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연세대학교 안에 참여하고 있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과 이번 중일 협조체제와 동아시아 내 전자민주주의 가능성을 같이 묶어서 본다면 이 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질 수 있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조재욱과 전재성의 두 논문은 세 국가 간의 관념, 규범, 정체성에서 겹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는 국가를 구성하는 일반 대중의 다수가 띠는 모습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다.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국익을 내세우기 전에 지역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주장이고 현재 논문은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이 정치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20대의 젊은 한중일 3국 대학생들이 모여 공통의 겹치는 관념, 규범, 정체성을 형성하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젊은 시절 이렇게 동아시아 협력을 목표로 훈련된 학생들이 국가의 결정자가 되었을 때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 통합을 논의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역협정, 경제동반자협정과 같은 경제적 이익이나 동맹과 같은 안보적 이익을 위해서는 사전에 두 국가 이상이 왜 그러한 이익을 서로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그 명분은 국가, 기업, 시민사회 모두에서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며, 모든 영역에서 명분이 만들어져야 국제정치에서 비판 없이 이익 공유의 실행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일본은 중국 중심의 ASEAN+3에 대해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은 타 아시아 국가들에게 패권국가로 자리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태도를 결정한 행위자는 현재 각국의 외교부 지도자들이고, 그들의 개인적인 관념, 규범,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는 대개 냉전의 최후반기와 탈냉전기 초기이다. 반면 지금 한중일 대학생 리더십포럼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냉전 질서나 과거의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경험하지 않았고 지금의 외교부 지도자들처럼 그 때의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과거의 역사와 영토분쟁에 대해 최대한 양보하고 시장의 가치를 옹호하여 삼국 간 포기하고 얻을 항목을 논의를 통해 정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전반적인 정체성이 각국의 학생이기 이전에 동아시아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담론은 최대한의 협력과 신뢰로 이어진다.


   구성주의를 따른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정체성의 구성이 시민사회의 극히 일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현재는 활발하지 않다. 교환학생 제도와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대학 내에 도입되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대규모로 이루어진 지는 25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역사로 본다면 일본이 APEC을 주창하기 시작한 이래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교환학생이 시작하였다. 중국과 한국의 교환학생으로 본다면 한중수교 이후부터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동의하는 담론이 한중일 삼국 모두에 형성되기 이전과 달리 시장경제와 무역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된 후부터는 과거의 국민국가 중심적이고 권력과 이익 중심적인 지역구성을 벗어나 정체성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경제적 이득의 배분을 토의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전환되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협력의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며, 시민사회에 참여하는 일부 국민들 특히 외국인과의 접촉과 대화로 상호 이해를 강화한 엘리트 계층에 한정되어 의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한중일 삼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사용에 익숙하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표출하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아시아 내의 전자민주주의 또는 전자공론장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는 연세-게이오-릿쿄-푸단 리더십포럼의 현재 모습과 향후 계획에 매우 적절히 들어맞는다. 중국 샹하이 푸단대학 학생들의 경우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접속을 우회하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고, 한국과 일본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일에도 자유롭다. 행사에 같이 참가하는 학생들이 세 국가에 나뉘어 있다보니 토의를 하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과 공식 웹사이트가 되었다. 민족주의의 성향을 가진 학생이 한 명도 없고, 현재 아무도 현실 정치처럼 주변국 정부기관과 같은 이익 결정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다 보니 지역정체성 형성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 이는 NEAT와 같은 민간 시민사회 싱크탱크에서도 똑같이 진행되는 일이며 이 대학생 포럼은 그러한 시민사회의 영역을 벤치마킹하여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 의존한 협의는 디지털 기기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협의의 결과를 알림받지 못하게끔 하고 그들 중 민족주의나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논의된 내용을 출판하고 기존 정치 메커니즘을 통해 보고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정보기술의 발달이 만든 새로운 동아시아 정체성과 지역주의의 논의는 온전히 국가에 반영될 수 없게 된다. 


   지금의 정치는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외국인 상대에게도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건네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중의 풍토에 기반한 정치이다. 과거에도 국제전화가 있었고 대사관 및 정부기관 사이의 연락 수단으로 쓰였지만 지역적인 협력에 대한 논의는 직접 만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한정된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역 협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범위는 정보기술의 풍토가 만들어지기 전과 비교했을 때 아주 약간 더 넓어졌을 뿐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 담론의 이러한 소수 독점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쉽게 생각한다면 대중의 의견 형성에 국가 정책결정자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왕래가 자유로운 유럽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이 강하여 국가간 지역통합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왕래가 비행기로 한정되어 힘든 동아시아의 경우는 대중의 지역통합 의견 형성도 약해서 지식질서가 소수의 전유물로 남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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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마스가 정치사상가로 활동하던 20세기 초에는 공적 의견은 지배층의 판단과 해석이 동반된 대중을 향한 매스컴을 통해서만 발현된다고 보았다. 당시의 기술적 미비로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형성이 아무나 쉽게 시작하고 다수의 공론장이 수시로 변하는 이슈 위주의 SNS 공론장과 같은 모습을 띨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텍스트가 현재에 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며 특히 변화된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과거의 미디어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비추어 예상해볼 수 있다.


