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뉴스가 두 개 나왔습니다.

[1]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장관 한국 제외하고 일본, 중국, 몽골 방문
http://headlines.yahoo.co.jp/hl?a=20140330-00000018-rcdc-cn
헤 이글의 중국 첫 방문이고, 한국은 헤이글 장관이 2013년 9월 29일 방문했기 때문에 방문하지 않는다 합니다. 불과 6개월 전이라구요? 아니죠. 6개월 동안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에게 오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미국에게 '우리 안올게'라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여기 댓글 보면 화가 난다기보다는 진짜 한국이 약소국 아닌가 하면서 우울해집니다.)

[2] 조선과 일본, 1년 4개월만에 정부간 공식 협상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3/30/0503000000AKR20140330031852083.HTML?template=2087
오늘 (30일) 중국에서 진행된 협상으로 2차 협상은 내일(31) 주중일본대사관에서 진행됩니다.
양측 수석대표는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 vs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입니다.

[3] 北, 박근혜 드레스덴 연설에 "낯간지러운 수작"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5854

한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얘기하고 있을 때 주변국은 이렇게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을 때, 국민들의 관심이 다른 데 쏠려 있을 때 말이죠.

통일 이슈에 대해 지금 뚜렷한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지지 의사가 보입니까?
미국은 미국 주도의 한미일 삼각 공조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고,
한 국은 일본의 북한 대상 경제지원을 허가하면서 중간에 협상 대상자로 끼어들어 남북일의 협력구도를 만드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그저 한국 주도의 통일 이야기만 하면서 '남북이 주변국 신경 안 쓰고 화합하는' 담론만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일본의 지지의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통일 과정에서 일본의 참여를 원하지 않을지 몰라도, 북한은 원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은 한국이 북한붕괴론을 근거로 통일대박론을 만들었다며 근거가 빈약하고 '그건 너희 나라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만든 결론이야. 우리가 보기에는 말도 안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40330.99002041529) 중국의 순망치한 개념은 아직도 남아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 주도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얻은 것은 있어도 (참고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3/27/0601080100AKR20140327003100071.HTML) 한국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미국과의 관계가 특별히 좋아졌느냐 하면 딱히 그렇다고 하는 한국 내부의 긍정적 평가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국 중 어느 나라와도 특출나게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닌 상태가 오히려 한국이 균형외교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은 제1차 러일협상(베베르-고무라 각서)에 의한 조선의 러시아군과 일본군 주둔 승인과 같이 주변국들이 한국을 겨냥한 양자간 협의는 진행중이지 않기 때문에 독단적인 한국이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주변국들의 야합이 한국의 국익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는 상황이라는 게 다행이고, 또 그 상황을 유지해야 하는 게 한국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중일 구도에서 역사 인식 이슈로만 보면 한중 vs 일 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외의 이슈에 대해서는 중일 vs 한 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 외의 이슈'를 더욱 발굴하여 대비하는 한국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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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목요일 오후 1시 연세대학교 외솔관 110호 강의실에서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님의 강연이 열렸다. 현재 시민사회운동과 사회적기업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으며 저번 방학 때 관련 인턴도 했었기 때문에 나는 꼭 참가해서 강연을 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음은 강연을 들으며 내가 쓴 노트다.



오늘 오전에 청년위원회 회의
대통령실 사회적기업육성T/F
이정훈 교수님이 섭외 담당

사회적기업이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여 돈을 버는 기업이지만 활동의 동기가 사주나 주주의 이익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는 기업

목표: 사회적 목적 추구(지역개발, 취약계층 일자리 사회서비스 제공)
수단: 영업활동 수행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을 통한 수익창출, 지속가능한 조직)

선진국의 사회적기업 등장 배경: 70년대 이후 유럽 복지국가 위기 -> 정부, 비영리단체, 영리기업 역할 강화 -> 재정부담 심화, 서비스 질 저하, 영리성 우선 추구
70년대 오일쇼크 후 복지나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 폭증. 복지자본주의였는데 국가가 재원의 한계를 드러냄. 
그럼 정부는 효율적인가?  그렇지 않다는 많은 반론들이 있음. 그래서 시장을 이용하자. (80년대 레이건, 대처..)

