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은 분명 매력이다. 얼마 전에 봤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새롭게 떠오른 강인-이윤지 커플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커플티를 사러 간 곳의 일본 관광객에게 '슈퍼주니어!! 도호신기 말고' 라며 답답해하는 강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본어로 관광객에게 사뿐히 알려준 이윤지에게 강인이 반해버린 모습은 시청자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상수역이면 여기서 대림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면 돼, 라고 가는 길을 바로 찾는 이윤지에게 강인은 '아 우리 똑똑이' 하며 좋아했더랬다. 이날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이윤지의 모습은 분명 TV토론이나 수업 시간 질문, 혹은 상대방과 경쟁하는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드러나는 그러한 지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똑똑하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인간적인 유대를 매개로 표출하고 전달하였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아무런 꾸밈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면 사회와의 관계에서 실패한다. 이 글은 똑똑함을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든든한 밥이 될 수도 무시무시한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아무런 꾸밈이 없다는 것은 지성인으로서 주장이나 의견 표명을 하였을 때에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냉소적인 태도나 비난하는 어조 등이 있는 그대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커다란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보통 자신이 말하는 상대와 같은 높이에 서려 하지 않고 그 사람보다 우월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을 때, 혹은 대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이러한 직접적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TV 토크 쇼나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강연 등에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등의 CEO들은 분명 똑똑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혹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만둔) 천재들이라 할 수 있지만, TV 시청자들에게 그들은 한없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싶은 아저씨들이다. 내가 시덥잖은 질문을 하나 해도 내가 그 질문에 대해 받고자 속으로 원했던 답변들을 위트를 섞어 술술 풀어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다. 이 분들은 똑똑한 사람의 얼굴을 인간성이나 유머로 꾸미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대중의 환영을 받으면서도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딱 스타일 멋지고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그 자신은 그리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만난 동성 친구에 대해 "걔는 참 똑똑한 친구야He is quite a smart guy" 라고 말했을 때 그 smart guy의 이미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똑똑함을 지성이 아닌 인간적 매력으로 표출한 사람'의 이미지이다. 여기서 smart guy를 소개한 남자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바람직하게 똑똑한 사람은 자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똑똑한 모습을 내보이면서도 자신은 주변 사람들과 같은 물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 교만한지 겸손한지를 따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한 마디라도 더 많이 하려고 끊임없이 궁리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학원에서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요즘 아이들이 내심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나도 그리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 때보다 훨씬 지독한 경마장 체제 안에서 좀비마냥 무덤덤함과 한편으로는 노련한 머리놀림으로 아웅다웅하는 아이들이 과연 똑똑한 매력에 대해 관심은 가지고나 있을까. 난 똑똑하고 문제 잘 풀고 듣고 읽는 문장은 바로 이해하고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빨리 제시해줄 수 있어, 그래서 나는 그동안 상도 많이 탔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 웬만한 인맥도 있어, 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단지 그러한 지적 능력 즉 '지성'에만 가치를 둔 채 똑똑함의 표현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똑똑함의 적용에 대한 가치는 간과할까 걱정이 된다. 푸석푸석한 컬러 톤으로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며 책가방은 쓸데없이 무겁고 뒤에서 씨나락 까는 말투만 간혹 툭툭 던지는 무서운 아이들이라도 누구에게나 공인된 그들의 똑똑한 내면은 매력있게 가꾸는 법을 한 번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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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 [見物生心]
[명사] 어떠한 실물을 보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김.
측은지심 [惻隱之心]
[명사]사단(四端)의 하나. 불쌍히 여겨 언짢아하는 마음을 이른다. ≒측심(惻心).

  사람의 마음을 사고 싶을 때 그 사람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고,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고, 예쁜 문자를 보내거나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러한 모든 행동은 견물생심에서 우러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을 가지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멋진 모습과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견물생심이 발동하면 치근덕거리는 멘트를 날리게 되거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녀/그는 이것을 좋아하겠지, 하며 거대한 부질없는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다. 이는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에만 잠시 끓어오르는 미숙한 애정이며 금방 싫증이 나게 되는 근성이다. 

