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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걸 41화 中
 
  이런 대화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할까?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애들을 졸업시킨다는 사실에 압박을 받는다던지, 회사에서 짤리는 걸 두려워한다던지 하는 일을 심각한 고민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힘들게 털어놓은 것이 아니다. 이 대화는 그냥 서로가 자신의 요즘 모습을 어필할 때 나오는 대화이다. 그리고 고등학생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어필'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등학생들은 자신을 숨기려 한다. 자신이 요즘 어떤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말로 친한 친구에게만 이야기할 뿐 주위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조금 덜 친한 사람, 그러니까 예를 들어 같은 수업을 듣는데 서로 그리 친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한쪽 편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듣는 쪽이 말하는 쪽을 불편하게 한다. 즉 다른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어도 같이 수업을 하는데 안면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서로 일단 안면이 있다면 그 다음 서로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사이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지 않는가? 헌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발전 가능성의 단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뿐이다.
 
  청소년 문화는 웃기는 문화이다. 남을 웃기는 자가 곧 인기를 얻고 많은 친구(진정한 친구는 아니지만)를 곁에 둔다. 남을 웃길 때에는 대부분 이 두 가지 타입이다. 나를 마구 망가뜨리는 자학 개그를 하거나, 나의 잘난 모습만을 어필하면서 시도하는 작업형 멘트다.
 
  하지만 나는 깔깔 웃고 마는 인간관계가 아닌, 개그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어른들이 각자 진지함을 갖고 살아가듯 우리들도 진지함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서로 모였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지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유대감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고등학생 친구들 사이의 모임에서는 코믹함이 주가 될까. 나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은 진지한 상태로 돌아갈 우리들이 서로 친구들끼리 만나는 순간에만 낄낄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 사이의 항구적인 인간관계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단순히 웃고 즐기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지속적이지 않고, 재미로 만나는 친구들은 결국에는 헤어진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만날 때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소극적인 자세로 비칠 수도 있으나 어른들의 삶이 꼭 이와 같다. 일상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즐기는 삶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진정으로 즐겁고 명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덕목은 지속성이다.

200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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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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