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판단기준은 내 집에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가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쾌락적인 것들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나는 축재를 위해 살지는 않아요(...). 나는 삶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나는 순간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죠" 라고 덧붙인다.


 '그곳에는 광고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그는 집에서 '멋이 없는 더러운 바지'를 입지만, 일을 할 때에는, 아주 세심하고 우아하게 정장을 한다. 그는 파리의 빅토르 위고 거리에 있는 광고업자들을 위한 재단사인 반스Barnes의 상점에서 양복을 구입한다. "그곳에는 영국 산 직물, 영국 황태자가 입는 다소 호화스러운 체크 무늬 의류와 같이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위 공무원들이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니며, 은행가들도 이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죠(...). 은행에서는 단색의 셔츠가 필요합니다. 은행은 광고업계에 비해 그다지 과시적이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쓸 따름이죠(...). 직업상, 우리는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카스트로 쉽게 사람들을 분류해 냅니다. 그런 일은 한 카스트에 어울리는 제품을 제대로 부여하는 문제죠. 어떤 새로운 사람이 대행사에 들어올 때, 곧 우리는 한 눈에 그를 판단합니다(...). 커다란 깃이 있는 우단 의상을 입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고,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그 의상으로 상쇄하는 사람이죠." 잠시 동안, 대행사에 '아주 평범한 배경을 가진 경리부장'이 있다 갔다. "그가 왔을 때, 그는 너무 보기 안 좋은 옷차림을 했기 때문에 사무를 방해했죠(...). 마치 무슨 젊은 노동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가령, 어울리지 않게 깃이 작고, 아래가 꼭 끼며, 다소 짧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셔츠와 꼭 끼는 넥타이와 함께 양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보기 흉합니다."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는 남에게 상품을 권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여러 종류의 직업(판매, 마케팅, 광고, PR, 패션, 실내장식 등)과, 상징적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제도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러한 제도에는 최근에 상당히 확산된 다양한 의료보건, 사회부조관계의 직업(결혼생활상담원, 성문제 전문가, 식이요법 영양사, 취직 어드바이저, 육아전문의 보모 등)과 문화생산 및 촉진에 종사하는 직업(문화활동지도자, 학외활동교육자, 라디오 및 TV제작자와 사회자, 잡지기자 등)과 더불어 공예가나 간호사 같은 기존 직업도 포함된다.


소유하는 자본이 크면 클수록 문화적 환경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커지고, 또한 집단의 문화자본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이 그 성원에 대해 가하는 순응 유도 압력도 커지므로, 파리사람과 지방사람 간의 격차는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커지게 된다.


현재 부르주아지와 쁘띠 부르주아지의 거리를 특징지우는 것처럼 17세기의 귀족과, 절약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거리를 특징지웠던, 돈을 일일이 세보지 않고 소비하는 기술은 그 존재 자체가 사회관계자본의 재생산에 종속되는 계급의 제한된 경우에서는 명백한 교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은 그 아들에게 대귀족처럼 돈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금으로 가득 찬 지갑을 넘겨주었다. 아들이 쓰고 남은 돈을 가져오자 공작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금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어디에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노동자는 명령의 실행자로서의 성향을 모든 생활영역에서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민중계급의 생활양식은 위스키나 회화제품, 샴페인이나 음악회, 항해여행이나 미술전람회, 철갑상어나 골동품 같은 사치재가 없는 만큼이나 이러한 재화에 대한 수많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가죽 대신 '모조가죽', 회화 대신 조잡한 착색 석판화chromo가 그것인데, 이런 것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제2단계에서의 박탈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대중문화culture populaire'는 '대중'과 '문화'라는 역설적인 말들이 결합되어 통용되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지배자 측에 의해 문화의 정의가 부과되는 것인데..


(성과 계급에 무관하게 모두에게 의견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민주주의적 자발주의spontanéisme démocratique와, (이 권리와 의무를 '지성'intelligence과 '역량'compétence으로 인해 선출된 '전문가'들에게만 국한하는) 기술관료적 귀족주의aristocratisme technocratique 사이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은, 기술관료적 선발로 인해 모든 경우에 배제됐을 사람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게임으로부터 배제하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그 이율배반의 실제적 해결책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생산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뤼마니떼L'Humanité나 다른 극좌파 신문을 읽는 가장 정치화된 일부를 제외한다면)은 일간신문에서 정치적 안내자나 도덕적 문화적 조언자의 역할(신문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단지 '르 피가로'지의 일부 독자들에게서일 것이다)을 실제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며, 또한 정보획득, 자료수집과 분석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보도지presse d'information와 저속지presse de sensation 사이의 차이는 행동이나 발언이나 사고에 의해 정치를 실제로 하는 살마들과 정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능동적 의견과 수동적 의견 사이의 대립을 결국 재생산한다.


