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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보기 전에 나는 연인과의 대화는 친구와의 대화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는 편히 말하던 나의 고민이나 나의 실수담이나 서로 놀리는 말들을 연인 앞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평소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연인에게는 '완벽한 매너와 말솜씨로 무장한 사람'으로서 다가가야 한다고 믿어왔다. 즉 연인에게는 불만을 표해서도 안 되고 항상 과장된 반응을 보여야 되고 몇 초 동안이라도 침묵이 오가면 절대 안 되는 줄 알았다. 이제 와서 그런 옛날의 신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으나, 전에는 정말 심각하게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의 나의 처세를 두 가지로 갈라놓는 데 주력했다. 연인이나 친구나 지금의 어린 나에게는 그저 똑같은 사람인데, 나는 괜히 내 머리를 말도 안 되는 생각과 이론으로 채워놓고 사람들의 특성이라는 자극에 따라 내가 반응하도록 나를 디자인해 왔었다. 그리고 그러한 '디자인'은 내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다가갈 때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긴장감의 결과는 여자에게 부담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갖는 언행의 범위는 친구와 연인 관계가 공유하는 범위에 연인 사이에서만 가능한 언행의 범위를 합친 것이다. 집합 A와 집합 B 그리고 그 사이에 교집합 C가 있다면, A가 친구 관계에서의 언행의 범위이고 B가 연인과의 언행의 범위이다. 풋풋한 대학생 시절에는 교집합 C가 무궁무진하게 넓다. 활동의 자유가 허락된 우리들은 대학생 시절에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도 계획하고 실천하지만 주위의 영향을 받고 나서도 계획하고 실천한다. 하지만 B-C 즉 친구에게는 할 수 없지만 연인에게는 할 수 있는 언행의 범위는 대학생 시절에는 그리 넓지 않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 둘만의 밀실이 넓어지고 둘 이외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경향도 조금씩 커진다. 꼭 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드라마를 시청한 결과 그러한 답을 내렸다. 결국 대학생인 나에게 연인을 향한 처세와 친구를 향한 처세는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사랑하는 사람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고 친구와 대화하듯 연인과 대화하는 능력이다. 끊임없이 연인의 일상과 상황을 알려 노력하고 그러면서 대화의 양을 늘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항상 좋은 것만 주려 고심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갔을 때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친구들과의 대화 + 알파'가 연인들과의 대화라면 그 '알파'는 중간에 가끔씩 들어갈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알파'를 중심으로 보여주느냐 아니면 '자연스럽고 평범한 대화'를 중심으로 보여주느냐에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모든 대사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지루함과 평범함이 대부분인 현실 즉 일상 속에서 비일상으로서의 '알파'를 만들고 찾아내고 같이 즐기는 일이 우리의 일생 중에서 얼마나 작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과거의 나처럼 연인과의 대화는 드라마처럼 특별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자극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의 경우에는 더하다. 대학생이 되어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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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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