office of civil society 미국 시민사회청
영국 캐머런 총리실 내 big society
프랑스 올랑드 사회연대경제부 

한국의 사회적기업 육성배경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 양극화 문제 -> bottom-up 운동이 시작. 미국 유럽의 사례를 참고함.
고령화와 저출산, 전통가족구조 해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공헌활동의 관심 증가
2007년부터 사회적기업육성법. 고용노동부가 주관부처. 인증제도. 1800개의 예비사회적기업, 2000개의 총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정책도 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맡고 있음. 그런데 이건 기획재정부 소관 사업.
사회적 협동조합은 인가, 신고제도.

2010년 하반기 한국 사회적기업 정책변화의 3대기조
1. 민간주도 
 대한민국만큼 신속하게 복지화를 이룬 곳이 없다. 인증제도는 유례가 없는 제도.
 직접적인 지원으로 임금 등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기업가들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동감을 함. 
2.지역혁신 및 개발
 대도시 조차도 피폐화되어 있음.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빨려들어오고 있음. 스페인 빌바오를 가니까 시장님이 한국을 너무 미워한다 함. 빌바오의 경쟁력은 자동차 철강이었는데 현대 포스코에 뺏김. 그래서 구겐하임미술관을 만듦.
3.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
 한국 기업은 착한 기업이라 하는데 착하다고 다가 아니고 지속적인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고객 선택을 잘 하고 핵심 역량을 갖고 핵심 전략을 갖고 가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기업은 비전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성장해 왔다.
소셜벤처경진대회 (중고등학생부, 대학생및일반인부) 를 주최함. 글로벌부문을 통해서 우승팀은 버클리 GSVC로 감
350개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1년), 2000-4000만원 지원. 최대 2억까지 펀딩 받을 수도 있다. 
business opportunity를 social issue에서 찾는 게 social business. 
사회적 기업도 자원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음. 융자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기금도 운영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 강화를 하고 있음. 지자체와의 관계 강화도 하고 있음. YMCA YWCA 경실련 로타리클럽 등등
오바마도 social worker 경력이 있다. 학생사회개발단 운동 (알렌스키? 교수의 제자). 시카고는 미국 흑인들의 정치적 수도. 
기업의 핵심은 회장. 회장이 배우는 학문을 경영전략이라고 함. 원장님은 경영전략을 학교에서 가르침. 

전략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전략 / KSF / 조직적 정합성 / 최고경영자의 역할
전략이 바뀌니까 CSV개념이 나온 것이다. 

회장이 감옥에 가니까 재단 만들자. 그러면 국민들이 감동 받냐고요.
원장님이 임원들 데리고 강의하는데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게 맞냐고 의심을 품지만 나중에는 동조했다.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지. 
talent war (top 10% recruitment & retention) 이 중요한 게 아니라 ordinary people을 통해 extraordinary result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가치에 기초한 전략 관점>
근본적 가치 또는 신념
가치를 반영하고 구현할 수 있는 경영관행을 설계
 - 그렇게 하면 망해요. 라고 CEO들은 생각하는데 맞다. 실제로 망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만 머물러 있으면 진보할 수가 없음. 
 - 한국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는 2004-2005년에 왔다. 이때쯤 되면 원장님이 말 안해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핵심역량 구축을 위해 이 관행들을 활용
가치를 구현하는 전략을 창출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활용하라
최고경영자의 역할

기업도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윤을 만들어야지. 그런데 숨쉬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있어도. 숨쉬는 건 필수적인 조건일 뿐이지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주는 충분조건은 아님. 마찬가지로 기업의 목적이 생존에 급급하다는 이유로 profit이 아닐수도 있음. 