(노동자) 그들은 상징적 투쟁수단을 선호하며, 맨 먼저 도덕적 지배관계를 정립하는 교육운동이나, 열광적 신뢰의 대상인 '정보', 그리고 오로지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 일종의 윤리적 독촉을 실행하려는 동일한 의지에 의해서 단합된 개인들의 엄밀한 계열적 집단편성인 협회association가 실현하는 집단적 행위의 특수형식이 있다. 봉사활동은 선의의 과시적 소비이고, 그 자체 이외에는 다른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순전히 무사무욕적인 윤리적 활동이며, 그것의 실행자에게 여러 권리를 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큰 것은 의분(義憤)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 권리는 '자기 몫을 한' 사람, 자기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 특히 누구에 의해서도 승인되는 기성사실을 만든 사람의 완벽함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무사무욕'하고 '청결하고', '고결하고', '정치'와의 어떤 타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행위는 실제로 사회적 승인의 가장 완벽한 형태인 제도화의 기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인데, 모든 협회들이 다소간 비밀리에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의견에의 접근 가능성, 혹은 의견을 구성하는 수단에의 접근 가능성(전국지의 구독과 같은)이 박탈될수록 그만큼, 지방에 기반을 둔 집단들(또한 場들도)이 행사하는 스크린 효과effet d'écran (혹은 허구적 문맥화 효과)에 더욱 민감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사회공간 내에서 접하고 있는 위치를 평가하는 참조물로서 지리적 기반을 가진 사회적 하위공간(촌락, 인접집단 등)을 드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피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공간에서의 지배자들(소토지 구역에서 50ha의 토지소유자, 지방의 명사, 직공장 등)은, 나무를 보고 숲은 못 보듯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조화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3기능 체계structure triadique(인도-유럽어계 제 민족의 신화가 기본적으로는 지상권을 맡는 사제, 힘을 행하는 전사, 풍요로움을 맡는 생산자라고 하는, 실제 사회에 있어서의 기능 구조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의 재현은 조르쥬 뒤비(Georges Duby)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하는 봉건사회의 사회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적용되었는데, 3기능체계의 재현은 계급분화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2개의 분할원리가 교차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하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상이한 원리들의 이름으로 지배를 위해 경쟁하는 지배집단 내의 제 분파 간에 보이는 분할인데, 후자는 봉건사회에서는 전사bellattores와 학자oratores의 분할이고, 오늘날에는 경영자와 지식인의 분할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맥더미의 궤변

한 사람이 A=B, B=C 그리고 동시에 A<C를 가지고 있다. 혹은 A1=A2, A2=A3, ... A99=A100 그리고 A1<A100이다. 달리 말하면 비록 한 알의 소맥이 소맥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두 알, 세 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소맥더미가 264알부터 시작되는지 265알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265알부터는 소맥더미가 되고 264알로는 소맥더미가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된 분류법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계급 측의 여러 가지 학문에 의해 생산된 수많은 윤리적, 미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법률적 분류법은 자신의 외견상의 중립성으로부터 특정한 효력을 이끌어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모두 사회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분류법은 상대적 자율성을 띤 여러 場의 고유한 논리와 언어에 따라서 생산되며, 지배적 아비투스의 분류도식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이러한 도식을 낳는 사회구조에 대하여 실제적인 종속dépendance réelle을 야기하는 동시에, 외견상의 독립apparence de l'indépendance을 추가하였는데, 외견상의 독립은 분류투쟁lutte des classements과 계급투쟁lutte des classes의 한 상태를 정당화시키는데 공헌한다. 확실히 半자율적인 분류체계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는 학교적 '성적평가'의 원리인 일련의 형용사의 체계(秀, 優, 美.. 可 등)이다.


남녀간, 연령층간의 대립이라든가 세대간의 대립처럼, 다양한 지배형식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여러 도식이나 상투어의 표현형 역시 비슷한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소위 '청년층'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연장자들이 제시하는 정의를 받아들여 많은 사회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일시적 자유권('젊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을 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귀속된 적합한 일, 젊은이의 '고유한 미덕', 즉 용기, 사내다움, 열정 등을 실현하고, 중세귀족의 자제라면 무술 수행, 르네상스기의 피렌체 청년이라면 연애와 폭력,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라면 rule에 입각한 유희의 열광(스포츠나 록음악처럼)을 실천한다.각자 자신의 고유한 사안에 관여하면서, 요컨대 자신을 '젊음'의 상태로, 즉 무책임한 상태로서 유지하고, 책임 있는 행위를 포기하는 대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자유를 향유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beau'과 '매혹적인 것joli' 사이에,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쾌락plaisir과 향락jouissance, '아름다운 것beau'과 '쾌적한 것agréable', 즉 '뜻에 맞는 것ce qui plaît'과 '즐겁게 하는 것ce qui fait plaisir' 사이에 설정한 대립과 똑같은 대립을 설정하고, '매혹적인 것'을, '의지에 대해 그것의 성취와 만족을 직접 제공함으로써 의지를 자극하는 것', '미의 직관에 필요한 순수직관상태로부터 감상자를 끌어내는 것', '의지를 직접 만족시키는 대상을 보는 것에 의해 의지를 틀림없이 유혹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순수취향이 거부하는 것은 사실 대중적 관객이 굴복하게 되는 폭력이다(대중음악과 그 효과에 대한 아도르노의 서술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에 대한 경의를 요구하는데 이는 거리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리감이다. 순수취향은 예술작품에 대하여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은 궁극성으로서 존재하고, 관객을 칸트적 정언명령에 따라 취급하기를, 즉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우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칸트의 순수취향의 원리는 향락을 부과하는 대상물에의 혐오, 그리고 그 부과된 향락에 만족하는 조야하고 통속적인 취향에 대한 혐오이자 거부이다.


