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에 사람의 심리는 예외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익숙한 동네 앞 술집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나의 마음과 듣도보도 못한 도시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의 부름에 달려나갔을 때 내 마음이 편한 정도는 매우 다르다. 그런데 마음이 편한 정도는 사람이 다양한 화제를 꺼내고 풍부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데이트를 할 때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나 직장 상사들과 회식을 할 때나 어느 종류의 만남이든 만남의 성격은 사람 개인이 환경의 영향을 받은 심리와 그에 따른 대화의 폭에 따라 결정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만나는가, 즉 시간의 요소는 만남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대화를 하는 사람이 만남에 참여할 시간이 넉넉한가 촉박한가, 압축적인가 지루한가, 낮인가 밤인가 등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남녀가 데이트를 주제로 만났는데 둘 다 1시간 뒤에 각각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예정해 놓았다면 둘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정보교환 정도에 그칠 것이다. 여유로움을 잃어서 가장 달성하기 쉽고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정보교환이라는 목적에만 치중하도록 두 사람의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의지만으로는 그 마음을 쉽게 되돌릴 수 없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만나기로 예정해 놓았다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해져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카페나 레스토랑이나 술집에서 만나는가, 관광지나 공원이나 강변에서 같이 있는가 등의 장소의 요소는 시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만남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고, 그만큼 장소를 제안한 사람이 적절한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책임도 높아진다. 시간은 만남 외의 개인들의 일정에 제약을 받지만 장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같이 모여서 어떤 특정한 활동을 하는지를 장소가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장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놀이공원에 가면 서로가 즐겁게 놀면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이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고백장소로 가면 고백이 목적이 된다. 언제나 만남을 제안한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할지를 먼저 생각해 본 다음 그 이야기를 늘어놓을 심리적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장소를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전혀 종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감정을 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접대문화, 다도, 모임공간과 같은 인공물이 등장하여 환경을 제어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받아온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경의 요소를 만남의 목적과 사람들이 할 이야기와 행동을 예견하여 설정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실패했을 경우 관계의 증진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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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요약하자면 '완벽주의자는 매력이 없으니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어라' 라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언제나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대로 당연한 사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생각의 틀을 만들기 위해 개념을 세분화하고 예시를 드는 작업을 해 보고자 한다. 

  1학년 때부터 대학 생활을 하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중에서 남들이 와서 자극할 거리를 항상 적당히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심을 받는 그들은 꼭 연예인처럼 예쁘고 잘생기지 않아도, 단체의 회장 같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인간적 매력을 느끼고 다가섰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을 할 때 실수로 컨닝 페이퍼를 떨어뜨리거나 주목받을 만한 웃긴 소품을 입거나 머리에 쓰고 나왔다. 시간에 딱 맞춰서 다른 약속 장소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사람들 앞에서 땀을 흘렸다. 이처럼 그들은 완벽주의자가 아니었고 실수를 겉으로 드러내었으며,또한 자신의 특성에 따라 파생되는 단점을 자신 내부의 장점이나 주변의 분위기, 인과관계 등과 결합시켜 보여줌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관심은 관심의 대상과 소통하면서 자라난다. 여기서 소통이란 말을 걸고 대답을 받기, 만지기, 물질적/비물질적 도움을 제공하기 등의 방법을 통한 긍정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소통의 의도는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어떤 의도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대상이 부족하면 괜히 건들거나 채워주거나 감싸주고 싶은 욕망' 과 관련되어 있는 의도라면 그 소통은 관심을 올려주는 원인이 된다. 즉 눈앞에 보이는 저 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저 사람을 칭찬하고 싶든, 저 사람을 놀리거나 곯려주고 싶든 상관없이 저 사람에 대한 관심은 마음 속에서 자라난다. 나는 관심을 긍정적 상호작용과 연관된 관심으로 한정하여 관심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경우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험담하거나 추방하는 인간 사회의 여러 가지 파괴 양상)는 논의에서 제외한다.