     현재의 정보기술 진보와 그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중도층, 부동층,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 의견이 파편화되었던 사람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하버마스가 국가와 공적 영역을 겹치지 않고 대치하는 공간으로 정의한 만큼 정보기술을 이용한 의견 형성은 대통령, 국회, 정부 기관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적 영역은 엘리트와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참여를 용인하므로 그에 따른 미디어의 정부 규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SNS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미디어 회사의 존속 권한이나 개별 사원의 신상과 연결지어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신문사나 방송국은 규제에 잘 따를 수밖에 없지만, SNS는 의견의 생산과 유통이 불특정다수와 중립적 기관으로 이원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견의 유통 기관이 어느 국가에 소속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견의 유통이 초국가적 성격을 띠어 국내법으로 규제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YouTube와 Twitter는 모두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지만 미국 국내법으로 전세계 개인들의 의견 형성을 제한할 수는 없다. 단 국가 권력이 유통 기관으로 하여금 공적 영역의 권력을 제한하게끔 하는 경우는 있다. 중국에서는 접속이 안 되게끔 하는 방화벽의 만리장성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특정 종류의 개인만 공적 영역에 참가할 수 없게끔 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국가 단위의 정치에 대한 여론 형성은 온라인에서 극도로 자유롭다.


     과거에는 집단의 대표 의견을 모아 발의했고 현재는 각자 제시한 의견이 기술적 가공을 거쳐 집단의 의견으로 바뀌는데, 미래에는 기술이 정치적인 여러 선택지를 인간이 움직이기 전에 제시해주어서 추후에 그 선택지를 선택만 하면 되게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마치 스마트폰 간의 통신 즉 사람과 사람간의 통신이 사물통신(M2M)으로 진화되어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알아서 산출되듯이, 평소 집단의 개인이 자신의 활동의 자취를 남기거나 개인의 움직임을 기계가 기록한 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기계가 제시해준다. 사람은 숙의의 과정을 기계가 일부 대행한 결과에 참여하여 인간의 공적 이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몫만 해낸다. 이를 통해 정치활동이 기술의 도움을 받는 수준은 더욱 향상된다.


     제도와 규제 그리고 권위가 수반된 대중매체의 활용은 난잡함을 막고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기술이 뒷받침함에 따라 그러한 목적이 정당성을 잃었다. 사람들의 의견이 형성될 미디어의 수는 매우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정보의 홍수가 있는가 한편 의견의 홍수도 있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는 이를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는 의견 형성을 제도로 제한하기보다는 제도가 제한하려 했던 부적절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어내거나 숨긴다. 이로서 개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매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개인의 모든 행동이 효과적인 소통으로 이어지지는 않게 하는 인터페이스와 구조가 무정부적인 상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쓰레기를 버리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리게 하는 대신 초대형 청소기로 손쉽게 길거리를 청소하는 기술을 개발한 격이다.


