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사이트 http://www.sciencespo.fr/forumentreprises/


 4학년이 되어 한국의 대학교에서 취업설명회를 듣기도 전에 여기서 취업설명회를 듣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봤을 땐 작은 기업 (인턴 하면서 이게 무슨 회사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이 여기서는 굉장히 멋있게 소개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직접 본 프랑스 기업의 진짜 모습을 한국은 너무 모른다. 정보 공개에 폐쇄적인 프랑스의 습성 탓에 먼 한국 땅까지 정보의 전파가 쉽지 않은 건지 한국에서부터의 관심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 행사는 한국에서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진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Ernst & Young 언스트앤영

 외국에서는 컨설팅 기업을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해서 설명회를 들어보았다. 과연 주변에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외면부터 광이 났다. 면이나 울 스웨터 혹은 가죽은 아무도 안 입었다. 서류가방, 실크/캐시미어/리넨/폴리에스터 재질의 얇은 옷, 귀퉁이에 금장 처리를 한 빳빳한 서류철, 만년필, 블랙베리 핸드폰 등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미지가 한국보다 더 강하게 와닿았다.

 내 옆에 앉은 중국 남자애는 심지어 91년생이었다. 이곳 시앙스포에서 학부를 졸업하고(한국나이 19세에 입학하여 3년제) 바로 석사 1학기를 시작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어린 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가 여기 온 시기는 절대 이른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세계와 나를 비교하면서 몸에 긴장감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다들 말을 빠르게 했다. 발표하는 사람도 질문하는 사람도 모두 빨랐다.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에게 빨리 말해주는 건 능력이기 이전에 배려다. 나는 말을 빨리 못하고 대신 남들이 안한 유익한 말을 골라서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성향은 컨설팅 기업과는 맞지 않는다고 이번에 정확히 느꼈다.

 프레젠테이션의 형식은 한국과 비슷했다. 외국계기업이 사용하는 양식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좌측 하단에 Page OO이라고 크게 표기하고, 맨 하단에는   저작권 및 회사 기밀자료 명시 문장이 작게 들어가 있다. 발표를 하는 분은 자신을 Manager라고 소개했고, 자녀가 2명 있으며 야근을 해도 10시까지 일하고 가끔 주말근무를 하긴 하지만 보통 사생활은 보장된다고 말하는 걸 보니 한국과 별반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Ernst & Young에는 IT컨설팅 파트가 따로 있고 중소기업의 인수합병/세무/기업가치평가 관련 파트가 따로 있다고 하니 나도 귀가 솔깃했다. Assistant -> Senior -> Manager -> Partner 로 진행되는 승진 순서는 한국과 다르지 않았고, 이 나라 지사와 저 나라 지사가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동등한 자격으로 협력한다는 네트워크 도식 상의 설명을 듣고 분권화된 기업문화가 보기 좋았다.

 질문 시간에 나는 외국인도 프랑스 Ernst & Young에 근무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답변은 '아니오'였다. 대신 취업 후 1-2년 뒤 다른 나라 지사로 6개월-1년간 파견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근무 조건이 똑같을테니 걱정 말고 한국으로 가라는 답변이었다. 석사를 경영/금융으로 하고 공학이나 정치외교학으로 하지 않으면 컨설팅 회사에 갈 수 있다. 학사 가지고는 부족하다. Assistant도 여기서는 짧은 학부제 덕택에 석사를 마치고 들어간다. 


자세한 내용은 voyezplusgrand.ey.com, www.ey.com/fr/carrieres를 참고하길 바란다.


Pernod Ricard 페르노 리카르

 Pernod Ricard의 러시아-동유럽지역 마케팅 매니저(한국으로 치면 과장)는 공대 학부를 나왔다가 ESCP 경영대학원을 나왔다고 말했다. 50분간의 발표는 창의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TED식 발표에 기업의 최근 프로젝트를 녹여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서두에 '우리 회사 직원이 몇명이고 지사가 몇개 있고 얼마를 버는지는 웹사이트에 잘 나와있으니 여기서는 그런 지루한 내용으로 여러분을 고문하지 않겠다' 는 말을 하는데 굉장히 멋있었다. 한국의 기업 설명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기를 기대한다.

