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좋아하는 그 친구를 위해


여성들에게 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육체를 자각하는 방법으로, 이런 의미에서 자기-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에 응한 여성들에게 육체에 대한 의식은 종종 육체가 특별한 표현수단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춤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언어로 체험한다... 게다가 설문에 응한 여성의 과반수가 이러한 활동은 원초적 에로티시즘, 또는 원초적 자기-에로티시즘(auto-érotisme)을 일깨우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의식은 쾌락으로 체감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저도 제가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죠... 춤은 내 자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탐구, 나 자신을 육체적으로 발견하는 것이죠" "그것은 육체를 통한 감각.. 일종의 말하는 방식이지요. 꽤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죠" "일종의 자기-주장입니다..." "나는 춤추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내 자신을 자각할 수 있지요. 언젠가 2년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계속 무언가 모자란듯한 기분이었어요.. 춤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에요"


- 새로운 스포츠 방법의 목록 - 리브레리 알터나티브 출판사와 파라렐레즈 출판사에서 공동 출판한 『방법의 목록』에서 발췌


상처를 발견한 걸까. 상처를 발견한 다음에는 더 춤을 추고 싶어지는 걸까.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욕망은 상처를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싶은 욕망과 섞여 있다. 어쩌면 다친 채로 지금의 슬픈 자아를 계속 끌고 살아가는 것에서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온몸이 성하고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 심심함과 불안감이 찾아오는 적이 있듯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춤을 좋아하는 그 모습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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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nefesh.org/nike-free-sko.cfm Richardkag 2014.08.04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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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이상

칼럼/삶 2011.05.18 12:13

  이상(異想)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각주:1] 이다. 철학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절대적인 지성이나 감정의 최고 형태로 실현 가능한 상대적 이상과 도달 불가능한 절대적 이상으로 구별할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이상이란 공부와 일에 치여 사는 대학생이 연애를 하고 싶어할 때, 그 연애에 대해서만 분야가 한정된 이상이다. 異想이라는 한자가 바뀌지는 않으며 다만 직역하면 '다른 생각'이라는 점에 미루어보아 평소의 공부와 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 이 '이상'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소개팅을 나갈 때나 평소에 이성적으로 호감을 갖던 여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만나러 갈 때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나의 사상과 라이프스타일을 180도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해야 상대방을 만났을 때 평소보다 많이 웃게 만들고 남자로 느껴질 모습도 많이 보여줄 수가 있었다. 평소 집-학교-집의 경로를 밟으며 공부와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때 나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이성을 배척하고 '쟤 좀 이상해'라는 말을 들을 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굉장히 까칠한 외로운 4차원 괴짜이다. 그래서 그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자아의 전환을 추동해야 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그 격차가 크지는 않더라도 나름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일상생활 속에서 제일로 추구하는 가치와 제일 기분 좋다고 생각하는 사물과 분위기와 태도가 연애의 이상 세계로 넘어갈 때 어떻게 바뀌어야 타당한지를 고민하였고, 그 결과 아래의 비교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면접 준비에 관해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면접용 자아, 면접용 라이프스타일로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은 면접을 하기 이틀 전부터 그 회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평소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과 논쟁의 성격을 가진 말을 많이 하고, 평소보다 옷차림과 화장품 사용에 신중을 기울이라는 조언이었다. 자연스러운 전위를 가진 나에게서 면접 합격이라는 강한 양(+)의 전위를 끌어내기 위해 그러한 사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가짐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오래 소요되지는 않는다. 선배와의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이처럼 면접용 자아도 있지만 소개팅용 자아, MT용 자아, 교수님 면담용 자아도 다양하게 산재한다고 확신했다. 사람은 겉으로 자신이 다중 자아, 다중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지만 분명 속에서는 자아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게 나에게 해당되는 일상과 이상의 비교표이다. 

