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이 작품은 나가사키 현의 인공 콘크리트 섬인 하시마 섬(군함섬)이 가진 역사를 살펴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인구과밀에 따라 실제로 영화 ‘배틀로얄 2’와 같은 상황을 겪은 전 하시마 섬 주민들의 담담한 인터뷰를 나레이션으로 담았다. <디스토피아를 부르는 주문>은 예전에 거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제국주의라는 망령이 섬 속에 숨어들고 사람들이 그 망령을 잊어갈 때, 힘들게 그 망령을 구석구석으로부터 불러와 관객에게 선사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살면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억울함은 관객들에게 전해온다. 물론 아시아 각국의 탄광 강제징용자들의 경험도 듣고 싶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굉장히 일본인 프로듀서 특유의 느낌을 살리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자료를 만들어냈다. 영상은 일반인, 특히 외국인이 쉽게 갈 수 없는 폐허의 인공섬이 실제로 40여년이 흐른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초고화질 영상을 통해 천천히 조망한다. 그리고 수시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매우 짧은 간격으로 하시마 섬의 모습을 빠르게 전환하는 정지 사진으로 보여주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음향 효과를 넣는다. 고등학생같은 앳된 목소리로 ‘차렷’, ‘멈춰’ 의 구령에 따라 150여명의 여고생들이 매스게임을 하며 ‘인구과밀’, ‘바위’ 등의 키워드를 만들어내는 영상이 중간에 들어가는 것 또한 국가의 정책에 대한 힘없는 수용과 그에 따른 좌절을 느끼게 해준다. 구령은 곧 디스토피아를 다시 이 현장으로 불러오는 주문과 같이 느껴진다.
 



 본래 섬나라인 일본이지만,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을 가두어놓은 이와 같은 섬은 그야말로 섬중의 섬이다. 그 낯섦이 주는 공포감이 상당하며, 그 공포감은 하시마 섬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섬으로 확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옆의 벽에 장식해놓은 만화 커트를 통해 상쇄된다. 일본 문화의 주요한 특징인 모에화가 귀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하시마 섬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맹목적 공포의 대상이 아닌 호기심의 섬이자 미지의 섬이 된다. 
 



 하시마 섬의 귀신은 ‘배틀로얄 2’라는 문화콘텐츠에 희석되어 그 제국주의의 본모습을 은근슬쩍 증발시킨 채 화면에 등장한다. 매스게임을 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역사적 연계성이 없는 앳된 여고생들이 아니라 이 곳이 아시아 각국의 탄광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고달픈 삶의 터전이었던 그 때의 실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면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의 수많은 유태인 박물관 내 작품들은 나치 독일과 관련된 영상물에 언제나 실존한 노인들만을 등장시키고 과거에 촬영한 흑백 혹은 컬러 비디오를 삽입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증폭시키면서 유태인의 눈으로 바라본 독일인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와 비교했을 때 일본 제국을 묘사한 이 작품은 공포감을 정죄하기 이전에 ‘어머나, 이런 신비로운 섬이 있었어?’ 하고 관객들이 먼저 호기심에 빠져들게 한다. 무자비함과 기계적인 정교함으로 인간성을 상실해도 그것이 현대 미술로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일본의 문화적 저력이 다시금 느껴진 작품이다. 만화, 영화 그리고 실제와의 경계가 모호해진 모에화된 하시마 섬에서 아시아 제국(諸國)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능동적인 상상력에 달려있고, 그 상상력이 불러내는 귀신은 분명 이 작품이 스스로 불러내는 귀신보다는 진중하고 무서울 것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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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출처: OhMyNews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행동하고, 바로 옆 화면의 어린이들과 비교해도 하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시간이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동네는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정착하며 살던 곳이고, 그 때 어린이였던 작가는 그 기억을 현재에 그대로 가져오고자 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귀신이다. 자신이 존재하고 싶은 곳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현재의 사람이 있는 곳에 머문다. 따라서 <궤도상의 재연>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귀신, 간첩, 할머니’의 ‘귀신’에 해당하며 주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현실의 복잡한 고려사항으로부터 탈피한 자유롭고 순수한 귀신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어른들은 사회인으로서 가지는 조직과 직책, 예의범절과 지위 고하,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는 복장과 화장을 버린 채 아무 물건도 위치하지 않는 검은 공간에 빙 둘러앉아 장난을 친다. 표정은 시종일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는 표정이다. 바로 옆 화면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아이들의 혼이 어른들에게 그대로 주입되는 느낌이다. 그 동일해진 혼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이 두 집단이 입고 있는 옷이다. 모두들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탈의하고 있는데 이는 보통 어른들의 모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다고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은 어느새 어른들을 신들린 미친 존재들이 아닌 자연스러운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바로 옆에 비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뛰어놀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자의 배변 훈련이다. 두 살짜리 아기에게 부모가 하는 일을 영상에서는 주위의 친구들이 하고 있다. 남자는 처음에는 한사코 거부하지만 결국 천진난만하게 주위의 남자와 여자 친구들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배변 훈련에 성공한다. 둘째는 여자의 월경이다. 생리혈을 떨어뜨리는 나이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접어들 때지만, 영상 속의 여자는 정신적 성숙이 요구된다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신체가 조숙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배변하는 남자와 월경하는 여자를 둘러싼 친구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원없이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준다는 점이다. 마지막 활동은 베개를 놓고 두 명의 여자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몸싸움을 지켜보는 친구들은 마치 씨름 경기를 보는 관객들처럼 신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생산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다 성장한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막 피어나는 욕구를 있는 힘껏 분출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현대인 성인이라면 감히 집단생활 속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므로 영상 속 공간은 현실을 벗어난 공간이 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이 영상을 보는 관객들 역시 왼쪽 화면의 어른들과 오른쪽 화면의 아이들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자신들도 아이들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게 된다.