만약 칸트의 '負量의 개념'의 논리에 따라, 극복된 악덕의 양에 의해 미덕의 크기를 재고, 부인된 충동과 정복된 통속성의 강도로 순수취향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미학을 상정하고 그 미학의 함의를 추종한다면, 가장 완성된 예술은 문명화된 야망과 억제된 충동, 승화된 조야함의 대립적 명제를, 가장 긴장도가 높은 상태로 포함하는 작품들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 너무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억제하는 것은 '순수'쾌락의 경험을 위한 선행조건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쾌락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유미주의자의 쾌락의 가장 순수한 형식, 즉 정화되고 승화되고 부인된 감각기능은 역설적으로 금욕, 즉 훈련 속에,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감각기능과는 정반대로 단련되고 유지된 긴장 속에 존재한다.


칸트는 '자유로운 예술'과 '보수를 바라는 예술'을 대립시키는데, 전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 所産은 자유이며(그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상자에게 어떤 강제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賃金처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서만 매력적이고 따라서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예속적이고 비굴한 활동이며, 그 산물은 감각될 수 있는 매력의 노예화하는 폭력으로써 감상자에게 강요된다.


칸트는 먼저 (대학에 소속된) '동업조합적 학자' 혹은 재야의 '독립학자'와, 단순한 '학색수득자' 즉 성직자, 법무관, 의사처럼 대학에서 획득한 지식을 파는 '실무가와 학식의 전문직인'을 구별하고, 마지막으로 후자의 고객, 즉 '무지한 사람들로 구성된 일반대중'을 구별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세속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제 학부, 즉 법학부/의학부/신학부와, 세속적 차원에서는 피지배적이나 비세속적 차원에서는 지배적인 학부, 즉 철학부를 대립시킨다. 철학부는 세속적 권력은 없으나 '정부의 명령에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인데, 그 자신의 법, 즉 이성의 법만을 알고 있으며, 그 비판력을 완전한 자유에 의해서 발휘하는 근거를 부여할 수 있다.


출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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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대학의 크기, 지리적 위치, 기후 등
Sciences Po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설명을 잘 해놓았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크기는 연희관+상대본관+상대별관 정도이며, 지리적 위치는 파리에서 고풍스러우면서도 부유한 6구와 7구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기후는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온난건조-한랭다습의 기후로 10월에 장마가 내리는 대신 12월에 최고기온이 8도까지 올라가는 등 매우 온화하다.

대학 주변 환경
Sciences Po 주변에는 명품 옷가게, 명품 옷가게에 딸린 카페와 레스토랑, 고급스러운 카페 등이 대부분이다. 서울로 치면 삼청동과 신사동을 합친 느낌이다. 싸게 싸게 뭘 하려 하면 전혀 답이 안 나오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6구와 7구 사이는 이러한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음을 참고하고 가지고 있는 생활비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계획할 필요가 있다.
다음 링크는 내가 추천하는 장소를 모아놓은 지도이므로 필요하면 참고하기를 바란다. 
구글 지도 Paris : https://maps.google.com/maps/ms?msid=211674192681492047552.00047a7fbd91765f28132&msa=0