  일상

 이상

 낮

 밤

 정돈됨

 흐트러짐

 클렌저

 향수

 커피

 칵테일

 지적, 묘사

 반어, 상상

 사실적

 비현실적

 플래너

 낙서

 일렉트로니카

 어쿠스틱

 자존심

 즐거움(쾌락)

 배려

 애정

 부족에 주목

 풍족에 주목

 형광등

 백열등/할로겐

 사무실, 마을

 거리, 공원, 산, 바다

 친절

 밀고 당기기

 개운함

 나른함

 연설

 속삭임

 나를 사랑, 나에게 관심

 너를 사랑, 너에게 관심

 지적 욕구

 식욕, 성욕, 美에 대한 욕구

 



이 비교표는 아직 상당히 미흡하며 더 추가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있는 항목이 삭제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러분의 일상과 이상 비교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평소 자신이 하던 일을 잘 하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렇게 굳이 표를 만들어보고 자아를 돌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각자 비밀 수첩에 중앙선을 긋고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1.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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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러움과 박탈감, 자랑과 짓밟음, 시기와 자책이 합한 경쟁사회의 주된 감정이 나에게 밀려오려 할 때는 나는 그것들을 뿌리치려 애쓴다. 누가 뛰어나더라도 "그래, 그 사람은 행복하겠네." 하며 덤덤하게 넘어가려 한다. 이것도 사람들이 요즘 같이 팍팍한 사회에 존경하는 인물로 내세우는 '대인배'가 가진 한 가지 특성 중 하나일 것이다. 

2
  서로 쟁취하려는 한정된 자원은 화두로 절대 올리면 안 된다. 학점과 진로 등과 같이 어떤 사람이 점유하면 다른 사람은 소외되거나 압박을 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끼리나 현재 같이 하고 있는 세미나의 진척상황에 대해 웃는 얼굴로 물어보고 어제 밤 인터넷에 올라간 레포트 점수와 교수의 평가에 대해 뒷말을 남기는 것이다. 건강한 화두를 올리는 친구들끼리는 이를 차단할 구조를 미리 조성할 수 있다.

3

  같은 공간에 같은 임무를 부여받아 서로가 한정된 자리를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경쟁자들끼리 인간적인 만남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때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남을 나와 비교하고 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보다 우월한 대상이 인간화되어 있으면 그 대상은 나에게 더욱 많은 열등감을 줄 것이고, 반대로 열등한 대상이 인간화되어 있다면 그 사람을 보기 좋게 짓밟았다는 무의식적 정복감이 생길 수 있다.
 
 주변의 대상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교의 작업을 수행하면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없이 냉정한 경쟁을 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 슬슬 눈치를 보면서도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하지 말고 나 혼자 상황을 점검해 본다. 또한 누가 나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말고 '성과 지표'로서 바라보아 그 성과에 익명성을 부여하여 나의 성과 지표와 비교해 본다. 특히나 일회성으로 잔인하게 끝나는 경쟁인 경우에는, 경쟁은 서로 등을 돌아보고 앞으로 달리는 행위가 되어야 바람직하다. 한 점에서 사방으로 달려가는 레이스다. 경쟁 주체가 앞으로 만날 사람이 아니라 이번 한번만 임시적으로 만난 사람일 경우에는 인간적인 끈을 만들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공에 대한 두려움은 주변 사람보다 내가 잘 되는 것이 미안한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러한 감정은 일회성 경쟁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경쟁 주체가 앞으로 몇 년간 서로 같이 지낼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특성을 가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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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수능 경제나 AP Economics 같은 것들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물론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겠지만 '독점적 경쟁시장'의 시장 형태를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품목에 관한 경쟁시장으로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참여하여 비등질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각각 자신들의 상품에 대해 독점을 하고 있지만 독점 이윤은 없는 그런 시장...