     이 방식의 미디어 활용과 정치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종류의 정치이기 때문에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의 성숙이 기술의 뒷받침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정향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 곳에 끼워맞출 수 없이 모든 정향에 적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며, 굳이 말한다면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민주주의 정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최근 논의되는 '새 정치'의 구체적인 단면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연구를 하는 자세는 브루스 빔버의 논의에 따르면 비민주국가의 입장에 더 가깝다. 컴퓨터와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지 그것이 정부의 관할 아래 놓여야 하는가 여부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하버마스가 알고 있던 매스컴 위주의 미디어가 SNS를 포함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기술적 발전을 꾀함에 따라 제도의 역할은 약해지고, 기술의 제도 대체에 따라 무정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공적 영역이 보장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적 성질 자체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다 정치적으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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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king about recent disputes of Japanese legislators’ behaviors to bow to the Yasukuni Shrine in Tokyo between Korean and Chinese governments, their conception of holding Japanese traditional value follows the historical principle of Justice just as what Nozick said. Since being a Japanese means respecting all of its history that started from the 4th Century, and all of its changes in dynasties and political systems, including imperial Japan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Japan seems to stick to its entitlement theory of justice in holdings and transfer.
     When we discuss about material gains improperly acquired to Japan at the expense of Manchuria and Joseon, transfer of holdings does not fit into justice without doubt. However, theories of expanding Japanese sophisticated system in order to promote East Asian growth together in order to fight against expansionism of West European empires remain a just initial holding for the Meiji Dynasty in late 19th Century in Japan’s point of view. At the time, there was a bounty of field of thought that any country can fix its scope of political thought and develop it in a first-come-first-served basis. Lack of cooperation between nation states at that time had a similar situation to the tragedy of the commons that Adam Smith discussed in England. Just as the enclosure movement suggests that anyone can do anything inside the fence without causing harm to others, Japan did anything inside the realm of concept of ‘East Asian region.’ So Japan thinks that it is the first country that attempted to seize the political thought of making East Asia as a region led by Japan, while other countries had an equal chance of participation but could not be earlier than Japan because of their lack of skills and political quality.
     If throwing out past imperialistic values, imperialism-related materials, capital and technological advancements is obligatory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n the world order or regional order is said to follow the current time-slice principle of justice. For the benefit of most countries in East Asia including countries having been victims of Japanese Grand Asian Commonwealth, Japan should forgo its ideological background and try to yield some of its product to other countries for the most utility in this region. When Japan decided to make Joseon its colony to expand its influence in Manchuria, it violated the difference principle to give autonomy to the least developed country to develop on its own, without imperialistic management. However, denouncing Japan in applying the theory of justice as political liberalism or utilitarianism is hard, especially when we discuss the power game between the two ‘empires’: Russia and Japan. Russia being in the position of an empire so that it cannot be any inferior than Japan, means that Russian intention to expand its influence in East Siberia is equally bad to Japan, causing less political benefits to countries which do not have imperialistic expansionist ideas.
     Current values of a nation-state that Japanese legislators have are led to a historical principle of justice. As we can see from an interview of one Japanese legislator from Liberal Democratic Party, they bowed to the Yasukuni Shrine because they have Japanese nationality, and the Shrine represents its history of 20th Century having a true Japanese nationality that corresponds to the people. In this sense it is forbidden to talk about colonialism that seized and stole capital and resources in neighboring countries in East Asia that Japan violated the principle of transition, because current issue is limited to transition of national values inside generations of Japan as a sovereign state. According to this idea, it is even the side that could have attempted a military coup to stop the emperor’s intention that is to be criticized, because that attempt would have led to stealing and preventing national values. So if Japan continues bowing to the war criminals in Yasukuni Shrine without causing lethal or material harm to Korea or China, then the behavior of legislators is totally just, not more than respecting its national values hand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Korea and China can thus refute Japanese current political action more persuasively, not just based on hatred sentiments, but by clarifying that expansionist political thought of a Japanese empire cannot be acquired initially following the principle of acquisition, but expansionism is the only result of stealing the political thought of making a peaceful country refraining from territorial expansion. Imperialism cannot be acquired for the first time. But setting up a nation-state or dictatorial dynasty in a certain limited borderline guarantees the principle of acquisition for its political ideology. So there is a way to logically pose a limit of imperialism in order to stop their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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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국제적인 무명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는 김정은의 무력 도발을 규탄하고자 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북한의 대남 주 선전매체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한 뒤 그 증거인 원본 DB를 공개했다. 하지만 어나니머스는 국제적인 무대로 활동하는 해커 그룹이며 그 안에 어느 한국인이 한국어로 트윗을 보내며 다중과의 소통을 하는지, 어나니머스가 국내 네티즌들과 함께 연대하고 결사체를 형성할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방면의 한국 국민과 얽힌 사이버 액티비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주목할 점은 어나니머스의 해킹 기술력으로 북한 사이트를 헤집고 난 잔해를 철저히 분석하고자 하는 네티즌의 결사 현상이다. 


     회원 명단이라는 지식을 생산한 뒤 어느 ID가 한국에 사는 누구인지를 밝히는 후속 작업으로서의 지식 생산은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개인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내에 민주화 이후로 북한에 대해 친근한가 적대적인가가 사람의 정치적 지향성을 가르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된 이상 종북-반북 이슈는 그 어떤 이슈보다도 단독적인 이슈에 따른 현안집단 결성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수일간 진행된 '신상털기' 과정에서 네티즌의 행동은 기존의 2008년 촛불시위나 2004년의 국민연금 개정 주장 등과 같이 근거와 논리를 이용한 같은 편의 설득이 이루어지고 정부라는 명확한 대상을 향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을 결여하고 있다. 즉 지금의 리더 없는 개인들의 협업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며, 오히려 최근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본연의 이적행위 수사 업무에 참고하겠다고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네티즌들이 손발의 역할을 해주는 격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네티즌의 과격한 참여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할 수 있으며 또한 잘못된 이적행위 신고로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사이버 액티비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단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위, 개혁운동, 혁명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고 인터넷으로만 뜻이 맞는 네티즌들이 한국 내의 종북 인사 색출을 목표로 하여 행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번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실제로 스크린샷과 함께 글을 게재한 네티즌들은 이번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조사 활동에 관심이 없던 다른 한국인 집단에 대해 설득이나 참여 유도를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활동 내역을 게시판에 올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내용을 공유하지만, 내가 이만큼 했고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동참해야 한다고 다수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요청하지는 않았다. 완전히 다른 생각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다중을 설득하고 자극하는 여러 개의 사건을 통해서 기존에 없던 형태의 넓은 결사체를 만들어야 촛불시위의 경우와 같은 대규모의 잘 조직된 사이버 액티비즘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에는 굳이 설득과 자극이 필요없어도 관심있던 사람들이 알아서 움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어나니머스의 미국, 이란, 중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각종 해킹 활동은 정치적 목적을 내걸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기성 권력에 도전하는 차원에서 완벽한 사이버 액티비즘의 사례이다. 어나니머스가 공격하는 국가는 국제정치적 질서에 따라 한 편으로 쏠려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터넷에 대한 검열과 인권 침해를 주도하는지 여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리고 어나니머스의 네트워크는 전세계적이며 이는 YouTube에 업로드된 개별 사건에 대한 개요와 해킹 참가 예정 소집단의 목록과 'We are legion'이라는 슬로건, 그리고 어나니머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수많은 계정이 얽히고설킨 무질서해보이는 조직에서 드러난다. 