거주 형태, 식사
집 구하기의 절차는 대략 이렇다.
집 구하겠다고 선언 -> 세입자-집주인 연락 확인 -> 거주증명서 확인 -> (예전세입자 만나서 서면합의 종이 작성 + 소개비 수표책 작성) -> 집주인 만나서 Etat des Lieux -> 내 서류 보여주기 -> 집 계약서 작성 -> 집보험 가입 -> EDF 새로 가입 -> CAF 서류 인쇄 후 집주인 우편송부 -> 집주인에게 우편 받은 뒤 다른 CAF서류 보충하여 CAF 사무실에 제출
가장 좋은 집 구하는 방법은 너무 부자여서 Etat des Lieux나 보증인 등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외국 유학생이 와서 사는 게 재미있고 기특해서 유학생을 세입자로 두는 집주인의 정보를 듣고 가서 사는 일. 물론 매우 드물다.
처음에 집을 구하겠다고 선언하는 단계에서는 거주증명서를 요구하면 안 된다. 요구하지 않고도 집을 구하겠다고 선언하는 편한 사람이 있으면 그 편한 사람에게 집을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랑 시차가 8시간이니까 여기서 저녁에 메일 보내면 그쪽에서는 늦게 받은 편지함 확인하고 늦게 전화해도 집주인이 받을 수 있는 그런 이점이 있다. 현지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메일과 전화를 보고 받을 수 있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후 5시~새벽 2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같이 일을 진행할 사람이 있다면 한국 시각으로 오전 9시~오후 5시 사이에 일을 마치고, 그날의 합의된 내용을 오후 5시 이후에 프랑스 측에 전달한다. 프랑스 측에서는 한국 시각으로 새벽 3시~아침 9시 사이에 그쪽에서 합의되고 진행되고 결정된 내용을 보내줄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의 진행은 같은 주기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진다.
집의 실제 상태를 중요시하느냐 안정적으로 집을 구하는 일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집을 단기로 계약할지 장기로 계약할지가 정해진다.
웬만해서는 월세방에 들어올 때 갖추어진 물건들을 사용하지만 만약에 집안에 들여놓을 물건을 사야 한다면 아는 사람에게 싸게 얻기 -> 프랑스존 귀국처분 -> 동네나 교회에서 열리는 바자회 -> leboncoin.fr이나 프랑스존 일반 공고 -> MONOPRIX 등 리테일 체인에서 구입 -> 동네 bazar(다이소같은 곳)에서 구입 의 순으로 행동하라. 그래야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집을 옮기는데 3개월 미만 거주한다면 집을 혼자 구할 수 없다. 더구나 12월에 시작하는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때는 항상 다른 사람과 Colocation(Coloc)을 할 수밖에 없다. 
집은 현재 세입자가 언제 나가는지를 물어본 뒤에 살지 말지를 정해야 한다. 세입자가 나가는 시점보다 최소 1달 전까지 집 계약을 완료해야 한다.
보증인을 요구한다면 보증금을 낼테니 보증인 필요없게 하는게 어떻겠냐고 협상을 한다.
파리 중심부에 스튜디오가 월 300유로라면 100퍼센트 사기다.
사기 사례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lifeqna&wr_id=96217&sca=주거&page=16
집 주인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주장하면 세입자는 집에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열쇠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
열쇠를 받기 전까지의 기간에는 attestation d'assurance를 해주어야 한다.
집 계약을 하기 전까지 집 안의 고장난 부분은 전에 살던 세입자의 책임이다. 계약을 하는 순간 고장난 부분의 책임은 계약 당사자인 지금 세입자인 나에게 넘어간다. 따라서 고장난 부분을 확인하는 Etat des Lieux를 할 때 다음을 특히 잘 확인한다.
- 현재 있는 세탁기를 집주인이나 이전 세입자가 가져갈 경우를 대비해 세탁기와 화장실의 물 연결부분을 빼보고 물이 새는지 확인 (수도꼭지가 오래되면 물이 샐 수가 있다. 서양식 화장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으니 홍수가 나서 큰 문제가 된다.)
- 온수가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5분 이상 온수를 틀어보기 (보일러가 온수를 덥히다가 보일러가 과열되어 멈추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교환학생 와서 제일 어리석은 것이 집 좋은 데 구하려고 돈을 엄청 쓰거나 싼데 찾다가 교외로 가는 것이다. 특히 교외로 가서 살면 잃는 게 한둘이 아니다. 일단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볼것 먹을것 마실것 많은 파리에서 놀 수가 없다. 파리에는 야간버스 (Noctilien)라는 게 있어서 새벽 3시싸지 밖에서 놀아도 문제가 없다. RER이나 교외 버스/트램 환승역 방향으로 가는 메트로 안에는 전혀 쾌적하지 않은 인파가 가득하다. 나는 처음 3달은 프랑스 친구의 10구 옛날 아파트 6층에 살았고, 그 다음 3달은 11구 신형 아파트 6층에 살았다. 월세는 500~600유로로 둘이 나누어 내고 주택보조금까지 받았으니 저렴했지만 파리 안에 있어서 매일 평균 저녁 11시까지 밖에서 놀다가 왔다.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식료품과 생활용품은 Dia에서 샀고, 매주 1번 Belleville역의 Paris Store에 가서 50유로 이상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사와서 룸메이트와 같이 썼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식료품을 전혀 사지 않고 모두 외식으로 친구들과 놀면서 먹었다. 학기중에는 외식을 안 했으며 항상 매일 점심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매일 저녁 8시 반에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밖에서 먹는 것과 만들어 먹는 것의 가격 차이는 대략 5~6배라 보면 된다.

교통카드가 정기권이라는 점은 정말 크나큰 복이다. 이를 이용하여 공짜로 어디든지 갔다올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1-5존 구별도 없어지니 마음껏 돌아다니자. 집에 남아있는 건 크나큰 기회비용의 상실이다.