  완벽하면 다가가서 자극할 거리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사람이 언제나 위에서 말한 양상으로 불행을 당하지는 않는다) 관심을 받으려면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이 와서 자극해줄 거리를 만들어 놓는 방법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에 따라 자극할 거리가 만들어지는데, 의도적으로라도 자극해줄 거리를 만드는 작업 역시 꽤나 중요하다. 연기자 이순재 선생님이 M25 인터뷰에서 하신 말처럼 '완벽한 사람은 불완전하여 주변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요소 하나하나도 치밀하게 준비함으로써 한번 더 완벽'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관심을 내심 바라는 사람 앞에서는 결점을 보이고, 관심을 사양하는 사람 앞에서는 완벽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관심을 내심 바라는 사람은 같을 수 있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관심을 사양하는 사람은 조금 다르다. 사람은 싫어하면 안 된다. 단지 그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이다. 사람이 완벽하면 상대방은 흥미를 잃고 떠나버린다.

  자극할 거리란 모두 부족, 손상 그리고 이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악기를 연주할 때의 서투름, 구두를 신어 아픈 뒤꿈치, 풀어진 신발끈은 이 세 가지에 각각 대응된다. 하지만 자극할 거리들 중에는 남들에게 좋게 보이는 것과 나쁘게 보이는 것으로 나뉜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제 사회 속에서도 경험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 경험도 해본 우리들은 지금도 수백 가지의 자극할 거리를 관찰하고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분류하고 학습하려는 노력은 꽤나 낯선 일일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조차도 낯선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분류와 학습을 통해서 조금 더 내면의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예시를 들어 자극할 거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시라고 다시 말씀드린다.

(예시는 대부분이 관심을 주는 사람이 항상 남자, 자극할 거리를 주는 사람이 항상 여자인 경우임에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반대의 경우도 제 머리 바깥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지요? 여자분께 부탁을 해 봐야겠네요. 저는 남자라 아무래도 생각이 잘 안 나요ㅠㅠ)

좋게 보이는 자극할 거리
왜 좋게 보이는가? 다음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합의 대상 // 자극할 거리 // 상호작용

① 장점 (항시 긍정적인 매력)
- 예쁜 여자에게 남자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데, 곡을 처음 치는 손이 서투르다. 여자는 눈을 흘기며 웃으면서 좀 더 천천히 쳐 보자고 한다. 남자는 조금 더 열성적으로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② 분위기/당시 상황
- 같이 MT에 가게 된 동아리. 한 차에 탈 수 없어 세 조로 나누어 탔다. 두 조는 숙소로 안전하게 들어갔으나 한 조의 한 여자는 기차역에 내려 계속 헤매고 있다. 여자와 전화 통화를 한 남자는 당장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숙소 관리하는 아저씨를 불러 승용차를 타고 역으로 달려갔다.
-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동아리의 공연장. 앵콜곡을 할 때 색소폰을 부는 형이 평소의 진지한 모습을 버리고 막 고개를 위로 아래로 젖히면서 스케일을 3옥타브씩 왔다갔다 하면서 삑사리도 마구 냈다. 관중들은 그래도 재밌다며 더 흥분하며 박수를 쳤다. 

③ 인과관계
- 남자와 여자가 남자의 소개로 동대문으로 쇼핑을 나가게 되었는데, 남자가 그만 제일평화시장의 위치를 까먹어 동대문 근처에서 20분을 헤맸다. 여자는 간만에 하이힐을 신고 나왔는데 남자의 미스로 뒤꿈치가 까지게 되었다. 여자는 투덜대지 않았지만 남자는 괜찮아? 하며 조용히 편의점에서 카페라떼 두 개를 사온다. (여자가 투덜댔다면 여자에게 좋을 게 없겠지요?)
- (드라마의 고전) 폐차장에 납치당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폭력배들과 싸운 남자, 남자의 얼굴에 난 보기 흉한 상처를 여자가 조용히 어루만져 준다.
- 공간이 협소하여 제대로 잘 수 없었던 MT 다음날 평소에는 멀쩡하던 여자애가 갑자기 머리를 마녀같이 하고 '나 배고프다' 라며 다가온다. 그를 본 남자는 겉으로 키키키 웃으면서도 그래, 하며 가스레인지로 걸어간다. (원인: 1. 머리가 마녀처럼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 있었다 2. 여자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작은 칵테일 바에서 남자에게 고민과 어려운 점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계속 마치 이것이 웃긴 이야기인 것처럼 신나게 떠들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술이 취했는지 테이블에 고개를 묻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는 조용히 여자에게 다가와 어루만져 준다.


