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스터링 계수를 한국의 인터넷에 적용시켰을 때 한국어로 존재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 모든 컨텐츠를 분류하고 연결시킨 네이버와 같은 포털이 있는 한국 인터넷은 매우 낮은 클러스터링 계수를 갖는다. 네이버는 허브이며, 허브가 많은 네트워크는 이 노드에서 저 노드로 가기 위해 그 허브를 거쳐야 하는 구조를 제공함으로써 마치 저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톨게이트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권력과 장애물이 존재하게 만든다. 저 노드의 존재를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에 허브는 전 네트워크를 상대로 자신을 살펴보고 관찰한 다음 지나가라는 무언의 구조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 컨텐츠의 적은 양과 퍼가기를 통해 부풀려진 컨텐츠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구조적 권력은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한국의 인재들은 조금 더 탄탄하고 강한 허브를 만들기 위해 오프라인 사회의 구조가 갖는 고연봉 정규직으로 몰려 일한다. 인터넷 바깥에서도 한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쏠림 현상은 인터넷 안에서도 그와 같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는 마치 20대 후반이 되어 주택마련을 위한 대출을 할 때 반드시 제1금융권의 은행을 통해야 하는 것처럼, 사금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쪽은 위험한 사업자가 많이 몰려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은행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정해놓은 이자율과 상환조건을 따르는 것처럼 개인이 인터넷에 관한 한 구조에 편입하게 만든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1960년대의 연구원들은 노드와 노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게 하는 순수한 목적에만 치중했으며 당시에는 집단지성을 인터넷에서 활용한다는 개념의 정립이 되지 않던 때였다. 초창기 인터넷은 구조가 없는 무작위적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만들어졌다. 야후를 필두로 디렉토리화를 시도하기 전까지는 에르되스와 레니가 주장한 것처럼 딱히 자주 이야기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의 그룹도 없고 모두가 서로에게 동일한 정도로 친밀했다. 그래서 의견 형성을 위한 정보 습득 과정에서 쏠림이 없었다. 


    그렇다면 허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공정하고 평등하고 민주주의적인 인터넷인가? 그러한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홈페이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이 주는 편의성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것이고, 그러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인터넷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가장 원할 것으로 생각되는 가장 풍부한 정보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네이버 통합검색의 검색결과 순서는 그러한 사용자의 가정에서 만들어졌고, 구글에서 아무 검색어나 입력했을 때 위키피디아의 항목 페이지가 검색결과 최상단에 올라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60년대의 이메일과 일대일 메시지와 같은 기술로는 집단지성의 활동을 수행할 수 없었다. 집단지성이 대두되면서 허브의 역할을 하는 사이트, 사회적으로 약속된 광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지성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지금의 허브 중심의 거대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결과를 낳을 소지가 다분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현재 인터넷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정치와의 연계를 모색하는 네티즌들이 마주한 딜레마인 것이다. 같이 의견을 공유하려면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터페이스를 통해야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완벽히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구조를 만들 수 없는 여건에 놓여있다.


     허브가 없는 인터넷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이 드넓은 인터넷 공간에서 남들도 저 유명인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니 나도 팔로우하자는 부화뇌동은 금물이며, 전세계 공항 간의 항공로가 수송과 정비에 최대로 효율적인 국제노선 항공기 운행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네트워크와 같이 각자가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연결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파워 트위터리안들을 중심으로 결집한 사람들이 갖는 정치적 경향의 배타성은 허브를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고, 이는 잘 쓰면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을 허브가 주축이 된 불평등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허브가 없는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와 연결된 웹사이트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나와 ‘약한 연계’를 가진 타인을 통해서 그 웹사이트로 두번에 걸쳐서 갈 수도 있어야 한다. 추종자를 거느린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가깝고 동등한 관심을 받는 평범한 개인이 더 바람직한 네티즌으로 인식될 때, 그 때 인터넷은 포털 없이도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멱함수 법칙의 네트워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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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아시아 지역협력이 논의된 지난 10년간 어느 것이 지속적으로 모든 국가가 동의하는 유일한 지역통합기구로 자리하여 계속될 것인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선진국과 신흥개발국 간의 협력이 가져오는 이득을 모색하는 경제협력 중심의 지역으로 EU와 그 성격을 달리한다.

     1997년 금융위기 때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지 못한 APEC은 정보수집 및 교환 차원에만 머물렀다. APEC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속 국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정보만을 미국과 일본에게 가져다주었고, 두 나라 외의 국가들은 협력을 통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얻는 선에서 그쳤다. 과거 APEC의 실패가 동아시아 지역 역내 국가들간 본격적인 지역협력을 추진하게끔 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APEC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통합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국가는 일본이며, 최영종의 논문과는 달리 한일 FTA는 포기하고 한중일 FTA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보아 결국 경제규모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의 한중일 3국만이 지역주의에 가장 확실한 자세로 뛰어들고 있음이 감지된다. 한국은 이전에도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공동체 협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APEC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적 역할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자국의 향후의 경제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 현재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GDP면에서 약하다고 평가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지역협력 안으로 포섭하려 한다.

     일본 외무성과 통산성은 미국과의 단독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안행행 경제성장으로 ASEAN 국가들을 점차 설득하며 그들과의 수평적인 협력을 모색했다. 만약 일본이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커뮤니티 구상, 일-싱가포르 신시대 경제 연계협정을 넘어서서 ASEAN과의 관계 강화에 열심히 참여한다면 APEC에 미국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력을 상실했다는 배긍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의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ASEAN 국가들이 미국과 교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APEC의 참여 국가 확대가 논의되고 있고, 중간에 일본의 역할이 증대되면 그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던 APEC 의 긍정적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할 증대는 APEC에는 도움을 주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주인공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국가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일본의 미국에의 의존, 미국의 hub and spokes 모델의 존중,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경쟁심리이다.