베니스의 부를 일군 건 샤일록이 아니라 상생연대. 베니스의 ‘콜레간차’
15살만 되면 남자들은 다 배 탄다. 콜레간차는 수익을 창출하고 배분하는 시스템. ‘연대’로 번역.
해상무역은 상선을 만날 수도 해적을 만날수도 있음. 선장이 1/3을 떼먹음. 국가는 수익을 보장한 게 아니라 체제를 보장했음. 
자영업은 초과공급임. 쉽게 창업하라 이런 말 하면 안 됨. 
국가예산 360조 중 100조가 복지예산. 대부분은 국민연금. 우리나라가 복지예산이 제일 낮은 건 사실. 30조의 사회서비스 예산이 잘 운영되고 있는가,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니들이 알아서 해 시장에서 라는 느낌으로 30조 푸는 거 아닌가. 30조 어떻게 쓸지만 바꾸면 사회적 기업가에게 사회서비스라는 새로운 market이 열린다. 
시오노 나나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

창조경제는 ICT로 열릴 수도 있지만 사회적기업의 창조경제도 가능하다. 
사례
복지/돌봄 서비스형
교보다솜이재단 (간병서비스)
YMCA 서울아가야 (영유아 돌봄서비스)
프랑스 파리 L’Usine 
프랑스 Traiteur Ethique : 쉐프가 꼬르동블루 교수. 160명이 근무 종료 이후에 외식업체로 정규직으로 취업. 
아띠제를 인수하려 했던 TE. 
청년 소셜벤처형
공신 (교육불평등 사교육해결 자기주도학습법강의. 인도네시아 마하멘토. 온라인 스트리밍은 KT가 지원했었다.)
시지온 (2009년 9월 라이브리 개발)
빅워크
R&D혁신형: 제너럴바이오 (LG생활건강 출신 엔지니어. 신소재 원천기술개발. 지역주민 고용. FDA인증도 했다)
마케팅 디자인 혁신형: 에코준
협동조합형
SK행복나눔재단 행복도시락,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
국제개발협력형
E3Empower, D.Lamp사업, d.light (적정기술 제품 제조 판매하여 개발도상국에 빛 에너지 공급)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도 저개발 국가 가서 직접 개발협력을 함.
단순한 donation은 절대 안 함. 
신장투석 필터
solar sister 태양열충전배터리

사회적기업은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다. 착하다.
원장님은 여기에 불만이 있다.

착하다: 품질이 낮다. 가격이 턱없이 비싸다. 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를 앵벌이 취급하지 말아주십시오.’
-> 사회적 품질 (원칙있는 생산, 사회적 가치), 지불 가치 있음, 착하다는 이미지는 가져가나 부정적 요소 제거 

이제는 사회적 혁신, 이런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세상.
지금까지 사회적기업 관련 1700억밖에 안썼다.

사회적 기업 서비스 파는 건 명품 파는 것과 비슷함.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 소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에덴하우스 사례 - 감동적인 이야기, 제품 속성 이외의 이야기, 제품과 상관없이 무조건 구매하는 충성고객 존재, 기능적 가치만으로 사회적기업을 평가할 수 없음

서민정책 강화를 위해 정책자문 한 원장님


컨트롤타워는 사회적기업진흥원뿐만 아니라 대학과 시민단체가 하고 있다. + 중기청. 여러가지가 있다. 
지금은 맞춤형 아카데미
환경형 사회적기업, 문화예술형 사회적기업...

power of unreasonable people 이라는 책. 버나드 쇼가 한 말. 모든 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맞춤. 비이성적인 사람은 끝까지 나에 세상을 맞춤.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짐.


다음은 강연을 들으며 생각난 질문이다.


졸업하고 대기업 안 가고 사회적기업 차려서 지원을 받은 다음에 나중에 대기업 경력직으로도 갈 수 있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된 정도로 지금 인식이 바뀐 건가요?

예 바뀌었네요. 하하하하하하^^^^^^!!!


앱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친환경 환경파괴 따질 수 없는 것), 대기업에 B2B로 납품하는 제품에서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자아실현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까?