  하지만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고자 한다면 달라진다. 상대방의 곁에서 항상 보살펴주고 언제나 지금과 같이 다정하게 있도록 신경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특별히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솔직한 말들을 많이 주고받으며 탄탄한 베이스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며 상대방을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앞에 서서 무언가 개인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느낌은 받지 않으며 평소에는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나는 그 사람을 가지려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있어 나는 그 사람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지난 1년간 나는 견물생심으로 앞에 섰는가, 측은지심으로 앞에 섰는가? 반성을 깊게 해야 하는 문제이다.


보너스 - 내가 좋아하는 효주누님 (대한항공 CF에서의 그 모습이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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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러움과 박탈감, 자랑과 짓밟음, 시기와 자책이 합한 경쟁사회의 주된 감정이 나에게 밀려오려 할 때는 나는 그것들을 뿌리치려 애쓴다. 누가 뛰어나더라도 "그래, 그 사람은 행복하겠네." 하며 덤덤하게 넘어가려 한다. 이것도 사람들이 요즘 같이 팍팍한 사회에 존경하는 인물로 내세우는 '대인배'가 가진 한 가지 특성 중 하나일 것이다. 

2
  서로 쟁취하려는 한정된 자원은 화두로 절대 올리면 안 된다. 학점과 진로 등과 같이 어떤 사람이 점유하면 다른 사람은 소외되거나 압박을 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끼리나 현재 같이 하고 있는 세미나의 진척상황에 대해 웃는 얼굴로 물어보고 어제 밤 인터넷에 올라간 레포트 점수와 교수의 평가에 대해 뒷말을 남기는 것이다. 건강한 화두를 올리는 친구들끼리는 이를 차단할 구조를 미리 조성할 수 있다.

3

  같은 공간에 같은 임무를 부여받아 서로가 한정된 자리를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경쟁자들끼리 인간적인 만남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때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남을 나와 비교하고 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보다 우월한 대상이 인간화되어 있으면 그 대상은 나에게 더욱 많은 열등감을 줄 것이고, 반대로 열등한 대상이 인간화되어 있다면 그 사람을 보기 좋게 짓밟았다는 무의식적 정복감이 생길 수 있다.
 
 주변의 대상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교의 작업을 수행하면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없이 냉정한 경쟁을 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 슬슬 눈치를 보면서도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하지 말고 나 혼자 상황을 점검해 본다. 또한 누가 나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말고 '성과 지표'로서 바라보아 그 성과에 익명성을 부여하여 나의 성과 지표와 비교해 본다. 특히나 일회성으로 잔인하게 끝나는 경쟁인 경우에는, 경쟁은 서로 등을 돌아보고 앞으로 달리는 행위가 되어야 바람직하다. 한 점에서 사방으로 달려가는 레이스다. 경쟁 주체가 앞으로 만날 사람이 아니라 이번 한번만 임시적으로 만난 사람일 경우에는 인간적인 끈을 만들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공에 대한 두려움은 주변 사람보다 내가 잘 되는 것이 미안한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러한 감정은 일회성 경쟁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경쟁 주체가 앞으로 몇 년간 서로 같이 지낼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특성을 가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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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I T M U S
중간중간 툭 던지는 시험 질문

  이성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내 사람인가 아닌가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말이 막히는 첫 만남에도, 사귀기 시작한 다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남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성격은 같아도 반대여도 상관없지만 그 사람과 공유하는 지식과 취향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그래야 같이 놀러갈 곳이 생기고 밤 늦게까지 함께할 맛집과 술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취향을 강제하고 여자가 그것을 아무런 불만이나 무반응 없이 수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남녀 평등의 관계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5~10개 정도의 시험 질문을 마음 속에 항상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알아보고 관계의 방향타를 잡아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이 정해놓은 나름의 몇가지 기준을 통과해야지 내 여자, 내 남자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무슨 소고기 검역 하듯 엄격한 과학적 기술을 동원하여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가차없이 내치는 그러한 모습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더 주어도 내가 일방적으로 손해보는 일 없이 둘 다 승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험을 쓰는 사람은 참 냉정하다. 하지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자신이 정한 몇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질문을 '리트머스 질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트머스 종이 열 장을 입 안에 품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하나씩 건네주는 것이다. 그리고 반응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한다.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편안하게 늘상 나오는 화제와 연관된 질문이어야 한다 - 음식, 취미, 습관 등등
 급작스런 질문의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위의 조건과 연결됨)
답변이 즉각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내 관용의 마지노선에 걸친 성향에 관한 질문이어야 한다 -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다름의 해결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정도로


그래서 나의 경우 리트머스 질문은 다음의 일곱 가지다.
질문은 열 개보다 적어도 되는데 많으면 안 된다. 많으면 그만큼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그 성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훨씬 줄어든다. 왼쪽의 그래프처럼 질문의 개수가 많아지면 만족하는 사람이 체증하여 줄어들 것이다.





