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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핑퐁' 을 읽고 그의 문체 중 좋은 것을 따다 쓰고 있다.
 
 
  그렇다. 나는 고상하다. 고상하니까 나에게 쉽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나는 만약 그들이 나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을 때 나 또한 웃으며 반겨줄 수 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지구의 중력과 같이 변함없는 나의 천성이다.
 
  점점 염세주의자가 되는 것만 같다. 주위 사람들이 '사교적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실상을 들추어 보면 자신을 숨기고 빈 껍데기만을 가지고 주위의 이들을 끌어들이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 사교적이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가진 사람은 남들과 하하, 호호, 웃은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뿌연 나트륨 등에 섞인 눈물을 흘릴 정도로 멜랑꼴리에 빠진다. 문경지교, 빈천지교, 단금지교, 망년지교, 관포지교... 우리보다 몇백년은 앞서 이 땅을 밟고 간 사람들은 진정으로 친구를 사귈 줄 알았는데,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인간은 언제나 혼자이다.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홀로 남은 존재 양식이 익숙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옛날 사람들 중에서도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친구라 부르는 사람들끼리 속으로 이해관계 저울질을 한 것은 아닐까.
 
  오후 수업을 들으러 등교하는 시간, 내 앞으로 나와 같은 나이의 여학생들 대여섯 명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지나간다. 키도 비슷하고, 머리 스타일도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로 똑같이 검다. 그네들은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아서 바깥에서 돌아다닐 때에도 붙어다니십니까. 하고 묻고 싶다. 나는 특별히 등하교길에 친구들과 중요하게 의논할 일이 있거나,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행복한 일을 겪고 난 후가 아니라면 대개 혼자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혼자 걷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나보다 한 살 어린 소녀들이 지나가는군. 저기에는 형들이 우르르 몰려가네. 모두들 할 말이 많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 사이로 들려온다. 나는 왜 이렇게 할 말을 아무거나 국수 뽑아내듯 뽑아내지 못할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혼자 등교하는 이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수다 떨지 않고 조용히 걷는 사람들, 그들이 정상인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다. 나를 포함한 정상인은 조용할 때와 시끄러울 때를 구분할 줄 안다. 다만 정상인에게 너희들은 너무 조용해서 탈이야 하고 소극적인 탈을 씌워버리는 이들이 나쁜 놈들이다. 시끄럽게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부류다.
 
  가끔 나는 하루 중에서 부딪치게 되는 이들 중 나와 전혀 코드가 안 맞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내 입이 콱, 하고 막혀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젠장, 뭐라고 말을 꺼내고 대화를 시작할까.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경보기를 울릴 것 같은 그 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무표정으로 서 있는데 말이다. 이럴 때엔,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느낌도 든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니가 이상한 거다
혹은
내가 이상한 건지, 니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하루 동안 나는 내가 이상한지 다른 사람이 이상한지 헷갈릴 때가 많다. 지금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나만 정상인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난 분명 맞아죽을 것이기 때문에, 또 내 친구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피를 가진 이들이 있기 때문에 과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그런 말을 내뱉기도 많이 꺼려한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오늘 두 명 정도 만난 것 같다. 내가 타인을 만났을 때 숨이 막히는 이후에는 항상 내 자신에게 못을 박는다.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하는 튼실한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자괴감이 든다.
 
 
 
 
뭐 이건 하나의 완결된 소설이 아니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2006.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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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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