 회사 소개 비디오는 백열등, 가정, 친구들과의 만남, 옷가게 등을 배경으로 한 캐주얼한 분위기였고 중국인과 일본인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배경음악은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살랑거리는 영국식 락이었다. 곡제목은 Singtank의 The Party이다. 회사 소개 비디오는 이 뮤직비디오와 아주 비슷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계속 Creativity를 강조하는 건 변하지 않는 술의 품질 위에 항상 변해야 하는 브랜드 마케팅을 더해야 물건이 계속 팔리기 때문이다. 소개를 하는 분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Scalpel (두피 절단 메스) 프로젝트는 Pernod Ricard의 브랜드전략을 세우기 위해 9개 분야(문학, 음악, 영화, 미술, 건축, 셀레브리티 등) 의 전문가 각 1명씩을 자문위원으로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가장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미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Pernod Ricard의 기업 성향에 부합하는 아티스트를 집중 조명하는 보고서 프로젝트다. 웹사이트가 있기는 하지만 기업 직원만 들어갈 수 있다. http://www.scalpelonline.net

 소개를 하러 온 매니저와 같은 진짜 창의적인 직업은 파리 본사에서 근무해야만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Decentralized company라고 소개했지만 핵심 직군은 프랑스가 중앙집권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국가별로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팀이 있는 제대로 분권화된 컨설팅 회사와는 다르다) 노력하면 파리로 올 수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을 묶은 지역에 대한 마케팅 매니저 자리도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할 수 있다. 인턴은 학부 졸업 이상만 받는다.

 소개 보조를 하러 온 직원분은 중국인인데 중국에서는 위스키와 녹차를 섞어 마신다고 해서 나도 마시고 싶어졌다. 맛있겠다.. 그리고 Onodigt Bra Ahus 보드카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생산하는 보드카로 한정판매용이라 한다.




* Pernod Ricard의 프로젝트에 대한 좋은 예시가 주류 관련 잡지에 소개되었다. (바로가기)


 취업설명회는 오프라인에서 대면으로 정보를 접하는 과정이다. 대면이 윗물이면 온라인은 아랫물이다. 기자회견장이 윗물이면 뉴스 포털은 아랫물이다. 학생증과 예약 확인서를 검사받고 입장을 할 수 있는 제한적인 대면이라면 더더욱 윗물이다. 깨끗한 생수를 마시는 게 목적이라면 대면을 하러 올라가야 한다. 가공된 탄산음료를 마시는 시절은 이제 끝마쳐야 한다. 이곳에서 내 신분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행사는 다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생수만 마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이곳 Maison de la Chimie에 도착할 때 나는 이 날의 경험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아니길 바라고 왔다. 새삼스럽게 늦게 발을 디딘 감이 없기를 바랐다. 다행히 너무 새로워서 낯선 느낌은 없었다. 프랑스어로 질문을 하기 전에 들었던 긴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건 긍정적인 신호다. 주위에 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조금 더 둘러보고 난 뒤 무서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나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들도 그럴싸하게 잘 차려입고 이곳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외국인이라고, 교환학생이라고 여기 오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었다. 학생증이 있으면 본교 학생이든 교환학생이든 똑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에는 프랑스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인데 본교에 1학년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그들이 한국인의 국제적 규모에서의 경쟁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행사장 Maison de la Chimie. 화학 산업에 종사하셨던 20세기 초반의 분이 건물을 비영리재단 컨퍼런스센터로 운영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통이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http://www.maisondelachimie.com



기분 좋아지는 고풍스러운 세면대 디자인



기업 설명을 진행하는 큰 방은 이렇게 생겼다.



멋진 내부 경관



두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던 103호실



프레젠테이션이 있던 방을 나와 건물 양측으로 가면 이렇게 기업 부스가 있었다. 1층에는 은행, 공기업 및 정부기관, 2층에는 컨설팅 및 감사, 미디어 및 통신 관련 기업. 다들 곱게 단장하고 왔다. 취업을 할 때의 유럽 애들은 겉모습을 이렇게 한다! 라는 설명을 글로 알려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보면 1분이면 알 수 있다. 백문이불여일견.



전날인 목요일 파리정치대학 도서관 컴퓨터에서 학생들은 죄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인쇄하기 바빴다. 나도 부족하게나마 이력서를 써보았고 (저번에 프랑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세미나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나한테 질문할까봐 조마조마하며 얘기를 몇가지 들었는데 그때 들은 팁이 프랑스식 이력서를 작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내가 관심있는 기업 부스에 가서 이력서를 낸 다음 연락처도 받고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한 상담도 받고 인턴 제의도 받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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