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금강산에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옛 선인들이 숭고히 여겼던 그곳, 금강산에 저도 다녀왔습니다.



<허무>

  한 7월 8일 정도로 기억한다. 다음주면 금강산에 간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던 나는, 오늘도 어김없는 '기' 를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6시 20분쯤 일어났다. 다시는 검도 빠져서 벌점 받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비몽사몽간에 서두르기 시작했다. 환각 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사다리를 내려오는데 발이 구덩이에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사다리 앞의 바닥으로 자빠졌다 - 이런 것 모두 내가 그 당시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왼쪽 발가락이 휘어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발가락이 휘어진 게 아니라 부러진 건 줄 몰라서 정신력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슬리퍼 신고 체육관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슬비가 조금씩 오는데 나는 우산도 쓰지 않고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김명순 선생님께 발가락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니까 그냥 기숙사로 돌려보내주셨다. 그리고 그날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었다. 결과는 예상치 못하게 발가락이 '부러진'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금강산에 가고 싶어도 못 갈 거라고 말하셨다. 이 얼마나 허무한 상황인가! 결국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고 다른 친구들이 금강산 가는 것에 맘 설레이는 동안 나는 부목을 대고 목발과 함께 집으로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발가락은 원래 이렇게 허무하게 부러지는 거라고 한다.


<선생님께>

 이런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하여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경치를 몸소 체험할 기회를 놓치고, 따라서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하게 된 점 죄송합니다. 제가 실제로 금강산에 갔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보고서를 쓰자니 쓸 말도 없고 또 그런 것은 모두 가식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성의를 다 하여 이번 사회과 수행평가를 마치기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질문>

  친구들에게 금강산 여행이 재미있었냐고 묻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띠고 나에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날씨는 조금 덥지만 금강예찬에서만 보던 그 경치가 실물로 살아나니 힘든 것도 몰랐다고 한다. 어디 어디를 갔냐고 물었더니 구룡연, 상팔담 등을 가보았고 물 색깔이 에머랄드빛이라고 했다. 북한 안내원들이 인상적이었고, 평양 교예단의 공연 또한 멋있었다고, 나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어렴풋이 그 희미한 실루엣을 머리 속에 떠올릴 뿐이었다. 한순간의 실수가 이런 멋진 기회를 놓치게 한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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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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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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