수업, 도서관
Sciences Po의 수강신청은 연세대학교와 같은 선착순 온라인 수강신청 방식이다. 시차를 잘 따져서 연세대학교 수강신청을 하던 실력을 그대로 활용하여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굉장히 극적인 건 수강변경(교수님께 빌기), 철회 등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수강신청을 내가 원하는 과목으로 하지 못하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학점 인정과 졸업요건 충족에도 모두 악영향이 온다. Sciences Po의 이렇게 경직된 제도를 미리 알아둔 상태에서 Sciences Po에서의 한 학기 혹은 1년을 통해 필요한 전공 학점을 모두 충족시키자는 기대는 확실히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바란다.
3번 지각하면 1번 결석한다. 3번 결석하면 F다.
아프면 의사에게 증서를 받아서 3번 결석처리 될 경우 증빙자료로 제시해서 F를 면할 수 있다.
시험때는 펜 외에는 아무 것도 지참 불가능하다.
10을 받아야 P/NP에서 P를 한다.
결석계를 내려면 교수와 행정실 두 곳에게 다 내야 한다.
Cour Magistral(Lecture)을 듣는다면 교수는 절대로 개인적인 메일을 보지 않는다. 따라서 수업이 끝난 뒤 앞에 가서 질문을 하도록 한다.
Sciences Po 안에는 교수 연구실이 없다. 교수들은 대부분 바깥에서 초청받은 교수들이다. 프랑스인이 아닌 경우도 많다.
각 수업은 ENTG의 Group에 일대일 대응되어 있고 여기에 YSCEC처럼 모든 정보가 다 있다. 교과서는 mandatory reading의 경우 모두 pdf로 ENTG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인쇄를 해서 나누어주었지만 나무 살리기 법 같은 게 들어와서 디지털로 다 바뀌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핸드폰의 pdf 리더 앱을 통해 지하철에서도 reading을 읽었고, 그 외에는 노트북이나 도서관 컴퓨터로 읽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다 디지털로 다 있다. 학부 수준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끝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이 사람들은 시작 시각과 끝 시각을 칼같이 잘 지킨다.
처음에는 이곳의 수업이 연세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절대로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의 대학과 수준이 같으면 같았지 높지는 않다. 대학 랭킹과 수업의 난이도는 따로 움직인다. 우리가 외국 대학을 나갔을 때 꿀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오히려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자기 좋으라고 하는 질문만 하는 학생들을 몇명 봐서 마음이 편해졌다.
Sciences Po의 도서관은 작기 때문에 안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지 못한다. 학기가 시작한 후 2주일 동안, 기말고사가 거의 끝나가는 기간에는 30 Rue Saint-Guillaume 도서관에도 사람들이 없어 널널하지만 그 외의 기간은 언제나 꽉 차있다. 하지만 19시 이후가 되면 언제나 자리가 있다. 10:00, 12:15, 14:30, 16:45, 19:00 등 학생들이 바로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시각이 바로 실내의 좌석이 비는 시각이다. 이때 가서 앉아야 한다. 안 그러면 아주 일찍 오지 않는 이상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도서관 열람실에서는 귓속말이 기본이고 손톱깎기도 사용할 수 없다. 연세대학교 도서관보다 더 조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우리는 외국인이므로 피해를 주면 본토 학생들이 굉장히 싫어한다.
도서관의 모든 책 중 10%만이 공개 서가에 비치되어 있으며 더 구하고 싶으면 창구에서 요청해야 한다. 국회도서관과 이용 시스템이 같다. 요청하면 보통 45분 후에 책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날에 책을 받을 수 있다.
30 RSG: law, history, area studies, political science, international relations, administration
27 RSG: economics, social sciences, sociology, philosophy, religion, reference books, press…
프린터와 복사기는 따로 있고, 스캐너는 없다. 프린터는 공용 컴퓨터로만 쓸 수 있고 이때도 학생증이나 복사기 쓸 때 쓰는 카드를 쓴다.
모든 Sciences Po 학생들에게는 흑백 기준 600장을 인쇄/복사할 수 있는 credit이 충전된다.
Catalogue.sciences-po.fr와 spire.sciences-po.fr를 브라우저 즐겨찾기로 등록해놓아서 필요한 책을 찾을 때 바로 찾을 수 있도록 한다.
www.cairn.info는 아쉽지만 유료다. 
학교 도서관이 보나마나 꽉 찰 시험 준비기간에는 다음의 도서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Mairie 도서관, La Gaite Lyrique, 한국문화원, 파리일본문화회관


국제교육부
DAIE라고 하는 Sciences Po 국제처는 대륙별로 사무실이 나뉘어 있으며, 한국은 Asia-Pacific 에 소속한다. 사무실은 13 Rue de l'Universite에 있으며 개방 시간은 2012년 가을학기의 경우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간씩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방을 잘 하지 않으니 개방 시간표를 숙지한 뒤 찾아가도록 한다.
9월 초에는 APAMO Day라고 해서 Sciences Po와 교환학생 협정을 맺은 Asia-Pacific 지역의 모든 대학들이 국가별 부스를 만들어 각 대학을 홍보하는 날이 있었다. 나도 뒤늦게 이 행사의 존재를 알고 찾아가 연세대학교를 열심히 알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센 강변에서 맥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셨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그때 내가 만난 학생 중 몇명이 올해 1월 연세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는 걸로 확정되었을 것이다. 
다음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그 학기로부터 1년간 외국에 교환학생을 가는 학생들의 명단이 Sciences Po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지된다. PDF 파일로 된 이 명단은 Affectations라는 제목의 게시글로 www.sciences-po.fr에 올라올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1월 중순에 올라온 명단을 다운로드받아 2013년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할 학생들과 한국에서 공부할 학생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었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들과 교류하기로 마음먹었다.

기타 학교에 관한 정보(부대시설, 동아리 등)
Sciences Po Accueil Administratif에서 학생증 발급을 하는 첫날에는 줄이 엄청 길게 서는데 웬만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일단 인쇄할 게 생기면 그걸 필요로 하는 날이 되기 한참 이전에 도서관 지하 컴에서 내 노트북 쓰고 있다가 옆 컴퓨터가 비면 잽싸게 가서 인쇄만 싹 한다.
13U R층 라운지의 소파가 굉장히 푹신하고 편하다. 과방에나 가야 있는 소파가 여기는 밖으로 나와있다.
도서관 말고 13U 지하 Reprographie(연희관 복사실처럼 생긴 곳) 앞 복도의 복사기를 쓰자. 56RSP Cafeteria 옆에도 복사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학생증을 인식하지 못한다.
28RSP H006 07:45~19:30 개방. 연희관 컴퓨터실 같은 곳. Windows를 사용한다.
27RSG와 56RSP 사이 잔디 언덕에서 5시 수업 하기 전에 1시간동안 가방을 베고 누워서 노트북을 하자. 한국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9 Rue de la Chaise에는 SciencesPo wi-fi가 작동하지 않는다.
Cafeteria는 27RSG, 28RSP, 56RSP 세 곳에 있다.
강의실에는 벽에 노트북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다. 보통 작은 강의실에는 2개 정도 있으므로 미리 와서 콘센트 바로 앞의 자리에 앉도록 한다. 벽에 콘센트가 없는 강의실에는 반드시 교수님 테이블 위에 콘센트가 있다. 앞으로 앉아서 노트북을 충전하고 맨 앞자리에서 수업에도 더 잘 집중하도록 하자.
ENTG Sciences Po 메일과 내 메일 동기화 http://validmail.sciences-po.fr/validmail/PrcRedirectLogin
27RSG 지하 1층의 맥 10대(CYBERCAFE)는 매우 성능이 좋고 인터넷도 빠르다. Cybercafe ID와 비밀번호는 ENTG ID와 비밀번호와 같다.하지만 프린터가 없다. 
27RSG 지하 1층에는 Crous와 BDE 방이 있다. Crous는 샌드위치 가게 하나 정도로 매대 크기가 작다. 좌석은 30석 정도 있다. BDE 방 죽돌이들은 한국 대학 학생회 죽돌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


