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언제 어디서 모이자고 멤버들에게 연락을 주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자기가 먼저 모임 장소에 10분 전에 도착해서 먹을 것까지 세팅이라도 할 것같이 펄쩍펄쩍 긍정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아리에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적인 약속을 취소한 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감정으로 '그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진짜 가고 싶은데 그때 과외가 있다며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겠다고 선언하는 적극적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문자나 커뮤니티 공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동아리의 아무도 모른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동아리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집단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그 동아리는 그 사람에게는 '세컨'으로서의 동아리, 즉 더 중요한 다른 집단에서 충실히 활동한 다음 시간이 남으면 그때 활동을 개시하는 동아리이다. 동아리보다 중요한 다른 동아리, 애인, 혹은 친구가 있다면 그 동아리의 중요성은 묻혀버린다. 그 사람은 그 동아리에 대한 애정을 완벽하게 쏟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동아리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가 힘들 때 우리는 그 동아리를 세컨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자신은 열심히 활동하려 하는데 주위 사람들의 태도와 능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그럴 때에는 자신이 가치없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그곳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 자신의 넘치는 애정을 다른 곳에 쏟게 될 것이다.

  모든 동아리의 초기는 활력이 넘치고 생산적이다. 동아리의 설립 멤버들은 자신들의 모든 대학 생활을 그 동아리에 헌신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가 많고 동아리에서 즐거움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그 동아리는 초기 멤버들에게 우선순위 1순위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동아리는 점차 회원들의 가입과 탈퇴를 자유롭게 규정하여 놓는다. 이것은 동아리의 정체성과 제도의 발전과 함께 같이 신장되는 긍정적인 자유이지만 그 동아리가 어느 누군가에게 '잠깐 놀다 갈 동아리'로 인식되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정한 동아리를 '세컨'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한두 명일 때에는 동아리 전체의 운영과 유지, 즉 생명에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동아리의 모든 사람들이 그 동아리에 대한 우선순위를 2위, 혹은 3위로 설정한다면 그 동아리는 당연히 시들해진다. 그리고 시들해진 동아리는 얼마 못 가 곧 문을 닫게 된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시들어진 수많은 집단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지만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과 1학년 교양 수업의 조모임을 같이 할 때, 그 조모임 커뮤니티는 그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을까. 또 일년에 한 번 있는 행사에 참가해서 그 행사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했을 때, 그 커뮤니티는 어떤 우선순위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질 것일까. 사람들은 평생 친구, 평생 몸담을 동아리에 최고의 애정을 줄 것이고 그러한 커뮤니티는 사소한 한 때의 반강제적인 집단으로 여기고 매우 강제성을 띤 모임이 있을 때에만 참석할 것이다. 물론 조모임 커뮤니티 같은 예시는 낮은 우선순위를 가진 집단의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입한 동아리를 살펴보아도 그 정도의 애정 결핍과 낮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동아리는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복수 개의 동아리에 가입하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의 우선순위를 한 동아리에만 부여하지는 않는다. 세 개의 동아리 모두에 똑같은 애정을 가지고 그곳에서 똑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 세 동아리의 우선순위는 모두 '높음'이고 세컨으로서의 동아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설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제일의 우선순위가 두 개 이상의 동아리에 부여되기가 힘들다. 정말 자신의 자아 실현을 위해 동아리 활동을 한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세컨으로 밀려나는 동아리들이 많이 생겨나는데, 우리는 그러한 세컨 동아리의 우선순위를 다시 1순위로 바꾸던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그 동아리의 구성원인 이상 나는 그 동아리의 행사에 꾸준히 참가하고 다른 멤버들을 동료를 넘어선 친구로 맞이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동아리를 탈퇴해야 한다. 동아리는 방안의 식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고 물과 영양분을 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게 된다. 동아리는 순간의 즐거움, 때에 따라 바뀌는 자신의 욕구 충족 때문에 가끔씩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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