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너머

저자
신현준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3-12-16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케이팝, 글로벌 구성물의 지리적 순환전 세계 소년 소녀들이 케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YKRF리더십포럼과 관련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책을 발견하여 이렇게 글을 남긴다.


국제대중음악학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tudy of Popular Music 와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학회에 우연히 참석한 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국제학계에 휘말려 들어간 신현준 박사는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문화 파트 특별 강연자로 반드시 초청하고 싶다. 초청은 후배들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이 분야의 직장인이 되어 아주 약간의 조언이나 기업의 사회공헌/대외관계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더욱 좋겠다.


영미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우연찮게 국제적 대중음악 연구자들, 특히 아시아권의 연구자들과 접속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운 좋게도 2003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를 '직장'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아시아 대중음악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대상으로 한 영어 논문은 열 편 정도 축적되었고, 각각 두 편씩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내가 감명받은 사례는 1990년대 말의 우전소프트였다.


19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을 중국에 수출한 최대 공로자는 우전(宇田)소프트였는데, 이 회사는 국제 음악산업계는 고사하고 한국 음악산업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대표 김윤호는 회사를 퇴직한 뒤 사재를 털어 혈혈단신 베이징으로 가서 한국 대중음악을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방송국 경영을 시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1998년 H.O.T.의 중국판 반을 시작으로 시디를 배급하고 공연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중국에서 한류 폭발의 주역이 되었다. 우전소프트는 수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에 배급되는 단일창구로 기능했다.


아울러 유명한 SM


이수만은 2005년 '아시아 네트워킹' 이라는 그의 프로젝트를 피력한 바 있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베세토' 통합 스타와 통합 아시아의 문화산업"에 관한 그의 구상은 이후 SM의 제품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2005년 데뷔한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스카우트되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슈퍼주니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중국에 역수출되어 슈퍼주니어 엠('엠'M이란 중국어 표준어인 '만다린'을 뜻한다)을 이끌었다. 슈퍼주니어 엠은 슈퍼주니어의 기존 멤버 일부와 현지에서 추가로 스카우트한 두 명의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유닛이다. 2009년 데뷔한 5인조 걸그룹 에프엑스의 경우 중국인 한 명, 타이완계 미국인 한 명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댄스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팍스 뮤지카 '87 서울


조용필은 일본, 한국, 홍콩의 톱스타 3인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음악 페스티벌 '팍스 뮤지카 '87 서울' 에서 록 스타일의 곡 '아시아의 불꽃' 을 연주했다. "아시아의 젊은이여" 라고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는 "사랑도 하나 마음도 하나/ 우리의 숨결도 하나/ 여기 모여서 같이 가리라/ 우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회고해본다면 1980년대까지는 이런 유형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것 같다. 실제로 '팍스 뮤지카 '87 서울'의 오프닝은 "아시아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음악을 통해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했든 아니든,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라면 평화와 화합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대중음악이 아무리 탈정치적이고 탈역사적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정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은 곤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20대 중반일 때 똑같은 분위기로 이런 대축제를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는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서로 훨씬 가까워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이라도 '아시아는 하나'라고 진지하게 상상하는 젊은 아시아인은 거의 없는 것같다. 최소한 이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창작하고 연주하려는 아시아의 스타는 더더욱 없는 것 같고, 팬들도 저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21세기의 한류/케이팝 나아가 케이팝이 매개하는 아시안 팝은 20세기 아시아 대중문화에 남아 있던 정치와 역사를 삭제하고 있고, 식민주의, 냉전, 국가주의 등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우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송페스티벌로 점프해 왔다. 


문화산업은 이제는 국가가 후원하는 '진흥'의 대상이 되었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문화산업의 진흥을 '응원'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 되어버렸다. 중국만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키워드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문화융성, 일본의 쿨 재팬과 더불어 삼국의 국가 지원 형식의 문화산업 발전이 아시아 내에서 균형 있게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전반기는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을 이용해 한 명의 스타를 콘텐츠로 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개발되면서 몇 개의 기록적인 성공 사례가 탄생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2010년대는 보다 활발해진 오프라인 인적 이동과 함께 온라인 공동체 CPND를 통해 도시와 지방을 아우르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집단이 '멀티 소스 원 유즈', 여기서 원 유즈란 '다른 나라지만 비슷한 취향끼리 모이기' 가 되지 않을까.


Mayday의 킨텍스 공연을 보고 나는 CNBLUE의 도쿄돔 공연을 떠올렸다.



Posted by 마키아또
,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8-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학을 전...
가격비교


서울은 파리 감성, 도쿄는 런던 감성 이라는 게 나의 일종의 개략적인 일반화였는데,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나의 생각에 동의한 문단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이 파리에 비해 뒤쳐지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서울에도 파리 크로아상 같은 프랑스 빵집이 많다. 그런 곳에 가보면 프랑스 거리를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에는 전통시장의 노점상이 꽃이나 빵을 팔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면서 로맨틱한 프랑스에서나 있을 법한 정겨운 장소를 연상시킨다. 한국인들은 이런 그림을 보며 현대인의 생활에서 찾기 힘든 친밀함과 자연스러움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질 좋은 먹을거리, 전통 음식, 수공예품을 파는 야외 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빵집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장이 한국에도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식, 그중에서도 유럽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의 전통시장을 그리 낭만적인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한국의 전통시장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시장 중에서는 유지보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통문화를 깨끗하게 보여주지 않고 산업화 시대의 '현대식' 장식만 달아놓았다. 그리고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시장 안의 골목길은 제대로 꾸며지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시장은 더 많은 사람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을 안고 있다. 시장 안 골목을 잘 가꾸거나 수제 나무 간판을 달고 아스팔트보다는 돌을 이용해 골목길을 만들며 진열 방식을 개선하는 등 예술적 요소에 신경을 쓴다면 한국의 전통시장은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일러한 약간의 변화가 한국의 도시 환경에 혁명을 가져다줄 수 있다. 커피숍이나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랑스 이미지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혁명은 사고방식만 바꾸면 일으킬 수 있다. 건물을 부술 필요가 없다. 건물은 그대로 두고 생각만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공간을                                                                     이런 느낌으로


          


서울의 246개 전통시장이 모두 인사동처럼 바뀐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온누리상품권은 얼마나 백화점상품권처럼 우아하게 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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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좋아하는 한국, 그래서 닮은 유럽의 나라라 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농촌 마을에 위치한 공장들은 전통과 역사로 빛나는 프랑스의 포도주 양조장, 즉 와이너리를 본떠 재구성돼야 한다. 그러한 농촌의 생산품들은 보르도의 포도주나 존작의 코냑이 그랬던 것처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판매될 수 있다. 지역 생산품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상품을 더욱 매력적이며 가치 있게 부각함으로써 한국 농촌 지역의 가치는 극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지역 생산품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효과적으로 판매되면서 우리는 세계 사람들이 한국 농촌을 방문해 이런 생산품들을 쇼핑하며 즐기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같이 먼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그런 공장은 전통적인 외관을 지녀야 하고 어떻게 500년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강조점을 둬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연속성은 한국 농촌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단한 것을 건설했다는 것만 강조할 뿐 1,00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외면해온 것이다. 이제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고자 한다면 오랜 전통을 이어온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한국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탈리아가 농촌의 멋진 생활을 선전하면서 거둔 성공을 고려해보면 아시아에서도 그에 뒤지지 않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충남의 한 전원주택이 서울에 사는 사람은 물론 아시아나 세계 전체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생활로 여겨지는 시대가 오리라는 벅찬 상상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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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아메리카!!! (미국인이 이 말을 하고 있다)


국가 홍보 고객은 70억 인류


한국을 소개하는 문건이나 자료를 보면 홍보 대상자가 극히 제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미국에서 보면 각종 홍보 자료나 행사가 백인 중심으로 돼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자료를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 보면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홍보 자료를 만들 때, 특히 영어로 된 홍보 자료를 만들 때는 특정 인종에 속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게끔 극도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따 꼼프리???


그리고 단지 미국인만을 상대로 제작된 홍보 자료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 홍보 자료는 미국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이나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아랍 사람, 아프리카 사람도 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국가 차원의 홍보를 하거나 국가를 대표할 때 이런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 정도를 떠올리고 나머지 나라들은 인식에서 제외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나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청계천 한국관광공사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주무관급 외국인들이 직원으로 고용되어 regional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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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거 하고 싶다. 4학년 2학기라도. 아는 곳은 인사동 뿐. 사람도 적게 뽑아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방문자가 찾아갈 수 있는 한국 문화 홍보 센터를 상설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홍보 센터는 유명한 관광지 곳곳에 설치되며 정부가 인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자원봉사자들이 항시 대기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학습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일정한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로 외국어가 가능하고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업은 소규모의 예산만 있으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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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교류의 중요한 과제, '한국은 어떻게 중국과 일본과 다른지를 한중일 외부에 알리기'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가려서 존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놀라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저명한 비평서인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독립적인 문명으로 분류하면서도 한국은 중국과 같은 문명으로 묶었다. 이는 한국 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계 지식인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전개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각국의 학자와 분야별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펼쳐야 한다. 이들을 상대로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일본과 유사한 또 다른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점을 꾸준하게 홍보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고유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들이 쓰는 책이나 청소년 교과서에서 한국에 대한 수식어가 달라질 것이다. 또 그들이 작성하는 칼럼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용어도 변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일반 국민으로 파급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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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자 에즈라 보겔 교수의 '일등 국가 일본' 

 미국인들은 갑작스럽게 일본에 대해 알게 됐고 그동안 값싼 장난감이나 만들던 나라로 치부했던 일본의 성장에 대해 재평가하게 됐다.

읽어보자 제임스 클라벨의 '쇼군'

 '쇼군'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선 철학과 사무라이 법도를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마치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신세계처럼 일본은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왔다. 자동차나 소형 전자제품으로 미국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던 일본에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과거를 주제로 삼았으며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국화와 칼'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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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들에게 좀 더 엄해지자


외국인 대상의 한국어 교육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점은 한국어 취득 수준이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고급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까지 공부하지 못한다. 복잡한 표현이나 멋진 에세이를 쓰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는 한국어 교육 지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교재가 부실한 탓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견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것을 기대하지 않다. 외국인이 언어상으로 실수해도 좀처럼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외국인 대학교수나 학생들의 한국어 작문 실력이 형편없어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이런 봐주기는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외국인들은 한국에 있는 동안 고급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살릴 수 없다. 미래의 한국 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소홀히 가르치는 일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도 상당한 손해다.


한국 교수들과 한국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를 말하거나 한글을 쓸 때 한국인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이에 호응할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봐주기가 학습에 걸림돌이 된다. 만약 한국인들이 내가 쓰는 글이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솔직하게 지적해주었다면 나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한국어 구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쓰면서 실수를 해도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한국어 구사와 작문을 요구하면 그 실력이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도 괜찮다는 선입견이 있는 한 외국어의 한국어 실력 향상은 있을 수 없다. 친절과 관대함이 결과적으로는 불친절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쇼코는 돌아갔지만 쟌 누나랑 마리옹 각오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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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적 공동체 의식 '병세의식倂世意識' (공교롭게도 '병세의식'이다.)


(중략)..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간에 심각한 수준의 역사적 앙금이 존재하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앙금으로 말하면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통합에 성공했다. 역사적 앙금 그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지식인들의 교류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지식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내부 정책 기조도 결정되고 외교 정책도 가닥을 잡는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의 상호 교류는 세 나라 사이에 어떤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한적이다. 그나마 진행되는 교류의 질도 매우 낮아 비관적인 상황이다. (YKRF리더십포럼은 질 높은 교류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일단 臥龍이 되어야지)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식인 교류는 200년 전보다도 훨씬 못하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역사적 퇴행을 보인다. 200년 전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형성하는 지적 공동체 인식, 즉 병세의식倂世意識도 존재했다.