- 술 뭐 좋아해요? 맥주/칵테일
- (민트페이퍼/라이브클럽쌤/EBS공감) 알아요?
- 음식이나 술은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MP3 파일 아티스트별로/앨범별로/태그를 정리하나요?
- 단순한 친목 도모 혹은 서로 돕는 단체가 좋아요, 아니면 경험과 인증을 쌓는 단체가 좋아요? 후자
-
집안에 있는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지내나요?
- 적어도 밤 11시까지는 신촌/홍대/대학로에 같이 있을 수 있죠?

  이 정도에서 더 많아지면 곤란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더구나 한 가지 질문에 내가 바랬던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질문에서도 자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할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각자 사는 형편이나 환경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질문은 항상 품고 있다가 상대방이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평소에 대화를 주도하는 입장에 서 있어야 하겠다. 꾸준한 연습이 아니면 이것을 실행하기 힘든 것 같다. 질문을 해놓고 상대방이 "그건 왜 물어봤어?" 하면 "응, 그냥." 해버릴 것인가?? 그렇다면 리트머스 질문은 허약한 관계에 일조하게 될 게 눈에 선하다.

  비인간적으로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의 계략은 충분히 인간관계에서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로의 승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이렇게 질문은 계속 가지고 있게 된다. 상대방도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질문을 활용하지 못하고 섣불리 관계를 진전시켜서 뒤늦은 곤란함을 깨닫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할 뿐이다. 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젊은 사람들이 모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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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욱아, 나 학생회장 나간다."
  "이야, 이제 학생회장 나와서 우리 연희관 앞에 싹 다 바꿔주는거야?"

  "요즘 나 새로 블로그 하기 시작했어. 이제는 전처럼 작심삼일 안 할거야."
  "그래 자주 놀러오마. 내가 투데이 300 만들어줄게. 아니 뭐 내가 하루에 한번만 오면 300이고 두번만 오면 1000 넘어가게 생겼네."

  "이번에 미국 갔던 미숙이가 돌아온대."
  "이야, 미숙이 서울 오면 진짜 미인 되겠다. 완전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처럼 되는 거 아니야?"

  사실 나는 이렇게 이쁜 소리를 잘 안 한다. 워낙 성격이 솔직하고 있는 사물과 상황을 최대한 겸손하게 보려 노력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보기에 허접하면 그냥 허접한 거다. 별로 그 사람을 띄워주거나 비위를 맞춰주거나 하지 않는다. 정말 뛰어난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또 정말 솔직하게 껌뻑 죽어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띄워주는 말들을 조금씩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거나 그 사람이 기대하고 꿈꾸고 있는 것들을 더 커다랗고 아름답게 상상하도록 옆에서 바람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 아이는 참 말을 이쁘게 해." 우리 누나가 나보다 이런 말들을 참 잘한다. 외향적인 누나는 교회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계속 같이 다니는 단짝 친구들 그룹이 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는 하나도 없는 듯하다.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의 그 말은 '립 서비스'다. '비행기 태워주는 말' 이라는 다른 풀이로도 사용된다. 나는 립 서비스를 '그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언급' 으로 정의하고 싶다. 지금 너와 내가 있는 이 공간, 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확신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OO이 찾아올 것이다, 라는 축복의 말이다.

  아름다움, 성공, 유명세, 재화 등등 축복을 위해 OO에 대입하는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는 참 다양하다. 생각해보니 옛날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끼리 축제를 하거나 전통신앙의 의례를 통해 이러한 축복의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명절인 설날에는 꼭 빠지지 않는 '덕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20대 친구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에는 축복의 말이 예전보다 많지는 않다. 같은 마을(물리적 마을이라기보다는 모두가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상황에서 생기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무엇이든 구하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각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상상을 펼칠 수 있게끔 씨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는다면 그것보다 더한 에너지가 있을까 한다.
 
