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귀가를 해서 오늘 토플을 봤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을 위해서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조금만 더 리딩을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Let bygones be bygones. 후회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와 지금 나는 다시 기숙사 방에 앉아 내일을 준비하고 학교 생활에 다시 적응한다.

  어제 밤 홀로 학교를 나설 때 청량한 학교의 푸른 빛 공기가 나를 적셨다. 약간의 긴장감과 집에 간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면서 나는 학교를 나서 파스퇴르 공장을 지나 굴다리를 넘어 소사휴게소로 갔다.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강릉->서울행 버스가 많았다.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한 뒤 버스를 탔다. 나트륨의 따뜻한 노오란 불빛이 나의 객수(라고나 할까.. 거창한가?)를 달래 주었다. 잠이 보약이요 진정한 보물 아닌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자 버스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막 지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20분. 출발한 시각은 6시 20분인데.. 두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아주 멀게만 느껴졌는데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에게 학교에 대한 친근감을 더욱 고조시켜 주어서 좋았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올림픽대로(강변북로인가)에서 반짝이는 테크노마트를 보는 순간 약간 움찔했다. 서울이 이렇게 발전했구나 라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순간 내가 서울 사람 맞아?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갓 상경한 시골 촌놈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 강변역에서 탄 지하철은 내가 전에 보던 차들과는 다르게 매우 신형이었다. 내안의 지하철 2호선이 조용히 지나고... 라는 가사를 가진 귀엽고 정겨운 이한철의 포크송(제목이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이 생각나는 지하철 2호선이었는데, 어제의 지하철 2호선은 새롭게 단장한 신기술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하루였다. 내가 큼지막한 무궁화 교표와 '각계각층의 지도자양성학교'라는 다소 나에게 부담스런 문장을 달고 있는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서 그런가? 내일 토플을 봐서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가? 헷갈렸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집이란 이래서 좋구나.. 편안하게 정말 재미있는 '인간극장' 을 엄마와 같이 보고 토플 공부를 좀 하고 11시 반에 잤다.

  다음날, 결전의 날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조금 먹었다. 뇌의 활성화를 위해 가나 초콜렛 빨간색 1000원짜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에 있는 테스트 센터로 갔다. 운현궁의 봄이 왔다. 그리고 이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초긴장 모드에 돌입한 채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이번 토플이 2년 전부터 해서 꼭 5번째인데, 5월부터 iBT로 바뀐다고 해서 이번 시험에 정말 목숨을 걸었다. 시험을 모두 안국에서 본 이유는 이곳의 부드럽고 전통적인 한국의 美가 나의 가슴에 부드럽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안국 운니동 말고도 옛 한양 지역인 광화문, 시청과 종로, 그리고 대학로와 돈암동, 길음동 모두가 나를 편안하게 하는 곳이다.

  테스트 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9시였다.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LC의 첫번째 문제를 듣고 나서.. 심장박동수가 1분에 80에서 LC 문제를 듣고 나서 순식간에 140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LC는 나의 콤플렉스여서 정말 집중해서 들었다. LC를 풀고, Structure를 풀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더디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쉬는 시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창덕궁의 안이한 옛 자태를 상상하며 그 다음의 RC를 풀었다. 요번에 RC가 좀 부실해서 아쉽다. 그래도 LC가 팍 늘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

  토플을 그럭저럭 잘 보았다. 저번보다 10점 정도 올랐으니까 만족스럽다. 내 실력을 이 점수에서 제한해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긋지긋한 토플을 또 보기도 싫은 노릇이다. 즐거운 마음만을 갖고 점수를 종이에 옮겨 적은 뒤 유유히 센터를 나왔다. 센터 누나에게 가나 초콜렛을 선물로 주고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대학로로 갔다. 친구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두 명이나 동시에 생일을 맞아서 내가 선물을 두 개 사게 되었다. 남자 친구 선물은 내가 친한 친구들에게 선물 줄때 많이 찾는 바디샵에 가서 샀고, 여자 친구 선물은 원래 바디샵 옆에 Clue에서 사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귀걸이랑 목걸이 규제를 해서 그 선물도 바디샵에서 샀다. 누나 카드로 충전도 하고 현금영수증 처리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는 완연한 서울의 봄 기운을 느꼈다. 따스한 햇살은 버스 창가에 앉은 나에게 조용히 내려앉아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뿌듯한 하루, 오늘의 이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기숙사 방에 앉아 이 글을 쓴다. 


2006. 3. 9.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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