당시 한/중/일 지식인 사이에는 지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한문을 이용해 편지와 필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영어 물론 지리적인 제약으로 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인들 사이의 평화적인 교류는 18세기를 갈등과 간섭이 크지 않은 평화로운 시대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의 영조-정조 시대에 이러한 문화적/지적 교류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러한 교류 덕분에 동북아시아 평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보편적으로 보급되었다. 일본의 타카하시 히로키高橋博巳의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東アジアの文芸共和国'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병세의식을 연구한 한양대 정민 교수의 논문에서 관찰되는 18세기 조선의 국제적 지식 교류의 모습을 폐쇄적인 양반의 이미지를 뛰어넘는다. 이규상(1727-1799)은 동시대 문인, 학자, 예술가의 전기를 엮어 '병세재언록'을 펴냈다. 윤광심(1751-1817)은 당시 활동 중이던 동시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시문을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유득공(1748-1807)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동시대 외국인의 시를 모아 '병세집'을 엮었다. 대부분 문집으로 간행되기 이전의 원고를 취합한 것이다.


'병세재언록'은 신분의 제약에서 자유로웠고 유득공의 '병세집' 역시 동시대성을 코드로 신분과 국경의 제약을 넘었다. 유득공의 '병세집'은 국경의 경계를 훌쩍 넘었다.


근엄한 유학자와 시정의 재주꾼을 나란히 배치한다거나, 조선 문인의 글 사이에 중국인과 일본인의 시문을 함께 두는 수평적 사고의 확장은 전 시기까지만 해도 용인되기 어려웠다. 멀리 안남(현재의 베트남 지역)과 유구(현재의 대만 지역으로 추정됨) 琉球면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인데.. 의 시인까지 포괄하는 동시대 선집을 기획한 것도 놀랍다. 의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홍대용은 한 차례의 연행에서 만난 중국 문사들과 평생에 걸쳐 서신을 왕래하면 교류를 지속했고 그 자취를 '회우록' 또는 '천애지기서'란 이름의 책에 남겼다. 이는 한/중 문사의 사적 교류에 불을 붙였다.


다음 시기 연암 그룹의 일원이었던 박제가의 제자 추사 김정희가 소동파를 매개로 하여 한/중 지식인 교류를 더 밀착시켜 나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 시기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조선 지식인들과 일본 문사와의 사적 교류도 흥미롭다. 이전과 달리 상대를 얕잡아 보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일본 지식인을 지식 교류의 장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기 병세의식은 내부에서는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는 수평적 확장이 이뤄졌음을 반영하고 외부로는 타자에 대한 변모된 인식과 대응을 보여준다. 병세의식의 성장은 단절 일로에 있던 동아시아가 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국수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폐쇄적 사유가 열린 사고로 전환되는 변화를 전제한다. 그 사이 수많은 지식/정보가 오갔고, 그것은 자국 학술 문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현대의 한/중/일 관계를 생각해보자. 독도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국의 학자들이 일본을 칭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식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일본을 공격 목표로 해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학술 포럼이 열리고 있지만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뤄지는 대화 없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던지고 헤어지는 형편이어서 생산적인 토론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 YKRF리더십포럼은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했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난 가려졌뜸..


18세기 한/중/일 지식인들의 교류와 병세의식 형성 과정을 돌아보면 한국 지식인들의 주도적 역할이 특히 눈에 띈다.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보다는 한국 지식인들이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 학자들이 통신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본을 자주 다녀온 것이 병세의식이 생기게 된 물리적 배경이다.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한 쪽이 3국 간 지적 교류를 주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훨씬 부드러울 것이다.


한국이 한/중/일 3국의 지적 교류 프로그램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한다면 그 여건은 매우 좋은 편이다. 초국적 사업에 의해 경제적 교류가 확장되었으며 금융 쪽으로는 통합의 경향이 분명하고 기술적인 교류도 크다. 다만 진정한 지적 교류만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적 교류는 정부가 먼저 시작하기 어렵다. 대학이 시작하기는 무지 쉽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저명한 교수나 지식인은 지역학적인 접근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심도 있는 대화와 교류를 나누지 않고 있다. 다른 국가의 한 분야에 대하여 전공하지 않은 이상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 중국의 장관이나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저명한 인사와 식사를 하고 대담을 나누는 경우는 있지만 이것이 지적인 발전을 이루는 교류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의지만 있으면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지적 교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변수는 한국 지식인들의 의도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한국 고위 관료, 교수, 기업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가 있다. 여기서는 분야별 한/중/일 모임도 자주 열린다. 서로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도 있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화, 무역, 지원, 사회 문제, 기회와 전망, 오해 등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는 행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단순히 보여주기용 행사도 열린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옛날보다 자주 모임을 갖지만 200년 전 필담을 나누면서 우주의 원리를 토론하던 지식인들처럼 함께 고민하는 장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과 일본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고 한평생 친구가 돼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기회가 YKRF리더십포럼 이라고 믿고 2년을 살아왔다.


진정한 교류는 예의를 차리는 인사치레와 형식적인 대담을 벗어나서 현대가 직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류는 굳이 물리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과거처럼 문서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동 없이도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는 18세기에 비하여 지리적인 제약과 시간적인 제약이 훨씬 줄어들었고 교류에 대한 어려움도 줄었다. 의지가 있는지 그 여부가 관건이 된다.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 18세기 병세사상은 역사가 남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한/중/일 세 나라의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훌륭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의한 교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 지식인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인의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캬.....



이 책을 보고 감동한 지 2주가 지난 뒤 TCS(삼국협력사무국) 웹사이트 공지사항에서 우연히 강의 공지를 봤다. 연사는 바로 이 책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연사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님을 섭외합시다!!

지혜로운 후배들의 적극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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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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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온, 그리고 그곳에서 일본인들과 가까이 지냈던 나로서 최근 설 명절 묻히려 해도 묻히지 않은 핫 이슈, 앙굴렘 국제만화제 위안부 만화 관련 양국의 의견 충돌에 대해 한마디를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에 우선 중재자로 나선(?) Le Nouvel Observateur(프랑스의 사회주의 성격 유명 시사 주간지)의 관련 기사를 읽어보도록 하자.


원문: http://tempsreel.nouvelobs.com/societe/20140130.OBS4493/angouleme-l-expo-qui-fache-le-japon.html


앙굴렘: 일본을 화나게 하는 전시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 노예 생활을 한 '위안부'들에 대한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가 일본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사진: 앙굴렘에서, 2014년 1월 30일 국제만화제 첫날에 있었던 위안부 관련 전시회.)

 앙굴렘의 만화제에 있는 통로들의 내막 안에서 일본과 한국의 새로운 외교적 위기가 펼쳐진다.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그것은 주제가 '위안부'에 집중해 있는 한국 작가들의 공동 작품 전시다. 이 위안부들은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강제로 일본군에게 연행된 여성들을 지칭한다. 한국 정부, 한 민간 협회 그리고 한 공공기관에 의해 시작된 '시들지 않는 꽃' 전시는 이 여성들이 겪어낸 치유할 수 없는 피해에 대해 한국이 관심을 갖게 만듦으로써 이 주제에 대해 한국의 시각을 국제 대중에게 전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주제가 몇 달 전부터 이미 알려진 상태였으나, 1월 29일 일본은 갑자기 활동을 재개했다. 주 프랑스 일본국 대사 스즈키 요이치는 "이 전시회가 개최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말하며 그 전시회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빗나간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했다. "저는 이 전시회가 특정 시각을 홍보하려는 앙굴렘 국제만화제의 이익의 일환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라고 그는 덧붙였다.


 긴장은 일간지 "라 샤렁뜨 리브르"가 전시회 개최에 대항하는 "여성주의 및 일본인 NGO"들이 포함된 12,000명 이상의 일본인들에 의해 서명된 탄원서를 받은 월요일부터 격화되었다. 이 일간지는 또한 한 여성회의 대표 야마모토 유미코씨가 만화제의 조직위 대표 프랑크 봉두씨에게 전달한 공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보도한다. 

 "우리는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안부는 20만명이 아니었으며, 일본의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동원되지도 강제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토대 없는 거짓말과 역사일 뿐입니다. (...) 한국 정부는 앙굴렘 국제만화제를 정치외교적 전투장 위에서 조작하고 있습니다."


 주 프랑스 일본국 대사도 마찬가지로 "본성이 매우 건설적이지 못한 의도"로 "이용"된 축제를 강조하며 "축제의 조직위원들과 앙굴렘 시에 대한 그들의 염려에 동참했고, 그들은 이러한 염려의 관점을 이해했다"고 진술했다.


혼란스러운 기억 작업


 달력의 일치일까? 외교적 사건은 일본의 특정 경우에서도 발생하였다. 일요일에 공영방송 NHK의 사장 모미이 가츠토는 공적으로 군대의 사창가 제도는 "전쟁 중인 모든 국가에 흔했다"고 공언함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과 프랑스에 사창가가 없었을 거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가? 유럽에는 어딜 가나 사창가가 있었다." 등등. 곧 일본 정부는 그와 거리를 두고 모미이 가츠토가 "개인적 자격으로 발언을 하였다"라고 확신하였다. 얼마 후, 공영방송 사장은 "극단적으로 부적절한" 의도에 대해 사죄의 뜻을 표해야만 했다. 그 발언은 난처한 결과를 낳았는데, 전날 55명의 마지막 한국 "위안부" 중 생존하던 한 명이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도록 이 "위안부"의 문제, 특히 한국(80~85%), 중국 그리고 필리핀 위안부에 대한 질문은 일본과 이웃 국가 특히 한국과의 관계에 짐을 지우고 있고 규칙적으로 외교적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모미이 가츠토 사장에 대해 한국 외교부 장관은 "우리는 중립적으로 남아야 했을 일본 공영방송의 사장이 역사적 사실을 어리석은 방식으로 왜곡한 것에 개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가장 주요한 지도자들의 역사 인식은 아베 정부 하에서 위험한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일본에서의 민족주의 폭발


 1993년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사죄를 표했다. "한편으로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것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 관련 배상금, 배상 물자 및 배상 청구권은 완전히 확정적으로 1965년 일본과 한국 사이의 협정 서명에 의해 종결되었다."라고 일본 외무대신은 앙굴렘 국제만화제 개최 이후의 공식 성명에서 강조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고 (2007년에 해산되었다.) 정부는 예전의 '위안부'들에게 호의적인 의료 지원과 사회보장 계획을 운영하기 위해 약 11억 22백만 엔의 금액을 기여했으며, 당시 외무대신의 깊은 사죄를 직접 전달하는 외무대신의 서한과 함께 배상금 배분 계획 또한 운영했다." 라고 그는 덧붙였다.


 불과 1년 전에 민족주의 폭발적인 흐름을 타고 몇 명의 고위 정치인들이 일본은 진심으로 과거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보여주었다. 지난 봄,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는 일본에 점령당한 국가들 내 여성들의 역할이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2012년 총리가 되기 전 아베 신조는 이 여성들이 매춘 행위에 강제되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만화 저작자들 그들에게만 발언권을 준다"


 한국 그리고 중국 정부에게 일본 정부의 태도는 군국주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12월 26일 아베 신조는 250만 명의 일본 전사자 그리고 특히 14명의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였다... 국제연합에서는 중국 대표가 전범들이 "아직도 영웅으로 간주되는 것"을 개탄했고, 그 와중에 한국 대표는 2007년 미국과 유럽 의회가 일본에게 역사적 및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이 "성노예"를 다룬 극악함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들을 채택한 사실을 상기하였다.


