과 정성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고정적인 틀을 바꾸어보자는 것이 이 보고서의 근본적 취지이고, 사고의 전환은 모임 장소의 대표격인 음식점과 Bar를 집 안으로 옮겨놓는 데서 시작한다.

 

2. 현대인의 생활양식 분석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활발한 2~30대 젊은이들의 생활 범위는 이제 한 도시 전체로 확대될 정도로 넓어졌다. 서울의 경우 하루에 들러야 할 곳이 두세 곳만 되어도 강남과 신촌을 거쳐 노원에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중교통이 아무리 발달하여 과거에 비해 거리에서 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다녀가야 할 곳이 많아지고 다양해지면서 자동차나 버스 혹은 지하철을 타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은 꾸준히 늘어간다. 현대인은 그래서 바쁘고 시간에 쫓긴다.

서울특별시는 매우 큰 도시라는 의미에서 Seoul Metropolitan City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Metropolitan City의 지위를 가진 대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도시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한국의 광역시들도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서울과 주변의 위성도시가 하나의 megalopolis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다른 도시들은 서울에 비해 아직도 규모가 작다. 도시가 크다는 것은 곧 사람들의 집과 직장과 모임 장소가 위치한 곳이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분포가 다양해질수록 사람들이 불편하게 버스나 지하철을 오랜 시간동안 타야 하는 경우는 늘어난다. 예를 들자면 직장이 종로구에 있는 사람은 강남에서 회사 사람들을 만나 레스토랑에서 직장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구로구에 있는 집에 밤늦게 돌아간다. 지도를 보면 커다란 삼각형이 그려지고, 이는 곧 공간의 이동을 통한 그 사람의 시간 손실이 많아짐을 뜻한다. 그런데 만약 구로구의 자택에서 모임을 진행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하루의 비용을 강남구에서 구로구까지 가는 시간만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남구에서 모이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송파구 주민이 모임 중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등포구 주민이 모임 중에 있다면 그 사람은 구로구의 회사원과 같이 시간적인 이득을 얻는다. 자택에서의 모임 진행은 결국 한 명 이상이 시간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업무에 관한 보고와 회의, 인간관계 조정을 위한 대화 등이 레스토랑과 주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임 장소가 직장 내의 세미나실, 대학교의 반방, 대표적인 번화가인 강남역 주변과 신촌역 주변 등으로 제한되어 있고 모든 모임 장소는 일부 사람들의 집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모임 장소가 반드시 강남과 신촌 등의 특정 지역에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합의는 일종의 헤게모니이자 지역에 따른 계급화를 낳는 근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 장소로는 번화가가 가장 적합한 곳이고 가장 '예의를 갖추어 사람들을 접대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특정 지역으로의 모임 장소 편중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의 집을 모임 장소로 삼자는 제안은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면 그 집 주인이나 그의 가족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는 번화가의 음식점이나 주점에서와 같이 맛있는 음식이나 술 그리고 좋은 분위기를 곁들여 모임을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만들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원룸과 오피스텔 형태의 주거 방식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요즘에는 집안에서도 충분히 여러 사람들과 같이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다행히도 현대의 남성과 여성들의 생활 양식과 의식 수준은 집과 모임 장소의 일체화가 현실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집이 몇십 명을 수용할 만큼 크거나 혹은 번화가의 유명한 재즈바처럼 화려한 인테리어로 그윽한 분위기를 낼 필요는 없다. 한국의 직장인의 소득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들의 인테리어 감각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

집안의 다른 사람들과 이웃집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집안에서의 모임은 언제나 가능하다. 더구나 원룸이나 오피스텔 형태의 집은 직장 근처에 있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은 공간을 이동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가능성도 있다.

 

 