     만약 현재의 수준으로 다중을 대상으로 설득을 하고자 하는 동영상을 공유할 플랫폼이 없고, 어나니머스의 주장이 맞는지 주변의 다른 시민들과 온라인으로 숙의할 수 있는 웹사이트와 기능이 없었다면 해킹은 단순히 활동가들의 비밀 집단으로 그들끼리만 소통하는 채팅창이나 이메일만을 통해서 숙의 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고 관심과 의견을 계량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어나니머스의 사이버 액티비즘을 지지하는 일반 다중의 집단을 만들고 집단의 반응은 추후 어나니머스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어 어나니머스가 소통하는 정치체의 지위를 인정받도록 한다. 특정 국가, 이념, 제도 안에 고정되어 있는 정치적 행위자라면 그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에 따라 행위가 강압적으로 쉽게 중단될 수 있지만 어나니머스의 경우는 모호한 국제법을 근거로 활동하는 초국가적 행위자이기 때문에 현재 어느 다른 행위자가 어나니머스를 체포하거나 고소할 것인지도 쉽게 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여러 국가의 시민이 참여한 네트워크는 상황에 따라 규모가 변하는 유연성을 보일 수도 있고, 이슈가 특별히 발생하지 않으면 활동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이 행위자의 가장 큰 강점이며 인터넷이 그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한 그들은 인터넷에 전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걸도록, 즉 검열 없는 자유로운 인터넷이 없으면 각자의 정치활동과 경제활동에 지장을 받도록 상황을 조성하여 그들이 초국가적 패러다임의 구조적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게 만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국제 단위로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논의와, 누가 어나니머스가 부당한 피해를 유발했을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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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FTA는 중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생각되어 논의가 시작되었고, 한국과 일본의 대 중국 무역 상호의존도가 높은 현 상황에서 삼국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TPP 교섭 참가는 미국의 안보 전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중국과의 협력 균열이 예상되게 했다. 손열 교수는 한중일 FTA의 부진한 원인을 일본 국내 정치 문제로 돌린 바 있고 그 근거로 1년마다 바뀌는 불안정한 총리 및 내각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 원인이 진단된 때는 2012년이며, 2013년 현재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예전의 잦은 교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높고, 무엇보다 그의 양적 완화를 위한 경기부양이 한중일 FTA 논의와도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은 오히려 일본이 양적 완화로 인한 추가적 이득을 얻기 위해, 혹은 자국 경제발전에 따른 주변국의 피해에 책임을 지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한중일 FTA 참가가 TPP 교섭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막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참가가 일본의 TPP 참가를 지연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은 그 중심에서 단순한 교역 이익을 위해 참가했다. 현재는 협상이 진행중인데 이것이 TPP의 진도를 의식하면서 이루어진다면 중국과 일본 양국은 한중일 FTA 자체의 성사 결과를 아예 생각하고 있지 않다. 중국의 목적이 일본이 TPP에 참여하지 않는 단순한 것이라면 한중일 FTA의 의미는 더욱 무색해진다.


  하지만 한중일 FTA는 분명 중국에게 이득이다. 국내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제약조건 하에 자유무역은 자유무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과 분야에 한정되어 그 효과가 발휘된다. FTA는 중국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중국 내 산업 중 국제경제에 적극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산업군이 정해지게 하여 중국 내부의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최근에는 아이슬란드가 유럽 국가 중 최초로 중국과 FTA를 체결하는 등 중국이 기존의 미국이나 한국이 추구해온 자유무역협정 대상국과는 다른 종류의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관찰된다. 그렇다 하여도 지역협력을 틀어쥐고 현재 수출 비중이 낮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또다른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지역과의 자유무역 확대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은 생산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에 직접투자를 진행했고 중국에 부품, 자재, 생산설비의 수출가공기지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비교우위가 중국에 몰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점도 중국의 이득을 증대시킨다.