     지역공동체는 지리적 근접성, 문화의 상대적 공통성, 운명의 공동성, 문제의 공통성을 지닌다고 히라노 겐이치로 교수는 이야기하였다. 이제 한중일은 비슷한 공통성을 지닌다 해도 ASEAN과 한중일 사이의 공통점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무역상대국이 아닌 지역공동체로서 ASEAN 국가를 받아들이려면 과거의 역사나 문화와는 상관없이 미래를 보고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지역주의란 경제정책의 협조나 조정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정치적 과정이고, 이때 인종의 차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연합에서 프랑스와 튀니지는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다양한 상품의 교역관계 때문에 서로 연합에 참가하였고 이는 중국과 호주, 일본과 호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동안 호주가 설립을 주도했던 APEC이 아시아 국가들, 미국, 그리고 호주를 포함하는 구속력 있는 제도를 만들지는 않았다. 호주는 언제든 내부 정치상황에 맞추어 그때그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지역협력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백인 사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그 정치과정에 주변의 황인 국가가 전혀 간섭을 할 수 없음은 내부에서 가장 잘 조율된 이익을 반영한다는 Frieden, Milner, Rogowski 등의 국내적 지역주의 설명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2007년 노무현 정부, 2010년의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농산물 분야와 같이 농민과 서민의 삶에 직결되는 분야를 제외하고 자유무역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미국과의 통상교섭에 나서는 대표는 야당이 FTA를 반대하더라도 외교통상부의 찬성론에 따라 꾸준히 협정을 구체화하고 체결해왔다. 이제 한국은 ASEAN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호주와 같이 불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점은 유리하지만, 중국과 일본 중 어느 국가의 이익에 더 부합하도록 한국에 적용되는 제도를 만들어갈 지를 결정할 때 삼국 협의체 안에서 주도권이 약해질 소지가 있다. 2001년과 2002년의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동아시아 비전그룹과 동아시아 연구그룹은 연구 단계였기 때문에 한국이 주도하였지만, 막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어떤 국가가 현재 더 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무역관계에서 우위에 있는지를 따지고 나면 한국의 주도권은 약해질 것이다. 싱가포르는 일본과 양자적 경제협력을 추진하면서 한국이 제시한 동아시아경제공동체 아이디어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같이 ASEAN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에 맞추어주면서 경제적 협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현재 한국의 동아시아 대상 경제협력 양상은 TPP에 참여하기로 해 미국과 더욱 가까워진 일본보다는 중국에 더 가깝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논의할 때 중심국가는 중국이 되고, 중국과 미국의 주도권 하에 일본이 두 지역기구 간의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재의 난립하는 지역협력기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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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1장의 주제는 공유와 그에 따른 언론의 자유, 그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에 대한 내용이다. 20세기와 다르게 21세기는 더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일에 혁신의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집단지성’이 중요해지고 20세기에는 그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가 이제 폭발적인 성장을 꾀하려 한다.
     웹은 평등에 유익하다고도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는 국제금융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앞으로 주식시장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아는 경우 그 정보가 인터넷으로 공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한번 올라간 정보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지만, 어떤 정보를 올리느냐는 웹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의 판단을 통해 결정하는 한계가 아직 남아있다.
     나는 이미 좋은 연줄을 확보한 사람들이 결합하도록 허용해 기득권을 강화한다는 주장에 매우 동의한다. 연줄이 가장 잘 활용되는 공간은 페이스북이다. 오프라인 상의 지인은 온라인에서도 만나서, 오프라인에서 서로가 다른 도시 또는 다른 국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서 회의를 함으로써 공격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강력한 의견 형성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내가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재불한인회의 한 임원과 그의 한국 생활중 만난 업계 관계자와 지인들은 그 임원이 주불한국대사관의 영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영사가 자신을 무시하는 언동과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주장과 동조 의견 형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에 있는 커뮤니티도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져 한때 주불한국대사관이 인터넷 상의 여론에 대처하기 위해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기득권이 약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인터넷의 여론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쉬워졌다. 기득권이 형성한 여론에 반박하고 컨텐츠를 삭제하거나 신고하는 사람은 약자이므로 행동반경에 제한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로 기득권을 고발하기 위하여 형성한 여론은 쉽게 진작될수 있다.
     웹에서의 대화가 대부분 무질서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트위터만 보아도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화제를 정렬하고, 반드시 댓글을 달고 먼저 말한 사람을 멘션하여 대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웹의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웹에서의 대화는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도 소통이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소통을 촉진한다. 물론 한 명의 유명인에 대해 수만 개의 댓글이나 멘션이 달린다면 과부하로 인해 소통이 불가능하겠지만 일반적인 개인들은 오프라인 광장에서의 대화 방식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놓아 정부에서도 강조했던 네티켓을 몸소 실천하며 토론에 임한다.
     웹을 이용한 창의적인 협업방식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있고, 흔히 웹2.0 기술을 사용한 전자정부를 구현했다고 하는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등에서 발전의 소지를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 불평등의 완화, 자유와 집단 창의성의 증진을 목적으로 웹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따로 만들어놓은 웹사이트에 모이기로 약속하고 그곳에서 함께 협의한 주제에 대해 일한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이와 같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협업에 익숙해있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에 일반인들도 참여하면서 웹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유와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효과적인 협업방식을 통해 상부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조직적으로 협업하는 아이러브비즈와 같은 사례는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진행된 ‘I can do it’ 프로젝트에서도 발견된다. 숲속에 불법으로 버려진 쓰레기를 한명이 발견하여 그 좌표를 네트워크에 공유하면 다른 참가자들이 그 사람과 같은 조를 이루기 위해 신청을 하고, 그렇게 각 지점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조가 자연스럽게 확정되면 출동하여 쓰레기를 처리하고 결과를 네트워크에 다시 보고한다. 피라미드형 위계질서가 없어도 공동으로 행동할 규칙이 만들어져 있으면 사람들은 그 규칙의 틀 안으로 들어가서 공동의 작업을 진행한다. 에스토니아의 이 프로그램에서 그 규칙은 선착순이었다.
     하지만 1장에서도 소개한 위키피디아가 현재 큰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 자유롭게 참여와 탈퇴가 보장된 무료 집단지성 사업에서는 정작 운영에 필요한 인력이나 자금의 조달이 힘든 경우가 발생한다. 누가 돈을 모으는 일을 책임지고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평등주의는 불가능하다. 위키피디아의 최종 글 선정을 핵심 집단이 맡는 것처럼 자율통제 안에서도 결국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위계질서는 집단에서 필수적임이 웹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위계질서 하에 각자에게 책임성이 부여되면 위키피디아도 모금 활동을 조금 더 조직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운영에 관련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사회적인 활동으로 바뀌게 하는 웹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 사고방식을 바꿀 때 그것이 정치의 영역에 적용된다면 정책 제안을 할 때 반드시 집단지성으로만 제안이 가능한 경우와 기존의 공직자가 제안을 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기존의 게시판에서 일반 이용자가 정책 제안을 글로 올리는 방식을 넘어서서 아이러브비즈 게임과 같은 집단의 참여 틀을 거쳐야만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수많은 개인이 각자 잘하는 특성을 살려 다른 사람들이 그 개인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 개인에게 자긍심을 안겨주는 인센티브를 이용하여 조직이 운영되는 인터넷 상의 집단지성 메커니즘은 기존 정치에서 말하는 ‘리더’와 ‘리더십’이 부재하더라도 조직이 운영되는 결과를 낳는다. 다만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상업화와 폐쇄화에 집단지성이 흡수되지 않도록 모두가 의식을 가지고 깨어있을 필요는 있다. 개인의 집단지성에 대한 팔로워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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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 몹의 등장과 디지털 네이티브의 탄생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정치적 참여 주체를 한국 사회 전체에 일반화시켰다. 지금 초등학생 세대의 아이들이 인터넷을 매우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현재 50대 이상의 우리가 보수적인 기성세대라고 칭하는 분들도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서 현재 인터넷 안에는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해도 된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모두 독립된 웹사이트와 관련 사회연결망서비스 계정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공짜 스마트폰 제도의 혜택으로 웬만하면 인터넷을 스마트폰으로 쓸 수 있는 환경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에서 제한된 이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환경에 놓일 수 없는 저소득층, 업무가 과중하여 온라인에서의 정치 참여가 어려운 이들, 한국어를 쓰고 읽기에 능하지 못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외국인들 또한 존재한다. 인터넷이 가져오는 디지털 거버넌스가 한국 사회에서 정당화될 수 있도록 현재 디지털 거버넌스가 사회 전체의 어느 정도를 덮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와중에 인터넷은 과연 이용자들의 행동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2012년 9월에 출판된 책 '두 얼굴의 네이버'를 읽어보면 한국의 거대 포털사이트의 등장이 오프라인 세계의 정치권력을 어떻게 온라인에서도 옮겨오며 그에 따라 평등한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제한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웹 브라우저 홈페이지에서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네이버 첫페이지의 실시간 검색순위와 뉴스캐스트, 오픈캐스트가 어떤 정보를 선별해 보여주는가는 대중의 취향이 이렇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창인데 이것이 조작될 경우 여론도 함께 조작된다는 논리다.

 한편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숙의민주주의가 대두되고 있는데 숙의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이루기 위해 대의민주주의와 관련된 제도를 점차 폐기하고 수정해야 하는가 고민해보아야 한다. 탈중앙집권화와 개인의 권리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변화 가설에 따라 제도의 수정을 하고 수정된 제도를 반영하는 미디어로서 새로운 웹서비스를 기획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상화 가설에 따라 제도를 유지하고 온라인 상의 의견 공유 서비스를 대의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도구로서 기획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ID가 인터넷에서 개인을 세는 단위인데, 모든 사람이 같은 웹 서비스의 ID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웹 서비스는 민간 차원에서 인터넷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주도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야만 실현이 될 수 있을 것인가도 논의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정보사회와 정치 수업을 듣는 분들에게 가상세계와 현실의 장벽을 없애 가상과 현실 사이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개인의 자아를 온라인으로 새로 구성하고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경험을 온라인에서 하는 경향이 한국인들에게 어느 정도로 적용되는지, 한국인들은 현실과 가상의 벽을 없애는 데 얼마나 호의적인지, 과거 한국인들이 가져온 문화 관습이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등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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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따로 정해져있다는 걸 나중에 알아서 계륵이 되어버린 쪽글 ㅋ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프랑스의 경제체제가 얼마나 비경제적인 동기들로 작동하는지를 느낀 뒤로, 한국의 70-80년대의 경제개발 시대에 나타났던 아는 사람과의 거래, 직업 소개에서 기존의 가업이나 직업공동체나 마을, 교회 등의 영향력 등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치경제론이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의 이윤 추구의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인을 가정한 현상 설명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현재의 모습에도 이것이 적용될 소지는 많이 존재한다.