3. '나의 집'이 가진 특징

가. 음식점과 Bar를 우리 집으로

문화를 선도하는 '나의 집'은 음식점과 Bar가 가진 시설을 집 안의 거실에 그대로 가져다 놓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실제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테이블과 테이블 위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메뉴판이나 소스 병 등을 마루의 한쪽에 자리해 놓는다. 다른 한쪽에는 실제 Bar에서 볼 수 있는 바 모양 가구와 에스프레소 기구 그리고 여러 종류의 시럽과 위스키와 칵테일용 주류를 진열한다. 실제로 이러한 시도를 한 사람 중에는 미국의 유명한 락 가수 Lenny Kravitz가 있다. 2001년 미국 최우수 Grammy Rock vocal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세와 실력을 겸비한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화려한 인테리어의 집을 만들어냈다. 집안에는 실제 Bar나 Nightclub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서 마치 이곳이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집은 많은 소득을 얻는 연예인의 특성상 일반인과는 다르게 호화롭게 꾸며놓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러한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2장에서 논의했듯 그와 같이 음식점이나 Bar를 집으로 가져온다는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일반인들의 집에서 활용 가능하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간단한 다과 정도를 대접하는 일은 흔하지만, 직접 집 주인이 음식과 칵테일 등을 실제 음식점이나 Bar처럼 꾸며놓은 집에서 만들어 대접하는 일은 매우 획기적이다.

사람들은 같이 모여 일을 추진할 때 항상 딱딱한 직장 안에서 공식적인 태도를 취하며 회의와 브리핑 위주의 커뮤니케이션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대화의 딱딱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편안한 분위기의 음식점과 카페와 주점을 찾아 그곳에서 못 다한 대화를 나눈다. 오히려 그러한 비공식적인 모임 공간에서 업무상 중대한 결정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모임 공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과 술이다. 즉 음식과 술과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모임 장소로 적합하다는 뜻이며, 이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형태의 집이 곧 모임 장소로 적합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집 주인이 직접 음식과 술을 만들어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문화는 충분한 효율성을 가지고 정착할 수 있다.

나아가 현관 쪽에 카운터와 비슷한 공간을 두어 우리 집에서 먹고 가는 사람들은 나중에 집 주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다시 사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돌아가게 한다면 아름다운 '오고가는 정'의 문화가 더욱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가게에서 지불하는 현찰은 집 안에서 '보은의 정'으로 전환된다. 또한 '나의 집'이 가지고 있는 적합한 모임 장소로서의 풍경을 여러 장의 이미지나 UCC 등으로 편집하여 자신의 블로그나 싸이월드 등에 올려놓으면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단 거실이 가지고 있는 주거 공간의 특징은 유지한 채 모임 장소의 성격을 거실로 가지고 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기능은 비록 진부하지만 거실에서는 빠질 수 없는 기능이다. 공간이 좁더라도 모임 장소를 위한 시설과 개인적인 거실을 위한 시설은 같이 놓을 수 있고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결과적으로 거실은 두 가지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주변의 조명 등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바꾸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만들어 놓아서 원래의 집이 가진 이기적인 측면을 거실의 이타적인 측면과 함께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집에서 책을 읽거나 업무 관련 자료를 읽어보면서 업무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공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직업의 경우 연구실은 더욱 더 필요하다. 연구실에 들어간 사람은 남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하며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야 하고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서 여러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집의 공간이 남을 경우 따로 방을 만들고, 방이 없는 경우에는 거실의 구석에 책상과 서재 등을 집약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나만 쓰는 공간의 특성을 그 이외 공간의 특성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의 집'은 남을 위해 지나치게 개방한 공간이라는 비판을 줄일 수 있으며 이기심과 이타심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공간을 확정해 낼 수 있게 된다.

 

나. 내가 만든 생산물의 특별함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분업과 특화가 기본적인 생산 방식과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기 전에는 우리 조상들을 비롯한 전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집 안에서 혹은 마을의 소규모 집단 속에서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했다. 그중 집 안에서 직접 요리를 한 다음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문화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매우 보편적인 문화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비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사랑방으로 불러서 집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자신들의 이론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고,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도 관료들은 자신들의 집에 동료 관료들을 초대하여 함께 만찬을 즐겼다. 오늘날과 같이 신촌과 강남 등 집 밖에 번화가에서 모임 장소를 정하는 일은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에 생긴 문화이다.