  립 서비스는 서로가 어려운 때에 더욱 큰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 이 자리에 내 손 안에 없다 해도 말을 들음으로써 구체화된 '그것'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불황기에도 영화와 뮤지컬이 그렇게 잘 풀리는 현상은 영화와 뮤지컬이 일상 속의 립 서비스, 이쁜 말들과 똑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같은 시점에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다 하나씩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고민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말들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한다. 이쁜 말이 열 마디가 모여 그 친구의 고민 열 개 중 하나라도 해소해줄 수 있다면 나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도 열심히 이쁜 말들을 하며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언어를 통한 구체화를 선물해주며 살겠다. 내가 없는 곳에서 친구들끼리 "쟤는 말을 참 이쁘게 한다" 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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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안타까웠던 점은 밴드의 음악적 성향이 프로 아티스트처럼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향을 가지고 싸운다는 점이었다. 누가 주로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분위기나 문화와 연계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는 하나의 밴드나 동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 말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다. 그래야 공연을 위한 선곡을 할 때나 같이 공연을 보러 갈 때 싸우지 않을 수가 있다. 
  
  정치적인 모델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이 언제나 타협을 하지만, 각자의 개성에 따라 연주해야 그 맛이 살아나는 음악에서는 타협을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부드러운 스탠다드 재즈 그중에서도 브러시 스틱을 사용하는 스윙, 북유럽이나 프랑스에서 나온 재즈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여자 보컬들이 부르는 모던락과 4차원 정신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락과 일렉트로니카를 혼합한 사운드 등을 특히나 좋아하는 나는 이러한 음악을 할 때 진정으로 감성이 살아난다. 지성이 아닌 감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나와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소규모로 곡을 연주하기를 좋아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동아리라는 특성에 너무나도 판단의 기준을 확실히 잡아 놓은 나머지 각자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한 민주적인 타협을 한다면 아무도 진정 원하지 않는 곡을 모두가 맥아리 없이 연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부터 동아리의 음악적 성향을 고정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배타적이고 동아리라는 취지를 완전히 뒤집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서(그래도 부정적 아마추어리즘은 갖지 않고) 활동하는 밴드나 동아리는 그래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교통정리' 혹은 '끼리끼리 모이기'가 필요하다. 즐겁고 활기차게 운영되는 밴드와 동아리는 모두 이와 같이 특정한 취향을 따르는 여러 개의 소규모 모임들의 집합체 형태를 띠고 있다. 모든 밴드나 동아리의 절반 이상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와 같이 발전해 나갈 것이지만, 처음부터 이 일을 기반으로 닦아 놓으면 처음부터 즐겁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동아리의 사람들이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았다.


  동아리의 구성원 혹은 세미나에 참가하는 사람이 20명이라고 가정하면 이와 같이 진행을 한다. 먼저 세미나를 진행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준비를 해 오라는 공지를 한다. 이에 따라 모든 신입생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즐겨 듣는, 그리고 가장 즐겨 연주하는 음악 10곡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 MP3 플레이어에 담아오는 숙제를 부여받는다. MP3 안의 음악은 다음의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 자신의 여러 가지 취향을 각각의 음악이 모두 대표해 주며 이 10곡의 음악이 반영하지 못한 취향은 없다.
  • 누구나 그럭저럭 넘길 만한 음악 4곡과 자신만이 좋아할 것만 같은 음악 6곡을 넣는다.
  •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로 정리하여 재생이 편리하게 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준비한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들을 40개 정도 추려 한 A4 용지에 매직으로 태그클라우드처럼 정리해 놓도록 한다. 이 두 가지는 세미나를 하는 날에 사용할 것이다.
  세미나 날에는 우선 대학교의 큰 강의실 하나를 빌려 놓는다. 안에는 20개의 부스를 설치해 놓는데 한 부스 당 책상을 1개만 놓는다. 각 부스에는 MP3 플레이어 하나와 헤드폰 하나, 그리고 그 MP3 안의 곡 분위기 키워드를 써놓은 종이를 놓는다. 이 MP3 플레이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일단 공개하지 않는다. 부스에는 큼지막한 번호가 붙어 있으며 이 번호는 각 신입생들이 부스에 대한 의견을 메모하는 데 참고사항으로 기록된다.