  지금의 거의 모든 시장은 이 독점적 경쟁시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시장이 독점적 경쟁 형태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안도감을 느끼고, 나도 나중에 작은 시장이다 할지라도 독점적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남들이 해보지 않았던 것이지만 막상 상품이 나오고 보면 남들도 많이 원하게 되는 그런 상품, 내 취향과 개성과 능력에 따라 하나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A와 B가 경쟁하고 있다가 A와 B 사이에 차이점이 생기게 되면, 각 A와 B는 더이상 경쟁하지 않게 되고 각각의 2개의 시장으로 나뉘게 된다. 취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다 보면 차이가 생기고, 이 차이에 따라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곳으로 찾아 들어간다. A와 B는 더이상 경쟁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류의 '차이가 생김으로써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은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어떤 상품을 지구 중의 한국, 한국 중의 서울 안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출시하더라도 상품을 구입하러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게끔 해 준다. 한 예로 나는 전부터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노년층 인구가 (교수, 연구직, 아직도 정정하신 할아버지/할머니) 하나의 커뮤니티에 모여 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공유하거나 오프라인 강의 연계 등으로 유료 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이트가 미국에 이미 있었다. SeniorNet이라는 단체로, 기본적으로 비영리 단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오프라인 유료 강의와도 연계되어 있고 기부나 멤버십 등의 메뉴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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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SeniorNet>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한국에도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맥없이 포기해야 할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과 한국 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모든 '노인 지식/정보/지혜 공유/강의 인터넷 사이트'는 SeniorNet이 독점하거나 이 사이트가 거대 공룡이 되고 그 밑에 영세한 여러 커뮤니티가 있는 식으로 될 것이라 하더라도 한국에까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지는 않게 된다. 쓰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의 차이가 있어서 사람들(수요자)이 배우고 싶어하는 내용도 다르다. 다른 국가에 따라 법/제도도 다르게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사이트를 그대로 모방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이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차이가 생기면서 경쟁이 없어지는 예로 들었을 뿐이다.)


  다른 경쟁 상품과의 차이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브랜드는 그 대표적인 경우라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될 것이다. 그중 사회가 워낙 다원화되고 먹고 살기 편해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점차 존중하기 시작하자, 소수 취향의 일부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충성과 지지를 받는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이러한 상품들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의 다수와 취향이 다른 것은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취향에 영향 받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다면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동네로 자리를 옮기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유랑할 능력이 생겼다. 이렇게 빠른 순간에 다른 곳으로 폴짝 뛰어가는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경쟁을 피하는 방법 중 또다른 하나다.


  예전에 내가 주목했던 상품은 인터넷에 판매하기로 공지글을 올리자마자 매우 빠른 속도로 매진된 요조의 '주성치 희극지왕 티셔츠' 와 후속편 '식신 티셔츠'다. (오늘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놀러갔는데 다 매진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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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요조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식솬~ 티셔츠>


  사실 별거 없다. 품질 좋은 단체티 하나 사서 손수 인쇄하고 예쁘게 포장해서 present by yozoh 쓰고 택배로 보내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엄청난 상품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오직 '요조'만이 소유할 수 있는 독점적 가치다. 그 예를 들어보자.

- 홍대 4대 얼짱 중 하나인 요조가 직접 인쇄했다는 사실
- 한정판
- 모던락, 인디씬 등의 컬쳐 코드
- 요조 라는 가수의 이미지

  이런 것들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뎁이 4차원 이미지를 담아 정성껏 만든 은방울(예시가 참 편파적이긴 하죠 크크)을 한 개에 만원씩 해서 이쁜 포장과 손으로 직접 쓴 편지까지 같이 동봉하여 소포로 보내준다면 그 은방울은 기존의 크리스마스 용품점이나 대형 기념품 샵 같은 곳에서 파는 비슷한 용도, 비슷한 기능성을 가진 은방울보다 훨씬 잘 팔릴 것이다. 그렇다고 뎁의 은방울이 기존의 은방울 시장을 뒤엎어 버리지는 않는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뿐 기존의 수요를 없애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기존의 다른 경쟁 상품과의 차별화의 정도를 높여나가면 높여나갈 수록 경쟁은 점점 사라지고 수입은 점점 높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완전히 소수 취향인 물건은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나가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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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 실제 경매장면 (출처: blog.naver.com/atp106m)>