행복동행 전략의 일환으로 대기업과 ICT기반 벤처기업이 revenue sharing을 하고 있는데 CSV의 V중 금전적 수익이 없으면 CSV가 성립 안하는 것인지? 지속가능하기만 하면 성립된 것인지?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취약계층을 취업시키면 수익을 낼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까? 프랑스 Traiteur Ethique의 경우, 행복도시락의 경우..


[내가 한 질문]
지식집약적 산업의 사회적기업에서 취약계층을 취업시키는 게 힘들지 않느냐?
공신은 지식집약적 산업이지만 고용창출은 안함. Traiteur Ethique는 노동/자본집약적 산업이라 성공한 걸로 보임.


고용노동부 일자리 지원은 취약계층에게만 한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중.  그리고 전문직에 대하여 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함. 전문직은 원하는 임금 수준이 있기 때문에 고용 창출이 어려움. 
기업에서 전제할 것은 직무 역량을 갖출 때 채용이 가능하다는 점. 다만 OJT를 통해 스킬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지식집약적 산업에서 고용창출도 가능함. 사실 TE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뽑은 것임. 장애인들은 기업에 대해서 부가가치를 높인다기보다는 단순한 업무, 스토리 만들기. 현실적으로 고려를 해야 함. 


이날 질문을 한 사람은 정치외교학과 2명, 행정학과 1명 포함 총 5명이었다. 사회과학계열 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원장님을 뵙고 내가 말씀드린 건 바로 이 점이다. 지금 사회가 이러한 담론을 주류 담론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과학계열 학생들은 이 담론을 메시아처럼 받아들인다고. 신자유주의, 경영학과 중심의 세상이 이제 균형을 찾아간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무리 중 하나로 좋아하고 있다. 솔직히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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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활동에 관심이 있는 주민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중에서도 실제로 참여하는 주민과 참여하지 않는 주민으로 나뉘는 것은 왜일까? 실제로 참여할 때는 언제고, 의사가 있어도 참여하지 못할 때는 언제일까? 협력하고 싶은 우리가 실제로 협력하는 건 언제고, 협력하지 않는 때는 언제인가? (1,200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주민들이 상호의존적일 때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에 에 따라 가능하다. 이는 서울시가 마련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 프로그램에 각각 함께 만들고 소비하는 ‘경제공동체, 공동체 활동지원 사업, 신나고 재미있는 문화공동체’ 의 3가지 분류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주민 개인 혹은 3인 이상 주민단체가 신청하여 이루어지는 현장상담 및 조사, 사업선정 및 주민안내, 사업실행계획 제출, 사업비 교부, 보조금 정산 등의 과정은 마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같이 많은 개인적 노력을 요한다.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완전히 자비로만 충당하는 것은 보통의 소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며, 회비를 걷는 것은 마을 주민들에게 회비를 낸 만큼의 보상을 동등한 비율로 가져다줄 것이라는 보장과 감시 장치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자신의 가처분소득을 명예를 위한 기부도 아닌 이러한 분야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위해 모두가 동등한 양의 노동력과 금전적 자본을 내놓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협력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무임승차자가 등장해도 그 무임승차자가 야기하는 비용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한다. 또한 소득이 높은 사람이나 마을공동체 이론에 보다 정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면 마을공동체의 권력구조는 기업의 위계질서와 같이 바뀌어야 한다. 이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데 동의를 빨리 해서 신뢰가 있는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거두게 하는 보상 체계를 정립하는 것도 실제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요소다.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부업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여있다고 가정할 때 협력의 조건을 논의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으로 보인다. 3인 이상이 모여 추진하는 팀 프로젝트인만큼 3인이 협력했을 때 드는 비용이 혼자서만 뛰어들고 다른 사람은 배신했을 때 드는 비용보다 작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한 번의 행사 개최를 통해 공동체의 더 많은 이익을 보려는 경우에는 아담 스미스의 논의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개인적인 행동이 개인에게 보상을 주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도 편익을 가져다줄 때 협력으로 이어진다. 나만의 아이템을 가지고 장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간보는 시장’이 이 경우에 속한다. 시장의 판매자로 참여하지 않고 구매자로 참여한 무임승차자에게 많은 편익이 있지만 무임승차자는 결국 금액을 지불한다.