 
musicovery_controller

(사진: www.musicovery.com 이 사이트는 사용자가 플레이어에 설정한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아서 틀어준다. 청취자들의 음악 듣기 정보를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DB를 이용한다. 비록 영국 애들 꺼라 되게 낯설긴 하지만 ㅎㅎ)
  그 다음 모든 신입생들이 각각의 부스에 한 명씩 들어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 부스를 바꿀 때까지 한 부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10분으로 한다. 음악을 들을 때에는 전곡을 듣기보다는 전체적인 곡 분위기를 앞의 1분 정도만 들으면서 파악하도록 미리 주문한다. 신입생들은 각 부스에 대한 의견을 자기가 가져온 노트에 메모를 하는데, 꼭 메모장을 들고 올 필요는 없다. 단 부스 번호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 부스에서 다른 부스로 옮겨가는 것은 마치 '여우와 집' 게임의 '여우가 나간다' 처럼 무작위의 방향으로 할 수도 있고, 기계적으로 옆의 부스로 한 칸씩 옮겨 갈 수도 있다. 이는 동아리가 가지는 분위기나 성향에 따라 선택한다. 10분이 지날 때마다 앞에서 선배 회원이 공지를 하여 알려주면 부스를 옮긴다.

  여섯 번 정도 부스를 거쳐가면 1시간이 지나 있을 것이다. 총 진행 시간이 2시간을 넘기지 않고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거쳐가는 부스의 수는 10개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음악 들어보기가 끝나면 앞에서 진행자가 각 부스에 있는 MP3 플레이어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명씩 말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든 신입생들은 자신이 누구와 음악 성향이 호의적이고 누구와 적대적인지를 속으로 알아챌 수 있게 된다. 호의와 적대는 당연히 공적으로 내비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부스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같이 뒷풀이를 간다.

  대화가 주가 되는 술자리에서 '넌 무슨 음악 좋아해?' 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 질문이 생산적일 경우는 드물다. 직접 음악으로 들려주어야 그 사람의 성향이 온전히 전달되는데 술자리에서는 음악을 들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음악을 전달할 수 없고, 말의 내용이 듣는 사람의 성향과 반대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가 쉽다.

  미리 성향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놓되 그 과정이 대화가 아닌 계획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을 경우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기 때문에 모두의 기분이 좋아진다. 프로그램의 규칙에 모두가 따라주고 서로를 알아가려는 열정이 다들 충분하다면 나는 이렇게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여 동아리 내의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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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ing Adobe Photoshop CS - Filter: Ink Outlines
2008년 10월 21일 늦은 11시 잠깐 쉬러 나왔다..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책상이 넓으면 넓을수록, 한눈 안에 들어올 물건의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효율적이다. 그만큼 더 풍부한 자료와 접한다는 뜻이고 흥미와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시험은 찾아오고, 나는 내 책상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면서 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이 상반된 감정의 활동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마치 수백 개의 버튼과 레버와 스틱이 설치되어 있는 파일럿의 조종칸에 처음 탑승했을 때의 설렘과 같은 기분을 책상 위에서 간직한 채 지식을 찾아 비행기를 띄우듯 말이다. 

1 더 넓은 시야와 더 풍부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
  나는 수업시간에 나누어준 리딩 자료나 PPT, 교수님의 말씀 그리고 나의 필기만 가지고 공부해서는 그 과목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못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조금 더 많이 자료를 찾아보려고 한다. 때로는 수업 시간에는 언급을 하지 않은 자료를 읽어봄으로써 이미 언급한 중요한 몇 가지 사실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데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이는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와 비슷하다.
  브라우저의 여러 탭을 열 수 있는 기능은 참 편리하다. 이를 통해 내가 공부를 하는 시간 동안 항상 켜놓는 사이트는 구글과 위키피디아다. 리딩 자료나 PPT를 보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나 용어를 검색창에 입력하여 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으면 잘 이해가 안 되도록 설명해 놓은 수업 자료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훨씬 높은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맞는지를 새로운 자료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대조하고 검사함으로써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현재 진행상황을 알게 해주는 프랭클린 플래너 데일리 속지
  하루의 공부할 범위를 여러 개의 작은 task로 나누어 하루의 업무 리스트에 적어놓은 다음 30분에서 1시간 단위의 하나의 공부 task를 끝낼 때마다 체크를 하면 성취감도 높아지고 현재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알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내일과 모레의 속지에도 이와 같은 자세한 task를 기록해 놓으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했다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나침반 마크에서도 알 수 있듯 시스템 다이어리는 사람을 한 방향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감독당하거나 까칠한 선임을 위에 두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철저한 방향 설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하는 나에게는 시스템 다이어리가 참 좋다.