  아무리 무한경쟁시대라도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내면 그 경쟁의 힘겨움에서 너무나도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경쟁시대라고 무조건 '나는 경쟁을 해야지. 암' 해서야 되겠는가. 남들 다 하는 토익, 토플점수 만점을 향해 계속 공부하는 식의 괴로운 경쟁은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대에서는 남들과 달라야 살 수 있는 것 같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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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jieun_no1 Paulist 2008.08.02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시는 바를.. 블루오션의 창조.. 라고 봐도 괜찮을듯 :)

    요즘 대학생들과는 조금 다르신거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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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모습


Salvador Dalí. (Spanish, 1904-1989).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Oil on canvas, 9 1/2 x 13" (24.1 x 33 cm). Given anonymously. © 2008 Salvador Dalí, Gala-Salvador Dalí Foundatio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출처: MoMA)



  공부를 하다가 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축 늘어지고 호흡이 불편해지면서 두 눈이 사르르 감길 때 나는 언제나 이를 나의 컨디션 탓으로 돌렸다. 전날 몇일 간의 계속된 피로가 쌓였고 운동을 게을리 해서, 혹은 밥을 잘 못 먹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행적이나 과정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는 못할망정 결과로 나타난 컨디션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만했다.

  이는 운명에 순응하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 자기가 평소에 피로가 쌓일 것 같으면 적극적인 요령과 처방을 통해 건강한 내일을 위해 피로를 풀었어야 했다. 혹은 지금 내가 조금 졸리거나 의자에 앉았을 때 자세 유지가 안 될 때 그러한 컨디션을 그냥 받아들이고 평소와 같이 기분 좋게 행동할 수 있어야 했다.

  자신에게 프로페셔널의 자세를 보여주는 사람은 자기가 의도하고자 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컨디션을 따지지 않는다. 컨디션 운운하는 사람은 분명 자아가 불안을 느꼈을 때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기의 잘못을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에게 돌려버리는 사람이다. 물론 모든 방어기제는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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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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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로] 새내기들이여, 꾸며라!

 자신 있게 반이나 과 선배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08학번 새내기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요즘 새내기들은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 라며 속으로 흐뭇해한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부각되고 대학생들도 어른 못지않게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드나드는 시대가 왔기 때문일까. 80년대의 풋풋한 하얀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는 옛말이고, 이제는 너도 나도 꾸며야 사람들의 눈에 띄고 그래야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시대이다. 나도 멋지게 단장한 후배들을 더 반갑게 맞아준다. 지금의 대학은 긴장감 없이 편안한 동네 잔칫집이 아닌 초긴장 상태의 생중계 토크쇼 장(場)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에도 긴장하고 꾸미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흐트러지더라도 편안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촌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연대생들은 다른 대학생들보다 외모를 가꾸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자신을 꾸미는 주된 통로는 소비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 약속, 홍대의 라이브 공연장과 클럽, 열심히 돈을 모아 떠나는 해외여행, 이러한 모든 행위는 돈을 필요로 한다. 물론 처음부터 멋지게 꾸밀 줄 아는 새내기들도 많겠지만, 새내기의 들뜬 마음으로 소년들은 평소에 안 가보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소녀들은 미숙한 손놀림으로 파우더를 두드린다.


 하지만 소비만을 중심으로 겉으로 꾸미기에만 열중하다 보면 사람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는다. 소비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누구나 다 한번쯤은 해 본 것들이 되며, 결국 너와 나는 빛을 잃고 똑같아진다. 자신을 꾸미기 위해 애써 번 돈을 희생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꾸며 놓았기에 결국 꾸며도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참 좋고 나도 그런 사람을 매우 반기지만, 외모만 꾸며서는 한계에 부딪친다.