 가져온 것의 반 이상을 공동체를 위해 내놓는 베르그다마인의 모습에서는 현재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떠올랐다. 오늘날의 기업은 단순히 기업 구성원하고만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추후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집단, 그리고 기업의 경영 활동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집단을 하나의 공동체로 아울러서 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베푸는 활동을 한다. 대기업인 삼성은 예전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마을 건물 재건 등의 보상을 실시하였고, 젊은 대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전자제품을 제공한다. 이는 선심성 행위가 아니며 정치경제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호성의 원리에 의한 행위이다. 정치경제학을 공부할 때 봉사나 기부 그리고 이윤 추구의 동기를 제외하고 현재의 기업 활동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호성의 원리는 가부장적 질서가 한국에 오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다. 안주인의 역할인 내조가 그것이다. 한 가족이 경제 활동에서 부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시장에 참여하는 남편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국 사회 전체가 인식했던 시대가 한국의 전후 재건시대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역시 남성과 여성의 직업 선택이 평등해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하면서 상호성의 원리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상호성의 원리의 약화는 인재 채용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인재 채용은 그동안 개인의 비물질적 가치로 쌓아온 명성과 평판에 따라 스카우트 형태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출발하는 공개채용 전형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는 사람끼리의 네트워크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등가물을 교환할 수 있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인재 시장이 국내 교역 시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신뢰를 절차에 의해 차츰 형성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가격에 의한 자기조정 시장은 경제활동의 역사를 돌이켜볼때 18세기 영국을 필두로 그 당시부터 등장한 최근의 경향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모든 인간이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와 한계효용에 기반한 수요와 공급을 형성하고, 그래서 재분배의 원리 또한 이제는 세금 제도 정도로만 국한되었다. 자본주의 시장의 등장은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고, 책에서 말하는 '국내 시장'은 이제는 그 범위가 전세계로 확대된 상태다.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확대를 주도한 국가에게 유리한 구조적 권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남북 문제와 동서 문제가 세계화 시대의 화두가 되어 지금도 국가들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고대 역사로부터 보면 지금의 시장경제 체제는 인간의 본성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앞으로 태어나는 우리 후대 세대의 아이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모두가 시장 앞에 평등하다는 가정 하에 이윤 추구의 동기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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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자유사상 멘토의 세속적인 계약 : ‘스타의 강의

크레비용 2세의 « 몸과 마음의 탈선 »(1738)* 에서

 

 

     크레비용 2세의 « 몸과 마음의 탈선 » 안의 세번째 부분에서 보여지는 스타의 유명한 대화는 교양 소설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방법을 구성한다. 성공한 남자인 베르삭은 경외의 대상이며 젊은 영웅 메일쿠르를 매혹시키고 이 글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탈선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전형을 가진 이 유혹자는 그가 정복하고 오해한 여자들에게 아첨을 받으며 그의 젊은 생도에게 사회생활의 성공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메일쿠르가 처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그에게만 예약된 지식은 젊은 인간이 받은 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그 견해의 밑바탕이 되면서 그 견해를 돋보이게 하는, 바로 이전 세기의 정직한 이론가들과 도덕가들이 제시한 견해와 이어진다. 베르삭의 모든 실증은 세상적인 것은 타락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베르삭에 따르면 그의 저서에서 정의된 예의범절의 규칙, 특히 슈발리에 드 메레의 저서에 있는 규칙은 젊은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계약 속에 이상화된 우주로 착각한다면 무지한 젊은이를 오로지 실패와 조롱거리로 이끌 수밖에 없다. 베르삭 그리고 소설의 화자에 따르면 정직은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직은 사회 속에서 욕망의 참혹한 현실과 세속적인 이야기를 장악한 이득이 보이지 않게 덮는 예의바른 용어들의 집합이다.  17세기 자유사상이 갖는 전형적인 관점에서 베르삭의 강의는 거짓된 가치를 낱낱이 드러내고 정직한 인간들의 사회가 가진 허울뿐인 성격에 대한 품위 있는 비판이다.

 

     그의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베르삭은 우선 관찰하는 태도를 추천한다. 그것은 젊은이를 스스로 완벽하게 하고 우수한 형태를 정의하는 가치체계에 자신을 내맡기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궁금한 것을 밝히고 단순화시키는 지식을 공유하게끔 하는 태도이다.

내가 오로지 너를 깨우치게 하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의 의심을 해소하는 것에 항상 진심으로 기쁨을 느낄 것이고 […] 그리고 네가 보아야 하는 그대로의 세상을 네게 보여주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 (208)

     베르삭은 따라서 예의범절의 교수 역할을 하며 사회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 세상의 학문 »(ibid.) 의 기초를 젊은 영웅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 진심으로 » 반대하는 « 방법들 »을 가르쳐준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에 대한 걱정 혹은 도덕적인 고려 없이 외면에 대한 존경을 요구한다. 메레에 의하면 정직이란 또한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유쾌하게 만들고 측정할 수 있는 자질을 확실히 굳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슈발리에에 의하면 정직과 도덕성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오네똠은 좋은 도덕성에 대한 영감을 유발하고 도덕성으로 가는 지침을 제시할 이성을 가지고 있는다. 반대로 베르삭은 그가 제자들에게 전수할 학문의 수많은 원칙들이 « 명예와 이성에 상처를 입힌다 »고 생각하며, 정직을 굉장히 폄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정직은 오해를 통해 알게 되는 « 자질구레한 일들 »의 퇴적물에 불과하다. (ibid.)

     라 로슈푸코처럼 메레의 정직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 행동을 규정하는 규범의 목적론적인 관점을 제안한다. 때때로 미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로 쓰이는 우수함은 정직의 기반을 구성하는데, 이는 정직이란 관습이나 대화 상대와의 조화에 대한 걱정이 지배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순응적인 태도의 한 형태이며 하지만 그 자질이 선입견이나 용도 및 전통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애매모호함은 라 로슈푸코의 저서에서 특히 강조된다. 그의 많은 규범들은 이득과 위선이 지배하고 선보다 악을 더 신뢰하는 사회적 우주를 구성한다. 하지만 잘못을 각성하는 이러한 관점이 냉소적인 실용주의로 연결되는 대신, 다른 규범들과 특히 특정 몇몇의 고찰들은 참된 미덕을 기르는 사회적인 행동의 이상향을 설명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순응적 태도로서의 정직이라는 생각을 왜곡하지만 또한 자유사상의 세속에 대한 이론가들이 관심갖는 것을 지각하도록 허락한다. 표상의 주제인 오네똠은 그의 판단이 갖는 자유로움을 좀 더 잘 보존하기 위해 intus et libet, foris ut decet이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외면의 놀이로 표현된다. 슈발리에 드 메레의 라 로슈푸코와의 대화내용이 담긴 편지에서 격언들의 저자로부터 따온 주제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장소의 관습들에 몇가지 빚을 지고 있다. 그 관습들이 나쁜 것들일지라도 대중의 존경심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면적으로만 빚을 진다. 우리는 그 관습들을 실행해야만 하며, 관습들을 비판하는 전지구적인 이성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관습들을 수용하도록 유지해나가야 한다.

   크레비용의 소설은 베르삭의 역할에 관하여 젊은 메일쿠르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통찰력이 있는 교육가의 모습과, 화자에 의해 외면적으로 표현된 그대로 허영심 많고 경박한 성공한 남자의 모습 사이의 대조를 증거한다.

그가 끊임없이 속이고 고통을 준 모든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허영심 많고 강압적이며 경솔한 그는 우리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사람 중 가장 대담한 댄디 보이이며, 결점들이 서로 대립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같은 결점들에 의해 여자들의 눈에 아마도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 사람일 것이다. […] 그는 있는 그대로이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다. […] 그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의 정신이 갖는 우아함과 같은 우아함을 구성해주었고, 우리가 잡을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특징적인 멋을 낼 줄 알았다. […] 이 행복한 무례함은 자연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처럼 보였고 그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72-73)

     감탄하는 젊은 남자의 눈에 비친 베르삭은 성공으로 온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유혹적이고, 특이하고, 무례한 그는 자연스럽기 때문에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한 강의는 부분적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성공은 계산과 책략의 걸작이며, 외모는 극단적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메일쿠르와의 대화를 시작하며 심각한 어조로 놀라는 그는 갑자기 선생과 제자 사이에 자리잡는 관계를 상세히 설명하며 대답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깨우치고자 하는 필요성은 나로 하여금 네게 나는 생각하고 사색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게 압박한다. 나는 뿐만 아니라 내가 네게 말하는 것들과 내가 네게 말할 것들에 대해 네가 가장 단단히 비밀을 유지할 줄 알 거라는 헛된 기대감을 갖는다. (209)

     베르삭에게 순응주의의 필요성은 두 개의 보완적인 태도를 갖는데 성공하기를 원하는 인간을 요구한다. 첫 번째 태도는 세계를 관찰하고 성공이 의지하는 두 개의 영역을 특별히 연구하는 태도이다. 두 개의 영역 중 첫째는 명성을 쌓거나 무너뜨리는 여자들이며 둘째는 시대의 특징적인 « 용도, 흥미 그리고 실수 »이다. (ibid.) 두 번째 태도는 인간의 본성의 해체에 내재해 있다. 베르삭은 예의바른 외모로 부패한 우주를 감싸는 위선자의 견해에 대한 지지로서의 이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정직이 갖는 특정 단면들을 강조한다. 멋을 실재하는 자질들의 결과로 생각하는 메레, 라 로슈푸코와 라 브뤼에르와는 달리, 베르삭은 세상에서 덕성, 멋 그리고 재능은 […] 순수하게 임의적이다” (209) 고 확신한다. 세속적인 가치들의 허위를 조금 더 잘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신용이 있는 조롱이라는 표현으로 그것들을 지칭하며, “변덕에 종속된” “변하는 주제들”, 그리고 일시적이며 심지어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 위험한 것들로 그것들을 정의한다. (ibid.) “조롱이라는 용어는 세속적인 판단의 자유와, 외면과 유행에 판단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일 사이의 단절을 강조한다. 우리가 조롱거리라고 판단하는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그의 제자들에게 베르삭은 뻔한 역설로 대답한다. “생각하고, 자주 사색만으로도 그들이 내재적으로 가장 많이 비판하는 실수에 빠지는 이들이여, 당신들에게 먼저 한 마디만 하지. 거의 모든 경우에서 우리 중 가장 깊게 사유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정신에 치욕을 주는 부조리한 의견들과, 형상을 망치고 제약하는 현상 유지의 책임을 지운다.” (210)