"우리는 그 질문을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 프랑스 일본대사는 강조한다.


 앙굴렘에서는 한국 여성부 장관의 국제만화제 참가자 중 최고위급으로서의 참석은 이 문제에 대한 양국의 대결을 잘 묘사한다. 두 불꽃 사이에 낀 프랑크 봉두 위원장은 "쉬드-우에스트" 일간지에 적었다. "우리는 만화 저작자들 그리고 작품을 전시하는 저작자들에게만 발언권을 준다."


르 누벨 옵세르바뙤르 사라 디팔라 기자


댓글은 전체적으로 길고 의견이 구체적이다. 2ch 외방 디씨 일베 같은 수준이 아니다. 나도 조금 더 진지하게 두 나라 사람들의 舌戰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드는 프랑스인들의 말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아 댓글 쓰면 좀 웃길 거다 생각했는데.. 너무 진지하다. 오히려 더 짧게 여러 명이 감정을 분출하면 냄비처럼 금방 사그라들텐데. 그리고 모든 프랑스인들은 일본의 입장에 반대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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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판단기준은 내 집에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가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쾌락적인 것들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나는 축재를 위해 살지는 않아요(...). 나는 삶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나는 순간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죠" 라고 덧붙인다.


 '그곳에는 광고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그는 집에서 '멋이 없는 더러운 바지'를 입지만, 일을 할 때에는, 아주 세심하고 우아하게 정장을 한다. 그는 파리의 빅토르 위고 거리에 있는 광고업자들을 위한 재단사인 반스Barnes의 상점에서 양복을 구입한다. "그곳에는 영국 산 직물, 영국 황태자가 입는 다소 호화스러운 체크 무늬 의류와 같이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위 공무원들이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니며, 은행가들도 이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죠(...). 은행에서는 단색의 셔츠가 필요합니다. 은행은 광고업계에 비해 그다지 과시적이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쓸 따름이죠(...). 직업상, 우리는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카스트로 쉽게 사람들을 분류해 냅니다. 그런 일은 한 카스트에 어울리는 제품을 제대로 부여하는 문제죠. 어떤 새로운 사람이 대행사에 들어올 때, 곧 우리는 한 눈에 그를 판단합니다(...). 커다란 깃이 있는 우단 의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고,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그 의상으로 상쇄하는 사람이죠." 잠시 동안, 대행사에 '아주 평범한 배경을 가진 경리부장'이 있다 갔다. "그가 왔을 때, 그는 너무 보기 안 좋은 옷차림을 했기 때문에 사무를 방해했죠(...). 마치 무슨 젊은 노동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가령, 어울리지 않게 깃이 작고, 아래가 꼭 끼며, 다소 짧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셔츠와 꼭 끼는 넥타이와 함께 양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보기 흉합니다."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는 남에게 상품을 권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여러 종류의 직업(판매, 마케팅, 광고, PR, 패션, 실내장식 등)과, 상징적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제도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러한 제도에는 최근에 상당히 확산된 다양한 의료보건, 사회부조관계의 직업(결혼생활상담원, 성문제 전문가, 식이요법 영양사, 취직 어드바이저, 육아전문의 보모 등)과 문화생산 및 촉진에 종사하는 직업(문화활동지도자, 학외활동교육자, 라디오 및 TV제작자와 사회자, 잡지기자 등)과 더불어 공예가나 간호사 같은 기존 직업도 포함된다.


소유하는 자본이 크면 클수록 문화적 환경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커지고, 또한 집단의 문화자본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이 그 성원에 대해 가하는 순응 유도 압력도 커지므로, 파리사람과 지방사람 간의 격차는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커지게 된다.


현재 부르주아지와 쁘띠 부르주아지의 거리를 특징지우는 것처럼 17세기의 귀족과, 절약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거리를 특징지웠던, 돈을 일일이 세보지 않고 소비하는 기술은 그 존재 자체가 사회관계자본의 재생산에 종속되는 계급의 제한된 경우에서는 명백한 교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은 그 아들에게 대귀족처럼 돈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금으로 가득 찬 지갑을 넘겨주었다. 아들이 쓰고 남은 돈을 가져오자 공작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금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어디에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노동자는 명령의 실행자로서의 성향을 모든 생활영역에서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민중계급의 생활양식은 위스키나 회화제품, 샴페인이나 음악회, 항해여행이나 미술전람회, 철갑상어나 골동품 같은 사치재가 없는 만큼이나 이러한 재화에 대한 수많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가죽 대신 '모조가죽', 회화 대신 조잡한 착색 석판화chromo가 그것인데, 이런 것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제2단계에서의 박탈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대중문화culture populaire'는 '대중'과 '문화'라는 역설적인 말들이 결합되어 통용되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지배자 측에 의해 문화의 정의가 부과되는 것인데..


(성과 계급에 무관하게 모두에게 의견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민주주의적 자발주의spontanéisme démocratique와, (이 권리와 의무를 '지성'intelligence과 '역량'compétence으로 인해 선출된 '전문가'들에게만 국한하는) 기술관료적 귀족주의aristocratisme technocratique 사이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은, 기술관료적 선발로 인해 모든 경우에 배제됐을 사람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게임으로부터 배제하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그 이율배반의 실제적 해결책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생산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뤼마니떼L'Humanité나 다른 극좌파 신문을 읽는 가장 정치화된 일부를 제외한다면)은 일간신문에서 정치적 안내자나 도덕적 문화적 조언자의 역할(신문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단지 '르 피가로'지의 일부 독자들에게서일 것이다)을 실제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며, 또한 정보획득, 자료수집과 분석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보도지presse d'information와 저속지presse de sensation 사이의 차이는 행동이나 발언이나 사고에 의해 정치를 실제로 하는 살마들과 정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능동적 의견과 수동적 의견 사이의 대립을 결국 재생산한다.


(노동자) 그들은 상징적 투쟁수단을 선호하며, 맨 먼저 도덕적 지배관계를 정립하는 교육운동이나, 열광적 신뢰의 대상인 '정보', 그리고 오로지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 일종의 윤리적 독촉을 실행하려는 동일한 의지에 의해서 단합된 개인들의 엄밀한 계열적 집단편성인 협회association가 실현하는 집단적 행위의 특수형식이 있다. 봉사활동은 선의의 과시적 소비이고, 그 자체 이외에는 다른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순전히 무사무욕적인 윤리적 활동이며, 그것의 실행자에게 여러 권리를 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큰 것은 의분(義憤)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 권리는 '자기 몫을 한' 사람, 자기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 특히 누구에 의해서도 승인되는 기성사실을 만든 사람의 완벽함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무사무욕'하고 '청결하고', '고결하고', '정치'와의 어떤 타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행위는 실제로 사회적 승인의 가장 완벽한 형태인 제도화의 기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인데, 모든 협회들이 다소간 비밀리에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의견에의 접근 가능성, 혹은 의견을 구성하는 수단에의 접근 가능성(전국지의 구독과 같은)이 박탈될수록 그만큼, 지방에 기반을 둔 집단들(또한 場들도)이 행사하는 스크린 효과effet d'écran (혹은 허구적 문맥화 효과)에 더욱 민감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사회공간 내에서 접하고 있는 위치를 평가하는 참조물로서 지리적 기반을 가진 사회적 하위공간(촌락, 인접집단 등)을 드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피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공간에서의 지배자들(소토지 구역에서 50ha의 토지소유자, 지방의 명사, 직공장 등)은, 나무를 보고 숲은 못 보듯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조화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3기능 체계structure triadique(인도-유럽어계 제 민족의 신화가 기본적으로는 지상권을 맡는 사제, 힘을 행하는 전사, 풍요로움을 맡는 생산자라고 하는, 실제 사회에 있어서의 기능 구조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의 재현은 조르쥬 뒤비(Georges Duby)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하는 봉건사회의 사회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적용되었는데, 3기능체계의 재현은 계급분화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2개의 분할원리가 교차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하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상이한 원리들의 이름으로 지배를 위해 경쟁하는 지배집단 내의 제 분파 간에 보이는 분할인데, 후자는 봉건사회에서는 전사bellattores와 학자oratores의 분할이고, 오늘날에는 경영자와 지식인의 분할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맥더미의 궤변

한 사람이 A=B, B=C 그리고 동시에 A<C를 가지고 있다. 혹은 A1=A2, A2=A3, ... A99=A100 그리고 A1<A100이다. 달리 말하면 비록 한 알의 소맥이 소맥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두 알, 세 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소맥더미가 264알부터 시작되는지 265알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265알부터는 소맥더미가 되고 264알로는 소맥더미가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된 분류법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계급 측의 여러 가지 학문에 의해 생산된 수많은 윤리적, 미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법률적 분류법은 자신의 외견상의 중립성으로부터 특정한 효력을 이끌어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모두 사회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분류법은 상대적 자율성을 띤 여러 場의 고유한 논리와 언어에 따라서 생산되며, 지배적 아비투스의 분류도식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이러한 도식을 낳는 사회구조에 대하여 실제적인 종속dépendance réelle을 야기하는 동시에, 외견상의 독립apparence de l'indépendance을 추가하였는데, 외견상의 독립은 분류투쟁lutte des classements과 계급투쟁lutte des classes의 한 상태를 정당화시키는데 공헌한다. 확실히 半자율적인 분류체계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는 학교적 '성적평가'의 원리인 일련의 형용사의 체계(秀, 優, 美.. 可 등)이다.


남녀간, 연령층간의 대립이라든가 세대간의 대립처럼, 다양한 지배형식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여러 도식이나 상투어의 표현형 역시 비슷한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소위 '청년층'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연장자들이 제시하는 정의를 받아들여 많은 사회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일시적 자유권('젊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을 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귀속된 적합한 일, 젊은이의 '고유한 미덕', 즉 용기, 사내다움, 열정 등을 실현하고, 중세귀족의 자제라면 무술 수행, 르네상스기의 피렌체 청년이라면 연애와 폭력,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라면 rule에 입각한 유희의 열광(스포츠나 록음악처럼)을 실천한다.각자 자신의 고유한 사안에 관여하면서, 요컨대 자신을 '젊음'의 상태로, 즉 무책임한 상태로서 유지하고, 책임 있는 행위를 포기하는 대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자유를 향유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beau'과 '매혹적인 것joli' 사이에,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쾌락plaisir과 향락jouissance, '아름다운 것beau'과 '쾌적한 것agréable', 즉 '뜻에 맞는 것ce qui plaît'과 '즐겁게 하는 것ce qui fait plaisir' 사이에 설정한 대립과 똑같은 대립을 설정하고, '매혹적인 것'을, '의지에 대해 그것의 성취와 만족을 직접 제공함으로써 의지를 자극하는 것', '미의 직관에 필요한 순수직관상태로부터 감상자를 끌어내는 것', '의지를 직접 만족시키는 대상을 보는 것에 의해 의지를 틀림없이 유혹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순수취향이 거부하는 것은 사실 대중적 관객이 굴복하게 되는 폭력이다(대중음악과 그 효과에 대한 아도르노의 서술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에 대한 경의를 요구하는데 이는 거리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리감이다. 순수취향은 예술작품에 대하여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은 궁극성으로서 존재하고, 관객을 칸트적 정언명령에 따라 취급하기를, 즉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우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칸트의 순수취향의 원리는 향락을 부과하는 대상물에의 혐오, 그리고 그 부과된 향락에 만족하는 조야하고 통속적인 취향에 대한 혐오이자 거부이다.