현재 백화점의 지하 1층 식품매장이나 동네 베이커리 등에 가면 'Homemade Cookie'라고 쓰인 제품을 볼 수가 있다. 집에서 만든 과자라는 뜻을 가진 이 과자는 다른 사람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예쁜 그릇에 차와 함께 담아 내놓는 대표적인 과자이다. 하지만 그 Cookie가 진짜 'Homemade'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직접 만든 과자가 아니라 과자점에서 사온 과자인 만큼 정성이 덜 들어있다. 정성이 가득 담긴 과자를 직접 만들어 집에 초대한 사람들에게 대접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혹자는 집에서 음식이나 술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제공해주는 활동을 경쟁력이 없는 활동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도시의 번화가가 가지는 자본과 기술이 워낙 우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임 장소로 멋진 맥주집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을 더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임의 목적은 본질적인 목적이든 수단적인 목적이든 상관없이 우선 '인간관계 증진'이기 때문에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문화보다 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드는 생산물은 정성의 실현과 인간관계 증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아가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면 음식점이나 Bar를 그대로 가져온 독특한 인테리어와 타인을 향한 정성과 함께 일정 수준의 요리 솜씨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평소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행위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 문화를 실천할 적임자이다. 최근 젊은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게 요리를 잘 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지니고 있고, 요리나 주조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집과 모임 장소의 일체화 문화는 최근의 이러한 사회적 경향과도 자연스럽게 흐름을 같이 한다.

 

다. 사람들을 끌어오는 비법

같은 모임 장소이지만 번화가의 가게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집이라면 사람들은 집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집이 가지는 인간적인 면모이다. 집 주인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호의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필요한 조건은 번화가의 수많은 가게 못지않은 분위기 조성이다. 분위기를 조성해야 신촌의 레스토랑, 강남의 재즈바 대신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명목이 생긴다. Bar를 집에 설치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홍대 앞이나 삼청동 등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보여주듯 그리 많은 remodeling을 거치지 않더라도 몇몇 소품과 벽지 등을 활용하여 충분히 집을 꾸밀 수 있다. 집 주인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사람들은 즐겁게 집으로 찾아올 수 있다.

 

4. 지금 대학생인 나를 돌아본다

나는 아직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학생이기 때문에 지금 제안하고 있는 새로운 '나의 문화'를 당장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집과 모임 장소의 일체화를 통한 인간관계의 증진이라는 면은 대학교 신입생이 많이 갖는 MT에서 엿볼 수가 있었다. MT 장소는 그날의 집이자 그날의 모임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러 동아리에 소속되어 다양한 곳으로 MT에 참여했던 나는 지난 1학년 1학기에 다양한 MT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주고받고 그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다졌다. 특히 연세대학교 중앙재즈동아리 So What은 용인동백지구의 한 별장에서 신입생들의 MT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이곳에서 동아리 구성원들과 각자의 음악 성향에 대해 토론하고 앞으로 1년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 필요한 음식은 대형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를 가지고 나와 친구들과 선배들이 힘을 합하여 밖의 정원과 안의 부엌에서 직접 만들었고, 술 또한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섞어서 같이 마셨다. 비록 초보적인 수준의 요리였지만 음식과 술 만들기는 한 공간에서 집과 모임 장소의 역할을 모두 수행해나가는 문화가 가지는 커다란 이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5. 결론

나의 문화는 점점 파편화되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제동을 걸고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이라는 기제를 이용하여 인간적인 유대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집과 모임 장소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집 주인에게 공간의 축소를 통한 시간의 자유를 가져다주며, 그것은 곧 집 주인의 업무의 효율성 증진에도 기여한다. 이 새로운 문화는 주거 공간의 변화를 유도하며 집을 더 이상 나만의 공간으로 유지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또한 이 문화는 요리에 대해 관심을 더욱 가지고 있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실효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직접 만들어 정성이 깃든 음식과 술을 통해 딱딱한 직업적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는 인간적인 가치를 실현한다.

머지않아 나는 사회에 진출하여 원룸이나 오피스텔 형태의 집을 구할 것이고,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것이다. 그때 나의 집을 모임 장소로 활용하여 사람들과 더욱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에게도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젊은 층에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5년전 예나 지금이나 생각은 그대로여서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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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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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의 관여 정도와 쌍방향성 그리고 대응도를 순서로 하여 현재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높은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전화

모바일 문자메시지(SMS/MMS)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

고 알림수준 소셜네트워크서비스(트위터, 페이스북)

저 알림수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미투데이, foursquare..)

SNS 연동 게시판 및 사이트 댓글

외부 사이트 게시판 및 사이트 댓글


이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푸시 메시징 서비스가 점차 사용 범위를 넓혀감에 따라 위의 척도가 낮은 서비스도 쌍방향성과 대응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대략 이렇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이 상대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빨간 색으로 표시를 하고 소리를 내고 깜빡이고 브라우저 새로고침을 시켜도 그 사람이 기기(데스크탑, 노트북PC, 태블릿, 스마트폰)에 접근하여 사용을 하지 않으면 발신자의 움직임과 외침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전화를 제외한 나머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알림 수단은 그 수단이 언제 고안되어 기기에 적용되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알림에 이용자가 응답을 하지 않았을 때 받는 피해와 불편이 없다. 메인화면과 상태 표시줄에 자꾸 뜨는 빨간 동그라미와 푸시 메시지는 거슬리긴 하지만 당장 제거하지 않았다 하여 지금 현재 오프라인 세게에서 하고 있는 일에 불편을 겪지는 않는다.