       아울러 한국이 주변 양국과 같은 협상자의 지위를 가진 나라임을 고려한다면 협상 과정을 한국 주도로 가져올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갈등한다고 해도 한국과의 양자 관계는 모두 양호하다. 한국이 일자리 창출, 복지, 주변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책임성을 주장하며 협상을 진전시켜나갈 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중국과 일본은 적극 협상에 가담할 것이다. 한국은 주도적으로 무엇이 중국과 일본 모두에게 득이 되는 조건인지를 제시하여 삼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재자로서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이 권력을 극대화하여 한국의 제안이 일본의 TPP 참가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면 한중일 FTA는 한국 주도의 무역협정으로 비준을 마무리할 수 있다. 경제적 이득이 가장 큰 중국이 시작한 자유무역협정이므로 중국이 계속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한중 FTA에서 중국은 한국의 입장을 생각하고 민감품목을 만들었으며 상품, 서비스, 투자 면에서 세부사항에 대한 모달리티 합의가 이루어져야 2차 협상으로 넘어가겠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한국 입장에는 TPP가 주는 조건과 비교하면서 합의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중국이 일본의 TPP 참가를 안보 차원에서 그렇게 걱정한다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한중일 FTA와 TPP에 대해 한국이 둘 모두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협상 범위를 줄이는 데 일조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원하는 만큼의 높은 수준의 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협상 결과의 범위가 좁다 하더라도 일단은 일본이 미국과의 TPP와 한중일 FTA에 모두 참가하는 것을 확정된 결과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의 TPP 참가 여부는 그 확정된 결과에 뒤이어 결정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한중일 FTA의 추진과정에서 한국은 그러한 추후 결정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한국은 한중일 FTA와 TPP 모두 가입이 가능함을 주지한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자유화와 특정 지역 내의 파트너십이 모두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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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가 길거리의 오프라인 서명운동보다 익숙한 세대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은 투표권 행사에만 국한된 정치적 행동에서 벗어나고 있다. 스스로 나서서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정치인들의 행동을 감시하며, 나아가 선거 기간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직접 참가하고자 한다[1]. 선거 때 표를 얻어 국회의원으로 다시 선출되는 것이 현 국회의원과 그들이 소속한 정당의 가장 중요한 숙제이자 임무이므로 이를 향후 10년 혹은 20년 간에도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득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정치 효능감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여 일상화시켜야 한다. 기존 세대에게 재선에 대한 기대를 갖기 위해 국회의원이 한 일은 지역구민들이 만든 단체에 국회의원이 물질적 지원을 하거나 지역구 전체의 경제 발전이나 고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룬 뒤 결과를 발표하는 일이었다. 디지털 네이티브 이전 세대에게는 이처럼 정치 행위의 결과와 성과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유권자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이 없이 정치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따라서 금전적인 보상을 결과로 받음으로써 얻는 정치적 효능감보다 정치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현재 일하고 있는 의원이 잘 듣고 있다는 과정을 확인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효능감이 더 크다.

             비금전적 동기에 의존할 때, 다양한 수준의 참여가 이루어진 관용적 시스템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2] 기존에 다수당이 많은 자금을 바탕으로 유력한 소수 민간 행위자에게 큰 단위의 정치자금을 기부받으며 의견 종합보다는 정책 실행 및 조정 단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과거의 비관용적 시스템과 비교해보았을 때 지금은 소수정당이 보다 힘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즉 소수정당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참여를 받고, 다수의 시민들에게 작은 단위의 정치자금을 기부받아 영향력 확대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고, 의정활동을 인터넷과 기존 매체를 이용해 충분히 공개하고 소통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음을 투명하게 확인하려는 시민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정당 또한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비용도 줄어들어 비금전적 동기에 의존하는 시민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다가감으로써 서로 비용을 덜 쓰는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단 이렇게 기존의 정당과 시민단체의 의견 형성이 중요한 대의민주주의에서 보다 정보의 공개가 활발해지고 투명해진 대의민주주의로 이행했을 때 이익을 보는 쪽이 아무런 추가적 노력 없이 이익을 보지는 않는다. 이 이행은 정보기술의 이용이라는 기술 발달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기술을 이해하고 정치 행위자를 교육하고 활용 방법을 연구할 비용이 추가로 지출된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주도하는 정치에서 소셜네트워킹서비스가 사회 내 존재하는 갈등을 빨리 잡아내어 밖으로 표출하게 하고 사람들의 팔로잉/팔로워 네트워크를 통해서 정책결정자에게 전달되게 한다는 주장은 전달을 담당하는 전담 팀이 구성되어있음을 전제로 한다. 정책결정자가 열심히 트위터 활동을 한다 해도 수만 명의 국민들이 서로 격앙된 목소리로 토론하는 한 가지 주제의 흐름을 잡아내는 데는 일반 대중 모두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별도의 빅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 정치인 개인의 트위터 소통은 개인화된 시민 사용자와의 일대일 대화는 가능하게 해주지만 빅데이터 연구가 가지는 기술을 이용한 가상의 결사체 형성은 단순히 트위터 타임라인만 가지고는 실행에 옮길 수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술의 변화에 직면한 정당정치를 단순히 포기할 것이 아니라 팀을 구성하여 사람들의 의견 형성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참여 과정에 대응하는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체계론에서 말하는 두번째 단계인 의견 집약은 이제 정당 내 당원들이 모인 회의에서 가결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시민단체의 정기적인 회의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범위의 제약 없이 여러 번 인터넷으로 수행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 미디어의 활용 능력이 중요해지고, 그에 따라 인터넷의 기술적인 부분을 도맡는 산업군과 정치가 비로소 연결되는 새로운 현상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인쇄업자와 로비스트는 점차 설 자리를 좁혀가는 대신 IT 전문가들이 정치인과 정당과 손을 잡는 시대가 자연스럽게 올 것이다.

             정치과정에서 이제는 정당정치의 지속을 꾀하기 위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핵심의 위치 조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전체 세대에서 약한 소수자 부분에 속해있지만 점차 이 상황이 반전되면서 비금전적 동기에 따라 반응하는 이들을 위해 과정에 초점을 맞출 필요성은 점차 증대할 것이다.