나쁘게 보이는 자극할 거리
왜 나쁘게 보이는가? 다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① 능력
-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서투르게 친다

② 상황
- 본 공연에서 친구가 자기 솔로를 할 타이밍을 놓쳤다 / 가사를 까먹었다

③ 항시 부정적인 특성
- 상대방이 보고 듣고 느끼기에 항상 불쾌한 모습/행동을 보여주었다 (욕 등)
- 소심한 행동 때문에 자극할 거리를 보여준 사람이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우리는 여기서 '좋게 보이는 자극할 거리'에 주목하여 이것을 나 스스로 적절하게 만들어내는 능력과 센스를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심을 받는 입장에만 머무르지 말고 주변 사람들이 이러한 자극할 거리를 가지고 있으면 적극적으로 응답하여 자극해 주어 관심을 주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긍정적 상호작용이 오가는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인연을 만들어가기 위한 널리 퍼진 요소라 할 수 있다.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채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그 사람을 감싸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커간다. 완벽하지 않은 보통의 인간으로서 완벽하지 않음에 감사해야 한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남을 건드리면서 생기는 관심은 그 사람에게 칭찬과 인기를 가져다줄 수 있고, 그 사람을 나의 애인으로 만들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자극할 거리를 만들어 내놓으면 내가 관심을 받고 그에 따른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비물질적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극할 거리'는 분명 젊은 우리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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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함은 분명 매력이다. 얼마 전에 봤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새롭게 떠오른 강인-이윤지 커플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커플티를 사러 간 곳의 일본 관광객에게 '슈퍼주니어!! 도호신기 말고' 라며 답답해하는 강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본어로 관광객에게 사뿐히 알려준 이윤지에게 강인이 반해버린 모습은 시청자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상수역이면 여기서 대림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면 돼, 라고 가는 길을 바로 찾는 이윤지에게 강인은 '아 우리 똑똑이' 하며 좋아했더랬다. 이날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이윤지의 모습은 분명 TV토론이나 수업 시간 질문, 혹은 상대방과 경쟁하는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드러나는 그러한 지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똑똑하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인간적인 유대를 매개로 표출하고 전달하였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아무런 꾸밈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면 사회와의 관계에서 실패한다. 이 글은 똑똑함을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든든한 밥이 될 수도 무시무시한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아무런 꾸밈이 없다는 것은 지성인으로서 주장이나 의견 표명을 하였을 때에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냉소적인 태도나 비난하는 어조 등이 있는 그대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커다란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보통 자신이 말하는 상대와 같은 높이에 서려 하지 않고 그 사람보다 우월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을 때, 혹은 대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이러한 직접적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TV 토크 쇼나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강연 등에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등의 CEO들은 분명 똑똑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혹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만둔) 천재들이라 할 수 있지만, TV 시청자들에게 그들은 한없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싶은 아저씨들이다. 내가 시덥잖은 질문을 하나 해도 내가 그 질문에 대해 받고자 속으로 원했던 답변들을 위트를 섞어 술술 풀어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다. 이 분들은 똑똑한 사람의 얼굴을 인간성이나 유머로 꾸미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대중의 환영을 받으면서도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딱 스타일 멋지고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그 자신은 그리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만난 동성 친구에 대해 "걔는 참 똑똑한 친구야He is quite a smart guy" 라고 말했을 때 그 smart guy의 이미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똑똑함을 지성이 아닌 인간적 매력으로 표출한 사람'의 이미지이다. 여기서 smart guy를 소개한 남자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바람직하게 똑똑한 사람은 자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똑똑한 모습을 내보이면서도 자신은 주변 사람들과 같은 물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 교만한지 겸손한지를 따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한 마디라도 더 많이 하려고 끊임없이 궁리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학원에서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요즘 아이들이 내심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나도 그리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 때보다 훨씬 지독한 경마장 체제 안에서 좀비마냥 무덤덤함과 한편으로는 노련한 머리놀림으로 아웅다웅하는 아이들이 과연 똑똑한 매력에 대해 관심은 가지고나 있을까. 난 똑똑하고 문제 잘 풀고 듣고 읽는 문장은 바로 이해하고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빨리 제시해줄 수 있어, 그래서 나는 그동안 상도 많이 탔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 웬만한 인맥도 있어, 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단지 그러한 지적 능력 즉 '지성'에만 가치를 둔 채 똑똑함의 표현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똑똑함의 적용에 대한 가치는 간과할까 걱정이 된다. 푸석푸석한 컬러 톤으로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며 책가방은 쓸데없이 무겁고 뒤에서 씨나락 까는 말투만 간혹 툭툭 던지는 무서운 아이들이라도 누구에게나 공인된 그들의 똑똑한 내면은 매력있게 가꾸는 법을 한 번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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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 [見物生心]
[명사] 어떠한 실물을 보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김.
측은지심 [惻隱之心]
[명사]사단(四端)의 하나. 불쌍히 여겨 언짢아하는 마음을 이른다. ≒측심(惻心).