  전화는 다르다. 발신자는 계속해서 수신자의 핸드폰 벨을 울려대고 진동을 시킨다. 너무 잦은 전화는 사람을 귀찮게 하고 지치게 한다. 전화가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여 사무 업무시간 중에 무작위로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이 오프라인 미팅에 참가하는 것과 동일하게 중요하다면 전화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업무 분야(주로 영업과 컨설팅에 해당)가 아닌 사람들이라면 전화는 아주 가끔, 말로 해야만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며 그들은 전화 아래로 쌍방향성과 대응도가 낮은 수많은 다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더 애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가 전화만 사용하는 무식한 방법보다 더 세련된 방법이고 그래서 더욱 더 사용을 촉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목록의 아래 항목으로 갈수록 서로가 주고받는 메시지는 일방성을 띤다. 일방성을 띠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전화를 대체하는 더 나은 수단으로서 받아들인 사람들은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데 익숙해지게 되었다. 두 사람이 전화를 할 때 상대방이 5초 이상 응답이 없으면 '여보세요?' 혹은 '야.' 라는 말이 바로 들려와 즉각적으로 응답을 해야 하는 강요된 동기가 생기며, 즉각적으로 응답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은 '조금 이따 전화할게.' 라며 언제 응답을 할지에 대해 대충이라도 말을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에서는 이와 다르게 메시지가 전달된 후로 얼마의 시간 이내에 답을 해야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음을 규정하는 요소가 없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예고할 필요도 없다. 내가 편한 시간에 메시지로 응답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부류의 이용자들은 전화를 정말 필요할 때만 쓰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결과로 무료통화 용량은 작고 데이터 용량은 큰 스마트폰 요금제가 등장했으며, 전화를 거는 행위에 보다 예의와 신중을 기하여 상대방의 사생활에 최대한 적게 간섭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인 기록 가능성에 매료된 사람은 '질문 및 답변 정리 - 공지 - 열람'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질문 발견 - 질문 - 답변'보다 선호한다. 만났을 때 수시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 답변을 그때그때 하기를 귀찮아하는 것은 이러한 선호 때문이다. 인터넷, 모바일, 프로그래밍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텔레마케터나 FMCG 영업사원처럼 친절하게 전화와 오프라인 만남에 응대도 같이 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대신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록이 가능한 비동기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처리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지면서 직접 만나 하는 대화에서는 짧은 문장의 의문문이 줄어들고 긴 문장의 평서문이 많아진다.


  이 모든 행동은 귀차니즘이 아니다. 조금 더 효율적이고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를 상대방이 이해해주느냐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면박을 주느냐는 상대방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진 현대인을 이해하는지 여부에 달렸다. 여기서 말한 상대방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더 많이 사용하고 그에 따른 효율성을 체험하여 서로 만났을 때 나누는 대화 중에 불필요한 질문을 없애고 불필요한 전화 시간을 줄이면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사소한 말싸움 또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남이 물어보았을 때 말로 즉각 답하는 일에 조금 더 의무감을 갖고 내가 편한 시간에 답하고 싶다는 편리성에서 유래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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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블릿 이라는 말의 주인은 누구일까. 예전의 '펜 태블릿'일까 지금의 '태블릿 PC'일까. 주인을 잃어버린 그래픽 도구, 주인이 되려는 터치스크린 장비. 누가 정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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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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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한국의 청년실업이 무엇 때문이냐고 질문한다면 간단하게 한국에만 있는 고시촌과 학원 문화가 그 원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학원에 의지하거나 고시에만 매달리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문계열의 청년들이 전체 청년들의 1/3이고 그중 고시와 관련된 과에 속한 청년들이 절반이라면 1/6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화가 한국 전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시험을 준비하게 해주는 동네, 시험은 공정한 경쟁이라고 비쳐질 수도 있지만 다양성을 파괴하고 100명을 경제활동인구로 쓸 수도 있을 것을 10-20명만 쓰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다른 시험과 달리 고시와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것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동네로 가야만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믿는다. CPA, CPA, 제2외국어, 프로그래밍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사람은 따로 그러한 자격을 준비하게 해주는 동네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원래 있던 곳에서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병행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시와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고귀하게 남겨두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계속 고시촌이나 학원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지만 그들의 준비기간은 시험을 더 잘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경제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직업이 없는 사람이 직업을 찾아다니면서 이 직업 저 직업 산전수전을 겪는다면 그 사람은 커피를 만들고 고기집 메뉴를 서빙했으며 건물 유리창을 닦았다. 재화와 서비스가 불특정다수에게 공급되었다. 언제 붙나 하고 생각만 하고 풀었던 문제집을 또 풀면 지식이 한 겹 더 쌓이고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시험이 매월 있거나, 내가 원하는 날짜에 아무 때나 볼 수 있거나, 적어도 1년에 3번 이상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한 번 떨어지면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한다는 점도 고시와 입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 정(靜)적인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게 한다.

