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블로그를 못한 원인은 이중전공에 따른 부담과 동아리의 정기공연 준비 이 두 가지에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의 무서움을 파악하고 소문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괴력을 절실히 느낀 어떤 한 사건 때문에 나는 내 모습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조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주 직설적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공대와 사과대를 넘나드는 첫 학기의 첫 시험 준비는 어느 정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맨 처음 과목은 조금 망치긴 했지만 앞으로의 학기를 어떻게 버텨야 되나 하는 거대한 절망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공부법을 연마하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특히 이번에 언어와 수학을 병행해 가는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 할 게 훨씬 많아졌다. 그동안 쪼들리는 일정에 블로그 주제는 머리 안에 있었지만 늦은 하루의 피로감 때문에 그것을 포스팅으로 옮길 힘조차 없었는데, 오늘 아침은 참 개운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포스팅하기 좋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주의를 기울여왔던 주제는 새로운 정보다. 이는 기존의 내가 배워놓은 지식을 보존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오늘 당장 내 눈 앞에 새로 펼쳐진 정보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정보는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교수의 말 한마디를 필기로 옮겨 적으면서 빛을 발한다. 새로운 A라는 정보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가장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은 지금 이 정보를 저장할 때 아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책의 몇 페이지에서 이 정보를 발견했는가를 생각해보고 그 페이지를 스크린샷처럼 기억하는 방법, 이 정보가 툭 튀어나올 당시의 나의 심정이라던가 주변 사람들의 대화하는 상황 등을 연계시켜 함께 기억하는 방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에는 글귀를 있는 그대로 단지 글의 형태로만 머리에 저장하곤 했는데, 이는 어렸을 적의 성경구절 암송처럼 10-20회의 반복적인 읽기를 통한 암기에만 적합한 방법이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가 정보를 얻기 위한 소스가 글, 그림, 하이퍼텍스트 문서, 동영상, 친구나 다른 어른들의 말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특정 정보 A를 아주 독특하게 기억하기 쉬워졌다는 사실이다. 눈과 뇌만 가지고 글을 읽어 정보를 달달 외우는 것과, 여러 감각기관이 모두 열심히 가동하여 똑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이 정보가 내 안에 저장된 이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일이다. 정보를 처음에 받아들일 때 그 정보가 완전한지 혹은 올바른지에 대해 의심을 한다면 그 정보는 뒤틀리고 기억 속에서 쳇, 하며 빠져나간다. 슬롯머신의 빙빙 돌아가는 그림들처럼 어떤 형태를 취할지가 불안한 정보가 차분히 굳어진 프레스코화와 같이 뇌에 저장되도록 처음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온 정신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 정보가 나에게 온전히 들어올 수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다른 정보와 아무런 의미 없는 연결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러한 쓸데없는 연결관계를 처음 정보를 접하는 순간에 떠올리기를 삼가할 필요가 막대하다. 예를 들어 막스 베르트하이머라는 심리학자가 가현운동의 원리를 처음 제시했다는 지식을 처음 접할 때에는, 1920년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쓸데없이 떠올리면 안된다. 농담이나 유머를 위해서는 이러한 경우처럼 정연한 논리를 비틀지만, 공부를 할 때에는 진지하게 정연한 논리를 천천히 따져가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은 서로 관련이 있다. 정보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 놓으면 그 A라는 정보는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저장해 놓은 수백만 개의 단편적인 정보와 아무런 혼란을 빚지 않게 되어 불변하는 분명한 지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관련된 두 가지 원칙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방법과 원칙은 능력의 필수적인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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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일을 함께 기획하고 시작할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언제나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어 반응하고 행동한다. 두 가지 다른 반응을 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많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같은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서로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모르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의 성향을 '이카루스'와 '지렁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본다. 나와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충만한 자신감과 재빠른 정보 수집, 잘 짜여진 이론에 기반한 장기적인 계획 그리고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한 사람이 리더를 맡아 가열차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언젠가 사람들 간의 오해나 행동의 불일치 때문에 순식간에 소강 상태로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이카루스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기술을 가지고 그때그때 쉬엄쉬엄 같이 모여 계속 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며 아주 천천히 일을 진행해 가는 지렁이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일단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여럿 모였을 때 아이디어를 먼저 구체적으로 내놓은 사람이 선두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획안을 제공해준다면 일의 처리가 상당히 빠르다. 날개를 달고 빠르게 하늘로 솟구치는 이 방법은 절대로 민주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의 생각을 아주 극렬히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취지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효율적인 진행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도 좋다. 문제는 효율성과 인간관계의 부드러움이 극도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가치라는 사실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계가 일보다 중요하며 심지어 '관계가 일이다'[각주:1] 라는 말까지 나온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그 생각을 모두 허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수많은 만남과 놀이가 계속된다. 일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든 활동이 전개되면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는 세부적인 점에 대한 섬세한 고려 없이 성기게 과정을 밟아 나간다. 이카루스와 그 사단이 기분은 깔끔하지 않겠지만 결과물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일에 몰두할 때, 지렁이들은 서로 기분 좋은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으며 업적보다는 모두의 만족을 지향한다. 그래서 누가 무슨 제안을 했을 때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그거 좋네! 해보자' 하는 주저하지 않는 이카루스의 반응과는 달리 지렁이들 사이에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근데 있잖아..'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중에서 나는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다 좋다는 줏대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이 있으면 일단 강하게 주장하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일을 추진해버리는 이카루스형의 사람이다. 아무런 의견이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일단 어떤 하나로 집중이 되기 시작하면 독단적이고 빠른 집중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진행되고 있는 계획을 뒤집거나 번복하는 일이 없다. 차라리 계속 진행을 하면서 갈 때까지 가다가 죽음을 암시하는 태양 바로 앞까지 가서 날개가 녹아버려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낫다. 적어도 해놓은 일은 수북이 쌓인 파일들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그 기록은 훗날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카루스와 같은 나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앞서가지는 않았는가, 남들이 열심히 하기로 기획해놓은 일을 내가 먼저 선점해 버려 그 사람이 준비한 것을 그의 공으로 돌리기 전에 준비가 수포로 돌아가게끔 하지는 않았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가장 나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제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입을 다물고 일단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듣고 있는 나에게 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는 전혀 없지만, 잘 지낼 필요는 절대적이다. 내가 일을 나서서 시작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들일 기회를 돌려버리고 나는 뒤로 빠져버리는 자세를 계속해서 배워야 하겠다.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신중해져야지.