만약 칸트의 '負量의 개념'의 논리에 따라, 극복된 악덕의 양에 의해 미덕의 크기를 재고, 부인된 충동과 정복된 통속성의 강도로 순수취향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미학을 상정하고 그 미학의 함의를 추종한다면, 가장 완성된 예술은 문명화된 야망과 억제된 충동, 승화된 조야함의 대립적 명제를, 가장 긴장도가 높은 상태로 포함하는 작품들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 너무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억제하는 것은 '순수'쾌락의 경험을 위한 선행조건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쾌락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유미주의자의 쾌락의 가장 순수한 형식, 즉 정화되고 승화되고 부인된 감각기능은 역설적으로 금욕, 즉 훈련 속에,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감각기능과는 정반대로 단련되고 유지된 긴장 속에 존재한다.


칸트는 '자유로운 예술'과 '보수를 바라는 예술'을 대립시키는데, 전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 所産은 자유이며(그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상자에게 어떤 강제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賃金처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서만 매력적이고 따라서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예속적이고 비굴한 활동이며, 그 산물은 감각될 수 있는 매력의 노예화하는 폭력으로써 감상자에게 강요된다.


칸트는 먼저 (대학에 소속된) '동업조합적 학자' 혹은 재야의 '독립학자'와, 단순한 '학색수득자' 즉 성직자, 법무관, 의사처럼 대학에서 획득한 지식을 파는 '실무가와 학식의 전문직인'을 구별하고, 마지막으로 후자의 고객, 즉 '무지한 사람들로 구성된 일반대중'을 구별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세속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제 학부, 즉 법학부/의학부/신학부와, 세속적 차원에서는 피지배적이나 비세속적 차원에서는 지배적인 학부, 즉 철학부를 대립시킨다. 철학부는 세속적 권력은 없으나 '정부의 명령에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인데, 그 자신의 법, 즉 이성의 법만을 알고 있으며, 그 비판력을 완전한 자유에 의해서 발휘하는 근거를 부여할 수 있다.


출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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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대학의 크기, 지리적 위치, 기후 등
Sciences Po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설명을 잘 해놓았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크기는 연희관+상대본관+상대별관 정도이며, 지리적 위치는 파리에서 고풍스러우면서도 부유한 6구와 7구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기후는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온난건조-한랭다습의 기후로 10월에 장마가 내리는 대신 12월에 최고기온이 8도까지 올라가는 등 매우 온화하다.

대학 주변 환경
Sciences Po 주변에는 명품 옷가게, 명품 옷가게에 딸린 카페와 레스토랑, 고급스러운 카페 등이 대부분이다. 서울로 치면 삼청동과 신사동을 합친 느낌이다. 싸게 싸게 뭘 하려 하면 전혀 답이 안 나오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6구와 7구 사이는 이러한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음을 참고하고 가지고 있는 생활비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계획할 필요가 있다.
다음 링크는 내가 추천하는 장소를 모아놓은 지도이므로 필요하면 참고하기를 바란다. 
구글 지도 Paris : https://maps.google.com/maps/ms?msid=211674192681492047552.00047a7fbd91765f28132&msa=0


거주 형태, 식사
집 구하기의 절차는 대략 이렇다.
집 구하겠다고 선언 -> 세입자-집주인 연락 확인 -> 거주증명서 확인 -> (예전세입자 만나서 서면합의 종이 작성 + 소개비 수표책 작성) -> 집주인 만나서 Etat des Lieux -> 내 서류 보여주기 -> 집 계약서 작성 -> 집보험 가입 -> EDF 새로 가입 -> CAF 서류 인쇄 후 집주인 우편송부 -> 집주인에게 우편 받은 뒤 다른 CAF서류 보충하여 CAF 사무실에 제출
가장 좋은 집 구하는 방법은 너무 부자여서 Etat des Lieux나 보증인 등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외국 유학생이 와서 사는 게 재미있고 기특해서 유학생을 세입자로 두는 집주인의 정보를 듣고 가서 사는 일. 물론 매우 드물다.
처음에 집을 구하겠다고 선언하는 단계에서는 거주증명서를 요구하면 안 된다. 요구하지 않고도 집을 구하겠다고 선언하는 편한 사람이 있으면 그 편한 사람에게 집을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랑 시차가 8시간이니까 여기서 저녁에 메일 보내면 그쪽에서는 늦게 받은 편지함 확인하고 늦게 전화해도 집주인이 받을 수 있는 그런 이점이 있다. 현지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메일과 전화를 보고 받을 수 있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후 5시~새벽 2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같이 일을 진행할 사람이 있다면 한국 시각으로 오전 9시~오후 5시 사이에 일을 마치고, 그날의 합의된 내용을 오후 5시 이후에 프랑스 측에 전달한다. 프랑스 측에서는 한국 시각으로 새벽 3시~아침 9시 사이에 그쪽에서 합의되고 진행되고 결정된 내용을 보내줄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의 진행은 같은 주기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진다.
집의 실제 상태를 중요시하느냐 안정적으로 집을 구하는 일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집을 단기로 계약할지 장기로 계약할지가 정해진다.
웬만해서는 월세방에 들어올 때 갖추어진 물건들을 사용하지만 만약에 집안에 들여놓을 물건을 사야 한다면 아는 사람에게 싸게 얻기 -> 프랑스존 귀국처분 -> 동네나 교회에서 열리는 바자회 -> leboncoin.fr이나 프랑스존 일반 공고 -> MONOPRIX 등 리테일 체인에서 구입 -> 동네 bazar(다이소같은 곳)에서 구입 의 순으로 행동하라. 그래야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집을 옮기는데 3개월 미만 거주한다면 집을 혼자 구할 수 없다. 더구나 12월에 시작하는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때는 항상 다른 사람과 Colocation(Coloc)을 할 수밖에 없다. 
집은 현재 세입자가 언제 나가는지를 물어본 뒤에 살지 말지를 정해야 한다. 세입자가 나가는 시점보다 최소 1달 전까지 집 계약을 완료해야 한다.
보증인을 요구한다면 보증금을 낼테니 보증인 필요없게 하는게 어떻겠냐고 협상을 한다.
파리 중심부에 스튜디오가 월 300유로라면 100퍼센트 사기다.
사기 사례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lifeqna&wr_id=96217&sca=주거&page=16
집 주인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주장하면 세입자는 집에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열쇠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
열쇠를 받기 전까지의 기간에는 attestation d'assurance를 해주어야 한다.
집 계약을 하기 전까지 집 안의 고장난 부분은 전에 살던 세입자의 책임이다. 계약을 하는 순간 고장난 부분의 책임은 계약 당사자인 지금 세입자인 나에게 넘어간다. 따라서 고장난 부분을 확인하는 Etat des Lieux를 할 때 다음을 특히 잘 확인한다.
- 현재 있는 세탁기를 집주인이나 이전 세입자가 가져갈 경우를 대비해 세탁기와 화장실의 물 연결부분을 빼보고 물이 새는지 확인 (수도꼭지가 오래되면 물이 샐 수가 있다. 서양식 화장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으니 홍수가 나서 큰 문제가 된다.)
- 온수가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5분 이상 온수를 틀어보기 (보일러가 온수를 덥히다가 보일러가 과열되어 멈추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교환학생 와서 제일 어리석은 것이 집 좋은 데 구하려고 돈을 엄청 쓰거나 싼데 찾다가 교외로 가는 것이다. 특히 교외로 가서 살면 잃는 게 한둘이 아니다. 일단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볼것 먹을것 마실것 많은 파리에서 놀 수가 없다. 파리에는 야간버스 (Noctilien)라는 게 있어서 새벽 3시싸지 밖에서 놀아도 문제가 없다. RER이나 교외 버스/트램 환승역 방향으로 가는 메트로 안에는 전혀 쾌적하지 않은 인파가 가득하다. 나는 처음 3달은 프랑스 친구의 10구 옛날 아파트 6층에 살았고, 그 다음 3달은 11구 신형 아파트 6층에 살았다. 월세는 500~600유로로 둘이 나누어 내고 주택보조금까지 받았으니 저렴했지만 파리 안에 있어서 매일 평균 저녁 11시까지 밖에서 놀다가 왔다.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식료품과 생활용품은 Dia에서 샀고, 매주 1번 Belleville역의 Paris Store에 가서 50유로 이상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사와서 룸메이트와 같이 썼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식료품을 전혀 사지 않고 모두 외식으로 친구들과 놀면서 먹었다. 학기중에는 외식을 안 했으며 항상 매일 점심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매일 저녁 8시 반에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밖에서 먹는 것과 만들어 먹는 것의 가격 차이는 대략 5~6배라 보면 된다.

교통카드가 정기권이라는 점은 정말 크나큰 복이다. 이를 이용하여 공짜로 어디든지 갔다올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1-5존 구별도 없어지니 마음껏 돌아다니자. 집에 남아있는 건 크나큰 기회비용의 상실이다.


수업, 도서관
Sciences Po의 수강신청은 연세대학교와 같은 선착순 온라인 수강신청 방식이다. 시차를 잘 따져서 연세대학교 수강신청을 하던 실력을 그대로 활용하여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굉장히 극적인 건 수강변경(교수님께 빌기), 철회 등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수강신청을 내가 원하는 과목으로 하지 못하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학점 인정과 졸업요건 충족에도 모두 악영향이 온다. Sciences Po의 이렇게 경직된 제도를 미리 알아둔 상태에서 Sciences Po에서의 한 학기 혹은 1년을 통해 필요한 전공 학점을 모두 충족시키자는 기대는 확실히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바란다.
3번 지각하면 1번 결석한다. 3번 결석하면 F다.
아프면 의사에게 증서를 받아서 3번 결석처리 될 경우 증빙자료로 제시해서 F를 면할 수 있다.
시험때는 펜 외에는 아무 것도 지참 불가능하다.
10을 받아야 P/NP에서 P를 한다.
결석계를 내려면 교수와 행정실 두 곳에게 다 내야 한다.
Cour Magistral(Lecture)을 듣는다면 교수는 절대로 개인적인 메일을 보지 않는다. 따라서 수업이 끝난 뒤 앞에 가서 질문을 하도록 한다.
Sciences Po 안에는 교수 연구실이 없다. 교수들은 대부분 바깥에서 초청받은 교수들이다. 프랑스인이 아닌 경우도 많다.
각 수업은 ENTG의 Group에 일대일 대응되어 있고 여기에 YSCEC처럼 모든 정보가 다 있다. 교과서는 mandatory reading의 경우 모두 pdf로 ENTG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인쇄를 해서 나누어주었지만 나무 살리기 법 같은 게 들어와서 디지털로 다 바뀌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핸드폰의 pdf 리더 앱을 통해 지하철에서도 reading을 읽었고, 그 외에는 노트북이나 도서관 컴퓨터로 읽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다 디지털로 다 있다. 학부 수준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끝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이 사람들은 시작 시각과 끝 시각을 칼같이 잘 지킨다.
처음에는 이곳의 수업이 연세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절대로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의 대학과 수준이 같으면 같았지 높지는 않다. 대학 랭킹과 수업의 난이도는 따로 움직인다. 우리가 외국 대학을 나갔을 때 꿀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오히려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자기 좋으라고 하는 질문만 하는 학생들을 몇명 봐서 마음이 편해졌다.
Sciences Po의 도서관은 작기 때문에 안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지 못한다. 학기가 시작한 후 2주일 동안, 기말고사가 거의 끝나가는 기간에는 30 Rue Saint-Guillaume 도서관에도 사람들이 없어 널널하지만 그 외의 기간은 언제나 꽉 차있다. 하지만 19시 이후가 되면 언제나 자리가 있다. 10:00, 12:15, 14:30, 16:45, 19:00 등 학생들이 바로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시각이 바로 실내의 좌석이 비는 시각이다. 이때 가서 앉아야 한다. 안 그러면 아주 일찍 오지 않는 이상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도서관 열람실에서는 귓속말이 기본이고 손톱깎기도 사용할 수 없다. 연세대학교 도서관보다 더 조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우리는 외국인이므로 피해를 주면 본토 학생들이 굉장히 싫어한다.
도서관의 모든 책 중 10%만이 공개 서가에 비치되어 있으며 더 구하고 싶으면 창구에서 요청해야 한다. 국회도서관과 이용 시스템이 같다. 요청하면 보통 45분 후에 책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날에 책을 받을 수 있다.
30 RSG: law, history, area studies, political science, international relations, administration
27 RSG: economics, social sciences, sociology, philosophy, religion, reference books, press…
프린터와 복사기는 따로 있고, 스캐너는 없다. 프린터는 공용 컴퓨터로만 쓸 수 있고 이때도 학생증이나 복사기 쓸 때 쓰는 카드를 쓴다.
모든 Sciences Po 학생들에게는 흑백 기준 600장을 인쇄/복사할 수 있는 credit이 충전된다.
Catalogue.sciences-po.fr와 spire.sciences-po.fr를 브라우저 즐겨찾기로 등록해놓아서 필요한 책을 찾을 때 바로 찾을 수 있도록 한다.
www.cairn.info는 아쉽지만 유료다. 
학교 도서관이 보나마나 꽉 찰 시험 준비기간에는 다음의 도서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Mairie 도서관, La Gaite Lyrique, 한국문화원, 파리일본문화회관