  사람의 마음을 사고 싶을 때 그 사람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고,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고, 예쁜 문자를 보내거나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러한 모든 행동은 견물생심에서 우러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을 가지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멋진 모습과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견물생심이 발동하면 치근덕거리는 멘트를 날리게 되거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녀/그는 이것을 좋아하겠지, 하며 거대한 부질없는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다. 이는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에만 잠시 끓어오르는 미숙한 애정이며 금방 싫증이 나게 되는 근성이다. 

  하지만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고자 한다면 달라진다. 상대방의 곁에서 항상 보살펴주고 언제나 지금과 같이 다정하게 있도록 신경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특별히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솔직한 말들을 많이 주고받으며 탄탄한 베이스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며 상대방을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앞에 서서 무언가 개인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느낌은 받지 않으며 평소에는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나는 그 사람을 가지려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있어 나는 그 사람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지난 1년간 나는 견물생심으로 앞에 섰는가, 측은지심으로 앞에 섰는가? 반성을 깊게 해야 하는 문제이다.


보너스 - 내가 좋아하는 효주누님 (대한항공 CF에서의 그 모습이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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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I T M U S
중간중간 툭 던지는 시험 질문

  이성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내 사람인가 아닌가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말이 막히는 첫 만남에도, 사귀기 시작한 다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남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성격은 같아도 반대여도 상관없지만 그 사람과 공유하는 지식과 취향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그래야 같이 놀러갈 곳이 생기고 밤 늦게까지 함께할 맛집과 술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취향을 강제하고 여자가 그것을 아무런 불만이나 무반응 없이 수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남녀 평등의 관계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5~10개 정도의 시험 질문을 마음 속에 항상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알아보고 관계의 방향타를 잡아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이 정해놓은 나름의 몇가지 기준을 통과해야지 내 여자, 내 남자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무슨 소고기 검역 하듯 엄격한 과학적 기술을 동원하여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가차없이 내치는 그러한 모습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더 주어도 내가 일방적으로 손해보는 일 없이 둘 다 승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험을 쓰는 사람은 참 냉정하다. 하지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자신이 정한 몇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질문을 '리트머스 질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트머스 종이 열 장을 입 안에 품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하나씩 건네주는 것이다. 그리고 반응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한다.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편안하게 늘상 나오는 화제와 연관된 질문이어야 한다 - 음식, 취미, 습관 등등
 급작스런 질문의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위의 조건과 연결됨)
답변이 즉각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내 관용의 마지노선에 걸친 성향에 관한 질문이어야 한다 -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다름의 해결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정도로


그래서 나의 경우 리트머스 질문은 다음의 일곱 가지다.
질문은 열 개보다 적어도 되는데 많으면 안 된다. 많으면 그만큼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그 성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훨씬 줄어든다. 왼쪽의 그래프처럼 질문의 개수가 많아지면 만족하는 사람이 체증하여 줄어들 것이다.





- 술 뭐 좋아해요? 맥주/칵테일
- (민트페이퍼/라이브클럽쌤/EBS공감) 알아요?
- 음식이나 술은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MP3 파일 아티스트별로/앨범별로/태그를 정리하나요?
- 단순한 친목 도모 혹은 서로 돕는 단체가 좋아요, 아니면 경험과 인증을 쌓는 단체가 좋아요? 후자
-
집안에 있는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지내나요?
- 적어도 밤 11시까지는 신촌/홍대/대학로에 같이 있을 수 있죠?

  이 정도에서 더 많아지면 곤란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더구나 한 가지 질문에 내가 바랬던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질문에서도 자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할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각자 사는 형편이나 환경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질문은 항상 품고 있다가 상대방이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평소에 대화를 주도하는 입장에 서 있어야 하겠다. 꾸준한 연습이 아니면 이것을 실행하기 힘든 것 같다. 질문을 해놓고 상대방이 "그건 왜 물어봤어?" 하면 "응, 그냥." 해버릴 것인가?? 그렇다면 리트머스 질문은 허약한 관계에 일조하게 될 게 눈에 선하다.