Culture Shock
A/S를 받을 때는 여권을 신분 증명용으로 요구할 수가 있다. (Genius Bar처럼 미리 RDV를 한 경우라도 나중에 수리가 필요해서 계산을 해야 한다면 신분 증명이 필요할 수 있다. 체크카드나 신용카드에 내 이름이 써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고, 프랑스 직원들은 그걸 끝까지 증명하려 한다.)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여권을 지참하도록 한다.

파리, 나아가 일드프랑스 전 지역에는 화장실이 정말 없다. 한국이나 영국과 달리 이곳은 화장실 인심이 굉장히 짜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벽에 노상방뇨를 해서 오줌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공공기관, 학교 등에서는 꼭 가도록 한다. 

어딜 가더라도 RDV 이후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 걸린다. RDV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므로 하루에 최대 2개의 RDV만 잡도록 한다. 한국처럼 2시간 간격으로 잡는다면 다음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의 시간관리는 RDV 이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RDV가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편안한 대기 장소가 주어진다. 그곳은 조용한 방의 소파와 커피테이블일 수도 있고, 나만 앉을 수 있는 의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자투리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며 오늘 해야 하는 일 중 바깥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애플스토어 같은 곳에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입구에서 직원의 특별 안내를 받고 애견 보관소로 간다.

한국에서 입던 정장을 수업시간에 입고 오니 나보고 결혼식 가냐고 했다. 그만큼 이곳 학생들은 정장을 입지 않는다. 편안한 스웨터와 니트와 청바지를 선호한다. 선명한 색깔보다는 바랜 색깔을 선호한다. 그건 좌파 학교라는 특성과도 관계가 없지 않다. 내 넥타이는 빨강-검정 사선 줄무늬 넥타이였는데 이게 시앙스포 보안 직원 넥타이와 똑같아서 나는 시앙스포 보안 직원으로 취직했다고 농담을 했다.

절대로 공항에서 도시로 갔을 때 손에 짐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내 안의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지 않도록 한다. 공항에서 방금 나온 사람이나 공항에 갈 사람은 짐을 많이 들고 있기 때문에 불량배들의 절도 표적이 된다. 본인 또한 귀국하는 날에 공항에 가기 전 Opera역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다가 공간이 비좁아 의자 뒤에 짐들을 놓았는데 나와 내 맞은편 친구도 몰라보는 사이에 내 백팩을 누군가가 통째로 가져갔다. 안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동전지갑 그리고 각종 책들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CCTV도 잡히지 않아서 아무 수를 쓰지 못하고 허탈하게 귀국하였다. 왠지 그날따라 주변에 불량배들이 많이 보였다. 손에 짐을 들고 있을 때에는 어디 중간에 들르지 말고 곧장 공항으로 혹은 자기 집으로 바로 향하도록 한다.

하우스 파티를 해서 한국음식을 친구들에게 만들어주면 당신은 인기인이 된다. 한국 음악을 틀어주고 같이 들어도 참 좋아한다. 나의 경우 DJ 덱을 사서 친구 집에서 한국음악을 믹싱하면서 같이 놀았다.

Monoprix가 12시까지 영업을 할지라도 주류는 10시 반까지만 살 수 있다. 10시 반이 넘으면 주류 전문점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 (클럽 가기 전 술을 마실 경우 참고)
큰 개를 데리고 있는 노숙자들이 제일 양아치다. 가까이 가지도 말기 바란다. 동양인에게 항상 집적거린다. 나는 이들에게 경찰이 최루가스를 뿌리는 모습도 봤다. 옆에서 지나치기만 했는데 화생방 훈련처럼 눈이 굉장히 따가웠다.
한국에서 당연한 게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다. 항상 먼저 전화로 확인해서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도록 하자. 포스터에 써진 내용대로 하는지 물어보자. 
다리 위에서 술을 까면 경찰에게 잡힌다. 그 자리에서 강물로 술을 따라 버려야 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경찰이 술인지 모르기 때문에 까도 괜찮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곳(교내외)
나는 누구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성격이 못 되어서 질문하는 정도로 도움 받는 걸 끝내고 그 이후에는 혼자 일을 진행했다. 프랑스어 언어가 힘든 상황이라 전화로 해결해야 하는 일을 못 하고 있다면 그 정도는 모르는 사람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지만 그 외의 일로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그건 모두 축적해놓은 인간관계의 힘을 빌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유학생활에 공짜는 없다. 내가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서비스를 편하게 받을 수 있지만 돈이 충분하지 못하면 대가로 대신 일을 해주던가 같이 놀아주던가 그 단체에 시간을 추가로 할애해야 한다.
파리의 한인교회는 처음에는 공항 픽업, 핸드폰 신청, 계좌 개설, 집 계약 등 생활에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도와주지만 그것은 모두 교회의 커뮤니티에 들어와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원래 교회 신자가 아니라면 한인교회의 도움을 무작정 받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객원기자로 일했던 '파리지성'이라는 교민신문(www.parisjisung.com)은 '알로파리 Allo Paris 2013'라는 전화번호부를 매년 발행하는데, 이 안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전화번호가 들어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업소가 소개되어 있으니 한번 쭉 읽어보면 어떤 상황에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놓았지만 최종적인 업무는 전화나 우편이나 방문으로 해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전화번호부가 여기서 유용하다. 알로파리는 무료이며, parisjisung@gmail.com을 통해 신청하여 파리 내의 파리지성 사무실로 방문하여 받도록 한다. 파리지성 발행인 분(한국인)께서는 교환학생들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객원기자로 일하겠다고 말씀드린 뒤 기사를 송부해도 좋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분들이 나를 만나서 무엇을 도와주신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게 있을 때 그분들께 물어보아 답변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파리 15구 지하철 8호선 Commerce역 근처에는 '재불한인회'라는 단체가 있다. (주소 83 Rue de la Croix Nivert 75015 Paris)이곳에 들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재불한인회 회장님이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70학번 선배님이다. 하지만 재불한인회도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대신 전화를 해주거나 하는 정도만 도와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정보와 방법을 배우는 것까지만 도움을 받고 나머지는 혼자 힘으로 하는 데 익숙해져야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가지 않는 주도적인 교환학생 생활이 가능하다.