3 리딩 자료 / PPT
  자료는 최대한 많이 꺼내놓는다. 특정 항목에 대해 공부할 때마다 관련된 자료는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놓아 여러 개로 펼쳐 보아야 한다. 특히 주교재를 집에서 알아서 읽어오게 하고 수업 시간에는 PPT로 계속 나가는 수업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이 두 가지 수업자료를 같이 대조해 보면서 공부하는 방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4 쓰면서 공부하기 위한 메모장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 중에 혈액형 별 추천하는 공부방법이라는 내용의 작은 잡지의 한토막이 있었다. A형인 나에게는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데, 실제로 나에게 이게 효과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어차피 실제 시험은 쓰는 시험이지 말하거나 듣거나 읽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면서 공부하기는 가장 실제 시험과 비슷한 형태의 경험이다.
  따라서 나는 리딩 자료나 PPT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읽은 것들을 이곳에 조직하여 풀어 써본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시간을 최대화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머릿속의 내용을 글로 단순히 옮겨 적는 프로세스는 최소화하여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은 항목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한다. 메모장으로는 이면지가 참 좋다.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도통 생각이 잘 나지 않는 이면지를 아무 생각없이 버리지 말고 이런 일에 활용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5 필기 공책
  나는 필기 공책은 따로 만들지 않는 편이고, 리딩 자료나 PPT의 여백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넣는 편이다. 관련된 내용은 한자리에 모아 놓아야 한다는 나의 원칙 때문에 굳이 같은 항목에 관한 설명을 두 가지의 틀에 나누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필기 공책 위에 있는 망나뇽은 삭막한 책상 위를 귀엽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오늘은 정외과 교수님 방 서재에서 버락 오바마의 플라스틱 인형을 봤는데 무지 탐나더라. 미국에서 지금 엄청난 인기라고 한다.

6 다양한 색깔 펜
  여러 가지 색의 펜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이렇게 나의 공간인 집에서 여유롭게 물건들을 펼쳐놓는 경우밖에 없다. 1시간짜리 수업을 듣는 와중에 다양한 색깔 펜까지 꺼내놓기란 가능은 하지만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차라리 검정 펜만 가지고 줄기차게 필기를 해대는 것이 한가롭게 펜 색깔을 바꾸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여유롭게 공부할 때에는 다양한 색깔 펜을 이용해서 많이 밑줄을 쳐보고 다이어그램도 그려보면서 이미 있는 자료의 조직에 힘을 쏟는다.