     이 모순에 대한 해명은 세속적인 것이 제안하는 마지막 일들에 내재해 있다. 즉 사회에 잘 보이고, 그를 통해 평판을 얻는 일이다. 정직에 대한 이론가들의 어휘는 새로운 뜻 정의의 표적이 되고, 그때는 라 로슈푸코의 특정 몇몇 격언식의 정의를 생각나게 하는 방식에 의해 비방하고 단순화를 한다. “조롱이 우리를 즐겁게 할수록 조롱은 우아함이고, 멋이고, 하나의 정신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조롱을 한번 사용해야만 우리가 싫증이 나며, 그래야만 우리가 사실상 조롱에 걸맞는 이름을 지어준다.” (210-211)

     설명된 정체성의 관계는 의미 작용들을 가져다 쓰고 있는 사회의 관점에 의해 바뀌는 의미 작용들의 상대적 성격을 강조한다. 단어와 사물 및 사상 사이에 변화하는 관계는 정직에 대한 견해의 기반이 되는 이상주의, 그리고 여기서 위선의 원인처럼 보이는 것을 문제삼는다. 예의를 차리고 고귀한 전통으로부터 세속받은 감정 관련 어휘는 크레비용 그리고 마리보의 작품 안에 등장한다. 이는 마치 의미들만이 혹은 허영만이 역할을 수행하는 편리한 관계의 장막과 같다. 두 저자들의 작품 안에서 발견되는 예의바른 언어에 대한 비판그리고 모든 언변의 상대적이고 동기부여를 받은 성격에 대한 증명은 여기서 세속적인 관계 총체에까지 펼쳐져나간다.

     이 세상은 가식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성공을 향한 길은 성공의 해체를 통해 뚫려있다. 베르삭은 오네똠의 이상향 안에 들어있는 환상, 자연스러움의 환상을 잡아낼 기회를 노린다. 메레와 라 로슈푸코의 작품 속에서 오네똠은 그의 본성을 완벽하게 하고 부자연스러움을 피함으로써 얻어지는 미적 성공을 구성한다.

     베르삭에 따르면 사기 치는 덕성과 표면적인 자질들의 거짓된 화폐가 오가는 우주 안에서 성공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행동에 완전히 영향을 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자유사상 멘토는 세속적인 정직 안에 들어있는 모순을 새로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복종하는 것은 진정성과 반대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형상을 일그러뜨려야만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 (209) 하지만 그것은 본성을 더럽힐뿐 아니라 본성을 다시 한번 아예 타락시켜야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항적인 원칙은 잘못된 의견 하나를 고치면서 원칙이 제시되는 상황으로부터 그 권위를 끌어온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 대한 무지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항상 명성과 재물을 전혀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항상 덕망 있고 자연스럽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 마음과 정신은 서로 상하게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받으며, 그 과정에 모든 유행과 가식이 있다. (ibid.)

     이 부패는 신중함의 결과인 것처럼 제시된다. 세속적인 성공과 자기만족의 걱정은 우수함이나 때때로 세속적이고 미적인 완벽에 대한 탐구의 형태로 참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사회적 특권이 필수불가결한 요구사항을 구성하는 우주 속에서 서로 유지하기 위한 필요성에 대응된다. 이 신중함과 성공에 대한 탐구 사이의 연계성은 궁정에서의 삶이 갖는 요구사항을 생각나게 하는데, 특히 그라시안의 Oraculo Manual 안에 형성된 것과 같이 생각나게 한다. 베르삭의 견해는 한편으로는 궁정의 삶이 갖는 특징을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의 전통을 비판하는 움직임에 속하는 현실주의 사상의 노선에 속해있다. 자연법의 문제에 적용되는 홉스의 반이상주의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의 영역에서 이곳에서 그의 동등한 대상을 찾는다. 행동의 규범은 끝에서부터 혹은 인간의 완전함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고, 대신 규범에 영향을 끼친 행동들로부터 연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보존할 방법을 찾으며 세속적인 사람에게는 생존이란 획득하고 유지하고 심지어 명성을 쌓아나가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먼저 신중함과 그가 소중하게 얻은 것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걱정에 의해, “방법이 […]  부족한것은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간은 스스로의 형상을 일그러뜨려야 한다. (208) 덕성과 공공에 노출된 자연스러움은 그것들을 애매모호하게 소유하고 있는 이를 비난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ibid.).

     사회적 거리두기 현상의 전략적인 수용에서 자기만족의 예술이 생긴다. 이러한 멋에 대한 경멸적이고 실용적인 관념은 사회에서 도달하기 쉬운 목표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데 왜냐하면 그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완벽에 대한 탐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메레와 그라시안이 제기한 우수함과 모방할 수 없는 게 뭔지 모른다는 사고방식에 의해 베르삭은 충분히 잘 확산되지 않고 실행에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 몇가지 규범들을 대체한다. (211).

     그 규범들의 첫째는 외면적으로 세속적 삶에서 여자들의 힘에 굴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삭에 의하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동시에 가장 멋있는 방법보이는 여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 안에서 오로지 여자들을 유혹하는 자만이 멋있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정신의 종류는 사실 무엇이 되었든 여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유일한 주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ibid.) 이 조언에서 멘토는 세속적인 삶 안에서 여성적인 영향력의 배타적이면서도 임의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그는 냉소적이고 폭로적인 방법으로 여인들의 상업활동을 탐구하는 데 정직하게 성공하고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슈발리에 드 메레의 몇몇 원칙들을 언급한다. 이 이전 세기의 작품들은 여인들을 찬양하면서 고급스러운 시류 이후에 귀족 사회 안에 널리 퍼진 여성들의 이 역할을 말해준다. 섬세함의 결정자인 여자들은 도덕의 제련 활동에 참가한다. 사랑받는 대상에 대한 존경을 요구하는 예의는 궁정의 사람과 오네똠의 섭렵이라는 이상향에 매우 잘 맞는 욕망과 정서의 통제를 제안한다. 하지만 크레비용의 시대에서는 이 이상주의가 욕망과 허영의 회전목마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지목하도록 예정된 단순한 일상 언어의 지지와 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상주의의 가치는 분명히 떨어진다.철학자들의 내각에서 마리보는 이러한 언어를 감언이설의 사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이 언어가 없다면 조잡하고 악하게 보일 것들을 번역하고 사랑스럽게 고치는 역할을 한다. 환상을 깨는 이러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세속적인 삶에서의 여성의 헤게모니는 더이상 실재하는 자질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없다. 정확히 베르삭의 세속적인 자유사상은 변경과 조정의 행태가 권력의 의지에 따른 행위의 기반이 된다 생각하는 임의성의 비판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건 단지 여자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도록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마침내 그들을 지배하기에 이르는 행위이다.” 라고 베르삭은 그의 대화 상대에게 선언한다. (ibid.)

     세상에서 지배적인 허위와 우발성은 자유사상의 실행에 필요한 조건들이다. 위선자로 비판을 받은 정직에 대한 견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사상적 조정자의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견해는 타인들을 간파하려는 방법을 찾으며 궁정의 삶이 갖는 특징적 태도를 숨기는 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타인들을 속이기도 해야 한다. 이 충격적인 조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정의된 신중함의 예술이 갖는 논리적 수순과 같이 보인다. 라 로슈푸코는 격언 245에서 자신의 사교적 기교를 숨길 줄 아는 것은 매우 큰 기교다라고 분명히 인정하며, 그라시안의 Oraculo Manual« 무지한 척할 줄 알기 »를 언급한다. 베르삭은 동일한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타인이 조금 더 스스로를 드러내게 유도하고 타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스스로의 판단력과 정신을 상기시켜주지 않기 위해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을 숨기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이 네게 보여주는 악덕에 의해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 말고, 절대로 사람들이 너를 간파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발견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자신이 아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정신에 대한 열등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보통 더 낫다. 고찰로 이끄는 것에 의지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척하며 숨기는 일과, 너의 이득을 위해 너의 허영심을 희생하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211-212)

     또한, 순응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간파하는 데 실패하면서 조금 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을 추측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것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타인의 의향과 열정을 숨기도록 언행을 조심하는 예술은 타인에게 적용되는 이득과 감정을 발견해야 하는 아첨꾼의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베르삭의 냉소적인 조언들은 임의적 조정의 끝을 보는 이전 세기의 도덕가들이 가진 신중함의 원칙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궁정인과 오네똠이 갖는 이상적이고 심지어 유토피아적이기도 한 몇몇 개념들을 반박한다. 사실 베르삭은 대화 상대에게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을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시험을 보려는 정신을 상기시거나 그들에게 교훈을 주는 체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다. 이성적인 사람은 악덕함을 비판하는 대상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기보다는 대상의 결점을 숨겨주며 지원하고 그 결점을 못본 체한다. 만약 인간을 공부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오로지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발생하거나 타인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실수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때로는 타인을 보다 확실히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을 따라하는 것처럼 행동하라. 우리가 갖는 최선의 예시와 우리의 찬사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우리 앞에서 발전하고, 우리의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의견에 기울일 수 있도록 하게끔 도와주자. 이는 자신을 버릇없는 체하게끔 놓아두어야만, 다른 사람의 버릇없음이 전혀 빠져나가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ibid.)