 난 아직 부족한 선배이지만 후배들에게 소비로 대표되는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일들'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보는 경험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당장 여기서 자신이 온 힘을 쏟을 수 있을 만한 하나의 단체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애써 번 돈을 순식간에 써버리지 않아도, 윗사람들의 연줄을 타지 않아도 자신만의 창조로 자신을 빛내고 꾸미기를 바란다. 음악 동아리든 연구 단체이든 학생회이든 무엇이든 괜찮다. 수동적인 소비 활동에서 탈피하여 자신을 세상 앞에 내보일 수 있는 기회가 그곳에 무한하게 열려 있다. 고3 티를 벗고 예뻐지고 잘생겨진 당신은 이제 한 차원 높은 '꾸미기'를 시도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 만든 아름다움은 남들과 다른 당신만의 매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촌 번화가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홀로 외로운 군중이 될 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나와 그들의 겉모습을 비교해볼 때가 있다. 통학을 해서인지 혼자 번화가를 걷고 지하철을 타면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도 나는 얼마나 아름다워지기 위해 나를 꾸몄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

 /이동욱(정치외교․07)

2008년 3월 3일
연세춘추 제1581호
'백양로' 칼럼에 싣다
링크

개강호에 글을 싣게 되다니, 나에게는 큰 경험이고 영광이다.
아울러 내 블로그를 찾아와준 연세춘추 05 분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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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afflemaker.tistory.com 마키아또 2013.10.09 2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 잘렸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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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를 자연스럽게 디자인하기 위한 갖가지 고민이 나를 감싸돌고 있다. 사람이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은 가식이 없이 진실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말하고 싶을 때에 말하고, 일하고 싶을 때에 일하며 놀고 싶을 때에 놀고, 관계를 증진시키고 싶을 때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음가짐을 사람들은 반드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아직 내가 하는 말에 대해 완벽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자연스러움이라는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면 되는 것 같다.


"시작은 급작스러우나, 그 이후는 모두 점진적이다."

