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국의 청년실업이 무엇 때문이냐고 질문한다면 간단하게 한국에만 있는 고시촌과 학원 문화가 그 원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학원에 의지하거나 고시에만 매달리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문계열의 청년들이 전체 청년들의 1/3이고 그중 고시와 관련된 과에 속한 청년들이 절반이라면 1/6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화가 한국 전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시험을 준비하게 해주는 동네, 시험은 공정한 경쟁이라고 비쳐질 수도 있지만 다양성을 파괴하고 100명을 경제활동인구로 쓸 수도 있을 것을 10-20명만 쓰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다른 시험과 달리 고시와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것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동네로 가야만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믿는다. CPA, CPA, 제2외국어, 프로그래밍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사람은 따로 그러한 자격을 준비하게 해주는 동네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원래 있던 곳에서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병행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시와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고귀하게 남겨두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계속 고시촌이나 학원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지만 그들의 준비기간은 시험을 더 잘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경제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직업이 없는 사람이 직업을 찾아다니면서 이 직업 저 직업 산전수전을 겪는다면 그 사람은 커피를 만들고 고기집 메뉴를 서빙했으며 건물 유리창을 닦았다. 재화와 서비스가 불특정다수에게 공급되었다. 언제 붙나 하고 생각만 하고 풀었던 문제집을 또 풀면 지식이 한 겹 더 쌓이고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시험이 매월 있거나, 내가 원하는 날짜에 아무 때나 볼 수 있거나, 적어도 1년에 3번 이상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한 번 떨어지면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한다는 점도 고시와 입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 정(靜)적인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게 한다.

 한겨레의 2008년 기사를 보면 일본의 청년실업 연구 시민단체가 한국의 노량진 고시촌을 찾고 '만약 고시에서 떨어지면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길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신문은 답을 주지 않는다. 고시는 떨어진 사람에게 다른 길을 주지 않는다. 고시를 위해 배운 지식을 면접이나 회사/공공기관에서 만든 필기시험에 그대로 옮겨 사용하여 인턴이나 정규직 자리를 얻는 경우는 없지 않다. 9급공무원, 7급공무원, 한국전력 등 정부 부문에는 꽤나 많은데 고시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 Plan B로 전환하지 않고 계속 매달린다. 명분을 신경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험이고, 점진적인 성장보다는 한번에 아주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만드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달콤함을 알게 되면 중독되어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 이런 식의 큰 시험을 보지 않고 인턴사원과 정직원 취업만을 통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가면서 진로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 하에서 정해진 학습 범위를 가지고 해결 능력을 다투는 형태의 경쟁보다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한 가지를 끊임없이 홍보하여 자기 편의 사람을 만들어가며 형성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한 단계씩 진보한다. 그래서 한국보다 이력서에 함께 첨부되는 referral(추천서)이 중요하고, 추천서를 써준 사람은 추천서에 대해 큰 책임을 진다. 추천서를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추천서를 쓴 사람이 지원자의 자질을 보증하는 사람이 되며, 당연히 보증인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업종에 알려져 있으면 지원자의 자질도 높게 평가된다. 한국보다 더 인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시스템이 미국이다. 하지만 이 인맥은 실제로 직장에 들어간 후에 보여준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맥으로, 한국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정적인 학연과 지연과는 전혀 다르다. LinkedIn에서 같은 과 나온 선배,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람만 검색해서 인맥 신청을 모조리 한다고 사람들이 받아줄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 동(動)적인 인맥 형성 과정은 가장 높은 자리를 바로 안겨주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모든 사람이 적합한 장소에 고용되어 일하게 해준다. 동적인 인맥 형성 과정의 문화가 다수에게 좋은 가치로 퍼져 있으면 사람들은 Boot Camp를 소중한 일자리로 생각하게 되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 혹은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나의 꿈을 펼칠 수 없으니 빨리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다짐은 크던 작던 경제학이 '생산'으로 여기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고시촌과 학원 문화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선비 문화와 연계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연계가 완전히 없지는 않다. 고위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에 응시하려는 대학생은 그에 실패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사회에 내보이지 않고 그 시험 하나에만 매달리더라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 수험생의 각 가정이 떠안는 경제적 부담은 그 가정 안에만 해당되는 '집안 사정'일 뿐 그 집안 사정이 모여서 청년들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된다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계속 고시촌을 미화하려는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공부를 잘 해서 고시에 빨리 합격하고 학원가를 빨리 탈출하는 수험생들에게는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적성을 잘 파악하고 적시에 뛰어들어 최고의 성과를 얻고 박수를 받을 때 떠난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Plan B가 있느냐는 점이다. 수험생 각자가 출구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는 고시생이고 다 같은 수험생이며 고시촌과 학원가는 우리의 명분을 정당화해주는 공동체의 방패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중소기업 진흥이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의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그리 효과적으로 관련되지 않고 정부 혼자 벌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으로 남아있게 된다.

 건전한 비판과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답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한 진단은 함께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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