   교육 프로그램, 청책 포럼, 푸드뱅크, 마을축제 기획단은 일회성이 아닌 최소 6개월 이상의 장기적인 사업으로 추진될 개연성이 높다. 이 사업들은 모두 공유지의 비극을 낳을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경우에는 처음에 협력에 실패하여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관심을 가진 행위자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초기 상태를 개선하고자 그 다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운영하는 사람의 집단이 정해져 있고 서로가 친분을 통해 감시를 같이 수행하며 매주 혹은 매월 단위로 주기적으로 진행되면서 협력의 정도를 중간에 계속 평가하는 특징을 갖는다. 세 가지 특징이 모두 만족되어야만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고 이 중 하나라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집단에서 제외된다.


   마지막으로 어떤 프로그램에서든지 기획을 위한 회의를 할 때는 사람의 수가 적을수록 자신의 의견이 갖는 파급효과가 커져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회의가 빨리 끝나고 결정된 내용이 분명해지고 많아진다. 회의의 결정은 참가자 및 외부의 무임승차자에 대한 공공재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참여했을 때 체감하는 이득은 줄어들고, 이에 따라 반복 게임을 통해 협력으로 이끌 추동력도 작아진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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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를 죽인다.


 1889년생 아돌프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1914년 26세에 독일군의 바이에른 16보병연대에 지원한다. 그보다 2년 전에 스탈린은 볼셰비키가 러시아 사회민주당에서 분리해 나온 뒤에 레닌에 의해 당중앙위원회에 공식 임명된다. 1879년생 스탈린이 1905년 27세에 볼셰비키 대표로 핀란드 회의에 가서 레닌을 처음 만남으로써 그의 정치생활을 시작했으니 두 명의 정치계 입문 시기는 비슷하다. 정치계 입문 시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부정의함을 논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1919년 31세의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도이치국) 정보선전부로 들어가고, 1920년 32세에 그가 속했던 독일노동자당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으로 개명한다. 당시 러시아에는 트로츠키가 붉은 군대를 조직할 때다. 당 내부에서 두 명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히틀러는 1923년 35세에 뮌헨 폭동으로 당을 해산 위기에 몰기도 했으나 1925년 다시 자력으로 나치당을 세우고 히틀러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1932년 그가 44세 때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30명 나치당이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낸다. 한편 이 시기 1925년 초 47세의 스탈린은 1929년까지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부하린을 제거하는 국내 정치투쟁을 벌인다. 제 3자가 누구를 죽일지는 국내 정치투쟁을 위해 그 사람이 누구를 죽이거나 누구에게 해를 입혔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나치당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베르사유조약을 거부하고 국가의 치욕으로 여기는 나치당의 근본 사상은 빠른 공업화, 일국사회주의, 소비에트 당의 다른 공산주의 당에 대한 절대우위라는 소련공산당의 근본 사상에 비해 정당으로서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비겁함만이 우선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히틀러는 1929년의 대공황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선동한 기회주의자였으나, 적어도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면서 독재체제를 구축해가는 일관성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학살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스탈린이 먼저 시작했다. 1930년에52세의 스탈린은 우크라이나의 토지 소유자들을 약 1만 명 죽였다. 히틀러는 선제공격으로 1939년 51세 때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독-소 불가침 조약)을 1941년 53세 되던 해에 깨고 난 다음부터 인종차별 개념으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을 뿐 1939년 이전에는 국내적 군비확장과 전쟁 준비에만 신경썼다. 나이로 따지면 두 명 모두 비슷한 나이에 학살을 시작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두 명 모두 독재자였으나 학살을 보다 이른 시기에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스탈린이었다. 그렇지만 더 악랄하고 세계에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판단한 사람은 히틀러다. 스탈린의 변형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국내의 농업정책이 굴락의 학살을 일으켰지만 이는 내치의 문제이다. 제3자는 외치를 먼저 보아야 하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히틀러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보너스 (느리게 걷는 여행 중 발견한 것들):