     이와 비슷한 영역의 관련 서적에 등장하는 궁정의 삶과 세속적인 삶의 도덕화는 베르삭의 체계에 비추어보았을 때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그 영향력이 17세기의 정직에 대한 계약에 의해 결정된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의 책은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깊게 젖은 궁정인의 역할에 대한 이상주의적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궁정인은 폭군의 « 교화 »를 꾀하고 그의 조언들을 통해 도덕적, 정치적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 때문에 철학에 좀더 가까이 가려 한다. 이 권력의 도덕화는 또한 정신론의 논의에서 오귀스트를 마치 부정의, 불관용 그리고 잔혹성이 재물에 대한 호의로 잊혀질 수 없는 폭군과 악덕한 참모들에 둘러싸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슈발리에 드 메레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메레에 의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의해 놀라지만 « 폭군의 재능 »에서 « 더 위에 있는 가치를 잡아낼 줄  아는 » 사람들을 구별하게 되는데 이는 « 정직이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듯 » 통치하는 사람들의 « 부정의한 야망 » 의 결과이다. 타인을 만족시키고 예의범절에 굴복할 것이라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카스틸리오네도 그의 뒤를 따른 메레도 낡은 철학의 유산인 권력과 사회적 관계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는다.

     베르삭이라는 인물에게는 세상에서 좋은 성공이나 나쁜 성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명성을 쌓고 유지하는 단 한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더욱 잘 지배하기 위해 임의적인 규칙에 굴복하는 것이다. 세속적 행동의 규범과 도덕적 선입견 사이의 극명한 단절은 젊은 메일쿠르를 위험한 환상으로부터 치워내는 것만큼이나 쉽게 그를 설득하는 자유사상가가 완전히 가정하고 있다. « … 세상과 (도덕은) 항상 서로 합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보다 더 자주 우리가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홀로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217-218)

     지배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회 내에서의 생존을 위한 조건처럼 보여지는데 이는 특권의 상실이 사회에서 죽음의 한 종류와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특권이 순수하게 임의적이고 실재하는 자질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특권은 자질이 아니라 방법 혹은 테크네에 의해 얻어진다. 베르삭은 그의 대화 상대에게 특권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얻어 정리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특권에 의해 생산된 효과에서 벗어난다. 이 실용주의는 궁극적이지 않고 기계적인 인간관계의 관념에 의해 지지받는다.

베르삭은 사람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는 것에만 감응하고, […] 특이성만이 인간들에게 그 효과를 생산해낸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특이해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닮고자 하는 대상이 사상이건 방법이건 너무나도 아무도 닮지 않는 척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하는 오직 하나의 결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장점보다 더욱 더 많은 정직함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의 걸작품이란 특이성,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예술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의 의문의 대상이 된 모방 능력의 동맹 관계이다. 이 특이성이 없으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놀라게 할 수 없으며 그로 하여금 모방하게 하는 정신의 유연성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족을 가져다줄 위험을 갖는다. 프로테가 말했듯 그래서 사람은 모든 형상을 취하면서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 “멘토의 단언에 따르면 당신이 모든 것이 됨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쉬운 데는 전혀 변함이 없다.” (212) 진실하지 않음과 순간에 따른 변화는 이 보여지기 위한 예술에서 핵심 요건이다. 성공한 사람은 시늉만을 하면서 시늉의 대상이 갖는 실수와 결점에 대해 그 자신은 관람자가 되고 그래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을 확신한다.

     효과를 생산해내는 것에 관하고 결과를 추적하는 것에 관하지 않은 베르삭의 방법은 세속적인 삶의 다른 영역들에 적용된다. 대화 속에서 대화를 독점하고 관객들에게 재고할 시간을 남기지 않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야 한다.” (216) 베르삭은 비방을 계속한다. “좋은 말투의 핵심은 설득하기 위한 방법이므로 세심함 없이 실행되어야 한다. 사실, “아무것도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고, 아무것도 당신의 쾌락과 당신의 정신에 대한 더 고상한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219) 좋은 동료로서의 말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베르삭의 견해에 따르면 정직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세속적인 의미로 해석되든 도덕적인 의미로 해석되든 상관없이 더 이상 정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방에 더욱 집중하며 우리는 서로를 두려워하므로 서로를 구별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한 멍청이가 악의를 향해 자신을 바꾸었을 때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정신의 소유자보다 더욱 더 존경을 받는다…” (ibid.) 정직을 연구하는 이론가들은 정직이 타인을 상처입힐 수 있을 때 조롱을 비판하는 데 합의한다. 베르삭은 정직이 협박의 효율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모른 체하기, 가식 그리고 경박함은 잘 지내는 사람들의 관계 유지를 위해 차용되어야만 한다. 정직의 원칙들은 이 세속성의 강의에서 가치를 잃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비방하려는 동기에 의해 이미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좋은 말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아야하고 또한 현학적인 태도에 반대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거나 아니면 그의 경박함, 무지 그리고 정신의 메마름을 장점의 한 가지인 척하는 경우이다. (220-221) “좋은 말투는 억제된 집단 내에서 차별화를 가져오는 특징, 혹은 카스트와 같은 인식을 위한 적절한 규약의 한 종류처럼 보인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의 말투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말투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서만 그 좋은 말투를 찾을 수 있다고 제대로 결정되어 있다.” (218)

     오네똠의 귀족적인 모른 체하기, 카스틸리오네에 의해 정의된 스프레짜투라의 유산인 여기에서 우아한 건방짐은 교만한 태도의 신호인 지배적인 영역에서의 선입견의 효과인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주 많은 겸손과 함께하는 깊은 수준의 무지는 진실로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극도의 자만과 함께라면 나는 당신께 그 무지는 아무런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나저나, 당신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걱정될 정도라면 당신은 보통 누구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219-220)

     여자들 사이의 관계들은 베르삭에 의해 동일한 냉소주의로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대소동이 있어야만 그들의 관심을 상기시킬 수 있고 재고할 기회가 부재해야 어떤 불가항력적인 열정이 그들을 이끌 수 있다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게 더 어울린다. (217) 귀족 계층을 기리는 점진적인 상승의 예술은 여기서 공감의 한방에 희생당한 유혹당한 여자를 설득하고 그에게 손쉬운 핑계를 제공하는 무모함과 끝이 없는 파렴치함에게 공간을 내준다. (ibid.)

     세속적인 관계는 부패를 만드는 주인에 의해 만들어지며 이는 권력관계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때는 지배받는 것이 지배받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므로 관계가 아무렇게나 가치를 정하여 지배하게 된다. 이는 정직에 대한 연구가들의 원칙들이 사상의 거짓됨에 의해 쉽게 속지 않기 위해 해체해야 하는 사상들처럼 표현된 이유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겸손에 가치를 매기려는 걱정, 남들을 만족시키려는 가장 큰 걱정은 세상 속의 위험한 태도처럼 낙인찍힌다. 그 태도는 그 태도를 연약함의 위치에 놓아두는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 태도는 대화 상대들의 지배적인 의향이 자유롭게 파고들 공간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213) 베르삭에 따르면,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한다고 당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조금 더 겸손하면 당신은 그들의 허영심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ibid.) 세속적인 관계에 대한 탈 환상적인 이 세계관은 실행에 옮기기에 위험이 따를 뿐더러 거짓됨으로 얼룩진 미덕을 보는 관점에 대한 의심이라는 필연적 귀결을 낳는다. 재물이 많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라 로슈푸코의 몇가지 특정 격언들을 회상하게 한다.

나는 [..]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가치를 매겨야 한다고 생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입을 다물면서 그 자신이 사회에 대해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비판받아야 하는 대상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겸손하기로 강요받았다고 믿는 교만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지 알지 못한다. (ibid.)