모든 사건의 시작은 우연히 갑자기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미미한 상태로 일어나는데 비해,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은 절대 급작스럽지 않고 천천히 진행된다. 시작은 급작스러우며 또한 급작스러워야만 한다. 용기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그 일은 시작하지 않는다. 시작 이후의 모든 과정이 급작스러우면 일을 망치는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앞서나가는 욕망이다. 사람들은 프로젝트, 대학의 첫 수업 등과 같이 거시적인 일을 시작할 때에는 매우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러한 일들과 지금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직업, 성공, 부, 명예, 지식, 물질 등의 항목과 전혀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서 오직 감정과 사람 그 자체와만 관련되어 있는 사건을 말한다. 사실 이러한 사건들이 인생에서 더욱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위에서 말한 원칙을 지키지 못한 두 가지의 분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성과의 만남이었다. 우선 나는 사람들과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모여 들어가 앉은 다음 말을 먼저 시작하는 것을 매우 두렵게 생각했고 또 매우 못 했다. 원래 화제는 급작스럽게 꺼내는 것이고 따라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꺼낸 화제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면, 사람들의 관심 없음을 눈치채고 난 후에 재빨리 다른 화제로 '급작스럽게'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경계하고 말을 급작스럽게 시작하게 해주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리고 한 번 말을 꺼내기 시작한 후에는 그 이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마치 영상이 Crossfade 되듯 옮겨간다.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위적으로 급작스럽게 깨려는 습관도 대화의 단절을 부른다. 난 대화의 시작과 진행 이 두 가지 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부했다. 물론 지금은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잘 안다. 이성과의 만남은 만남의 대부분이 대화라는 점에서 내가 대화에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과 같은 실패의 양상을 띠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시작에서도 물론 자연스러움이 필요하지만, 정말로 자연스러움이 중요한 부분은 시작 이후부터다. 한번 흐름을 타면 흐름을 끊지 말고 흐름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의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 흐름이 끊어지면 급작스럽고 미미한 흐름의 초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미한 상태로 되돌아가면 거대한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분위기를 한껏 잡아놓고 그녀에게 고백을 하려 하는데 옛 여자친구가 갑자기 등장하여 훼방을 놓는다면 그 다음의 고백이 성공하기까지는 한참이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술자리의 대화에서도 각자 조금 풀어지고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운 상태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과거사나 서로에게 갖는 불만사항 등의 이야기는 자리가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급작스런 충격으로 술자리가 파하면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의 모습은 평소의 냉철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200년 묵은 나무가 갑자기 싹둑 잘라지면 1년만에 다시 그 나무가 원래 모습을 회복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자연의 모습이 사람 사는 모습을 닮았다는 사실은 신기하며, 그 사실은 나로 하여금 자연을 돌아보면서 잘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나는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내가 대학에 와서 손에 집었던 일들 중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일들은 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이 창대했다. 재즈동아리의 정기공연도 그렇다. 우연히 백양로의 공연을 보고 마음이 끌려 들어간 동아리에서 나는 처음에는 무대에 설 수 없는 준회원이었다. 빨리 공연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동아리에 와서 공연을 하기 전에 사람들과 친해지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그 후 내가 정회원으로 동아리에 자리잡은 후부터는 점점 서로가 아이디어를 내놓고 서로 일을 도맡아 함으로써 나중에는 900명이 들어가는 대형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내 동아리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은 작년 3월 초 나의 급작스러운 동아리 가입 신청서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친구들이다. 꽃밭이 미미한 꽃씨 여러 개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사람 사는 모습도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과 최대한 닮아 있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낳고, 물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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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사람들은 오직 지금에만 입각해서 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예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괴롭힘을 당했다. 주위에 친구도 없었고, 내가 마음 붙일 동아리나 클럽도 없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교육이나 훈계를 통해 시킨 일들만 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내 능력껏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물건들이 있고 나는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해주는지 잘 안다. 나는 더이상 강요받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이 사람의 대답은 당연 '그렇습니다'일 것이다. 과거에 나쁜 기억이 쌓여 있더라도, 과거의 앙금이 때로 지금의 나에게 찾아와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 일이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 추구라는 생각에 따르자면, 우리는 언제나 현재 자신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동안의 세월을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평균적으로 얼만큼 행복했는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얼마만큼 행복한가를 돌아보라.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지금이다. 지금 내가 조금 더 나은 행복을 위해 노력할 때, 순간의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서 내 인생 전체의 행복이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기면서 매일 밤 자신이 추가적인 행복을 추구했는가 아니면 불행을 겪었는가를 되짚어보라. 오늘은 기쁜 날, 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날의 개별적인 행복은 양의 값일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 후 내가 과거를 기억하는 범위 안의 모든 나날들의 행복에 해당하는 값을 나열해보라. 개별 값, 평균 값, 그리고 누적 값으로 나열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자기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거나, 하기 싫었던 일을 하지 않으면 한계 행복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상당하다.


  오늘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오늘의 개별적인 행복을 먼저 중요시하는지, 지금까지의 평균적인 행복을 먼저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누적된 행복을 먼저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나의 그날의 기분이 결정된다. 과거의 기억을 계속 상기해 보며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모두 되짚어보는 사람은 평균적인 행복이나 누적된 행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려는 사람은 개별적인 행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평균적인 혹은 누적된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강렬한 감정을 안겨준다. 즉 똑같이 '난 행복해'라고 말한 사람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기쁜 일 덕에 행복한 사람이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한 사람보다 더 강한 감정을 갖는다. 회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분명하다.


  행복하다고 내 마음이 판단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그 행복한 감정이 나를 전율시킬 정도로 와닿지 않는다면 마음 속의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당장 행복해지는 일들을 찾아야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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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8.


