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댄스를 함께 연습한 대학교 사람들과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보러 갔다. 대학로, 소극장, 역동적인 B-Boy 공연도 격식 있는 발레 공연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이를 위한 공연처럼 보일 수 있는 내용의 1시간 20분짜리 짧은 연극이었다. 처음에 느꼈던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초반에 느꼈던 지루함이 나를 엄습했지만, 공연 속의 배우들의 대사와 움직임에 귀와 눈을 가져다 대고 있으면 이내 그 속의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 공연이 어린이를 위한 연극에 불과했다면 악당을 물리치거나 선한 편이 이기는 해피엔딩과 함께 그저 그 ‘결말’만을 어린 관객들에게 심어주고 끝날 것이다. 하지만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핵심은 난장이가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방법이며, 그것이 비록 짝사랑이고 주변 난장이들에게 멋지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춤과 몸짓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표현되고 전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이나 평론을 주워듣기로는 이 공연에 어머니들이 아들, 딸 손을 잡고 보러 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아들과 딸들도 난장이가 특별한 언어를 통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며 비극적 결말을 맞았고, 그것이 왕자와 공주의 해후라는 해피엔딩보다 더 중요한 주제임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장이가 춤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이유가 단지 태생적으로 말을 못 해서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훨씬 자란 이후에야 스스로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어 우리는 수없이 많이 말로 사람들을 상대할 기회를 갖는다. 정신없는 새내기배움터부터 시작해서 경험 삼아 하는 미팅, 어눌한 파워포인트 자료와 함께하는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교수님과의 면담과 선배들과의 대화, 나아가서 연인과의 속삭임까지 대학생이라는 신분 혹은 그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말을 사용하는 범위는 사방으로 넓어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감정 섞인 말을 주고받을 때 상대방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말이 갖는 불완전성, 혹은 말을 완벽히 활용할 수 없는 우리들의 잘못 탓이다.

  이럴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상징이다. 선물을 건네주거나, 함께 여행을 가거나 경치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영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들이 충분히 겪어본 일들이고 감정의 울림이 있는 감동은 이러한 경우에 달랑 말뿐인 경우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언제 우리들이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마음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전달해 본적이 있는가. 춤은 어떻게 보면 우리네 대학생들에게 가장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징 언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더 극중 반달이의 춤이 우리와는 거리감을 둔 것처럼 보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인 것이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렵다. 하지만 춤 또한 하나의 언어와 같은 것이라 자연스럽게 생각하니 무대 위의 반달이의 연기 또한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반달이가 말을 못한다는 설정이 더욱 난장이의 짝사랑을 분명히 와 닿게 만든 것 같다. 

  공연의 줄거리는 단순했다. 안개숲 난장이 집에 들어온 공주를 좋아하게 된 난장이 반달이는 공주의 목숨을 위협하려는 여왕의 음모와 계략에 의해 당하기만 하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몸 바쳐 돌본다. 하지만 이웃나라 왕자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필요하게 되자 반달이는 공주의 마음을 적극적인 왕자에게 빼앗기게 되고 짝사랑에 슬퍼하여 몸져누워 안개꽃밭에 묻히게 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음악도 내가 가끔씩 보러 갔던 뮤지컬에 비하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심지어 90년대 General MIDI와 같은 사운드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제는 유치한 듯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진지하고 어른의 시각으로 보아야만 깊게 음미할 수 있는 그러한 주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예전에 이러한 주제와 이러한 구성을 가진 또 하나의 국내 창작 뮤지컬 ‘컨츄리보이 스캣’을 본 적이 있다. 참 신기하게도 이 ‘컨츄리보이 스캣’ 또한 바다 세계에 우연히 들어온 소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시적인 가사가 담긴 노래와 신나는 비트를 통해 표현하면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회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버드나무 소리, 바람이 언덕을 타고 넘는 소리 등을 스캣(재즈 음악에서 보컬이 즉흥적으로 부르는 한 프레이즈나 테마. ‘컨츄리보이 스캣’에서는 락에 스캣을 담아내었다)으로 표현하면서 자유를 노래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창작 뮤지컬 또한 그때 당시에는 참 웃겼지만, 지금에 와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와 함께 곱씹어 보니 동종의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1년을 말과 말 그리고 말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 말로 표현하는 언어의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느끼고 항상 언어에서 실수를 하는 스스로를 보아 왔다.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공연은 뜻 깊은 메시지를 다시금 전달해 주었고, 그래서 나는 공연 관람에 만족한다. 물론 춤이 말을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언어가 된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곱게 싸들고 공연장을 나왔다.

알고보니 이 공연 정말 유명하구나

반달님 최인경씨 20대의 절반을 반달이로 보내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
아 사진 흔들려서 ㅠㅠ 아쉬워요 정말로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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