7 우유
  한달 전부터 나는 밤에 공부할 때마다 우유를 한 컵 마신다. 우유 안의 세로토닌 성분이 숙면을 촉진시켜 밤늦게까지 피말리며 공부를 해도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잡생각 없이 바로 노곤함을 느끼게 해주고 숙면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해준다.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스니커즈나 콜라보다는 몸에 좋은 우유가 백배 좋다. 아! 나는 우유는 냉장고에서 꺼내서 바로 마시지 않고 책상 위에 15분 정도 올려놓았다가 적당한 온도(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기에 적합한 물의 온도 정도)가 되면 컵에 따라 마신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하도 많이 쳐봤기 때문에 (이번이 무려 7번째이고 과목 수로 따지면 지금까지 나는 35개 정도의 시험을 쳤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는 법이 무엇인지 나만의 방도를 어느 정도 뚫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학점이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성취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면접을 통해 들어오는 인턴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지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 혼자서 이렇게 판을 벌리는 일 말고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휘젓고 돌아다니는 일을 이제부터 하나씩 생각하고 연구해 볼 때가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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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공부만 하거나 어떤 단조로운 일의 반복에 갇혀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응, 나 요즘 그냥 쉬면서 학교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지.' '외국어 자격증은 조만간 딸 계획이야.' 주변에도 재미없게 수동적인 입장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말이 별로 없고 화제가 나와도 재미가 없다. 나 또한 가만히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허접해진다. 대학교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면 화제를 만드는 사람과 화제를 전해듣고 반응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앞서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화제를 꺼내놓았을 경우에만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자기가 속한 써킷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침묵과 심심함만이 남아 자신을 감싸돌아도 그것은 자기의 안위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재미없는 사람, 기계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채로 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할말이 많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다채롭고 변화가 많다는 증거다. 수다스러운 성격은 단순히 그 사람이 지능이 뛰어나 백과사전이나 뉴스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연세춘추나 패밀리가 떴다에 나오는 모든 정보와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해박하게 알아놓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 속을 건드리는 주변 사람과 사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험 하나를 봐도 무표정한 상태로 단시간에 다 풀고 나온 사람과 이 과목을 위해 자기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기억의 단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고 힘들게 풀고 나서 그동안의 경험을 마구마구 쏟아낼 수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재미있는 사람인지는 굳이 알아볼 필요가 없다. 성적은 앞의 사람이 더 뛰어나겠지만, 할말이 많고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대개 뒤의 사람이다.
 
  여기서 말한 뒤의 사람은 앞의 사람이 갖지 못한 경험을 훨씬 더 풍부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웃고 즐거워하고 조롱하고 감탄할 만한 경험들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 이상한 외국인을 만나 한바탕 곤혹을 치른 일,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주다가 실수를 했는데 결국 예쁘게 봐주었다는 하루의 사건, 소개팅 자리에서 선보인 비장의 특기, 전공과목 교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 중 학생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웃긴 대목 등등,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을 그들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섭취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풀어 내놓아 주었을 때 즐거움을 주는 이러한 경험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에 관련된 사소한 일의 집합일 경우가 많다.