 한겨레의 2008년 기사를 보면 일본의 청년실업 연구 시민단체가 한국의 노량진 고시촌을 찾고 '만약 고시에서 떨어지면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길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신문은 답을 주지 않는다. 고시는 떨어진 사람에게 다른 길을 주지 않는다. 고시를 위해 배운 지식을 면접이나 회사/공공기관에서 만든 필기시험에 그대로 옮겨 사용하여 인턴이나 정규직 자리를 얻는 경우는 없지 않다. 9급공무원, 7급공무원, 한국전력 등 정부 부문에는 꽤나 많은데 고시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 Plan B로 전환하지 않고 계속 매달린다. 명분을 신경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험이고, 점진적인 성장보다는 한번에 아주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만드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달콤함을 알게 되면 중독되어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 이런 식의 큰 시험을 보지 않고 인턴사원과 정직원 취업만을 통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가면서 진로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 하에서 정해진 학습 범위를 가지고 해결 능력을 다투는 형태의 경쟁보다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한 가지를 끊임없이 홍보하여 자기 편의 사람을 만들어가며 형성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한 단계씩 진보한다. 그래서 한국보다 이력서에 함께 첨부되는 referral(추천서)이 중요하고, 추천서를 써준 사람은 추천서에 대해 큰 책임을 진다. 추천서를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추천서를 쓴 사람이 지원자의 자질을 보증하는 사람이 되며, 당연히 보증인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업종에 알려져 있으면 지원자의 자질도 높게 평가된다. 한국보다 더 인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시스템이 미국이다. 하지만 이 인맥은 실제로 직장에 들어간 후에 보여준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맥으로, 한국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정적인 학연과 지연과는 전혀 다르다. LinkedIn에서 같은 과 나온 선배,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람만 검색해서 인맥 신청을 모조리 한다고 사람들이 받아줄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 동(動)적인 인맥 형성 과정은 가장 높은 자리를 바로 안겨주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모든 사람이 적합한 장소에 고용되어 일하게 해준다. 동적인 인맥 형성 과정의 문화가 다수에게 좋은 가치로 퍼져 있으면 사람들은 Boot Camp를 소중한 일자리로 생각하게 되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 혹은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나의 꿈을 펼칠 수 없으니 빨리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다짐은 크던 작던 경제학이 '생산'으로 여기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고시촌과 학원 문화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선비 문화와 연계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연계가 완전히 없지는 않다. 고위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에 응시하려는 대학생은 그에 실패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사회에 내보이지 않고 그 시험 하나에만 매달리더라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 수험생의 각 가정이 떠안는 경제적 부담은 그 가정 안에만 해당되는 '집안 사정'일 뿐 그 집안 사정이 모여서 청년들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된다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계속 고시촌을 미화하려는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공부를 잘 해서 고시에 빨리 합격하고 학원가를 빨리 탈출하는 수험생들에게는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적성을 잘 파악하고 적시에 뛰어들어 최고의 성과를 얻고 박수를 받을 때 떠난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Plan B가 있느냐는 점이다. 수험생 각자가 출구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는 고시생이고 다 같은 수험생이며 고시촌과 학원가는 우리의 명분을 정당화해주는 공동체의 방패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중소기업 진흥이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의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그리 효과적으로 관련되지 않고 정부 혼자 벌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으로 남아있게 된다.

 건전한 비판과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답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한 진단은 함께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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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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