기타
점심시간 12시-2시만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표에서 점심시간이 비어야 한다. 수강신청을 할 때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인지를 고려하여 미리 점심시간을 비우도록 한다.

프랑스어를 알고 이곳에 오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이곳에 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물론 학교 수업을 듣는 것에는 프랑스어를 모른다면 영어 수업만 신청해서 전혀 문제없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영어만 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피상적으로 보고 가는 그 파리만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으면 파리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지인만이 아는 숨겨진 장소를 찾아갈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음 주에 열리는 행사를 발견하여 친구랑 같이 갈 수 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광판, 포스터, 게시판 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꼭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파리에서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 차고 넘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채우고도 한참이나 남아서 벅찰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학교에서도 프랑스 친구를 사귀려면 프랑스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강의를 잘 안 듣는 것처럼 프랑스 친구들도 영어강의를 잘 안 듣는다. 확실히 현지인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면 굉장히 좋아한다. 몇명은 자신의 영어 습득을 위해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프랑스어를 쓰지 않고 영어를 쓰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은 프랑스어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프랑스어를 꼭 배운 다음에 시앙스포에 오기를 적극 권장한다.

프랑스 지방 도시 여행, 혹은 한국의 주력 분야가 아닌 와인/서양미술/오페라/ 등에 대해서는 내가 교환학생으로서 왜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어차피 1학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이 잘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갈텐데, 단 1학기만으로 나의 문화적 취향이나 관심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철저히 한국인의 시각으로 파리에 있다 갔다. 파리라는 도시 또한 프랑스 안의 프랑스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독일인, 영국인, 멕시코인, 프랑스 언어권 출신 흑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국제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한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내가 교환학생을 1년으로 갔다면 한 학기는 최대한 한국과 동떨어진 프랑스의 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고, 다음 한 학기는 최대한 한국과 가까운 프랑스의 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1학기만 가기 때문에 나는 후자만에 집중했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교환학생은 6개월이든 1년이든 짧은 시기이지만 나중에 자신이 그 나라에서 취업을 하거나 석사 생활을 하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교환학생 기간 중에 만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같은 교환학생을 제외하면 모두가 다시 만나면서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된다. 프랑스 교환학생 중에 나는 서울로 돌아왔을 때 커다란 화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파리에 씨를 뿌렸다. 6개월 쯤 지나면 커다란 꽃봉오리가 될 씨앗들을 뿌렸다. 나는 1학기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환학생 이후 한국에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돌아간 2013년 중에 한국을 방문할 프랑스인들과는 특별히 더 친해지려 노력했다. 교환학생이 끝난 뒤의 인바운드 국제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내가 만난 이들 중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미리 알아놓도록 하자.
- 한국에 1달에 1번 이상씩 오는 프랑스인
- 내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 놀러올 프랑스인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아시아는 괜찮은 지역, 연대는 괜찮은 대학이라는 점이다. 파리의 화려함만을 보지 않고 전체를 봤기에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귀국해도 섭섭한 마음이 없는 상황이다.

남자는 훨씬 현지인 사회에 뛰어들기 쉽다. 파리에는 한국인 총 4명 중에 여자가 3, 남자가 1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번 학기에 Sciences Po로 교환학생을 온 학생들 중 유일한 남자였다. 서울대학교 2명, 연세대학교 4명, 고려대학교 6명, 서강대학교 2명 이렇게 총 14명이 새로 왔는데 이중 나만 남자였다. 남자이고 군대를 갔다왔기 때문에 언제나 오빠 소리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도해서 동생들을 만나고 동생들에게 정보를 공유해주며 도와주는 일이 수월했다. 그렇게 한국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즐거운 교환학생 생활을 보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한국을 생각해보았을 때 한국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오뜨 꾸뛰르’다. 한국의 문화에는 일본의 심플한 대중성이나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와 친밀감과는 다른 소수의 비장미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한국 미술이나 한식이 가진 다양성과 창의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서 한국 전통문화는 고소득층의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주로 찾는다. 파리에서 전반적으로 한국은 중국보다는 일본과 가까운 나라 취급을 받는다. 

