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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먹으면 우울한 느낌을 가라앉힐 수 있다. 나도 오늘 조금 우울했기 때문에 초콜릿을 먹었다. 날씨는 단조로운 잿빛만으로 뒤덮여 있었고, 오히려 소리없는 바람만 옷속을 파고들어 추위가 가증스러울 뿐이다. 방안에서 창틀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류의 재즈곡을 듣고 있노라면 우울한 기분이 아늑하고 나른한 기분으로 바뀐다. 그리고 여기에 초콜릿까지 있다면 우울한 기분은 이미 저만치 물러서 있다.

  초콜릿을 잘 만든다는 나라는 하나같이 날씨가 좋지 않고 종일 우중충하다. 스위스, 독일,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모두 비나 눈이 많이 내리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다. 생각해 보아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따뜻하고 햇살이 웃음짓는 나라에서 초콜릿을 북유럽만큼 많이 만드는지 말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창밖을 보며 음침하게 퍼져나가는 백열등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들이 덥고 화창한 여름날에 나무 신을 신고 저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칵테일을 마실까? 아니다. 내 생각에는 유럽 저 북쪽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궂은 날씨 때문에 우울증에 자주 걸리고 또 그래서 쿠키나 초콜릿 등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한가지 웃긴 점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내내 여름인 열대 지방 국가에서 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의 역동적이고 빠른 비트와 몸놀림, 원시적이고 다양한 생물이 인간과 공존하여 잠시도 인간이 개인적인 센티멘탈리즘에 빠질 수 없는 그 더운 지방에서 카카오가 열린다. 나의 지식이 짧아 언제 카카오가 유럽으로 전파되어 그들의 우울함을 달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햇볕 쨍쨍한 열대 지방 사람들이 초콜릿을 유럽 사람에게 선물했다는 점은 정말로 좋은 일이다. 유럽 사람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울증의 특효약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료를 선물받았기에.

  요즘 나도 구름이 푸른 하늘을 숨막히게 할 때면 으레 초콜릿을 찾는다. 단 걸 먹고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얼굴색을 바꾼다. 우울할 때에는 이렇게 혼자 방안에서 조용히 해결하는 게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초콜릿은 우울함을 넘어선 아늑함과 나른함을 선사해 준다. 꼭 내가 고뇌하는 니체나 키에르케고르 같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2006. 3. 31.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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