[1] Tapscott, Don. 2008. Grown Up Digital: How the Next Generation Is Changing Your World. McGraw-Hill. 이진원 역. 2009. 『디지털 네이티브』. 서울: 비즈니스북스: 460-461.

[2] Shirky, Clay. 2008. Here Comes Everybody. Brockman. 송연석 역. 2008.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서울: 갤리온: 14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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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정책은 주변국에 피해를 주면서 국내경제를 부흥시킬 있는 방법으로 국내의 구조조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때문에 환율정책에 있어서는 지역협력을 목표로 하는 국가들이라면 협의를 통하여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경우 개별 국가의 판단에 따라 한쪽이 급격한 조절을 하면 다른 쪽도 급격한 조절을 하여 영향을 상쇄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미국은 이웃나라를 거지로 만들려 하는 일본을 지지할까. 미국은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발전,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연대를 통한 경기침체 방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엔화 약세는 달러화의 강세기조를 유지하여 금리가 더이상 하락하지 않고 물가가 더이상 상승하지 않게끔 한다. 그동안 자국 달러화 약세를 통한 미국의 수출 중심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이 20년간 경제불황에 시달리게 하고 그에 따른 이득으로 한국의 대일본 경쟁분야가 성장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요한 경제 행위자로서 동아시아의 경제 양상을 일본과 일본 외의 국가로 나누어 뒤바뀌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미국이 나쁜 존재만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손해를 받을 차례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를 이끄는 전자제품과 자동차의 측면에서 일본의 수출 경쟁력에 밀리기 때문이다. 자국의 피해가 예상될 정부는 지역협력에 나서기 전에 국내경제부터 살펴야 하는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 국내경제부터 살피다 보면 자국의 경제를 먹고살리는 기업들의 이익에 맞춰주어야 하고, 각국의 본사를 대기업들은 ASEAN+3 국가 단위처럼 다른 기업들과 만나 협력을 논의하는 관계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대기업들의 의견차이에 따라 국가간 협력도 요원해진다. 한편 일본 내에서도 아베노믹스에 대한 반대의견은 있다. 민주당은 아베 정권의 탈규제와 보다 많은 무역자유화에 반대하고 농민과 취약산업 종사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지역협력 없이 개별 국가가 /달러 환율에 대응하는 행태는 이미 시행되었다. 아직도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가 /달러 환율에 민감한지를 알아보았을 19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와 비하면 엔화와 자국 화폐와의 탈동조화를 진행한 것을 있다. 대만과 한국의 중앙은행은 엔화 약세일 수출 부진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통화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한 채권 발행 등의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중국은 고정환율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달러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100/달러에 조금 미치는 현재 한국 역시 양적 완화를 위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을 기대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수출 증대와 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는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일본 외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연대하여 국가 일본, 미국, 유럽의 투자 감소와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을 대상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달러 환율에 의해 경제가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게끔 엔화와 위안화와 유로화 또한 동아시아 역내 교역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나라의 화폐를 실질적인 고정환율의 기준으로 삼는 복수통화바스켓 관리변동환율제는 중국에서 2005 7 위안화 절상과 국내 물가 안정을 목표로 달러 고정환율제를 폐지한 이후 2010 7월에 다시 도입한 제도이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대상 수출을 확대한다는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중국, 홍콩,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투자은행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개입할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 

결국 환율정책에 대한 협력의 열쇠는 일본이 단순한 양적 완화를 통해 경기부양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자본의 이동을 가져와 엔저에 따른 주변국의 피해를 상쇄시키는 작업과 일본 외의 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기반으로 이익의 일치에 달렸다. 엔저에 따른 주변국의 피해는 주변국의 새로운 공동의 위기로 대두되고, 지난해 97년과 2008년 위기가 닥쳤을 때 협력을 한 것처럼 다시 안보보다 경제를 우선시한 대책 마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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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칩톡 효과를 해소하기 위한 신문 사이트 내의 소셜 기능의 도입, 아고라의 서명운동 등이 이미 전개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콜먼의 '인공 잔디' 캠페인 지적과 같이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대중에게 보상을 제공하면서 시민 의견을 집단적으로 형성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미국의 1990-2000년대의 사회운동 사례중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백만 어머니들의 행진과 비슷한 형태로 전개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이의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자 한국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비판의 여지를 줄일 있는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영역은 정치적 무관심을 없애고 아무런 의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서명운동을 받으면 중도에 위치해 있던 사람들도 심심해서라도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된다. 당장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편하게 앉아있는 방에서 로그인 클릭 한번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담을 갖지 않고 한쪽의 정치적 의견에 손을 들어준다.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관료제 집단과 이익집단은 많아진 참여자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있도록 보다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직 전자민주주의는 정치과정에서의 변화를 수도 없이 불러왔으며 기존에 비용과 인력 동원 면에서 제한을 가지고 있던 시민들이 나도 참여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지만, 어디까지나 효과는 결과를 낳는 핵심 요인까지 바꾸지는 못하고 주변부에 맴돌았다. 한국의 백만 어머니들의 행진 운동은 촛불시위와 비견할 있다. 미국의 총기규제 찬성을 주장하는 어머니들은 한국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에 대응된다. 미국이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총기규제 이슈로 연결시켰다면 한국은 보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무역 이슈로 연결시켰다. 또한 실제 결과로는 자매들에 의해 백만 어머니들이 밀려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도 실제 한미 FTA 국회 비준으로 이어진 결과와 같이 일맥상통한다.