  화제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살면서 사람 몇 명이 같이 모인 자리에 놓였을 때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장기적인 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 인생에서 적군에 대비해 실탄 몇십 발과 수류탄 몇 개 정도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이스카우트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삶에 임하라는 뜻이었는데, 준비할 것들 중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이다. 나는 꾸준히 단순한 써킷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고 이러한 경험을 찾으러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인가? 아니면 혼자만이 누리는 수동적인 일상에 만족하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이 고민은 내가 살면서도 진정 살아있는가 아닌가에 관한 고민으로 확장하여 생각해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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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블로그를 못한 원인은 이중전공에 따른 부담과 동아리의 정기공연 준비 이 두 가지에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의 무서움을 파악하고 소문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괴력을 절실히 느낀 어떤 한 사건 때문에 나는 내 모습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조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주 직설적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공대와 사과대를 넘나드는 첫 학기의 첫 시험 준비는 어느 정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맨 처음 과목은 조금 망치긴 했지만 앞으로의 학기를 어떻게 버텨야 되나 하는 거대한 절망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공부법을 연마하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특히 이번에 언어와 수학을 병행해 가는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 할 게 훨씬 많아졌다. 그동안 쪼들리는 일정에 블로그 주제는 머리 안에 있었지만 늦은 하루의 피로감 때문에 그것을 포스팅으로 옮길 힘조차 없었는데, 오늘 아침은 참 개운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포스팅하기 좋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주의를 기울여왔던 주제는 새로운 정보다. 이는 기존의 내가 배워놓은 지식을 보존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오늘 당장 내 눈 앞에 새로 펼쳐진 정보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정보는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교수의 말 한마디를 필기로 옮겨 적으면서 빛을 발한다. 새로운 A라는 정보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가장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은 지금 이 정보를 저장할 때 아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책의 몇 페이지에서 이 정보를 발견했는가를 생각해보고 그 페이지를 스크린샷처럼 기억하는 방법, 이 정보가 툭 튀어나올 당시의 나의 심정이라던가 주변 사람들의 대화하는 상황 등을 연계시켜 함께 기억하는 방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에는 글귀를 있는 그대로 단지 글의 형태로만 머리에 저장하곤 했는데, 이는 어렸을 적의 성경구절 암송처럼 10-20회의 반복적인 읽기를 통한 암기에만 적합한 방법이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가 정보를 얻기 위한 소스가 글, 그림, 하이퍼텍스트 문서, 동영상, 친구나 다른 어른들의 말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특정 정보 A를 아주 독특하게 기억하기 쉬워졌다는 사실이다. 눈과 뇌만 가지고 글을 읽어 정보를 달달 외우는 것과, 여러 감각기관이 모두 열심히 가동하여 똑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이 정보가 내 안에 저장된 이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일이다. 정보를 처음에 받아들일 때 그 정보가 완전한지 혹은 올바른지에 대해 의심을 한다면 그 정보는 뒤틀리고 기억 속에서 쳇, 하며 빠져나간다. 슬롯머신의 빙빙 돌아가는 그림들처럼 어떤 형태를 취할지가 불안한 정보가 차분히 굳어진 프레스코화와 같이 뇌에 저장되도록 처음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온 정신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 정보가 나에게 온전히 들어올 수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다른 정보와 아무런 의미 없는 연결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러한 쓸데없는 연결관계를 처음 정보를 접하는 순간에 떠올리기를 삼가할 필요가 막대하다. 예를 들어 막스 베르트하이머라는 심리학자가 가현운동의 원리를 처음 제시했다는 지식을 처음 접할 때에는, 1920년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쓸데없이 떠올리면 안된다. 농담이나 유머를 위해서는 이러한 경우처럼 정연한 논리를 비틀지만, 공부를 할 때에는 진지하게 정연한 논리를 천천히 따져가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은 서로 관련이 있다. 정보를 특수한 모습으로 가공해 놓으면 그 A라는 정보는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저장해 놓은 수백만 개의 단편적인 정보와 아무런 혼란을 빚지 않게 되어 불변하는 분명한 지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관련된 두 가지 원칙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방법과 원칙은 능력의 필수적인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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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날개를 펼고 무의식에 숨은 욕망에 따라 무한한 상상으로 빠져드는 것은 좋지만, 그중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인상과 성격을 흐릿하게 바래게 하는 자신에 관한 공상은 경계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우선적으로 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내가 스스로 쓸데 없는 생각으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좋은 해결책 중 하나는 언제나 초연한 표정으로 사람의 감정을 흥분시키는 여러 행동을 수행하는 일이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오른 나의 공상이 행동과 어우러진다면 몇 분 뒤에 부끄러움이 찾아오지만, 행동의 온전함을 유지하되 함부로 기대감이나 떠벌리는 마음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수치심이 아닌 자긍심만을 남기면서 타인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다. 

극단을 달리는 일은 타인과 나 사이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신중히 진행하고, 그 이외의 모든 때에는 나는 언제나 잔잔한 파도 위에 커다란 고래가 헤엄치듯 상상과 감정의 기복을 평온하게 유지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속적인 촉매가 될 테니..

2008. 9. 21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쓴 글
 


 말도 안되는 상상 하면서 혼자 즐거워해 본적이 있는가요. 아무 생각 없이 즐길 때에는 좋지요.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반응해 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을 마리오네트처럼 가지고 놀면 그때는 재미있겠지요. 하지만 혼자만의 머릿속 소극장에서의 유희가 끝난 다음에는 당신에게는 허락 없이 그 사람의 마음을 비록 허상이라 할지라도 농락했다는 죄책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공상에 따른 벌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함부로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간파하고 예상하지 마세요. 그 사람을 함부로 멋지고 예쁜 다른 사람에 빗대어 생각하지 마세요. 함부로 자신을 들뜨게 하는 멘트를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고 있다는 상상을 하지 마세요. 함부로 상상 속의 나를 그 사람 앞에서 실제 모습보다 근사하게 부풀리지 마세요. 함부로 자신이 긴 시간 동안 그 사람을 쉴 새 없이 즐겁게 해주고 오직 기쁨만을 가져다준다는 가정을 세우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평범함으로써 자긍심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당신은 지금 비록 마음에 안 드는 외모의 결점이나 성격의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습으로서 가장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면 그게 자긍심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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