내게 지난 6개월은 한국문화란 무엇인가, 외국인들에게 어떤 문화를 자랑하고 내세워야 하는가를 비교와 분석을 통해 찾아내는 기회가 되었다. 학생들이 가기 좋은 문화원은 파리에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좋은 음식점, 바, 관광지가 있는 곳 근처에 밀집해있다. (한국문화원은 트로까데로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문화원을 통해 그 나라는 파리에서 어떤 모습을 팔고 있는지를 보면서 한국과 비슷한 건 없는지 찾아보고, 오로지 한국에만 있어서 독특함으로 유지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골라내었다. 특히 작년 봄학기에 열심히 준비했던 YKRF리더십포럼의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 문화 및 일본인과 중국인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어를 공부하던 참이라 15구 파리일본문화회관 3층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어보던 때가 많았다.

나는 6개월을 1년처럼 살자는 마음을 먹고 집에 틀어박혀 한국 TV 다시보기를 보는 일 없이 쉬지 않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ZONE 1 내의 모든 메트로 역 주변을 구경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던 숨은 명소를 내가 찾아내어 구글 My Places에 추가하고 정리했다. 6개월 동안 파리의 모든 행사와 모든 장소에 가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패션, 오페라, 음식, 서양미술에 관한 곳은 찾아가지 않고 대신 대중음악, IT, 한류, 재불한인사회에 대한 곳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하니 파리의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고 후회없이 떠나는 기분이 들어 좋다.

me2day.net/iamdwlee/tag/파리 에는 내가 그동안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느낀 것들과 유용한 정보를 그때그때 올려놓았으니 관심있으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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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 Changes

Ray Bryant Trio

Prestige 7098 (1957)

 

 

Blues Changes.pdf

 

모처럼 주말이 되어 피아노를 연습하다 예전에 악보를 인쇄하여 철해놓은 클리어파일을 발견했다. 피날레로 만든 이 곡 Blues Changes의 악보였다. 2006년 내가 대입을 준비하면서 자유시간이 날 때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런 채보로 풀곤 했는데, 이 악보는 유일하게 N드라이브로 백업하지 못한 나의 피날레 악보였다.

 

인쇄를 안 해놓았으면 그때 어린 내가 열심히 만든 이 악보는 사라지고 없었겠지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지금 내 피아노 실력으로는 무지하게 어려운 반음계 덩어리의 이 곡을 2006년의 나는 어떻게 악보로 옮겨적을 수 있었을까 신기한 마음이 든다. 마치 지금 고등학생인 다른 후배를 보며 감탄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나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무조건 능력이 상승하고 기억이 축적되는 것은 아닌 느낌이 든다. 머리는 마치 화이트보드와 같아서 치열한 시절에는 이색 저색 마커로 글과 도안과 낙서가 빼곡히 적혀있지만 성취와 안정을 얻고 늘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화이트보드의 절반 정도를 지워버리고 만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고대의 조상들은 당연하게 사용했던 문명의 이기를 전쟁과 무사태평한 시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리고 까먹고, 나중에 다시 처음부터 발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6년의 나는 자기 전에 이 음악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내 네이버 블로그를 날리지 않길 잘했다.

정말 이 곡은 자기 전에 들으면 그 cozy한 느낌이 참 따스하고 좋다.

 

 

예전에 나는 재즈를 좋아했구나. 그래서 재즈 동아리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본다. 과거의 내 모습을 잃지 않게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음악(재즈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그리고 smooth jazz를 들었던 그 시절 ㅎㅎ)을 다시 들어야겠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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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일본을 좋아하는 태국



일본을 좋아하는 스페인



단지 나는 댄스를 별로 즐겨하지 않아서 (그리고 예전에 밴드를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비디오보다 이런 게 끌릴 뿐이다.

그리고 위의 세 나라는 모두 '라인'의 이용률이 높은 나라들이다.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는 "라인은 향후 전세계 10억명이 이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현재 2억3000만명의 이용자 가운데 일본 이용자는 30% 뿐이며 나머지 80%는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에 고르게 분포됐다"고 밝혔다. 참고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82113040581808&VBC)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위의 동영상을 찾아본 게 아니며, 평소에 우연히 발견해서 좋다고 생각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둔 동영상이 이 기사와 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CJ E&M은 중국과 유럽에 한국의 댄스 중심의 음악의 포커스를 맞추었으며, 일본에는 드라마와 약간의 뮤지컬이 있을 뿐이다. 즉 한국의 밴드 중심의 음악을 수출하는 거대 자본이나 트렌드를 만드는 집단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아, 씨엔블루 FT아일랜드를 까먹었다. 그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좀더 '외모가 부각되지 않고 연주 실력과 단지 좋은 음악이 부각되는' 밴드 음악을 일본을 비롯한 위의 나라들에 알리고 수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한국이 취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민트페이퍼이고, 그래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일본인 교환학생이나 다른 아는 친구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2012년 10월에 나는 프랑스로 교환학생 중이었으며, 2013년 10월에는 코엑스에서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뭔가 깨달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울러 서울소닉(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 영국과 싱가포르 공연 등)의 노력을 주목할 만 하지만 태국, 인도네시아, 스페인으로 한국의 밴드 음악이 진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건 마치 한국-중국-싱가포르-미국-영국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 진영과 일본-대만-인도네시아-태국-스페인의 일본 대중문화 수용 진영 사이의 구분일까?


구별이 제멋대로이고 임의적이고 성급한 일반화의 감이 없지 않아 죄송할 따름이지만, 브라질과 호주의 경우는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진영에 더 가까운지)는 궁금한 과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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