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보다 높은 이자율을 가져다주어 산업의 발전을 억제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고용과 복지를 위해 재벌과 정부가 함께 개입할 것을 주장하는데,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APEC이나 ASEAN+3에서의 지역협력을 논의할 때 지금까지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대기업 재벌이 중심이 된 기업지배구조를 유사하게 가지고 있는 국가들끼리의 경제협력이 실제로 서로에게 주는 이익 때문이다.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들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국민 경제를 이끌고 일자리 창출과 복지를 이루어내는가를 보면 그 국가들 역시 재벌 중심의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현재의 ASEAN 국가들에도 적용되어서 그들이 지금부터 한국의 1970년대 발전과정과 같이 하나의 사업을 정부가 집중 육성하고 자국민들이 자국 상품을 사용하게 하며 수입품에 엄격한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 경공업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나는 반대한다. 그러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외국으로부터의 산업자본 투자를 받지 못하는 목마른 상황에 있을 때 국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유효할 뿐이다. 분명 한국과 싱가포르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통해 부를 축적한 뒤 추후에 경제협력과 FTA를 주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한편 지금은 상황이 달라서 개발도상국이 비관세 장벽이나 단일 산업 육성에 의존하지 않아도 주변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하여 얼마든지 자국의 경제발전을 이루고 그와 동시에 자유무역을 추진할 수 있다.
‘사다리’를 유치산업보호론에 따른 보호관세, 무역보조금, 비관세 장벽, 정책금융 등으로 이해할 때 지금 막연히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는 ASEAN 국가들은 이 사다리를 타고 싶지만 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인도와 ASEAN 간의 경제협력과 FTA가 2003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여기서 ASEAN 국가들 중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은 인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공항, 도로, 주택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였다. 인도의 제품을 수입할 때의 관세가 낮아져서 ASEAN의 국민들이 싼 가격에 공산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인도는 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양쪽의 협상 당사자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라이며, IMF가 대표하는 자유방임, 시장 개방, 관세 철폐, 금융자율화, 민영화, 변동환율, 지적재산권 보호, 독립된 중앙은행 제도와 같은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며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더 못난 국가는 사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신 그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틀에 둘러싸여 있다. 그 국가와의 자유무역을 진행하고자 하는 다른 국가들은 더 넓은 다자주의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착취에 가까운 이윤 추구에 제약을 받는다. 지역협력 안에서는 비교우위가 없는 국가가 목소리를 내어 IMF와 FTA의 원칙이 실행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지역협력은 또한 공통의 군사, 자원 및 인간 안보 차원에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시장 자유화가 안보를 해칠 소지가 생긴다면 그때 협력이 중단된다. 마지막으로 국내시장의 개방은 국내 산업이 해외의 같은 산업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국내 정치의 상황에 따라 달렸다.
미국 또한 1970년대에 수출 수효를 스스로 제한하고, 특정 산업분야에 대해서만 개방을 하는 등 보호무역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Haggard 1997) 현재의 미얀마나 라오스와 같은 나라가 지역협력을 깨고 자국의 주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ASEAN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미얀마와 라오스는 국내에 해외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였고 공장을 운영하여 생긴 이익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 베트남, 중국 등으로 움직였다. 자유무역 체제와 지역주의가 항상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부의 증대에만 봉사하는가 생각했을 때 꼭 그렇지도 않다.
192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이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은 사례, NAFTA 이후 멕시코가 사다리를 올라타지 못한 사례라면 ASEAN의 개발도상국은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으로 사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무언가를 타고 잘 올라가고 있다.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에게 무조건 해가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사다리의 유무라는 이분법을 낳았고 이제는 이를 고쳐야 할 때라고 본다. ASEAN에 론스타 같은 악성 해외 자본이 없다면 문제가 없다.
'연구 > 정치외교/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적인 소통은 있지만 결사체의 형성은 없다 (0) | 2013.04.11 |
---|---|
사이버 공간의 권력은 관계 지향적 (0) | 2013.03.29 |
허브 없는 네트워크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방법 (1) | 2013.03.23 |
이해관계 정립을 통해 이제는 하나로 수렴을 (0) | 2013.03.22 |
리더가 없어도 조직은 움직인다 (0) | 201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