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여자친구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공연을 선사해줄 수 있는 공간을 꿈꿔 왔다. 이 공간은 5~6평(16.5~19.5㎡) 정도이며, 안에는 합주실에서 볼 수 있는 악기와 앰프,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관객석이 갖추어져 있다. 노래방 기기도 갖추어져 있으며 필요하다면 쓸 수 있다. 대관료는 시간제로 하여 6인실 기준으로 2시간에 5만원 정도로 수노래방 같이 편안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곳의 요금보다 조금 더 높게 책정된다. 방은 2인실, 6인실, 12인실, 20인실로 나누어져 있으며, 테마를 나누어 조촐한 방에서 화려한 방까지 다양한 방을 만들고 또한 테마에 따라 장비의 성능과 규모와 가격도 다르게 한다. 예를 들면 조촐한 방에는 커즈와일 PC2X를 놓고 화려한 방에는 야마하 그랜드피아노를 놓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공간은 소규모의 사람들이 찾아가서 일정 시간 동안 장소를 빌려 그 안에서 소품이나 배경을 이용해 전문가적인 사진을 찍거나 혹은 주방기구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스튜디오'의 음악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서울에 이런 공간은 보지 못했다. TV에서도 소개한 적이 없었으며, 내가 실제로 가본 곳중에서 이렇게 내가 생각한 공간과 가장 비슷한 공간은 내가 있는 사회과학대 밴드가 일일호프를 하는 신촌의 작은 칵테일 주점 humanade이다. 이곳은 주점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열려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폐쇄적인 공간과는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 좋아하는 처자에게 공연을 해준 다음 사랑을 고백하기 (2인실)
  • 교회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노래자랑 및 경연대회 (20인실)
  • 음악 동아리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오랜만에 다시 만난 다음 술 마시러 갈 때 과거의 밴드생활의 추억에 젖어 연주를 하며 놀기 (12인실)
  • 지금 활동하는 음악 동아리 사람들이 합주와 뒤풀이를 한큐에 해결하기 (6인실)
 일단 음악을 좀 할 줄 아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악기를 만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아는 사람'인 연주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고 음료와 술을 마시면서 편안히 있을 수 있고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정기공연을 한다고 홍대에서 50만원 대관료를 내고 빌려 쓰는 50~100명 규모의 공연장은 내가 꿈꾸는 공연장보다는 너무 크다. 비싼 가격도 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공연장은 단체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공간이다. 나는 50~100명의 불특정다수보다 나와 친밀한 5~10명을 관객으로 초대하기를 원한다.

 인터넷을 통해 skunkhell 이라는 홍대 공연장을 새로 발견했는데 사진만 보고는 '어, 이거 소규모인데?' 했으나 실제로는 내가 알고 있는 DGBD, 롤링스톤스, GEEK 같은 곳과 다를 바가 없었다.

 노래방이나 미국 영화에 나오는 karaoke(아래 그림 참고) 그리고 prom 장면에서 자주 나오는 '임시로 꾸며놓은 건전한 나이트클럽'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연주를 해볼 수는 없고 항상 반주기가 들려주는 음악과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CD 음악에만 의지해야 한다. 반주기가 아무리 5.1채널 MR을 지원하고 라이브 코러스를 들려준다 한들 직접 연주하는 멋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취미로 삼아 인생을 즐기는 일반인들에게는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악기 연주를 잘 할 확률이 더 높다. (가요를 잘 부른다 생각하는 수많은 남학생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하는 그 집단은 모든 구성원이 음악을 취미로 삼지는 않는다.)






 소규모 노래방+공연장+합주실+바는 2008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확산된 홍대 인디밴드의 인터넷 및 공중파 방송 진출과 그에 따른 대중의 음악 성향 변화에 맞추어 등장하는 신종 업종이다. 물론 현재는 실제로 이렇게 신종 업종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한 시대를 10년 단위로 쪼갰을 때 그 10년을 지배하는 음악 장르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지배하는 장르의 음악은 일반인들의 놀잇감 형태로 수용되고 소비되기 위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 소피 마르소의 'La Boum'에 나오는 공간은 1980년대의 신스팝과 그 이전 1970년대의 락앤롤 및 funk가 유행하면서 그 음악을 수용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이고, 한국의 노래방은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발라드와 댄스곡을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내가 밴드를 했고 홍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인터넷에서 살다시피 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떠오르는 음악은 '밴드 음악'이다. 락과 R&B와 기타 장르를 모두 포함하지만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곳은 대학교 앞 잔디밭, 일일호프, 한강변, 합주실, 대관해서 쓰는 소규모 공연장 등이 전부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정해진 장소에서 장비의 도움을 받아 관객을 대상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곳, 하지만 일방적으로 준비해온 음악을 전달하는 곳이 아닌 연주자와 관객이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이며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곳을 생각했다. 그나저나 노래방+공연장+합주실+바 는 어떻게 이름을 지어야 할까?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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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한큐에 전곡' 녹음을 끝낸 것으로 유명하다.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와서 짐을 풀고 스탭들과 추후의 마스터링을 위한 음향과 악기 점검을 한 뒤 하나, 둘, 셋 하고 슬슬 달아오르면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밴드의 구성원들이 꿈 속을 거니는 듯한 멜로디에 알아서 취해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NG 없이 녹음을 끝내고 말았다. 스탭들은 기립박수를 쳤고 Barry Manilow는 이날에 자신이 평소의 다른 앨범을 만들 때와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첫 녹음이 완벽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나는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꿈속, 도시 야경, 유람선,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편안하게 친구들이나 애인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 얼음을 띄운 샴페인 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군부대 생활관에서 밤에 이 앨범을 혼자 헤드폰으로 듣는다. 모든 이미지는 군대의 이미지나 선입견과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이기 때문에 고귀한 느낌이 든다. 촌-도시, 젊음-성숙함, 활기참-차분함, 가요-재즈. 모든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이질감은 사치를 할 때 느끼는 만족감으로 바뀌어 다가왔다. 남극에서 바나나가 귀하고 스위스에서 김치가 귀하고 미국에서 찻잎이 귀하지만 필리핀, 한국, 베트남에 가면 그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귀함과 흔함은 상대적이지만 귀할수록 더 많은 만족을 준다.



