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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나는 언제나 따분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 사람들이 웃을 수 있을까, 진지함에서 벗어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모든 친구들이 지금 열중하고 있는 어떤 즐거운 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와 같은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기는 하다만 결국 나의 입은 진지한 말만 하고 곧 입을 다문다. 마치 국어나 영어나 제2외국어의 교과서에 나오는 대화만에 국한하여 말하는 듯하다. 즉 그들의 생활 자체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의 대화만을 하는 듯하다. 친구들에게 무언가 지식을 설명하고,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나 오늘 ..했다' 식으로만 말하는 수준의 대화만이 오간다. 이런 대화로는 친구들과 '생활의 영역'을 공유할 수가 없다.
 
 나와 친구들이 '생활의 영역'에 같이 포함되어야 긍정적인 대화가 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어젯밤의 자습시간 같이 한 방에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한 아이들 예닐곱명은 다음 날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이 스타크래프트라는 '생활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의 잡담을 통해 친구가 곁에 있음을 알게 되고, 당연히 그 잡담은 모두를 웃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다.
 
 친구들의 생활을 가지고 평소에 친구들과 잡담을 주고받는 일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자와 같다. 얼마나 작은 일상의 일부이며 또한 그래서 때로는 그 가치가 무시되기도 하는가. 잡담은 매우 긍정적인 대화의 종류다. 하지만 잡담이 인간관계를 더 굳게 만들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전제는 잡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거 혹은 현재에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함께 겪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생활의 영역'에 같이 포함되어 있거나 과거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교과서적인 단순한 정보 전달 형식의 대화, 아무런 인간관계의 발전의 에너지를 갖지 못하는 대화는 친구들과 공유한 '생활의 영역' 이 좁기 때문이다. 나를 다시 돌이켜 보았을 때, 평소에 나는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친구들과 많이 만나고 같이 생활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공통적으로 몰두한 일(즐거움을 주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고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친구들과 모여 서로가 모두 웃을 수 있는 잡담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이유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는 나의 소심한 성격이 남겨놓은 잔해가 깔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생활의 영역'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응, 어제 너 .. .했다며. 재밌었어?' 등과 같은 이야기만 튀어나올 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청자가 방관자인 화자에게 취할 수 있는 반응은 다분히 교과서적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교과서적인 대화가 오가면 그 사람들은 절대로 인간관계를 더 공고히 할 수가 없다. 서로의 생활을 자극하는 즐거운 대화를 해야 한다.
 
 단 주의할 점은 이 대화가 그냥 잡담을 하는 수준에 머무른 대화이기 때문에 서로를 진지한 상태에 빠뜨려 울게 하거나 혹은 사랑스럽고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고백한다거나, 시험을 못 본 친구에게 진지하게 위로를 건넨다던가, 당연히 칭찬받을 일에 대해 칭찬하고 축하할 만한 일에 대해 축하해 주는 그런 대화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긍정적인 '잡담' 이 아니다. 그것들 나름대로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고, 그래서 인간관계를 더 굳혀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남용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이 그런 진지한 말밖에 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이 진지한 말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확고한 인간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런 진지한 말도 교과서적인 말에 포함된다. 소심한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진지한 말로 다른 사람들을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은데, 그것은 경계해야 할 제일의 대상이다. 소심한 사람이 일상에서부터 많은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서는 진지해지는 악습을 '깨부수어야 한다'.
 
 진지해야 할 때에는 진지하고, 평소에는 풍부한 유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성공한다. 그 사람은 때로 입에 종일 욕을 달고 다닐 수도 있고, 평소 행실이 그 공동체에서 정한 규칙이나 규정을 어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무적인 면에서의 성공에서 역효과를 불러올지 몰라도 '생활 속에서의 성공'에서는 성공을 지지하는 촉매가 된다. 내 주위에도 이런 모습을 가진 친구들이 꽤 많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에게서 '일상 생활속의 대화에서 주위 친구들을 강력하게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나를 돌이켜 보았을 때, 나는 평소에 소심했기 때문에 나의 모든 삶의 모습 중에서 다분히 교과서적이고, 평이하고, 진지하고, 남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선사해 주는 페르소나만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평소에 교과서적으로 살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나의 약점이 있으면 과감히 드러내되 그것을 유머러스한 화술을 통해 즐거운 웃음으로 환원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나는 나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그것이 한순간의 조롱의 대상이 될 뿐 지속적인 웃음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롱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웃음은 내 딴에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제 나의 문제점을 찾았다. 교과서적으로, 모범적으로만 살려 노력했던 나의 자기 기만적인 페르소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순간이다. 내가 왜 쉬는 시간이나 혹은 어떤 이벤트가 시작하기 전의 기다리는 시간에 대여섯명의 친구들 사이에 끼어 잡담을 주고받지 못하는지 알았다. 이것은 단순히 소심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뇌를 감싸고 있는 교과서적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부족한 대화 기술과 나의 약점을 숨기려는 비겁한 페르소나가 결합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으니 지금부터 나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고 친구들과 함께 어떤 공동체에서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그리고 나아가서 적당히 풀어진 마음을 통해 유머 감각을 얻어야겠다.
 
  소심한 성격을 다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PS : 간지는 진지와 전혀 다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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