바로 이 기사네 ! Hitler vs. Stalin: Who Killed More? (New York Review of Books)

60년만에 공개한 히틀러 자택 (시스템클럽 휴게실)

국제볼셰비키그룹 한국어 홈페이지 (토플 iBT만 있는줄 알았는데 이것도 IBT네요)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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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이동욱입니다. 89년생이며 나이가 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수업을 들은 이유는 평소 관심있던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내정치체계 등과는 달리 취약한 분야였던 정치철학이나 역사를 졸업 전에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IT와 정치의 접점인 사이버 이슈에 가장 관심이 많지만 국제관계를 논하기 위한 전쟁과 평화의 역사 지식을 쌓는 것이 보다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는 유럽 사상에 대항하여 저는 전쟁이란 형벌의 연장이라고 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삼국끼리는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장기적으로는 미일동맹을 끊어지게 하고 중화질서의 조공 시스템에도 편입되지 않는 균형 있는 삼국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주를 외친다는 점에서, 자주를 위해 미국과의 전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는 우파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제가 평화주의자라고 묻는다면 제가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입니다. 20세기의 냉전 시기가 가장 안정된 평화 시대인 것은 전쟁 직후의 세력 균형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관심있게 보고 있는 정부간 기구인 TCS 삼국협력사무국은 바로 세력 균형을 위해 존재할 뿐 EU와 같은 제도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 위안부 역사 논쟁을 다시 끌어오는 것은 지략가들의 대의와 형벌의 논의로 유교권에서는 전쟁 직전의 단계인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형벌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전쟁을 일으키겠지만, 형벌이 필요 없다면 전쟁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섭     14/03/08 10:32

전쟁이 형벌이라고 하면 먼저 죄가 있어야 하는데, 유죄와 무죄의 판정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강현주     14/03/09 18:02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노어노문학과 3학년 강현주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는 전쟁이 '형벌'의 개념에 가깝다는 점에 동의하는데요, 이동욱선배님의 '형벌의 연장'개념에 조금 더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유럽, 특히 서유럽에서의 전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일종의 '과격한' 대화수단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도(道)나 의(義)라는 기준에 따라 국가가 흥하고 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개념인 것 같습니다. 일찍이 오자병법(吳子兵法) 제1편에서 전쟁을 이기는데 중요한 제 1원리로 도국(圖國), 즉 통치자의 도(道)와 통치가 올바르고 합리적일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적국의 통치가 올바르지 못하고 道에
강현주     14/03/09 18:09

적합하지 못할 때 반드시 승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손자병법에서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라고 하며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양에서는 전쟁이 물리적인 파괴력을 통해 적진을 파괴시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도(道)와 치(治)를 두고 국가들끼리 경쟁하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요. 이동욱 선배님 말씀대로 전쟁이 '형벌의 연장'개념이었다면 그 '죄'를 판명하는 기준은 도(道)였으며, 그것을 판정하는 자들은 전통적인 통치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민생,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학자(관리)들이
강현주     14/03/09 18:10

었을 것입니다. 선배님 생각이 제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부족한 의견 덧붙여봅니다.
이동욱     14/03/10 09:56

유죄와 무죄의 판정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장군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그 둘에게 정세와 향후 전략에 대해 조언한 지략가가 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략가들은 적국 지략가들과 근대 국제법의 틀 사이에서 만나 논의하지는 않았고 철저히 자국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 의견은 명분을 만들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명분을 역사로 기록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외교관들이 실리만을 논의하여 힘의 우위를 따졌지만 동양은 명분에 실리를 끼워맞추는 일에 좀 더 힘을 쏟았습니다.
이동욱     14/03/10 10:04

한편 1592년 임진전쟁(임진왜란)의 배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의 다이묘들이 통일 일본의 세력을 명까지 확장하며 명과의 감합(명과의 무역을 위한 허가증) 무역을 재개시키고 힘을 외부로 확장시켜 일본 내의 체제 안정을 도모하는 것으로, 임진전쟁은 자국의 실리에 따라 판단한 정치의 연장입니다. 여기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에 섰던 다이묘들은 결국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이 조선에 적용되지 않고 조선은 유죄라는 판정을 국내에서 만장일치로 하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보였습니다.
이동욱     14/03/10 10:06

