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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24절기로 말하자면 경칩이다.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신기하지, 어떻게 그토록 추운 겨울은 경칩날 눈 녹듯 딱 맞추어 사라지는지 그저 자연의 이치를 통달한 그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날씨를 보니 오늘부터 4일간은 따뜻하고 안개만 조금 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모처럼 맞은 따뜻한 햇살은 학교에 수북이 쌓이고 밟히고 밟혀 딱딱해져 버린 눈을 녹였다. 눈은 승천하는 천사들처럼 그렇게 하늘의 부름에 응답했다...

  내일 오전 00시 15분은 나에게 의미가 많은 날이다. 우리 아버지도 오늘의 눈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하늘의 부름에 응답하셨다. 그 날이 바로 내일 밤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나 혼자 이 학교에서 외롭게 이 슬픈 날을 견뎌야 한다. 주위의 친구들은 각자 소일거리를 찾아 행복해하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즐겁게 대화하는 가운데 나 혼자 구석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같이 따스한 날에 나에게 눈보라보다 거친 슬픔의 소식을 하나님은 미리 예고하고 계셨다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오늘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친구들이 모두들 좋아 보인다. 원래 내가 우울할 때에는 평범한 일상에 서 있는 아이들도 마냥 즐거워보이기만 한다. EOP라는 것(우리 학교의 영어상용화 정책)이 그 절규의 끝을 알리는 듯, 나는 생전 듣도 보지 못한 소식을 듣고 또 한 명의 영어상용 위반자를 적발해야만 했다. 이 없어져야 할 정책이 선한 모습으로 바뀌는 직전에 나는 혐오감을 친구들에게 끼쳐야만 했다. 오늘 나의 학교 친구 한 명이 전학갔다. 남자끼리는 서로 안고 울고 하는 그런 짓은 안 하지만, 그 친구가 학교에 없다는 건 은근히 나의 가슴에 찬바람을 분다.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아쉬움으로 묻어버리련다.

  우울하면 말이 없어진다.

  지금 나는 수심에 잠겼다. 말을 해도 물 속이라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한다. 아른거리는 메아리만 가슴 속에서 진동할 뿐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기분이 축 쳐질 때도 있다. 경칩날 이 좋은 햇살을 받으며 여기 있는 내가 그렇다.

2006. 3. 6.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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