 부끄러운 행동을 주변인이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현대인들이 속으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경쟁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집단문화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이를 더 뼈저리게 느낄지 모른다. 비록 현실 밖의 영상 속 귀신의 활약이지만, 그 귀신은 진심어린 웃음을 되찾아주었고 집단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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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준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전 주베트남 대사관 참사관의 주간조선 인터뷰를 읽고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배워 적용할 점을 발견하여 인용해 적어본다.


"베트남 정부는 처음엔 학교 건립 사업을 반대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거였죠. 우리의 입장을 까놓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피해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는 마을을 중심으로 학교를 건립한다고 결정했지만 정작 그 대상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보도된 양민학살 마을도 당장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분명하지도 않았죠."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 마을을 방문할 일도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베트남 정부나 한국 정부 어디에서도 관련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고 찾아낼 수도 없었다. 절망이 극에 다다를 때쯤 길이 열렸다. 베트남에 거주하던 한국 유학생의 제보와 자료 제공이 결정적이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군사 및 양민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자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자료이니 참고만 하고 바로 폐기하라고 그에게 요구했다.


 한국 유학생처럼 나도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발간된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의 정부 관계자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는 정부를 도와줌과 동시에 현지에 발을 딛고 있는 나를 위한 공부이고 아프리카 전문가로 한 단계 올라서게 해주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한달 넘게 밤샘 작업을 해가며 자료를 번역하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베트남 중부지역에 피해 마을이 집중돼 있었다. 해당 지역은 한국 교민도 전혀 없는 미지의 땅이자 금단의 땅이었다. 대체로 차량 출입도 힘든 산골 오지마을이었다.

 "사업단을 이끌고 마을에 들어서면 긴장을 안 할 수 없죠. 때로는 멱살을 잡히기도 했고 때로는 방문을 중단하고 도망치듯 나온 경우도 있었죠. 베트남 정부 공무원들과 요원들의 경호를 받긴 했지만 늘 불안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방문단을 에워싸고 따라다니던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었습니다. 경계의 눈빛 정도가 아니라 살기가 도는 정도였죠. 그래도 자꾸 다가가니 조금씩 마음이 열리더군요. 어떤 마을에선 주민들과 오찬을 했는데 얘기를 나누다가 눈물의 잔을 끝없이 주고받았습니다."


 킨샤사 시내에만 있을 것이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인이 살지 않는 미지의 마을이 존재할 것이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을 관찰하고 수요를 파악해야만 기업의 발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마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철저히 외부인의 자격으로 접근하다가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흰색 방호복을 뒤집어쓴 의사들에게 경계심을 갖듯 나에게도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 같은 도시 시민으로서 만나자는 태도로 다가가면 나에게도 현지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 2014년 10월 4일 황금연휴 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세계적인 축제, 전국 단위 축제, 지역 단위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야외에서 열렸는데, 이 아프리카 도시에서도 분명 그러한 행사가 있을 것이다. 그럼 같이 오찬도 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비교군과 통제군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나는 CIS/중동/아세안/남미 중 한 지역에 진출해 생활하는 외교관/무역관/주재원들의 경험담을 듣고 이를 아프리카 지역에 적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 기후와 언어와 문화 차이가 있을 뿐 외국인으로서 생활에 임하는 자세나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원칙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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