유죄와 무죄의 판정은 국내의 지략가나 외교관이 시작하고 국내 전체의 동의를 얻어 무력을 집행하는 사람이 전쟁을 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서 국내 전체의 동의를 얻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하며,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이끄는 제국주의 세력은 일심단결하여 명분을 세웠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주변국과 함께 유죄/무죄 판정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입니다.
김명섭     14/03/12 02:45

그렇다면 유죄로 판정되면 바로 사형, 즉 전쟁이어야 할까?


또 댓글 달아야지 ㅎㅎ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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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사회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있으면 무엇이 좋아집니까? (600)

 

     도시는 다른 어느 공간보다도 주민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공간이자 행정부의 제도가 깊게 관여한 공간이며, 마을공동체는 파편화된 개인만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해결해주고 공동체 내에 책임이 없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제거한다. 도시 내 마을공동체는 작게는 명절 기간의 쓰레기 처리 문제부터 크게는 버스노선 변경과 육교 신설까지 마을공동체 내의 공동의 이익을 형성하고 집행할 때 도시의 특성상 행정기관의 허가가 필요한 다양한 경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합리적 이익 최대화 작업은 행정부가 먼저 주도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발의하여 행정부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고도화된 도시일수록 행동의 범위를 제한하는 제도의 양도 많아지므로 행정부를 끌어왔을 때 효과성도 더욱 커진다.

 

     또한 도시의 인구 밀도가 높은 경우는 한 마을공동체가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자기조직적으로 활동할 때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한다. 성미산마을은 어쩌면 주민 주도로 마을을 형성한 대표적인 bottom-up 방식의 사례이다.(유창복, 마을이 혁신이다-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하여,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이 성미산마을은 아이들의 육아를 협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고, 그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마을살이의 다양한 인프라들이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가족'이 마을의 중심적인 구성단위다. (유창복, “성미산마을, 이제 폼 잡지 말아요”, 오마이뉴스, 검색일 2014 3 10.) 아이들이 밀도 있게 모여있지 않았다면 육아를 위한 환경 조성 노력도 미미했을 것이다.

 

2.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식의 원리에 입각한 마을공동체기업(서울시가 쓰는 개념)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사회적 기업/협동조합/마을공동체기업들이 활성화되면 무엇이 좋아집니까? (600)

 

     마을공동체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이 노하우로 정착되면 그 운영이 예측 가능하게 되어  실행단계에서 민간의 전문역량이 자문, 심사, 모니터링 등의 업무를 수행했을 때 성과가 극대화된다. 여기서 마을사업에 참가하는 주체는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동네의 일반 주민이다. 아울러 정부 부처, 즉 서울시와 각 구청 자치행정과는 각 마을공동체기업이 업무를 편성하기 위한 예산을 뒤에서 지원해주면서 인건비와 같이 일관되게 지원할 수 있는 항목에 집중함으로써 실행단계가 지속적이게끔 만든다.

 

     지금은 서울시의 각 구마다 마을지원센터가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예를 들어 노원마을넷은 노원구에 특화된 사업을 정하여 노원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추진하는 식으로 작은 범위의 마을공동체기업이 최대한 미시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한 마을지원센터는 문화, 경제, 복지, 주거 등의 문제를 가리지 않고 다루기 때문에 부문별로 조직이 나뉘어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알력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는 센터와 더불어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된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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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너머

저자
신현준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3-12-16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케이팝, 글로벌 구성물의 지리적 순환전 세계 소년 소녀들이 케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YKRF리더십포럼과 관련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책을 발견하여 이렇게 글을 남긴다.


국제대중음악학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tudy of Popular Music 와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학회에 우연히 참석한 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국제학계에 휘말려 들어간 신현준 박사는 2015년 YKRF리더십포럼의 문화 파트 특별 강연자로 반드시 초청하고 싶다. 초청은 후배들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이 분야의 직장인이 되어 아주 약간의 조언이나 기업의 사회공헌/대외관계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더욱 좋겠다.