국제교육부
DAIE라고 하는 Sciences Po 국제처는 대륙별로 사무실이 나뉘어 있으며, 한국은 Asia-Pacific 에 소속한다. 사무실은 13 Rue de l'Universite에 있으며 개방 시간은 2012년 가을학기의 경우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간씩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방을 잘 하지 않으니 개방 시간표를 숙지한 뒤 찾아가도록 한다.
9월 초에는 APAMO Day라고 해서 Sciences Po와 교환학생 협정을 맺은 Asia-Pacific 지역의 모든 대학들이 국가별 부스를 만들어 각 대학을 홍보하는 날이 있었다. 나도 뒤늦게 이 행사의 존재를 알고 찾아가 연세대학교를 열심히 알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센 강변에서 맥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셨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그때 내가 만난 학생 중 몇명이 올해 1월 연세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는 걸로 확정되었을 것이다. 
다음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그 학기로부터 1년간 외국에 교환학생을 가는 학생들의 명단이 Sciences Po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지된다. PDF 파일로 된 이 명단은 Affectations라는 제목의 게시글로 www.sciences-po.fr에 올라올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1월 중순에 올라온 명단을 다운로드받아 2013년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할 학생들과 한국에서 공부할 학생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었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들과 교류하기로 마음먹었다.

기타 학교에 관한 정보(부대시설, 동아리 등)
Sciences Po Accueil Administratif에서 학생증 발급을 하는 첫날에는 줄이 엄청 길게 서는데 웬만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일단 인쇄할 게 생기면 그걸 필요로 하는 날이 되기 한참 이전에 도서관 지하 컴에서 내 노트북 쓰고 있다가 옆 컴퓨터가 비면 잽싸게 가서 인쇄만 싹 한다.
13U R층 라운지의 소파가 굉장히 푹신하고 편하다. 과방에나 가야 있는 소파가 여기는 밖으로 나와있다.
도서관 말고 13U 지하 Reprographie(연희관 복사실처럼 생긴 곳) 앞 복도의 복사기를 쓰자. 56RSP Cafeteria 옆에도 복사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학생증을 인식하지 못한다.
28RSP H006 07:45~19:30 개방. 연희관 컴퓨터실 같은 곳. Windows를 사용한다.
27RSG와 56RSP 사이 잔디 언덕에서 5시 수업 하기 전에 1시간동안 가방을 베고 누워서 노트북을 하자. 한국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9 Rue de la Chaise에는 SciencesPo wi-fi가 작동하지 않는다.
Cafeteria는 27RSG, 28RSP, 56RSP 세 곳에 있다.
강의실에는 벽에 노트북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다. 보통 작은 강의실에는 2개 정도 있으므로 미리 와서 콘센트 바로 앞의 자리에 앉도록 한다. 벽에 콘센트가 없는 강의실에는 반드시 교수님 테이블 위에 콘센트가 있다. 앞으로 앉아서 노트북을 충전하고 맨 앞자리에서 수업에도 더 잘 집중하도록 하자.
ENTG Sciences Po 메일과 내 메일 동기화 http://validmail.sciences-po.fr/validmail/PrcRedirectLogin
27RSG 지하 1층의 맥 10대(CYBERCAFE)는 매우 성능이 좋고 인터넷도 빠르다. Cybercafe ID와 비밀번호는 ENTG ID와 비밀번호와 같다.하지만 프린터가 없다. 
27RSG 지하 1층에는 Crous와 BDE 방이 있다. Crous는 샌드위치 가게 하나 정도로 매대 크기가 작다. 좌석은 30석 정도 있다. BDE 방 죽돌이들은 한국 대학 학생회 죽돌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


Culture Shock
A/S를 받을 때는 여권을 신분 증명용으로 요구할 수가 있다. (Genius Bar처럼 미리 RDV를 한 경우라도 나중에 수리가 필요해서 계산을 해야 한다면 신분 증명이 필요할 수 있다. 체크카드나 신용카드에 내 이름이 써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고, 프랑스 직원들은 그걸 끝까지 증명하려 한다.)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여권을 지참하도록 한다.

파리, 나아가 일드프랑스 전 지역에는 화장실이 정말 없다. 한국이나 영국과 달리 이곳은 화장실 인심이 굉장히 짜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벽에 노상방뇨를 해서 오줌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공공기관, 학교 등에서는 꼭 가도록 한다. 

어딜 가더라도 RDV 이후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 걸린다. RDV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므로 하루에 최대 2개의 RDV만 잡도록 한다. 한국처럼 2시간 간격으로 잡는다면 다음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의 시간관리는 RDV 이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RDV가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편안한 대기 장소가 주어진다. 그곳은 조용한 방의 소파와 커피테이블일 수도 있고, 나만 앉을 수 있는 의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자투리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며 오늘 해야 하는 일 중 바깥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애플스토어 같은 곳에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입구에서 직원의 특별 안내를 받고 애견 보관소로 간다.

한국에서 입던 정장을 수업시간에 입고 오니 나보고 결혼식 가냐고 했다. 그만큼 이곳 학생들은 정장을 입지 않는다. 편안한 스웨터와 니트와 청바지를 선호한다. 선명한 색깔보다는 바랜 색깔을 선호한다. 그건 좌파 학교라는 특성과도 관계가 없지 않다. 내 넥타이는 빨강-검정 사선 줄무늬 넥타이였는데 이게 시앙스포 보안 직원 넥타이와 똑같아서 나는 시앙스포 보안 직원으로 취직했다고 농담을 했다.

절대로 공항에서 도시로 갔을 때 손에 짐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내 안의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지 않도록 한다. 공항에서 방금 나온 사람이나 공항에 갈 사람은 짐을 많이 들고 있기 때문에 불량배들의 절도 표적이 된다. 본인 또한 귀국하는 날에 공항에 가기 전 Opera역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다가 공간이 비좁아 의자 뒤에 짐들을 놓았는데 나와 내 맞은편 친구도 몰라보는 사이에 내 백팩을 누군가가 통째로 가져갔다. 안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동전지갑 그리고 각종 책들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CCTV도 잡히지 않아서 아무 수를 쓰지 못하고 허탈하게 귀국하였다. 왠지 그날따라 주변에 불량배들이 많이 보였다. 손에 짐을 들고 있을 때에는 어디 중간에 들르지 말고 곧장 공항으로 혹은 자기 집으로 바로 향하도록 한다.

하우스 파티를 해서 한국음식을 친구들에게 만들어주면 당신은 인기인이 된다. 한국 음악을 틀어주고 같이 들어도 참 좋아한다. 나의 경우 DJ 덱을 사서 친구 집에서 한국음악을 믹싱하면서 같이 놀았다.

Monoprix가 12시까지 영업을 할지라도 주류는 10시 반까지만 살 수 있다. 10시 반이 넘으면 주류 전문점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 (클럽 가기 전 술을 마실 경우 참고)
큰 개를 데리고 있는 노숙자들이 제일 양아치다. 가까이 가지도 말기 바란다. 동양인에게 항상 집적거린다. 나는 이들에게 경찰이 최루가스를 뿌리는 모습도 봤다. 옆에서 지나치기만 했는데 화생방 훈련처럼 눈이 굉장히 따가웠다.
한국에서 당연한 게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다. 항상 먼저 전화로 확인해서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도록 하자. 포스터에 써진 내용대로 하는지 물어보자. 
다리 위에서 술을 까면 경찰에게 잡힌다. 그 자리에서 강물로 술을 따라 버려야 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경찰이 술인지 모르기 때문에 까도 괜찮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곳(교내외)
나는 누구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성격이 못 되어서 질문하는 정도로 도움 받는 걸 끝내고 그 이후에는 혼자 일을 진행했다. 프랑스어 언어가 힘든 상황이라 전화로 해결해야 하는 일을 못 하고 있다면 그 정도는 모르는 사람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지만 그 외의 일로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그건 모두 축적해놓은 인간관계의 힘을 빌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유학생활에 공짜는 없다. 내가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서비스를 편하게 받을 수 있지만 돈이 충분하지 못하면 대가로 대신 일을 해주던가 같이 놀아주던가 그 단체에 시간을 추가로 할애해야 한다.
파리의 한인교회는 처음에는 공항 픽업, 핸드폰 신청, 계좌 개설, 집 계약 등 생활에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도와주지만 그것은 모두 교회의 커뮤니티에 들어와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원래 교회 신자가 아니라면 한인교회의 도움을 무작정 받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객원기자로 일했던 '파리지성'이라는 교민신문(www.parisjisung.com)은 '알로파리 Allo Paris 2013'라는 전화번호부를 매년 발행하는데, 이 안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전화번호가 들어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업소가 소개되어 있으니 한번 쭉 읽어보면 어떤 상황에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놓았지만 최종적인 업무는 전화나 우편이나 방문으로 해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전화번호부가 여기서 유용하다. 알로파리는 무료이며, parisjisung@gmail.com을 통해 신청하여 파리 내의 파리지성 사무실로 방문하여 받도록 한다. 파리지성 발행인 분(한국인)께서는 교환학생들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객원기자로 일하겠다고 말씀드린 뒤 기사를 송부해도 좋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분들이 나를 만나서 무엇을 도와주신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게 있을 때 그분들께 물어보아 답변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파리 15구 지하철 8호선 Commerce역 근처에는 '재불한인회'라는 단체가 있다. (주소 83 Rue de la Croix Nivert 75015 Paris)이곳에 들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재불한인회 회장님이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70학번 선배님이다. 하지만 재불한인회도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대신 전화를 해주거나 하는 정도만 도와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정보와 방법을 배우는 것까지만 도움을 받고 나머지는 혼자 힘으로 하는 데 익숙해져야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가지 않는 주도적인 교환학생 생활이 가능하다.


기타
점심시간 12시-2시만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표에서 점심시간이 비어야 한다. 수강신청을 할 때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인지를 고려하여 미리 점심시간을 비우도록 한다.