     베르삭의 조언들은 간접적으로 거짓된 덕성을 드러내는 견해가 냉소적인 태도의 전초기지로 기능할 수 있는 사실을 조명하고, 세속적인 도덕가들이 문제삼을 수 있었던 의심을 이해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짜 정당화는 베르삭의 견해에 의하면 지배의 위치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의 관점에서 부차적이다. 세속적인 행동은 한 가지 선택지, 지배하는가 지배당하는가 중 하나만을 갖게 한다. 신중함, 남을 불만족시킬 것에 대한 두려움, 배려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능욕하게 북돋우며, 평판에 대한 자비가 없는 이 싸움은 전략적으로 공격적인 태도 외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은 그들을 쉼없이 우리의 자존심이 원하는 대로 정화시키는 것보다 더욱 확실하다. […]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호의적으로 만들려 애쓰는 광경을 볼 때보다 우리를 심각하게 판단하는 경향을 갖는 때는 없다. (ibid.)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장면을 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강요해야 하는 필요성은 다른 위험을 동반한다. 자신의 자존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려는 진실된 사람은 성공이 그의 열정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를 요구할 때 위험하다. 베르삭의 만족감에 대한 찬양은 순수하게 이런 행동의 바깥에 존재하는 특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장점을 내적으로 방지당하지 말자. 나는 그것을 원하지만 그것을 가진 체할 뿐이다. 특정한 자부심이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말투에, 우리의 몸짓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에 묻어나오게끔.” (ibid.)

     여기서 설명하는 인물은 극장과도 같이 보이는 공동체의 공간을 전복시키고 때때로 관객 혹은 희극인과 같은 느낌으로 오네똠의 이미지를 왜곡한다. 이 인물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예상하며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기다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베르삭의 견해에서는 사회적인 놀이의 수락은 세속적 가치의 몰이해와 열정의 섭렵에 대한 걱정에 기반한 이중성의 일정한 태도와 함께 한다. 성공하려는 자에게 필요한 결점인 자만심을 찬양하며, 멘토는 젊은 영웅에게 다른 사람에게 속아넘어감으로써 스스로에게 더이상 속아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선의로서 건방지고 원칙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자만심을 사유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유혹의 손길에 바쁘고 무례함이 갈때까지 가서 성공 자체에 절대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큼 성공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선의의건방진 이, 진정성으로 허영심을 가진 사람은 그의 열정에서 멀어지게 하는 힘에 치인다. 자유사상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인정하고 이를 지배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 사상가는 그의 본성을 숨기고 열정과 가식을 더럽히고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 위한 옳은 태도를 선택하려는 계율의 결과인 내재적 자유를 확인한다. “나는 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 극렬한 아픔 없이는 내가 정신을 망치는 결과에 다다를 상황과 굉장히 다르게 태어났다.” (214)

    자아는 전략적 목표에 의해 거짓을 꾸미고 행하는 열정의 모방을 채워야만 하는 빈 공간처럼 보인다. 베르삭에 의해 정의된 세속성의 이상향은 금욕적인 사람이 주는 깨끗한 본성으로부터 박탈당한 채 남을 속이고 조종하는 능력 안에서 분명함과 권력을 찾는 사람이다. 현학자인 멋진 청년의 신앙고백은 이 관점에서 모순적이다. 세상에서 얻은 신용, 배려심 그리고 성공은 순전히 임의적인 기준 위에 놓여있으며 곡해할 수 있는 규범들에만 대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삭은 제자들에게 거짓된 것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특히 여자들을 유혹하고 정복 리스트를 늘리기 위해 소유해야 하는 능력의 특출난 성격을 강조한다.

정신 속에서 다양성, 그리고 스스로 찾은 순간이 당신을 요구하는 성격을 갖기 위한 항상 제약 없는 확장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상냥함이 있는 부드러움, 풍성한 관능, 교태 섞인 수작은 어떻게 가질 것인가감정 없이 열정을 가지고, 측은함 없이 울고, 질투심 없이 동요하는 이런 것들이 당신이 즐겨야 하는 역할들이고, 당신이 되어야 하는 역할들이다. (215-216)

     세속적 성공이 유혹된 아름다움의 카탈로그에 펼쳐지는, 많은 재물을 쌓은 이 사람은 오네똠에게 적절한 변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유연성시기적절함에 대한 센스 그리고 예의바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적인 역할의 레파토리를 사용하는 것은 위선과 조작에 속한다. 베르삭의 실증은 특정한 특징들이 잘 알려진 가치의 비방과 규범으로의 복종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형상을 찾는 연구 사이의 모순을 이해하도록 허락하는 현실주의적 사상에 붙어있다. 전통, 저서 그리고 옛날 것의 철학이 갖는 이상주의의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는 모든 사회적 행동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의심을 품게 한다. 우리가 사실처럼 생각하는 것들을 위한 이 기본적인 가치들의 거부는 효율성, 권력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확신하기 위한 방법을 지키기 위한 능력, 그리고 하나의 영웅심의 형태를 추구하는 데서 끝난다. 마키아벨리부터 시작하는, 정치 및 법 철학의 영역에서 끝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고 대신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적 조류는 에너지와 힘에 대한 찬양으로 이끈다. 홉스에 따르면 자유주의적 사상을 선포하는 쾌락주의적 및 공리주의적 개념에 따르면 강한 권력이 시민의 안전과 편안한 삶을 보증한다. 그라시안에 따르면 오네똠과 초인은 개인적인 권위의 환상에서 탈피한 연구에서 같은 개념으로 합치한다.

     크레비용의 시대에서 이러한 현실주의적 조류의 영향력은 소설 속에서 고전적 이상주의, 귀중히 여겨진 가치들 그리고 영웅들과 오네똠의 인물들에 의해 확대된 귀족사회에 대한 패러디와 비판으로 이끈다. 특히 마리보와 크레비용의 작품 속에서는 진실을 담지 않는 예의범절의 언어에 대한 반항을 설명하지만 이 안에서 애매모호한 활용은 부패한 고귀함으로 스스로를 이끄는 자유사상가들의 견해의 특성이다. 처세술의 규칙들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다시 쓰여지고 예의바름과 도덕성의 세련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에 고귀함을 특징짓는 징후들은 소설과 희극이 반영하는 사회적 상상 속에서 가치를 크게 잃은 것처럼 보인다. 1737년에 초연된 거짓된 친구에서마리보는 백작 부인의 칭호를 경멸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조명하고 사회적 조건의 덕성을 구별해낸다. 희극의 유일한 귀족 등장인물인 백작이 필요한 경우 하인들을 매수하여 돈으로 산 결혼을 종결지으려 할 때 돈에 의해 부당하게 취급된 열정적인 영웅들의 역할은 피폐해진 평민 도랑트에게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 인물, 이 능동적인 의지와 조물주와 같은 차원의 조종의 예술의 에너지를 보유한 사람은 하인 뒤부아다. 크레비용은 젊은 멋쟁이들과 수작부리는 여자들이 때때로 동앙젹인 장식과 환상적인 고가구에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귀족의 세계에 한정짓는다. 그는 풍자적이고 가치를 절하하는 방법으로 고전적인 이야기의 예의범절의 틀 속에 머물러 있고, 몇몇 이야기의 외설적인 특성은 언어의 정직함과 이야기의 목적이 되는 상황들의 외설 사이의 어긋남을 정확히 제공한다. 행복에 대한 개인적인 도덕성, 부르주아의 영웅들, 갑자기 출세한 사람이라는 주제 등은 로마네스크적 세계에서 낯선 것들이다. 사회적 변이를 반영할 수 있는 가치들에 대한 행동 규범에 기반하지 않은 채, 자유사상 멘토의 인물상은 전통적 도덕성과 고전적 이상향에 반대되는 우수함과 영웅성의 형태에 대한 연구와 함께 세속적 관계의 냉소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세계관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한다. 라클로와 사드의 세기에서의 나중 시대처럼 크레비용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그의 이야기에서 가능한 대상과 같은 센티멘탈리즘과 부르주아적 정직에 대한 거부를 강조하며 부패한 귀족 사회를 표상한다. 만약 이전 세기의 오네똠의 인물상이 특정한 가치 절하를 겪었다면, 베르삭의 강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만족시키고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의해 강요된 매혹을 주장할 것이다. 오네똠과 자유사상가는 방법의 외면성과 선입견으로 무마된 판단의 내면성 사이의 단절이라는 같은 전통에 관련되어 있다. 각각은 이 적응성과 소피스트와 궁정인을 특징짓는 타인을 추측하는 재능을 소유한다. 그의 마지막 소설 아테네의 편지에서 크레비용은 메레가 젊은 청년들의 귀감이라고 생각하던 알치비아드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1771년에 표현된 이 인물은 오네똠의 자질에 대해 스스로를 변장시키고 유혹하는 능력만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의 세속적 성공은 양성간의 전쟁에 의해 획득된 승리에 한정되어 있다. 다중의 재능을 가진 영웅은 공허함과 반복으로 비판을 받는 잔인한 유혹자가 되었다. 1738년에 베르삭의 견해는 전 세기의 이론가들이 가진 오네똠의 이상향과 위험한 관계 속의 비극적인 궁지 사이의 한 단계를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사회적 기능을 잃었지만 소설의 독자에게 꿈을 꾸게 할 힘은 잃지 않은 궁정 귀족의 옛날의 전유물인 거대함과 영웅주의와 우아함에 대한 미적 가치들의 향수를 설명한다.