영미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우연찮게 국제적 대중음악 연구자들, 특히 아시아권의 연구자들과 접속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운 좋게도 2003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를 '직장'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아시아 대중음악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대상으로 한 영어 논문은 열 편 정도 축적되었고, 각각 두 편씩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내가 감명받은 사례는 1990년대 말의 우전소프트였다.


19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을 중국에 수출한 최대 공로자는 우전(宇田)소프트였는데, 이 회사는 국제 음악산업계는 고사하고 한국 음악산업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대표 김윤호는 회사를 퇴직한 뒤 사재를 털어 혈혈단신 베이징으로 가서 한국 대중음악을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방송국 경영을 시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1998년 H.O.T.의 중국판 반을 시작으로 시디를 배급하고 공연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중국에서 한류 폭발의 주역이 되었다. 우전소프트는 수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에 배급되는 단일창구로 기능했다.


아울러 유명한 SM


이수만은 2005년 '아시아 네트워킹' 이라는 그의 프로젝트를 피력한 바 있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베세토' 통합 스타와 통합 아시아의 문화산업"에 관한 그의 구상은 이후 SM의 제품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2005년 데뷔한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스카우트되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슈퍼주니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중국에 역수출되어 슈퍼주니어 엠('엠'M이란 중국어 표준어인 '만다린'을 뜻한다)을 이끌었다. 슈퍼주니어 엠은 슈퍼주니어의 기존 멤버 일부와 현지에서 추가로 스카우트한 두 명의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유닛이다. 2009년 데뷔한 5인조 걸그룹 에프엑스의 경우 중국인 한 명, 타이완계 미국인 한 명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댄스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팍스 뮤지카 '87 서울


조용필은 일본, 한국, 홍콩의 톱스타 3인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음악 페스티벌 '팍스 뮤지카 '87 서울' 에서 록 스타일의 곡 '아시아의 불꽃' 을 연주했다. "아시아의 젊은이여" 라고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는 "사랑도 하나 마음도 하나/ 우리의 숨결도 하나/ 여기 모여서 같이 가리라/ 우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회고해본다면 1980년대까지는 이런 유형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것 같다. 실제로 '팍스 뮤지카 '87 서울'의 오프닝은 "아시아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음악을 통해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했든 아니든,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라면 평화와 화합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대중음악이 아무리 탈정치적이고 탈역사적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정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은 곤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20대 중반일 때 똑같은 분위기로 이런 대축제를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는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서로 훨씬 가까워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이라도 '아시아는 하나'라고 진지하게 상상하는 젊은 아시아인은 거의 없는 것같다. 최소한 이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창작하고 연주하려는 아시아의 스타는 더더욱 없는 것 같고, 팬들도 저런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21세기의 한류/케이팝 나아가 케이팝이 매개하는 아시안 팝은 20세기 아시아 대중문화에 남아 있던 정치와 역사를 삭제하고 있고, 식민주의, 냉전, 국가주의 등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우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송페스티벌로 점프해 왔다. 


문화산업은 이제는 국가가 후원하는 '진흥'의 대상이 되었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문화산업의 진흥을 '응원'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 되어버렸다. 중국만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키워드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문화융성, 일본의 쿨 재팬과 더불어 삼국의 국가 지원 형식의 문화산업 발전이 아시아 내에서 균형 있게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전반기는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을 이용해 한 명의 스타를 콘텐츠로 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개발되면서 몇 개의 기록적인 성공 사례가 탄생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2010년대는 보다 활발해진 오프라인 인적 이동과 함께 온라인 공동체 CPND를 통해 도시와 지방을 아우르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집단이 '멀티 소스 원 유즈', 여기서 원 유즈란 '다른 나라지만 비슷한 취향끼리 모이기' 가 되지 않을까.


Mayday의 킨텍스 공연을 보고 나는 CNBLUE의 도쿄돔 공연을 떠올렸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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