www.artistarec.com 앨범에는 이 사이트로 들어가라고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들어가보면 페이지가 다 짤려 있다. 아마 Universal같은 대형 음반사에 인수된 듯하다.

▲ Yamaha C-5 Piano (Barry Manilow가 사용)

한편 멜론플레이어에서도 이 앨범에 대한 극찬이 끊이지 않는데.. 앨범평을 보면 다음의 글들로 채워져 있다.

10월엔.. (비단벌레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10월에 특히 생각나는 앨범입니다.. Barry Manilow씨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죠. 앨범중에서 When October Goes..는 10월에 듣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죠.. ^^

파라다이스 까페. (vja77lo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기사만 듣고나서는 자미로콰이 분위기 나는 음악인줄 알았더니 고독한 싱어송라이터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네요. 음악제목도 파라다이스 까페라니 확실히 요즘 음악보다 옛음악이 진정한 멋을 아는 것 같네요 별 다섯개 주고 싶습니다. 쾅!쾅!쾅!

쭉 이어서 들어보세요. (bbggt67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이 앨범 녹음할때 한곡한곡 따로 녹음한게 아니라 one take로 한번에 녹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앨범전체가 한곡처럼 연주된 느낌이 드는데 곡자체가 술입니다 그냥 취해버려요. 그냥. ㅠㅠ

제목도 어쩜 ㅠ_ㅠ (yutyht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저렇게 센스있을까. 진짜 까페분위기 나요 커피 끓이고 있음 ㅠ_ㅠ

커피 끓이고 있음 ㅠ_ㅠ 에 빵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세션은 Barry Manilow 아저씨가 직접 연주하시는 피아노. 그래서 나는 피아노 악보를 구하기 위해 수없이 구글링을 했다. 공짜 악보사이트나 한국의 카페에는 절대로 악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 2:00 AM Paradise Cafe의 전곡을 디지털 악보로 구매할 수 있는 미국 악보사이트를 발견하였으니

바로 musicnotes.com !!!!!

 ▲ 인증샷!! Paradise Cafe (1번째 트랙) 가 저렇게도 고품질의, 95%의 싱크로를 자랑하는 피아노용 악보로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악보는 미국 달러로 $5.25 이다. (한국 돈으로 하면 지금 환율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6500원 정도 한다. 비싸지만 이곳의 악보는 그 싱크로 때문에 제값을 한다.) 정말로 Manilow 아저씨의 이 고귀한 곡들은 난잡한 공짜 악보 사이트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이렇게 돈을 주고 사야 접근할 수 있는 정말 희귀한 악보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곡을 연습하면 희소한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외국 사이트에서 온라인 결제를 할 때 나는 외환 The One 체크카드를 사용해서 결제를 한다. (똑같이 VISA가 써있는 우리은행 카드는 승인이 항상 거절된다.) musicnotes.com에서 악보를 사려면 사이트에서 설치하라고 하는 17.5MB의 작은 소프트웨어를 먼저 설치해야 한다. 그래야 악보를 보고 인쇄할 수가 있다. 악보를 산 다음에는 무제한으로 인쇄할 수 있는데, 인쇄된 악보에 'Authorized for use by James Dean' 식으로 악보를 구매한 사람의 영문 full name이 찍혀 나온다. 회원가입과 결제는 아주 금방 할 수 있고 인쇄도 바로 된다. 솔직히 이렇게 인터페이스가 편리하고 빠르게 만들어져 있는 사이트는 요 사이트가 처음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악보바다, 악보공장, 인터뮤즈보다 못하면 못했지 능가하지는 않았다.

 내 방에는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는데, 마침 하릴없이 놀고 있던 이 멋진 놈에게 나는 항상 미안했다. 내가 피아노를 칠 마음이 그닥 나지 않아서이다. 아마 좋은 음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일텐데, 때마침 2:00 AM Paradise Cafe 안의 반짝거리는 곡들과 그 속에서 고독하게 '야마하 피아노를' 연주하는 Manilow 아저씨는 나에게 다시 한번 야마하 피아노를 애정과 관심으로 대하게끔 만들었다. 피아노와 나의 어색한 관계가 When October Goes로 허물어졌다.

▲ 나는 가장 인기가 좋은 트랙인 When October Goes를 구매하여 오늘 부대 복귀하기 전에 한번 쳐보고 갈란다


이 소중한 앨범은 나의 남은 군생활 동안 생활관에서 밤에 자기 전의 운치 있는 시간을 책임져 주고 힘든 시절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 술과 같은 친구가 되어줄 음반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앨범을 홍대앞의 중고음반 판매점에서 우연히 집어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참말로 감사하다.

Posted by 마키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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