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세느강) 유람선


  이번 수학여행 때 가장 뇌리에 깊게 자리잡은 추억이자 파리의 야경을 최대한 낭만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센강 유람선 관광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약간의 노독을 쌓은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관광을 원했다. 그날 밤에 유람선을 탄다는 말만 듣고 아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한 번 유람선을 탄 후에 나의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Bateaux-Mouches라는 큰 간판이 번쩍이는 곳에 우리의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우리 민족반 말고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려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탄 유람선이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유람선이었나보다는 추측을 해본다. 선착장에 갔을 때의 시각은 저녁 7시 반으로, 해는 서쪽에 지고 서쪽 지평선에서 달아오르는 잔열의 붉은색(amber)이 엷게 타오를 뿐이었다. 파리에서는 산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지평선이 선명했다. 유람선 티켓을 끊고 유람선에 올라타자 차가운 파리의 공기가 전해졌다. 그 때의 날씨는 매우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람선의 이동 속도에 맞추어 체감온도는 떨어지고, 게다가 강물이 밑에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람선을 탄 다음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야경 모드로 해서 친구들을 찍으니 친구들은 선명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나오는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만 가끔씩 반짝거리는 에펠탑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사실, 그래서 동영상으로 담았다. 우리가 유람선에 승차한 지 15분이 지나자 유람선은 큰 엔진 소리와 함께 선착장을 출발했다.

  나트륨등의 노란 불빛이 야경에 흡수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황금빛 도시를 만들어내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네온싸인이나 큰 전광판, 광고판 등은 없었고, 오직 소박한 5층 이하의 건물이 즐비했다. 그 소심한 건물들이 빛을 아무런 불편 없이 수용함으로 인해 파리의 야경은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한다. 에펠탑이 큰 몸집으로 유람선을 타고 가는 우리들을 계속 지켜봐 주었다. 우리는 노트르담 성당과 파리 시청, 루브르 박물관 세 건물 중 하나도 보고 여러가지 건물들을 보면서 강 위를 달렸다. 낭랑한 한국어 Audio guide 또한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다리 밑을 지나갈 때마다 유람선과 다리 밑 사이로 메아리치는 그 시원한 폭포수 비슷한 소리는 꼭 예전의 롯데월드 놀이기구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서 배가 코스의 반 정도를 가고 다시 선회할 때 나와 친구들은 밖으로 트여 있는 2층에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귀여운 프랑스 4살짜리 꼬마아이와 즐겁게 놀았다. 어머니가 아주 미인이신 걸 보니 그 꼬마아이도 나중에 멋진 남자가 될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즐겁게 대화도 하다 보니 어느새 유람선은 선착장에 도착해 있었다. 유람선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할 때에도 유람선의 감동은 잊혀지지 않았다.


유네스코


  나의 꿈은 외교관이다. 막연히 외교관이 아니라, 나도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장래희망을 설정하고 있다. 우선 외무고시를 패스한 다음 (이게 어렵지..) 여러 나라로 발령받다가 영국의 1등서기관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되는 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대사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직종(외교관)을 계급에 상관없이 꼭 쟁취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장래희망 때문에 이번의 유네스코 공식 방문은 나에게 많은 motivation과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해 주었다. 내가 이런 국제 기구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네스코 방문에 참가했고, 따라서 얻은 것도 많다.

  유네스코 건물은 높지 않았고, 생각보다 소박하게 생겼다. 본부라고 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소박하고, 따라서 더 정이 간다. 나는 이런 소박한 아이보리색(흰색이 아니다) 콘크리트 건물에서 일하고 싶다. 유리창이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몇십층 짜리 고층 빌딩 보다는 더 편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관광객들도 많이 다녀간다는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 우리는 대강당에 들어가 사진을 몇장 찍고, 그 다음 유네스코, OECD에 근무하시는 한국인 분들과 담화를 나눌 장소로 갔다. 버튼을 누르고 발언할 수 있는 마이크가 모든 자리에 비치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나는 국제 기구이고 또 본부이기 때문에 시설과 환경이 어마어마하게 깨끗하고 세련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고, 오히려 소박한 게 편하다.

  한국인 세 분과 같이 담화를 나누었다. 그분들이 처음에는 진부한 강의를 하다가 세 번째 분, 가장 국제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답지 않으신 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하셨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학과를 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국제 기구의 한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외국어 실력과 글쓰기, 말하기 실력이며 그리고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라는 게 이분의 주장이다. 정말 와닿았다. 막연하게 국제관계학, 힘의 논리 등을 배우고 외국어 조금 잘해서 아무런 열정 없이 국제 기구나 외교통상부 등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어떤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근무하는 쪽이 훨씬 낫게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내 진로인 정치외교학과는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는가. 전문가를 만들어주지 않는 학문을 나는 원하지 않는데, 정치외교학과가 자칫 그러한 학문이 될까봐 한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파리의 국제기관에서 모임을 가지려면 모이는 날로부터 두 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하고, 신청을 해도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별로 없다는 게 한국인 인사들의 공통적인 주장이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높이 평가해 주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또 유네스코에서 ASP(A 무슨 Students' Program)를 실시하는데, 그 첫번째 수혜자가 우리 학교가 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 세 분들에게 국제 기구와 외교에 대한 막연한 인식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는 지식을 배웠다. 유엔총회는 9월~12월에 열리고, 현재 유엔의 신탁통치 활동은 중단된 상태이다. 유네스코는 정치,경제,국방 문제 외의 교육,과학,문화에 대한 국제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1946년 11월 4일 설립한 유엔 부속 국제 기구이다. 유네스코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예를 들자면, 미취학 아동을 돕기라던지 군사적 대립 상황이나 기관간의 마찰로 파괴될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기가 있고 또 문맹인을 없애기 등이 있다. 현재 유네스코가 회의를 통해 예산과 인력을 투자해 도움을 지원해 주는 나라는 거의 다가 아프리카, 아시아의 후진국이다. 회의를 할 때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그에 따른 통계 자료와 뉴스 자료를 구술한다. 최종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주장과 문제의 해결 방안을 내놓는다.

  대학원 인턴십 과정으로 실제 UN이나 UNESCO 기관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운영하는 인턴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경쟁력을 쌓아 후에 국제 기관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경험 또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세 분들은 입을 모았다. 미국에는 UN대학도 있단다. 그분들이 UNESCO 소속 한국 공무원 선발 과정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나는 깜짝 놀랐고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경쟁률은 300:1이고, 그 중 20명을 뽑고 (6000명이 지원한다는 말인가??) 인터뷰를 통해 다시 8명을 뽑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인가. 이래서 외교가에 종사하려면 4~5년이 걸린다.

  이러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지식도 배울 수 있어서 나는 매우 좋았다. 우리 나라 국력을 신장시켜야 하고,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붕 뜬 말들은 이제는 식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질문을 했고, 그에 따른 만족할 만한 답을 얻었다. 아주 귀하신 분들과 함께 보낸 귀중한 시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유럽 수학여행
2008. 2. 4. - 2008. 2. 18.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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