  1.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로부터 인생의 교훈으로 배운 가장 중요한 말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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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HCI 수업시간에 본 동영상. 핀란드 헬싱키는 북유럽 정보통신 강국답게 도시 안에도 이러한 시설물을 설치해놓고 있었다. 인구가 적고 공공시설물에 대한 시민의식이 발달해 있는 곳에 신중히 설치하는 매우 고가의 공공시설물이다. 부러울 따름이다. 만약 서울처럼 거대한 도시에 이런 city wall이 만들어져서 헬싱키처럼 도시 안의 모든 소식을 한곳에 모아놓는다면 소식의 수가 엄청나 city wall의 공간이 부족할 것이다. 이 경우 필요한 건 메트로폴리탄 시티를 아기자기한 자치구로 쪼개서 각 '구'마다 이렇게 이쁜 시설을 달아놓는 일이다. 작은 도시만이 갖는 독특한 특성, 소수의 동질적인 시민들, 그에 따라 갖는 동등한 취향과 동등한 문화, 그에 따른 사람과 환경의 어우러짐.. 그것보다 아름다운 예술이 있을까?

  사람 사는 동네의 소식을 최첨단 기술을 통해 접한다는 아주 고대 도시다운 발상이 사람들에게는 흥미와 정보 두 가지 측면에서 만족을 줄 것이고 그에 따라 도시의 이미지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특히 EU와 함께 공동제작했다는 점과 (정부와 기업의 협력) 라운지 음악에 맞추어 소개되는 아주 세련된 홍보 동영상은 보는 이의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켜준다.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세련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북유럽 쪽의 컨텐츠를 접하면서 항상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한국 정부 또한 세련된 컨텐츠를 제작하여 기업과 비교해 보아도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디자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음악도 기웃거려보고 웹디자인도 기웃거려보고 있다.

  The City Wall은 EU 산하의 IPCity (도시 속 유비쿼터스 디자인의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는 framework programme) 그리고 핀란드의 정보기술 연구원 Helsinki Institute for Information Technology에서 함께 디자인한 도시 속 벽으로, 고대 로마 시대에 도시 한복판에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새로운 정책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이벤트 등을 보기 쉽게 한데 모아놓은 Acta Diur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설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나도 먼 나라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동영상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찾아가서 벽을 만져보아야겠다.

  사실 우리 학교의 새로운 도서관 1층 로비에도 이렇게 손으로 포스트잇처럼 생긴 글들을 터치로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LCD 스크린이 있다. '자유게시판' '벼룩시장' '분실물' 등의 카테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글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일반 학생들이라 잘 볼 일이 없게 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꼭 필요한 학교 소식들을 여기서 고화질의 사진과 함께 제공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가능하게 되겠지??

공식 소개 동영상


실제 이용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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