  누구나 무미건조한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 일생동안 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행복을 주는 것이 나 스스로 세우는 목표 중 가장 지고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불행을 피하고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욕망의 성취와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의 나눔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언제나 행복한 삶의 궤도에 진입하기 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행복을 위해 미리부터 고정된 옷과 음식과 집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참 어리석다. 기존에 자신이 경험하고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삶의 영역 속에만 갇혀 있든, 새로운 것을 향한 떨림으로 행복의 달콤함을 어렵게 조금씩 맛보아가는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나아가든 그 사람이 당할지도 모르는 불행은 비슷하다. 하지만 감동과 기쁨으로 압축될 수 있는 그 느낌의 정도는 두 영역 사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인생에는 떨림이 있어야 한다. 이 떨림은 나에게 덮쳐올 가능성이 농후한 불행을 향한 무성의한 질주 속의 과정이 아니다. 이는 내가 마음을 먹으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기쁨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 속의 과정이다. 안전과 위험 회피를 강하게 전제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자유에 달렸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스릴 그리고 그에 따라가는 희열은 위험을 당할 가능성이 없는 때에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인생 속에 떨림의 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다.


  떨림을 가장 강하게 얻을 수 있는 순간은 역시나 '새로운' 혹은 '첫 번째'라는 말로 시작하는 순간일 것이다. 새로 시작하는 캠퍼스에서의 첫 수업, 나를 알아간 후 내놓은 나의 새로운 스타일, 더 높은 점수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시험, 늦은 밤 가로등 아래에서의 첫 번째 키스, 사람들 앞에서의 첫 번째 공연,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맞아들이는 순간 등 모두가 나에게 기분 좋은 떨림을 선사해 준다. 새롭거나 처음 시도하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고 주변의 환경도 낯설다. 내가 그 일 혹은 그 환경에 몸을 담기 전에 미리 그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된 모습이 아닌 현실을 직시한 후에는 자신이 처한 그 순간에 대해 좋다, 혹은 나쁘다고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오직 그 순간은 나에게 떨림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순간을 추억하며 감동과 기쁨에 휩싸인다.


  2008년 새해에는 수많은 떨림 속에서 살아야겠다. 두근거리는 긴장감, 황홀한 순간,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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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골방에서 10년간 썩은 후 보여준 것은 사회와의 부조화와 갈등, 주위 사람들의 멸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등이었다. 사회와 단절된 골방의 인간은 그 정도의 인간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나만 보고 내 방식대로 생각하니까 점점 더 사회 속에서 초라해지는 것이다. 다만 오대수는 그나마 TV에서 나오는 많은 광고나 스포츠 중계방송, 연예 오락 프로그램, 교양 시사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사회와 소통했기 때문에 스스로 계획을 세워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인다.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를 찾아서 움직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 교육 수준, 거주지 등은 모두 다르고 옷차림도 모두 다르다. 지하철을 타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젊은 남자는 꽃다발을 들고 여자친구에게 어떤 멋진 말을 할까 고민할 것이고, 어떤 젊은 여자는 전공서적과 논문 복사본을 한아름 팔에 끼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서 성공할까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내가 저 사람들만큼 가치 있게 살고 있을까, 나는 저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는 관심이 없으니 저 사람에게 관심을 꺼도 되는가,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오늘 하루 가만히 앉아 졸고만 있는 하찮은 인간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 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면 할수록 나의 의지와 자신감은 더욱 선명해지고, 내가 오늘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더욱 샘솟게 된다는 것이다. 졸리던 눈도 다시 번쩍 뜨인다.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사회 속에서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생각하면 외면적으로도 더욱 나의 모습을 가꾸게 되어 더욱 멋지게 변한다.
 
  사람은 언제나 주위의 환경에 서서히 적응한다. 적응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놓여 있을 때 내면과 외면 모두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변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보다는 내가 변하고 싶은 모습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를 끊임없이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항상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나는 성장하지만,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가 나 자신의 고양 이전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항상 마음 속에 동경하는 인물을 품고, TV나 책으로 멋진 연예인들과 위대한 기업가와 정치가와 과학자의 모습을 접하고, 내가 가고 싶어하는 도서관과 카페와 공연장을 도시 속에서 여행하듯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러한 주위 환경이 발산하는 문화에 자신을 내맡기며 서서히 성장한다.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과 말로 혹은 무언으로 대화하고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얻으려는 노력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가치를 추구하든 이 작업은 필수 요건인 듯하다. 골방 속의 오대수를 벗어나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열망을 가진 젊은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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