 

캬롤 도르니에



* 알랭 몽텅동 편집, « 오네똠과 댄디 » (튀빙겐, 1993, Gunter Narr Verlag), 107-121쪽에 등장.


  이 글을 번역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만나는 인간 사회에도 베르삭의 가르침과 오네똠의 정의가 그대로 적용됨을 느낀다.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가식적이고 무례하다. 그때그때 말하는 게 다르다. 내 주위에는 오네똠이 너무 많다. 번역을 하면서도 주위의 몇명이 현재 상황에 그대로 대입되는 걸 느꼈다. 

  17세기에 등장한 자유사상은 내가 좋아하는 '쿨함'과 잘 연결되는 느낌이다. 도대체 쿨해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이 글과 같이 쿨함을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면 참 멋있겠다. 이러한 설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고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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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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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내용은 예전에 11월에 학교에서 취업설명회가 있기 2주 전쯤 실시한 세미나에서 알려준 내용이다.


1. 면접


면접을 하기 전에는 회사 사이트, 신문기사 등을 통하여 기업 자체와 고객, 경쟁사, 공급업체, 소속 협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상품, 매출, 재무구조, 시장, 전략, 어려움, 필요, 역사, 기업문화, 사용 어휘, 직종 등을 조사한다. 이렇게 조사를 하다 보면 어떤 질문이 올지를 예상할 수 있다.

취업설명회에서는 위의 조사 내용 중에 인쇄물이나 웹 페이지로는 알기 힘든 내용, 즉 전략, 조직, 기업문화, 직종에 대해서만 질문할 것. 그 외의 것들은 미리 알고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 예시: "인턴 후 정규직으로 취업하나요?" "경제위기가 이 상품에 부정적 결과를 낳았나요?"

2분 안에 자기소개를 하는 연습을 한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bande-annonce)처럼. 자기소개 안에는 나의 다양한 경험, 그에 따른 성과, 경험 이후의 현재 나의 상태를 세일즈해야 한다. 웃기만 하면 안 된다. Projet Professionel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외모는 당신의 미래의 직장 동료처럼 하고 면접에 임할 것. 하지만 너무 직장인같은 옷을 입고 오지 말 것. 즉 면접 당일의 외모에서 조금만 바꾸면 정사원 외모가 되게끔 할 것.

취업설명회에서 바로 면접을 한다면 첫인사로 "Merci de faire honneur à notre école!" 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기업 관계자들이 우리가 취업할 준비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의 답변이 나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 면접관은 나에게 "당신은 워커홀릭입니까?" "당신은 매니저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네, 맞습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프랑스 면접관은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물어볼 것이다. "Pourquoi le Droit, Pourquoi l'International, Pourquoi un Master RH, pourquoi, pourquoi? Quel poste et pourquoi?"

언어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모국어가 아니라면 "프랑스어는 제 모국어가 아니지만 그동안 인턴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늘렸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면접관이 우리를 보고 미소만 짓는다면 미소만 가지고 땡이다.

면접 답변에서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건 개인적인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면 안 된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 Ce qui est unique chez vous을 생각해보자. La diversité des pays de stages? Tous les gens âgés parlent moins de langue que vous? Votre travail avait une grande puissance? Votre travail était bénévolat d'un type social?

답변할 때 미소지으며 말하는 것은 무조건 좋다.

면접관이 더 물어보기 전에는 내가 가진 지식이 Confidentiel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더 답하지 말아라.

프랑스의 인간관계의 특성상 여자를 유혹하듯 하는 적극적인 태도는 남자 여자 면접관 모두에게 잘 통한다.

프랑스 여자는 면접을 할 때 치마를 절대 입지 않는다. (몽파르나스타워나 라데팡스의 직장인 여성들을 보면 여성용 바지를 입고 있는다.)

어휘 sur stand : 면접 테이블에서


2. CV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CV는 한 페이지로 압축한다. 하지만 프랑스 CV와 미국 이력서의 양식은 확실히 다르다.

CV의 글씨 크기는 8로 해야지 11이면 안 된다.

CV에는 기업 로고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직종에 지원하기 위한 CV라는 보조 제목은 들어갈 수도 있다.

사진은 항상 첨부하라. (프랑스에서는 웃는 얼굴의 사진을 좋게 보고 한국같은 사진은 나쁘게 본다.)

CV에서 강조할 것은 파란색으로 표기한다. 이탤릭체를 너무 쓰지 말 것. 이탤릭체는 강조의 뜻을 담지 않는다.

언어 능력은 프랑스에서 매우 좋게 간주되며, 그래서 왼쪽 상단에 Nationalité Sud-Coréen 다음 줄에 Langues : Coréen, Anglais, Français, Japonais 식으로 적는다.

CV 안에 다음 세 가지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Formation, Projet Professionnel, Autres Centres d'Intérêt

인턴 경험이 지금의 일자리와 완전히 관련이 없으면 큰 문제다. 인턴때 어땠고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더 적을 것. 단순히 한 게 아니라 성공과 실패가 갈릴 때 성공한 사례가 있으면 빼먹지 말고 적어라.

Job d'Etudiant은 Projet Professionel과 다르다. 일단 인맥을 통해 들어가서 한 일은 Projet Professionel에서 빼야 한다. Projet Professionel을 부풀리지 말 것.

Activités Sociales에서는 봉사활동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없으면 안 된다.

프랑스 학생들은 출판도 하고 20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같은 것도 한다.

Il faut vous équilibrer. 자기가 한 일을 지금의 일과 연관지어야 한다. 내가 좋아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들을 다 보여주면 안 된다.

Projet personnel extraordinaire는 Annexe로(2번째 페이지) 들어간다.

Activité du groupe만 autre 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프랑스 애들이 아무리 컴퓨터를 못 다룬다 해도 IT 관련 기본적인 기술 (MOS같은 것들)은 다른 더 가치있는 게 있다면 과감히 뺴야 한다.

CV 작성을 완료한 뒤에는 위에서부터 훑어보며 중복된 내용을 빼고 임팩트 없는 내용을 빼고 당연히 말 안해도 알 내용을 뺀다.

CV 인쇄물은 비닐이나 플라스틱 파일에 넣어야 한다.

CV에 딸린 편지를 보낼 때는 Bonjour Madame, (O) Bonjour Monsieur, (O) Bonjour, (X) 꼭 Madame이나 Monsieur를 붙여야 정중해진다.

CV를 학교 진로센터 직원에게 맡겨서 교정을 받는 일은 외국인도 하는 일이다. 어느 중국인은 회사 로고 이미지를 CV에 넣어서 교정을 받았다고 하니 외국인에게도 교정의 기회가 열려있다.


다른 학생의 사례


6개국어를 하는 여자분은 Gare du Nord에서 SNCF 인턴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며 많이 배웠다고 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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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계획은 내 친구 Seiji에게 보낸 메시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Je crois que ce serait très intéressant si on fait la concurrence entre la musique électronique coréenne et celle japonaise. En dehors de la sphère de la musique avec laquelle on danse, comme Gangnam Style, c'est bien sûr très américain, on se concentre à la musique pour se reposer ou juste pour écouter.
Et je propose un autre critère de 'pertinence avec l'atmosphère de Paris'.
Clazziquai, Casker, Mongoose, Glen Check
vs
MEG, Capsule, Mondo Grosso, Fantastic Plastic Machine
C'est ce que j'ai voulu faire longtemps!! Allons sortir la vidéo de remix sur ce sujet!!

번역:
나는 우리가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이랑 일본 일렉트로닉 음악을 배틀 뜨게 하면 참 재미있을 거라 생각해. 우리가 춤추는 그런 종류의 음악 외에, 강남스타일 같은 거 말고, 그런 진짜 미국적인 거 말고, 우리는 쉬기 위해 혹은 단지 듣기 위해 듣는 음악에만 집중하는거야. 그리고 또 하나 조건을 걸자면 그건 ‘파리의 분위기와의 연관성’이야.
클래지콰이, 캐스커, 몽구스, 글렌체크
vs
MEG, Capsule, Mondo Grosso, Fantastic Plastic Machine
이건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야. 이거에 대해서 리믹스 비디오 만들어서 유튜브에 띄우자!!

친구 Seiji는 참가하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친구가 현재 파리와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스톡홀름 등에서 개최하고 있는 K-POP 파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DJ 리믹스 파티를 기획하였다.

1. 파티 컨셉
 실제 연예계 소식을 바로 받아서 행사에 반영할 수도 있다.
soirée의 안티테제. 기본적으로 민트페이퍼,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노선을 따른다.
조명 어둡게 하고 파란색 은은한 빛 틀고 촛불 켜고 와인 마시는 컨셉이지만 와인이 대신 버블티를 마신다. 서양 대학생들도 쉽게 동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 동양적 요소를 반드시 포함시키되 그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도록 하기. 하지만 호텔 코스테스처럼 막 고급스럽지는 않다.