           아고라 청원운동이나 트위터의 100개가 넘는 리트윗 횟수가 직접적으로 국회나 정부기관 관계자들의 고려 대상으로 작용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RDD 방식으로 인터넷이 도래하기 방식의 전화 조사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가 TV 신문을 통해 보도되며 국회나 정부기관의 관계자들은 보도 내용을 최고 결정자에게 보고한다. 다음날이나 다음주의 신문 기사를 보면 이전의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이렇게 기조를 바꾸었다는 분석이 설명되어 있다. 나는 어떤 국장이 네티즌들의 리트윗을 관찰한 결과 입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적이 없다. 여론조사기관의 공신력은 아직 강하고 정부와의 연결고리도 탄탄한 비해 조직적이지 못한 인터넷 상의 결사체 형성은 단지 네티즌들의 한풀이 공연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 바깥에서 결사체를 따로 만드는 과정이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많은 소통 정책이 오히려 결사체의 형성을 막고 있는 형국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상으로 직접 멘션을 보내는 행위는 하루에 4,000개가 있을 정도로 많은데, 이는 기존 게시판을 통한 의견 제시와 토론 활성화라는 보다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짧은 말이기 때문에 활성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보내는 멘션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의견이 종합되고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에게 멘션의 종합과 분류를 위임한다. 현재 서울시에는 트위터 멘션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서 정책결정과정에 반영이 되고 있고, 박원순 시장은 얼마 방송이 종료된 '원순씨의 서울이야기' 촬영하는 기간 그리고 평소의 무작위의 시간대에 시민의 의견을 관련 부처에 전달하고 지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결사체의 형성 대신 개인적인 의견 전달의 효율화가 대두함에 따라 정보가 움직이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그에 따라 전달된 의견에 대해 대응을 해야 하는 정책 결정자의 책임도 더욱 가중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소통은 주로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고 특정 단체로 개인들이 가입하여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개인 단위의 소통이 갖는 효과는 점차 증대되고 있지만 완전히 권력기관 바깥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모금을 하고 무엇보다 그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로비 활동을 전개하는 것에는 미성숙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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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연결망으로서의 권력 정의를 따르면, 정책 결정자는 인터넷으로 나타난 민심을 파악한 뒤 자신이 부서에서 생각한 정책을 실행에 옮길지 여부를 결정한다. 인터넷의 권력 투쟁에 참가하는 개인들은 각자가 친하게 지내는 주변 사람들, 인터넷에서 만난 자신의 의견 동조자들을 중심으로 미시적인 전술을 구사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지방정부의 정책 결정자는 얼마만큼 자신들에 찬성하고 반대하는지를 파악한 다음 자신들의 권력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사이버 공간에서 권력이 드러나는 21세기에는 따라서 지배자의 말과 행동에 말없이 순종하는 대중의 수가 급감하고, 그에 따라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여지는 많아진다.


     Human Rights Watch와 Amnesty International. 이중 비정부기구 Amnesty International은 뛰어난 인지 인터페이스를 바탕으로 같은 컨텐츠를 다양한 언어로 제작한 뒤 전세계의 참여와 후원을 용이하게 받고 있다. 여기서 주제는 인권 보호, 무기 거래 감시, 다국적기업의 횡포 방지 등 매우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탄원서를 보낼 경우 사람 수만큼 탄원 대상자가 편지를 받게 되는 간단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NGO는 이슈화의 주체이며 의견 형성을 이미 해놓고 단지 네티즌들의 서명만을 받는다. 이는 오프라인에서 그들이 그간 전개해왔던 활동과 다르지 않으며 다만 온라인의 도구를 활용하여 보다 그 효율성과 효과성이 증대된 형태이다. 다중이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사이버 공간에서 나누며 소통하여 가장 좋은 의견으로 수렴해가는 과정은 NGO의 효과적인 인터넷 이용에 비하면 너무나도 힘든 과정이며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자정부가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하며 여러 정부 부처마다 시민들의 의견을 받는 창구를 열어놓았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대신 사람들은 이전에 있는 정책을 비판하는 것에는 매우 익숙하고, 특히 페이스북과 같은 폐쇄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아는 사람들끼리 비판 성격의 내용을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트위터 계정도 비판적인 의견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계정을 비공개로 설정해놓는다.


     정보 혁명은 국제정치에서 네트워크 안의 개인, 관료제 안의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켜줌으로써 complex interdependence의 패턴을 변형한다고 했는데 정작 네트워크 안의 개인과 관료제 안의 개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의 수는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가 생각된다. 즉, 네트워크 안의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인 트위터와 오늘의유머, 일간베스트, 디씨인사이드, 다음 아고라, 그리고 관료제 안의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인 페이스북, 블로그, 전자정부, 공공기관 내 메신저, 인트라넷 사이에는 연결 통로가 매우 좁다.