  비인간적으로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의 계략은 충분히 인간관계에서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로의 승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이렇게 질문은 계속 가지고 있게 된다. 상대방도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질문을 활용하지 못하고 섣불리 관계를 진전시켜서 뒤늦은 곤란함을 깨닫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할 뿐이다. 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젊은 사람들이 모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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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욱아, 나 학생회장 나간다."
  "이야, 이제 학생회장 나와서 우리 연희관 앞에 싹 다 바꿔주는거야?"

  "요즘 나 새로 블로그 하기 시작했어. 이제는 전처럼 작심삼일 안 할거야."
  "그래 자주 놀러오마. 내가 투데이 300 만들어줄게. 아니 뭐 내가 하루에 한번만 오면 300이고 두번만 오면 1000 넘어가게 생겼네."

  "이번에 미국 갔던 미숙이가 돌아온대."
  "이야, 미숙이 서울 오면 진짜 미인 되겠다. 완전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처럼 되는 거 아니야?"

  사실 나는 이렇게 이쁜 소리를 잘 안 한다. 워낙 성격이 솔직하고 있는 사물과 상황을 최대한 겸손하게 보려 노력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보기에 허접하면 그냥 허접한 거다. 별로 그 사람을 띄워주거나 비위를 맞춰주거나 하지 않는다. 정말 뛰어난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또 정말 솔직하게 껌뻑 죽어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띄워주는 말들을 조금씩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거나 그 사람이 기대하고 꿈꾸고 있는 것들을 더 커다랗고 아름답게 상상하도록 옆에서 바람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 아이는 참 말을 이쁘게 해." 우리 누나가 나보다 이런 말들을 참 잘한다. 외향적인 누나는 교회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계속 같이 다니는 단짝 친구들 그룹이 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는 하나도 없는 듯하다.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의 그 말은 '립 서비스'다. '비행기 태워주는 말' 이라는 다른 풀이로도 사용된다. 나는 립 서비스를 '그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언급' 으로 정의하고 싶다. 지금 너와 내가 있는 이 공간, 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확신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OO이 찾아올 것이다, 라는 축복의 말이다.

  아름다움, 성공, 유명세, 재화 등등 축복을 위해 OO에 대입하는 사물과 상황과 비물질적 가치는 참 다양하다. 생각해보니 옛날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끼리 축제를 하거나 전통신앙의 의례를 통해 이러한 축복의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명절인 설날에는 꼭 빠지지 않는 '덕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20대 친구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에는 축복의 말이 예전보다 많지는 않다. 같은 마을(물리적 마을이라기보다는 모두가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상황에서 생기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무엇이든 구하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각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상상을 펼칠 수 있게끔 씨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는다면 그것보다 더한 에너지가 있을까 한다.
 
  립 서비스는 서로가 어려운 때에 더욱 큰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 이 자리에 내 손 안에 없다 해도 말을 들음으로써 구체화된 '그것'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불황기에도 영화와 뮤지컬이 그렇게 잘 풀리는 현상은 영화와 뮤지컬이 일상 속의 립 서비스, 이쁜 말들과 똑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같은 시점에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다 하나씩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고민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말들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한다. 이쁜 말이 열 마디가 모여 그 친구의 고민 열 개 중 하나라도 해소해줄 수 있다면 나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도 열심히 이쁜 말들을 하며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언어를 통한 구체화를 선물해주며 살겠다. 내가 없는 곳에서 친구들끼리 "쟤는 말을 참 이쁘게 한다" 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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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안타까웠던 점은 밴드의 음악적 성향이 프로 아티스트처럼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향을 가지고 싸운다는 점이었다. 누가 주로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분위기나 문화와 연계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는 하나의 밴드나 동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 말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다. 그래야 공연을 위한 선곡을 할 때나 같이 공연을 보러 갈 때 싸우지 않을 수가 있다. 
  