2. 대상 관객
기존의 프랑스 현지 K-POP 파티 (Seiji와 Dinh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관심갖지 않는 것만 모아놓으면 전혀 다른 타겟의 관객들이 관심가지는 것만 추려진다.
K-POP을 좋아하는 청소년을 지양하며 20대 초반을 공략한다. 그중 구매력이 높은 아시아계 프랑스인과 한국 및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양 프랑스인에 초점을 맞춘다.
- 춤을 추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만 모아보자.
- 스트레스를 풀러 온 게 아니라 쉬러 온 사람들을 모아보자.
- 미치고 싶지 않은 사람만 모아보자.
- 그래도 낯선 사람을 만나기 무서워하는 사람은 오면 안 된다.

어떻게 솎아내지?
일단 VirtualDJ로 내가 좋아하는 곡들 (세이지가 안 트는 곡들) 로 리믹스를 만들어보고 그걸 사람들 모인데서 틀고 반응을 보자. 유튜브에서 MP4 비디오를 많이 다운받자.
"점잔빼는 사람들의 연예와 오락"
타겟층은 23세 이상. 30대까지 커버 가능.
목표 참가자: 40명.
그 다음은 60명, 그 다음은 120명, 그 다음은 240명.
Giftea는 100명까지 수용 가능.

3. 무대 장치 및 인테리어

한류상품 진열대는 테이블보로 덮어서 가리고 불을 끄고 촛불만 켠다.
내가 그동안 집어온 한국문화원 일본문화원 등의 팜플렛 리플렛을 테이블 위에 대신 진열해놓는다.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VirtualDJ로 영상을 틀고, 여기 있는 스피커를 이용한다.
스탠딩 파티가 아니고 춤추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확보되어야 한다.
시앙스포 Cartographie 랑 공항 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자.
슬라이드쇼로 교회에서 한국어 가사 프랑스어 가사 틀어주듯 한국 노래 가사를 프로젝터로 띄우기.

4. 입장료 및 경품

입장료는 1유로를 받는다. (300명이 오면 300유로를 번다.)(티켓에 버블티 포함. 입장권 5유로)
AFCP 파티에서 배운 점: 미리 구글 닥스나 페이스북으로 등록을 받아서 등록한 사람만 입장하게끔 제한을 둔다. (이는 미리 티켓값을 내는 것과 다르다. 미리 티켓값을 내야 한다면 부담이 있다.)
 
5. 리믹스 진행 방식

DJ가 마이크를 가지고 중간에 프랑스어와 약간의 한국어+일본어로 멘트를 하면서 진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
처음에 5곡을 리믹스로 틀고 멘트. (프로젝터로 곡을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틀기. 이런 프로그램이 있나? VirtualDJ와 연관지어서 슬라이드를 선택해주는 프로그램.) 다음 5곡이 어떤 분위기로 갈건지를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정하기. 그 다음 5곡을 리믹스로 틀고 또 멘트.
시간이 지나면 댄스를 할 수 있는 곡으로 리믹스도 트는데 이때 라운지 음악으로 간다.
음악 소리는 대화를 방해할 정도로 크지 않다.
사람들이 이렇게 감동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진짜 이런 행사가 있기를 바래왔는데 드디어 열어주는군요!!’
중후반 때 되면 노래자랑도 하기 - 이때 선물을 많이 줄 것. 노래 선곡 목록은 세이지 케이팝 목록에 없는 곡으로 해야 함. 따라서 미리 준비해온 사람들만 선물을 받게 되어 있는 구조. 내가 + 애들이 딩동댕 심사평 하면 재밌겠다.

6. 홍보

리믹스를 한다고 하지만 일반 디제이처럼 포스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공항 안내판처럼 단정하게 할것.
포스터 홍보에 들어갈 글씨는 다음과 같다.

 Pour ceux qui s'ennuient de la K-POP en pensant que ce type de danse n'est pas leur style:
 Pour ceux qui cherchent toujours les nouvelles chansons exotiques qu'ils montent en arrière de leur vie:
 Ici on a préparé la soirée pour toi!!
 - La musique de Corée pas très souvent introduite en France, mais qui a l'ambiance douce et romantique
 - Tu peux danser, mais dans la manière jolie et élégante avec peu de désordre
 - On a aussi les musiques japonaises, nos meilleures amies de toujours

만화로 설명을 더하기(옵션)
한국 남자는: 군대에서는 TV를 보면서 K-POP에 열광하다가, 군대에서 나오면 멍하니 외국인들 춤추는 모습을 쳐다본다. 한국 여자는: 고등학생 때는 뮤직뱅크에 가서 K-POP에 열광한다. 대학생이 되면 클럽에 가서 쳇 난 K-POP따위는 듣지 않아 하고 도도한 체를 한다.(가게에서는 틀긴 해요 라고 작게 그림 들어감) : 요 만화를 그려달라고 누구한테 요청하기.
아는 사람을 다 부른다.
행사의 전초전으로 내가 행사때 틀 노래의 유튜브 링크를 모두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로 공유하기.
네이버 BAND에 가입 시킨다. BAND에서는 가입자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 정보가 추후 제공되도록 한다.
시앙스포 27RSG에 Asie Extreme의 도움을 받아 데스크를 잡고 거기서 공강때 공부하면서 DJ도 같이 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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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안내>
일자: 12월 20일 목요일
시간: 18:00 ~ 23:00
장소: Giftea (12 Rue Caillaux 75013 Paris, M7 Maison Blanche)
입장권: 5유로 (4유로 상당의 버블티 포함), 현장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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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여러분의 의견을 묻습니다. 다음과 같은 행사를 진행할 때 어떤 문제점과 개선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많이 달아주세요!! (철저히 한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의 국익을 위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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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tcollege.ee


이번 여행의 중요한 랜드마크인 Skype 본사를 찾았다. 아쉽게도 회사 내의 관광객용 견학 코스는 없고, 견학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왜 견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가지고 사전에 메일을 보내야 한단다. 내가 그렇게 준비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카운터 직원과 소소한 얘기만 하고 돌아갔다. 안에 인테리어는 정말 세련되었고 일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저 건물 뒤에 skype 있다



짜잔 여기가 skype 본사



짜잔 여기가 skype 본사



Skype 본사 내부 살짝 몰래 찍어옴



이 차들이 전부 skype 직원들 차.



Skype 본사 정문. 딩동 한 다음 문 열어주면 들어간다.

참고로 Skype 본사 건물 바로 옆에는 탈린공과대학 건물이 있다.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Eesti Infotehnoloogia Kolledž)은 안의 인테리어만 보아도 창의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IT 분야임을 알 수 있게 생겼다. 미국을 필두로 한 집중적인 투자와 인력 교육은 태동하는 에스토니아 경제를 낳았다.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복도



IT 도움 요청실 문 앞. 이 사람들에게 한자란 우리에게 아랍어와 같은 존재..



교실 내부 스샷 찍어놓고 앵그리버드 AR 장식



리눅스 개발에도 큰 공헌을



연간 일정표



소강당에서도 한창 수업중



건물 안은 진짜 이쁘게 생겼다!!
NHN그린팩토리보다 아담하고 가벼운 인테리어.



카페테리아는 하프라이프 ㅋㅋ



이곳 에스토니아정보기술대학이 오늘 가본 곳(탈린경제대학, 탈린공과대학) 중 가장 많은 행사 공고가 이루어지는 곳



이곳 에스토니아정보기술대학이 오늘 가본 곳(탈린경제대학, 탈린공과대학) 중 가장 많은 행사 공고가 이루어지는 곳



벽 장식으로 건물 안내를 하는데 인테리어에 공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시간표는 이렇게 TV에 나온다. 공항 비행기 출발 안내처럼.



에스토니아 정보기술대학 (Eesti Infotehnoloogia Kolledz)를 후원해주는 수많은 국내 및 글로벌 기업들




BoGa pott는 내가 있었던 레스토랑 옆의 미술관 겸 카페의 AP다. 사람들은 AP에 비밀번호를 걸지 않는다. 이것은 탈린 시 혹은 에스토니아의 정책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무지에 의한 것일까.



TallinnWIFI라고 써있는 와이파이는 와이파이 존 팻말이 붙어있는 곳에서 잡힌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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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tu.ee



이런 joint platform이 있다면 바로 한국과 에스토니아가 손을 잡아야 한다.



한국과 비슷한 대학 건물 내 풍경



교수 정보



한국 전자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는 핏츠닷미(fits.me)



IBM 발트지부 비즈니스 컨설팅 부문 공모전 공고 (주최국은 라트비아)



디자이너 공고 포스터는 디자이너스럽게



IT경영학과




good web marketing specialist!



시만텍 구인공고



유럽 애들은 방학때 다른 유럽국가 가서 인턴을 하고 온다.



탈린공대 세미나 시간표



구인공고



건물 소개



카이스트 전산학과처럼 학술 활동도 하고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머 급구 !!
이런 모습이 한국이랑 똑같다는 거다.



탈린공대 컴퓨터공학부 건물 입구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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