프랑스어를 알고 이곳에 오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이곳에 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물론 학교 수업을 듣는 것에는 프랑스어를 모른다면 영어 수업만 신청해서 전혀 문제없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영어만 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피상적으로 보고 가는 그 파리만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으면 파리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지인만이 아는 숨겨진 장소를 찾아갈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음 주에 열리는 행사를 발견하여 친구랑 같이 갈 수 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광판, 포스터, 게시판 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꼭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파리에서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 차고 넘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채우고도 한참이나 남아서 벅찰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학교에서도 프랑스 친구를 사귀려면 프랑스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강의를 잘 안 듣는 것처럼 프랑스 친구들도 영어강의를 잘 안 듣는다. 확실히 현지인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면 굉장히 좋아한다. 몇명은 자신의 영어 습득을 위해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프랑스어를 쓰지 않고 영어를 쓰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은 프랑스어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프랑스어를 꼭 배운 다음에 시앙스포에 오기를 적극 권장한다.

프랑스 지방 도시 여행, 혹은 한국의 주력 분야가 아닌 와인/서양미술/오페라/ 등에 대해서는 내가 교환학생으로서 왜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어차피 1학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이 잘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갈텐데, 단 1학기만으로 나의 문화적 취향이나 관심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철저히 한국인의 시각으로 파리에 있다 갔다. 파리라는 도시 또한 프랑스 안의 프랑스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독일인, 영국인, 멕시코인, 프랑스 언어권 출신 흑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국제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한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내가 교환학생을 1년으로 갔다면 한 학기는 최대한 한국과 동떨어진 프랑스의 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고, 다음 한 학기는 최대한 한국과 가까운 프랑스의 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1학기만 가기 때문에 나는 후자만에 집중했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교환학생은 6개월이든 1년이든 짧은 시기이지만 나중에 자신이 그 나라에서 취업을 하거나 석사 생활을 하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교환학생 기간 중에 만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같은 교환학생을 제외하면 모두가 다시 만나면서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된다. 프랑스 교환학생 중에 나는 서울로 돌아왔을 때 커다란 화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파리에 씨를 뿌렸다. 6개월 쯤 지나면 커다란 꽃봉오리가 될 씨앗들을 뿌렸다. 나는 1학기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환학생 이후 한국에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돌아간 2013년 중에 한국을 방문할 프랑스인들과는 특별히 더 친해지려 노력했다. 교환학생이 끝난 뒤의 인바운드 국제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내가 만난 이들 중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미리 알아놓도록 하자.
- 한국에 1달에 1번 이상씩 오는 프랑스인
- 내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 놀러올 프랑스인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아시아는 괜찮은 지역, 연대는 괜찮은 대학이라는 점이다. 파리의 화려함만을 보지 않고 전체를 봤기에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귀국해도 섭섭한 마음이 없는 상황이다.

남자는 훨씬 현지인 사회에 뛰어들기 쉽다. 파리에는 한국인 총 4명 중에 여자가 3, 남자가 1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번 학기에 Sciences Po로 교환학생을 온 학생들 중 유일한 남자였다. 서울대학교 2명, 연세대학교 4명, 고려대학교 6명, 서강대학교 2명 이렇게 총 14명이 새로 왔는데 이중 나만 남자였다. 남자이고 군대를 갔다왔기 때문에 언제나 오빠 소리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도해서 동생들을 만나고 동생들에게 정보를 공유해주며 도와주는 일이 수월했다. 그렇게 한국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즐거운 교환학생 생활을 보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한국을 생각해보았을 때 한국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오뜨 꾸뛰르’다. 한국의 문화에는 일본의 심플한 대중성이나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와 친밀감과는 다른 소수의 비장미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한국 미술이나 한식이 가진 다양성과 창의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서 한국 전통문화는 고소득층의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주로 찾는다. 파리에서 전반적으로 한국은 중국보다는 일본과 가까운 나라 취급을 받는다. 

내게 지난 6개월은 한국문화란 무엇인가, 외국인들에게 어떤 문화를 자랑하고 내세워야 하는가를 비교와 분석을 통해 찾아내는 기회가 되었다. 학생들이 가기 좋은 문화원은 파리에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좋은 음식점, 바, 관광지가 있는 곳 근처에 밀집해있다. (한국문화원은 트로까데로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문화원을 통해 그 나라는 파리에서 어떤 모습을 팔고 있는지를 보면서 한국과 비슷한 건 없는지 찾아보고, 오로지 한국에만 있어서 독특함으로 유지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골라내었다. 특히 작년 봄학기에 열심히 준비했던 YKRF리더십포럼의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 문화 및 일본인과 중국인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어를 공부하던 참이라 15구 파리일본문화회관 3층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어보던 때가 많았다.

나는 6개월을 1년처럼 살자는 마음을 먹고 집에 틀어박혀 한국 TV 다시보기를 보는 일 없이 쉬지 않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ZONE 1 내의 모든 메트로 역 주변을 구경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던 숨은 명소를 내가 찾아내어 구글 My Places에 추가하고 정리했다. 6개월 동안 파리의 모든 행사와 모든 장소에 가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패션, 오페라, 음식, 서양미술에 관한 곳은 찾아가지 않고 대신 대중음악, IT, 한류, 재불한인사회에 대한 곳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하니 파리의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고 후회없이 떠나는 기분이 들어 좋다.

me2day.net/iamdwlee/tag/파리 에는 내가 그동안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느낀 것들과 유용한 정보를 그때그때 올려놓았으니 관심있으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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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 Changes

Ray Bryant Trio

Prestige 7098 (1957)

 

 

Blues Changes.pdf

 

모처럼 주말이 되어 피아노를 연습하다 예전에 악보를 인쇄하여 철해놓은 클리어파일을 발견했다. 피날레로 만든 이 곡 Blues Changes의 악보였다. 2006년 내가 대입을 준비하면서 자유시간이 날 때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런 채보로 풀곤 했는데, 이 악보는 유일하게 N드라이브로 백업하지 못한 나의 피날레 악보였다.

 

인쇄를 안 해놓았으면 그때 어린 내가 열심히 만든 이 악보는 사라지고 없었겠지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지금 내 피아노 실력으로는 무지하게 어려운 반음계 덩어리의 이 곡을 2006년의 나는 어떻게 악보로 옮겨적을 수 있었을까 신기한 마음이 든다. 마치 지금 고등학생인 다른 후배를 보며 감탄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나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무조건 능력이 상승하고 기억이 축적되는 것은 아닌 느낌이 든다. 머리는 마치 화이트보드와 같아서 치열한 시절에는 이색 저색 마커로 글과 도안과 낙서가 빼곡히 적혀있지만 성취와 안정을 얻고 늘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화이트보드의 절반 정도를 지워버리고 만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고대의 조상들은 당연하게 사용했던 문명의 이기를 전쟁과 무사태평한 시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리고 까먹고, 나중에 다시 처음부터 발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6년의 나는 자기 전에 이 음악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내 네이버 블로그를 날리지 않길 잘했다.

정말 이 곡은 자기 전에 들으면 그 cozy한 느낌이 참 따스하고 좋다.

 

 

예전에 나는 재즈를 좋아했구나. 그래서 재즈 동아리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본다. 과거의 내 모습을 잃지 않게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음악(재즈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그리고 smooth jazz를 들었던 그 시절 ㅎㅎ)을 다시 들어야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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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일본을 좋아하는 태국



일본을 좋아하는 스페인



단지 나는 댄스를 별로 즐겨하지 않아서 (그리고 예전에 밴드를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비디오보다 이런 게 끌릴 뿐이다.

그리고 위의 세 나라는 모두 '라인'의 이용률이 높은 나라들이다.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는 "라인은 향후 전세계 10억명이 이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현재 2억3000만명의 이용자 가운데 일본 이용자는 30% 뿐이며 나머지 80%는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에 고르게 분포됐다"고 밝혔다. 참고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82113040581808&VBC)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위의 동영상을 찾아본 게 아니며, 평소에 우연히 발견해서 좋다고 생각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둔 동영상이 이 기사와 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CJ E&M은 중국과 유럽에 한국의 댄스 중심의 음악의 포커스를 맞추었으며, 일본에는 드라마와 약간의 뮤지컬이 있을 뿐이다. 즉 한국의 밴드 중심의 음악을 수출하는 거대 자본이나 트렌드를 만드는 집단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아, 씨엔블루 FT아일랜드를 까먹었다. 그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좀더 '외모가 부각되지 않고 연주 실력과 단지 좋은 음악이 부각되는' 밴드 음악을 일본을 비롯한 위의 나라들에 알리고 수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한국이 취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민트페이퍼이고, 그래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일본인 교환학생이나 다른 아는 친구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2012년 10월에 나는 프랑스로 교환학생 중이었으며, 2013년 10월에는 코엑스에서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뭔가 깨달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울러 서울소닉(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 영국과 싱가포르 공연 등)의 노력을 주목할 만 하지만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으로 한국의 밴드 음악이 진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건 마치 한국-중국-싱가포르-미국-영국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 진영과 일본-대만-인도네시아-태국-스페인의 일본 대중문화 수용 진영 사이의 구분일까?


구별이 제멋대로이고 임의적이고 성급한 일반화의 감이 없지 않아 죄송할 따름이지만, 브라질과 호주의 경우는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진영에 더 가까운지)는 궁금한 과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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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hinking of Korean recruitment process for multicultural society based on applying principles of justice

 

2007123163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Studies

Dongwook Lee

 

I. Introduction

(1) Goal

The number of foreigners staying in South Korea has exceeded one million, reaching 1,418,149 as of 2011. Among these foreigners, 720,000 people are migrant workers. Among 1.4 million, China leads the top with 49.6%, followed by the United States (9.6%), Vietnam (8.2%), Japan (3.7%), Philippines (3.5), and Thailand (3.0%). As of September 2011, there are 550,000 workers with a legal working visa, 93,000 students abroad in the workforce, and about 170,000 illegal workers.

The goal of this essay is to assess current recruitment process and its details for foreigners in Korea about whether they violate certain principles of justice, to determine the most suitable political philosophy to be applied in 2013, and give remedies to each injustice. In this essay I will try to explain the concept of justice that Korean society thinks in terms of labor market for foreigners. What is the political philosophy that needs to be applied in Korea the most in order to remedy the most serious problem? If so, how do we measure and decide that problem?

 

(2) Current research trends

            Current research on foreign workers focused on efficient management, and government policy in order to control supply and demand. It covered how to legally resolve problems of protection of rights of foreign workers with arguments whether it advocates or opposes foreign workforce import as it is. Rather than focusing on founding principles of the government's policy making behavior and customs of companies hiring foreign workers, current research so far has been focused only on raising precision of statistics or giving solutions to improve situations of Korea and Korean employers. It can be natural that Korean government organizations and related research institutes have incentives to work for the benefit of Korea in its perspective, but they seem to have almost neglected perspectives of foreign workers, notably whether current recruiting system is just.

 

(3) Methodology

This essay does not try to find out which regulation or institution should be fixed. Everyone has different thoughts about justice, so it is impossible to say that Korea should unify every rules based on utilitarianism, for example. But there are certainly Korean labor practices based on specific principles of justice. In order to lead to the conclusion, this essay will suggest the starting point of premise or fact that all principles of justice agree upon, and then criticize current government institutions or real life examples based on it.

