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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나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인 사고방식의 오류를 안고 살아갔다. 나에게 지란지교, 관포지교, 죽마고우, 백아절현과 같은 네글자의 고사성어가 가르쳐주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정과 지혜는 21세기의 험한 사회에서 너무나도 부적합한 것처럼 보였고, 개인과 가족만이 행복하면 자신의 인생 또한 즐거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바로 지금인 줄 알았다. 즉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중간에 곁가지로 다가오는 수많은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피를 나눈 가족들과는 사뭇 다른 이들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들과 나 사이에 영원히 이어지는 끈은 없었고,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들을 대하는 나만의 특별한 자아를 가지고 그들과 대면했다.


이와 다르게 나와 나의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는 서로가 진실된 모습만을 보여준다.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와 가족들은 서로 자신들의 약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약점을 서로 감싸주는 과정에서는 상담원과 고민하는 학생 사이의 서먹함이 아닌 즐거움이 담뿍 드러난다. 또한 부시시한 머리로 함께 정겹게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보여준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어깨에 티끌 하나 앉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며 사업차 만남을 할 때의 예절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서로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는 '친교'가 우세한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나아가 이러한 친교를 바탕으로 하여 가족들은 서로의 단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칭찬하기를 즐긴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데 있어서 남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자아는 없다.


친구들 대여섯명이 모여 같이 놀러나가는 자리나 학교 선배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내가 집에서와 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남들이 최근 어떤 일을 하고 지내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직 그 만남 속에서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모임이 파할 때까지 호감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적극적으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간단한 게임의 진행을 맡아 많이 이야기한 적은 있더라도, 그러한 일은 어디까지나 평소의 나의 생활과 매우 유리된 일이었다. 적극적으로 남들을 즐겁게 해주고 남들에게 호감을 주려는 나의 노력은 근본적으로 그 바닥에 '예절'을 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가는, 쉽게 말해 그들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일인 대화(Conversation)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며 공감대를 만드는 대화는 곧 친교로 발전하는데, 친교를 만들어야만 하는 친구들 사이의 모임에서 나에게는 친교보다 예절이라는 가치가 우세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이렇게 기억했을 것이다. 적극적인 척하는 소극적인 아이, 남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려 애쓰는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자기 비판을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꽤나 피하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어디까지나 우연히 만난 사람이고 또 언젠가 우연히 떠날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이라는 '주막'에 수많은 '나그네들'이 오고 갈 것이라는 이러한 사상체계는 매우 잘못되었다. 나의 주막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가족이 아니면서도 나와 몇년씩 같이 지내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이들이 주위에 꽤 많다.


오래 되고 참된 사귐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가능하다는 뻔한 진리가 이제 눈에 선하다. 물론 가족은 친구와 다르다. 가족들에게 내가 가져다주는 물질적,정신적 혜택은 친구들이 받을 혜택과 큰 차이를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나의 성품, 특별히 대화하는 태도나 화제의 종류는 가족들이든 친구들이든 상관없이 같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친구들이 또다른 가족이고, 예절보다 친교가 우선시되는 인간관계의 폭을 더 넓힌다면 어떨까. 진실된 자아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얻는 즐거움 또한 무한으로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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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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