     소프트 파워가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위해서, 상대를 조금 더 잘 매혹시키기 위해서는 무료 정보가 더 많이 퍼져 있어야 한다는 점을 Keohane과 Nye는 강조하고 있는데, 이점에서 공유의 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보다 우수한 한국은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소프트 파워를 넘어서 행위 권력과 자원 권력 모두에서도 21세기의 정보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중요한 권력을 가질 것은 매우 유력하다. 


     한국 정부가 국민들이 생성하는 친정부적 의견을 타 국가를 상대로도 잘 드러내면 그만큼 한국 정부의 위상이 높아지고 타국 정부도 한국 정부를 이해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변하지 않는 독도 관련 입장과, 독도 관련 입장을 지지하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의 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이 시민과 그중 참여의 정도가 강한 시민들과 한데 어우러져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미국과 같이 일본 외의 다른 나라에게 충분히 어필하면서 한국 정부의 외교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격에 대응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전 정부기관 및 기업 그리고 가정의 정보화로 자원이 많아졌음에도 오히려 그 많은 자원 때문에 취약성이 증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북한, 인도 등 미국과 같은 안보 노선을 걷고 있는 한국을 위협하는 국가가 건재하며, 이들 또한 뛰어난 정보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소프트 파워에 강하지만 하드 파워에 약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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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보다 높은 이자율을 가져다주어 산업의 발전을 억제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고용과 복지를 위해 재벌과 정부가 함께 개입할 것을 주장하는데,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APEC이나 ASEAN+3에서의 지역협력을 논의할 때 지금까지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대기업 재벌이 중심이 된 기업지배구조를 유사하게 가지고 있는 국가들끼리의 경제협력이 실제로 서로에게 주는 이익 때문이다.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들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국민 경제를 이끌고 일자리 창출과 복지를 이루어내는가를 보면 그 국가들 역시 재벌 중심의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현재의 ASEAN 국가들에도 적용되어서 그들이 지금부터 한국의 1970년대 발전과정과 같이 하나의 사업을 정부가 집중 육성하고 자국민들이 자국 상품을 사용하게 하며 수입품에 엄격한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 경공업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나는 반대한다. 그러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외국으로부터의 산업자본 투자를 받지 못하는 목마른 상황에 있을 때 국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유효할 뿐이다. 분명 한국과 싱가포르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통해 부를 축적한 뒤 추후에 경제협력과 FTA를 주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한편 지금은 상황이 달라서 개발도상국이 비관세 장벽이나 단일 산업 육성에 의존하지 않아도 주변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하여 얼마든지 자국의 경제발전을 이루고 그와 동시에 자유무역을 추진할 수 있다.
     ‘사다리’를 유치산업보호론에 따른 보호관세, 무역보조금, 비관세 장벽, 정책금융 등으로 이해할 때 지금 막연히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는 ASEAN 국가들은 이 사다리를 타고 싶지만 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인도와 ASEAN 간의 경제협력과 FTA가 2003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여기서 ASEAN 국가들 중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은 인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공항, 도로, 주택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였다. 인도의 제품을 수입할 때의 관세가 낮아져서 ASEAN의 국민들이 싼 가격에 공산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인도는 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양쪽의 협상 당사자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라이며, IMF가 대표하는 자유방임, 시장 개방, 관세 철폐, 금융자율화, 민영화, 변동환율, 지적재산권 보호, 독립된 중앙은행 제도와 같은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며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더 못난 국가는 사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신 그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틀에 둘러싸여 있다. 그 국가와의 자유무역을 진행하고자 하는 다른 국가들은 더 넓은 다자주의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착취에 가까운 이윤 추구에 제약을 받는다. 지역협력 안에서는 비교우위가 없는 국가가 목소리를 내어 IMF와 FTA의 원칙이 실행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지역협력은 또한 공통의 군사, 자원 및 인간 안보 차원에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시장 자유화가 안보를 해칠 소지가 생긴다면 그때 협력이 중단된다. 마지막으로 국내시장의 개방은 국내 산업이 해외의 같은 산업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국내 정치의 상황에 따라 달렸다.
     미국 또한 1970년대에 수출 수효를 스스로 제한하고, 특정 산업분야에 대해서만 개방을 하는 등 보호무역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Haggard 1997) 현재의 미얀마나 라오스와 같은 나라가 지역협력을 깨고 자국의 주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ASEAN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미얀마와 라오스는 국내에 해외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였고 공장을 운영하여 생긴 이익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 베트남, 중국 등으로 움직였다. 자유무역 체제와 지역주의가 항상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부의 증대에만 봉사하는가 생각했을 때 꼭 그렇지도 않다.
     192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이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은 사례, NAFTA 이후 멕시코가 사다리를 올라타지 못한 사례라면 ASEAN의 개발도상국은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으로 사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무언가를 타고 잘 올라가고 있다.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에게 무조건 해가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사다리의 유무라는 이분법을 낳았고 이제는 이를 고쳐야 할 때라고 본다. ASEAN에 론스타 같은 악성 해외 자본이 없다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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