 

II. Elements of Political Liberalism and Distributive Justice

(1) Increased quota of foreign workers 

Given the situation that small-scale low-skill manufacturing industry in the suburban areas of Seoul, notably in Ansan, Hwaseong, Siheung and Bucheon, is in dearth of Korean native workers who can voluntarily devote their skills and time in those factories, migrant workers, whether legal or illegal, are forming the lower stratum of the necessary workforce. Thus, the concept of community should be the entire workforce needed to move the economy of Korea, and migrant workers have legitimate cause in terms of justice to continue working. Regardless of possible discrimination in recruiting new migrant workers in factories, they have a just right to work for the solidarity with Korean factory owners and other Korean workers. Furthermore, advocating the equal right or liberty of foreign workers to work in Korea is necessary to maintain good reputation of Korean government in international relations. In institutionalism rooted in Kant's democratic peace theory, preserving infrastructure and resources including human resources plays an important part to eschew war between democratic countries. A maxim of one country should be applied to other countries as well, giving birth to the idea of reciprocity as a result, regardless of difference of GDP and national power.

In fact, Korean government thinks of lack of domestic workforce in 3D industry as a serious problem, and as a response it has started recruitment promotion of migrant workers in regions outside Seoul metropolitan area from 2007. Even if the institution was made in order to follow the difference principle, to subsidize industries with the least attractiveness as a workplace, there cannot be no complaints about discrimination between the similar recipients of benefits. The government sets a maximum number of workers available to work in a specific business unit, as equal or less than 5 people when number of employees entitled medical insurance is equal or less than 10, 10 people for 11~50 people, 15 people for 51~100 people, regardless of field of business. This quota works as a measure to protect Korean domestic workers in general. However, as Seoul also accommodates similar companies having a same problem of lack of workers, business units in Seoul complain about reverse discrimination against the government measure to allow business units in outside Seoul to employ 20% of foreign workers more. (경인일보, "외국인 고용허가제 '수도권 역차별', July 17, 2012) If the quota is set less than quantity of demand for annual foreign workers in this continuing lack of workforce, companies would employ more illegal workers not visible in the documentation which would eventually lead to higher crime rate caused by those workers. This is one example of the institution to manipulate freedom based on administrative area.

Also, liberal idea suggested by the government has good intention, but it ruined the smooth cycle of workforce in practice. The government does not give chance to be recruited legally to all foreign workers currently in Korea. There is no member in government who feels solidarity with foreign workers in general. As a result, owners of factories in Gyeonggi province started to oust illegal workers for fear that they might also be caught of illegally recruiting workers without government authorization. Political liberalism led to loss of high quality but illegal workers who can fluently speak Korean.

 

(2) Redistribution or difference principle

From the Rawls's perspective of distributive justice, remedying problems of a free market in order to give advantage to economic actors with less capability or less attractiveness produces a just distribution of income and wealth because the society's moral perspective makes distribution of workers, including domestic and foreign, arbitrary. Government simply focuses on natural assets of each workplace and tries to minimize the effect of natural lottery and historical or social fortune. Every workplace deserves hiring foreign workers at wages lower than that for Korean workers, and the one with apparently more inferior condition gets more ability to recruit foreigners. Government showed the real example of ambiguous barometer of the least advantaged: actually there is no such difference between workplaces in suburbs and central Seoul. If there is no clear distinction that objectively finds out a group of people that need redistribution of benefits without possibility of reverse discrimination, how can we realize the ideal that Rawls imagined?

While the number of foreign workers is constantly spiking up in order to form a multicultural society in Korea, native Koreans are still stuck with the idea of 'one ethnic identity and related myth'. That is why in July 2007, 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 strongly urged Korea to renounce on the idea of one ethnic tribe in order to promote the multiethnic characteristic and move on relevant government dispositions. But Korea still has distribution of work field based on certain ethnic groups. This is ascribed to the image created by the mass communication media, that the white people work as English teachers with high salaries in public and private schools, hakwons and private large companies. 

What would be the principles of justice for the society of migration in South Korea? We can say that those born from their Southeast Asian parents in South Korea are going to be integrated in a South Korean society, and they will die in this country, but newly came migrants are not deemed as having equal conceptions of good and sense of justice. Since a substantial majority of politically active citizens support an enduring and secure democratic regime, Korean democratic society is ruled by free and equal citizens based on Korean ethnic priorities. There is a rare chance that migrants form a majority in a specific subgroup of society, and Korea is not a cosmopolitan society from its short history of global openness. Rawls's principles of justice cannot explain solutions to the society where reasonable people from abroad suddenly integrate into one homogeneous society, so that minority which is vulnerable to making their moral and religious doctrines is completely neglected. Since the starting point becomes different from what he supposed, we cannot predict whether this society would lead to a fair agreement. 

Rawls's hypothetical setting of conditions is helpful for his logical linking of thoughts, but if only a minority of a society is not the target of social cooperation, his theory lacks explanatory power. We can think of intervention of a great power of a mediator or state as Hobbes purported, so that making institutions and enforcement mechanism can solve all conflicts and introduce monitored cooperation. However, political liberalism only focuses on citizens having political reason and political agreement with the principle of toleration. Are citizens in South Korea tolerant to the disabled and migrants? What would be the result if some people are not willing to cooperate with them?

As communitarianism works in favor of nationality decided as a community that does not change, it leads to obligations of solidarity for citizens having nationality in South Korea. Some government officials and most employers have this principle going beyond political liberalism. This is the point where free will of foreign workers becomes nonexistent. Against those foreigners who claim their rights to expand the labor market to the global level to work, Walzer might reject the appeal to rights and adopts in its place a conception of membership in a community, a conception that poses a powerful challenge to political theories that put rights first. When obligation comes first than rights mixed with a Korean traditional Confucian hierarchy and meritocracy mixed with racial discrimination, it creates a worst situation for foreign workers, especially Joseonjok, Japanese students against employers having anti-Japanese nationalist sentiment, and most severely, migrant workers from Southwest Asia.

 

III. Elements of Utilitarianism 

(1) Status transfer and job training

In order to maximize utility for the majority, Korean government actively supported migrant workers, especially illegal workers from low income countries compared to domestic workers. Abrupt economic growth led to rise in salary, thus making numerous small and medium sized industries based on 3D-difficult, dirty, dangerous- jobs trapped in lack of workforce. Whereas big companies used their capital to move the production facilities to overseas in order to lower wages and focus on capital, SMEs could not have another choice but to stay in Korea. Recognizing this problem and gap, the government started economic cooperation to make foreigners staying in Korea officially register as students of job training program in Korean SMEs and thus admitting regular position recruitment to help eliminate lack of workforce in those enterprises.

After the foreign workers are trained enough to be called skilled workers, after 4 years and 10 months of continuous work in one small-sized workplace without replacement, from July 2012 they have a chance to work again in the same workplace easily after entering Korea again after 3 months of departure. This should not be misconstrued as government intervention, but rather this is a government measure towards bringing more freedom of choice of individuals.

In order to change the status of illegal workers to legal workers, the government introduced a D3 visa of job trainees, in November 1991 for foreign investment companies and in November 1993 for small-and-medium-sized manufacturers, construction companies and farming businesses. Before the recruitment process, government intervened in order to raise utility of a community of workers and employers. Since the utility of Korean employers to have an advantage to mistreat foreign employees must be valued lower than the utility of foreign employees getting changed status from illegal to legal employee, this government measure is worth called utilitarian measure.

 

(2) Wage discrimination by companies

If the government did not care anything about wage discrimination between migrant and domestic workers, then the companies' measure of wage discrimination can be said to have followed the principle of utilitarianism, where more and more people think that they are well off with or without arbitrary help. Similar to price discrimination in order to maximize producer surplus in economics, wage discrimination is used in order to maximize surplus of producer of labor. As more SMEs are happy that they can employ workers in order to move their machines, and migrant workers are given legal rights to work in Korea, it looks like having achieved the greatest utility for the greatest number.

Employers of SMEs intend to justify their wage policy by arguing that giving salaries to workers based on Won-foreign currency exchange rate is without problem. In fact, government supports this idea and even foreign workers do not think of this as a big problem, since the wage they get can bring more financial benefit to their family when the money is transferred, than the benefit if they worked in their mother countries. Government decision is based on one research conducted by Korea Labor Institute in 2002. It estimates wage per hour for domestic workers as 4,833 KRW, while setting the appropriate wage per hour for foreign workers as 3,183 KRW, 65.9% of the Korean one. Productivity estimates of foreign workers is 76.4% compared to the Korean one, saying that hiring foreign workforce is advantageous for employers in terms of productivity per wage. Although the sample is limited to regular workers in construction sites, it tries to show how foreign workers might be happy if they are just hired without demanding detailed good working conditions or equality with other Korean workers. In fact they are not treated as equal ends in themselves, although it is not easy to find Korean substitute workers in Korea who are able to do framing, carpentry and plasterwork which all need careful technic.

But is this good or just in the long run? Before long, migrant workers will realize that actually there does not need to be any difference in treatment or value of a person according to nationality. If they improve language skills and be more impregnated to Korean business norms and culture, discourse about difference of productivity will lose its justification. Like Korean and Japanese working in France having same treatment as the French workers, workers skilled enough in Bangladesh who do not claim any difference in working skills with another Korean co-worker will demand higher wages. If the factory denies it, then the efforts of government towards maximum utility erode to fall back to a situation of lack of workers where the both sides are not satisfied. And most importantly, utilitarian approach of the government lacks justification because even in the situation where it's unclear why maximizing utility should be considered a moral duty, government pursued wage discrimination as a moral duty in its perspective. 

 

IV. Elements of Libertarianism

(1) No intervention of government

There is no intervention of government for the recruiting process and events organized by foreign workers as associations. For example, there is no limitation to make events for gathering of foreign workers according to their nationality, in cinemas in Daehakno or at Hangang riverside park.

However, recruitment process already set up based on libertarian ideas has led to minimalist state role in treating illegal workers pulling side effects, as often seen in the case like this: "I worked in more than 30 workplaces over the past 7 years. I only received payments from 7 of them, and received none from others where I cannot use any possible means because I do not own a visa. I have more than 5 million won unpaid, and if I try to fight with the owner, then the owner will call me to the police. I have no choice but to leave that kind of workplace." The state's role is limited to setting up a fair condition for migrant workers to be recruited, and it does not expand to managing and monitoring things happening inside the workplace after the recruitment process. The government does not care about them because after the recruitment, workers have become means inside the realm of private property. Since libertarianism also emphasizes fair opportunity as an element of justice, the government takes no humanitarian approach in order to save lives of migrant workers illegally working in Korea. This is linked to the principle of 'no paternalism' of the government, that employers have a directive to have a rational choice, and foreign workers also have it. However, current situation of the labor market for foreigners is not suitable for positive development of a libertarian society. Self-ownership can be achieved, but itself cannot bring any more benefit to justify income disparity and unequal living conditions, because the minimal state even set a difference between legal and illegal workers. Freedom is a value praised by libertarians, but in Korea for foreign workers freedom means nothing. And even employers do not benefit at all by freedom of workers and themselves to participate in business having concept of private property.

 

V. Conclusion: Most suitable principle of justice for Korea

The government and companies can take various principles of justice, but in order to cope with the most serious problem that threats lives of people, the most needed remedy is giving equal rights of participation to the labor market, which is most inclined to political liberalism. Korea is currently not living by domestic workforce and material demand only, so the country's identity is destined to move towards a community to a global level. This expanded identity obviously leads to justification of trade of workforce, so that Korea must be prepared in providing business and institutional environment. Political liberalism that does not exceed the limit to go further to communitarianism to think of ourselves as citizens having Korean nationality and working for the benefit of Korean ethnic community, is the most needed principle in future legislation of government and recruitment process of Korean companies.

Utilitarian approach of Korean government and employers is also accepted, but it comes second to political liberalism. As long as discrimination against foreign workers exists, government intervention towards bringing up their rights would lead to decreased utility for employers who want decent American, European or Chinese workers. There are also general taxpayers who do not want the government to spend money on job training for foreign workers. 