  정치적인 모델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이 언제나 타협을 하지만, 각자의 개성에 따라 연주해야 그 맛이 살아나는 음악에서는 타협을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부드러운 스탠다드 재즈 그중에서도 브러시 스틱을 사용하는 스윙, 북유럽이나 프랑스에서 나온 재즈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여자 보컬들이 부르는 모던락과 4차원 정신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락과 일렉트로니카를 혼합한 사운드 등을 특히나 좋아하는 나는 이러한 음악을 할 때 진정으로 감성이 살아난다. 지성이 아닌 감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나와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소규모로 곡을 연주하기를 좋아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동아리라는 특성에 너무나도 판단의 기준을 확실히 잡아 놓은 나머지 각자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한 민주적인 타협을 한다면 아무도 진정 원하지 않는 곡을 모두가 맥아리 없이 연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부터 동아리의 음악적 성향을 고정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배타적이고 동아리라는 취지를 완전히 뒤집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서(그래도 부정적 아마추어리즘은 갖지 않고) 활동하는 밴드나 동아리는 그래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교통정리' 혹은 '끼리끼리 모이기'가 필요하다. 즐겁고 활기차게 운영되는 밴드와 동아리는 모두 이와 같이 특정한 취향을 따르는 여러 개의 소규모 모임들의 집합체 형태를 띠고 있다. 모든 밴드나 동아리의 절반 이상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와 같이 발전해 나갈 것이지만, 처음부터 이 일을 기반으로 닦아 놓으면 처음부터 즐겁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동아리의 사람들이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았다.


  동아리의 구성원 혹은 세미나에 참가하는 사람이 20명이라고 가정하면 이와 같이 진행을 한다. 먼저 세미나를 진행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준비를 해 오라는 공지를 한다. 이에 따라 모든 신입생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즐겨 듣는, 그리고 가장 즐겨 연주하는 음악 10곡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 MP3 플레이어에 담아오는 숙제를 부여받는다. MP3 안의 음악은 다음의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 자신의 여러 가지 취향을 각각의 음악이 모두 대표해 주며 이 10곡의 음악이 반영하지 못한 취향은 없다.
  • 누구나 그럭저럭 넘길 만한 음악 4곡과 자신만이 좋아할 것만 같은 음악 6곡을 넣는다.
  •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로 정리하여 재생이 편리하게 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준비한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들을 40개 정도 추려 한 A4 용지에 매직으로 태그클라우드처럼 정리해 놓도록 한다. 이 두 가지는 세미나를 하는 날에 사용할 것이다.
  세미나 날에는 우선 대학교의 큰 강의실 하나를 빌려 놓는다. 안에는 20개의 부스를 설치해 놓는데 한 부스 당 책상을 1개만 놓는다. 각 부스에는 MP3 플레이어 하나와 헤드폰 하나, 그리고 그 MP3 안의 곡 분위기 키워드를 써놓은 종이를 놓는다. 이 MP3 플레이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일단 공개하지 않는다. 부스에는 큼지막한 번호가 붙어 있으며 이 번호는 각 신입생들이 부스에 대한 의견을 메모하는 데 참고사항으로 기록된다.

 
musicovery_controller

(사진: www.musicovery.com 이 사이트는 사용자가 플레이어에 설정한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아서 틀어준다. 청취자들의 음악 듣기 정보를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DB를 이용한다. 비록 영국 애들 꺼라 되게 낯설긴 하지만 ㅎㅎ)
  그 다음 모든 신입생들이 각각의 부스에 한 명씩 들어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 부스를 바꿀 때까지 한 부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10분으로 한다. 음악을 들을 때에는 전곡을 듣기보다는 전체적인 곡 분위기를 앞의 1분 정도만 들으면서 파악하도록 미리 주문한다. 신입생들은 각 부스에 대한 의견을 자기가 가져온 노트에 메모를 하는데, 꼭 메모장을 들고 올 필요는 없다. 단 부스 번호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 부스에서 다른 부스로 옮겨가는 것은 마치 '여우와 집' 게임의 '여우가 나간다' 처럼 무작위의 방향으로 할 수도 있고, 기계적으로 옆의 부스로 한 칸씩 옮겨 갈 수도 있다. 이는 동아리가 가지는 분위기나 성향에 따라 선택한다. 10분이 지날 때마다 앞에서 선배 회원이 공지를 하여 알려주면 부스를 옮긴다.

  여섯 번 정도 부스를 거쳐가면 1시간이 지나 있을 것이다. 총 진행 시간이 2시간을 넘기지 않고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거쳐가는 부스의 수는 10개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음악 들어보기가 끝나면 앞에서 진행자가 각 부스에 있는 MP3 플레이어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명씩 말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든 신입생들은 자신이 누구와 음악 성향이 호의적이고 누구와 적대적인지를 속으로 알아챌 수 있게 된다. 호의와 적대는 당연히 공적으로 내비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부스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같이 뒷풀이를 간다.

  대화가 주가 되는 술자리에서 '넌 무슨 음악 좋아해?' 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 질문이 생산적일 경우는 드물다. 직접 음악으로 들려주어야 그 사람의 성향이 온전히 전달되는데 술자리에서는 음악을 들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음악을 전달할 수 없고, 말의 내용이 듣는 사람의 성향과 반대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가 쉽다.

  미리 성향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놓되 그 과정이 대화가 아닌 계획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을 경우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기 때문에 모두의 기분이 좋아진다. 프로그램의 규칙에 모두가 따라주고 서로를 알아가려는 열정이 다들 충분하다면 나는 이렇게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여 동아리 내의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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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공부만 하거나 어떤 단조로운 일의 반복에 갇혀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응, 나 요즘 그냥 쉬면서 학교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지.' '외국어 자격증은 조만간 딸 계획이야.' 주변에도 재미없게 수동적인 입장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말이 별로 없고 화제가 나와도 재미가 없다. 나 또한 가만히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허접해진다. 대학교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면 화제를 만드는 사람과 화제를 전해듣고 반응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앞서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화제를 꺼내놓았을 경우에만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자기가 속한 써킷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침묵과 심심함만이 남아 자신을 감싸돌아도 그것은 자기의 안위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재미없는 사람, 기계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채로 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할말이 많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다채롭고 변화가 많다는 증거다. 수다스러운 성격은 단순히 그 사람이 지능이 뛰어나 백과사전이나 뉴스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연세춘추나 패밀리가 떴다에 나오는 모든 정보와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해박하게 알아놓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 속을 건드리는 주변 사람과 사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험 하나를 봐도 무표정한 상태로 단시간에 다 풀고 나온 사람과 이 과목을 위해 자기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기억의 단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고 힘들게 풀고 나서 그동안의 경험을 마구마구 쏟아낼 수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재미있는 사람인지는 굳이 알아볼 필요가 없다. 성적은 앞의 사람이 더 뛰어나겠지만, 할말이 많고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대개 뒤의 사람이다.
 
  여기서 말한 뒤의 사람은 앞의 사람이 갖지 못한 경험을 훨씬 더 풍부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웃고 즐거워하고 조롱하고 감탄할 만한 경험들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 이상한 외국인을 만나 한바탕 곤혹을 치른 일,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주다가 실수를 했는데 결국 예쁘게 봐주었다는 하루의 사건, 소개팅 자리에서 선보인 비장의 특기, 전공과목 교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 중 학생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웃긴 대목 등등,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을 그들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섭취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풀어 내놓아 주었을 때 즐거움을 주는 이러한 경험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에 관련된 사소한 일의 집합일 경우가 많다.

  화제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살면서 사람 몇 명이 같이 모인 자리에 놓였을 때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장기적인 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 인생에서 적군에 대비해 실탄 몇십 발과 수류탄 몇 개 정도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이스카우트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삶에 임하라는 뜻이었는데, 준비할 것들 중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화제로 전환 가능한 경험이다. 나는 꾸준히 단순한 써킷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고 이러한 경험을 찾으러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인가? 아니면 혼자만이 누리는 수동적인 일상에 만족하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이 고민은 내가 살면서도 진정 살아있는가 아닌가에 관한 고민으로 확장하여 생각해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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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날개를 펼고 무의식에 숨은 욕망에 따라 무한한 상상으로 빠져드는 것은 좋지만, 그중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인상과 성격을 흐릿하게 바래게 하는 자신에 관한 공상은 경계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우선적으로 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내가 스스로 쓸데 없는 생각으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좋은 해결책 중 하나는 언제나 초연한 표정으로 사람의 감정을 흥분시키는 여러 행동을 수행하는 일이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오른 나의 공상이 행동과 어우러진다면 몇 분 뒤에 부끄러움이 찾아오지만, 행동의 온전함을 유지하되 함부로 기대감이나 떠벌리는 마음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수치심이 아닌 자긍심만을 남기면서 타인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다. 