However, what this essay claims has limitation in determining principles of justice by quantitative methods using various statistical data. Also, this essay did not prove the current situation of sentiments of racial discrimination and nationalism, but rather deemed it as a premise for argument. But this analysis would surely help understand the problem and give Korean government officials and employers ways of thinking towards economic benefit along with achieving justice.

 


2013년 1학기 정의론 (장동진 교수님) Term Paper입니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글.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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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극장, 오페라 혹은 전람회들(초연이나 야간 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은 상류층 관객들이 상류 사회의 일정이 갖는 통합적이면서도 독특한 리듬에 따라 상류 사회의 구성원임을 드러내고 체험할 수 있는 사회 의식의 기회나 구실이 된다.

- 샤롯데시어터, OO아트홀, 이태원 블루스퀘어 등등..

 이와 반대로, 미술관은 상류 사회의 의식과 결합된 사회적 만족을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의상에 관한 어떠한 강제도 없이, 필요한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입장시킨다. 더욱이, 극장, 특히 음악당과 버라이어티 쇼들과는 달리, 미술관은 항상 순수 미학적인 것이 요구되는 정화되고 승화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점은 도서관과 다소 비슷한데, 미술관은 종종 소박한 기쁨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경험과 지식의 축적 또는 승인과 해독의 즐거움을 강하게 지향하는 엄격하고 준(準)-학자적인 성향을 요구하는 것이다.

- 삼청동 아트선재센터, 인사동 미술관, 정독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등등..


미술관을 도서관과 관련짓는 경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중간계급 관람자들과 교수들이다.


실제로, 하나의 계급 혹은 계급분파는 지식인이나 예술가 일반에 대해 (반-주지주의가 쁘띠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의 어떤 분파들의 결정적인 특징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 계급이나 분파가 내리는 전체적인 판단에 의해 정의된다기보다는 생산의 장에서 제공되는 선택지 중에서 그 계급이나 분파가 택하는 예술가나 작가들에 의해 정의된다.

- 그래서 내가 속하고 싶은 계급은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내세워 놓았듯이 Fritz Lang, Jacques Tati, Jean-Pierre Jeunet 영화감독, 음악가로는 Yellow Magic Orchestra, 호시노 겐, 캐스커 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 세련되고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약자에 대한 관심도 갖되 쿨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


오스트레일리아의 신화에서, 주술적인 수단에 의해 20세에 가질 수 있는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면서 세대들간의 관계구조를 전복시키는 늙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나이에 젊은 좌파들과 교제하고 세도가와는 교제하지 않은 사르트르 식으로 사회질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은폐되어 있는 기반의 하나, 스피노자가 공순(恭順)obsequium이라고 부른 것, 즉 '서로 존중해 주고' 그 존경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성향을 가끔씩 문제시할 수 있다.

- 내가 지도층이 되고 지배계층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같은 지배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부패하였거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한 척 하고 대접해주지만 속으로 저 먼 곳의 젊은 사람들이 가지는 혁신적인 생각을 키워주어 나중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나와 정말 뜻이 맞는 사람에게는 피식 웃으면서 진심으로 내가 가진 능력과 정보를 모두 공유할 것이며,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문제 있다 싶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더 사근사근하게 대할 것이다. 약간의 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업들(또는 최소한, 의사들)은 다른 것들 중에서 가장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을 옹호함으로써, 지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와 그 지위가 요구하는 능력들을 성공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 대학교 학회는 맬더스주의적인 지위접근의 조건들이다.

사실, 자격증과 승진에 따른 접근양식의 이중성, 그리고 그러한 이중성에 상응하면서 접근양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특권에 대한 정연한 옹호를 방해하는 분할들로 인하여, 이러한 범주들은 교육연한의 연장이 가지는 효과들에 의해 훨씬 직접적으로 영향받아 왔다. 지위에 특권을 부여하는 자격증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교육연한의 연장은 자격증과 지위 사이의 실제 관계와 자격증 보유자와 비보유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위에 대한 경쟁의 형태를 변형시켜 왔던 것이다.

- 한국 대학생들의 졸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격증의 수(이력서의 한줄 한줄을 모두 이 '자격증'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많아지고, 이에 따라 경쟁의 형태는 변형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다면 사실 전문성까지 물어보지 않고 인성만 보는 일본식 채용 시스템이 이력서와 전문성을 모두 따지는 한국식 채용 시스템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르 몽드'지의 구인란에 대한 간단한 분석

새로운 관리직의 모습

1. 보다 높은 수준의 교섭 에 소질이 있는: 수완을 가지고 처신할 줄 아는, 모든 수준의 교섭에 예민한 감각, 모든 수준의 교섭, 보다 높은 수준에서 공무원과 교섭하는 데에 익숙한 아주 훌륭한 협상가, 은행과의 협상, 관공서들과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것, 직업 조직 내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것, 교섭과 추진에 대한 의욕, 과제 해결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 화술의 유창함

2. 그리고 내부 협상에서, 다시 말하면 판매관리부의 책임자로서: 판매와 관리 사이의 조정과 중재에 대한 지속적인 활동

3. 새로운 상업학교들 중의 한 곳에서 공부한: 즉 HEC, INSEAD, 고등상업학교ESC나 고등실업학원Institut supérieur des Affaires(ISA)들이 대체로 함께 거명되는데, 이 학교들은 대개의 경우 '미국의 대학교에서의 이수기간'을 가진다.

4. 다국적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또는 국제 무역에 전념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반드시 필요한 영어실력'과 마케팅, 머천다이징 등에 관한 영어용어, 그리고 '기회opportunité' 등과 같은 영어식 표현들

- 프랑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있었다.


'사업상의 관광여행'

업계의 용어로 '포상 세미나' 와 '고급 세미나'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현대적인 기업들이 자신들의 관리직들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비밀스러운 이익들의 일부를 이룬다. '숙박 설비가 있는 세미나들'(다시 말해서, 하루 이상 지속되고 회사 밖에서 벌어지는 세미나들로서, 1973년에 25,000개의 세미나들이 개최된 것으로 추산되었다)은 '사업상의 관광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호텔들(노보텔, 프랑텔, 소피텔, P.L.M., 메리디엥, 메르뀌르, 모텔르리)을 수반하는 가장 번창하는 산업이 된다.

- 이름이 익숙한 저 호텔들이 세미나 전문 호텔로 지금의 호텔 체인을 가지게 되었구나.

세미나르크Séminarc는 인세아드INSEAD의 한 졸업생이 고안해 낸 것인데, 그는 가을과 봄의 여섯 달 동안 침체되어 있는 레자르끄Les Arcs의 휴양지가 가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그 곳을 세미나 센터로 만들었다. 이 뉴스를 실은 경제 주간지에 따르면, '가을과 봄은 상급 관리직들이 명상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성수기에는 최고 경영자를 위한 호화 세미나들과 주요 고객들을 맞아들이는 반면, 비수기인 겨울에는 '열심히 공부했던 판매부원들을 위한 재교육-포상 세미나들'로 예약되어 있다.

- 겨울에 대기업 신입사원들이 리조트로 많이 가는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사기업 관리직(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 보다 젊은 나이에 영향력 있는 위치에 도달하고, 대체로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고, 보다 대규모적이고 현대적인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보다 젊고 현대적이며, 거의 전부는 금융 일간지인 Les Echos와 경제/금융 전문 주간지들을 읽는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대체로 세련된 동시에 활동적이고, 많은 경우에 요트, 스키, 수상스키, 테니스, 그리고 이차적으로 승마와 골프처럼 '인공두뇌적'인cybernétiques 스포츠에 열중하고, 브리지와 특히 체스처럼 '지적'인 동시에 세련된 오락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외국을 지향하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열려 있는 현대적인 관리직이 가지는 역할을 자신들과 보다 철저하게 동일시한다.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고, 외국어로 쓰여진 잡지들을 읽으며, 현대적인 집기를 가지고 있다.


취향 생산자들taste makers: 관광회사, 신문/잡지사, 출판사와 영화사, 의류업계와 광고회사, 실내장식회사와 부동산개발회사


신흥 부르주아지라는 계급분파는 학교, 교회나 회사에서처럼 은근한 강제manière douce에 기초한,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모든 표현들(특히 의복과 같은 것에서)에 대한 완곡어법과 그러한 거리 두리를 안정시키는 데 적합한 귀족적인 엄격함에 대한 계산된 포기로 나타나는 '느긋한décontracté' 생활양식에 기초한 새로운 지배양식을 창안하고,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계급분파이다.

- 정말 모든 '신'계급, '신'생활양식은 미국에서부터 왔구나. 전세계에서 표준을 만든 나라.


쁘띠 부르주아에게 가족관계와 친구관계는 더 이상 불행과 재난, 고독과 빈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험도, 필요한 경우에 도움의 손길이나 대부, 직업을 제공할 수 있는 원조나 보호의 네트워크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아직 인맥 즉 경제 및 문화자본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회관계자본이 아니다. 그러한 인맥이 가져다주는 사의(謝意)와 상호부조, 연대, 물질적 및 상징적인 만족은 장기적으로 또는 단기적으로 그들에게는 금지된 사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이 얼마가 들든 간에 제거해야 할 질곡에 지나지 않는다.

- 대학생의 대부분은 쁘띠 부르주아로 상승 지향적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만약 대학생이라는 집단이 상승 지향적이 아니고 쁘띠 부르주아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훨씬 행복하고 '안녕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대량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번식력을 거부하면서, 쁘띠 부르주아지는 제한적/선택적 재생산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자주 그들의 수입계급(輸入階級)인 부르주아 계급의 엄밀하게 선택적인 기대에 따라서 구상되고 형태를 갖춘 유일한 생산물에 한정된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도덕은 엄격하고도 엄밀하여, 형식주의와 세심한 시선은 언제나 그 도덕을 편협하고 견고하며 경직되고 과민하며 옹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쁘띠 부르주아지는 그 자신의 사소한 배려와 필요를 좇아 작게 사는 부르주아지이다. 심지어 사회세계와 그 자신의 모든 객관적 관계가 표현되는 신체적 성향조차 부르주아 계급에로 이르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옷차림이나 말(과도한 경계심과 신중함으로 과잉교정된 말), 몸짓, 전체적 거동에서 엄격하고 절도있으며 신중하고 검소한 그에게는 언제나 자유활달한 여유나 폭넓고 통이 큰 너그러움이 조금은 결여되어 있다.

- 작년과 올해의 나를 보는 듯 하여 반성하는 마음이다. 쁘띠 부르주아지의 어두운 단면을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적나라하게 파악하는 문단이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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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방미터의 공간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드넓은 공간을 끊임없이 여행하며 정처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뿌리박고 있는 공간의 반경 1미터에 있는 사람들과 어찌 되었든 같이 살고자 부대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전자는 유유상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후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100평방미터를 쏘다닐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다면 유유상종의 성격을 가지고 살면 된다. 내가 필요할 때 그 범위에 있는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특정한 종류나 성향을 더욱 드러내보여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열광하게 만든다. 


인터넷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의 성향을 더 드러내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터넷에는 자유분방하고 마니아스럽고 고집이 센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의 발달은 시간과 돈의 제약을 없애주어서 대면 커뮤니케이션일 필요가 없는 영역의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넓은 범위를 돌아다닐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각자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이 만날 수 있는 20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가정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20명을 원하는 시각과 장소에서 만나고자 할 때 자신이 있는 곳 주변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특정한 종류나 성향을 강조하면 나와 종류나 성향이 다른 사람이 나를 피하게 되므로, 나는 어떠한 종류나 성향도 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백색의 그릇처럼 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유유상종이 맞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유유상종은 이상에 불과하고 현실은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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