극단을 달리는 일은 타인과 나 사이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신중히 진행하고, 그 이외의 모든 때에는 나는 언제나 잔잔한 파도 위에 커다란 고래가 헤엄치듯 상상과 감정의 기복을 평온하게 유지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속적인 촉매가 될 테니..

2008. 9. 21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쓴 글
 


 말도 안되는 상상 하면서 혼자 즐거워해 본적이 있는가요. 아무 생각 없이 즐길 때에는 좋지요.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반응해 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을 마리오네트처럼 가지고 놀면 그때는 재미있겠지요. 하지만 혼자만의 머릿속 소극장에서의 유희가 끝난 다음에는 당신에게는 허락 없이 그 사람의 마음을 비록 허상이라 할지라도 농락했다는 죄책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공상에 따른 벌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함부로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간파하고 예상하지 마세요. 그 사람을 함부로 멋지고 예쁜 다른 사람에 빗대어 생각하지 마세요. 함부로 자신을 들뜨게 하는 멘트를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고 있다는 상상을 하지 마세요. 함부로 상상 속의 나를 그 사람 앞에서 실제 모습보다 근사하게 부풀리지 마세요. 함부로 자신이 긴 시간 동안 그 사람을 쉴 새 없이 즐겁게 해주고 오직 기쁨만을 가져다준다는 가정을 세우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평범함으로써 자긍심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당신은 지금 비록 마음에 안 드는 외모의 결점이나 성격의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습으로서 가장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면 그게 자긍심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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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점점 논쟁적인 성격을 갖도록 교육받고 있다. 그리고 비단 학문과 토론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성을 감성보다 우위에 놓기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일이 주어지면 그것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그것의 장점보다 먼저 보게끔 유도당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점점 똑똑한 사람을 요구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갖가지 논쟁적인 설(說)들을 늘어놓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라며 그러한 논쟁이 활성화되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나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며 즐거움을 먼저 찾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에 더 익숙해진 21세기의 젊은이 중 하나다.

 나도 그리 좋은 성품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대학교 사람들은 특히나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따지거나 불평부터 먼저 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 아침 혹은 어제 나에게 있었던 일에 대한 회상이다.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자기의 어제 일에 대해 늘어놓는다. 자기가 그 일을 통해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그 사람은 자기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위주로 설명을 한다. 어제 보았던 영화는 별로였어, 어제 수업을 듣는데 너무 지루했어, 그 조교/고학번/복학생은 왜 그리 말이 많니? 우리 교수님 완전 미쳤어. 과제 왕창 내줘. 그래서 지금 피곤해. 아 지금 돈 없어 밥도 아껴 먹어야 돼. 등등의 많은 말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실없는 웃음을 지어보며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이 논쟁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만을 느꼈던 그 일 속에 수많은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눈앞에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사람이 마냥 즐겁고,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운 말만 해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연예인이고 정치인이지 현실 세계의 대학생이 아니다. 삶에는 당연히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공존하며, 밝은 면을 어두운 면보다 더 많게 끊임없이 비율을 조절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하지만 논쟁적인 성격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에서조차 부정적인 상황을 강조하고, 우리 앞에 창조해 놓은 성을 주먹으로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삶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쟁은 토론 시간에만 하고, 논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성의 힘은 수업 시간에만 발휘하도록 평소에는 잠재적으로 감추어 두어라. 평소에 그 이성과 논리를 써먹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머리가 부식되지는 않는다.

 평소에 대화를 할 때에는 즐거운 면을 먼저 보고, 나의 기쁜 마음을 먼저 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이러한 자세는 수많은 경구 중 하나인 'Look on the bright side.'의 실천 원칙이다. 그리고 밝은 면을 먼저 보기 위해서는 평소에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지, 요즘 내가 즐겨듣고 있는 음악과 즐기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어제에 있었던 끝내주는 경험은 무엇이고 그것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등의 감정적이고,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말들을 주로 하면서 웃으며 살아야 하겠다. 무표정 혹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한 뒤 논리적인 불평을 곧잘 유창하게 시작하는 인간상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이다. 물론 나 또한 논쟁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조금 더 감정을 앞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성을 감정보다 앞세운 사람으로는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ㅠㅠㅠ 이제는 안 그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 실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밝은 면이 샘솟을 수 있는 곳을 빨리 찾고 빨리 그곳으로 떠나 정착하자. 그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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